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개인 공간에 메모를 하기 시작했나

개인 위키로 컨플루언스 추천해요 (2024)에서 개인 기록에 주로 기업용으로 사용되는 것으로 알려진 컨플루언스 위키를 사용하고 있다고 소개했고 이 생각은 작년과 비교해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건 기록 수단에 대한 이야기이고 정작 왜 많은 생각을 기록으로 남기고 또 그 기록이 왜 개인 공간에 있는지 소개한 적은 없었습니다. 사실 이전 생각의 멱살에서 생각을 하기 위해서는 기록이 필요하고 생각을 하기 위해 손을 움직여야만 하는 이유는 개인적인 특징 때문이라고 소개했습니다. 또 개인적인 기록을 개인 공간에 남기는 것은 딱히 문제될 것도 없습니다. 오히려 이전 종이에 기록을 남기던 시대에 비해 훨씬 높은 보안 수준을 달성할 수 있어 종이에 생각을 작성할 때에 비해 훨씬 더 기록에 솔직해질 수 있고 이는 시간이 지난 다음 이 기록을 다시 읽는 저 자신에게 큰 도움이 됩니다. 그 기록이 다른 사람들이 읽지 않으리라는 전제 하에 꽤 솔직하게 작성되었음을 알고 있기 때문일 겁니다.

하지만 이런 기록 스타일과 방식은 개인 영역에 한해 문제가 없을 뿐 개인 영역을 벗어나는 순간 온갖 문제를 일으킬 수 있습니다. 가령 블로그에 작성하는 온갖 텍스트는 이렇게 생각하며 남긴 글로부터 비롯된 결과입니다. 왜 아직도 글을 만들고 있어?에 설명한 대로 생각의 결과가 글로 남은 덕분에 글 각각에 대한 생산 비용은 높지 않은 편이지만 그 생각들은 블로그로 옮겨지기 전에 먼저 위키에 작성되며 이 때는 블로그를 작성한다는 생각 없이 훨씬 더 솔직하게 생각을 있는 그대로 기록하곤 하기 때문에 이 텍스트를 그대로 블로그에 공개할 수 없을 때도 있습니다. 그래서 이전에 생각하며 타이핑해 만들어진 글이 있다면 이 글을 훑어본 다음 같은 주제로 다시 생각하며 타이핑 하되 이번에는 이 글이 블로그를 통해 공개될 거라는 점을 감안해 다시 작성하는데 다시 작성한다고 하기에는 그저 생각을 다시 한 번 하되 이번에는 위키에 기록할 때 보다는 조금 덜 솔직한 상태로 저 자신의 사회적인 입장을 고려하며 타이핑 합니다. 이렇게 만들어진 글은 제가 큰 실수를 하지 않는 이상 공개하기에 보다 적절해집니다. 만약 위키를 대하는 솔직함으로 생각하고 이를 글로 옮겼다면 무척 곤란해졌을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직 까지 개인 영역을 크게 벗어나지 않아 왔다면 이번에는 개인 영역을 완전히 벗어나 회사의 업무 영역 이야기를 해 보겠습니다. 자세히 읽지 않았을 수도 있지만 회사와 체결한 계약에는 취업규칙, 연봉계약 뿐 아니라 비밀유지 서약도 있습니다. 특히 비밀유지 서약은 회사에서 접한 모든 정보를 발설해서는 안될 뿐 아니라 이를 회사가 지정하지 않은 매체에 옮기는 행동 역시 금지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가령 회사에서 기록 도구로 원노트를 제공했다면 원칙적으로 비밀유지 서약에 의해 회사에서 업무 관련 기록은 오직 원노트를 사용해야만 하며 이 이외의 도구를 사용한 기록은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과거에는 이런 규칙을 좀 더 강력하게 집행했던 것 같지만 현대에 가까워질수록 원칙적으로는 그렇지만 실제로는 이 규칙은 좀 더 느슨하게 적용되는 분위기입니다. 물론 여전히 기업 비밀에 대한 보안을 강력하게 유지해야 하는 조직은 출입할 때 스마트폰의 카메라를 봉인하거나 개인 랩탑을 소지할 수 없는 등의 제약이 있는 것 같은데 제가 일하는 업계는 그 정도는 아닙니다. 또한 여러 가지 편리한 기록 도구가 빠르게 발전하는 상황에서 회사가 제공하는 도구는 종종 유연하지 않고 상황에 따라 불편하거나 비효율적일 수 있어 사람들마다 종종 자신에게 더 편리한 도구를 사용한 다음 이를 회사가 제공하는 도구로 옮기곤 합니다.

가령 회의록을 작성할 때 비밀유지 서약에 따라 원칙적으로는 회사가 제공한 도구에 회의록이나 메모를 남겨야 하지만 누군가는 실시간 녹음 기능이 있는 펜으로 종이에 메모를 남기기도 하고 다른 누군가는 개인 소유의 태블릿이나 랩탑을 가져와 각각의 기본 앱에 메모를 남기기도 합니다. 워낙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일이기 대문에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만약 보안 사고가 발생할 경우 회사는 이런 행동들에 강하게 문제를 제기할 수도 있습니다. 또한 퇴사할 때 계약을 철저히 이행하려면 이런 개인 매체에 남긴 기록을 모두 제거해야 하지만 회사는 그 정도 까지는 관여하지 않고 있습니다. 종종 뉴스에서 굴지의 전자 회사에서 일하던 사람의 집에서 업무 관련 기록이 발견되어 경찰이 수사에 나섰다는 소식을 접할 수 있는데 별 생각 없이 개인 장비나 개인 매체에 남긴 기록에 회사가 원칙적으로 대응할 경우 우리들 역시 똑같은 뉴스의 주인공이 될 수 있습니다. 다만 우리들이 다루는 정보는 그 정도 수준까지 강력한 보안을 유지할 만한 사항이 아닐 수 있고 또 그 정도로 강력한 보안 정책을 실행할 경우 생산성이 크게 떨어질 수 있기 때문에 그렇게 까지는 하지 않는 것 뿐입니다. 하지만 비밀유지 서약에 서명한 이상 회사는 언제든 그렇게 까지 할 수 있는 권한이 있습니다.

그래서 웬만하면 회사가 제공한 표준 매체를 사용해야 하는데 개인 위키로 컨플루언스 추천해요 (2024)에서 소개한 컨플루언스 위키를 표준 매체로 제공한 회사에서 업무 기록을 적극적으로 위키에 남기곤 했습니다. 사실 처음부터 업무 기록을 적극적으로 기록한 것은 아니었는데 처음으로 컨플루언스를 접한 회사에서 그동안 여러 사람이 컨플루언스 위키에 기록한 온갖 문서를 살펴보다가 한 프로그래머님이 업무를 기록하시는 방법을 봤고 꽤 괜찮아 보였습니다. 그래서 바로 복제해 따라하기 시작했고 제 스타일에 맞춰 조금씩 바꿔 나가다가 현재에 이르렀습니다. 기본적으로 옵시디언이 제공하는 각 날짜마다 생성되는 페이지 아이디어와 비슷합니다. 컨플루언스의 개인 공간에 주, 혹은 월 별로 페이지를 만들고 그 날 날짜를 쓴 다음 그 아래에 그 날 진행한 업무 기록을 남깁니다. 그런데 각각의 업무 기록은 그 이름만 나열하면 짧을 수 있지만 그 업무에 해당하는 기록은 좀 더 길어질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 링크를 만들어 그 업무 자체에 해당하는 기록을 다른 페이지에 좀 더 길게 남긴 다음 이전 페이지에 링크 해 둡니다. 이런 페이지가 늘어나면 어느 시점부터는 무한동력처럼 다른 업무를 할 때, 다른 업무에 대한 기록을 할 때 이전에 작성했던 업무 기록을 참조하거나 링크해 둘 일이 생기며 이런 링크가 늘어날수록 이후 업무의 시행착오를 급격히 줄일 수 있습니다.

처음으로 컨플루언스를 사용하던 팀에서 그 프로그래머님의 기록 방식을 흉내내 업무 내용을 적극적으로 기록했더니 일단 그 기록은 미래의 저 자신에게 도움을 주기 시작했습니다. 늘 반복하는 신규 레벨 생성 절차는 조금씩 바뀌어 항상 트러블슈팅에 시달려야 했지만 각 상황마다 문서를 계속해서 업데이트 하게 만들었고 또 여러 실험 기록들을 남겨 뒀다가 시간 날 때 훑어보면 새로운 시스템이나 메커닉 아이디어를 낼 때 큰 도움을 받을 수도 있었습니다. 또 저 말고도 위키를 유심히 살펴보는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기 시작했는데 업무 중 거의 실시간으로 지금 하고 있는 일을 계속해서 기록하고 있었기 때문에 제 개인 공간의 페이지를 보고 있으면 제게 말을 걸거나 자리에 찾아오지 않고서 제가 지금 뭘 하고 있는지 파악할 수 있습니다. 일단 오늘 업무 목록을 확인할 수 있고 이들 각각의 링크를 따라가면 뭘 했는지, 그리고 때때로 지금 당장 뭘 하고 있는지를 거의 실시간에 가깝게 텍스트와 스크린샷을 포함해 볼 수 있었는데 알고 보니 심심할 때 제 기록이 실시간으로 업데이트 되는 과정을 재미있게 구경하는 분들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덕분에 다른 일로 전환했다가 다시 돌아올 때, 한동안 다른 일을 한 다음 지난 마일스톤에 중단했던 일을 다시 시작하려고 할 때 이렇게 남긴 기록에 큰 도움을 받았고 주변 사람들에게도 도움 내지는 즐거움을 주는 역할을 합니다.

이후 컨플루언스 위키를 제공하는 다른 팀에서도 거의 비슷한 방식으로 일했습니다. 제가 회사에서 하는 일은 딱히 감출 것이 없다고 생각해 왔습니다. 제가 회사의 기밀을 취급하는 것이 아닌 이상 실무 수준에서 제 작업 방식, 작업한 내용 따위가 문서로 정리 되어 있으면 앞에서 설명한 대로 미래의 저 자신에게 도움을 주며 이 동시에 회사의 자산이기도 합니다. 제가 없어도 미래의 누군가가 과거의 제가 남긴 기록을 보고 도움을 받을 수도 있는데 가령 제가 그만 둔 지 몇 년이 지난 다음 그 팀에 간 다른 분이 오래 전에 제가 남긴 문서들을 살펴보고 어디서부터 일을 시작해야 할 지 파악하는데 도움을 받았다는 이야기를 듣고 회사의 자산이 잘 동작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데 이 때는 썩 유쾌하지 않은 일을 종종 겪기도 합니다. 종종 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다른 사람들에게 작업을 요청하거나 협업 부서의 상태를 확인하는 대신 제가 할 수 있는 한 목적을 직접 달성하기 위해 다른 부서의 업무 영역을 침범하곤 했는데 이 때는 그런 일이 그리 큰 문제가 될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또 협업 부서에서도 어차피 제가 필요한 작업을 수행할 여력이 없는 상황이어서 제가 작업해 놓는 행동에 딱히 문제를 제기하지도 않았습니다. 하지만 뭔가 문제가 생겼을 때, 책임 소재를 확실히 하기 위해 누군가를 손가락으로 가리켜야만 하는 상황이 발생할 때 그 상황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었지만 이전에 업무 영역을 침범하고 또 이를 별 문제 없다고 서로 구두 협의한 상태의 제가 지목될 때가 있었는데 심지어 제가 남긴 공개된 기록이 그 증거로 지목됩니다. 또 팀 단위의 업무 분담을 할 때 제가 공격적으로 수행한 업무 기록을 근거로 다른 팀이 담당해야 할 일이 저와 팀에 할당되려는 시도가 일어나기도 했고 또 협상 도중 제 기록을 근거로 저를 곤란한 상황에 몰아 넣기도 했습니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그들은 어떻게든 그 상황을 모면할 방법이 필요했고 마침 방대한 기록을 남기는 저는 그 기록 어딘가에서 이 상황을 모면할 작은 트집 하나 정도는 쉽게 발견될 처지에 놓여 있었습니다. 회사와 맺은 비밀유지 서약을 지키며 제 스타일로 업무를 진행하기 위해 남긴 여러 기록은 회사와 약속을 지키고 또 회사의 자산으로 남겨지겠지만 종종 여러 팀 사이에서 저를 곤란한 상황에 처하게 만들었고 과연 이렇게 회사와 약속을 지키며 기록을 남기는 일이 과연 저 자신에게 이로운가 하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습니다. 이런 일들을 몇 번 겪으며 서서히 회사 컨플루언스에 업무 기록을 남기지 않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기록 습관을 없앨 수는 없었기에 제 개인 컨플루언스에 같은 방식으로 기록을 시작합니다.

제 입장에서 크게 다를 것은 없었습니다. 다만 회사 컨플루언스는 당시까지 서버 기반이어서 좀 오래된 버전이었고 제 개인 컨플루언스는 클라우드 기반이어서 최신 버전이라는 점이 달랐습니다. 두 버전 사이에 테이블이나 미디어 핸들링이 상당히 달라 개인 컨플루언스에 기록하기 훨씬 편한 것은 사실이었습니다. 특히 회사 컨플루언스는 영상을 올리기는 아주 어려웠지만 개인 컨플루언스에 그런 제한은 없었습니다. 하지만 개인 컨플루언스에 기록하기 시작하는 순간부터 이 행동이 회사와 맺은 계약을 깨는 행동이라는 사실을 확실히 이해하고 있었고 이 행동이 분명 문제를 일으킬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당장은 제 업무 기록에 다른 사람들이 접근하지 못하게 되자 제 기록이 오히려 저를 공격하는 상황은 완전히 사라졌습니다. 몇몇 사람들은 제 기록이 더 이상 올라오지 않자 제게 무슨 일이 있느냐고 묻기도 했는데 여기에 제가 겪은 일을 설명하자 무슨 말인지 알겠다며 아쉬워하시기도 했습니다. 이전에 비해 이미지나 영상을 첨부하기 편해졌고 또 회사 컨플루언스에 비해 기록에 좀 더 솔직해질 수 있게 되어 미래의 제가 이 기록을 다시 볼 때 더 큰 도움을 받을 수 있게 됩니다.

하지만 여지 없이 회사 보안 부서는 제 보스에게 제 컴퓨터로부터 나간 기록을 첨부해 문제를 제기하는 메일을 보내 왔습니다. 사실 보안 부서는 자잘한 행동을 모두 문제로 지목하지는 않았는데 가령 퇴사 직전인 사람이 개인 메일로 전송하는 문서 몇 개 정도는 분명 계약을 위반하는 행동이지만 모른 척 해 줬고 업무시간이 부족해 작성하던 문서를 개인 매체에 전송한 다음 이를 집에 들고 가서 작성한 다음 다시 가져오는 정도의 행동도 알고는 있지만 문제 삼지는 않았습니다. 제 행동도 처음에는 그랬던 것 같은데 제가 본격적으로 개인 매체에 기록을 남기고 스크린샷, 영상 따위를 함께 첨부하기 시작하자 보안 부서에서 이건 좀 아니라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보스에게 불려가 문제 제기를 받았는데 사실 좀 고민이었습니다. 이 상황은 분명 회사와 계약을 깬 것이 맞지만 제가 회사 안에서 제 안위를 유지하며 업무를 수행하기 위해 필요한 조치이기도 했기 때문입니다. 회사가 이를 묵인해줄 수 있을지 알기 어려웠지만 하는 수 없이 상황을 설명하고 어차피 회사가 제 행동을 감시하고 있으니 제가 이보다 더 수상한 짓을 하지 않는 이상 이 행위를 묵인해 달라고 요청했고 정말 요행히도 회사가 이를 수용했습니다.

이런 회사의 배려 덕분에 이후 이전과 같은 수준으로 업무 기록을 개인 메체에 기록하며 그 중간에 나온 스크린샷, 영상 따위를 모두 문서에 포함했는데 이들은 당장 그 순간에는 그저 그 업무 자체를 수행하는데 도움이 됐을 뿐이지만 시간이 흐른 다음 모두의 머리 속에 기억으로만 남은 과거에 일어난 이벤트와 관련 스크린샷, 영상 따위를 찾아내 현재로 불러내는데 큰 역할을 합니다. 또한 저 역시 계속해서 과거 기록을 참고한 현재의 업무 진행 문서를 작성하며 적절한 생산성을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동시에 이 기록은 저와 회사 보안 부서에서만 볼 수 있었기에 제 기록을 근거로 협업 부서에서 저를 공격할 일이 없어졌고 부서 간 업무를 나눌 때 억울한 일을 당하지 않게 되었고 갑작스레 지목되어 뭔가 죄라도 지은 사람이 될 일도 사라졌습니다. 이후 회사는 저에게 이야기하지는 않았지만 여전히 저를 감시하고 있었고 종종 페이지에 스크린샷을 올린 다음 바로 이어 다른 문서를 올리려 할 때 이유 없이 그 문서만 실패하는 상황을 겪기도 했는데 ‘아 이건 안되나보다’ 하고 바로 포기했습니다.

여전히 회사가 지정한 매체에 기록을 남겨 가며 일하면 이 기록이 미래의 저 자신, 나아가 시간이 흐른 다음 팀에 온 다른 사람에게조차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또한 회사와 맺은 계약에 따라 제가 회사에서 남긴 모든 기록은 회사 소유이며 저는 이 기록을 악의적으로 회사 밖으로 반출하거나 비밀을 누설해서는 안됩니다. 악의적이지 않더라도 실수로라도 이런 행동을 해서는 안되며 이런 실수를 줄이기 위한 최소한의 경계가 바로 회사가 지정한 매체에만 기록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회사 정책을 따르고 제 스타일에 따라 업무 내역을 충실히 기록할 때 이 기록은 종종 저 자신을 공격하는데 사용되곤 했으며 이 점이 바로 업무 기록이라도 회사의 감시 하에 다른 사람들과 공유하지 않는 장소에 기록하기 시작한 이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