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로가 발행한 은행권을 화폐로 만든 것은 국가에 대한 신용이 아니라 그 종이를 세금으로 받아 준 규칙이었습니다. 오늘 미국이 국채 수요를 만드는 여섯 가지 방법도 같은 종류의 규칙입니다. 1716년의 그 규칙이 어디서 무너졌는지 살펴보겠습니다.

줄

1716년 5월 2일 파리에 은행이 문을 엽니다. 자본금은 주식 1,200주를 주당 5,000리브르에 팔아 모으기로 했고 액수로는 600만 리브르였습니다. 그런데 그 주식을 사는 사람이 현금을 낼 필요는 거의 없었습니다. 납입금 대부분을 빌레 데타라는 국채 증서로 받았고 그것도 액면가로 계산해 주었기 때문입니다. 그 국채의 당시 시장가는 액면의 40% 수준이었습니다. 액면은 왕이 갚기로 한 금액이고 시장가는 그 종이를 지금 넘겨받겠다는 사람이 내는 값입니다. 갚을 날짜가 정해져 있지 않거나 제때 갚지 못할 것 같으면 사려는 사람은 액면보다 낮은 값만 냅니다. 40%는 그 종이를 사려는 사람들이 왕의 상환 능력에 매긴 값입니다. 게다가 주식 대금은 4분의 1만 먼저 내면 됐습니다. 두 조건을 곱하면 현금 690리브르로 5,000리브르짜리 주식 한 주를 살 수 있었습니다[^Government Equity and Money: John Law's System in 1720 France]. 국채를 얼마나 받고 현금을 얼마나 받았는지는 자료마다 다르게 기록되어 있어서 정확한 비율까지는 말하기 어렵습니다. 확실한 것은 이 은행이 문을 연 날 금고에 있던 것이 금은이 아니라 왕이 갚기로 한 종이였다는 사실입니다. 은행 이름은 방크 제네랄이고 세운 사람은 스코틀랜드에서 살인죄로 사형을 선고받고 탈옥한 도박꾼 존 로입니다.

지난 '창구'에서 나치 독일의 메포어음이 5년 동안 화폐 노릇을 한 이유가 유령회사에 대한 믿음도 국가에 대한 신뢰도 아니라 라이히스방크의 재할인 창구가 열려 있었다는 사실 하나였다고 말했습니다. 이번에 다루려는 것은 그 창구 앞에 사람을 줄 세운 규칙입니다. 줄은 어떤 증서를 받아 가려는 사람들이고 그 줄이 서는 자리는 증서를 내주는 창구 앞입니다. 줄을 선 사람은 현금이나 물건을 내주고 그 종이를 가져가는 쪽이라서 줄의 길이가 그 증서의 수요입니다. 줄을 세운다는 것은 발행자가 그 사람들을 규칙으로 만들어 낸다는 뜻입니다. 세금을 그 종이로만 받겠다고 정하면 세금을 내야 하는 사람 전부가 그 종이를 구하러 오고 준비금을 특정 자산으로만 쌓으라고 정하면 그 자산을 사야 하는 회사가 생깁니다. 창구가 열려 있어도 아무도 줄을 서지 않으면 그 증서는 화폐가 되지 않습니다. 반대로 줄을 세우는 규칙이 충분히 강하면 창구가 실제로 지급할 능력이 있는지는 한동안 아무도 확인하지 않습니다. 존 로의 시스템은 그 규칙을 4년 만에 극단까지 밀어붙였다가 무너진 사례이고 그 잔해에서 이후 300년 동안의 중앙은행 설계가 무엇을 하지 않기로 했는지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오늘 미국 재무부가 국채 수요를 유지하려고 쓰는 여섯 가지 방법도 결국 줄을 세우는 규칙입니다. 스테이블코인 준비금 규제는 그중 하나입니다.

1715년 9월 1일 루이 14세가 72년 재위를 마치고 죽습니다. 남긴 부채는 28억 리브르였고 그해 프랑스의 산출 추정치와 거의 같은 액수였습니다. 산출은 그해 프랑스에서 생산된 것을 전부 값으로 친 추정치이고 오늘로 치면 국내총생산입니다. 나라가 1년 동안 만들어 낸 것을 남김없이 빚 갚는 데 넣어야 겨우 없앨 수 있는 크기였다는 뜻입니다. 세입은 1억 6,560만 리브르 세출은 1억 1,800만 리브르라 기초수지는 4,800만 리브르 흑자였습니다. 그런데 부채 이자만 8,650만 리브르였습니다. 흑자를 전부 이자에 써도 절반이 모자랍니다. 프랑수아 벨드는 시카고 연방준비은행 워킹페이퍼에서 이 상태를 이자가 기초수지 흑자의 두세 배였다고 요약합니다[^Government Equity and Money: John Law's System in 1720 France]. 같은 해 영국의 기초수지 흑자는 250만 파운드 부채비용은 320만 파운드였고 부채 총액은 산출의 3분의 2 수준이었습니다. 두 나라 모두 전쟁으로 빚을 졌지만 프랑스 쪽이 훨씬 무거웠습니다.

누아유 공작이 이끈 재무 행정은 1715년 12월 23일과 1718년 5월 31일 두 차례 화폐개혁을 단행해 계산단위의 은 함량 기준으로 화폐가치를 28에서 60까지 올렸습니다. 명목 채무를 줄이는 동시에 화폐 보유자에게 1715년 20% 1718년 33%의 주조세를 물리는 조치였습니다. 여기에 1715년 10월과 1716년 1월과 1716년 4월과 1717년 6월 네 차례에 걸쳐 부분 디폴트를 실행했고 임시 법정을 세워 전쟁 기간에 이득을 본 사람들에게 특별세를 물렸고 그 세금 대부분을 국채로 받았습니다. 결과는 성공적이어서 총부채가 20억 리브르로 내려왔고 9억을 넘던 유동부채는 2억으로 줄었습니다. 남은 유동부채는 이자 4%에 상환일도 담보도 없는 무기명 증서 빌레 데타로 바뀌었고 발행 직후부터 액면 대비 37% 할인된 값에 거래됐습니다. 벨드는 섭정의 내각이 프랑스 공공재정의 가장 전통적인 방법을 꽤 성공적으로 사용했고 그들 자신은 그 방법을 자랑스러워하지 않았다고 말합니다[^Government Equity and Money: John Law's System in 1720 France]. 섭정 정부가 쓴 방법은 화폐 가치 조작과 감춘 디폴트와 조작된 법정이었습니다. 존 로가 팔러 온 것은 지폐라는 마법이 아니라 이 세 가지 말고 다른 방법이었습니다.

나중에 존 로의 회사가 국채 보유자에게 상환을 강제할 때 그것은 왕이 힘으로 빼앗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프랑스의 영구연금과 매관에는 처음부터 채무자 콜옵션이 부여되어 있었습니다. 콜옵션은 정해진 값에 사거나 갚을 수 있는 권리를 말하고 의무가 아니라서 그 권리를 가진 쪽만 행사 여부를 정합니다. 교회의 이자 금지 교리를 피하려고 만든 구조라 채권자는 원금 상환을 요구할 수 없고 채무자는 언제든 원금을 갚아 채무를 소멸시킬 수 있었습니다. 벨드는 이 강제 매수가 강제적이었지만 완벽하게 합법이었다고 말합니다[^Government Equity and Money: John Law's System in 1720 France]. 그러니까 1719년에 일어난 일은 계약서에 처음부터 적혀 있던 조항을 행사한 것입니다. 이 사실을 알아야 뒤에 나오는 국채와 주식의 교환이 왜 그렇게 빨리 진행됐는지 이해할 수 있습니다.

방크 제네랄의 은행권이 화폐 노릇을 하게 만든 것은 존 로의 평판이 아니었습니다. 은행이 문을 연 지 다섯 달 만인 1716년 10월 7일 칙령이 각지의 징세관에게 은행권을 요구 즉시 현금으로 바꿔 주도록 명령합니다. 1717년 4월 10일에는 개인이 세금을 낼 때 은행권을 법정화폐로 인정했고 1717년 9월 12일에는 정부 회계관과 출납관이 장부와 영수와 지급을 은행권으로 처리하도록 명령했습니다. 벨드는 이 조치가 프랑스 전역 수백 명의 징세관과 세무 회계관을 방크 제네랄의 무보수 지점으로 만들었고 은행권을 세금에 대해 법정화폐에 가깝게 만들었다고 말합니다[^Government Equity and Money: John Law's System in 1720 France]. 전편에서 다룬 메포어음의 구조가 여기 220년 앞선 형태로 있습니다. 어떤 증서를 화폐로 만드는 것은 발행자의 신용이 아니라 국가가 그것을 세금으로 받는다는 사실입니다. 세금은 모두가 반드시 내야 하는 것이고 그래서 세금으로 받아 주는 증서에는 언제나 줄이 섭니다. 존 로가 처음에 한 일은 지폐를 찍은 것이 아니라 그 줄을 만든 것입니다.

여기에 초기 은행권은 리브르가 아니라 에퀴 은화의 매수로 표시됐습니다. 오늘의 중량과 순도의 100에퀴를 소지인에게 즉시 지급하겠다는 문구였습니다. 그래서 1718년 6월 정부가 은화를 더 가볍게 다시 찍고 옛 에퀴를 폐화했을 때 은화를 들고 있던 사람은 손해를 봤지만 은행권을 들고 있던 사람은 500리브르짜리 종이가 600리브르가 되는 이익을 봤습니다. 왕의 화폐 조작에서 도망칠 유일한 통로가 존 로의 지폐였던 시기가 실제로 있었다는 뜻입니다. 사람들이 방크 제네랄 앞에 줄을 선 이유는 존 로를 믿어서가 아니라 왕을 믿지 않아서였습니다. 이 보호 장치는 1719년 1월 5일부터 사라집니다. 새 은행권은 에퀴가 아니라 계산단위인 리브르 표시로 발행됐고 1719년 4월 칙령이 옛 에퀴 표시 은행권을 전부 리브르 표시로 전환하도록 명령했습니다. 은행권이 일정량의 은에 대한 청구권이기를 그만두고 일정 리브르가 된 날입니다. 나중에 무너지는 순서를 되짚으면 기술적인 출발점은 이 전환입니다.

1718년 12월 4일 왕이 방크 제네랄을 국유화합니다. 그때 은행권 유통 잔액은 3,950만 리브르였고 금은화 준비율은 50% 정도였고 은행권은 액면대로 유통되고 있었습니다. 왕은 액면 5,000리브르에 전 주주를 현금으로 사들였습니다. 1716년 5월에 현금 690리브르를 내고 주식 한 주를 산 사람이 배당 615리브르를 이미 받은 뒤에 5,000리브르를 받았으므로 18개월 연환산 수익률이 64%입니다. 벨드는 이 국유화의 결과를 두 가지로 정리합니다. 왕에게 처음으로 작동하는 인쇄기가 생긴 것 그리고 존 로가 세운 회사에 일찍 투자하면 얼마를 벌 수 있는지 모두가 알게 된 것입니다[^Government Equity and Money: John Law's System in 1720 France]. 이 두 문장이 이후 2년을 결정합니다. 왕은 이제 필요한 만큼 발행할 수 있고 사람들은 존 로의 다음 회사에 줄을 설 이유가 생겼습니다.

존 로의 두 번째 회사는 1717년 8월에 설립을 승인받은 서방회사입니다. 사업 구역인 루이지애나는 오늘날 미국 본토 48개 주 면적의 41%에 해당하는 미시시피 유역이고 1717년 시점의 식민 인구는 약 500명이었습니다. 대중 서술은 이 대비를 사기의 증거로 다룹니다. 실제 순서는 조금 다릅니다. 회사가 처음 인수한 것은 식민지가 아니라 세금이었습니다. 1718년 8월 1일 회사는 담배 전매권을 연 402만 리브르에 사들입니다. 이유가 명확합니다. 왕이 회사에 지급하기로 한 이자 400만 리브르를 제때 내지 못하자 존 로가 그와 거의 같은 금액의 징세권을 직접 사서 상계한 것입니다. 벨드는 존 로가 그 징세청부를 직접 운영함으로써 자기 이자를 확실히 받았다고 말합니다[^Government Equity and Money: John Law's System in 1720 France]. 야심이 아니라 채권 회수입니다. 나중에 이 회사가 프랑스라는 국가를 통째로 삼킨 것처럼 보이는 과정은 그 첫 단추에서 시작합니다.

그다음 1년은 인수의 연속입니다. 1718년 12월 세네갈 회사를 현금 160만 리브르에 사고 1719년 5월 인도회사와 중국회사를 합병하고 1719년 7월 아프리카 회사의 특권을 사들입니다. 1719년 7월 25일에는 왕립 조폐국의 9년 운영권을 일시금 5,000만 리브르에 얻습니다. 그 대금은 현금이 아니라 국채 소각으로 냈습니다. 1719년 8월 27일에는 프랑스 간접세 징수를 통째로 맡는 일반징세청부를 9년 계약으로 가져갑니다. 임차료는 연 5,200만 리브르로 종전 계약의 4,850만보다 높았습니다. 8월 말에는 세입의 약 55%를 담당하던 직접세 징수관들을 매수했고 1720년 2월에는 방크 루아얄까지 흡수합니다. 1720년 초의 인도회사는 프랑스 세금의 약 90%를 걷고 조폐국을 운영하고 해외무역을 독점하고 유일한 법정화폐를 발행하는 법인이었습니다. 그리고 1720년 1월 5일 그 회사의 최고경영자가 프랑스의 재무장관이 됩니다.

주식 발행은 네 차례였고 구조가 특이합니다. 1717년 6월부터 1718년 12월까지 500리브르짜리 20만 주를 빌레 데타 액면 납입으로 팔았고 1719년 6월에 550리브르짜리 5만 주를 1719년 7월에 1,000리브르짜리 5만 주를 1719년 9월과 10월에 5,000리브르짜리 30만 주를 팔았습니다. 2차와 3차에는 조건이 걸려 있었습니다. 6월 발행분을 사려면 원주 네 주를 이미 가지고 있어야 했고 7월 발행분을 사려면 원주 네 주에 6월 발행분 한 주가 더 있어야 했습니다. 원주 유통시장이 과열된 이유는 투기 심리보다 이 설계입니다. 새 주식을 배정받을 자격을 사려고 사람들이 옛 주식을 샀습니다. 그리고 이 증서들은 정확히 말하면 주식이 아니라 옵션이었습니다. 계약금을 내면 인수증을 받고 이후 10회에서 20회에 걸쳐 월납을 합니다. 한 번이라도 거르면 주식을 잃고 경우에 따라 이미 낸 돈까지 잃었습니다. 벨드가 인용한 존 코크런의 2001년 분석이 이 증서를 콜옵션으로 다룹니다[^Government Equity and Money: John Law's System in 1720 France]. 뒤에서 시스템이 무너지는 원리가 여기 있습니다. 국채 보유자는 상환을 받을 의무는 있었지만 그 대가를 주식으로 받을 의무는 없었습니다.

1719년 8월 27일 회사가 왕에게 12억 리브르를 3%에 영구 대출하겠다고 제안합니다. 9월 17일과 10월 10일에 그 금액을 16억으로 늘립니다. 왕이 회사에 지급할 이자는 회사가 낼 징세청부 임차료에서 상계하는 구조였습니다. 처음 계획은 3% 채권 12억어치를 파는 것이었지만 존 로는 도중에 그것을 지분으로 바꿉니다. 9월 11일 주가가 사상 최고인 5,400리브르에 이르자 그날 회사가 주당 5,000리브르에 5억을 모으겠다고 신청했고 성공하자 9월 26일과 10월 2일에 같은 규모와 같은 가격으로 두 번 더 신청했습니다. 합계 15억 리브르입니다. 그리고 주식 대금은 현금이 아니라 국채 보유자가 국고에서 받은 상환 어음으로만 받았습니다. 벨드는 이 작업을 평균 4.5%의 이자를 지급하던 국채를 회사 지분과 맞바꾼 거대한 스왑이었다고 요약합니다[^Government Equity and Money: John Law's System in 1720 France]. 실제로 정리된 채무는 1720년 7월까지 원금 기준 20억 리브르 규모입니다. 다만 그 표의 매관 항목 가운데 1720년 9월까지 실제로 정리된 것은 1억 6,000만뿐이고 일부 항목은 중복 계상 가능성이 있어서 그 이상으로 정밀하게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여기서 나라의 재정 구조가 바뀝니다. 시스템 이전에는 징세관이 세금을 걷어 정해진 액수를 국가에 넘기고 국가가 채권자에게 매년 약 9,000만 리브르를 지급한 다음 남는 것으로 지출했습니다. 시스템 이후에는 회사가 프랑스 세금의 대부분을 걷고 국가에 고정 명목액을 넘기고 나머지를 주주에게 배당으로 나눕니다. 그 주주가 곧 옛 국채 보유자입니다. 채권자가 고정 이자를 받는 사람에서 국가 세수의 변동분을 받는 지분 보유자로 바뀐 것입니다. 벨드가 이것을 정부 지분이라고 부릅니다. 사람들이 이 사건을 국채 소각이라고 부르는 경우가 많은데 정확하지 않습니다. 소각된 것은 국채가 아니라 나중에 폐화된 은행권이고 국채는 소각된 것이 아니라 지분과 교환된 것입니다. 그리고 그 지분은 회사가 무너지자 다시 국채로 돌아갑니다. 벨드가 계산한 1724년의 부채 부담은 1717년과 대체로 같습니다[^Government Equity and Money: John Law's System in 1720 France]. 그의 초록 마지막 문장은 시스템이 놀랍게도 이전과 같은 수준의 공공부채를 다시 만들어 내면서 끝났다는 것입니다.

국채를 주식으로 바꾸는 거래가 성립하려면 회사 주식의 주가수익비율이 국채의 주가수익비율보다 높아야 했습니다. 국채 쪽 비율은 22 정도였습니다. 주가가 떨어져 이 관계가 뒤집히면 국채 보유자는 월납을 그만두고 옵션을 버리면 그만이고 그러면 전환 전체가 풀립니다. 그래서 존 로는 주가를 떠받쳐야 했습니다. 1719년 가을부터 회사가 자기 주식을 담보로 주당 2,500리브르씩 저리 대출을 해 줍니다. 10월 3일 주가가 4,100까지 밀리자 회사가 4,500에 무제한 매입하겠다고 선언했고 이틀 만에 주가가 4,500 위로 올라갔습니다. 벨드가 인용한 뒤토는 회사가 그때 실제로는 한 주도 사지 않았다고 기록했습니다[^Government Equity and Money: John Law's System in 1720 France]. 선언만으로 충분했습니다. 12월 2일 주가가 9,525리브르로 최고점에 이릅니다. 12월 30일부터는 회사가 매일 가격을 게시하고 사고파는 창구를 공식적으로 운영합니다. 2월 중순까지 그 창구에서 회사가 사들인 주식이 8억 리브르어치이고 시가총액의 17% 규모입니다. 그 금액이 그대로 통화량 증가였습니다.

1720년 2월 22일 은행을 회사에 합병하면서 은행권 발행에 한도를 부여하고 왕에 대한 대출을 금지하고 가격 지지를 공식 중단합니다. 주가가 9,425에서 8,000으로 즉시 떨어집니다. 존 로는 3일 만에 이 결정을 뒤집습니다. 3월 5일 주가를 9,000리브르에 고정하는 창구를 다시 열고 아직 행사하지 않은 인수증을 2대 3 비율로 전부 주식으로 강제 전환합니다. 3월부터 5월 말까지 두 달 반 동안 회사가 자사주 27%를 사들이는 데 쓴 돈이 12억 1,350만 리브르입니다. 은행권 유통 잔액은 1718년 12월 3,950만 리브르에서 1719년 7월 4억으로 1720년 1월 10억으로 늘어납니다. 시스템 전체 기간의 총 발행액은 28억 2,230만 리브르이고 당대 추정 프랑스 금은화 총량은 약 12억 리브르입니다. 지폐가 나라 안의 금은 총량을 두 배 넘게 앞질렀습니다. 불과 석 달 전인 1719년 12월 1일 칙령은 승인 발행액 6억 4,000만 리브르가 상업의 유통과 모든 거래에 충분하다고 적고 있었습니다.

통설은 존 로가 지폐를 마구 찍어서 인플레이션이 나고 거품이 터졌다고 말합니다. 벨드는 순서를 반대로 기록합니다. 그는 주가 상승 자체가 은밀한 그리고 나중에는 공공연한 가격 지지의 결과였다고 분석하고 결국 대규모 가격 조작 또는 가격 고정이 1720년의 발권 확대를 불러왔다고 결론짓습니다[^Government Equity and Money: John Law's System in 1720 France]. 주가를 9,000리브르에 고정하겠다는 결정이 먼저였고 그 약속을 지키려면 시장에 나오는 주식을 계속 사들여야 했고 살 돈은 지폐밖에 없었습니다. 약속 하나가 발권을 무제한으로 요구한 것입니다. 물가는 어땠을까요. 벨드가 인용한 해밀턴 지수 기준으로 1720년 1월 한 달 상승률이 25%였고 1월부터 8월 정점까지가 19%였습니다[^Government Equity and Money: John Law's System in 1720 France]. 같은 기간 통화량은 2.6배가 됐습니다. 초인플레이션이라고 부르면 자료와 맞지 않습니다. 다만 그 지수는 파리 병원의 구매 기록을 기반으로 만든 것이고 같은 논문이 인용한 포르의 1977년 연구는 1720년 봄 지방 상품시장의 물가 급등을 광범위하게 보고합니다. 지수와 체감이 서로 다른 답을 내는 사례입니다.

주가를 떠받치는 동안 금은화를 몰아내는 규칙이 계속 추가됩니다. 1718년 12월 27일 600리브르 초과 거래를 금화나 은행권으로만 하도록 제한했고 1719년 12월 1일 회사와의 거래와 세금 수납을 은행권으로만 하도록 했고 1719년 12월 21일에는 은화 10리브르 금화 300리브르를 넘는 지급을 금지하고 현금으로 세금을 내면 5%를 더 물렸습니다. 1720년 1월 28일 은행권에 전국 법정화폐 지위를 부여했고 2월 27일 개인의 금은화 보유를 500리브르로 제한했고 3월 11일부터는 금은 보유 자체를 단계적으로 불법화했습니다. 4월 1일에는 계약서의 금은 지급 조항을 무효로 만들었습니다. 화폐를 바꾸는 일이 결국 경찰 업무가 됐습니다. 존 로 본인은 1723년 회고에서 권위를 사용해 사람들이 자신의 복리에 기여하도록 유도할 필요가 있었다고 말합니다[^Government Equity and Money: John Law's System in 1720 France]. 세금으로 시작한 줄 세우기가 형법으로 끝난 것입니다.

무엇이 이 시스템을 무너뜨렸는지에 대한 견해는 서로 다릅니다. 가장 널리 알려진 설명 둘은 투기 광기와 지폐 남발입니다. 벨드는 둘 다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1719년 말 이후의 시장가는 존 로의 정책가일 뿐이라 광기를 측정할 시장이 애초에 없었다는 것이고 발권은 원인이 아니라 가격 고정의 결과라는 것입니다. 대신 그가 제시하는 답은 존 로가 왜 주가를 그렇게 높이 못박으려 했는지 이해하기 더 어렵다는 문장과 그가 지속 가능한 주가를 오판했을 가능성이 더 크다는 문장입니다[^Government Equity and Money: John Law's System in 1720 France]. 벨드가 함께 정리한 견해도 있습니다. 뤼티는 1959년에 초기 내부자들이 차익을 실현할 때까지 가격을 유지해야 했다는 설명을 제시했고 벨드는 그것을 의심스럽다고 평가합니다. 오드레르는 1989년에 루이지애나의 실적 부진을 원인으로 제시했지만 그 부진이 알려진 것은 1720년 하반기라고 자신이 함께 적었습니다. 정량적으로는 판단이 가능합니다. 벨드가 수정 추정한 회사의 연 수익 7,550만 리브르에 주가수익비율 15를 적용하면 주당 적정가가 1,875리브르이고 정점 9,500리브르의 5분의 1입니다. 존 로에게 가장 관대한 가정을 적용해도 2배 고평가입니다. 그래도 어느 견해를 채택할지는 여전히 열려 있고 이 글에서 한쪽으로 정리하지 않겠습니다.

분명한 것 하나는 존 로의 시스템이 사기가 아니었다는 사실입니다. 벨드는 세 가지 근거를 제시합니다. 시스템에 디폴트가 있었다 해도 그 규모는 5%에서 10% 수준이고 앙시앵 레짐의 기준으로는 온건하다는 것 회사가 빈 껍데기가 아니라 실제로 배 열두 척을 운용하고 뉴올리언스를 건설했다는 것 그리고 존 로가 자기 재산 최소 950만 리브르를 프랑스 부동산에 투자했다는 것입니다[^Government Equity and Money: John Law's System in 1720 France]. 마지막 항목이 특히 중요합니다. 도망칠 계획이 있는 사람은 도망칠 나라의 부동산을 사지 않습니다. 1720년의 세 거품을 무차별적 광기가 아니라 대서양 무역과 보험 혁신에 대한 기대로 해석하는 연구도 있습니다[^New Evidence on the First Financial Bubble]. 제임스 뷰컨은 1995년 글에서 존 로의 명성이 시대마다 다르게 재구성되어 온 과정을 다룹니다[^Mississippi Dreaming: On the Fame of John Law].

1720년 5월 21일 칙령은 존 로가 직접 초안을 작성했습니다. 주식과 은행권을 거의 같은 비율로 동시에 평가절하하는 내용입니다. 주식은 9,000에서 5,000리브르로 은행권은 12월 1일까지 액면의 절반으로 월 단위 단계를 밟아 내려가도록 했습니다. 칙령 전문의 논리는 3월 5일의 금은화 평가절하와 3월 11일의 금은 폐화 계획이 모든 상품과 자산의 가격을 끌어내릴 수밖에 없고 그렇다면 시스템의 부채도 같은 폭으로 내려야 한다는 것입니다[^Government Equity and Money: John Law's System in 1720 France]. 주식이 법정화폐가 된 은행권으로 바뀌어 가고 있다는 것도 존 로가 파악하고 있었습니다. 주식과 은행권을 같은 비율로 함께 내리면 둘 사이의 교환 비율은 그대로 두면서 명목 금액만 줄일 수 있습니다. 주가를 9,000에 고정하려고 지폐를 계속 찍는 대신 미리 정한 일정으로 함께 내리는 쪽을 고른 것입니다. 소액 보유자의 부담을 덜려고 1720년 남은 기간에는 세금 납부에 한해 은행권을 원래 액면대로 받도록 했습니다. 칙령대로라면 은행권의 값은 12월 1일까지 절반으로 내려가는데 세금은 원래 액면으로 받았으므로 국고가 걷는 세금의 실질 가치는 그만큼 줄어듭니다. 평가절하의 부담을 은행권을 가진 사람이 아니라 왕이 지는 구조이고 은행권이 액면을 지키는 자리는 세금 창구 하나만 남았습니다. 불과 두 달 반 전인 3월 5일에 존 로는 은행권이 어떤 변동에도 종속되지 않는 형태의 화폐라고 서약했습니다. 그 서약을 자기 손으로 깬 것입니다. 5월 27일 여론에 밀려 칙령을 철회하고 5월 28일 존 로가 해임되어 가택연금됐다가 며칠 만에 풀려나 6월 1일 복귀합니다. 벨드는 섭정이 존 로 말고는 아무도 시스템을 구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을 것이라고 말합니다[^Government Equity and Money: John Law's System in 1720 France]. 7월 9일 은행이 소액권을 금은화로 바꿔 주기를 재개하지만 창구에 몰린 인파로 압사 사고가 일어나 7월 17일 무기한 중단합니다. 이날 이후 은행권은 사실상 불환지폐입니다. 8월 15일 고액권은 10월 1일 소액권은 1721년 5월 1일에 폐화한다고 예고했고 10월 10일 기준 소각을 마친 은행권이 약 7억 리브르 회수했으나 소각하지 않은 것이 7억 3,000만 유통 잔액이 11억 6,900만이었습니다. 폐화 시점을 11월 1일로 앞당겼고 12월 초 존 로가 프랑스를 떠납니다.

정리는 비자라는 이름의 작업으로 이루어졌습니다. 1721년 1월 6일부터 모든 시스템 증서를 신고받아 국채로 재전환하는 절차이고 신고하지 않은 증서는 무효가 됐습니다. 1721년 8월 신고가 끝나고 1722년 9월 심사가 끝날 때까지 수천 명이 매달렸고 비용이 900만 리브르였습니다. 개인별 삭감률은 표 하나로 정해졌습니다. 세로는 증서의 종류이고 가로는 그것을 어떻게 얻었는지이며 그 둘이 만나는 칸의 값이 인정 비율입니다. 상환으로 받은 국채는 100%를 인정했고 취득 경위를 설명하지 못한 증서는 5%만 인정했습니다. 제출된 22억 1,120만 리브르가 17억으로 삭감됐고 평균 삭감률은 23.5%입니다. 500리브르 이하 청구는 한 건도 깎지 않았고 그것이 인원의 절반이자 금액의 40%였습니다. 나머지 60%는 평균 39%가 깎였습니다. 비자가 발행한 청산증서의 1722년 시장가가 액면의 약 25%였으므로 은행권 보유자가 최종적으로 손에 쥔 값은 액면의 20% 수준으로 추정됩니다. 남은 약 15억 리브르는 4% 종신연금과 2% 영구연금으로 전환됐고 후자의 대부분이 1789년까지 존속합니다. 프랑스 혁명이 일어날 때 국왕이 갚고 있던 빚 안에 존 로의 잔해가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스웨덴 리크스방크가 1668년 잉글랜드 은행이 1694년이고 방크 제네랄은 1716년입니다. 순서로는 세 번째이고 그것도 남의 설계를 수입한 쪽입니다. 벨드는 존 로의 은행 구상이 1694년에 설립된 잉글랜드 은행의 영향을 어느 정도 받았다고 말합니다[^Government Equity and Money: John Law's System in 1720 France]. 프랑스가 다시 중앙은행을 갖는 것은 1800년 방크 드 프랑스이고 그 사이 80년 동안 카스 데스콩트와 아시냐와 만다 테리토리오라는 지폐 시도가 모두 실패로 끝났습니다. 프랑스인이 그 뒤로 은행을 혐오하게 됐다는 설명이 널리 반복되지만 그 인과를 뒷받침하는 1차 자료를 이번 조사에서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80년이라는 공백은 사실이고 그 이유는 여기서 단정하지 않겠습니다.

그러면 존 로가 처음 한 일은 무엇일까요. 첫 번째는 벨드가 유럽에서 금속 교환수단을 종이로 대체하려 한 최초의 전면적 시도라고 부르는 것입니다[^Government Equity and Money: John Law's System in 1720 France]. 두 번째는 발권 기관과 재정 기관과 징세 기관을 한 법인 안에 통합한 것입니다. 세 번째가 국채를 지분으로 바꾼 것입니다. 그런데 두 번째와 세 번째는 프랑스만의 광기가 아닙니다. 1694년 잉글랜드 은행은 정부에 120만 파운드를 대출하고 그 대가로 특허와 은행권 발행 독점권을 받았습니다. 금은이 아니라 톤세와 소비세를 담보로 조달한 돈이었습니다. 같은 종류의 거래입니다. 1720년 영국의 남해회사는 3,100만에서 3,200만 파운드의 국채를 자기 주식으로 전환했습니다. 존 로가 한 것과 같은 종류의 거래이고 같은 해에 같은 방식으로 무너졌습니다. 그러니 물어야 할 것은 왜 프랑스가 미쳤나가 아니라 왜 영국은 살아남았나입니다. 이 질문의 1차 자료 기반 답을 이번에 확보하지 못했습니다. 벨드에게 1722년 영국 채무 재조정을 다룬 논문이 있지만 본문을 구하지 못했습니다. 의회가 있었느냐 없었느냐 같은 설명을 짐작으로 채우지 않겠습니다.

그래도 자료가 명시하는 차이가 하나 있습니다. 잉글랜드 은행은 발권만 했고 남해회사는 국채 전환만 했습니다. 프랑스는 그 둘을 한 법인에 통합했고 거기에 징세와 조폐까지 통합했고 그 법인의 대표가 재무장관이었습니다. 벨드는 시스템의 존립이 왕과 회사의 분리에 달려 있었지만 실제로는 그 분리가 이루어지지 않았고 왕이 주요 주주였고 존 로가 왕의 장관인 동시에 회사의 최고경영자였다고 말합니다[^Government Equity and Money: John Law's System in 1720 France]. 이후 중앙은행 설계가 하지 않기로 한 것들의 목록을 존 로의 시스템에서 뽑을 수 있습니다. 발권 기관이 재정 당국과 같은 사람의 지휘를 받지 않게 하는 것과 발권 기관이 자기 주식을 사려고 발권하지 않게 하는 것과 통화의 수요를 형법으로 만들지 않는 것입니다.

이제 2026년으로 옮겨 옵니다. 미국 재무부의 공채 월보 2026년 7월 31일자 기준으로 총 공채 잔액은 39조 7,716억 달러이고 시장성 국채는 31조 4,341억 달러이고 그중 만기 1년 이하의 단기국채가 6조 9,889억 달러입니다[^Monthly Statement of the Public Debt of the United States, July 31, 2026]. 시장성 국채의 22.2%가 단기국채라는 뜻입니다. 재무부 자문기구인 국채발행자문위원회의 2026년 8월 4일 회의록에 따르면 프라이머리 딜러들의 중간값 전망 기준으로 현행 쿠폰 입찰 규모를 유지하면 2027년과 2028 회계연도에 1조 4,500억 달러의 자금 부족이 발생합니다[^Minutes of the Meeting of the Treasury Borrowing Advisory Committee August 4, 2026]. 딜러들의 합의는 연방준비제도의 보유 포트폴리오가 장기적으로 듀레이션이 훨씬 짧아지고 단기국채 비중이 높아지는 쪽으로 이동한다는 것입니다. 1715년의 프랑스와 자릿수도 제도도 다르지만 문제의 형태는 같습니다. 갚아야 할 이자가 있고 새로 발행할 물량이 있고 그것을 받아 줄 사람이 필요합니다.

받아 줄 사람을 만드는 방법이 지금 여섯 가지 사용되고 있습니다. 첫째는 발행 구성을 바꿔 만기를 짧게 하는 것이고 위에 적은 22.2%가 그 결과입니다. 자문위원회의 권고 범위가 15%에서 20% 사이인데 2023년 9월 이후 계속 그 위에 있습니다. 둘째는 환매입니다. 재무부는 2026년 8월 19일 10년에서 30년 구간의 유동성지원 환매 규모를 회당 최대 20억 달러에서 최소 40억 달러로 두 배 넘게 늘리고 9월 9일부터 시행한다고 발표했습니다[^Treasury Announces Increased Sizes of Nominal Long-End Liquidity Support Buybacks Beginning September 9]. 셋째는 연방준비제도의 보유 구성 전환입니다. 넷째는 자본규제 완화입니다. 미국 통화감독청은 2025년 11월 확정한 최종규칙으로 대형 은행의 보완레버리지비율 버퍼를 3%에 글로벌 시스템적 중요 은행 가산의 절반을 더한 값으로 바꾸고 은행 단위 상한을 4%로 정했고 2026년 4월 1일부터 시행합니다[^Modifications to the Enhanced Supplementary Leverage Ratio Standards for U.S. Global Systemically Important Bank Holding Companies and Their Subsidiary Depository Institutions: Final Rule]. 은행이 국채를 보유할 때 무는 벌칙을 줄이는 조치입니다. 다섯째가 법으로 사게 만드는 것이고 지니어스 액트가 여기 해당합니다. 여섯째는 재무부가 여유 현금을 익일물 국채 레포로 운용하는 방안이고 딜러 다수가 잘 설계되면 시장의 국채 흡수력을 개선할 것으로 평가했습니다[^Minutes of the Meeting of the Treasury Borrowing Advisory Committee August 4, 2026].

이 여섯 가지 방법 전체를 가리키는 표현을 재무부 자신이 쓰고 있습니다. 2026년 5월 6일 분기 리펀딩 성명은 재무부가 연방준비제도의 단기국채 매입과 민간 부문의 단기국채 수요 증가를 관측하고 있다고 밝히고 앞으로의 발행 증액을 검토할 때 구조적 수요의 추이에 초점을 두겠다고 말합니다[^Quarterly Refunding Statement of Deputy Assistant Secretary for Federal Finance Brian Smith]. 구조적 수요라는 표현이 공식 문서에 등장한다는 것은 수요를 시장에 맡기는 대상이 아니라 관측하고 설계하는 대상으로 다룬다는 뜻입니다. 1716년 10월 7일 칙령이 징세관에게 은행권을 받으라고 명령한 것과 성질이 같습니다. 다른 것은 강제의 정도이고 같은 것은 수요의 출처입니다.

지니어스 액트는 2025년 7월 18일 제정된 공법 119-27이고 상원 법안 번호는 S.1582입니다. 제4조 (a)(1)(A)는 허용되는 준비자산을 열거합니다. 미국 주화와 통화 부보 예금기관의 요구불예금 잔존만기 93일 이하이거나 발행 시 만기가 93일 이하인 국채 그 국채를 담보로 한 익일물 환매조건부매도와 역환매조건부매수 그리고 그런 자산에만 투자하는 정부 머니마켓펀드 지분입니다. 마지막 항목이 그 자산들의 토큰화된 형태입니다. 같은 조 (a)(11)은 허가받은 발행사가 스테이블코인 보유자에게 어떤 형태의 이자나 수익도 지급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합니다. 현금이든 토큰이든 다른 대가든 마찬가지입니다[^Guiding and Establishing National Innovation for U.S. Stablecoins Act]. 두 조문을 함께 읽으면 구조가 나옵니다. 이자를 지급하지 않는 요구불 증서를 발행하고 그 뒷면에 정부 채무를 두고 그 정부 채무에서 나오는 이자를 발행사가 가져갑니다. 1716년 방크 제네랄의 손익 구조와 같습니다. 존 로의 은행도 국채를 담보로 이자를 지급하지 않는 증서를 발행했고 그 국채 이자 연 4만 5,000리브르가 은행의 운영자금이었습니다.

지난 '지니어스 액트에 의한 스테이블 코인의 변화와 달러 패권의 위상'에서 이 법이 준비금을 현금과 만기 93일 이하 국채로 고정해 국채 실수요를 제도적으로 만든다고 말했습니다. 그 진단은 지금도 유효합니다. 다만 그때 함께 적은 몇 가지를 이번 조사에서 확인해 보니 사실과 달라 여기서 고칩니다. 그 글은 브레튼우즈 회의를 1994년이라고 썼습니다. 1944년입니다. 트럼프 대통령의 서명일을 2025년 7월 15일이라고 썼습니다. 공법 119-27의 제정일은 2025년 7월 18일입니다. 법안 원문 링크로 118대 의회 하원 법안 4834번을 걸었습니다. 지니어스 액트는 119대 의회 상원 법안 1582번입니다. 테라와 루나 붕괴 규모를 약 400달러라고 썼습니다. 자릿수가 빠진 것이고 약 400억 달러입니다. 참고 링크로 적은 백악관과 재무부 주소 두 개는 지금 접속하면 404를 돌려줍니다. 나머지 세 개는 401과 403과 429를 돌려줍니다. 그것은 봇 차단이므로 문서가 없다는 증거로 삼지 않았습니다.

스테이블코인이 국채 수요를 만든다는 문장은 참이지만 그 크기를 적지 않으면 아무 말도 하지 않은 것과 같습니다. 2026년 8월 중순 집계 기준 스테이블코인 시가총액은 약 3,080억 달러이고 준비금의 약 80%가 미국 국채라는 것이 발행사들의 자기보고입니다. 이 두 수치는 집계 사이트와 발행사 어테스테이션에서 나온 것이라 앞의 국채 수치와 같은 등급으로 다룰 수 없습니다. 그대로 곱하면 약 2,460억 달러이고 단기국채 잔액 6조 9,889억 달러의 약 3.5% 시장성 국채 잔액의 약 0.8%입니다. 브루킹스는 2030년까지의 1차 순수요를 4,000억 달러에서 2조 3,000억 달러 사이로 전망하면서 수요 증가의 크기가 스테이블코인 성장의 출처에 결정적으로 달려 있다는 조건을 함께 답니다[^Stablecoins after GENIUS: Private money, public debt, and the global dollar]. 머니마켓펀드에서 갈아탄 자금이면 순수요가 아니라는 뜻입니다. 상단이 실현되면 오늘 단기국채 잔액의 3분의 1 규모이고 하단이면 6% 수준입니다. 그리고 8월 4일 자문위원회 회의록에 스테이블코인이라는 낱말은 한 번도 나오지 않습니다[^Minutes of the Meeting of the Treasury Borrowing Advisory Committee August 4, 2026]. 요약본이라 논의가 없었다는 증거는 아니지만 재무부가 분기마다 국채 수요를 놓고 벌이는 공개 심의의 요약에 그 낱말이 없다는 것은 그 자체로 하나의 관측입니다.

스테이블코인을 미시시피 거품이라고 결론짓기에는 두 사례가 서로 다른 곳이 여섯 군데입니다. 첫째 만기가 다릅니다. 존 로의 준비자산은 만기가 없는 영구연금이었고 오늘의 준비자산은 93일 이하입니다. 유동성 위험의 성질 자체가 다릅니다. 둘째 평가가 다릅니다. 존 로는 시장가 40%짜리 국채를 액면으로 계산했고 오늘의 규칙은 그것을 허용하지 않습니다. 셋째 크기가 다릅니다. 존 로의 지폐는 나라 안 금은화 총량의 두 배를 넘었고 오늘의 스테이블코인은 단기국채의 3%대이고 통화량에 견주면 훨씬 작습니다. 넷째 발행 주체가 다릅니다. 존 로의 발행자는 국가였고 국가가 그것을 유일 법정화폐로 강제했습니다. 스테이블코인 발행사는 민간이고 미국 달러의 법정화폐 지위와 무관합니다. 다섯째 강제가 다릅니다. 존 로는 금은화 보유를 형사처벌 대상으로 만들었고 오늘 그런 조항은 없습니다.

여섯째가 가장 중요합니다. 방향이 반대입니다. 존 로는 국채를 지분으로 바꿔 국가의 고정 부담을 없애려 했습니다. 오늘의 움직임은 국채를 화폐에 가깝게 만들어 팔기 쉽게 하는 쪽입니다. 하나는 만기를 없애려 했고 하나는 만기를 줄이려 합니다. 그래서 두 사례를 같은 그림으로 묶을 수 없습니다. 닮은 것은 지폐가 국채에 얹혀 있다는 사실이 아닙니다. 그것은 지금 어느 나라나 그렇습니다. 닮은 것은 그 수요가 시장이 아니라 규칙에서 나온다는 것 그리고 규칙으로 만든 수요는 규칙을 만든 쪽이 그것을 유지할 책임을 함께 진다는 것입니다. 1716년 10월의 칙령은 징세관에게 은행권을 받으라고만 명령했습니다. 1720년 3월의 결정은 주가를 9,000리브르로 유지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앞의 것은 줄을 세우는 규칙이고 뒤의 것은 가격을 지키겠다는 약속입니다. 존 로의 시스템이 무너진 원인은 규칙이 약속으로 바뀐 것입니다.

오늘의 규칙에도 그 경계가 있습니다. 준비금을 만기 93일 이하로 못박는 것은 줄을 세우는 규칙입니다. 스테이블코인 하나가 1달러라는 것은 발행사의 약속입니다. 앞의 것은 법으로 지킬 수 있고 뒤의 것은 준비자산을 실제로 팔아야 지킬 수 있습니다. 두 가지가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는 동안에는 서로를 떠받치지만 국채시장 쪽에 문제가 생기면 결제수단 쪽에 같은 문제가 도착합니다. 존 로의 시스템에서 국채와 화폐가 한 몸이 됐을 때 일어난 일이 그것입니다. 물론 오늘의 크기로는 그 경로가 열려도 프랑스처럼 되지 않습니다. 3%대와 두 배는 다른 이야기입니다. 다만 크기는 전망 하단과 상단 사이에서 여섯 배 차이로 벌어져 있고 어느 쪽이 실현될지는 아직 아무도 말하지 못합니다.

벨드는 논문 끝에서 시스템에서 나온 또 하나의 개념인 정부 지분이 아직 정식으로 재현되지 않았고 존 로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시대를 앞선 사람이었을지도 모른다고 말합니다[^Government Equity and Money: John Law's System in 1720 France]. 국채 보유자를 주주로 만들어 국가 세수의 변동분을 나누는 구조는 300년 동안 아무도 다시 시도하지 않았습니다. 지금 벌어지는 일은 그 반대편입니다. 국가의 부채를 지분으로 바꾸는 대신 화폐에 가깝게 만들어 더 많은 사람이 그것을 들도록 규칙을 정비하고 있습니다. 어느 쪽이 더 나은 설계인지는 여기서 답하지 않겠습니다. 다만 줄을 세우는 규칙을 만드는 쪽은 그 줄이 창구까지 이어져 있는지 가끔 확인하는 편이 안전합니다. 1720년 7월 17일 파리에서 그 줄은 창구 앞까지 이어져 있었고 창구가 닫혀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