습관적으로 게임에 돈을 받으면 안된다

동북아시아에서는 F2P 게임이 자리 잡은지 세월이 흘러 새 디아블로 같은 사례를 보면 안타까울 때가 있습니다.

습관적으로 게임에 돈을 받으면 안된다

이 이야기를 할까 말까 고민했는데 어쩌면 한국에서 게임을 만들며 한국식 상업성에 뇌가 절여진 사람의 꼴 같지도 않은 의견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잘못된 의견인지 아닌지 역시 생각을 풀어 놓기 전에는 확인할 수가 없기 때문에 완전히 잘못된 이야기를 할 위험을 감수하고 타이핑을 계속해 보려고 합니다. 잘못된 관점으로 풀어낸 잘못된 이야기가 되더라도 이렇게 잘못 생각했던 글을 그대로 두고 생각을 고친 글을 다시 만들 수 있을 지도 모르기도 하고요.

이미 팀 슬랙 채널에 누군가 붙여 넣은 디아블로 4 할인 링크를 보고 새 디아블로가 출시 후 얼마 지나지도 않은 시점에 할인을 시작했음을 알고 있었습니다. 뭐 오래 전 시작된 이 프랜차이즈의 초기 게임들 처럼 싱글플레이가 핵심이고 멀티플레이가 보조 수단으로 들어간 관점이라면 몰라도 이 프랜차이즈 게임 중 가장 훌륭한 과금 체계를 만들어낸 디아블로 이모탈이나 시즌제로 운영되는 온라인 멀티플레이 체계를 정립한 디아블로 3에 기반한 디아블로 4는 비록 처음 진입할 때 적지 않은 돈을 내야 하지만 그 속성이 온라인 멀티플레이 게임에 더 가깝습니다. 만약 새 디아블로가 프랜차이즈의 시작과 비슷한 싱글플레이가 핵심인 게임이었다면 초반 흥행이 예상만큼 훌륭하지 않더라도 바로 가격을 조정하는 대신 확장판을 준비할 동안 좀 더 기다렸다가 확장판 출시에 맞춰 가격을 조절할 수도 있었을 겁니다. 하지만 새 디아블로는 온라인 멀티플레이가 핵심이고 게임을 구입한 다음 바로 플레이 할 수 있는 싱글플레이는 게임의 튜토리얼에 가깝기 때문에 온라인 멀티플레이 고객이 줄어들면 확장판을 준비하더라도 게임 서비스를 유지할 동력이 급격히 감소합니다.

어쩌면 현재 개발팀은 크게 두 가지 큰 목표를 달성해야만 하는 상황에 놓여 있을 겁니다. 일단 게임을 끝까지 완성하지 않고 출시했기 때문에 스토리라인을 완성 시키기 위한 확장판을 준비해야 합니다. 개인적으로는 처음부터 게임을 이 상태로 출시할 계획은 아니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핵 앤 슬래시 액션 롤플레잉 게임 프랜차이즈 최신작이 그 스토리를 끝내지도 않은 채로, 그리고 게임 이름에 나온 바로 그 괴물이 등장하지도 않은 채로 출시할 계획을 처음부터 가지고 있기는 어렵습니다. 개발을 하다 보니 여러 시행착오와 희미한 비전이 어우러진 결과 회사가 납득할 수 있는 출시 시점을 지킬 수 없는 상태가 됐고 우리들이 자조적으로 말하곤 하는 ‘출시 당한’데 더 가까운 상황이었을 거라고 예상합니다. 참고로 개발비가 많이 투입된 기대작 중 비슷하게 게임을 끝까지 만들지 못하고 중간에 마무리 해 출시한 사례에는 메탈기어 솔리드 5가 있습니다. 새 디아블로가 게임 제목의 괴물이 나오지도 않은 채 끝난 것처럼 마지막 메탈기어 솔리드 역시 처음 계획한 모든 지역을 만들지 못한 채 출시해야만 했습니다.

두 번째 목표는 확장팩 출시 시점까지 게임을 운영하는 것입니다. 일단 게임이 온라인 멀티플레이의 속성을 강하게 보이는 이상 싱글플레이 한 번과 엔딩 한 번으로 끝나기를 원하는 게임이 아닙니다. 고객들은 사실상 튜토리얼이나 다름 없는 싱글플레이를 마친 다음 시즌을 거듭하며 플레이를 계속하고 라이브 서비스를 통해 개발자가 추가하는 수직 성장 요소, 그리고 고객들이 서로 경쟁하며 플레이를 만들어내는 PvP 컨텐츠를 계속해서 플레이 해야 합니다. 현대에 주요 게임 콘솔 개발사의 퍼스트 파티에 포함되어 강력한 지원을 받지 않는 이상 패키지 판매 수익 만으로는 개발비를 회수할 수 없어 온라인 멀티플레이를 만들어 고객들이 게임을 떠나지 않고 계속해서 플레이 하게 만들어야 합니다. 일단 고객들이 온라인 멀티플레이를 통해 튜토리얼을 마친 다음에도 게임에 머무른다면 어떻게든 비즈니스 기회는 생깁니다. 출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패키지 판매 만으로 개발비를 회수한 것으로 알려진 저 유명한 GTA 5 조차 오랜 세월에 걸친 온라인 멀티플레이를 제공해 엄청난 성과를 만들어 냈습니다.

디아블로 역시 이 점을 모르지 않았기에 튜토리얼에 해당하는 싱글플레이를 개발함과 동시에 고객들이 싱글플레이를 마친 다음 하게 될 경험을 동시에 개발해야 했을 테고 이는 생각보다 훨씬 복잡한 일입니다. 여러 게임들이 싱글플레이를 개발한 다음 멀티플레이를 개발하며 게임이 크게 바뀌곤 하는데 싱글플레이를 먼저 개발하면 이후 일어나는 커다란 메커닉 변화를 싱글플레이에 반영해야 하기 때문에 일이 복잡해집니다. 이상적으로는 멀티플레이를 먼저 개발해 메커닉의 기초를 정립한 다음 싱글플레이 개발을 시작해 같은 부분을 여러 번 개발하는 수고를 줄일 수 있습니다. 싱글플레이만 있는 게임조차 끝없는 재작업으로 인력과 비용을 갈아 넣은 사례가 있는 마당에 이게 말처럼 쉬웠다면 싱글플레이와 멀티플레이가 모두 있는 여러 게임의 개발에 그렇게 긴 기간과 엄청난 비용이 필요하지는 않았을 겁니다.

현재 디아블로가 스팀에도 올라오고 또 25% 할인도 하고 있는 이유는 게임을 팔아 개발비를 회수하기 위함이 아니라 온라인 멀티플레이 플레이어를 투입해 서비스를 유지할 동력을 얻고 이에 기반해 확장팩으로 출시될 튜토리얼의 나머지 부분을 개발할 동안 시간을 벌기 위해서입니다. 만약 상황이 나빠져 온라인 멀티플레이를 플레이 하는 고객이 감소해 멀티플레이 메커닉이 동작하지 않는 상태가 되면 서비스를 유지할 동력이 사라지고 시즌 시스템은 더 이상 동작하지 않게 되며 이는 고스란히 확장팩 개발에 압력으로 작용해 확장팩 역시 본편처럼 ‘출시 당하는’ 운명을 맞게 될 수 있습니다.

애매한 할인율은 나름 깊은 고뇌의 결과일 수 있는데 생각 같아서는 본편에 더 높은 할인율을 적용해 온라인 멀티플레이에 고객을 더 많이 투입해 비즈니스 기회를 유지하고 서비스를 개발할 동력을 유지하고 싶을 겁니다. 하지만 그랬다가는 얼마 전에 풀 프라이스를 내고 게임을 구입한 고객들의 강한 저항과 마주할 수도 있고 미래의 신뢰를 영구적으로 잃어버릴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저 애매한 할인율은 할인을 해서 온라인 멀티플레이에 신규 고객을 유입 시키되 기존 구매자들을 너무 많이 화나지는 않게 하는 아슬아슬한 할인율로 볼 수 있습니다.

이 상황을 생각하기라도 한 것처럼 새 디아블로는 처음부터 13만원, 8만원의 상대적으로 약간 높은 가격으로 판매되었습니다. 물론 이 가격은 여전히 패키지 판매 만으로는 절대 개발비를 회수할 수 없는 지나치게 낮은 가격이지만 기존 고가 정책을 생각하면 이해할 수 없는 수준은 아닙니다. 그리고 25% 할인을 적용하고 나면 스팀에 출시되는 어지간한 최신 게임의 풀 프라이스와 비슷한 가격이 되어 할인을 하면서도 스팀 기준으로는 여전히 최신 게임과 비슷한 가격을 유지하는 효과도 있을 것 같아 보입니다. 아마도 한동안은 저 할인 가격을 유지하며 가격을 올리지도 내리지도 않을 텐데 이는 애초에 디아블로 4가 추구한 비즈니스 모델과 현재 게임을 판매하는 방식이 잘 맞지 않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전 디아블로를 팔던 시대만 해도 여전히 서구권에서 이 정도 규모 게임은 패키지를 구입해야 한다는 사실이 그리 이상하지 않았을 겁니다. 온라인 멀티플레이 게임이지만 패키지를 판매한 사례에는 길드워 시리즈가 있습니다. 한국을 포함한 동북아시아 관점에서는 어차피 온라인 멀티플레이를 통해 여러 과금 시점이 있을 예정이기 때문에 굳이 게임에 진입하는데 비용을 요구할 이유가 없었습니다. 오히려 게임 진입에 비용을 요구하면 온라인 멀티플레이에 참여하는 고객이 감소해 전체적으로 비즈니스 기회가 감소하게 됩니다. 그래서 동북아시아 관점에서는 새 디아블로 이상으로 개발비를 쓴 게임이라도 온라인 멀티플레이에 최대한 많은 고객을 투입 시킬 목적으로 아예 게임을 무료로 플레이 할 수 있게 합니다. 일단 플레이 하고 게임이 마음에 들면 온라인 멀티플레이 과정에 준비한 다양한 과금 요소를 통해 패키지를 판매하는 것 보다 더 큰 수익을 낼 수 있습니다. 또 세계 여러 나라에 같은 방식을 사용함으로써 한 시장에서 실패하더라도 다른 나라 시장에서 이전의 시행착오를 개선한 버전을 통해 다시 한 번 비즈니스 기회를 만들 수 있었습니다.

새 디아블로는 그동안 서구권에서 당연하게 생각해 온 비즈니스 모델을 심각하게 다시 생각해봐야 했습니다. 디아블로 이모탈 서비스를 지켜보며 블리자드가 넷이즈와 협업하며 동북아시아 비즈니스의 매운 맛을 충분히 학습했으리라 생각했고 여기에 기반해 만들어질 새 디아블로의 비즈니스 모델을 기대했습니다. 하지만 새 디아블로는 마치 30년 전처럼 온라인 멀티플레이가 핵심인 게임을 높은 가격에 판매합니다. 이렇게 해서 한동안 패키지 판매를 통한 매출을 올렸을지 모르지만 그다지 성공적이지 않은 온라인 멀티플레이 메커닉과 훌륭하지는 않은 참여율로 인해 미래의 비즈니스 기회를 이미 상실하고 있습니다. 새 디아블로가 그들이 바로 직전에 서비스한 디아블로 이모탈과 같은 온라인 멀티플레이가 핵심인 게임이 될 것이 확실했다면 디아블로 이모탈과 같이 게임을 무료로 플레이 하게 해 온라인 멀티플레이에 최대한 많은 잠재 고객을 투입하고 이후 서비스를 통한 과금으로 매출을 만들어야 했습니다. 지금은 처음 채택한 상대적인 고가 정책이 그들 스스로의 발목을 잡아 온라인 멀티플레이에 신규 고객을 공격적으로 투입하지도 못하고 또 기존 고객들을 열 받게 해 신뢰를 잃어 딱히 시도할 만한 수단이 거의 없습니다.

여전히 여러 게임은 구입하는데 돈을 받고 고객들도 이런 구매 형태를 더 달가워 하는 것 같습니다. 당장 저 자신도 무료로 플레이 하다가 넛지나 허들을 만날 때 과금을 할지 말지 망설이는 경험을 하기 보다는 일단 샀으면 마음 편히 계속해서 플레이 하기를 원하고 또 월 단위로 구독하기 보다는 한 번 구입해 계속해서 사용하는 소프트웨어를 더 선호합니다. 맥에서 알프레드는 라이프타임 파워팩을 구입했고 EmEditor 역시 큰 비용을 내고 구독이 아닌 상품을 구입했습니다. 사용 여부에 따라 구독을 중단하거나 재개하는데 신경 쓰고 싶지 않습니다. 하지만 세계는 변했고 이전과 같은 방식으로는 개발비를 회수할 수 없습니다. 게임 가격은 아주 오랜 세월에 걸쳐 거의 같은 수준이며 이는 지난 수 십 년 동안의 인플레이션을 반영하지도 못합니다. 동북아시아는 이런 세계를 좀 더 빨리 맞이했고 지난 세월에 걸쳐 이런 시장에서 게임을 개발하는 방법을 익혔지만 새 디아블로 사례를 볼 때 아직 서구권에서는 이런 방식에 충분히 익숙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디아블로 4는 그들이 디아블로 이모탈을 통해 배운 것과 같은 비즈니스 모델을 선택했어야 합니다. 아무리 개발비가 많이 들었더라도 디아블로 이모탈이 그랬던 것처럼 게임을 무료로 플레이 하게 해 최대한 많은 고객을 유입 시켜 온라인 멀티플레이가 동작할 동력을 만들고 이 동력에 기반해 잘못된 멀티플레이 메커닉을 바로 잡는 서비스 과정을 통해 온라인 멀티플레이에 남은 고객들이 매출을 일으키는 방식을 선택했어야만 합니다. 아쉽게도 그들은 넷이즈가 개발한 동북아시아 비즈니스의 매운맛을 충분히 배운 것 같지 않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어쩌면 이들은 그저 습관적으로 게임에 돈을 받을 생각을 했을지도 모릅니다. 전작을 무료로 플레이 하게 해 지속적으로 고객이 유입되도록 해 개발비를 회수한 경험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습관적으로 ‘새 디아블로는 얼마에 팔까?’하는 고민을 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면 안됐습니다.

새 디아블로는 암만 봐도 출시 당한 것 같아 보이고 라이브 서비스와 게임을 완전하게 만들 확장팩 개발을 동시에 수행해야 하는 어려운 상황에 놓여 있습니다. 현재 상황을 돌파하는 방법 중 하나는 게임 진입이 무료여서 온라인 멀티플레이에 공격적으로 고객을 유입 시키고 이를 동력 삼아 멀티플레이 메커닉을 수정하고 이에 기반해 확장팩 기반의 온라인 멀티플레이를 개발하는 것이지만 애매한 할인 만으로는 그런 동력을 확보하기 어려울 겁니다. 이 사례로부터 개인적으로는 습관적으로 게임에 돈을 받으면 안 된다는 교훈을 얻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