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수집욕

문제가 생긴 컴퓨터를 빨리 교체하는 편이 나았지만 문제 횟수를 세는데 정신이 팔려 한 달 동안 문제를 관찰하고 말았습니다.

이상한 수집욕

아주 어릴 때부터 안경을 썼습니다. 오래 전부터 TV를 너무 가까이에서 보면, 책을 너무 가까이에서 보면, 하루 종일 모니터 앞에 있으면 눈이 나빠진다는 등등의 여러 가지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와서 생각해 보면 TV를 너무 가까이에서 보거나 책을 너무 가까이에서 보는 행동은 이 행동이 시력에 악영향을 끼치기 보다는 이미 시력이 낮아졌기 때문에 하는 행동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도시에서 가까이 있는 물체를 주로 바라보며 생활하다 보니 눈이 이런 환경에 적응해 더욱 가까이 있는 물체를 보려고 노력한 결과 멀리 있는 물체를 보기 어려워지는 현상이 있을 수 있다는 점은 인정합니다. 하지만 이미 시력이 나쁜 상태에서 그나마 뭘 좀 보려고 하는 여러 가지 행동에 외부로부터 제약을 받을 때 항상 궁금했습니다. 정말 그런 행동들이 시력을 나쁘게 하는 걸까 하고요.

아주 어릴 때부터, 그러니까 학교에서 한 반에 안경을 쓰는 사람이 저와 담임 선생님 둘 뿐이던 때부터 안경을 썼지만 그 시대에는 나름 얌전한 학생이어서 안경을 깨거나 프레임을 망가뜨릴 일은 없었습니다. 종종 유튜브 영상 중 한국의 안경원에서 검안 부터 안경 수령까지 30분 안에 끝나는 것을 보고 놀라는 외국인들을 보여주는 내용이 있었는데 오래 전이나 지금이나 제가 쓰는 안경은 안경점에서 바로 찾을 수가 없었고 또 그만큼 비쌌습니다. 항상 검안을 마치고 나면 주말을 끼고 며칠 지난 다음에 찾으러 가야 했고 며칠 뒤에 안경점에 가면 그때서야 주문해 받은 렌즈로 안경을 만들기 시작해 남들이 경험하는 그 몇 십분 안에 안경을 받는 경험을 할 수 있었습니다. 안경은 비쌌고 또 안경을 망가뜨리면 며칠에 걸쳐 큰 불편을 겪었기 때문에 조심조심 다녀야만 했습니다. 하지만 어느 기간 동안은 제 스스로가 조심한다고 해서 안경을 망가뜨리지 않을 수 없는 기간도 있었습니다.

대략 반 년에 걸친 기간 동안 학교에서 생활하며 온갖 이유에 의해 연속으로 안경을 망가뜨린 기간이 있었는데 아무리 조심해도 누군가와 부딪치고 놀다가 고개를 돌렸더니 안경이 날아가고 안경 다리를 잡고 있던 나사가 헐거워져 다리와 나머지 프레임이 분리되어 땅으로 떨어지고 누군가에게 밀쳐져 벽에 얼굴을 쳐박았더니 양쪽 렌즈가 깨져 있기도 하고 또 바닥에 둔 안경을 스스로 밟고 책상 위에 잠깐 내려 둔 안경을 지나가던 누군가가 부주의하게 쳐서 떨어뜨린 다음 밟혀 박살 나기도 하는 등 짧은 기간 동안 연달아 안경을 망가뜨렸습니다. 안경이 망가지면 제 스스로도 불편했지만 항상 이 사실을 부모님께 말씀드리기가 엄청나게 죄송스러웠는데 지금의 저도 그렇지만 그 시대의 부모님들 역시 가난하기 짝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안경을 새로 만들 때마다 상당한 비용이 들어갔고 안경점에서는 아이들이 자랄 때 이런 때가 한번 씩은 있으니 예비 안경을 하나 더 만들어 두면 도움이 된다고 이야기하기도 했지만 한번에 안경 두 개를 주문하기에는 가계에 너무 큰 부담이 됐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안경을 한번 망가뜨리면 며칠 씩 안경 없이 생활하기를 몇 달에 걸쳐 반복했는데 신기하게도 이런 기간은 몇 달 지나자 마치 거짓말처럼 끝났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많이 흐른 다음에도 이런 별로 겪고 싶지 않은 일들이 짧은 기간 안에 일어나는 현상은 안경을 더 이상 망가뜨리지 않게 되었음에도 여전히 계속되곤 했습니다. 가령 프로젝트가 터져 다른 직장을 알아봐야 할 때 동시에 연애에 문제가 생겨 마음에 큰 고통을 겪기도 하고 집 계약 기간이 끝나 이사를 가야 할 때 컴퓨터가 고장 나 동시에 두 가지 이상에 큰 돈을 지출해야 하기도 했습니다. 마치 예비 안경을 미리 준비할 수 없을 정도로 살림이 빠듯한 상황에 아이가 연달아 여러 번에 걸쳐 안경을 망가뜨리기를 반복하던 것과 비슷하게 각각이 따로 일어난다면 뭐 그럴 수 있다 싶을 만한 일도 비슷한 시기에 연달아 일어나면 이를 해결하기도 어렵고 또 이들 각각으로부터 겪는 마음 고생도 이들을 따로따로 겪을 때에 비해 훨씬 더 컸던 것 같습니다.

한편 얼마 전에는 부담 없는 윈도우 재설치에서 회사에서 사용하던 기계가 슬슬 망가질 증상을 보이기 시작해 하드웨어 일부를 교체하고 윈도우를 재설치 하면서 현대의 운영체제 재설치는 생각보다 그리 귀찮은 경험이 아니게 된 사실에 대해 소개했습니다. 사실 현대에는 운영체제를 재설치 할 일 자체가 거의 없어졌습니다. 이전에 사용하던 여러 기계들도 기계 수명이 끝나거나 그 기계를 더 이상 사용하지 않게 되는 순간까지 운영체제를 재설치한 적이 없었고 또 지금 집에서 사용하는 기계 역시 처음 구입한 다음 지금까지 몇 년 동안 운영체제를 재설치한 적이 없습니다. 하지만 뭔가 원인을 파악하기 어려운 문제가 계속되거나 스토리지 기계를 교체하고 나면 운영체제 재설치를 피할 수 없는데 이전 시대에는 운영체제를 한번 재설치 하려면 백업부터 시작해서 온갖 소프트웨어 재설치 때문에 상당히 귀찮고 고통스러웠습니다. 당연히 지난번에도 그런 경험을 하게 될 거라고 예상했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회사 기계에서 ‘모든’ 업무용 데이터는 클라우드에 있을 뿐 제가 직접 사용하는 기계 로컬에 있지 않았습니다. 모든 빌드는 깃헙에, 모든 문서는 노션에, 모든 이슈는 지라에 있습니다. 또 어떤 작업을 하기 위해 로컬에 만든 엑셀 파일 같은 자잘한 바이너리들은 돌고 돌아 퍼포스에 소개한 대로 별도로 운용하는 개인용 형상관리도구에 올라가 있습니다. 또 회사 기계이지만 어쩌다 보니 개인 파일이 일부 있었는데 이들 역시 실시간으로 서버와 동기화 되는 별도 소프트웨어를 사용하고 있어 이들 역시 로컬에만 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경영지원 업무를 담당하시는 스탭님으로부터 하드웨어를 교체하기 전에 운영체제를 재설치 해보자는 권유를 듣고 그냥 그 자리에서 바로 아무 준비 없이 윈도우 재설정 메뉴를 눌렀는데 이 행동은 그 분을 잠깐 당황하게 만들기도 했습니다. 윈도우 재설정 전에 뭔가 준비할 것이 있으리라 생각했는데 그냥 컴퓨터를 사용하다 말고 바로 윈도우 재설정을 눌러 버렸으니까요. 하지만 로컬에만 있는 데이터는 전혀 없었으니 이 기계가 지금 당장 파괴돼도 기계를 다시 구해야 할 뿐 사라지는 데이터는 전혀 없었습니다. 아무것도 준비할 필요가 없습니다.

당시 윈도우를 재설치 했지만 결국 크래시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고 이벤트 로그 상에 나타난 크래시가 일어나기 직전에 스토리지로부터 에러를 기록한 점을 근거로 첫 번째 스토리지를 교체하기로 결정합니다. 운영체제가 설치된 첫 번째 스토리지를 교체했기 때문에 이번에도 운영체제를 재설치 해야 했는데 하루 동안에 윈도우를 두 번 재설치 하고 또 재설치 직후 여러 작업 환경을 복원해야 했지만 이 과정은 귀찮았을 뿐 복잡하지는 않았습니다. 또 지난 부담 없는 윈도우 재설치에 소개한 대로 윈도우용 패키지 매니저인 chocolatey를 사용해 어지간한 소프트웨어는 커맨드라인에서 편안하게 설치할 수 있어 그 귀찮은 과정 역시 누군가가 설치 패키지를 만들어 둔 적이 없는 몇몇 소프트웨어를 직접 설치할 때를 제외하곤 그리 나쁘지 않았습니다. 하루 동안에 윈도우 재설치 두 번, 그리고 작업 환경 복원을 두 번 하면서도 생각보다 이 과정의 경험이 나쁘지 않아 이 경험을 글로 남겼습니다. 이렇게 반복되는 크래시 문제를 더 이상 겪지 않으리라 예상했지만 안타깝게도 그렇지 않았습니다.

플라시보인지 몰라도 스토리지 교체와 운영체제 재설치 후 크래시가 없어진 것 같았지만 며칠 지나니 이전 만큼은 아니지만 여전히 크래시가 일어났습니다. 그렇다고 노발대발하며 당장 기계를 바꿔 달라고 난리를 치기에는 개발비를 절약해 봅시다를 쓸 정도로 온갖 개발비를 줄일 방법을 생각할 만한 상황이어서 함부로 그러기는 어려웠습니다. 하지만 이따금 결정적이지는 않은 순간이지만 한참 집중해서 일하다가 크래시를 겪으면 기계를 재시작하고 다시 작업하던 이전 상태로 돌아가기까지는 몇 분 밖에 걸리지 않았지만 갑작스레 집중으로부터 빠져나온 머리가 다시 이전 작업을 이어서 수행하기까지는 시간이 좀 걸립니다. 윈도우를 재시작하고 브라우저를 열어 작성하던 문서로 돌아가 작성하던 부분부터 이어 작성하거나 언리얼 에디터에 입력하던 데이터를 이어 입력하는 건 그 자체로는 간단했지만 크래시 전과 크래시 후 사이에는 집중력에 큰 차이가 있었고 분명 크래시가 없었다면 더 빨리 끝낼 수 있었던 일을 더 오랜 시간을 쓴 다음에야 끝냈습니다. 하지만 회사에 이 기계가 크래시 되는 원인을 찾아 해결하거나 당장 다른 기계로 교체해 원인을 제거한 다음 천천히 원인을 찾을 만한 자원이 없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기 때문에 여전히 크래시가 일어난다고 난리를 치기는 어려웠습니다.

어떻게 할까 고민하다가 일단 크래시가 일어나더라도 작업을 할 수는 있었기 때문에 평소처럼 일하다가 크래시가 일어날 때 크래시가 일어났음을 기록으로 남겨 보기로 합니다. 크래시 자체가 일어나지 않는 상태가 정상이기는 하지만 기록해 보면 어쩌면 대강 그 정도 결함은 용인할 수 있는 수준일 수도 있고 아니면 제가 참고 그냥 일하기에는 너무나 심각한 수준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기록하지 않고 그냥 느낌 만으로 말하다가는 ‘아니 계속 크래시 돼서 아무 작업도 못하겠어요’ 라고 말하려다가 보니 어지간해선 크래시 되지 않아 양치기 소년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매번 크래시가 일어나 집중이 깨지면 윈도우가 재시작 되는 동안 뒤로 물러나 있다가 로그인 한 다음 바로 브라우저를 열어 날짜와 크래시 횟수를 기록했습니다.

날짜

크래시 횟수

날짜

크래시 횟수

2023-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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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0-31

 

2023-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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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0-30

 

2023-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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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0-27

 

2023-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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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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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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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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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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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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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1-16

 

2023-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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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1-15

 

 

 

2023-11-14

 

 

 

2023-11-13

 

 

 

2023-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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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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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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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1-07

 

 

 

2023-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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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1-03

 

 

 

2023-11-02

 

 

 

2023-11-01

 

 

 

이 글을 쓰는 날은 2023년 11월 25일 토요일인데 회사 기계가 크래시 될 때마다 기록하기 시작한지 한 달을 갓 넘긴 현재 총 22회의 크래시가 일어났습니다. 날짜를 보면 크래시가 집중적으로 일어난 기간이 있는가 하면 며칠에 걸쳐 크래시가 일어나지 않는 기간도 보이는데 이 사이에는 좀 더 무거운 작업을 직중적으로 하는가, 그렇지 않은가의 차이가 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주로 브라우저를 사용해 회사 지라, 회사 노션, 개인 컨플루언스를 오가며 문서 위주의 작업을 할 때는 크래시가 잘 일어나지 않다가 게임 클라이언트를 여러 개 띄워 멀티플레이 환경을 테스트 하거나 언리얼 에디터를 띄워 데이터나 레벨을 에디팅 하는 기간에는 좀 더 크래시를 자주 겪곤 했습니다. 크래시는 주로 로드가 높은 상황에서 로드가 높은 또 다른 프로그램을 실행할 때 일어나곤 했는데 가령 언리얼 에디터에서 레벨에 이것 저것 구성요소를 배치하고 저장할 때 까지는 팬 소리가 커지긴 했지만 어쨌든 작업을 해 냈다면 이제 이 결과가 동작하는 모습을 캡처하려고 OBS를 실행하는 순간 크래시가 일어나곤 했습니다. 이쯤 되면 사실 하드웨어나 소프트웨어에 문외한이라도 무슨 문제인지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합니다.

지난번에 SSD를 교체하며 기계를 뜯어보니 문외한이 볼 때 좀 의아한 구조가 눈에 띄었습니다. 첫 번째 스토리지는 M.2 슬롯에 장착된 SSD였는데 그 바로 뒤에 그래픽카드가 위치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SSD를 교체하기 위해서는 그 위를 막고 있는 그래픽카드를 분해한 다음 SSD를 교체하고 다시 그래픽카드를 장착한 다음에야 조립을 마무리할 수 있었습니다. 이 때 실수로 그래픽카드에 보조 전원을 꽂지 않고 뚜껑을 닫았다가 전원을 켜도 모니터에 아무것도 나타나지 않아 잠깐 당황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컴퓨터 안에서 SSD는 상당한 열을 발생 시키는 기계여서 요즘에는 SSD에 구리나 알루미늄으로 만든 방열판을 붙이곤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 기계에는 방열판을 붙이지는 않았고 이게 딱히 심각한 문제로 연결될 거라고 생각되지도 않습니다. 하지만 그 바로 위를 가로막고 있는 그래픽카드 역시 엄청난 열을 만들어 내는 장치로 그래픽카드는 자기 자신의 온도를 조절하기 위해 커다란 팬 여러 개가 장착 되어 있었습니다. 이런 두 가지 기계가 서로 떨어져 있지 않고 가까이, 그것도 그래픽카드가 SSD 바로 위를 가로막고 있는 점은 이상했고 이걸 보자마자 ‘이제 서로 죽여러’ 배치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스토리지 교체 후에도 크래시를 계속 겪다가 크래시 횟수를 기록하기 시작하면서 이상한 현상이 일어나기 시작했는데 이전에는 크래시를 겪으면 집중이 깨져 짜증이 날락말락 하는 상태가 됐다면 크래시를 기록하기 시작한 다음부터는 기계가 재시작 되는 동안 크래시를 기록할 생각에 재시작이 끝나기를 기다리고 있는 상태가 된 겁니다. 크래시 됐던 기계가 재시작 되면 로그인 한 다음 바로 브라우저를 실행하고 고맙게도 브라우저가 정상 종료되지 않았으니 이전에 띄웠던 탭을 모두 다시 띄우겠냐고 묻는 브라우저에게 그러라고 한 다음 바로 크래시를 기록하는 페이지를 열어 크래시를 기록했습니다. 위에 있는 테이블에 그 날 날짜를 추가하고 날짜 옆에 크래시 될 때마다 💥 이모지를 추가합니다. 또 이 테이블에는 평일만 기록했는데 혹시 휴가였던 날은 🌴 이모지로 표시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크래시가 집중적으로 일어나는 기간과 그렇지 않은 기간이 있음을 알게 되기도 하고 또 하루에 최대 세 번 까지 크래시가 일어난 날도 있었지만 세 번을 초과하지는 않고 있다는 사실 역시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크래시가 일어날 때마다 그 날 날짜 옆에 💥 이모지를 추가하는 행동에 슬슬 재미를 붙여 처음에는 크래시가 얼마나 일어나는지 파악하려고 시작한 행동이 💥 이모지를 수집하는 일로 변형됩니다.

실은 이 행동의 목적이 상황 파악에서 💥 이모지 수집으로 변했다는 사실을 스스로 인지하지도 못하고 있다가 지난 금요일날 심심해서 팀 슬랙에 지난 한 달 조금 넘는 기간에 걸쳐 크래시 빈도를 이런 방식으로 수집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했다가 상사로부터 ‘무슨 짓이야. 당장 기계를 바꿔!’ 하고 혼나고 나서야 이 기록의 목적이 크래시 빈도를 파악해 기계를 바꿔 달라는 요청을 하려고 했던 것임을 기억해 냈습니다. 또 다른 팀원님으로부터 ‘이거 블로그 포스팅 거리네요. 이상한 수집욕으로.’라는 말씀을 듣고 그럴듯 하다는 생각이 들어 오늘 이 글을 쓰고 있습니다.

이런 현상을 어떤 이론에 기반해 설명할 수는 없지만 대략 연말에 휴가가 많이 남아있지만 이를 별로 사용하고 싶지 않은 감정은 남은 휴가를 표시하는 시스템에 표시된 숫자가 줄어들면 마치 뭔가를 잃은 것 같은 느낌이 들어 이 숫자를 연말까지 두 자릿 수로 유지하고 싶기 때문입니다. 또 저녁 식대가 최대 만 원 까지 지원되 - 지금은 회사가 어려워 지원되지 않음 - 상황에서 완벽한 만원을 맞추기 위해 노력하거나 또 고객들의 인벤토리에 골드가 엄청나게 쌓여 있다는 사실을 파악하고 골드를 태울만한 메커닉을 제공했지만 고객들은 우리들이 자신들의 골드를 빼앗는다고 생각해 거센 반발에 부딪치는 것과도 비슷합니다.

분명 기계를 교체하고 나면 더 이상 크래시가 일어나지 않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러면 좀 더 일에 집중할 수 있을 테고 기계가 재시작 되는 동안 멍하니 있지 않아도 됩니다. 하지만 크래시가 일어나지 않으면 더 이상 💥 이모지를 수집할 수 없게 되고 이 점은 약간 시원섭섭한 느낌이 들지 않을까 싶습니다. 하지만 상사로부터 혼 날 정도로 이건 방치하면 안 될 만한 일이 맞고 이제 이상한 욕구에 의한 수집을 그만 두고 돌아오는 월요일에 출근해서 기계를 교체하기로 했습니다. 이렇게 이상한 💥 이모지 수집은 한 달 조금 넘는 기간 동안 계속한 끝에 마무리할 작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