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래 희망은 품질 좋은 석유입니다
현실에서는 지구를 위해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것 같으니 지구를 위해, 그리고 미래 세대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지난 망한 면접 때 궁극적으로 무엇을 성취하고 싶은가요?라는 질문을 받고 그 면접이 끝난 다음, 그리고 그 면접 결과가 좋지 않았음을 전해 들은 다음에도 한참을 고민해 봤습니다. 그저 하루하루를 살아갈 뿐이었고 그 달에 토요일과 일요일 외에 공휴일이 있으면 이 휴일을 만들어 주신 공무원님들께 감사하며 그 앞뒤에 휴가를 붙여 한번에 좀 더 여러 날 쉴 생각을 하기에 급급합니다. 또 매일 아침 잠자리에서 일어나기 싫어 잠에서 깨는 습관, 폰을 집어드는 습관에서 설명한 대로 알람이 울릴 때마다 나중에 알림을 선택하기를 반복해 그 시간을 모두 더해 보니 1년에 거의 3일에 달하는 삶을 살아갈 뿐입니다.
그런 사람에게 갑자기 지금까지 업력을 쌓아 오면서 궁극적으로 성취하고 싶은 무언가에 대한 질문을 받자 순간적으로 머릿속이 하얗게 변했지만 재빨리 회의실 밖 저편으로 나가려는 정신을 간신히 부여 잡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개인적으로 순발력을 발휘해 대답한 이 질문은 개인적으로 썩 만족스럽지 않았고 또 제가 한 답변을 듣는 사람 입장에서도 그리 만족스럽지 않았으리라 생각했는데 나중에 알아보니 면접에서 탈락한 이유는 적어도 이 답변 때문은 아니었다고 합니다. 아. 이번 면접들은 운 좋게도 각각의 결과에 대한 피드백을 받을 수 있는 환경이었는데 이런 피드백에 대한 이야기는 다른 기회에 해 보겠습니다.
일단 적어도 지금 제가 하는 일에 대해서는 함께 일을 시작한 사람들 대부분이 나가 떨어지는 업계에서 짧지 않은 시간에 걸쳐 버티며 경험을 쌓아 특히 내부 고객들의 업무 효율을 올릴 수 있는 방법들을 고안하고 실행해 결국 프로젝트가 성공할 가능성을 최대한 올리는데 반드시 필요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이런 멋진 말에 도달할 수 있을른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그러기 위해 노력은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문득 일 바깥에서는 어떻게 살아가고 있고 또 제 주변의 다른 사람들, 제 주변의 물건이나 환경, 나아가서는 이 행성에는 어떤 역할을 하고 또 어떤 영향을 주고 있을지 생각해보게 됐습니다.
원래 이렇게 생각을 터무니없이 확장할 때가 있긴 했지만 이를 제 인생에 기반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문득 상대론에 입각해 인간이 아광속 이동이 가능해질 때 미래의 인간이 이 우주 전체에 걸쳐 행사할 수 있는 영향력과 이를 지탱하기 위한 조건에 대해 생각하게 된 6만년, 그리고 위에서 들은 질문에 답해 본 이후 제가 겪는 문제, 살아가는 일상 따위를 좀 더 넓은 시야를 통해 보려고 노력할 뿐 아니라 완전히 다른 주체와 아주 긴 시간에 걸쳐 확장해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그런 관점에서 약간 터무니없지만 업계 생활을 계속하며 궁극적으로 성취하고 싶은 것에서 더 나아가 제가 지구에서 살아 있는 동안에, 그리고 그 이후에 각각 어떤 영향을 끼칠 수 있을지 곰곰이 생각해 봅니다.
일단 저는 하루 종일 지구의 자원을 축내며 이산화탄소를 배출하는 기계입니다. 지금은 권고사직 된 상태여서 출퇴근 하고 있지는 않지만 어디든 이동하기 위해 집 밖을 나서 대중교통에 탑승하는 순간 저는 터무니 없는 양의 전기를 소모하는 전 지구적인 행동에 참가합니다. 비록 우리가 사용하는 전기의 상당량은 핵분열을 통해 만들어져 이산화탄소 배출에 직접적으로 기여하지는 않지만 전기로 움직이는 지하철 대신 경기도에서 서울을 오가는 광역 버스를 타면 땅 속에서 퍼올린 원유를 정제해 얻은 디젤을 태워 만든 막대한 열에너지를 사용해 그저 제 몸뚱이 하나를 이 곳에서 저 곳으로 옮겼다가 다시 저 곳에서 이 곳으로 옮기는데 사용합니다. 실은 전기를 사용하는 교통수단을 사용하더라도 이산화탄소 배출을 멈출 수 있지는 않은데 발전원 별 현황을 살펴보면 2022년 기준 여전히 석탄이 전체 발전량의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어 단순하게 생각하면 전기로 움직이는 교통수단을 이용하더라도 이산화탄소 배출을 막을 수는 없습니다. 이렇게 생각하면 굳이 교통수단을 이용하지 않더라도 가만 앉아 전기를 사용하는 것 만으로도 석탄을 태워 얻은 막대한 에너지 중 일부를 전기로 바꾸고 남은 열에너지 대부분을 폐열로 방출하며 이 과정에서 다시 막대한 이산화탄소를 배출하는데 소극적으로 참여하고 있습니다.
한편 이동하지 않고 한 장소에 가만히 앉아 살아 있기만 해도 저는 지구의 여러 자원을 축내는 기계입니다. 저 한 명을 먹여 살아 있게 만드는데 열량으로 계산하면 그리 많은 에너지가 필요한 것 같지 않지만 이를 만들어내고 제 입 앞까지 가져오는데 필요한 여러 과정을 생각하면 제가 그저 밥 한 끼를 때우기 위해 생각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의 노력이 필요하고 이 과정 각각에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며 이 과정에 참여하는 모든 사람들의 생활을 위해 다시 막대한 에너지가 필요합니다. 가령 딱히 에너지를 가지고 있지는 않은 플라스틱 생수통 속에 들어있는 물을 마시기 위해 누군가는 에너지를 사용해 생수통을 배달해 주셔야 하고 이 과정에 교통수단과 자기 자신의 에너지를 사용하며 생수통을 생산하기 위해 여기 담을 물을 정화해야 하고 또 이 통을 만들기 위해 석유화학 산업에 기반해 석유를 증류해 플라스틱 통으로 만들어야 하며 이 모든 과정 사이사이에 다양한 사람들이 수행하는 수없이 많은 과정이 필요합니다. 그저 물 한 모금 마시려고 했을 뿐이지만 그 뒤에서 움직이는 사람들과 그들의 역할을 상상해 보면 밖에 아가는 대신 집에 있으면서 물 한 모금을 마실래도 이 행동을 뒷받침하기 위한 사람들의 노력과 이들이 사용하는 에너지, 그리고 이 에너지의 근본이 되는 자원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집에서 이동하지 않고 또 물을 마시지 않아도 당장 제가 가만히 앉아 모니터를 바라보며 손가락을 움직여 글자를 만들어 내고 있는 이 순간에도 이 컴퓨터와 모니터가 동작하게 만드는 전기, 제 손에서 땀을 증발 시키기 위해 돌아가는 선풍기, 이제 너무 자잘해서 그 각각이 전기를 소모하고 있다는 사실을 잊게 만들곤 하는 작은 장치들 하나하나 역시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 온갖 방법으로 지구를 소모합니다. 심지어 가끔 제 스스로의 건강과 재미를 위해 인도어 라이딩의 디펜딩 챔피언 즈위프트에 설명한 딱히 에너지를 다른 에너지로 전환하지도 않은 채 지구로부터 얻은 에너지를 그저 땀과 폐열로 만들어 버리는 행동을 하기도 하는데 제 개인의 건강 측면에서는 분명 바람직한 일이지만 그렇게 소모되는 에너지를 생각하면 자원을 소모해 만든 에너지를 그런 식으로 낭비해도 괜찮은 것인지 생각해 보게 됩니다. 또 저는 아주 많은 물을 사용하고 또 배달 음식을 주문할 때마다 수없이 많은 종이 쓰레기와 플라스틱 쓰레기를 만들기도 합니다. 이전에는 분리수거를 통해 이 많은 쓰레기의 일정량 정도는 재활용 가능하다고 생각했지만 여러 채널을 통해 이 쓰레기 중 바람직한 방향으로 재활용되는 것은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으며 낮은 가격으로 쓰레기를 처리하는 국가에 사실상 버리거나 사람들 눈에 잘 띄지 않는 장소에 쌓아 놓을 뿐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여전히 분리수거에 참여하지만 이게 다 무슨 소용인가 하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적극적으로 환경을 오염 시키기 위해 살고 있지는 않지만 그저 살아 있기만 해도 주변에 많은 영향을 끼치며 지구의 자원을 소모하고 대신 이산화탄소와 온갖 폐기물을 배출하는 사람 입장에서 똑같은 질문을 해 봤습니다. 지구에 사는 사람으로써 궁극적으로 지구에 기여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마치 어릴 때 학교에서 들어본 적이 있을 ‘장래 희망’과도 비슷한 질문입니다. 이 질문은 실제 직업의 필요와 자기 자신의 효용, 사회적인 필요, 직업의 다양성, 사회적 지위 따위를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그때까지 배운 아주 좁은 직업의 범주 안에서 장래 희망을 물어 아주 좁은 풀 안에서 직접을 선택할 생각을 하게 만드는 썩 훌륭하지는 않은 질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문득 이전에 망한 면접에서 들었던 업계에서 궁극적인 성취에 대한 질문처럼 이 지구에서 궁극적인 성취란 무엇인지, 혹은 질문을 바꿔 이 지구에서 장래 희망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당당하게 답할 수 있을 적당한 대상을 찾아냈습니다. 바로 미래 세대를 위해 석유가 되는 것입니다.
이전에는 석유가 과거에 살던 공룡들이 땅 속에 묻혀 오랜 세월에 걸쳐 열과 압력을 받은 끝에 만들어진 거라고 배웠고 여기에 딱히 의문을 가지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석유화학 공업에 기반해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진 공룡 모형을 보며 공룡으로 공룡을 만들었다는 모순적인 상황에 피식거리곤 했습니다. 하지만 잘 생각해보면 공룡이 석유가 됐다는 가정은 틀렸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석유는 탄화수소로 만들어진 생물이 죽은 다음 땅 속에 묻혀 공룡 석유설과 마찬가지로 열과 압력을 받아 변성되는 과정을 통해 만들어지는데 이 과정에 중요한 점은 미생물에 의해 분해되지 않는 것입니다. 만약 미생물에 의해 분해되면 죽은 공룡을 구성하고 있던 탄화수소 구성물이 사라져 땅속에 묻히더라도 화석이 될 뿐 열과 압력을 받아도 석유가 되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보통 지상 동물로 널리 알려진 공룡은 죽을 때도 역시 땅 위에서 죽었을텐데 당연히 이들 거의 대부분은 미생물에 의해 분해되어 뼈만 남았을테고 이들은 결코 석유가 되지 못합니다. 운 좋게도 공룡이 죽자마자 지진이 일어나 공룡 사체가 미생물 및 산소와 반응하지 못하도록 사체를 묻어 버렸다면 이 공룡은 탄화수소를 보전한 채 열과 압력을 받아 석유가 될 수도 있었겠지만 이렇게 운이 좋은 공룡이 전체 공룡 중 얼마나 될까요. 이런 공룡들은 전생에 석유가 될만큼 운이 좋았던 나머지 현생에 아랍 석유왕으로 환생했을른지도 모를 일입니다.
육상 동물은 이런 이유로 구성 물질은 석유가 될 수 있을 조건을 갖췄지만 환경이 그렇지 않았기에 운이 극도로 좋은 극소수 공룡을 제외한 나머지는 석유가 되지 못했을 겁니다. 이렇게 운이 나쁜 나머지 대부분의 공룡 중 극히 일부는 종종 화석으로 발견되기도 합니다. 자. 그러면 현대에 파도 파도 끝 없이 나오는 이 석유의 근원이 된 이 거대한 탄화수소는 어디서 왔을까요. 가끔 깜빡 하곤 하는데 지구의 대부분은 바다가 차지하고 있고 바다 속 생물의 거의 대부분은 플랑크톤입니다. 이들은 눈에 잘 띄지도 않고 또 사람이 이를 직접 먹지도 않으므로 종종 그 존재를 잊곤 하지만 바다 생태계 전체를 떠받칠 뿐 아니라 바다 생물을 먹는 육상 동물의 생태계마저 떠받치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이들의 짧은 수명이 끝나면 물 속으로 가라앉아 바닥에 쌓이게 되는데 이 상황이야말로 육상 동물은 극도로 운이 좋아야만 달성할 수 있는 미생물에 의해 분해되지 않으면서도 오랜 세월에 걸쳐 쌓여 열과 압력을 받을 수 있는 상태에 이릅니다. 이 해양 플랑크톤이 쌓여 그들 스스로가 열과 압력을 만들어내고 또 이들 중 석유가 된 공룡들만큼이나 운이 좋은 일부는 해저 지진으로 죽은 그들 위에 지각 구성물질이 쌓여 더 높은 압력과 온도에 노출되어 더 일찍 석유가 되었을 겁니다.
그리고 지구는 이후 오랜 세월에 걸쳐 지각 변동을 일으켰는데 어떤 산은 바다 속으로 가라앉아 바닷속에서 육상 동물의 흔적이 나타나게 만들기도 하고 또 어떤 바다는 솟아올라 땅이 되기도 했습니다. 이런 과정에서 플랑크톤 조상님들이 서로 쌓여 높은 열과 압력을 가해 만들어진 석유가 기술력이 낮은 사람들에 의해 채굴 되기 적당한 위치에 나타났고 초기에 사람들이 이런 지표로부터 가까운 석유에 접근해 막대한 에너지를 얻었고 동시에 이산화탄소를 대기 중에 배출하기 시작했으며 이 에너지를 통해 현대 문명을 일으킵니다. 그리고 석유의 생성 원리를 이해한 사람들이 본격적으로 땅 뿐 아니라 바닷속을 탐사하기 시작하며 인구 전체가 더 많은 석유를 얻었고 이는 더 많은 가용 에너지를 의미하며 이렇게 막대한 에너지를 소모함에 따라 지난 백 년 사이에 인류는 그 이전에 비해 훨씬 빠른 발전을 달성했습니다. 그리고 현대에 이르러서는 이렇게 한 사람이 그저 집에서 물을 마시는 생명활동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는 별 것 아닌 활동을 하는데조차 막대한 에너지가 필요한 세상이 됩니다. 게다가 그렇게 많은 에너지를 사용하는 것 만으로 모자라 에너지원으로 사용하던 석유를 정제한 다양한 물질을 딱 한 번만 사용하고 바로 쓰레기로 만들며 자원을 낭비하고 있기 까지 합니다.
이런 현실 속에서 저는 장래 희망으로 품질 좋은 석유가 되기로 했습니다. 이미 현생 인류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석유 의존도가 점차 낮아짐과 동시에 이전보다 훨씬 발전된 기술을 사용해 더 깊은 곳에 매장된 새로운 석유를 찾아내고 있습니다. 이렇게 찾아내는 모든 석유의 총량에 비해 인류가 1년에 소모하는 석유량은 점점 줄어들고 있어 과거에 석유가 고갈 될 수 있다고 걱정하곤 했지만 이제 사실상 석유는 인류 문명이 지속되는 한 더 이상 고갈 되지 않을 전망이라고 합니다. 이미 우리가 한 해 동안 소모하는데 비해 석유를 찾아내는 속도가 더 빠른 세상이 되고 말았습니다. 또 시간이 지남에 따라 인류 전체 인구는 증가했다가 증가세가 둔화되며 전 지구적으로 인구 감소세로 돌아서기 시작할 예정이라고 추정하고 있는데 그러면 인류의 에너지 소모량은 더더욱 줄어들테고 그 시대에는 기술이 더욱 발전해 화석 연료 사용량은 더 줄어들어 석유 의존도가 낮아질 겁니다. 그쯤 되면 석유는 한때 인류 문명의 발전을 촉발한 막대한 에너지원으로써 역사 교과서에서 볼 수 있는 존재가 될른지도 모릅니다.
그런 시대가 올 때까지 땅 속이나 바다 속에서 미생물에 의해 분해되지 않은 채로 고온, 고압을 받아 변성된 끝에 그 시대에는 더 이상 필요하지 않은 석유가 되어 땅 속에 가만 묻혀 있으면 언젠가 인류가 전면적인 핵무기 사용 같은 이벤트에 따라 절멸의 위기를 겪거나 어떤 이유로 문명을 모두 잃고 고대의 기록으로부터 미래 문명을 다시 발전시켜야 할 때 땅 속에 묻혀 있던 저를 포함한 과거의 에너지원 석유를 뽑아 쓸지도 모릅니다. 그런 세계가 온다면 땅 속에 석유가 되어 잠들어 있다가 미래에 누군가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필요한 열에너지로 전환되어 그 일생을 마친 다음 영원히 엔트로피가 더 큰 상태로 바뀌어 대기의 이산화탄소로 흩어져 사라지는 결말은 장래 희망 치곤 꽤 괜찮을 뿐 아니라 어차피 살아있는 내내 지구의 자원을 소모하기만 했으니 그 끝에는 석유가 되어 그 스스로 자원이 되는 결말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제 장래 희망은 품질 좋은 석유가 되는 것입니다. 기왕이면 중질유 말고 경질유가 되어 더 낮은 공업력으로도 쉽게 사용될 수 있는 석유가 되어 누군가의 열에너지로 변환되어 더 낮은 엔트로피로 영원히 흩어지는 것이야말로 항상 지구의 자원을 소모하기만 하는 사람 입장에서 꽤 괜찮은 결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