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속 대상에 애착을 가지도록 만들기

게임 속 대상에 애착을 가지도록 만들어야 한다는 요구사항을 듣고 먼저 제 스스로가 애착에 대해 어떤 경험을 가지고 있는지 돌이켜 보았습니다. 쉽지 않은 요구사항입니다.

게임 속 대상에 애착을 가지도록 만들기

가끔 제가 만약 게임을 플레이 하지 않았고 또 게임 만드는 일을 직업으로 삼지 않았다면 어떤 경험을 했을지 생각해 볼 때가 있습니다. 게임 만드는 일을 직업으로 삼은 덕분에 같은 게임이라도 놀기 위한 게임과 일하기 위한 게임이 서로 다른 기묘한 상태가 되었지만 어느 쪽에 속하는 게임이라도 마음에 깊이 남는 경험을 하게 해 주곤 했습니다. 가령 어쎄신크리드 오리진을 오랫동안 플레이 하다가 아쉬움에 세계를 떠나지 못하다에 설명한 대로 게임을 삭제하기 전에 한동안 세계 곳곳을 돌아다니며 게임을 마무리하려는 지금 이 순간의 경험을 아쉬워 하기도 했고 세 가지 신화에서 여러 게임에 걸친 일관된 경험을 통해 마치 어릴 때 좋아하던 밴드가 오랜 세월에 걸쳐 저 자신과 함께 나이 들어 가는 경험을 하듯 오래 전에 접하기 시작한 프랜차이즈가 한 가지 커다란 스토리를 마무리하고 다음 장으로 나아가는 모습을 함께 경험하기도 합니다. 이런 기반에는 세계를 잠시 떠나는 의식에서 설명한 대로 좀 덜떨어진 세계라도 그게 그 세계의 본래 모습이라고 인정하며 게임 속 세계에 몰입하려고 노력했고 덕분에 야라와 실제 세계 사이에 일어나는 감정의 전이 같은 경험을 할 수도 있었습니다. 여러 가지 감정에 좀 더 예민한 것 같은 훨씬 어린 시절까지 돌아가면 게임으로부터 큰 감정적 변화를 겪은 더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는 이야기를 할 수 있을 것도 같지만 그랬다가는 너무 오래 되어 현대에 아무도 모르는 게임 이름을 말하게 될 수도 있을 것 같으니 거기까지는 삼가하도록 하겠습니다.

애착이란 어떤 대상에 특별한 감정에 기반한 의존을 가지는 상태를 의미한다고 합니다. 개인적으로는 물리적인 대상은 아니지만 온라인 상에 있는 제가 쌓은 데이터나 이를 지탱하는 기계 같은 것들에 감정적인 의존을 가지고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오랫동안 사용하고 있는 개인 위키는 이제 페이지 수가 다섯 자리를 넘겼고 여기에 첨부된 지금은 삭제되어 사라진 참고용 유튜브 영상이 가득하며 검색을 통해 복원할 수 있지만 그냥 그 자리에서 바로 다운로드 할 수 있도록 준비한 온갖 문서들로 가득한데 처음부터 머리가 원하는 대로 잘 돌아가지 않는 관계로 생각의 멱살에 소개한 억지로 머리를 굴리는 방법으로 타이핑과 위키를 선택한 순간부터 이 디지털 데이터는 제 두뇌의 일부, 그리고 제 일부로써 동작합니다. 그래서 위키에 장애가 생겨 이를 사용하지 못하면 크게 불안해 하고 또 서비스가 정상화 될 때까지 안절부절 못하는 상태가 되기도 하는데 이를 간단히 요약하면 의존이라고 말할 수 있고 다른 한편으로는 애착이라고 말할 수 있을른지도 모릅니다. 혹시 그런 대상이 디지털 세계가 아닌 실제 세계에도 있을지 생각해봤는데 어쩌면 10년도 더 넘은 과거에 구입한 자동차가 비슷할 것 같습니다.

저는 시력 문제로 자동차를 운전할 수 없어 애초에 자동차에 관심이 없었지만 가족은 그렇지 않았기에 우리가 감당할 수 있는 아주 작은 자동차를 구입했습니다. 저는 운전이 불가능하니 자동차를 통해 일상이 어떻게 달라질 수 있는지에 아무런 관심이 없어 집 주차장에 세워진 자동차를 보고서도 아무 생각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자동차는 예상보다 훨씬 더 많은 부분에서 저와 제 가족의 생활을 바꿉니다. 이전 같으면 갈 수 없었던 곳에 갈 수 있게 됐고 그런 이동에 시간 제한을 걱정할 필요가 없어졌습니다. 가령 어딘가에 나들이를 가면 대중교통이 운행하는 시간에 맞춰 이동하거나 예약한 기차 시간에 맞춰야 했지만 자동차는 그런 제한을 없애 버립니다. 또 정말 좋은 장소는 오직 자동차를 통해서만 접근할 수 있다는 사실 역시 인정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가족은 행동반경이 급격히 넓어져 필요하다면 수도권 전역으로 이동해 일을 처리했고 또 제주도를 포함한 한국 전체를 대상으로 온갖 장소에 이동하곤 했습니다. 심지어 자동차를 너무 편하게 생각한 나머지 육지 밖으로 벗어날 때도 자동차로 이동하곤 했는데 다른 사람들이 제주도에 비행기를 타고 이동할 때 저와 친구는 목포까지 운전해 간 다음 배에 자동차를 싣고 이동해 제주도에 내려 같은 자동차로 계속해서 이동하곤 했고 제주도에 간다면 비행기보다 배가 더 익숙한 사람들이 되어 버립니다.

몇 년 전 어느 날 제주에서 열리는 자전거 이벤트에 참여하기 위해 목포까지 내려가는 중입니다.

이 물체는 위에서 내려다보면 A4 사이즈 종이보다 아주 조금 더 큰 엔진에서 나오는 고작 75마력으로 우리들의 이동을 책임졌는데 오랜 세월에 걸쳐 먼 거리를 운행했음에도 세월이 흐름에 따라 어쩔 수 없이 문제를 일으킬 수밖에 없는 부품들을 교환하는 것 말고는 별다른 문제를 일으키지 않고 신뢰할 수 있는 모양으로 동작하고 있습니다. 이 자동차 덕분에 자동차 없이는 경험하지 못했을 재미있는 경험을 했고 또 복잡한 이동이 훨씬 단순해졌습니다. 그러는 사이에 이사, 이직, 자전거 대회 출전, 출퇴근, 진학, 전시 같은 온갖 커다란 이벤트를 경험할 수있도록 뒷받침했고 그런 큰 이벤트가 지나갈 때마다 ‘얘 덕분에 이번에도 큰 일 잘 치렀다’고 말하곤 합니다. 애초에 오래 전 우리들이 큰 무리 하지 않고도 운용할 수 있는 자동차를 선택했기에 구입하는 순간부터 잔존가치가 뚝뚝 떨어졌을 것 같은데 한번은 엔진 관련 고장으로 수리센터에 자동차를 입고하자 자동차를 살펴보신 엔지니어님이 아주 아주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수리비용이 자동차 가격보다 더 나올 것 같은데 수리를 하시겠냐고 물어보신 적도 있습니다. 질문에 대한 대답은 너무나 당연했는데 우리들 입장에서 자동차 가격은 중요한 판단 요소가 전혀 아니었습니다. 그저 자동차가 멀쩡하게 굴러가도록 만드는데 필요한 비용이 핵심이었고 그 크기가 자동차의 중고 가격을 넘는다 하더라도 우리들이 다른 자동차를 구입하는데 드는 비용보다는 항상 낮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렇게 자동차를 수리한 다음 집에 돌아오는 길에 엔진 소리를 곰곰이 듣다가 ‘아니 완전 멀쩡한데?’ 싶어 엔지니어님의 질문을 도통 이해하기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어쩌면 이런 감정들이 실제 세계의 물건에 대한 애착이 아닌가 싶습니다. 자동차는 무생물이고 무생물은 의식이 없고 감정이 없습니다. 하지만 이를 활용하는 우리들은 이 물건을 통해 경험을 넓이고 인생의 큼직한 이벤트를 무난하게 마칠 수 있었습니다. 아주 먼 거리를 한번에 운행할 때만 고속도로에 날뛰는 커다란 자동차들에 비해 좀 작고 좀 느린 것 같긴 하지만 신뢰할 수 있게 작동해 그 임무를 완수했는데 어느 순간 저와 가족은 종종 이 물건에 대해 고마운 감정을 느낍니다. 이런 감정은 마치 자동차가 의식이 있고 또 감정이 있는 대상처럼 여기게 만들었습니다. 일단 자동차를 ‘얘'라고 마치 사람처럼 말하는 것부터 시작해 점검이 필요할 때가 되면 정비소 대신 ‘병원’이라고 말하기도 하고 자동차를 사용해 인생의 큰 이벤트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이 금속 덩어리를 툭툭 치며 '수고했다’고 마음 속으로 말하기도 했는데 이런 행동은 여전히 자동차는 무생물일 뿐이지만 이 물체에 인격을 부여하고 그에 따른 감정을 느끼는 행동들이 일종의 애착이다 싶습니다. 세월이 조금 흘렀지만 자동차는 교체된 여러 부분들을 포함해 아직 멀쩡하고 우리들의 이동 요구사항을 충실하게 이행할 뿐 아니라 구입했을 당시나 지금이나 변함 없이 당황스러울 정도로 낮은 유지비용을 통해 가계 운영에 도움을 주고 있습니다.

한편 MMO 게임을 만들다 보면 그 게임이 어떤 목표를 가지고 있든 간에 '펫'을 만들어야 하는 시점이 찾아옵니다. 어느 게임이 처음 이 기능을 도입했는지 확실히 알 수는 없지만 처음에는 심지어 서버를 통한 동기화 조차 되지 않아 다른 사람에게는 보이지도 않는 펫을 데리고 다닐 수 있게 만들며 시작했고 다음에는 펫에 기능을 부여해 아이템을 자동으로 루팅하거나 인벤토리를 정리하는 등의 역할을 하도록 만들기도 했습니다. 또 여러 싱글플레이 게임에서 플레이어와 깊은 유대 관계를 가지는 대상을 보고 이런 경험을 온라인 게임에도 도입하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여러 가지 시도를 했는데 싱글플레이 게임에서는 비교적 잘 구축할 수 있어 보이는 유대 관계는 온라인 멀티플레이 게임에서는 잘 동작하지 않곤 합니다. 하지만 펫은 수직 성장과 플레이어 간의 경쟁에 기반한 온라인 멀티플레이 게임에서 또 다른 수직 성장 요소로 만들기는 상대적으로 어렵지 않았습니다. 수직 성장을 위해 게임 상에는 온갖 성장 요소가 필요했고 펫은 여기에 잘 부합하는 대상입니다. 펫에도 레벨을 만들고 장비 슬롯을 만들고 인벤토리를 만들며 펫이 동작하는 별도의 AI를 설계하는 등 기능을 추가해 감에 따라 펫은 수직성장 게임에서 빠질 수 없는 요소가 되었습니다. 게임에 따라서는 펫과 탈것의 개념을 통합해 게임 내 여러 장소를 더 빨리 이동하는 역할을 부여하기도 합니다.

이런 과정을 통해 MMO 게임을 만들다 보면 어느 순간 게임과 어울리든 말든, 또 게임에 펫이 필요하든 말든 어쨌든 펫을 만들어야 하는 마일스톤이 나타납니다. 이 시점에도 게임에 펫이 필요한 이유는 확실하지 않지만 어찌 됐건 게임의 아트 스타일에 어울리는 펫 컨셉을 제안하고 이들이 인게임에서 동작할 여러 가지 방법을 제안하고 또 게임에 따라 수직 성장에 참여하도록 펫에도 플레이어처럼 여러 기능을 투입해 설계하기 시작합니다. 이런 게임 상에서 펫은 플레이어를 따라다니며 자잘한 기능을 수행하는 역할을 하고 나아가 수직성장에 기여해 플레이어의 강함에 영향을 끼치기 때문에 펫은 선택적인 플레이 요소가 아니게 됩니다. 때문에 이런 게임이 런칭하고 시간이 조금 지나면 모든 사람들이 동기화되어 다른 사람에게도 표시되는 펫을 적어도 하나 이상 데리고 다니기 시작하며 그렇잖아도 사람들로 바글바글한 마을에는 이제 그 사람 수만큼 펫들이 돌아다니며 더더욱 바글바글한 상태를 만들고 이런 상황을 견디다 못한 고객들의 요구, 클라이언트 팀의 성능 개선에 대한 열망 등에 따라 옵션에 다른 사람들의 펫을 표시하지 않는 기능을 추가하기에 이릅니다. 이렇게 특별한 이유 없이 추가된 펫은 플레이어 옆에서 정해진 애니메이션을 재생할 뿐 사실상 플레이어 정보에 표시되는 여러 장비 슬롯과 별로 다르지 않은 위상일 뿐이며 상위 컨텐츠에서 다른 플레이어들보다 경쟁 우위에 서려면 좋든 싫든 한 마리 데리고 다녀야 하는 존재 이상의 의미를 가지지는 못합니다. 딱 이 정도가 현대 MMO 게임에서 펫이 가지는 의미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당연하고 뻔한 기능으로 도입되는 펫에 만족하지 못하는 고위 의사결정자는 종종 펫의 현실과는 거리가 먼 요구사항을 제시하기도 합니다. 이전 여러 게임에 펫 기능을 집어 넣으면서 별로 고민하지 않았던 바로 그 키워드입니다. 싱글플레이 게임에서는 그럭저럭 동작하는 것 같지만 온라인 멀티플레이 게임에서는 도통 잘 동작하게 만들기 어려웠으며 어느 순간 그 존재 자체를 완전히 잊고 기계적인 기능으로만 접근했던 바로 그것. ‘애착’입니다. 고객이 펫과 함께 게임을 플레이 하며 펫에 대한 애착을 가질 수 있도록 규칙을 설계했으면 좋겠다는 요구사항은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여러 게임에 당연하게 등장하던 펫이 처음 도입될 때 근본적으로 고려해야 했던 바로 그 요구사항입니다. 하지만 펫 기능 관점에서 우리들은 이미 오랜 세월에 걸쳐 이 기능이 수직성장 요소의 일부로 동작하도록 만드는데 집중해 사실상 장비 슬롯의 확장처럼 동작하도록 설계하는데 익숙해졌고 고객들 역시 펫이 나오면 시각적 효과를 위해 이들을 데리고 다니거나 성장 시켜 공격력에 도움을 주는 요소 이상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 같지 않아 보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주어진 애착이라는 키워드는 그 동안 그 핵심 목표를 잃어버린 채 수직성장에만 몰두하던 게임디자이너들을 혼란스럽게 만들기에 충분했습니다. 애초에 우리들 스스로가 애착이라는 감정, 그리고 게임 속 대상에 대해 그런 감정을 느끼도록 만드는 방법을 고민해 온 경험으로부터 너무 멀리 와 있었습니다.

하지만 일단 요구사항은 정의되었고 이를 달성하는 규칙을 설계하는 것이 우리들의 직업입니다. 먼저 애착이라는 감정이 무엇인지 한번 되짚어 봐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개인적인 경험 범위 안에서 게임 속 대상에 그런 감정을 느꼈던 경험을 떠올려 봤습니다. 저는 게임 속 특정 대상에게 애착을 가지기 보다는 게임 속 세계 전체에 애착을 가지는 것 같습니다. 게임 속 세계를 받아들이고 그 세계의 일부가 되어 당연하게 그 세계의 규칙에 따라 행동하기를 반복하다가 시간이 흐른 다음 세계를 떠나려 할 때 느껴지는 아쉬운 감정을 일종의 애착으로 해석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또 실제 세계에서는 오랜 기간에 걸쳐 제 두뇌의 일부로써 동작하는 온라인 상의 디지털 데이터인 위키에 대해 마치 제 신체의 일부 같은 감정을 느끼고 있고 또 디지털 데이터가 아닌 실제 물건으로는 비록 제가 직접 운전할 수는 없지만 오래 전에 구입한 아주 작은 자동차에 비슷한 감정을 느끼는 것 같습니다. 제 개인적인 관점에서 물건에 대한 애착은 딱 이 정도 느낌인 것 같은데 그렇다면 게임 속 존재, 그 중에서도 펫 기능에 의해 나타나는 펫 그 자체에 대해 애착을 가지도록 하려면 대체 무엇을 해야 할까요. 다른 수직성장 게임의 펫을 설계해야 했다면 이미 설계를 완성해 브리핑 하고 있을지도 모르지만 이번에는 이 애착이라는 키워드가 모든 일을 너무나 어렵게 만들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게임을 플레이 하며 게임 속 대상에 의한 상실의 감정을 강하게 느낀 경험을 생각해봤습니다. 제 경험 중에서 게임 속 대상에 의한 상실은 리부트 된 엑스컴 2에서 가장 강렬하게 느꼈습니다. 엑스컴은 게임을 플레이 하다 보면 대원들 각각의 이름을 기억할 수 있게 되는데 임무를 마치고 기지로 돌아오면 이들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또 다음 임무에 나가기 전에 각자의 상태와 장비를 살펴보기도 해야 합니다. 애초에 엑스컴 자체가 우리들 모두가 전멸할 수도 있는 위험한 상황 속에서 외계인을 상대해야 하는 게임이기 때문에 미션 하나하나가 기본적으로 긴장감을 만들어냅니다. 그런데 플레이 중 제 실수로 대원이 사망하고 그 미션을 마친 다음 기지로 돌아와 보면 추모관에 이전 미션에서 사망한 대원의 기록이 나타나는데 이 경험이 정말 강렬했습니다. 한번은 미션을 거의 성공적으로 클리어 하는 상황에서 마지막 남은 외계인을 공격할 때 그 이전의 모든 턴에 아주 조심스럽게 행동하고 대체로 안전한 상황을 만들고 또 이 명령이 실패할 경우에 대비한 준비를 여러 턴에 걸쳐 한 다음에 공격을 하던 것에 비해 어차피 마지막 하나 남은 외계인이고 또 공격 성공 확률이 충분히 높아 방심한 채 충분한 준비를 하지 않은 채 공격 명령을 내립니다. 그런데 이 공격은 당연히 발생할 수 있는 확률에 의해 실패하고 바로 이어지는 외계인의 반격에 의해 대원을 잃고 맙니다. 바로 다음 턴에 외계인을 처치하고 임무에 성공했지만 조금만 더 조심했으면 잃지 않을 수 있었던 대원을 잃었고 임무를 마친 다음 기지에 돌아와 추모관에 새로 나타난 대원의 이름을 살펴보고 자신을 자책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 ㅅ발. 그때 세이브했어야 하는데…’

부주의한 플레이, 세이브 부재 같은 경험은 이전에 다른 게임에서도 충분히 해 왔던 경험이라고 생각합니다. 가령 개인적으로 문명 시리즈를 플레이 하며 세계 제 2차대전 때 히틀러가 끊임 없이 동부전선을 무리하게 공략하다가 패망의 길로 들어선 이유를 경험을 통해 이해한 적이 있습니다. 사실 그 작은 도시국가는 그냥 그 자리에 놔둬도 아무런 문제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 도시국가는 시대가 흐름에 따라 이 대륙 전체에 하나 남은 우리 문명이 아닌 국가였고 반드시 그럴 필요는 전혀 없었지만 어느 시점에는 그 도시국가를 침공해 무력으로 병합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나름 짧지 않은 전쟁 준비 기간을 거쳐 군사 유닛을 국경 지역으로 이동 시켰고 그 도시국가 뿐 아니라 다른 주변 국가들의 우려가 있었지만 겨우 도시국가 하나 뿐이라고 가볍게 생각해 이를 무시하고 침공을 시작합니다. 하지만 도시국가의 저항은 예상보다 훨씬 강했고 저는 예상보다 더 많은 유닛을 투입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로부터 멀리 떨어진 도시에서조차 이 전쟁에 투입할 유닛을 생산해야만 했는데 시간이 조금 지나자 겨우 도시국가 하나를 무력으로 병합하는데 국가 자원의 거의 전부를 투입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합니다. 도시국가에 상당한 손실을 입혔지만 그들은 살아 있었고 저는 국력에 손실을 입기 시작합니다. 이 상황에서 어느 시점에 저는 제 행동을 매몰 처리하고 물러나야만 했습니다.

하지만 이미 그 전쟁에 막대한 국력을 쏟아 부었고 또 주변 국가들과 관계마저 틀어진 마당에 아무 것도 얻지 못한 채 전쟁을 그만둘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어차피 도시국가 역시 오랜 전쟁 때문에 쇠락하고 있었고 조금만 더 하면 이 모든 손실을 만회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그런 순간은 찾아오지 않았고 턴을 반복할수록 이 모든 행동을 시작하기 전에 세이브 했어야 했다는 후회가 밀려옵니다. 문득 세계 제 2차대전에서 동부전선에 매달려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거점을 점령하기 위해 막대한 국력을 쏟아부었으며 이 모든 행동이 올바르지 않은 결과로 연결될 것이 확실해지는 그 순간에도 히틀러는 결코 자신의 행동을 그만두지 않았습니다. 어쩌면 제가 대륙에 있는 도시국가 하나를 무력으로 병합하기 위해 저지른 이 기나긴 전쟁을 그만 둘 수 없었던 심리적 이유가 이와 비슷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이 경험 역시 엑스컴에서 마지막 외계인 하나를 부주의하게 처치하기 위해 안전하지 않은 상태에서 대원에게 명령을 내린 다음 이를 되돌리지 못하는 현실 앞에 후회하던 자신과 다르지 않다고 평가합니다.

이런 경험들로 미루어 우리들이 수직성장 요소라는 관점에서 기계적으로 다루던 펫에 대해 고객이 애착을 가지도록 디자인하려면 게임 상에서 펫이 고객의 일상, 그리고 게임 상에서 고객의 일생을 함께할 수 있는 존재라는 관점에서 시작해야 할 것 같습니다. 가령 유료 상점에서 펫을 팔고 있다면 이미 이 순간부터 펫에 애착을 느끼기는 쉽지 않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이는 마치 최근에는 금지된 동물을 판매하는 상점에서 동물을 구입한 사람들이 작은 어려움에도 구매를 포기하고 동물을 샵에 돌려보내는 사례들을 살펴볼 때 상점에서 펫을 판매해 돈을 내면 언제든 이들을 변경할 수 있다는 느낌을 주는 순간 애착은 영원히 달성할 수 없는 목표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또 오랜 세월에 걸쳐 낡아 가는 자동차와 함께 우리들 스스로도 나이를 먹어 가는 것처럼 비록 게임 속 시간이 흐르지 않는 MMO 게임이라도 플레이어의 성장과 함께 펫 역시 그것이 성장이든 아니든 어떤 변화하는 경험이 필요하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마지막으로 펫은 영원하지 않으며 고객의 행동에 의해 비가역적인 변화를 겪을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이는 현대에 고객에게 이전에 비해 훨씬 훨씬 훨씬 더 조심스럽게 구는 게임의 변화 측면에서는 아주 위험한 시도일 수도 있습니다.

글 제목을 ‘게임 속 대상에 애착 가지도록 만들기’로 정해 마치 애착을 가지도록 만드는 방법을 설명할 것처럼 굴었지만 실상은 저 자신도 어떻게 해야 고객이 펫에 애착을 가지도록 규칙을 설계할 수 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실은 제가 직접 담당하는 업무가 아니어서 옆에서 이 업무가 어떻게 진행되는지 구경하는 참에 만약 이 업무를 제가 고민해야 한다면 어떻게 대응해야 할 지 고민하면서 이런 저런 생각을 해봤고 그런 생각을 텍스트로 남겨 보았습니다. 어쩌면 우리들은 고객들이 게임 상의 어떤 대상에 애착을 가질 수 있었던 시대로부터 너무 멀리 와 있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우리들이 만드는 MMO 장르는 세계 속에서 플레이어가 더 이상 특별하지 않고 또 플레이어와 함께 하는 여러 대상들 역시 더 이상 특별하지 않기 쉽습니다. 이런 세계에서 고객이 게임 속 어떤 대상에게 애착을 가지도록 하자는 요구사항 자체가 현대의 온라인 멀티플레이 게임과는 그다지 어울리지 않는 어쩌면 지나치게 이상적인 달성 불가능한 목표일른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이전 경험을 돌아보면 분명 게임 속 대상에 특별한 감정을 가진 적이 있었고 그로부터 시간이 흘렀고 또 전혀 다른 장르를 만들고 있기는 하지만 방법이 아예 없지는 않을 수도 있습니다. 시간이 흘렀고 또 장르도 다르고 또 현대 게임이 고객을 대하는 방법이 이전과는 상당히 달라졌지만 어쩌면 이런 제약 속에서도 그런 감정을 이끌어내고 또 이에 기반한 경험을 이끌어낼 방법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이런 생각 끝에 현대 온라인 멀티플레이 게임의 구성요소가 고객에게 특별한 감정을 일으킬 수 있을 방법을 고민해보면 재미있을 것 같습니다. 일단 저는 제 업무가 아니기에 이 고민이 재미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