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장

1998년 12월 일본의 대장상이 국채를 그만 사겠다고 말하자 넉 달 만에 10년물 금리가 세 배가 됐습니다. 2024년 3월부터 같은 일이 일본은행을 주인공으로 다시 벌어지고 있습니다. 국채의 줄에서 가장 큰 손이 빠져나갈 때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900년의 역사와 지금의 일본 상황과 비교해 보겠습니다.

퇴장

1998년 12월 1일 일본의 미야자와 대장상이 기자들 앞에서 자금운용부가 국채를 사들이는 일을 그만둘 수 있다고 말합니다. 자금운용부는 우편저금과 연금적립금을 법에 따라 예탁받아 운용하던 대장성 안의 조직이고 그 돈으로 국채 잔액의 30%가량을 들고 있던 가장 큰 보유자였습니다[^1998年末に発生した日本国債の急落、「運用部ショック」とは何だったのか]. 그해 9월 일본은행이 콜금리를 0.25%로 내린 뒤 10년물 국채 금리는 사상 처음 1% 아래로 내려가 10월 2일 0.772%까지 갔습니다[^国債金利情報]. 콜금리는 은행들이 서로 하루짜리 돈을 빌려줄 때 붙는 금리이고 일본은행이 목표를 정해 유도하는 정책금리입니다. 10년물은 만기가 10년인 국채이고 그 금리는 발행자가 정하는 값이 아니라 시장에서 그 국채가 얼마에 거래되는지가 정합니다. 값이 내려가면 금리가 올라가므로 오늘 이야기에 나오는 금리 상승은 전부 사는 쪽이 값을 더 깎았다는 뜻입니다. 11월 17일 무디스가 일본 국채의 등급을 최고 등급에서 한 단계 내렸고 11월 20일에는 3차 추가경정예산으로 늘어나는 국채 12조 5,000억 엔 중 10조 엔 이상을 시장에서 소화하겠다는 방침이 나왔습니다. 그 위에 12월 1일의 발언이 얹히자 그날 국채 선물은 1988년 8월 이후 처음으로 하한가까지 떨어졌습니다. 12월 21일 대장성이 애널리스트들을 불러 설명한 뒤 1999년 1월부터 매입을 중단한다고 공식으로 밝혔고 1999년 2월 5일 10년물 금리는 2.43%가 됩니다. 넉 달 만에 세 배입니다. 그사이 일본은행은 국채 매입을 늘려 달라는 시장의 요구를 받았고 1999년 2월 12일 회의에서 어떤 형태든 국채를 계속 사들이면 정부가 씀씀이를 줄이지 않게 되고 나중에 걷잡을 수 없는 인플레이션이 온다는 의견이 우세해 매입 방침을 그대로 두는 대신 콜금리를 0.15% 전후로 내리고 이후 더 내리기로 8대 1로 결정했습니다[^金融政策決定会合議事要旨(1999年2月12日開催分)]. 시장 참가자들은 이 넉 달을 운용부 쇼크라고 부릅니다. 해외 투자자가 판 것이 아니었습니다. 국채의 30%를 들고 새 발행을 늘 받아 주던 국내 기관이 앞으로는 받지 않겠다고 말한 것이 전부였습니다.

지난 '창구'에서 어떤 증서를 화폐로 만드는 것은 그것을 위층 화폐로 바꿔 줄 창구가 열려 있다는 사실이라고 말했고 ''에서는 그 창구 앞에 사람을 줄 세우는 규칙을 다뤘습니다. 위층 화폐는 여러 약속을 받아 주는 정도에 따라 층으로 쌓았을 때 한 층 위에 있는 것을 말합니다. 가계와 기업의 약속 위에 은행 예금이 있고 그 위에 중앙은행이 발행한 현금과 은행이 중앙은행에 맡긴 예금이 있습니다. 은행 예금이 화폐로 통하는 것은 그것을 현금으로 바꿔 주는 창구가 열려 있기 때문이고 국채가 현금에 가깝게 다뤄지는 것도 중앙은행이 그것을 받아 주는 창구가 있기 때문입니다. 이번에 다루려는 것은 그 줄에서 가장 큰 손이 빠져나가는 순간입니다. 줄은 어떤 증서를 받아 가려는 사람들이고 줄의 길이가 그 증서의 수요라고 지난 이야기에서 말했습니다. 그 줄의 맨 앞에는 대개 나라가 규칙으로 만든 큰 손이 있습니다. 예탁받은 우편저금으로 국채를 사야 하는 기관이거나 준비금을 국채로 쌓아야 하는 회사이거나 매달 정해진 금액을 사기로 약속한 중앙은행입니다. 그 손이 줄에서 나가면 뒤에 서 있던 사람들이 맨 앞으로 밀려 올라오고 그들이 낼 값이 그 증서의 새 값이 됩니다. 1998년 12월의 일본에서 그 손은 자금운용부였습니다. 2024년 3월 19일부터 그 손은 일본은행이고 그날 0.744%였던 10년물 금리는 2026년 9월 2일 3.006%로 1996년 9월 이후 처음 3%를 넘었습니다[^国債金利情報]. 오늘 이야기는 그 퇴장을 봅니다. 국채가 처음부터 누가 사게 만드느냐의 문제였다는 것에서 시작해 금리를 고정했다가 나온 두 중앙은행을 지나 2년 반 동안 일본에서 벌어진 일을 정리하고 미국이 수요를 만드는 동안 일본은 공급을 줄였다는 것으로 갑니다. 큰 손이 나간 줄을 어떻게 다시 세우는지에 대한 답은 없습니다. 있었던 답과 없었던 답을 나누는 데까지 가겠습니다.

국채의 역사는 대개 1694년 잉글랜드 은행이나 1172년 베네치아에서 시작합니다. 자료를 찾아보면 둘 다 출발점이 아닙니다. 제노바에는 1141년에 이미 시민 채권단이 특정 세금의 징수권을 이자 겸 담보로 받고 도시에 돈을 빌려준 문서가 있고 베네치아는 1164년에 리알토 시장의 세수를 담보로 은 1,150마르크를 빌렸습니다. 1172년은 베네치아가 재산평가에 비례해 시민에게 강제로 돈을 빌리게 하는 제도를 시작한 해입니다. 1262년 베네치아는 그동안 쌓인 강제대출을 단일 기금으로 통합하고 여덟 가지 소비세를 이자 지급 재원으로 지정했으며 원금은 갚지 않는 영구채로 만들었습니다. 피렌체가 1343년부터 1345년 사이에 같은 일을 했고 제노바는 1407년 이자율 8%에서 10%짜리 여러 대출을 7%짜리 단일 자산으로 통합한 산 조르조 은행을 만들었습니다[^Did Genoa and Venice Kick a Financial Revolution in the Quattrocento?]. 영토를 가진 왕들은 그보다 훨씬 늦었습니다. 아이켄그린과 세 공저자가 정리한 8세기의 공공부채사는 영토국가가 장기로 빌릴 수 있게 된 것이 1500년 이후이고 작은 도시국가는 13세기와 14세기에 이미 그렇게 하고 있었다고 말합니다[^Public Debt Through the Ages]. 국채는 나라보다 도시가 먼저 만들었고 그 도시들은 시민에게 사 달라고 부탁한 것이 아니라 사라고 명령했습니다.

강제로 사게 했다는 사실이 오늘 이야기의 출발점입니다. 베네치아와 피렌체의 대출은 재산평가에 비례해 할당됐고 그 대신 도시는 이자와 유통시장을 보장했습니다. 유통시장은 이미 발행된 증서를 사람들끼리 되사고파는 시장이고 그것이 있어야 강제로 받은 증서를 돈으로 바꿀 수 있습니다. 그래서 같은 도시 안에서도 수익률이 갈렸습니다. 1386년부터 1420년 사이 베네치아의 강제대출 수익률은 8.8%였고 자발적 대출은 6.13%였습니다[^Did Genoa and Venice Kick a Financial Revolution in the Quattrocento?]. 억지로 사야 하는 사람은 그 종이를 되팔 때 더 싸게 팔았고 그 차이가 곧 강제의 값이었습니다. 국채 금리가 나라의 신용을 측정하는 자로 쓰이게 된 과정에 대해서는 학설이 갈립니다. 1688년 명예혁명 뒤 의회의 감시가 신뢰할 수 있는 약속을 만들어 영국의 금리를 낮췄다는 설명이 가장 널리 알려져 있는데 서스먼과 야페는 명예혁명 뒤 수십 년 동안 영국 국채의 위험 프리미엄이 높게 유지되거나 올랐고 영국 금리가 네덜란드 금리와 함께 움직였다고 반박합니다[^Constitutions and Commitment: Evidence on the Relation between Institutions and the Cost of Capital]. 위험 프리미엄은 떼일 수 있다는 이유로 더 얹어 받는 금리입니다. 겔더블롬과 용커는 제도가 필요조건일 뿐이고 결정적인 것은 저축의 공급이었다고 봅니다[^Public Finance and Economic Growth: The Case of Holland in the Seventeenth Century]. 어느 쪽이든 중세 도시의 강제대출 수익률 차이는 그 논쟁보다 300년 앞서 있습니다. 누가 어떤 조건으로 사야 했는지가 금리를 정했습니다.

근대 국채의 직접 조상은 이탈리아가 아니라 북유럽 도시의 연금이라는 것이 먼로와 스타새비지의 입장입니다. 1228년 샹파뉴의 트루아가 처음 팔았고 1522년 파리시가 왕을 대신해 보증하는 형태로 프랑스 왕정에 들어왔으며 1540년대 홀란트 주가 새로 만든 세금을 담보로 자발적으로 팔았고 영국이 1693년과 1694년에 그 네덜란드 모델을 들여왔습니다. 연금은 교회법에서 대출이 아니라 수입을 받을 권리를 사고파는 거래였습니다. 그래서 고리대가 아니었고 원금은 채무자가 원할 때만 갚을 수 있었습니다. 지난 이야기에서 존 로의 회사가 1719년 국채 보유자에게 상환을 강제할 수 있었던 것이 프랑스 영구연금에 처음부터 붙어 있던 채무자 콜옵션 때문이라고 말했습니다. 이것이 그 옵션의 출처입니다. 채무자 콜옵션은 언제 갚을지를 빌린 쪽이 고르는 권리입니다. 1694년 잉글랜드 은행은 정부에 120만 파운드를 빌려주고 특허와 발권 독점을 받았고 그 이자는 통설로 8%입니다[^Public Debt Through the Ages]. 1749년 펠럼 정부는 4% 연금 5,770만 파운드의 이자를 3.5%를 거쳐 3%로 내리는 전환을 제안했고 700만 파운드만 현금 상환을 택했습니다. 통설은 이 전환이 거의 실패할 뻔했다가 대형 투자가의 지지로 살아났다고 말하지만 챔리가 당시 시장가격을 조사한 결과는 시장이 발표 전부터 성공을 예상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Interest Reductions in the Politico-Financial Nexus of Eighteenth-Century England]. 정부가 금리를 낮춰 갚은 것이 아니라 이미 낮아진 시장금리를 계약에 반영한 것입니다. 900년 동안 국채의 값을 정한 것은 발행자의 의지가 아니라 사는 쪽의 조건이었습니다.

1942년 4월 미국 연방준비제도는 재무부와 합의해 3개월물 국채 금리를 0.375%에 1년물을 0.875%에 장기물을 2.5%에 고정합니다. 금리를 고정한다는 것은 그 금리보다 국채 값이 내려가려 할 때마다 중앙은행이 사들여 막겠다는 뜻입니다. 전쟁 자금을 싸게 조달하려는 조치였고 공공부채 2,500억 달러의 약 60%를 은행이 들고 있었습니다. 전쟁이 끝나고도 고정은 유지됐습니다. 연준 의장을 지낸 에클스는 1947년에 무슨 일이 있어도 그 2.5%에 대한 신뢰가 흔들리게 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습니다. 1950년 6월 한국전쟁이 시작되고 그해 12월부터 1951년 2월까지 소비자물가가 연율 21%로 올랐습니다. 1951년 1월 31일 트루먼 대통령이 연방공개시장위원회 위원 전원을 백악관으로 불렀고 다음 날 위원회가 현 수준의 금리를 유지하기로 확약했다는 감사 서한을 공개했습니다. 위원회는 그런 확약을 한 적이 없었고 에클스는 회의록 사본을 언론에 배포했습니다. 2월 19일 연준은 재무부에 현 상황을 더는 유지하지 않겠다고 통보했고 3월 4일 두 기관이 공동성명을 냅니다. 헤첼과 리치가 리치먼드 연방준비은행 논문에서 복원한 협약의 내용은 독립 선언이 아니었습니다. 2.5%짜리 시장성 국채를 2.75%짜리 비시장성 장기채로 바꿔 주고 5년물 국채는 2억 달러 한도 안에서만 지지한다는 비밀 조건의 타협이었고 장기금리가 시장에 완전히 맡겨진 것은 1953년의 일입니다[^The Fiftieth Anniversary of the Treasury-Fed Accord]. 고정은 9년 갔고 인플레이션에 깨졌고 나가는 방식은 조용한 단계였습니다.

일본은행은 2016년 9월 21일 10년물 국채 금리를 0% 정도로 유도하겠다고 정하고 그 금리로 무제한 매입하는 지정가 오퍼를 만듭니다. 결정은 7대 2였습니다. 2018년 7월 결정문은 금리가 위아래로 어느 정도 변동할 수 있다고만 썼고 2021년 3월에 그 폭이 0.25%라고 명시했으며 2022년 12월 0.5%로 넓혔고 2023년 7월에는 1.0%에서 지정가 오퍼를 설정했으며 2023년 10월에는 1.0%를 상한의 기준으로 삼았습니다. 2024년 3월 19일 일본은행은 마이너스 금리와 이 장단기 금리 조작이 역할을 다했다고 밝히고 콜금리를 0에서 0.1% 사이로 올렸으며 국채 매입은 이전과 대체로 같은 규모로 계속한다고 밝혔습니다[^金融政策の枠組みの見直しについて]. 마이너스 금리는 은행이 일본은행에 맡긴 돈의 일부에 이자를 주는 대신 물리는 것이고 장단기 금리 조작은 단기 정책금리와 10년물 금리를 함께 목표로 삼는 틀입니다. 7년 반이 걸렸고 그사이 금리 상한을 네 번 넓혔습니다. 연준과 같은 것은 둘 다 인플레이션에 깨졌다는 것과 둘 다 선언이 아니라 단계로 나갔다는 것입니다. 다른 것은 나간 뒤의 행동입니다. 연준은 1951년 이후에도 보유 국채를 줄이지 않았습니다. 일본은행은 2013년 4월 4일 양적 질적 금융완화를 시작하면서 보유 국채를 은행권 발행 잔액 아래로 묶던 2001년의 자체 규칙을 일시 정지했고 그 뒤 11년 동안 산 것을 2024년 7월부터 줄이기 시작했습니다. 양적 질적 금융완화는 국채를 대규모로 사들여 시장에 도는 돈을 늘리는 정책입니다. 1998년의 자금운용부가 그만 사겠다고 말한 것이라면 2024년의 일본은행은 그만 사겠다는 것에 더해 그동안 산 것도 시장에 되돌리겠다고 말한 것입니다.었나

일본은행이 국채의 절반 이상을 들고 있다는 말은 기준을 함께 말해야 맞는 말이 됩니다. 단기 국채는 만기가 1년 이하이고 그냥 국채라고 할 때는 그보다 만기가 긴 것을 말합니다. 재무성 채무관리리포트가 일본은행 자금순환통계를 옮겨 실은 표에서 단기 국채를 포함한 국채 전체 가운데 일본은행 보유 비중은 2015년도 말 33.8%에서 2022년도 말 47.3%로 올랐고 2026년 3월 말 잠정치에서 42.2%입니다. 같은 기간 은행 등의 비중은 24.7%에서 13.0%로 절반이 됐고 생명보험과 손해보험은 20.5%에서 17.0%로 내려갔으며 해외는 10.0%에서 14.1%로 올랐습니다[^債務管理リポート2025 ―国の債務管理と公的債務の現状―]. 단기 국채를 뺀 국채만 보면 일본은행 비중은 2023년 9월 말 53.86%가 정점이고 2026년 3월 말 47.9%입니다[^国債等の保有者別内訳(令和8年3月末(速報))]. 절반을 넘긴 것은 국채만 셀 때 2022년 후반부터 2025년 후반까지 약 3년이고 단기 국채를 포함하면 한 번도 절반을 넘지 않았습니다. 해외 비중도 같은 문제가 있습니다. 국채만 보면 2026년 3월 말 8.1%로 2005년 통계 시작 이래 가장 높은 값이지만 단기 국채만 따로 보면 해외가 55%에서 66%를 들고 있습니다. 일본 국채는 국내에서 소화되니 안전하다는 말은 장기물에 한해 맞는 말이고 그 장기물의 국내 보유자 구성은 2013년 이후 은행과 보험에서 일본은행으로 옮겨 갔습니다. 재무성 자신이 채무관리리포트에서 보유자 다변화를 정책 과제로 명시하고 해외 투자자 설명회와 개인 투자자용 국채 광고를 하고 있습니다.

국내 소화라는 말이 안전을 뜻하지 않는다는 것은 일본 자신의 과거 세 번이 보여 줍니다. 1998년 12월의 운용부 쇼크는 앞에서 말했습니다. 2003년 6월 10년물 금리는 0.430%로 사상 최저를 기록한 뒤 9월까지 약 1.6%로 올랐습니다. 재무성 홍보지에 실린 핫토리의 사례 연구는 변동성이 오르자 은행의 위험 관리 지표가 커지고 그것을 맞추려 은행이 채권을 팔고 그래서 변동성이 다시 오르는 순환을 주된 설명으로 정리하면서도 은행 포트폴리오 전체로는 주가 상승이 채권 손실을 상쇄해 그 지표가 내려갔을 가능성을 함께 지적합니다[^VaRショックについて―2003年における金利急騰時のケース・スタディ―]. 2013년 4월 4일 일본은행이 양적 질적 금융완화를 결정한 다음 날 10년물은 0.315%로 사상 최저를 찍은 뒤 같은 날 0.6%대로 급반전했고 5월 23일 1.0%를 넘었습니다. 매입을 두 배로 늘리겠다는 결정이 금리를 내린 것이 아니라 한 달 반 동안 세 배로 올렸습니다. 세 번 모두 해외 매도가 아니었습니다. 자금운용부의 퇴장 예고와 은행의 위험 관리와 일본은행 정책 전환의 소화였고 전부 국내에서 가장 큰 매수자의 행동이 바뀐 것입니다. 2001년 4월 재정투융자 개혁으로 우편저금과 연금적립금의 예탁 의무와 자금운용부 자체가 폐지됐습니다. 국채를 강제로 인수하던 마지막 제도가 그때 사라졌고 그 빈 곳을 2013년부터 일본은행이 채웠습니다.

최근이라는 말의 창은 제가 정했습니다. 2024년 3월 19일 일본은행이 마이너스 금리를 해제한 날 재무성 기준 10년물 금리는 0.744% 30년물은 1.772% 40년물은 1.920%였고 30년물과 40년물의 이후 최저치가 그 10일 뒤에 있으므로 이날을 바닥으로 삼았습니다. 2026년 8월 31일 10년물은 2.943% 30년물은 4.092% 40년물은 4.094%였고 9월 2일 10년물이 3.006%로 1996년 9월 6일 이후 처음 3%를 넘었습니다. 2년물은 8월 31일 1.743%로 1995년 5월 이후 가장 높았고 20년물은 8월 18일 3.829%로 1996년 8월 이후 가장 높았으며 30년물과 40년물은 각각 1999년과 2007년 도입 이래 가장 높은 값입니다[^国債金利情報]. 2년 반 동안 2년물이 157bp 10년물이 220bp 30년물이 232bp 40년물이 217bp 올랐습니다. bp는 0.01%포인트입니다. 이 숫자들은 재무성이 매일 발표하는 종가라서 보도의 장중 최고치와는 조금 다릅니다.

같은 표를 해마다 나눠 보면 형태가 다릅니다. 2025년 한 해 동안 2년물은 57bp 10년물은 95bp 20년물은 106bp 30년물은 110bp 올랐습니다. 긴 쪽이 더 오르는 이른바 베어 스티프닝이고 30년물과 10년물의 차이는 2024년 3월 1.03%포인트에서 2025년 7월 22일 1.51%포인트까지 벌어졌습니다. 만기가 짧은 것부터 긴 것까지 금리를 늘어놓은 선을 커브라고 부릅니다. 베어 스티프닝은 그 커브의 긴 쪽이 더 가파르게 올라간 상태입니다. 2026년 들어 8월 말까지는 2년물이 58bp 10년물이 88bp 30년물이 74bp 40년물이 62bp 올랐습니다. 10년 이하가 더 올랐고 30년물과 10년물의 차이는 1.15%포인트로 좁혀졌으며 40년물과 30년물은 6월에 순서가 바뀌었습니다. 초장기 국채만 문제라는 서술은 2025년의 이야기이고 2026년의 표와는 맞지 않습니다. 입찰도 마찬가지입니다. 2025년 5월 20일 20년물 입찰은 응찰 배율 2.50배에 평균 낙찰가와 최저 낙찰가의 차이가 1엔 14전이었고 닛케이는 이것을 1987년 이후 가장 큰 차이라고 보도했습니다[^20年利付国債(第192回)の入札結果(令和7年5月20日入札)]. 응찰 배율은 응찰액을 발행 예정액으로 나눈 값이고 낮을수록 사겠다고 나선 쪽이 적었습니다. 평균 낙찰가와 최저 낙찰가의 차이는 응찰한 값이 얼마나 흩어졌는지를 보여 주고 그 차이가 벌어질수록 얼마에 사야 할지를 두고 응찰자들의 판단이 갈렸습니다. 2026년 9월 3일 30년물 입찰은 최고 낙찰 금리 4.100%에 응찰 배율 3.79배였습니다[^30年利付国債(第91回)の入札結果(令和8年9月3日入札)]. 2년 반 동안 응찰이 발행 예정액에 미달한 입찰은 한 번도 없었습니다. 값이 맞으면 사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일본은행이 분기마다 시장 참가자에게 묻는 채권시장 서베이의 기능 판단 지수는 2025년 5월 마이너스 44가 바닥이었고 2026년 8월 마이너스 12까지 올라왔습니다[^債券市場サーベイ<2026年8月調査>]. 시장이 무너졌다는 서술과 달리 지표는 2025년 봄 이후 계속 나아졌습니다. 거래는 되고 판이 얇아졌습니다.

그사이 일본은행은 정책금리를 2024년 7월 0.25%로 2025년 1월 0.5%로 2025년 12월 0.75%로 올렸고 2026년 6월 16일 7대 1로 1.0%로 올렸습니다. 성명은 원유 가격 상승과 기업 간 가격 전가와 기대 인플레이션 상승을 들며 물가가 2%를 넘어 오를 위험을 말했고 실질금리는 단기와 중기 구간을 중심으로 여전히 마이너스라고 밝혔습니다[^金融市場調節方針の変更について]. 실질금리는 금리에서 물가 상승분을 뺀 것이고 이것이 마이너스면 돈을 빌려준 쪽은 물가만큼도 받지 못합니다. 국채 매입은 2024년 7월 월 5조 7,000억 엔에서 분기마다 4,000억 엔씩 줄이기 시작해 2026년 4월부터는 분기마다 2,000억 엔씩 줄이고 있고 2026년 7월부터 9월까지는 월 2조 5,000억 엔입니다. 같은 날 일본은행은 2027년 4월 이후 월 2조 엔에서 축소를 멈추기로 결정했습니다. 그 결정도 7대 1이었고 반대한 다무라 위원은 장기금리 형성은 시장과 시장 참가자에게 맡겨야 한다며 2028년 3월까지 축소를 계속하자고 제안했습니다[^長期国債の買入れ計画について]. 보유 국채는 2024년 6월 말과 비교해 2027년 3월 17% 줄고 2030년 3월에는 36%에서 39% 준다는 것이 같은 문서의 전망입니다. 매입을 재개한 것이 아닙니다. 줄어드는 속도를 고정한 것입니다. 보유 국채의 평가손실은 2025년 3월 말 28조 6,000억 엔에서 2026년 3월 말 45조 4,000억 엔이 됐고 2025년도에는 당좌예금에 주는 이자가 국채에서 받는 이자를 넘어서는 역마진이 연간으로 처음 발생했다고 닛케이가 보도했습니다. 평가손실은 들고 있는 국채를 시장 값으로 다시 매겼을 때 나오는 손실이고 팔지 않으면 장부의 손익에 나타나지 않습니다. 일본은행은 만기까지 보유하므로 손익에 영향이 없다는 입장입니다.

정치 일정도 같은 창 안에 있습니다. 2024년 10월 27일 중의원 선거에서 자민당과 공명당은 215석으로 과반에 미달했고 2025년 7월 20일 참의원 선거에서 47석으로 양원 모두 과반을 잃었습니다. 9월 7일 이시바 총리가 물러나겠다고 밝혔고 10월 4일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 다카이치 사나에가 이겼으며 10월 10일 공명당이 연립정권에서 나갔고 10월 21일 다카이치가 일본유신회와 연립정권을 꾸려 총리가 됐습니다. 2026년 1월 19일 식료품 소비세를 2년간 0%로 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밝힌 뒤 1월 23일 중의원을 해산했고 2월 8일 선거에서 자민당은 단독 316석을 얻었습니다[^第51回衆議院議員総選挙]. 7월 21일 내각 회의에서 결정한 경제재정운영의 기본방침은 부제가 책임 있는 적극재정 원년이고 국가와 지방의 채무 잔액 대 국내총생산 비율을 꾸준히 낮추는 것을 핵심 목표로 두면서 기초재정수지는 그것을 확인하는 지표로 여러 해에 걸쳐 관리하고 한 해 단위로 흑자를 내는 시점을 기계적으로 맞추려 하지 않으며 일시적 악화도 허용한다고 명시했습니다[^経済財政運営と改革の基本方針2026 「責任ある積極財政」元年~日本の挑戦を起動する!~]. 기초재정수지는 국채의 이자와 상환을 뺀 나머지 수입과 지출의 차이이고 이것이 흑자면 새로 빚을 내지 않고도 그해 살림이 돌아갑니다. 기초재정수지 목표를 버린 것이 아니라 한 단계 낮춘 것입니다. 국채비는 예산에서 국채의 이자와 원금 상환에 쓰는 몫입니다. 8월 말 마감된 2027년도 예산 요구에서 국채비는 36조 6,000억 엔이고 그 계산에 쓴 가정 금리는 2026년도의 3.0%에서 3.8%로 올랐다고 지지통신이 보도했습니다.

지배적인 설명은 다카이치 정권의 적극재정이 초장기 금리를 밀어 올렸다는 것입니다. 재무성의 표를 그 설명과 비교해 보면 절반만 맞습니다. 다카이치가 총리가 된 2025년 10월 21일부터 2026년 8월 31일까지 10년물은 128bp 30년물은 95bp 40년물은 73bp 올랐습니다. 재정 우려가 금리에 반영되는 전형적인 형태는 초장기 구간의 프리미엄이 넓어지는 것인데 이 창에서는 10년물이 가장 많이 올랐습니다. 만기가 긴 국채를 오래 들고 있는 값으로 더 얹어 받는 몫이 그 프리미엄입니다. 2026년 2월 8일 자민당이 압승한 뒤 30년물 금리는 3주 동안 3.765%에서 3.342%로 40bp 넘게 내렸습니다. 재정 우려가 없다는 뜻이 아닙니다. 2025년 5월과 2026년 1월 초장기 금리가 급등한 두 번은 각각 참의원 선거를 앞둔 감세 논쟁과 소비세 0% 공약에 뒤이은 입찰 부진에 집중된 스파이크였고 그 뒤 되돌아왔습니다. 노무라종합연구소의 기우치는 2026년 연초 이후 10년물 상승분 0.9%포인트 가운데 기대 인플레이션의 기여가 0.3%포인트에 그치므로 나머지 실질금리 상승분이 정책금리 재평가와 재정 악화 우려를 반영한다고 분석했고 캐피털 이코노믹스의 시어링은 고빈도 지표로 추정한 2025년 재정적자가 국내총생산의 0.5%에 불과하고 감세 뒤에도 순채무 비율이 내려간다며 금리 상승은 리플레이션과 중립금리 재평가의 결과라고 반박했습니다[^Ignore the Truss comparisons – rising JGB yields reflect Japan's new normal]. 중립금리는 경기를 밀지도 누르지도 않는 금리 수준을 말합니다. 두 해석은 정면으로 부딪히고 어느 쪽도 결정적 증거를 내지 못했습니다. 관측 창을 어디로 잡느냐에 따라 답이 달라진다는 것이 이 논쟁의 실제 형태입니다. 2025년 1월 이후로 잡으면 30년물이 10년물보다 더 올라 초장기 서사가 살고 정권 교체 이후로 잡으면 10년물이 더 올라 그 서사가 약해집니다. 층을 나누면 조금 정리가 됩니다. 30년물과 40년물이 4%대라는 수준은 일본은행의 퇴장과 생명보험사의 수요 변화라는 구조가 만들었습니다. 2025년의 형태는 그 위에 생명보험 규제와 선거 전 감세 논쟁이 얹힌 것이고 2026년의 형태는 정책금리 경로와 엔저와 중동발 에너지 가격과 세계 장기금리 동반 상승이 커브 전체를 밀어 올린 것이며 급등의 시점은 선거와 입찰이 정했습니다. 재정 때문이라는 한 줄은 2025년 5월과 2026년 1월에 대해서는 맞고 2026년 3월 이후에 대해서는 절반만 맞습니다.

구조 쪽에서 생명보험사의 변화는 재무성 문서에 그대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2025년 11월 27일 국채투자자간담회에서 재무성은 초장기 구간에서 생명보험사의 규제 대응이 한 차례 끝나 수요가 줄었다고 밝히고 다음 해 발행 축소를 검토하겠다고 말했습니다[^国債投資家懇談会(第98回)議事要旨]. 규제는 경제가치 기준 지급여력 규제라고 부르는 것으로 보험사의 부채를 시장금리로 평가해 자본을 요구하는 새 기준이고 2026년 3월 결산기부터 적용됐습니다. 그 기준을 맞추려고 생명보험사들은 수년 동안 초장기 국채를 사서 부채와 만기를 맞췄고 그 작업이 끝나자 새로 살 이유가 줄었습니다. 닛케이는 이것을 생보 쇼크라고 불렀지만 그 기사가 말한 것도 사지 않는다는 것이지 판다는 것이 아니고 생명보험사의 초장기 국채 순매매 실측치는 오늘 조사에서 확보하지 못했습니다. 2025년 한 해 초장기 국채 매수액에서 해외 투자자가 처음으로 절반을 넘었다고 일본증권업협회 통계를 인용해 닛케이가 보도했습니다. 해외가 팔아서 오른 것이 아니라 해외가 사면서도 올랐습니다. 국내에서 늘 사 주던 보험사가 줄에서 빠지자 그 빈 곳을 값을 더 요구하는 해외 투자자가 채운 것입니다.

지난 이야기에서 미국 재무부가 국채 수요를 유지하려고 쓰는 여섯 가지 방법을 정리했습니다. 발행 구성을 단기화하는 것과 환매와 연준 보유 구성의 전환과 은행 자본규제 완화와 스테이블코인 준비금 규제와 재무부 현금의 레포 운용입니다. 같은 여섯 가지를 일본에 적용해 보면 실행된 것은 첫 번째뿐입니다. 재무성은 2025년 6월 연도 중에 초장기 국채 발행을 3조 2,000억 엔 줄였고 2026년도 발행계획에서 40년물과 30년물과 20년물을 각각 매달 1,000억 엔씩 더 줄여 초장기 세 종류의 시장 발행 합계를 2024년도 27조 엔에서 2026년도 17조 4,000억 엔으로 낮췄으며 대신 2년물을 33조 6,000억 엔으로 5년물을 30조 엔으로 늘렸습니다[^令和8年度国債発行計画概要]. 2027년 1월부터는 단기금리에 연동하는 변동금리 국채를 새로 발행하고 개인 투자자용 국채의 판매 대상을 학교법인과 아파트 관리조합 같은 비영리법인으로 넓힙니다. 두 번째 환매는 발행계획 각주에 필요에 따라 실시한다는 문구로만 남아 있고 2025년도에는 실행하지 않았으며 물가연동 국채의 환매는 월 2,000억 엔에서 1,500억 엔으로 줄였습니다. 환매는 발행자가 이미 발행한 국채를 만기 전에 시장에서 되사들이는 일입니다. 물가연동 국채는 원금이 물가에 따라 오르내리는 국채입니다. 세 번째 중앙은행의 보유 구성 전환은 제안조차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네 번째 자본규제 완화는 일본 은행의 국채 위험가중치가 이미 0%라서 완화할 것이 없고 실제 제약인 금리 위험 규제를 완화하자는 제안은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위험가중치는 은행이 어떤 자산을 들고 있을 때 그만큼 자본을 쌓게 하는 비율이고 0%면 국채를 아무리 들고 있어도 자본을 더 쌓지 않아도 됩니다. 레포는 채권을 담보로 맡기고 짧은 기간 돈을 빌리는 거래입니다. 여섯 번째 재무부 레포에 해당하는 것도 없습니다.

다섯 번째는 조금 다릅니다. 지난 '일본의 선불식 지불수단'에서 다룬 자금결제법이 2025년 6월 개정되면서 신탁형 스테이블코인의 준비자산을 전액 요구불예금으로 두던 규정이 발행액의 절반까지 국채와 정기예금으로 운용할 수 있도록 바뀌었습니다[^資金決済に関する法律の一部を改正する法律案の概要]. 준비자산은 발행한 코인을 언제든 돈으로 바꿔 주려고 따로 쌓는 자산입니다. 지니어스 액트가 준비금을 만기 93일 이하 국채로 고정해 수요를 만든 것과 방향은 같습니다. 크기가 다릅니다. 일본에서 엔 스테이블코인을 처음 발행한 JPYC의 누적 발행액은 2026년 4월 기준 21억 엔이고 그 회사 대표는 3년 안에 10조 엔을 유통시켜 일본은행의 수요를 대체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일본은행이 줄이는 국채와 새로 발행되는 국채를 합한 연간 공급이 70조 엔에서 80조 엔이라는 것이 운용사들의 추산이므로 지금 크기로는 세 자릿수 차이이고 준비자산은 단기물이라 4%대인 초장기 구간과는 무관합니다. 일본에만 있는 방법도 있습니다. 재무성은 국채투자자간담회와 국채시장특별참가자 회합에서 은행과 보험사와 운용사의 의견을 듣고 발행 구성을 정하며 2026년도부터는 6월에 연중 점검을 정례화했습니다. 2026년 7월 10일 가타야마 재무상이 공적연금 적립금을 운용하는 GPIF가 일본 금융자산에 더 투자하도록 방안을 찾겠다고 말했고 3일 뒤 기하라 관방장관이 기본 포트폴리오를 즉시 재검토할 계획은 없다고 봉합했습니다. GPIF는 2014년 국내 채권 비중을 60%에서 35%로 2020년 25%로 내렸고 연금법은 적립금을 오로지 피보험자의 이익을 위해 운용하라고 정합니다. 유초은행은 운용자산 223조 엔 가운데 국채 41조 엔을 들고 있고 사장이 올해도 사겠다며 절반을 국채로 돌리면 80조 엔에서 100조 엔이 기준이라고 말했습니다. 2001년에 폐지된 자금운용부의 예탁 의무를 자발적 형태로 되살리는 논의입니다.

그리고 일본에서 규칙이 한 일은 수요를 만든 것이 아니라 끝낸 것입니다. 생명보험사의 새 지급여력 규제는 국채 수요를 겨냥한 규칙이 아니라 보험사의 건전성을 겨냥한 규칙이었고 그 규칙이 초장기 국채의 가장 안정적인 국내 매수자를 줄에서 내보냈습니다. 재무성이 그 사실을 축소 근거로 스스로 기록했다는 것은 앞에서 말했습니다. 이것이 미국과 일본이 갈리는 곳입니다. 미국은 줄을 세우는 규칙을 여섯 가지 쓰고 있고 일본은 줄을 푸는 규칙을 한 가지 적용한 뒤 창구에서 내놓는 물량을 줄였습니다. 재무성이 고른 단기화는 초장기 구간의 급등을 막는 대가로 재정의 금리 민감도를 정책금리에 넘겨주는 거래입니다. 2년물과 5년물과 변동금리 국채의 이자는 발행 시점의 정책금리를 그대로 따르고 만기가 짧아 차환이 잦습니다. 차환은 만기가 된 국채를 갚으려고 새 국채를 발행하는 것이고 그때의 금리가 그대로 다음 이자가 됩니다. 재정제도등심의회는 2026년 6월 26일 건의에서 일본의 국채 잔액은 평균 만기가 길어 이자비용의 국내총생산 대비 비율이 아직 낮지만 금리 상승의 영향이 시간을 두고 이자비용에 꾸준히 반영되고 있으며 이미 금리 1% 상승 스트레스 시나리오 수준의 이자비용에 도달했다고 밝히고 각주에서 미국은 남은 만기가 5년 이하인 국채 비율이 높고 차환이 잦아 이자비용이 급증했다고 짚었습니다[^人口減少と不確実性の時代における国力の強化と財政運営]. 초장기 금리의 급등을 막는 일과 이자비용을 줄이는 일은 같은 도구로 동시에 할 수 없습니다. 일본은행의 6월 결정이 7대 1이었던 이유가 그 충돌입니다. 같은 날 정책금리를 올리면서 매입 축소를 멈춘 것은 긴축과 완화적 대차대조표를 한 손에 쥔 것이고 다무라 위원의 반대는 그 두 손 가운데 어느 쪽을 놓을지에 대한 표결이었습니다.

부채가 국내총생산의 두 배를 넘는 나라가 그것을 줄인 사례를 찾으면 1945년 이후의 미국과 영국이 나옵니다. 미국의 공공부채 비율은 1945년 66.2%에서 1974년 11.3%로 내려갔고 홀과 사전트는 그 54.9%포인트를 실질성장 21.6과 기초재정흑자 20.8과 인플레이션에 따른 채권자의 음의 실질수익 12.5로 나눕니다[^Interest Rate Risk and Other Determinants of Post-WWII U.S. Government Debt/GDP Dynamics]. 영국의 순부채는 1946년 252%에서 1972년 62%로 내려갔고 그 하락의 약 60%가 성장률이 실질금리를 넘어선 효과이고 40%가 기초흑자였습니다. 문제는 그 낮은 실질금리가 어디서 왔느냐입니다. 라인하트와 스브란시아는 1945년부터 1980년까지 실질금리가 마이너스였던 해의 국내부채에 그 마이너스 폭을 곱한 값을 청산 효과라고 부르고 미국은 연평균 국내총생산의 3.2% 영국은 3.6%였다고 계산했습니다. 실질금리가 마이너스였던 해는 미국이 전체의 25% 영국이 48%였고 그 억압이 없었다면 1955년 미국의 부채 비율은 66.2%가 아니라 141.4%였을 것이라는 것이 그들의 반사실입니다[^The Liquidation of Government Debt]. 자본통제와 예금금리 상한과 은행의 국채 보유 강제가 그 마이너스 실질금리를 만들었습니다. 채권자를 줄에 묶어 두고 인플레이션으로 값을 깎은 것입니다. 이렇게 규제로 채권자를 묶고 금리를 물가보다 낮게 누르는 것을 금융억압이라고 부릅니다. 국제통화기금은 2012년 세계경제전망에서 100년 동안의 부채 축소 사례를 검토한 뒤 그 통제의 묶음은 지금보다 훨씬 덜 통합된 금융 시스템을 요구하고 예상 밖의 인플레이션은 30년 동안 쌓은 물가 안정의 제도를 위협하므로 재현하기 어렵다고 결론지었습니다[^The Good, the Bad, and the Ugly: 100 Years of Dealing with Public Debt Overhangs]. 1990년대 캐나다와 스웨덴과 벨기에의 재정 건전화는 예외 없이 통화 절하와 금리 하락과 해외 수요 위에서 이루어졌고 같은 보고서는 통화 환경이 우호적으로 바뀌기 전까지 부채가 떨어진 나라가 없었다고 말합니다. 저성장과 고령화와 디플레이션 아래서 부채 비율을 지속해서 줄인 선진국은 오늘 조사에서 찾지 못했습니다.

재현할 수 없다는 그 방법이 일본에서는 이미 진행 중이라고 일본의 당국 문서가 말합니다. 일본은행의 6월 성명은 실질금리가 단기와 중기 구간을 중심으로 마이너스라고 밝혔습니다. 재정제도등심의회 건의는 채무 비율이 내려간 것이 저금리기에 발행한 국채가 남아 있는 가운데 명목성장률이 실효금리를 넘어선 덕분이고 그 명목성장의 상당 부분이 물가 상승분이라고 밝힌 뒤 각주에서 실질성장 없는 물가 상승으로 채무 비율이 내려가는 것은 가계에서 정부로 실질소득을 옮기는 것이라고 명시했습니다[^人口減少と不確実性の時代における国力の強化と財政運営]. 1945년의 미국이 한 일을 재무성의 자문기구가 2026년의 일본에 대해 같은 문장으로 쓰고 있습니다. 다른 것은 전제입니다. 전후의 금융억압은 자본통제로 저축이 나라 안에 갇혀 있었기 때문에 작동했습니다. 지금 일본 국채의 해외 보유 비중은 사상 최고이고 2025년 초장기 국채 매수의 절반이 해외였습니다. 갇혀 있지 않은 채권자는 마이너스 실질금리를 받아 주는 대신 값을 더 요구하고 그 요구가 4%대 초장기 금리입니다. 억압이 스스로를 무너뜨리는 경로가 엔저입니다. 마이너스 실질금리는 엔을 약하게 만들고 엔저는 수입물가로 인플레이션을 밀어 올려 일본은행의 추가 인상을 앞당깁니다. 2026년 7월 23일 달러 엔 환율이 163.99엔으로 39년 8개월 만의 엔저를 기록했고 7월 31일 일본과 미국이 1998년 6월 이후 28년 만에 협조 개입으로 엔을 사들였다고 국제통화연구소가 정리했습니다[^28年ぶりの日米円買い協調介入の背景と影響 ~過去の協調介入から考える円安トレンド転換の可能性~]. 재무성의 개입 실적 발표는 9월 30일이라 오늘 이야기를 쓰는 시점에는 보도만 있습니다.

일본판 트러스 모먼트라는 말이 2026년 1월 20일 40년물이 장중 4%를 넘은 날 시장 해설에 등장했고 같은 주에 캐피털 이코노믹스와 스테이트 스트리트가 시스템 위기가 아니라고 반박했습니다. 2022년 9월의 영국과 무엇이 다른지는 영란은행 자료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2022년 9월 23일 트러스 정부가 예산책임청의 심사 없이 연 450억 파운드 규모의 감세안을 발표하자 30년물 길트 금리가 3영업일 동안 130bp 올랐고 영란은행은 이것을 과거 어떤 비교 구간보다 세 배 큰 움직임이라고 기록했습니다[^Financial stability buy/sell tools: a gilt market case study]. 길트는 영국 국채를 부르는 이름입니다. 9월 28일 영란은행은 길트 시장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하는 것이 금융안정에 중대한 위험이라며 필요한 규모로 장기 길트를 사겠다고 선언했고[^Bank of England announces gilt market operation] 10월 14일까지 실제로 산 것은 193억 파운드였으며 그것을 2022년 11월 29일부터 2023년 1월 12일까지 12거래일에 걸쳐 전부 되팔았습니다[^Financial stability buy/sell tools: a gilt market case study]. 핀터와 시리와르다네와 워커가 거래 단위 자료로 분석한 결과 가격 하락의 절반은 연금의 부채연계투자 펀드가 담보를 마련하려고 강제로 판 것이었고 나머지 절반이 재정 뉴스였습니다[^What caused the LDI crisis?]. 부채연계투자 펀드는 연금이 나중에 줄 돈에 맞춰 국채와 파생거래를 함께 들고 있는 것이고 국채 값이 내려가면 거래 상대가 담보를 더 넣으라고 요구합니다. 그 요구가 마진콜이고 응하지 못하면 들고 있는 국채를 팔아야 합니다. 영국 길트의 평균 만기는 15년에서 16년으로 선진국에서 가장 길었습니다. 만기가 길면 안전하다는 통설의 반례이고 문제는 국채의 만기가 아니라 그것을 든 사람의 자금 조달 만기였습니다. 일본에는 그런 강제 매도자가 뚜렷하지 않습니다. 생명보험사의 새 규제는 마진콜이 아니고 2년 반 동안 미달한 입찰이 없었으며 일본은행은 금리가 급등하면 매입을 늘린다는 조항을 계획에 두고도 발동한 기록을 오늘 조사에서 찾지 못했습니다. 그것이 안심이 되지 않는 이유는 영국의 문제가 강제로 파는 사람이 있었다는 것이고 일본의 문제는 늘 사던 사람이 없어졌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앞의 것은 중앙은행이 2주 동안 사 주면 끝나고 뒤의 것은 그렇게 끝나지 않습니다.

1999년 2월 12일 일본은행은 국채 매입을 늘리지 않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때 일본은행은 자금운용부가 나간 줄의 뒤에 서지 않기로 한 쪽이었고 그 대신 정책금리를 0으로 내렸습니다. 2026년 6월 16일 일본은행은 정책금리를 1.0%로 올리면서 자기가 줄에서 나가는 속도를 2027년 4월 이후 월 2조 엔에서 멈추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때는 줄 뒤에 서지 않을 여지가 있었고 지금은 자기 자신이 나가는 쪽입니다. 그 결정에 반대한 다무라 위원의 문장과 재정제도등심의회 건의의 각주 37을 나란히 두면 지금 일본이 고를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가 나옵니다. 한쪽은 장기금리를 시장에 맡기라고 말하고 다른 쪽은 실질성장 없는 물가 상승으로 채무 비율을 낮추는 것이 가계에서 정부로의 소득 이전이라고 말합니다. 둘 다 재무성과 일본은행이 낸 문서에 있는 문장이고 서로 양립하지 않습니다. 금리 상승을 막아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여기서 답하지 않겠습니다. 지난 이야기에서 줄을 세우는 규칙을 만드는 쪽은 그 줄이 창구까지 이어져 있는지 가끔 확인하는 편이 안전하다고 말했습니다. 줄에서 가장 큰 손이 빠져나가는 쪽에게 남은 일은 창구에서 내놓는 물량을 줄이는 것이었고 그것이 지금까지 일본이 한 전부입니다. 그다음 손이 누구인지는 2027년 4월 이후 월 2조 엔이라는 숫자가 유지되는 동안 정해질 것이고 그 손이 요구하는 값이 얼마인지는 매달 재무성의 입찰 결과에 나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