뽑기 금지를 어떻게 우회할 수 있을까

법률로 뽑기 메커닉이 완전히 금지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뽑기 금지를 어떻게 우회할 수 있을까

지난 출쳌 보상 금지를 어떻게 우회할 수 있을까에서 순전히 재미 삼아 출석 보상 메커닉을 사용할 수 없게 되었을 때 어떤 방식으로 비슷한 효과를 내면서도 법률을 지킬 수 있는지 알아봤습니다. 실제로 출석 보상을 금지하는 법률이 어떻게 생겼는지 확인하지도 않은 채 그저 기사의 헤드라인만 본 다음 재미로 시도했기 때문에 법률이 좀 더 촘촘하게 만들어졌다면 각 항목을 모두 지키기 위해 훨씬 주의 깊게 메커닉을 수정해야 할 수 있고 반대로 법률이 훨씬 느슨하게 정의되었다면 이 느슨한 범위 안에 드는 모든 시도를 실수로라도 시도하지 않기 위해 메커닉을 철저히 검토해야 할 겁니다. 하지만 이번에도 재미로 뽑기 금지 메커닉을 사용할 수 없을 때 이를 어떻게 우회할 수 있을지 생각해 볼 작정입니다. 이번에도 여전히 이 시도는 순전히 재미를 위한 것일 뿐 실제로 법률을 위반할 의도는 전혀 없음을 확실히 해 둡니다.

뽑기 메커닉의 핵심은 어떤 메커닉이 항상 특정한 결과를 돌려줄 때 고객 입장에서 이 메커닉이 어떤 결과를 돌려줄지 제한적으로만 예측할 수 있게 하는 것입니다. 뽑기 메커닉의 유용함은 동물 실험을 통해서도 검증된 바 있는데 기억에 의존한 사례에 의하면 버튼을 누를 때마다 먹이를 얻을 수 있는 장치와 버튼을 누를 때 먹이가 나오거나 나오지 않는 장치를 조작해본 쥐들은 항상 먹이가 나오는 버튼 대신 먹이가 나올지 여부가 확실하지 않은 버튼을 더 격렬하게 조작했다고 합니다. 사람에 대해 이런 실험을 한 사례가 있을지 모르겠지만 만약 포유류 동물 또는 영장류 동물들도 비슷한 행동을 한다고 가정하면 이 메커닉의 핵심은 고객에게 이와 비슷한 반응을 불러올 가능성이 있습니다. 이런 감정은 주사위를 던질 때도 비슷하게 느낄 수 있는데 모노폴리를 플레이 할 때 주사위 눈에 따라 거의 불가능할 것 같았던 상황에서 승리하면 처음부터 전략적 대응으로 얻은 승리에 비해 훨씬 더 강한 감정을 느낄 수 있을 겁니다.

현대에 이 메커닉을 채용한 수집형 게임에서 캐릭터를 카드 형태로 판매할 때 정확한 카드를 기대값에 해당하는 금액을 지불하고 정확히 바로 구입할 수 있게 만드는 대신 기대값에 훨씬 못 미치는 금액을 지불하고 뽑기를 시도하도록 만듭니다. 운에 따라 기댓값보다 훨씬 낮은 비용을 지불하고서 원하는 캐릭터 카드를 얻을 수 있을 수도 있지만 반대로 기대값을 초과하는 비용을 지불하고서도 원하는 카드를 얻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당연히 전자의 경우에는 마치 주사위 운이 좋아 불가능할 것 같은 승리를 얻은 것과 비슷한 감정을 느낄 수 있겠지만 그 반대 경우에는 회사 입장에서도 그리 바람직하지 않은 감정을 느끼게 될 겁니다. 그래서 이런 상황을 완화하기 위해 소위 ‘천장’이라고 부르는 메커닉을 추가하거나 뽑기를 통해 얻은 원하지 않는 결과를 모아 원하는 캐릭터 카드를 획득할 별도 방법을 이벤트를 통해 제공하거나 매 뽑기 시도마다 규칙적으로 특정 재화를 제공한 다음 이를 마일리지처럼 사용해 원하는 캐릭터 카드를 획득하는 시스템을 정규 메커닉으로 제공하기도 합니다. 이런 장치들의 핵심은 어쨌든 근본적으로 기대값보다 낮은 금액을 지불하고 원하는 아이템을 얻을 수 있을지 여부가 확실하지 않은 시도를 하는 행위 자체를 바꾸지는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뽑기 메커닉은 주의 깊게 설계하지 않으면 고객이 기대값에 비해 너무 많은 비용을 지출하게 만들어 부정적 감정을 느끼게 만들고 또 나아가 고객이 게임을 지속 가능하지 않은 상태로 만들 수 있어 설계하는 사람 입장에서 그리 편안한 메커닉이 아닙니다. 우리가 게임을 만드는 근본적인 이유는 고객들이 게임을 통해 일상 생활, 그리고 실제 세계에서는 경험할 수 없는 경험, 그리고 이를 통한 특정한 감정을 느끼게 하는 것입니다. 실제 세계에서 일반인은 레이스카를 운전할 수도 없고 민항기를 조종할 수도 없으며 탱크에 탈 수도 없습니다. 또 바쁜 일상 속에 경마공원에 가서 마권을 구입하고 경기가 일어날 시간에 맞춰 이를 관람하는 것 역시 결코 간단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게임을 통해서라면 기적적으로 주사위 눈 합이 정확히 나오는 순간을 경험하거나 중간으로 뒤쳐졌던 내가 건 말이 결승선을 맨 먼저 통과하는 순간의 그 감정을 느낄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런 메커닉을 내러티브를 통해 전달하는 소프트웨어를 만들고 이를 통해 고객들로부터 댓가를 받습니다. 이 상태를 유지하기 위한 근본적인 원칙은 서로가 이 상태를 지속 가능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캐릭터 수집형 게임은 캐릭터 자체를 획득하는데 뽑기 메커닉을 사용하고 또 어느 MMO 게임에서는 게임을 시작할 때 클래스를 결정하는데 같은 메커닉을 사용하기도 하며 나아가 성장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는 다양한 장비들을 같은 메커닉을 통해 획득하게 만들기도 합니다. 게임의 여러 부분에 걸쳐 같은 메커닉을 도입하면서 흔히 ‘통가챠’라고 부르는 방식의 메커닉을 사용하기도 하는데 초기에 게임을 구성하는 여러 가지 성장 요소를 나눠 캐릭터, 장비, 성장 재료 따위가 서로 분리된 각각의 뽑기 메커닉을 통해 획득하도록 했다면 통가챠는 이들을 모두 묶어 단일 뽑기 메커닉을 통해 이들 모두를 획득할 수 있게 만들었습니다. 이는 게임 상에서 얻을 수 있는 주로 강해지기 위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가장 빠른 방법은 오직 한 가지 뿐이기 때문에 황당할 정도로 직관적이라는 장점이 있습니다. 뭔가 막혔다 싶으면 바로 상점에서 이 메커닉을 돌리다 보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게임의 모든 구성 요소가 같은 메커닉에서 나오기 때문에 고객이 목표하는 각각의 상품에 대한 기대값을 계산하기 어렵고 전반적으로 아이템 각각의 단위 가격을 올리게 됩니다. 사실 만드는 사람 입장에서 이 메커닉으로부터 나오는 각 구성요소의 확률을 직관적으로 관리하기 대단히 어렵기 때문에 반드시 이렇게 만들어야만 하는 어른들의 사정이 있지 않은 한 개인적으로는 피하고 싶습니다.

자. 대강 뽑기가 뭔지, 기대값 상승으로 인한 부정적 감정을 어떻게 완화하는지, 그리고 게임의 여러 구성요소를 뽑기를 통해 제공하는 두 가지 메커닉에 대해서 간단히 이야기했으니 이번에는 만약 이를 사용할 수 없게 되는 상황을 상상해 보겠습니다. 일단 뽑기를 정의해야 합니다. 이번에도 헤드라인에만 의존하고 실제 정의를 확인하지 않았으니 우회할 대상을 정의하겠습니다. 이번에는 뽑기를 실제 상품 가격에 해당하는 정확한 기대값을 알 수 없는 상태에서 한정된 구성요소 중 하나 이상을 각각의 기대값보다 낮은 비용으로 구입하되 정확히 어떤 상품을 구입하게 될 지 알 수 없는 메커닉을 뽑기라고 정의해 보겠습니다. 하지만 대한민국 현행법 상 각 상품이 출현할 확률을 표기해 기대값을 계산할 수 있게 해야 하는데 이를 직접 공개하더라도 정확한 기대값 또는 가격을 계산하기는 쉽지 않기 때문에 여전히 이를 알 수 없는 상태라고 생각하겠습니다. 이제 법률에 의해 상품의 적정 가격보다 낮은 비용을 지불하고 구입할 상품을 정확히 알 수 없는 메커닉을 사용할 수 없다고 가정합니다. 그러면 이와 비슷한 효과를 유지하면서 법률을 어떻게 지킬 수 있을까요.

가장 먼저 생각나는 방법은 구입 과정과 선택 과정을 서로 분리해야 합니다. 뽑기는 이 메커닉을 실행할 때 돈을 지불하고 결과 역시 바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지불 과정을 별도로 분리해 두면 전통적인 관점에서 뽑기가 일어나는 시점을 명확하지 않게 만들 수 있습니다. 가령 상점에서 패키지 상품을 9천9백원에 판매하고 구성품 중 일부에 뽑기 상자를 포함하면 전통적인 뽑기 메커닉의 지불 시점과 뽑기 실행 시점을 분리할 수 있습니다. 일단 패키지 상품의 구입이 일어났고 실제 뽑기 메커닉에 해당하는 부분은 상자를 열 때 그 안에서 나올 아이템의 종류가 결정되는 것인데 이를 위에서 정의한 뽑기 메커닉의 정의에 일치하는지 확인하기 쉽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기대값이 투명하지 않은 아이템이 나오는 모든 메커닉을 금지하려고 하면 당장 앞마당에 돌아다니는 몬스터들이 드랍하는 아이템 역시 항상 같은 결과가 나와야 하는 이상한 상황에 처할 수 있기 때문에 구매 시점과 뽑기 메커닉 실행 시점을 분리하면 이를 통틀어 뽑기 메커닉이라고 정의할 여지를 줄일 수 있을 겁니다.

또 상품 구입 시점을 분리하고 뽑기 메커닉 실행 시점을 게임의 코어 메커닉에 분산할 수 있습니다. 앞에서 상점에서 판매하는 패키지 상품을 통해 구입 시점과 뽑기 실행 시점을 분리했는데 이번에는 비슷하게 패키지 상품을 구입하되 상자를 사용하는 대신 버프를 줘 몬스터를 사냥할 때 특정 아이템 또는 아이템 군이 나올 확률을 만들어 줍니다. 이 효과는 일정 시간 동안만 지속되므로 효과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계속해서 상품을 구입해야 하고 상품을 구입하는 시점에는 언제나 정해진 정확한 상품을 얻을 수 있으니 이를 뽑기 메커닉이라고 해석하기는 어려울 겁니다. 이제 버프를 받은 상태에서 사냥 하면 이전에는 확률이 아예 없어 획득할 수 없는 아이템을 획득할 수 있는 상태가 되기 때문에 게임의 코어 메커닉일 가능성이 높은 전투 행동을 계속함에 따라 뽑기 메커닉이 연속적으로 동작하게 됩니다. 이 구성에서 아이템의 등장 확률을 올리고 버프 지속시간을 줄이면 구매 행동과 뽑기 메커닉 실행 사이에 간격이 줄어들며 만약 버프를 아이템 모양으로 만들고 이를 항상성 유지에 포함하면 뽑기 메커닉에 한정해서는 상품의 정확한 구매 시점과 뽑기 메커닉의 실행 시점을 정의하게 어렵게 만들 수 있습니다.

뽑기 메커닉을 통해 획득 가능한 아이템을 게임 내 컨텐츠 보상으로 걸어 놓고 특정 조건을 만족하지 않으면 클리어 할 수 없도록 만들 수도 있습니다. 이는 근본적으로 구매 시점과 실행 시점을 분리하는 전략의 변형에 가깝습니다. 특정 던전 보스가 죽을 때 확률에 따라 아이템 군 중 하나 이상을 드랍 하는데 이 보스를 클리어 하기 위해 자기 자신을 포함해 잘 훈련된 네 사람이 필요하다고 해 봅시다. 친구가 많은 분들이라면 잘 훈련된 세 사람을 확보하기 그리 어렵지 않겠지만 현대에 모바일 게임을 간간히 플레이 하는 사람들에게 이는 거의 불가능한 요구이며 이 조건을 만든 사람 역시 이 사실을 모르지 않습니다. 만약 컴퓨터처럼 완벽하게 행동하는 - 컴퓨터니까 - 용병 NPC 세 명을 고용해 보스를 클리어 할 수 있다면 보스로부터 드랍될 수 있는 아이템 군 중 하나 이상을 획득할 수 있는데 고객은 용병을 구입했지만 실제로 뽑기 메커닉이 실행되는 시점은 보스가 죽을 때로 만약 이를 뽑기로 규정한다면 던전 보스로부터 항상 같은 아이템을 획득하게 하거나 던전 보스로부터 마일리지를 획득해 보상으로 교환하는 방식을 사용해야 합니다. 가능하기는 하겠지만 고객 입장에서 아이템을 획득해도 그리 기쁘지 않을 겁니다. 기대하지 않은 아이템이 아니라 이미 충분히 노력한 당연한 결과를 얻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실 지금까지 게임의 발전을 살펴보면 뽑기 메커닉을 금지하기는 쉽지 않을 겁니다. 현대에 널리 사용되는 명시적인 뽑기 형태를 금지할 수는 있겠지만 이미 역사적으로 게임의 다양한 구성 요소에 랜덤 메커닉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랜덤 메커닉은 아이템 획득 확률 뿐 아니라 크리티컬 대미지가 적용될 확률, 공격을 방어해 대미지를 경감 시킬 확률, 세계에 이벤트가 발생할 확률 등 다양한 곳에 사용되며 게임 경험을 다채롭게 만들어 주고 또 각각의 경험을 기대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그래서 명시적인 뽑기 메커닉을 금지한다 하더라도 구매 시점과 뽑기 실행 시점을 분리하면 사실상 이를 금지하기는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뽑기 금지나 출쳌 보상 금지를 직접 실행해 실질적인 효과를 거두기는 어려울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앞에서 말한 대로 게임의 핵심은 고객에게 어떤 경험과 감정을 주는 것이고 게임과 고객 양쪽 모두 지속 가능해야 이 순환 관계를 유지할 수 있습니다. 게임이 고객의 지나친 과금을 유도한다면 고객은 게임을 지속할 수 없게 될 겁니다. 개인적으로는 고객들 각각이 가늘고 길게 게임을 즐기며 더 긴 시간에 걸쳐 서로 경험을 주고 받는 관계가 가장 건강한 상태라고 봅니다. 이 때 뽑기 메커닉이 주는 감정적 상태를 무시하거나 이를 포기하는 대신 고객의 지출을 완화하고 지속 가능한 상태로 유지하는 메커닉을 통해 자연스럽게 지출을 통제하는 방식으로 변화해 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재미 삼아 뽑기 메커닉이 금지될 때 이를 우회할 방법을 반사적으로 생각해 봤는데 제가 이렇게 생각한다고 해서 실제로 이렇게 우회할 수 있지 않을 겁니다. 법률로 금지된다면 만약 가능하다 하더라도 함부로 이를 우회하려는 시도를 했다가 정치적으로 더 나쁜 상황에 처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 해본 생각은 특정 메커닉을 사용할 수 없게 될 때 이를 게임의 서로 다른 기능을 활용해 같은 기능을 어떻게 분산할 수 있는지 알아본 것으로 보는 편이 좋습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법률을 함부로 대해서는 안되고 개인적으로도 법률을 어길 생각이 전혀 없습니다. 단지 뽑기 메커닉을 사용할 수 없게 되는 상황을 생각해 보니 만약 실제로 이런 상황이 일어난다면 개인적으로 재미있게 생각하는 설계 문제가 나타날 것 같아 미리 그런 재미를 만들어 보고자 잠시 생각해 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