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차적응

시차적응

비행기를 타고 미국 서부에 출장을 간다면 한국에서는 보통 저녁 비행기를 타고 현지에 도착하면 한낮이어서 비행기 안에서 시간을 잘 맞춰 필사적으로 잠을 자서 시간을 맞췄는데 보통 결과가 좋지는 않았습니다. 반대로 미국 서부에서 한국으로 돌아올 때는 오후에 비행기에 타고 한국에 돌아오면 다음 다음날 저녁이기 때문에 비행기 안에서 필사적으로 잠을 안 자고 버틴 다음 한국에 돌아와 잠을 몰아서 자는 식으로 시간을 맞추곤 했습니다.

비행기 안에서는 적당히 시간대를 맞춰 불을 다 끄고 잘 수 있게 만들어 주는데 한국에 돌아가 시차적응 없이 바로 생활할 생각으로 자라고 불 꺼줄 때 잠을 안 자고 버티며 다른 사람들 눈에 빛이 들어가면 안되니 담요를 완전히 뒤집어 쓴 다음 창문 덮개를 아주 조금 올리고 창밖의 얼어붙은 구름과 완전 쨍한 태양빛에 눈을 노출 시키며 버텼습니다. 하지만 예상하신 대로 한국에 돌아와 시간에 맞춰 밤에 잠을 잤지만 한 이틀은 컨디션이 완전히 망가져 제대로 생활하기 아주 힘듭니다.

의료나 소방처럼 계속해서 낮과 밤을 바꿔 가며 일해야 하는 직업은 아니지만 드물게 낮과 밤을 바꿔야 할 때가 있습니다. 모바일 게임 라이브 상황에서 일주일에 한 번 업데이트를 해야 했는데 업데이트 하는 날은 그 전날 출근해서 업데이트 준비를 하고 다음 날 새벽에 업데이트를 진행해 문제가 없는 상태를 확인한 다음에 퇴근해야 했습니다. 전날 오전 10시에 출근해 다음 날 새벽에 업데이트를 하고 문제가 없으면 오전 9시 즈음에 퇴근할 수 있었지만 만약 뭔가 문제가 생기면 대응하느라 정오가 넘은 시각에야 간신히 퇴근할 수 있었습니다.

다음 날 출근해야 했기 때문에 퇴근 후 바로 졸린 그대로 잤다가는 낮과 밤이 바뀌어 문제가 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 때 사용한 방법은 24시간 넘게 일한 다음 피곤한 상태로 돌아와 시간을 맞추고 평소의 절반만 잠을 자는 것입니다. 보통 잠을 8시간 정도 자는데 제가 잠 자는 시간이 4시간짜리 두 사이클로 구성되어 있다는 점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4시간만 자도록 시간을 맞춘 다음 잠들었다가 일어나 피곤하긴 하지만 나머지 시간에 정상적으로 생활한 다음 밤에 다시 8시간동안 잠을 자면 다음 날 조금 피곤하기는 하지만 낮과 밤이 바뀌지 않은 패턴을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 체계를 몇 달 동안 계속해서 유지하다 보니 사람들 몸이 거덜 나기 시작해 업데이트 담당자들이 돌아가며 24시간 근무를 하기로 해 몇 주에 한 번만 24시간 근무를 하는 식으로 바뀌어 그나마 살만 한 상태가 됩니다.

얼마 전에 만들고 있는 빌드를 손님들께 보여 드릴 일이 있었습니다. 손님들은 종종 오피스에 찾아와 빌드를 보곤 했는데 이 때는 밥 먹다 말고 달려오더라도 그리 힘들 일은 없었습니다. 평소대로 빌드를 실행해 보여드리고 다시 돌아와 좀 식긴 했지만 밥을 이어서 먹으면 됐습니다. 하지만 손님에 따라서는 이 아시아 구석까지 올 시간을 낼 수 없는 분들도 있었고 이런 분들께는 원격으로 시연을 해 드려야만 했습니다.

그런데 이 분들께 우리 시간에 맞춰 달라고 요구하기는 어려운 입장이어서 우리가 시간을 맞추기로 했는데 다행히도 주로 미국 시간대를 사용하셔서 우리들이 여러 시간대를 맞춰야만 하는 아주 어려운 상황은 피할 수 있었습니다. 대략 태평양 표준시에 맞춰 생각하면 한국 시각으로 새벽 한 시와 그 쪽 출근 시각이 대략 맞아 시간을 맞추기 까다롭지는 않았습니다.

이 시연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일정 기간에 걸쳐 낮과 밤을 바꿔 생활해야 했고 다들 나름 대로의 시차적응 방법을 사용하기 시작합니다. 시연을 시작하는 날에는 평소처럼 오전에 출근하는 대신 밤 늦게 출근하기로 했는데 만약 평소처럼 생활한 다음 밤 늦게 출근하면 밤을 꼬박 세워야 했기 때문에 결코 제정신으로 버틸 수 없었습니다. 누군가는 전 날 원래 자던 시각에 그냥 깨어 새벽까지 다른 일을 한 다음 새벽녘에야 잠자리에 들어 밤 늦은 출근 시각에 맞춰 깨어날 계획을 세웠지만 어설프게 잠들었다가 여러 사이클 중 한 사이클만 잔 다음 잠에서 깨어나 멸망했습니다.

시차적응을 어떻게 할 것인지 고민했는데 제 입장에서 방법은 크게 두 가지 선택이 있습니다. 하나는 잠을 안 자고 시차적응을 하는 방법으로 위에서 설명한 미국 서부에서 한국으로 돌아올 때 사용해 왔습니다. 다른 하나는 잠을 자고 시차적응을 하는 방법인데 지금까지는 이론적으로 이렇게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만 했지 시간이 아깝다고 생각해 한 번도 시도한 적이 없었습니다. 방법은 평소와 같이 아침에 일어난 다음 출근하지 않고 평소처럼 생활하다가 점심 먹고 두세 시간이 지난 다음 시간을 맞추고 한 사이클만 잔 다음 저녁때 일어나 평소 아침에 일어나 출근하는 것과 똑같은 패턴으로 출근하는 것입니다.

잠을 자서 시차적응을 하는 방식이라 시간이 아깝다고 생각해 왔는데 그렇다고 해서 이전처럼 잠을 안 자고 버텨 시간을 맞출 것인지 생각하다가 그랬다가는 정말 출퇴근하다가 돌연사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처음으로 이 방법을 시도했습니다. 평소와 비슷하게 일어나 준비하고 출근하는데 하늘이 캄캄하고 주변에 출퇴근하는 사람들 대신 주취자들이 가득하다는 점을 빼고는 별로 다른 느낌이 없었습니다. 같은 요령으로 다음날 퇴근한 다음 한국 시간에 맞춰 아점을 하고 이걸 평소의 저녁 식사인 셈 치고 조금 기다렸다가 저녁 먹고 잠자리에 드는 것과 같은 패턴으로 전체 시간만큼 잔 다음 일어나 낮과 밤을 완전히 바꾼 다음 생활을 계속했습니다. 조금 피곤하긴 했는데 다행히 큰 문제가 생기지는 않았습니다.

오히려 자고 일어난 늦은 오후에 출근 까지는 시간이 좀 남았으니 운동을 하고 출근하면 좋겠다 싶어 운동을 했는데 처음엔 괜찮았지만 나중에는 이 프로그램 대로 시간을 채웠다가는 자전거 트레이너 위에 엎드린 채로 발견되겠다 싶어 시간을 다 채우지도 못하고 내려와 진정될 때까지 바닥에 드러누워 있었습니다. 시차적응하는 기간에는 함부로 운동 하지 말아야겠다는 교훈을 얻었습니다.

시차적응을 요구하던 업무가 대략 마무리 되고 한 주 동안 한밤중에 했던 생각들을 옮겨 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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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주는 개인적으로 복잡한 일도 있고 또 체력적으로 힘든 일도 있어 간신히 한 주를 보내고 금요일 저녁에 도달한 것 같습니다. 다음 주에는 또 다음 주 나름의 곤란한 일들이 기다리고 있겠지만 일단 이번 주를 나름 무사히 보낸 저 자신과 이 뉴스레터를 읽어 주실 모든 분들께 정말 수고하셨다는 말씀 전해 드립니다.

이번 한 주 수고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