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디자인에 개입은 디자이너의 오너십을 망가뜨린다
중간관리자로써 함께 일하는 분들의 게임디자인에 관여할 일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는 종종 담당자의 이해를 벗어나 오너십을 망가뜨릴 위험이 있습니다.

둠의 창조자들을 읽고 있습니다. 제가 자라 온 시대는 둠의 시대보다는 퀘이크 시대에 더 가깝지만 이들의 게임은 제 인생 일부에 분명한 흔적을 남겼습니다. 첫 회사에서는 종종 점심 시간에 퀘이크 데스매치를 플레이 했는데 제 플레이는 형편 없었지만 그게 중요하지는 않았습니다. 점심 먹고 사람들이 모여 앉아 각자 점심시간이 끝나면 동료이고 또 상사들에게 마음껏 샷건을 휘갈기는 시간이었고 누가 누구를 쏘고 또 누가 누구를 죽였는지에는 아무런 관심도 없었습니다. 그 순간에는 오직 내 위치와 내 총구 앞의 누군가, 그리고 우리 둘 사이를 가르는 로켓에 관심이 있었을 뿐이었고 어쩌면 그 상태가 바로 이 게임의 제작사 이름 바로 그것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합니다. 이 플레이를 통해 개인적으로 배운 점은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포기하지 않는 자세인데 자기계발서에 나올 것 같은 웃긴 표현이지만 사실이 그랬습니다. 한번은 DM17에서 플레이 하다가 저를 스쳐 지나가는 로켓에 밀려 시커먼 공간으로 날아가 떨어지기 시작했고 저는 마우스를 쥔 손에서 힘을 뺐습니다. 그런데 그 순간 저와 함께 떨어지기 시작한 동료가 잠시 후면 고깃덩어리로 산산히 부서질 그 찰나에 총구를 돌려 저를 쐈고 그 동료는 그 마지막 순간에도 1킬을 기록합니다.
책에는 다른 사람을 위해 게임을 만들 때 가지는 자세와 자신의 게임을 만들 때 자세가 달라지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전에 회사에 고용되어 시간에 맞춰 게임을 만들던 그들은 자신들의 회사를 세우고 게임을 만들기 시작하면서 이전과는 다른 열정을 불태웁니다. 울펜슈타인 3D를 만들고 또 첫 둠을 만들던 그 순간들은 현대 관점에서 보면 분명 초과근무수당이 없었을 것이 분명한 시대에 습관처럼 지독한 크런치 모드로 일한 겁니다. 하지만 그들은 자신들의 일을 하고 있었고 그들 스스로가 회사의 주인이었으며 그들의 게임은 그들의 성과이고 또 그들의 회사이며 심지어 그들 자신이기도 합니다. 그런 열정 끝에 만들어진 게임은 장르를 창조했고 산업을 만들어냈으며 현대에 우리들이 먹고 사는 기술의 상당 부분에 기여합니다. 하지만 그런 엄청난 성공 뒤에 퀘이크를 만들 때 현대의 우리들이 회사에 고용되어 일할 때 쉽게 빠지는 기획적 어려움에 빠졌고 또 열정으로 여러 문제를 무마하던 상태에서 벗어나 규모가 커질 때 겪을 수밖에 없는 온간 인간적인 문제와 의사소통의 문제, 그리고 프로젝트 관리 문제 따위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모습은 이들의 창조물로부터 인생의 일부에 큰 흔적을 남긴 사람 입장에서도 남 일 같지 않아 마음이 아픕니다. 책에서 퀘이크라는 챕터는 한참 전에 지나갔지만 아직 퀘이크는 출시되지 않았고 회사는 돈을 벌고 있지만 프로젝트는 수렁에 빠져 있습니다. 문득 이 상태야말로 현대 우리들의 모습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문득 들기 시작합니다.
업계에 저 자신을 포함한 여러 사람들은 책에 나온 두 존처럼 자기 자신의 게임을 만들기보다는 회사와 팀에 고용되어 다른 사람의 게임을 만드는데 참여합니다. 게임에는 제가 좋아하는 부분, 제가 개발하기를 원하는 부분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부분도 있으며 심지어는 진지하게 게임에 포함되지 않았으면 하는 부분도 있습니다. 하지만 다른 사람의 게임을 개발하는 우리들은 게임의 일부에 기여하지만 그 전체를 통제할 권한이 있지 않은 경우가 많으며 게임이 결국 원하는 모양과 거리가 멀어지더라도 그 개발에 계속해서 참여해야만 합니다. 프로젝트 구성원 중 누군가가 게임 전체를 통제하며 적어도 이 누군가만은 자신이 원하는 게임을 개발하고 있다면 그나마 나쁘지 않은 상황이라고 생각합니다. 종종 프로젝트 구성원 중 그 누구도 자신이 원하는 게임을 만들고 있지 않을 때가 있으며 심지어는 프로젝트 구성원 뿐 아니라 경영진, 스폰서들마저도 그저 수익을 내는 어떤 제품을 만들고 싶을 뿐 게임에 대해 뚜렷하게 원하는 바가 없을 때도 종종 있습니다. 그런 상황 속에서 우리들은 게임의 일부분을 맡아 직접 만져볼 수 있는 모양이 될 때까지 개발을 지속하고 그들이 합쳐져 온전한 기능을 하도록 만들고 결국 어떤 형태로든 고객에게 경험을 줄 수 있으며 이 경험이 지속 가능한 단계까지 만들어 결국 출시에 도달합니다. 종종 그 결과가 우리들의 마음에 들지 않는다 하더라도 회사에 고용된 사람으로써 희미한 비전을 돌파해야만 합니다.
회사에 고용되어 일하는 입장에서 게임 전체의 모양을 원하는 대로 바꾸기는 쉽지 않지만 적어도 자기 자신과 우리들이 속한 부서가 관여하는 부분만이라도 우리들이 옳다고 생각하는 모습으로 바꿔 가려고 노력하곤 합니다. 이건 개인적인 취향이나 옳다고 생각하는 기준에 의한 것일 수도 있고 또 다른 한 편으로는 그 동안 다른 프로젝트에서 실패 경험을 반복하며 그렇게 하면 안 될 가능성이 높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종종 경쟁적인 게임을 플레이 하는 고객들로부터 게임이 점점 경제시스템을 더 강력하게 통제해 인게임에 자원이 잘 돌지 않아 답답하다는 의견을 받을 때가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그들의 의견에 깊이 공감하지만 그렇다고 그들이 원하는 대로 설계를 수정할 생각은 전혀 없습니다. 게임을 만드는 우리들은 업계 초창기의 천재가 아니며 우리들이 만드는 게임 역시 그 시대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복잡해졌습니다. 그런 높은 복잡도의 소프트웨어가 장기적으로 지속 가능하고 또 우리들 스스로의 인간적인 실수에 의해 비가역적으로 파괴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그리고 이 복잡도를 우리들이 이해할 수 있는 수준으로 관리하기 위해 그런 강력한 통제 규칙을 양보할 수 없습니다.
제 스스로도 고객 입장에서 이 상태가 종종 납득하기 어려울 수 있다고 생각하긴 하지만 실제로 그렇게 일하지는 않지만 종종 함께 일하는 동료가 고객들과 같은 의견을 가지고 그 의견을 스스로 옳다고 생각해 게임디자인에 반영하려고 시도하실 때가 있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작업 진행 방식은 단위 기능의 목적과 컨셉을 제시하지만 처음부터 그보다 더 깊이 들어가지 않는 것입니다. 우선 목적과 컨셉을 기반으로 규칙을 설계하고 나서 이를 문서로 만들어 다른 사람들과 공유할 수 있게 되었을 때부터 관여하기 시작합니다. 종종 처음부터 아주 조그만 부분을 디자인 할 때마다 이 디자인의 옳고 그름을 확인 받으시려는 분들도 계신데 이럴 때마다 스스로 옳다고 생각하는 완결된 디자인을 만든 다음에 이야기하자고 이야기할 시점을 뒤로 미룹니다. 일단 규칙을 만든 그 스스로가 어떤 이유로든 옳다고 생각하는 완결된 디자인을 구축해야 서로 그 디자인의 옳고 그름에 대해 이야기를 시작할 수 있고 이 상태에 도달해야 비로소 디자인의 옳고 그름을 평가할 수 있습니다. 맥락 없이 아주 작은 규칙 하나하나의 옳고 그름을 평가하려고 하면 이를 담당하신 분 입장에서 스스로 고민할 기회를 모두 날려버리고 또 이를 평가하려고 시도한 제 입장에서도 옳고 그름을 전혀 알 수 없는 이상한 상태에 빠집니다.
종종 이런 중관관리자의 접근은 의도와 다른 디자인이 도출된 다음에야 상황을 파악하고 이를 바로잡으려고 시도하게 만들기도 합니다. 만약 그 이전에 좀 더 자잘한 의견을 나눴다면 의도와 상당히 다른 디자인이 아예 나오지 않을 수도 있었을 겁니다. 일단 문제가 생겼으면 이를 수습하는데 집중하면 되는데 상황을 수습하는 방식은 여전히 고민거리입니다. 가령 게임에 여러 클래스가 있고 공격 규칙은 근거리 물리, 원거리 물리, 그리고 마법의 세 가지 방식이 있다고 할 때 서로 다른 클래스는 각기 다른 무기와 각기 다른 스킬을 사용하지만 근본적으로 이 세 가지 공격 방식 중 한 가지 방식으로 공격하도록 설계하는 것이 보통입니다. 그리고 클래스 각각이 성장할 때 자신의 공격 스타일에 맞는 무기와 스킬을 사용하고 이들의 성장에 필요한 성장 재료를 파밍하도록 합니다. 가령 전통의 버서커는 근거리 물리 공격을, 흑마법사는 마법 공격을 하도록 설계하고 이들 각각이 같은 던전으로부터 근거리 물리 성장 재료와 마법 성장 재료를 획득해 캐릭터를 성장 시키고 파밍 중에 나온 다른 방식의 성장에 필요한 재료는 거래소에 올려 재화로 바꾸거나 자신이 성장 시킬 다른 클래스 캐릭터가 사용하도록 합니다. 현대에 가까워질수록 이런 구분은 점점 희미해져 가고 있는데 고객들이 이전 시대처럼 강한 파티 플레이를 원하지 않아 스스로 어지간한 던전을 클리어 할 수 있도록 클래스를 설계해야 하고 이에 따라 한 가지 클래스가 그 방법이 물리이든 마법이든 간에 근거리와 원거리 공격을 모두 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모니터 앞에서 일하는 약해 빠진 우리들은 애초에 들어 올릴 수도 없을 것 같은 거대한 칼을 휘두르는 버서커는 당연히 근거리 물리 계열의 성장을 할 것처럼 보이지만 현대에는 이들도 최소한의 마법 스킬을 획득하게 만들어 필드를 지나가다가 마주친 이미 진행 중인 필드 이벤트에 재빨리 숟가락을 얹어 작은 보상을 먹을 수 있는 기회를 줄 수도 있습니다. 만약 전통의 근거리 물리 공격만 할 수 있었다면 이미 사람들이 체력을 반 쯤 깎아 놓은 필드 보스 가까이까지 달려들어 적은 보상을 예상함에도 상당한 위험을 감수해야만 합니다. 이를 고려한 고객은 필드 이벤트를 마주치지만 필드 보스의 남은 체력을 살펴보고 무릅써야 하는 위험에 비해 보상이 적다는 사실을 파악한 다음 그냥 모른 척 지나가 버릴텐데 이런 의사결정이 늘어나면 필드 이벤트에 의해 보스가 스폰되어 주변을 어슬렁거리지만 딱히 위험을 감수하고 싶지 않은 사람들이 주변을 서성이며 서로 눈치만 보는 지극히 실제 세계와 비슷한 상태에 빠집니다. 그런데 지극히 근거리 물리 공격만 할 수 있을 것 같은 클래스라도 아주 기초적인 원거리 마법 스킬 하나를 배워 둘 수 있도록 설계하면 상황을 재미있게 바꿀 수 있습니다. 비록 이 원거리 마법 스킬은 비용을 투자해 성장 시킬 만큼 강해지지 않을 것이 분명해 보이지만 근거리 물리 공격을 주로 하는 클래스라도 이런 마법 한 가지를 알고 있으면 필드 보스를 발견하고 주저 없이 큰 위험 부담 없는 상태로 한 줄기 마법을 발사해 필드 보스의 체력을 아주 조금 깎는데 기여할 수 있게 됩니다. 만약 보스 체력이 얼마 안 남았다면 주변에 머물며 조금 더 공격할 수도 있고 다른 일을 처리하러 이동하는 도중이었다면 계속해서 이동할 수도 있습니다. 그 결과 필드 보스는 보다 여러 캐릭터로부터 공격 받아 더 빨리 클리어 되고 여기 참여한 사람들은 보상을 받아 필드 이벤트가 의도에 맞게 동작하기 시작하며 지나가다 거의 위험 부담 없이 마법 한 줄기를 쐈던 버서커는 아까 지나친 보스로부터 들어온 아주 작은 보상을 받고 기뻐할 수 있게 됩니다.
하지만 이런 스토리를 이해하지 못한 채 요구사항으로 모든 클래스는 물리 공격과 마법 공격 양쪽 모두를 성장 시킬 수 있으며 핵심 공격이 물리 공격 스킬 위주로 짜여진 클래스라도 마법 성장 재료를 모아 마법 계통 스킬을 성장 시킬 수 있어야 한다는 요구사항은 이상하게 받아들여질 수 있습니다. 또 여태까지 여러 영화와 소설과 만화와 애니메이션에서 물리 공격을 하는 캐릭터는 주로 물리 공격만을, 마법 공격을 하는 캐릭터는 오직 마법 공격만을 수행하는 모습이 머릿속에 강하게 남아 있다면 분명 그렇게 만들지 않을 생각임에도 불구하고 본능적으로 전통의 제한을 포함한 규칙을 만들어버릴 수도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미래의 변경을 딱히 고려하지 않은 요구사항에 집중한 시스템을 아주 좁은 범위로 설계하다 보면 데이터를 어떻게 집행하더라도 근거리 물리 캐릭터는 오직 근거리 물리 스킬만을 사용하고 또 던전에서 획득한 근거리 물리 스킬 성장 재료만을 사용할 수 있는 모양으로 만들어 버릴 수 있는데 기획서 단계에서 이를 발견했다면 개입해 의도에 맞춰 바로잡을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그보다 더 늦게 발견해 이미 개발되어 에셋과 데이터가 집행된 다음 플레이 하다가 문제를 발견한다면 시간에 맞춰 이를 바로잡을 수 없게 됩니다.
방금까지 저는 입장이 서로 완전히 반대인 두 가지 이야기를 했습니다. 먼저 팀에 업무를 분배한 다음에는 일단 문서 모양으로 정리될 때까지는 스스로 옳다고 생각하는 디자인을 만들어 달라고 요구합니다. 일단 문서 모양을 통해 온전한 맥락을 가진 시스템이 준비되면 서로 이 시스템의 옳고 그름을 이야기하고 또 서로 판단할 수 있는 상태가 된다고 했습니다. 그 다음에는 고정관념과 약간 어긋난 의도를 포함한 요구사항을 분배한 다음 이에 신경 쓰지 않고 있으면 종종 의도한 것과는 완전히 다른 상태로 개발될 수 있는데 개입 시점이 너무 늦으면 분명 잘못된 상태로 개발되었다는 사실을 알지만 제한시간 안에 의도에 맞게 고칠 수 없어 의도와 다른 전통의 규칙 그대로 게임이 출시되는 상황을 막을 수 없을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둘 중 어느 한 가지 노선을 선택해야 하지 않을까요? 잘못된 이해에 기반해 규칙이 만들어져 개발되고 더 이상 손 쓸 수 없는 시점에 이를 발견하는 사고를 겪기보다는 처음부터 업무 진행에 좀 더 깊이 관여해 의도와 다른 디자인이 만들어지지 않도록 하면 종종 일어나곤 하는 알면서도 고칠 수 없어 그냥 내보내는 끔찍한 경험을 피할 수 있을른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이건 올바른 방법일까요? 한번은 어느 게임의 마일스톤이 끝날 때 성장 시스템이 완전히 이상하게 설계되었다는 사실을 빌드를 만져보다가 발견했습니다. 이를 지금까지 설명한 사례에 기반해 재구성해보면 버서커가 마법 성장 재료를 획득해 그 얼마 안되는 원거리 마법 공격이라도 성장 시켜 의외로 꽤 강한 원거리 공격을 할 수 있는 단계까지 비용을 들여 키울 수 있어 이 낯설지만 힘든 길을 선택한 고객들에게 의외의 플레이 경험을 주려는 의도였습니다. 그런데 처음 기획서를 검토하다 보니 전통의 고정관념에 맞춰 거대한 검을 자유자제로 휘두르는 이 덩치 큰 캐릭터는 아직 힘과 체력을 올리는 성장 과정을 가지고 있었고 무기와 스킬 모두 오직 이런 테마에 맞춰 성장하도록 설계되어 있었습니다. 애초에 한 클래스가 다른 공격 방식의 성장을 아예 배제하도록 만들어져 있어 버서커가 라이트닝 볼트를 쏠 수 있어야 한다는 스토리를 설명하기 이전에 미래에 다양한 하이브리드 클래스가 등장할 수 있기 때문에 한 클래스가 여러 공격 스타일의 성장 과정을 감당할 수 있는 모양이어야 한다고 설명합니다. 별 것 아닌 것 같고 실제로도 별 것 아닐 수 있지만 이런 성장을 허용하는 시스템디자인과 그렇지 않은 시스템디자인은 당장은 그리 비싸지 않은 수정 후 바로잡을 수 있지만 에셋이 발주되고 게임 전역에 보상이 집행되고 나면 이를 알면서도 쉽게 고칠 수 없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고 다른 일에 신경을 쓰다가 문득 빌드를 만져보니 오래 전에 수정해 달라고 요청했던 성장 방식이 생각했던 것과는 아주 다른 방식으로 만들어졌을 뿐 아니라 여전히 한 클래스는 전통의 클래스 역할에 맞는 성장 과정을 밟아야만 하고 게임 전역에 이런 성장 방식을 뒷받침하는 보상이 집행 되어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상황을 파악해 봤지만 이미 의도와 완전히 다른 관점으로 시스템디자인이 진행되었고 이미 개발이 꽤 멀리까지 진행되어 이를 바로잡는다면 적어도 한 마일스톤은 걸릴 것 같아 보이는 상황입니다. 하는 수 없이 처음 생각했던 의도를 반영하지 못한 상태로 게임을 출시할 수밖에 없었는데 거의 모두가 이를 눈치 채지 못했을 겁니다. 성장 과정을 잘 가다듬어 애초에 처음부터 이 모양을 의도한 것처럼 만들어 버렸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로써 앞에서 설명한 필드 이벤트 사례처럼 좀 더 개선할 수 있었던 순간들이 게임에 그대로 남겨졌고 장기적으로는 캐릭터 각각이 더 넓은 성장 가능성을 가지고 있을 수 있었지만 그럴 기회를 놓쳐 버렸습니다. 이 모든 상태는 아마도 다음 프로젝트에서나 바로잡을 가능성을 가질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이 상황엔 뭐가 잘못되었을까요. 처음에는 지금까지 설명한 대로 개입 시점의 문제일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처음부터 규칙 하나하나에 개입해 옳고 그름을 제대로 판단하기 어려운 시점부터 함께 이야기 해 게임디자인을 구축해 나가는 방식을 사용해야만 할 지 진지하게 고민합니다. 하지만 그렇게 일하다가는 저 자신이 업무량을 감당할 수도 없고 또 저 자신이 항상 올바른 판단을 한다는 보장도 없을 뿐 아니라 함께 일하는 팀원님들은 자신이 규칙의 옳고 그름을 적어도 자기 시야 안에 있는 맥락 안에서라도 판단할 기회를 제거하기 때문에 성장이 아주 더디거나 성장하지 못할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당장 이 기능을 완성하는데 집중한다면 성장이고 뭐고 제가 이해한 올바른 방향으로 기능을 드라이브 하는 것이 올바르지만 좀 더 먼 미래를 본다면 함께 일하는 모든 사람들은 근미래의 든든한 동료가 되어야 하고 그러려면 시행착오를 거쳐야만 합니다. 그런데 그런 시행착오가 지나치면 방금 설명한 알면서도 고칠 수 없는 끔찍한 결과에 다다를 수도 있습니다. 문득 이 상황은 이런 두 가지 접근 방법만으로 해결할 수 있지 않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의도와 다른 규칙을 담은 문서가 나타났을 때 이를 가이드 해야 하는데 가이드 하더라도 상대가 가이드에 의해 변경될 규칙을 실제로 이해하게 만드는데 집중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지점입니다. 버서커가 왜 마법 공격을 할 수 있어야 하는지, 왜 라이트닝 볼트 스킬을 획득해 이를 성장 시키고 이를 어디에 사용해야 하는지 의도와 예상 사례를 설명하지 않은 채 그저 버서커도 원거리 마법 스킬을 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고만 가이드한다면 개발 과정에서 협업 부서들로부터 온갖 이상한 상황을 맞이하게 됩니다. 고약한 누군가는 버서커가 끝에 하트가 달린 마법봉을 들고 휘두르며 변신이라도 해야 하는 거냐며 조롱할 수도 있는데 정확히는 할 수도 있는 것이 아니라 브리핑 도중 실제로 일어날 수 있는 일입니다. 만약 규칙의 목적을 명백히 이해하고 있다면 이에 잘 대응할 수 있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브리핑 과정을 거쳐 게임디자이너의 의도와는 완전히 다른 결과를 협의한 다음 회의를 마치고 자신의 생각과는 전혀 다른 내용의 회의록을 작성하고 이를 기획서에 반영할 수도 있습니다. 어떻게 이럴 수 있나 싶지만 실제로 자주 일어나는 상황입니다.
상대를 온전히 납득 시키고, 또 이해 시키지 못한 상태에서 의도와 다른 게임디자인을 수정하는데 집중하면 당장의 문서를 의도에 맞는 모양으로 고칠 수는 있겠지만 개발 과정의 여러 괴상한 상황을 거치며 의도를 끝까지 유지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 때 이상적인 해결 방법은 게임디자이너에게 의도와 사례를 명백히 이해 시키는 것입니다. 하지만 만약 이해 시키지 못할 것 같거나 상대가 이해하지 못한다면 의도를 유지하는데 집중하기 보다는 차라리 맨 처음으로 돌아가 자기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디자인을 고수하도록 놔두는 편이 오히려 나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면 최소한 개발 과정 중 협업 부서들과 이야기할 때 어려움을 훨씬 덜 겪으며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기능을 이끌어 갈 수는 있을 겁니다. 오히려 스스로 납득하고 이해하지 못한 상태에서 그저 가이드 받은 디자인을 고수하려다가 온갖 어려움 끝에 상처 뿐인 결과로 이어져 의도 대로 기능이 만들어진 다음 이를 만든 팀원님이 모든 기력을 상실하고 퇴사해버리거나 의도와 완전히 다른 상태로 기능이 만들어져 이를 수습할 다른 게임디자인을 고려해야 하는 상황을 맞을 수 있습니다.
아직 어떤 뾰족한 결론에 도달하지는 못했지만 이런 경험들을 모아 ‘오너십 문제’라고 부르기로 했습니다. 처음 스스로 옳다고 생각하는 디자인을 완성하라는 주문은 디자이너에게 어니십을 부여하고 이를 신뢰하는 자세입니다. 하지만 온전한 디자인이 적어도 문서 상으로 만들어진 다음 의도와 다른 지점을 가이드 할 때 여러 가지 원인에 따라 오너십의 상실이 발생하는데 이는 겉으로는 거의 드러나지 않으며 잘못된 결과를 접할 때까지 확인하기 어렵습니다. 스탭의 성장, 의도에 맞는 기능 양쪽 모두를 손에 넣을 수 있다면 가장 좋겠지만 어느 한 쪽만 얻을 수 있다면 어느 쪽이든 얻되 동시에 스탭의 오너십을 유지하는 범위 내에서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하기로 합니다.
스스로 오너십을 가지고 설계한 디자인은 스스로 개발 과정의 어려움에 더 잘 대처할 수 있고 그 결과가 처음의 의도와 다르다면 이 상황에 따라 대처하면 됩니다. 이 과정에서 분명 개인은 성장할 테고 다음 프로젝트에 든든한 동료가 될 겁니다. 하지만 오너십을 잃어버린 채 의도에 맞는 결과를 내더라도 기력을 소진해 버린다면 다음에 함께할 기회가 사라질 지도 모릅니다. 차라리 전자가 더 나은 상태라고 생각합니다.
이번 57호에도 지난 2주간 공유한 이야기를 함께 보내 드립니다.





일을 하려면 여러 가지 물건이 필요합니다. 기본적으로 컴퓨터와 모니터, 키보드와 마우스, 그리고 이들을 올려 놓을 책상과 제가 앉을 의자가 필요한데 그 다음으로 필요한 중요한 물건이 바로 이 의자라고 생각합니다. 일 하다 보면 항상 다른 누군가와 이야기 해야 하고 이야기는 종종 길어지기도 하며 이야기 할 때 서로 눈높이를 맞춰 이야기할 때 더 결과가 좋을 때도 있기 때문입니다.
회사가 지급해 준 의자는 항상 수량이 모자라 이야기를 시작하려고 할 때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비어 있는 의자가 있는지 찾게 만들곤 하는데 회사 입장에서 매번 무슨 소통이니 뭐니 하는 이야기를 반복할 것 없이 그냥 이런 의자를 각 팀마다 넉넉하게 사 주면 문제가 상당 부분 해결될지도 모르겠습니다.
비가 많이 내립니다. 모두 안전하시길 바라며 또 2주 뒤에 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