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디자인에 개입은 디자이너의 오너십을 망가뜨린다
중간관리자로써 함께 일하는 분들의 게임디자인에 관여할 일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는 종종 담당자의 이해를 벗어나 오너십을 망가뜨릴 위험이 있습니다.
둠의 창조자들을 읽고 있습니다. 제가 자라 온 시대는 둠의 시대보다는 퀘이크 시대에 더 가깝지만 이들의 게임은 제 인생 일부에 분명한 흔적을 남겼습니다. 첫 회사에서는 종종 점심 시간에 퀘이크 데스매치를 플레이 했는데 제 플레이는 형편 없었지만 그게 중요하지는 않았습니다. 점심 먹고 사람들이 모여 앉아 각자 점심시간이 끝나면 동료이고 또 상사들에게 마음껏 샷건을 휘갈기는 시간이었고 누가 누구를 쏘고 또 누가 누구를 죽였는지에는 아무런 관심도 없었습니다. 그 순간에는 오직 내 위치와 내 총구 앞의 누군가, 그리고 우리 둘 사이를 가르는 로켓에 관심이 있었을 뿐이었고 어쩌면 그 상태가 바로 이 게임의 제작사 이름 바로 그것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합니다. 이 플레이를 통해 개인적으로 배운 점은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포기하지 않는 자세인데 자기계발서에 나올 것 같은 웃긴 표현이지만 사실이 그랬습니다. 한번은 DM17에서 플레이 하다가 저를 스쳐 지나가는 로켓에 밀려 시커먼 공간으로 날아가 떨어지기 시작했고 저는 마우스를 쥔 손에서 힘을 뺐습니다. 그런데 그 순간 저와 함께 떨어지기 시작한 동료가 잠시 후면 고깃덩어리로 산산히 부서질 그 찰나에 총구를 돌려 저를 쐈고 그 동료는 그 마지막 순간에도 1킬을 기록합니다.
책에는 다른 사람을 위해 게임을 만들 때 가지는 자세와 자신의 게임을 만들 때 자세가 달라지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전에 회사에 고용되어 시간에 맞춰 게임을 만들던 그들은 자신들의 회사를 세우고 게임을 만들기 시작하면서 이전과는 다른 열정을 불태웁니다. 울펜슈타인 3D를 만들고 또 첫 둠을 만들던 그 순간들은 현대 관점에서 보면 분명 초과근무수당이 없었을 것이 분명한 시대에 습관처럼 지독한 크런치 모드로 일한 겁니다. 하지만 그들은 자신들의 일을 하고 있었고 그들 스스로가 회사의 주인이었으며 그들의 게임은 그들의 성과이고 또 그들의 회사이며 심지어 그들 자신이기도 합니다. 그런 열정 끝에 만들어진 게임은 장르를 창조했고 산업을 만들어냈으며 현대에 우리들이 먹고 사는 기술의 상당 부분에 기여합니다. 하지만 그런 엄청난 성공 뒤에 퀘이크를 만들 때 현대의 우리들이 회사에 고용되어 일할 때 쉽게 빠지는 기획적 어려움에 빠졌고 또 열정으로 여러 문제를 무마하던 상태에서 벗어나 규모가 커질 때 겪을 수밖에 없는 온간 인간적인 문제와 의사소통의 문제, 그리고 프로젝트 관리 문제 따위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모습은 이들의 창조물로부터 인생의 일부에 큰 흔적을 남긴 사람 입장에서도 남 일 같지 않아 마음이 아픕니다. 책에서 퀘이크라는 챕터는 한참 전에 지나갔지만 아직 퀘이크는 출시되지 않았고 회사는 돈을 벌고 있지만 프로젝트는 수렁에 빠져 있습니다. 문득 이 상태야말로 현대 우리들의 모습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문득 들기 시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