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처티드4와 연속적인 세계
카메라 밖 세계가 연속적이라고 느낄 때 더 잘 몰입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 오래 되지 않은 어느 주말에 한 번에 시간을 많이 들여 언처티드 4를 플레이 했습니다. 게임이 나오고 나서 시간이 많이 지났지만 아직 이 프랜차이즈를 플레이 하지 않았습니다. 정확히는 이 개발사에서 나온 프랜차이즈에 그리 큰 관심을 가지지 않아 왔습니다. 대략 나올 때마다 큰 관심을 받고 또 여러 컨퍼런스나 책, 인터뷰를 장식했던 것 같기는 합니다. 하지만 제가 만드는 게임들과 너무나도 달랐고 또 고객에게 ‘고객이 원하는 경험을 부여하는’ 게임에 집중하던 자신과 ‘개발자가 의도한 경험을 부여하는’ 게임을 만드는 그들 사이에 큰 갭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이 회사의 프랜차이즈 전체는 그 동안 관심의 대상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이 프랜차이즈를 PC에서 플레이 할 수 있음을 알게 됐고 또 꽤 큰 폭으로 할인하고 있어 이쯤 되면 한 번 관심을 가져볼 만 하지 않나 싶은 쪽으로 생각이 기웁니다. 하지만 할인 때 사 놓기는 했지만 다른 여러 스팀 게임과 비슷하게 일단 사놨지만 설치조차 하지 않은 채로 시간이 흘렀습니다. 지난번 디아블로 4 스토리 엔딩을 보고 난 다음 여러 모로 충격을 받아 한동안 게임에 손을 못 댔습니다. 일단 게임 제목으로부터 예상할 수 있는 결말에 근접하지도 못한 채 스토리가 끝났을 뿐 아니라 이런 결말을 위해 실제 인게임에는 보스라고 부를만한 보스가 등장하지도 않아 실망스러웠습니다. 게임의 여러 요소들은 전통을 현대화한 흔적을 배울 수 있어 나쁘지 않았지만 다른 한 편으로는 이게 바로 2023년에 만난 이 장르에서는 거의 세계 최고의 프랜차이즈라는 점에 적잖게 실망했고 이 감정에 따라 한동안 다른 게임에 손을 댈 생각을 하지 못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러던 중 문득 이런 장르와 아주 멀리 떨어진 언처티드를 플레이하기 딱 적당한 때가 아닌가 싶었습니다.
앞에서 잠깐 말한 ‘개발자가 의도한 경험을 부여하는’ 게임 관점에서 개인적으로 게임에 중요하게 생각하는 요소 중 하나는 개인적으로 ‘세계의 연속성’이라고 부르는 특성입니다. 아주 오래 전에 플레이 하던 한 싱글플레이 롤플레잉 게임에서는 마을에 역할을 가진 NPC가 게임 상에서 저녁 시간이 되면 퇴근해 한밤중에는 NPC를 만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시간을 잘 맞춰 찾아가면 집에서 일터로 이동하거나 집으로 돌아가는 NPC를 만날 수 있었는데 이 때 말을 걸면 평소와는 다른 대화를 할 수 있었고 또 현대 관점에서는 그런 행동을 하는 제 자신이 좀 으스스하기는 하지만 집으로 돌아가는 NPC를 따라 가면 그의 집에서 평소와는 다른 이야기와 다른 경험을 할 수도 있었습니다. 이런 동작은 게임 세계 전체에 걸쳐 동일하게 유지되었는데 몇 번 이런 경험을 하고 난 다음 부터는 게임 속 세계를 구성하는 여러 가지 요소가 이런 식으로 제가 직접 쳐다보고 있지 않아도 각자의 위치에서 각자의 할 일을 하고 있을 거란 생각을 하기 시작합니다. 이런 생각은 세계를 구성한 그들 뿐 아니라 세계를 구성하는 플레이어인 저 자신 역시 게임 속 제 위치에서 제 할 일을 하게 했습니다.
이런 결과 게임에 아주 깊이 몰입하게 됩니다. 게임 속에 나타난 인물은 지금 이 이벤트를 수행하기 위해 잠깐 만들어진 인물이 아니라 이 세계에서 살아가는 방식이 있고 그 방식에 따라 살아가던 중 또 다른 게임 속 인물인 저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전 세계에 걸친 이야기를 진행 시키는데 기여하고 있다고 받아들이게 됐습니다. 또 게임에 나타나는 몬스터들 역시 제가 그 필드에 진입할 때 제가 관측 가능한 범위 안에 임의로 스폰 되는 대신 제가 그 지역을 관측하기 전부터 스폰 되어 특성에 따라 행동하다가 서서히 배치가 바뀌어 그들에게 설정된 그들이 원하는 바에 따라 좀 더 예측 가능하고 더 좁은 장소에 모여 있어 단순히 필드를 무작위로 채운 몬스터들이 주는 이미지와는 완전 다른 느낌을 주었습니다. 그리고 스토리를 마무리 하고 나서 세계를 떠나 제가 살고 있는 실제 세계로 돌아와야만 하는 순간에 큰 아쉬움을 느꼈습니다. 세계를 잠시 떠나는 의식의 기원은 어쩌면 이 때부터 였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제가 그 세계에 몰입해 플레이 할 때 이 세계는 제가 관측하지 않아도 계속해서 움직이고 있으며 이 세계가 제가 관측하는 영역만이 움직이고 있는 대신 세계 전체가 움직이고 있다는 신뢰감은 게임을 가볍게 여기지 않게 합니다.
시간이 흘러 게임들은 멀티플레이어 온라인 게임 위주로 개발되었고 점점 더 ‘고객이 원하는 경험을 부여하는’ 방향으로 변화해 갔는데 동시에 우리들은 이전 시대처럼 세계 전체를 시뮬레이션 하거나 세계 전체를 스크립팅에 기반해 움직이게 해 개발자조차 예상하지 못한 사건이 일어나 게임을 통제하기 어렵게 하기 보다는 관측 가능한 세계만 통제 가능한 상태에서 움직이게 만드는데 집중하기 시작합니다. 그 결과 플레이어가 없는 필드는 시뮬레이션 하지 않았고 마을에 대장장이 NPC가 퇴근하거나 죽어 다른 플레이어들의 플레이를 방해하게 하는 대신 NPC들을 무적으로 만들고 영원히 퇴근하지 못하게 만들었습니다. 이런 세계는 개발자 입장에서 더 만들기 쉽고 그 결과의 차이를 느끼기는 더 어려우며 경험은 더 안정적이고 예측 가능한 모양으로 바뀌었습니다. 물론 이런 게임은 플레이어가 세계와 상호작용 하는 경험 보다는 다른 플레이어와 상호작용 하도록 만드는데 더 집중했기 때문에 이런 동작은 단점이라기 보다는 특징에 더 가깝습니다.
이런 변화 속에서도 싱글플레이 게임을 중심으로 여전히 세계 전체가 살아 움직이는 것 같은 경험을 주는 게임들이 있었습니다. 이들이 기술적으로 세계 전체를 시뮬레이션 하거나 세계 전체를 실시간으로 스크립팅 하고 있지는 않을 겁니다. 온라인 게임이 그렇듯 플레이어가 관측 가능한 세계에 한해 시뮬레이션 하고 있겠지만 그런 동작을 눈에 띄지 않도록 하는 다양한 트릭을 통해 오래된 게임들이 종종 보여주던 엄청난 몰입을 선사하곤 합니다. 가령 GTA 5에서 범죄를 저지르면 경찰이 찾아오는데 이들은 항상 플레이어가 관측 가능한 범위 바깥으로부터 나타납니다. 경찰이 생성되어 범죄자인 저 자신에 도달하는 동안 경찰이 어디서 생성되는지 알아내기 위해 경찰이 제게 접근할 경로가 하나 뿐인 장소에서 사람을 쏘기도 하고 또 넓은 범위를 내려다 볼 수 있는 장소에 올라가 저 멀리 지나가는 차에 로켓을 쏴 보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스코프를 통해 주변을 살피며 경찰이 부자연스럽게 나타나 관측 가능한 범위로 들어오는 순간을 관측하려고 노력했지만 항상 경찰은 아주 그럴싸하게 관측 가능한 범위 밖에서 생성 되어 관측 가능한 범위 안으로 들어와 마치 게임 속 경찰이 주변을 지나가다가 출동 명령을 받고 저에게 달려오는 것 같은 기분을 느끼게 해 줬습니다.
개인적으로 지난 10년 안에 출시된 여러 오픈월드 게임 중 GTA 바로 다음이라고 생각하는 메탈기어솔리드 5는 이와 비슷하지만 약간 다른 경험을 통해 이 세계 전체가 실시간으로 살아 움직이고 있다는 느낌을 받게 했았습니다. 이 게임 역시 관측 가능한 세계는 항상 정말 그럴싸하게 움직입니다. 거점을 지키는 병사들은 낮과 밤에 관계 없이 항상 같은 자리를 오가는 여느 세계의 병사들과는 달리 종종 집중력이 흐트러지기도 하고 자기들 끼리 잡담을 하기도 하며 잠깐 자리를 비우거나 화장실에 가기도 하는 등 실제 세계의 사람들과 비슷한 행동을 합니다. 또 전투가 일어나면 즉시 이 사실을 무전을 통해 보고하는데 이를 통해 주변에서 지원 병력이 출발하는데 이들 역시 관측 가능한 범위 밖에서 생성되어 관측 가능한 범위 안으로 들어와 게임을 플레이 하는 입장에서 지원 병력이 주변의 어느 기지로부터 출발했는지 상상할 수 있을 정도였습니다. 또 병사들을 계속해서 처치하면 주변 기지로부터 추가로 보낼 지원 병력이 아예 없어져 더 이상 지원을 오지 못하는 상황이 일어나기도 했고 이는 게임 속 세계가 실제 같다는 느낌이 들게 만듭니다.
이 게임에서 또 하나 세계에 몰입할 수 있게 해 준 계기는 시간을 건너뛸 때 일어난 일 때문이었습니다. 이 게임은 시간에 따라 다른 경험을 할 수 있는데 가령 낮 시간에는 적 병사들이 더 먼 거리를 볼 수 있지만 밤에는 그렇지 않으며 낮과 밤에 병사들의 이동 경로가 서로 다릅니다. 낮 시간에는 아주 까다로워 들키지 않고 잠입할 방법을 잘 찾을 수 없던 기지도 밤이 되면 빈 틈이 생겨 이를 공략할 수 있게 됩니다. 하지만 밤이 되기를 그냥 기다리기는 너무나 지루하기 때문에 ‘팬텀 시가’를 사용하면 시간을 빨리 보낼 수 있습니다. 어쎄신 크리드 최근 시리즈에도 ‘명상’을 하면 시간이 빨리 가는 비슷한 메커닉이 있습니다. 신뢰의 도약을 할 수 있는 비교적 안전한 장소에서 명상을 하면 낮과 밤 시간을 바꿔 다른 플레이를 할 수 있게 해 줍니다.
그런데 메탈기어솔리드 5에서는 펜텀 시가를 사용해 시간을 빨리 보낼 때 플레이어가 위치한 장소가 안전하지 않아 적 병력이 지나가다가 플레이어를 발견할 만한 장소에서 팬텀 시가를 사용하면 목표한 시각에 도달하기 전에 시간이 흐르는 속도가 평소로 돌아오며 바로 플레이 해야 하는 상황이 됩니다. 아마도 팬텀 시가를 통해 시간을 빠르게 돌릴 때 그냥 낮과 밤을 전환하는 대신 이 사이에 일어나야 하는 병력의 이동, 낮과 밤 사이에 전환되는 병력의 순찰 방식을 빠르게 적용해 세계의 일부를 시뮬레이션 하는 것 같아 보입니다. 그래서 어설프게 숨어 팬텀 시가를 피우다가는 완전 무방비 상태로 적들에게 발견되어 잠입에 실패할 수도 있습니다. 이 경험 역시 게임 속 세계가 관측 가능한 영역 밖에서도 살아 움직이고 있다고 느끼게 만든 계기입니다.
반면 비슷한 상황에서 파크라이 5는 완전히 몰입을 깨는 방식으로 동작하는데 이 게임에서 스토리 상 플레이어를 반드시 납치해야 하는 장면이 있습니다. 플레이어를 납치하고 나서 메인 빌런 중 한 명은 플레이어를 세뇌 시키지만 이 사실을 모니터 바깥에 있는 저에게는 알려주지만 게임 속 플레이어에게는 알려주지 않습니다. 이런 설정에 기반해 후반에 아주 기묘한 스토리를 보여주는데 만약 모니터 밖의 제가 플레이에 제법 능숙해져 플레이어를 납치하기 위해 달려드는 적들의 강력한 공격으로부터 한동안 버티다 보면 게임은 완전 이상한 모양이 되고 맙니다. 원래 개발자들이 의도한 바는 그 시점에 플레이어의 화력으로 감당할 수 없는 병력을 한꺼번에 보내 플레이어를 확실히 패배 시키려는 것이었겠지만 오픈월드 게임과 주의력에서 소개한 것처럼 오픈월드 게임이라면 메인 스토리를 제쳐 두고 온갖 다른 일에 정신이 팔린 나머지 이 초반 메인 이벤트를 상당히 늦은 시점에 봤고 이미 게임 속 세계에 꽤 익숙해졌고 또 그 시점에 가지고 있지 않을 가능성이 높은 무기와 장비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플레이어를 반드시 패배 시켜야 하는 병력으로부터 한동안 버틸 수 있었는데 게임은 이 상황에 플레이어를 패배 시키기 위해 점점 더 많은 병력을 보내 물량으로 도저히 버틸 수 없는 상황을 만들어 결국 플레이어를 납치하는데 성공합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적들은 관측 가능한 영역 안에서 생성되어 갑자기 나타났고 라이플에 달린 스코프로 길 끝을 바라보면 장갑차와 탱크가 아무리 봐도 그 자리에서 갑자기 나타나 저를 향해 달려오고 있었습니다. 적 보병들은 분명 원래 그 자리에 없었을 것이 분명한 풀숲 사이에서 나타났고 아무리 자원이 많은 사이비 교단이라도 값비싼 헬리콥터가 열 몇 대나 있을 것 같지 않았지만 여전히 헬리콥터는 계속해서 나타납니다. 결국 모든 총알을 다 쓰고 달려드는 병사들을 칼로 썰어 댔지만 버틸 수 없었습니다. 이 이벤트를 통해 스토리가 진행되기는 했지만 결국 세계에 대한 몰입이 약해져 후반에 보여주는 스토리가 흥미롭다고 생각하긴 했지만 다시는 게임에 이전만큼 몰입할 수는 없었습니다.
이전에 플레이 한 갓오브워에서도 우연한 기회에 세계에 대한 몰입이 깨졌는데 이 게임은 설정 상 플레이어가 플레이어의 아들과 함께 이동하며 플레이 해야 했습니다. 이 또 다른 캐릭터는 플레이어의 이동에 따라 함께 움직이기도 하고 높은 곳에 올라가야 할 때 플레이어가 먼저 이 작은 캐릭터를 먼저 올려 주거나 배를 타고 이동할 때 먼저 배에 태운 다음 플레이어가 배를 밀어 물에 띄운 다음 뛰어 오르는 등 플레이어와 자연스럽게 상호작용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플레이에 따라 자연스럽게 플레이어와 멀어질 때도 있는데 이 때 대화하면 목소리가 멀리서 들려와 캐릭터와 거리가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NPC가 지나가면 닫히는 문 사례처럼 게임 속 등장인물들이 서로 상호작용 해야 하는 상황에 캐릭터가 멀리 떨어져 있을 때 캐릭터의 움직임을 관측하지 않으면 카메라 밖의 세계가 연속적으로 동작하지 않았습니다. 멀리 떨어져 있어 플레이어의 위치까지 이동하는데 분명 시간이 좀 걸릴 것 같았지만 카메라로 이동을 관측하지 않으면 게임 속 캐릭터들은 순식간에 플레이어 옆에 나타납니다. 방금 전까지 절벽 건너편에서 목소리가 작게 들리던 사람들이 카메라를 돌렸다가 다시 보면 바로 옆에 나타나 상호작용 할 준비를 마치고 있었는데 이 순간 게임 속 세계가 카메라 밖에서는 연속적으로 동작하지 않음을 깨달았고 그 때부터 게임 속 세계에 몰입할 수가 없었습니다.
비슷한 사례로 사이버펑크 2077이 처음 나왔을 때 GTA와 비슷하게 범죄를 저지르면 경찰이 나타났는데 GTA에서 경찰들이 항상 플레이어가 관측 가능한 영역 바깥에서 나타나 플레이어를 향해 이동해 오던 것과는 달리 갓오브워의 경험처럼 카메라 바깥에서 나타났습니다. 사이버펑크 2077은 좀 더 카메라 밖 세계가 무성의하게 불연속적으로 동작했는데 범죄를 저지른 다음 카메라를 돌려 잠깐 벽을 쳐다봤다가 다시 길을 쳐다보면 1초 전에는 없던 경찰이 나타나 총을 쏘기 시작합니다. 처음 한 두 번은 경찰이 가까이 있었을 거라고 생각하고 경찰을 상대했는데 이들이 카메라 밖의 아주 가까운 곳에서 스폰 된다는 사실을 깨달은 다음부터는 GTA에 비해 현저히 게임에 몰입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저 매력적인 등장인물들의 이야기를 보는데 집중할 뿐 여느 싱글플레이 오픈월드 게임처럼 세계에 한눈을 팔고 세계가 주는 경험을 즐기기 어려웠습니다. 어차피 경찰은 눈을 감았다 뜨면 나타나는 존재들일 뿐이어서 경찰의 모습을 하고 있을 뿐 그냥 총 쏠 과녁에 불과하다고 느낄 뿐이었습니다.
이번에 언처티드 4를 플레이 하며 널직한 절벽을 아슬아슬하게 뛰어 넘은 다음 뒤를 돌아보니 형 샘이 아직 절벽 건너편에 서서 대사를 하고 있었습니다. 문득 샘은 절벽을 어떻게 이동할지 궁금해서 건너편의 샘을 계속해서 쳐다보고 있었는데 샘이 그 자리에 서서 아무것도 안 하고 있습니다. 이 게임 역시 갓오브워처럼 카메라 밖에서는 불연속적으로 동작하는 게임이라고 생각하고 ‘에이 그럼 그렇지’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아마도 샘은 카메라를 돌렸다가 다시 쳐다보면 이미 절벽을 건넜을 거라고 예상했습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았습니다. 자리를 조금 옮겨 방금 절벽을 뛰어넘어 착지한 자리로부터 조금 이동하자 샘이 움직이기 시작했는데 흥미롭게도 샘은 방금 제가 절벽을 뛰어 넘은 방법과 비슷한 방법으로 절벽을 뛰어 넘어 방금 제가 가로막고 있던 착지 지점에 안착합니다. 샘이 움직이지 않은 이유는 제가 착지할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기 때문인 것 같았습니다.
그 후로도 언처티드 게임 속 다른 캐릭터들은 각자의 몸놀림으로 플레이어가 이동한 경로를 카메라 밖에서도 연속적으로 이동했고 언제 카메라를 돌려 그들을 바라보더라도 그들은 자연스럽게 이동하고 있었습니다. 때로는 먼 거리를 뛰어넘었고 때로는 플레이어와는 약간 다른 경로를 통해 절벽을 기어 오르고 있었고요. 거의 유일한 예외는 플레이어가 자동차를 타고 이동할 때였는데 캐릭터들이 플레이어와 마찬가지로 차에서 내려 좀 떨어진 장소를 탐색하며 서로 대화하고 있을 때 자동차로 달려가 출발하려고 하면 이 순간 만큼은 게임 속 캐릭터들이 불연속적으로 움직여 한 번에 차에 탑승해 바로 출발할 수 있게 해 줬습니다. 이는 분명 지금까지 이야기한 관점에서 불연속적으로 움직이는 세계로 인해 몰입을 깨는 경험을 할 만한 상황이지만 오직 이 상황만 불연속적으로 움직인다는 점은 오히려 개발자가 너무나 곧이곧대로 세계를 연속적으로 만드는 대신 플레이의 편의를 아주 조금 배려했다는 느낌을 받게 해 몰입을 깨지 않았습니다. 이후에도 플레이어와 다른 캐릭터가 함께 움직일 때 이 캐릭터들은 카메라 밖에서도 항상 연속적으로 움직였고 먼저 위험한 점프를 한 다음 뒤를 돌아보며 다른 캐릭터들이 각자의 몸짓을 통해 이쪽으로 건너오는 모습을 보며 이 게임 속 세계는 상대적으로 스케일이 작지만 어쨌든 카메라 바깥의 세계가 연속적으로 동작하고 있다는 신뢰를 줘 게임에 계속해서 몰입할 수 있었습니다.
물론 플레이어가 관측 가능한 세계 바깥을 연속적으로 동작하도록 만들기는 상당히 까다롭고 때로는 불필요할 수 있습니다. 앞에서 소개한 디아블로 4 역시 밧줄에서 풀려난 마을 사람들은 플레이어가 가만 서 있을 때는 화면 밖으로 자연스럽게 나갔지만 이들을 따라가면 몇 초 정도 이동하다가 그냥 사라져 버렸습니다. 과연 이들이 안전하게 이 위험한 동굴을 빠져나간 것인지 아니면 달리다가 그만 성불해 버린 것인지 구분할 수 없었습니다. 회사에서 MMO 게임 퀘스트를 만들 때 플레이어가 구출해 준 불쌍한 마을 사람들이 밧줄에서 풀려나 동굴 바깥을 향해 달려가지만 그들을 쫓아가 보면 그들은 몇 발자국 걸어가다가 홀연히 사라지곤 합니다. 이를 못 마땅히 여긴 경영진의 강력한 요구로 밧줄에서 풀려난 사람들이 플레이어가 쫓아갈 수 있는 한계까지 계속해서 자연스럽게 이동하도록 만들어야 한 적이 있었는데 이 때는 가장 가까운 로딩을 요구하는 출입구까지 경로를 찍어 마을 사람들이 계속해서 이동하게 만들기도 했습니다. 귀찮기는 했지만 플레이어가 관측 가능한 범위 안에서 마을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움직이게 만들었다는 점에서 지금까지 게임 속 세계에 대한 몰입을 깨는 경험을 완화하는 행동이라는 점이 재미있었습니다.
결론. 개인적으로 게임 종류에 관계 없이 게임 속 세계에 몰입한 채로 플레이 하기를 원하는데 게임 속 세계가 플레이어의 관측 가능한 범위 밖에서도 연속적으로 동작하는 것 같은 느낌을 줄 때 게임에 더 잘 몰입하고 더 큰 재미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반면 플레이어의 관측 가능한 범위 밖에서 게임이 불연속적으로 동작하는 느낌을 받거나 그런 증거를 찾는 순간 이 세계가 가짜라는 느낌이 확 들어 게임을 플레이 하기는 하겠지만 이전만큼 자연스럽게 몰입한 플레이를 하지는 못하게 되곤 합니다. 최근에 플레이 한 언처티드 4는 스케일이 작지만 카메라 밖의 세계가 연속적으로 동작한다는 느낌을 받는 순간 게임에 더 잘 몰입할 수 있었고 스토리에도 더 잘 공감할 수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