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속 대상에 애착을 가지도록 만들기
게임 속 대상에 애착을 가지도록 만들어야 한다는 요구사항을 듣고 먼저 제 스스로가 애착에 대해 어떤 경험을 가지고 있는지 돌이켜 보았습니다. 쉽지 않은 요구사항입니다.
가끔 제가 만약 게임을 플레이 하지 않았고 또 게임 만드는 일을 직업으로 삼지 않았다면 어떤 경험을 했을지 생각해 볼 때가 있습니다. 게임 만드는 일을 직업으로 삼은 덕분에 같은 게임이라도 놀기 위한 게임과 일하기 위한 게임이 서로 다른 기묘한 상태가 되었지만 어느 쪽에 속하는 게임이라도 마음에 깊이 남는 경험을 하게 해 주곤 했습니다. 가령 어쎄신크리드 오리진을 오랫동안 플레이 하다가 아쉬움에 세계를 떠나지 못하다에 설명한 대로 게임을 삭제하기 전에 한동안 세계 곳곳을 돌아다니며 게임을 마무리하려는 지금 이 순간의 경험을 아쉬워 하기도 했고 세 가지 신화에서 여러 게임에 걸친 일관된 경험을 통해 마치 어릴 때 좋아하던 밴드가 오랜 세월에 걸쳐 저 자신과 함께 나이 들어 가는 경험을 하듯 오래 전에 접하기 시작한 프랜차이즈가 한 가지 커다란 스토리를 마무리하고 다음 장으로 나아가는 모습을 함께 경험하기도 합니다. 이런 기반에는 세계를 잠시 떠나는 의식에서 설명한 대로 좀 덜떨어진 세계라도 그게 그 세계의 본래 모습이라고 인정하며 게임 속 세계에 몰입하려고 노력했고 덕분에 야라와 실제 세계 사이에 일어나는 감정의 전이 같은 경험을 할 수도 있었습니다. 여러 가지 감정에 좀 더 예민한 것 같은 훨씬 어린 시절까지 돌아가면 게임으로부터 큰 감정적 변화를 겪은 더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는 이야기를 할 수 있을 것도 같지만 그랬다가는 너무 오래 되어 현대에 아무도 모르는 게임 이름을 말하게 될 수도 있을 것 같으니 거기까지는 삼가하도록 하겠습니다.
애착이란 어떤 대상에 특별한 감정에 기반한 의존을 가지는 상태를 의미한다고 합니다. 개인적으로는 물리적인 대상은 아니지만 온라인 상에 있는 제가 쌓은 데이터나 이를 지탱하는 기계 같은 것들에 감정적인 의존을 가지고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오랫동안 사용하고 있는 개인 위키는 이제 페이지 수가 다섯 자리를 넘겼고 여기에 첨부된 지금은 삭제되어 사라진 참고용 유튜브 영상이 가득하며 검색을 통해 복원할 수 있지만 그냥 그 자리에서 바로 다운로드 할 수 있도록 준비한 온갖 문서들로 가득한데 처음부터 머리가 원하는 대로 잘 돌아가지 않는 관계로 생각의 멱살에 소개한 억지로 머리를 굴리는 방법으로 타이핑과 위키를 선택한 순간부터 이 디지털 데이터는 제 두뇌의 일부, 그리고 제 일부로써 동작합니다. 그래서 위키에 장애가 생겨 이를 사용하지 못하면 크게 불안해 하고 또 서비스가 정상화 될 때까지 안절부절 못하는 상태가 되기도 하는데 이를 간단히 요약하면 의존이라고 말할 수 있고 다른 한편으로는 애착이라고 말할 수 있을른지도 모릅니다. 혹시 그런 대상이 디지털 세계가 아닌 실제 세계에도 있을지 생각해봤는데 어쩌면 10년도 더 넘은 과거에 구입한 자동차가 비슷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