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로는 이해하지만 가슴으론 이해하지 못하는 시즌제

시즌제를 도입한 이유는 과거에 새 서버를 열며 생기는 문제를 완화하기 위해서입니다. 하지만 훌륭하지는 않습니다.

머리로는 이해하지만 가슴으론 이해하지 못하는 시즌제

흔한 멀티플레이 온라인 게임을 상상해 봅시다. 이미 다 알고 있는 캐릭터를 움직이는 방법, 공격하는 방법, 스킬을 사용하는 방법, 물약을 사용하는 방법을 하나하나 클릭해서 배웁니다. 웬만한 슈터 장르에서 W, A, S, D 키를 사용해 캐릭터를 이동 시키는 방법을 더 이상 자세히 설명하지 않고 아무 때나 조작법을 살펴볼 수 있게 만드는 추세와는 관계 없이 200년 전에는 유효했을 것 같은 ‘원숭이도 플레이 할 수 있어야 한다’는 불가능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이미 모든 사람이 알고 있을 것이 분명한 조작법 하나하나를 분리해 화면 전체를 가로 막은 채로 그 행동 하나를 학습 시키는 모습은 기괴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웃기기도 합니다.

간신히 말도 안되는 튜토리얼을 넘긴 다음 초반 스토리라인을 플레이 하기 시작합니다. 게임에 따라서는 스토리라인을 돌파함에 따라 정확히 고안된 성장 시점에 도달하면 여러 가지 성장 메커닉을 하나씩 추가 제시하며 이 세계에서 강해지기 위한 여러 가지 방법이 있음을 배웁니다. 가령 캐릭터 레벨과 경험치, 이에 의해 성장하는 여러 가지 숫자들, 아이템에 붙은 공격력과 방어력, 아이템에 부여된 마법 효과, 게임의 여러 상황에 따라 유불리 여부가 달라지는 마법 효과를 다양하게 변경하는 방법, 아이템에 보석을 끼워 능력치를 올리는 시스템, 캐릭터와 아이템의 레벨 성장 제한을 올리는 한계 돌파 등등의 선형성장, 계단식성장, 그리고 비효율성장에 해당하는 각각의 성장 방법을 학습합니다. 게임에 따라서는 스토리라인 까지는 편안하게 무지성으로 플레이 해도 돌파할 수 있게 설계하기도 하고 방금 설명한 주요 성장 요소를 착실히 수행하지 않으면 돌파할 수 없도록 설계하기도 하며 어떤 게임들은 스토리라인을 돌파하기 위해 상당한 시간을 들이거나 결제하지 않으면 돌파하기 어렵도록 설계하기도 합니다.

스토리라인을 어느 정도 마무리해갈 무렵 게임의 라이프사이클을 유지하는 핵심 기반인 PvP가 등장하는데 게임이 고객에게 PvP를 밀어붙이는 강도에 따라 고객이 직접 관여하지 않는 비동기 스타일의 PvP, 고객이 직접 관여하지만 캐릭터 간의 강함이 직접 승패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 스포츠 스타일의 PvP, 그리고 캐릭터 간의 강함이 직접 승패에 영향을 미치는 스타일의 PvP, 마지막으로 필드에서 자유롭게 PvP를 경험할 수 있는 형태로 구분해 차츰 뒤쪽의 PvP 스타일을 제공합니다. 고객에게 굳이 PvP를 제공하는 이유는 제품 수명 주기 유지 비용을 줄이기 위해서인데 과거에 여러 실패 사례를 겪으며 개발자들은 고객과 개발자가 직접 싸워서는 절대로 고객을 이길 수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가령 새로운 스토리라인, 난이도 높은 보스, 이들을 포함한 새로운 배경과 다양한 몬스터를 오랜 기간에 걸쳐 개발해 제공하더라도 고객들은 예상보다 훨씬 짧은 시간 안에 컨텐츠를 소모해 버린 다음 대규모 업데이트를 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할 게 없다며 게시판에 불만을 남기게 만듭니다.

고객이 새로운 컨텐츠를 클리어 하는데 걸리는 시간 예측에 보통 실패하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게임의 복잡도가 이미 충분히 높아져 고객들의 실제 강함을 단순히 시간 만으로 판단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숫자로 파악할 수 있는 고객들의 강함보다 훨씬 강한 보스를 만들곤 하지만 이들 역시 게임의 복잡도가 만들어내는 다양한 헛점으로 인해 개발자들의 예상보다 실제로는 훨씬 약하게 동작하곤 합니다. 다른 한 가지 이유는 고객들이 컨텐츠를 소모하는 속도가 지속 가능한 생계를 유지하는 사람의 일상으로는 도저히 상상하기 어려울 만큼 빠르기 때문입니다. 전통적으로 게임 밸런스를 시간축을 기준으로 디자인할 때 고객이 24시간 내내 플레이 한다고 가정하고 계산하는 방법을 배우는데 이는 기준으로 삼기 위함이 아니라 실제로 이렇게 플레이 하는 고객들이 무시할 수는 없을 만큼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루에 몇 시간을 플레이 할 것을 가정하고 만든 밸런스는 순식간에 무너지고 이번 업데이트의 최종 보스가 몇 시간 만에 쓰러지곤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