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새 PvE게임모드 개발은 실패할 수밖에 없었나
알맞지 않은 사례에 사용되는 MVP 모델 언급을 싫어하지만 범위를 조절하면 이 방법이 잘 어울리는 개발 분야가 있습니다.
지난 권고사직 끝부분에서 PvE 개발 비용을 줄일 수 없었을지에 대해 생각해볼 작정이라는 이야기를 했었고 이번에는 이 생각을 해 본 경과를 소개하겠습니다. 결과가 아니라 경과인 이유는 제 선에서는 어느 정도 결과 비슷한 상태에 도달했다 하더라도 생각을 계속하다 보면, 또 다른 경험을 하다 보면 생각은 달라질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간단히 상황을 설명하면 잘리기 전까지 진행하던 마일스톤 목표 중 하나는 게임 전체에서 핵심적인 반복 플레이를 담당할 PvE 모드를 개발하는 것이었습니다.
두 번째 비공개 테스트에서 이 모드를 플레이 가능한 상태로 공개해 고객들의 의견을 듣고 또 우리들 스스로도 우리들의 예상을 검증할 기회를 얻을 기회였습니다. 그런데 마일스톤 기간을 거의 다 쓴 시점 기준으로 새 PvE 게임모드는 이를 구성하는 여러 기능 조각들 각각은 어느 정도 개발 되었지만 단 한번도 처음부터 끝까지 이어지는 플레이에 도달하지 못했습니다. 이런 경험이 처음은 아닌데 이렇게 마일스톤 기간 끝까지 간신히 개발한 다음 그냥 그 상태가 고객들에게 나가는 바람에 개발하느라 피똥은 피똥대로 싸고 욕은 욕대로 먹는 억울한 일은 이전에도 있어 왔고 아마 이번에도 다르지 않을 겁니다.
본격적으로 PvE 모드 개발 이야기를 하기 전에 왜 이 PvE 모드를 개발하게 되었는지 배경 설명을 하면 상황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이 이야기는 조금 깁니다. 한창 메타버스와 크립토 게임에 수많은 고객들과 투자자들이 관심을 가지던 시대에 몇몇 게임은 게임 내 부동산을 판매해 막대한 경제적 성과를 달성했습니다. 제가 아는 범위 안에서 가장 유명한 사례는 디센트럴랜드인데 이 제품은 게임이라기 보다는 가상 세계 플랫폼에 가까웠습니다. 메타버스를 개발하겠다는 여러 플레이어들이 사례로 가장 자주 들고 나온 제품이기도 했습니다. 디센트럴랜드는 게임 상에 수량이 제한된 랜드 조각들로 구성되어 있고 이들은 격자 모양으로 배치되어 있습니다. 디센트럴랜드를 구성한 이 랜드는 하나하나가 NFT 모양으로 발급 되어 이더리움 블록체인 상에서 거래할 수 있었는데 극초반에는 어땠는지 잘 모르겠지만 이 사례가 있음을 알고 본격적으로 사례를 살펴볼 시점에는 랜드 가격이 치솟아 여러 유튜브 채널에서 ‘가상 부동산’의 개념을 설명하는 영상을 만들기도 했습니다. 또 널리 알려진 기업이 높은 금액을 들여 랜드를 구입하기도 하며 가상 부동산이라는 개념이 실제로 동작하는 것 아닌가 싶은 생각을 하게 만들었습니다.
여기서 잠깐 부동산의 특징을 살펴보고 지나갈 필요가 있는데 개인적으로 이 분야를 직접 공부한 것은 아니어서 제대로 된 특징이 아닐 수 있음은 양해 부탁 드립니다. 개인적으로 생각하는 부동산의 핵심은 그 수량이 제한되어 있고 기 개발된 인프라에 따라 가치가 크게 달라지며 모든 부동산은 서로 다른 고유한 특성을 가지고 있어 모든 부동산이 별도로 평가될 수밖에 없는 점입니다. 줄이면 제한된 수량, 그리고 모든 상품이 서로 다르다고 할 수 있습니다. 실제 세계에서는 이런 특징에 따라 부동산의 가격이 결정되고 또 부동산 그 자체 뿐 아니라 지역의 개발 호재, 정부의 정책 변경, 사회에 영향을 끼치는 어떤 사건, 경제 상황의 변화 등 다양한 요인이 가격에 영향을 끼칩니다. 디센트럴랜드의 가상 부동산은 수량이 제한되어 있다는 점에서 실제 세계의 부동산과 비슷하지만 모든 상품이 서로 다르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점에서 실제 부동산과 완전히 같다고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심지어 수량이 제한되어 있다는 특징 역시 실제 세계에서 간척사업 등을 통해 새로운 부동산을 만들어낼 수 있는 것에 비해 훨씬 낮은 비용으로 새 부동산을 만들어낼 수 있어 과연 수량이 제한되어 있다고 확신할 수 있을지도 잘 모르겠습니다.
한창 디센트럴랜드의 랜드 aka 가상 부동산이 큰 주목을 받을 때 여러 곳에서 가상 부동산의 개념에 대한 문제를 제기했고 상품 또는 자산으로써 이를 대하는 자세는 위험하다는 신호를 냈지만 그리 주의 깊게 받아들여지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제 시간이 흐른 다음 미래에 글을 쓰는 사람 관점에서 가상 부동산은 실제 세계의 부동산과 비슷한 취급을 하기에는, 심지어 가상이라는 접두사가 붙어 있다 하더라도 그 뒤에 부동산을 붙이는 것이 올바른 행동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일단 디센트럴랜드의 랜드는 현재로써는 수량이 제한되어 있습니다. 이는 마치 지구가 더 이상 확장될 여지가 없기 때문에 지구 상 모든 부동산의 수량이 제한된 것과는 달리 가상 세계라는 특징 때문에 필요에 따라 언제라도 수량이 제한되어 있다는 특성은 깨질 수 있습니다. 물론 이론적으로 이 과정에는 디센트럴랜드 파운데이션을 주축으로 한 의사결정기구의 결정을 통해야 하고 실제로 이를 실행하는 개발자들의 작업이 진행되어야만 합니다. 의사결정기구에는 기존 랜드 소유자들이 포함되어 있으니 자신들이 보유한 랜드의 가치를 떨어뜨릴 수도 있는 의사결정에 쉽게 동의하지는 않을 겁니다. 하지만 역시 이론적으로 많은 의결권을 확보한 개인이 의사결정을 밀어붙일 수 있어 수량이 한정된 특징은 지속 가능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모든 상품이 서로 다르다는 특징은 가상 부동산에 적용하기에 좀 곤란할 수 있습니다. 디센트럴랜드의 랜드는 사각형 모양의 랜드가 격자 모양으로 늘어서 있는데 랜드에 아무 것도 하지 않은 초기 상태는 그저 텅 빈 회색 땅바닥과 그 주변을 둘러싼 길일 뿐입니다. 어느 좌표에 있는 랜드라도 다르지 않습니다. 일단 이 상태만 놓고 생각해보면 사실상 모든 랜드는 동일하며 이들의 가격이 달라질 이유는 없어 보입니다. 실제 세계의 부동산이 서로 다르다는 특징을 여기서는 찾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디센트럴랜드 상에 주요 시설이 배치된 장소 주변의 랜드는 마치 이 주요 시설이 실제 세계의 인프라 역할을 하는 것 마냥 가격 차이가 일어나기 시작합니다. 가령 중앙 광장 주변의 랜드는 훨씬 높은 가격에 거래됐고 이들로부터 먼 구석의 랜드는 아주 낮은 가격으로 거래되거나 심지어 거래가 일어나지도 않습니다. 실제 세계에서는 부동산을 둘러싼 환경이 부동산에 큰 영향을 끼칩니다. 주변에 공원, 병원, 지하철 역 같은 기반 시설이 있다면 부동산은 이들로부터 아주 큰 영향을 받으며 이 사실은 가격에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가상 세계에서도 그럴지 생각해보면 이제 슬슬 헛갈리기 시작합니다. 실제 세계에서 부동산 주변의 인프라는 부동산의 활용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칩니다. 부동산 주변에 지하철 역이 있다면 다른 장소로 이동이 편리해지고 큰 병원이 있다면 사용할 일이 없다 하더라도 마음 한구석이 든든할 겁니다. 또 아주 가깝지는 않지만 또 아주 멀지는 않은 곳에 큰 도로의 접속 지점이 있거나 근처에 서울숲 같은 커다란 공원이 있으면 이 부동산을 통한 생활 수준을 크게 올려줄 겁니다. 그런데 가상 세계의 가상 부동산도 이런 인프라라는 개념을 동일하게, 혹은 비슷하게라도 적용할 수 있을까요? 실제 결과를 보면 가상 부동산의 인프라 개념은 가상 부동산의 가격에 영향을 끼쳤지만 실제로 인프라라는 개념이 있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디센트럴랜드는 커맨드를 통해 아무 좌표로나 순식간에 이동할 수 있습니다. 일단 대중교통이나 도로 접근성이 동작하지 않는다고 볼 수 있습니다. 또 가상 세계의 나는 아프지도 않고 밥을 먹을 필요도 없고 또 잠을 잘 필요도 없습니다. 주변의 병원을 이용할 필요도, 도서관에 갈 필요도, 장을 볼 필요도 없습니다. 이를 볼 때 인프라의 개념이 있다고 판단하는 것은 확실히 무리인 것 같습니다.
아주 잠깐 동안은 가상 부동산에 사람들이 관심을 가졌고 돈이 오가며 경제적 성과를 달성했던 것 같지만 사람들은 쉽게 방금 생각했던 의문을 가지기 시작했고 이런 의문을 무마할 지속적인 거래와 고객의 유입이 일어나지 않기 시작하자 가상 부동산의 가치는 한 번에 완전히 존재하지 않는 무언가가 됐습니다. 물론 마치 2023년 겨울 현재 호가를 유지하고는 있지만 결코 거래가 일어나지는 않는 한국 수도권의 부동산처럼 호가는 있지만 결코 거래는 일어나지 않는 상태입니다. 디센트럴랜드를 구성한 랜드는 가상 부동산이라고 말하기에는 부동산의 특징을 전혀 가지고 있지 않고 부동산과 비슷하게도 동작하지 않습니다. 만약 게임 규칙을 고쳐 가상 부동산이 실제 세계 부동산과 비슷하게 동작하게 만들려고 한다면 이는 그저 가상 세계의 활용을 불편하게 만들 뿐입니다. 가령 교통 인프라의 효과를 만들기 위해 고객들의 이동을 실제 세계와 같이 제한한다면 가상 세계 전체가 한 순간에 멈추는 결과를 가져올 겁니다.
한편 디센트럴랜드가 달성한 잠깐 동안의 성공은 여러 크립토 프로젝트를 자극해 모두가 랜드를 팔도록 만들었습니다. 이전에는 가상 부동산은 커녕 가상 세계라는 개념 조차 없던 프로젝트들이 갑자기 마치 원래 존재했고 또 원래 계획했던 것처럼 가상 세계를 도입하고 이 세계를 여러 조각으로 나눠 NFT로 만들어 판매하기 시작합니다. 디센트럴랜드의 랜드 하나를 구입한 다음 이를 어떻게 활용해야 할 지 고민하고 이 위에 메커닉을 만들거나 건물 인테리어를 대행하는 업체들마저 나타나던 시대에는 디센트럴랜드의 랜드를 구입하는데는 실패했지만 다른 크립토 게임 프로젝트들이 제안하는 다른 가상 부동산을 구입해 이 열차에 탑승해야 한다고 생각했을 사람들로부터 적당한 수준의 경제적 성화를 달성하기도 한 것 같습니다. 하지만 처음부터 가상 세계의 존재와 역할을 고려하지 않은 이상 난데없이 게임에 도입한 가상 세계와 이 세계를 조각 내 NFT 모양으로 만들어 판매하며 이 NFT 또는 가상 부동산의 용도를 갑자기 만들어낼 수는 없었을 겁니다. 몇몇은 오래된 소셜 게임이 자신의 땅 위에 여러 건물을 짓고 작물을 재배하는 등의 플레이로부터 영감을 받아 비슷한 것을 만들려 했지만 그런 간단해 보이는 메커닉이라도 갑자기 그럴싸하게, 그리고 기존 게임과 통합된 모양으로 만들기는 결코 쉽지 않았고 결국 어느 플레이어도 이를 제대로 만들어내지 못했습니다.
이번에도 시간이 조금 지나자 고객들은 당시로는 정말 힙하기 짝이 없는 블록체인, NFT, 가상 부동산 키워드를 모두 갖춘 랜드가 실은 가상은 맞지만 부동산도 아니고 내재 가치를 가지지도 않으며 심지어는 광고한 대로 동작하지도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한때 아무 프로젝트나 랜드 세일을 한다고 하면 사람들이 몰려들어 서로 여러 가지 방법으로 경매를 하고 블록체인 상에서 랜덤을 만들어내기 위해 온갖 괴상한 방법을 사용해 공정한 판매를 구축하는 등 온갖 이상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하지만 당장 프로젝트 팀이 남아 계속해서 개발이라도 하고 있다면 다행이지만 이들 거의 대부분은 게이밍 NFT를 판매했을 때와 마찬가지로 랜드 NFT를 판매했지만 더 이상 개발을 진행하지 않고 최소한의 커뮤니케이션 담당자를 남긴 채 사라져 버렸습니다. 고객들은 이런 러그풀 - 의도한 사기를 뜻하는 크립토 업계 용어 - 을 여러 번 당하다 보니 아직 제품이 있지도 않은데 일단 아바타 NFT를 판매하며 미래의 용도를 약속하는 프로젝트와 마찬가지로 아직 랜드를 활용할 수 있을 것 같은 제품 상태가 아니거나 심지어 제품이 있지도 않으면서 일단 랜드 NFT를 판매하며 똑같이 미래의 용도를 약속하는 프로젝트를 보면 이제 자동으로 이들이 러그풀임을 인식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런 상황이 되기 직전 개발을 시작해 게임에 랜드 개념을 넣을 계획이던 우리들에게 이러한 랜드에 대한 고객들의 평가 변화는 개발 계획을 크게 수정하도록 했습니다. 초기 개발 계획에는 아바타 NFT를 판매하고 또 랜드 NFT 역시 판매할 작정이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우리들 스스로도 이들의 미래 역할을 몰랐기 때문에 아직 존재하지 않는 제품으로부터 미래에 줄 수 있는 가치를 적당히 조절할 수 있는 여지를 둔 느슨한 언어로 설명하는 수준으로 작성하느라 골머리를 앓았습니다. 이 일의 일부를 맡은 저 역시 처음에는 ‘아니 아직 제품이 없는데 NFT를 통한 이익을 어떻게 정의해?’라며 이 지시의 모순을 지적했지만 시장의 모든 플레이어들이 똑같이 행동하고 있는 이상 지난 권고사직에 언급한 대로 일종의 전통을 따라야만 하는 상황이었고 결국 머리를 쥐어 짜 아직 존재하지 않는 제품에 대한 미래 가치를 설명하는 이상한 텍스트를 만들어낼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개인적인 관점에서 다행스럽게도 사례 조사를 할 때 암만 생각해도 이건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던 랜드 세일을 실행한 거의 모든 프로젝트가 랜드 NFT를 판매한 다음 그대로 사라져버린 덕분에 우리도 랜드 NFT를 판매해야 하는 목표는 명시적이지는 않았지만 적당히 사라져 가볍게 무시할 수 있게 됐습니다.
우리들이 고객을 대하는 태도는 우리들이 비록 고객들이 이전에 여러 차례에 걸쳐 러그풀을 당해 온 것과 같은 업계에서 비슷한 방식의 제품을 만들 거라고 광고하고 있지만 그들과 달리 우리는 실제로 제품을 만들어낼 능력이 있고 그에 걸맞는 탄탄한 계획 역시 가지고 있음을 어필하는 모양이었습니다. 그래서 거의 크립토 게임 업계의 전통 마냥 시행하던 랜드 세일을 수행하지 않기로 하고 아바타 NFT 세일 역시 세일 직후 이를 즉시 활용할 수 있는 첫 번째 빌드를 공개해 고객들의 의심 수준을 낮추고 지속적으로 우리들에게 관심을 가지게 만들기로 했습니다. 특히 랜드 세일을 제품 개발 이전에 하는 대신 이전에 디센트럴랜드가 그런 것처럼 제품 개발 후 랜드 세일을 하기로 하며 랜드 세일은 기존처럼 아무 내러티브 없이 냅다 랜드를 팔아 재끼는 방식이 아니라 적절한 설정에 기반한 내러티브를 통해 소유권을 획득하는 방식을 사용하기로 계획을 세웠고 이를 통해 고객들로부터 호응을 얻었습니다. 또한 메타버스를 만들면서 단순히 세계를 만들어 봤자 세계에 찾아올 이유가 없으면 순식간에 버려진다는 사실을 너무 잘 이해하고 있었기 때문에 세계에 찾아올 이유를 만들어야 하고 이를 전통적인 게임 문법을 통해 해결할 것이며 방금 설명한 랜드 세일 역시 자연스러운 게임 플레이의 일부로 동작하게 할 계획을 수립합니다.
랜드 세일을 게임의 일부로 편입해야 하는 가장 큰 이유는 기존 디센트럴랜드의 랜드 세일에서 나타난 구입한 랜드가 버려지는 문제를 완화하기 위한 목적이 가장 컸습니다. 실제 세계에서도 종종 일어나는 단지 보유 목적으로 토지를 구입한 다음 팬스를 치고 그 상태로 몇 년이고 방치해 여러 문제가 일어나는 현상이 가상 세계에서도 일어났습니다. 랜드 NFT를 구입한 사람들은 디센트럴랜드라는 가상 세계에 관심이 있어 이 세계에서 뭔가 해 보려는 경우도 있었지만 랜드 소유주 상당수는 그저 디센트럴랜드의 랜드를 일종의 자산으로 접근했으며 이들에게는 인게임 상에서 랜드의 동작은 그리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아예 클라이언트를 실행하지도 않은 채 그저 좌표 상에 나타난 랜드 NFT를 구입하고 그냥 방치했는데 이런 랜드가 늘어나자 넓은 범위에 걸쳐 텅 빈 세계가 나타나 이 세계 전체가 버려진 것 같은 느낌이 들게 만들었습니다. 또한 디센트럴랜드 자체가 NFT를 통한 랜드 소유 및 통제를 같은 개념으로 묶어 소유자가 직접 랜드를 통제하지 않는 이상 그 누구도 랜드를 통제할 수 없어 이렇게 소유주는 있지만 인게임 상에서는 버려진 랜드를 어떻게 할 방법이 없어 곤란을 겪었습니다. 이는 나중에 디센트럴랜드 오프체인 랜드렌탈, 왜 디센트럴랜드 파운데이션 지갑으로 랜드를 옮겨야 할까에 언급한 랜드 렌탈 개념을 도입해 해결하려고 한 것 같은데 성공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이런 현상에 대한 우리들의 접근은 랜드 NFT를 소유하려면 돈 뿐 아니라 인게임에 공헌해야만 하도록 게임 디자인을 구축하는 것입니다. 설정에 따라 이 세계는 여러 랜드로 구성되어 있긴 하지만 어떤 이유로 지금 당장 그 랜드를 구입할 수 있지 않은데 PvE 게임 모드를 플레이 하며 세계의 상태를 개선하면 어느 시점에 랜드를 구입할 수 있게 되고 이 때 랜드를 구입할 자격을 가지는 사람은 게임 플레이에 지속적으로 참여해 어떤 포인트를 획득한 사람들로 제한하며 이들은 자신의 구매 권한을 판매할 수 있도록 해 직접 랜드를 구입하지 않더라도 플레이를 통한 이익을 얻을 수 있도록 하는 계획을 세웁니다. 자. PvE 게임모드에 대해 저와 같은 맥락을 공유하기 위해 굉장히 멀리 돌아왔는데 바로 이 지점에 PvE 게임모드가 필요했습니다.
PvP가 아니라 PvE인 이유는 PvP 게임모드는 좀 더 미래에 랜드를 유지보수할 이유를 만드는데 사용할 생각이었기 때문입니다. 랜드에 유지보수 필요를 만들 이유는 이제 예상할 수 있듯 위에서 버려진 랜드를 만들지 않기 위함이었습니다. 이제부터 개발해야 하는 PvE 모드는 랜드를 획득할 권한을 얻기 위해 반복해서 플레이 할 수 있어야 하고 이 반복에도 불구하고 플레이가 재미있어야 하며 다양한 상황이 발생해 예상하지 못한 경험을 줄 수도 있어야 하고 또 가상 세계에 존재하게 될 여러 지역에 따라 메커닉의 구성을 쉽게 조절할 수 있어야 했습니다. 첫 번째 비공개 테스트에서 NFT 업계에 널리 알려진 한 디자이너의 몬스터를 가져와 우리가 에셋을 만든 다음 이를 처치하는 PvE 모드를 만들었었는데 이런 플레이는 몇 번 플레이 하기에는 괜찮았지만 장기간에 걸쳐 반복하게 만들기에는 무리가 있었습니다. 기획팀에서는 여러 사례를 살펴본 끝에 그리 널리 알려지지는 않은 독특한 멀티플레이 FPS 장르로부터 영감을 얻어 이와 비슷한 협동 PvE 모드를 개발할 계획을 세웁니다. 이 게임모드는 한 가지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다양한 메커닉이 있지만 이들의 근본적인 동작과 목표가 동일해 서로 다른 메커닉을 접하더라도 이들을 통해 플레이 방향이 약간 달라질 뿐 목표는 일정하게 유지하려고 했습니다.
이 계획은 꽤 괜찮아 보였고 테스트 레벨에 대충 아무 에셋이나 갖다 붙여 만든 프리젠테이션이 경영진에게 받아들여지면서 이번 마일스톤에 가장 큰 비용을 사용하는 목표로 확정됩니다. 개인적으로 위 그림을 싫어하는데 누군가 저 그림을 꺼낼 때마다 ‘빌어먹을놈의 오도바이 그림’이라며 짜증을 내곤 합니다. 이 그림은 작은 범위에서는 올바르지만 범위가 조금만 넓어지면 이를 잘못 이해한 사람들이 완전히 잘못된 접근을 하게 만들며 자신의 잘못된 접근에 대한 이유로 이 그림을 들고 와 상황을 수습하기 굉장히 힘들게 만들곤 하기 때문입니다.
가령 위 그림을 보고 감화된 나머지 범위를 잘못 설정한 채로 접근하면 우리는 미래에 MMO 게임을 만들 예정이지만 한 번에 그 단계에 도달할 수는 없으니 먼저 규모가 작은 MO 게임을 개발하고 이를 바탕으로 개선해 원래 목표로 나아가자는 이상한 이야기를 아무렇지도 않게 하게 될 수 있습니다. 대략 눈치 채셨겠지만 소프트웨어는 그 규모에 따라 서로 상당히 다른 방식으로 개발해야 합니다. 가령 아주 넓지는 않은 레벨에 몬스터 몇 십 마리가 등장하는 던전을 만들 때 사용한 기술은 플레이어 수 십 명이 동시에 한 레벨에서 서로 상호작용하는 게임을 만들 때 사용할 기술과 완전히 다릅니다. 즉 먼저 작은 게임을 만들고 이 결과에 기반해 다음으로 나아가자는 판단은 완전히 틀렸습니다.
하지만 이 ‘빌어먹을놈의 오도바이 그림’도 범위를 축소하면 올바른 의미로 바뀌기도 하는데 가령 이번에 개발을 진행한 PvE 게임모드에 적용한다면 올바른 그림일 수 있습니다. 새로운 PvE 게임모드는 계획부터 아주 거창했기 때문에 처음부터 많은 자원을 할당해 개발을 시작했습니다. 이 모드에는 다양한 메커닉이 필요했는데 여기에는 우리가 아직 제대로 만들어본 적 없는 것들도 포함하고 있었습니다. 이전에 우리는 거대 보스와 싸우는 PvE 모드를 만들며 FPS나 TPS를 개발할 것을 가정하고 만들어져 꽤 다양한 요구사항에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는 언리얼 엔진이라도 우리가 원하는 동작을 만들기 위해서는 꽤 많은 부분에 손을 대야 한다는 사실을 지난 마일스톤의 경험을 통해 알고 있었습니다.
또한 우리들은 아직 슈터 장르에서 당연하게 체험하곤 하는 여러 기능을 아직 개발하지도 않은 상태였는데 가령 스나이퍼라이플의 스코프를 통한 줌인, 엄폐물 뒤에 있을 때 플레이어의 상태 제어, 길이가 긴 총기를 들고 장애물에 접근할 때 처리, 상하체가 분리된 상태에서 여러 행동을 시도하려고 할 때 원활한 처리 같은 당연한 기능이 아직 온전하게 동작하지 않는 상태였는데 이는 이 장르를 한참 플레이 해 본 사람들이 만져보면 바로 알 수 있는 문제였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눈에 띄지도 않을 법한 문제들이었습니다. 이런 상황과 함께 새 PvE 모드 플레이 시나리오는 꽤 넓은 레벨에서 다양한 물체 동기화, 이들의 상호작용, 탑승자 전체를 동기화하며 이동하는 탈것, 지나가며 먹는 아이템, 탈것의 변신에 따른 동작 변화, 멀티플레이 환경에서 연출 제어 같은 온갖 요구사항을 포함하고 있었습니다.
이 상황에서 담당자는 플레이 시나리오 전체를 달성하기 위한 여러 기능을 분해해 각각의 개발을 진행하기 시작했고 이 계획은 적어도 각각의 기능 범위 안에서는 순조로워 보였습니다. 하지만 이제 몇 달이 지난 후 그동안 일어난 일을 모두 알고 있는 미래 사람 관점에서 이 개발은 이렇게 진행해서는 안 됩니다. 일단 우리는 새 PvE 게임모드가 실제로 유효한 플레이를 유도하는지, 또 재미있기는 한지, 모든 메커닉이 의도대로 동작하는지 끝까지 알 수 없었습니다. 물론 우리가 참고한 어떤 게임에서 이 모든 메커닉이 잘 동작했기 때문에 크게 걱정하지는 않았지만 메커닉이 잘 동작한 것은 그들의 게임에서일 뿐이었고 우리가 복제한 결과에서 메커닉이 동작할지 여부는 실제로 플레이를 해 봐야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모든 기능 각각은 기능 자체가 동작했지만 이들을 통합한 개발은 예상 외의 여러 가지 문제를 만나 순조롭게 늦어졌습니다. 그런데 이 통합 개발에서 겪은 문제 상당수는 기존에 개발된 여러 기능을 전체 플레이에 통합하다가 일어난 문제였습니다. 가령 이 모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멀티플레이 환경에서 탑승자들 모두를 동기화하며 이동하는 물체였는데 게임의 진행 상태에 따라 이 물체는 느린 이동, 빠른 이동, 정지, 변신, 재출발 같은 여러 상태에 따라 달리 행동해야 했고 이 물체를 둘러싼 환경 역시 이에 맞춰 의도한 시나리오 대로 동작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이 물체의 제어, 그리고 시나리오 제어가 삐걱거리자 지금까지 개발한 온갖 자잘한 메커닉은 서로 통합되지 못하는 상태가 됩니다.
결국 권고사직이 일어난 당일에도 이 모드 담당자들은 지난 몇 달 동안에 걸쳐 단 한번도 처음부터 끝까지 수행되는 플레이를 경험하지 못했고 여전히 플레이 시나리오를 처음부터 끝까지 달성하는 각 단계마다 발생하는 문제를 해결하고 있었습니다. 이제 이 프로젝트에 더 이상 관여할 수 없게 될 입장에서 이 모드 개발은 결국 실패할 겁니다. 언젠가 완성할 수는 있겠지만 성공 조건인 마일스톤 기간 내 개발 및 조립 완료, 그리고 비공개 서비스를 통해 제한된 고객들에게 공개하는 목표는 달성하지 못할 겁니다. 이제 와서 제가 할 일에 집중하며 전혀 신경 쓰지 않던 새 PvE 모드 개발에 이렇게 이야기 해 봐야 아무 소용 없지만 이 모드는 플레이 시나리오에 맞춰 곧이곧대로 모든 메커닉 각각을 개발하는 방식으로 개발해서는 안 됐습니다. 이는 마치 위에 제가 그토록 싫어하는 그림의 윗 부분처럼 개발하는 것과 같습니다. 몇 달에 걸쳐 엄청난 비용을 들여 개발했지만 여전히 이 물체는 단 한 발자국도 이동하지 못했으며 미래에 이 물체가 이동하게 된다 하더라도 이동 과정에서 일어나는 온갖 문제를 수정할 일이 남아 있습니다.
반면 위 그림의 아래 방식으로 개발한다면 플레이 시나리오에 언급된 모든 메커닉을 개발하기 시작하는 대신 플레이 시나리오를 몇 가지 단계로 나눠 최종 목표인 보스를 처치하고 이동하는 물체가 목적지에 도착하게 만드는 핵심 시나리오를 개발해 돌아가게 만든 다음 이 상태에서 일어나는 문제를 해결하기 시작했어야 합니다. 일단 핵심 시나리오가 동작하기 시작하면 다음 단계 플레이 시나리오로 넘어가 플레이를 다채롭게 해 줄 메커닉, 연출, 상태 따위를 차츰 개발하며 처음 개발했던 핵심 시나리오에 덧붙이고 이 통합 과정에서 일어나는 문제를 해결하는 사이에 다음 메커닉을 개발하기를 반복하는 방식으로 일단 ‘굴러는 가는’ 모양을 만든 다음 이를 계속해서 확장하는 방식으로 개발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면 마일스톤이 끝나갈 무렵 목표로 삼은 전체 플레이 시나리오를 달성하지 못했더라도 현 시점에서 플레이 가능한 PvE 모드를 가지고 있었을 겁니다. 여기에는 처음 계획했던 플레이를 더 재미있게 만들어 줄 몇몇 메커닉이 누락되었겠지만 일단 게임이 돌아는 가는 상태이므로 아쉽긴 하지만 이 상태로 마무리 해 제한된 고객들을 대상으로 한 작은 서비스를 할 수는 있었을 겁니다.
비용을 줄여 팀의 런웨이를 확보하기 위해 권고사직 된 사람이 이런 이야기를 해 봐야 이제 소용 없지만 모든 메커닉을 개발하며 접근한 덕분에 아직 까지 단 한번도 끝까지 동작한 적 없는 상태로는 제한시간 안에 플레이 가능한 상태로 만들 가능성은 없습니다. 종종 위에 인용한 그림은 이를 잘못 이해해 너무 넓은 범위에 개념을 적용하려 드는 사람들을 설득하느라 제 인생을 피곤하게 만들곤 해서 굉장히 싫어하기는 하지만 올바른 범위에 적용하면 지금으로는 성공할 수 없어 보이는 개발을 조금 아쉬운 상태로 성공할 수 있게 만드는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합니다. 다른 한 편으로는 관리자 입장에서 이런 개발 방식의 위험성을 알고 있었으면서도 제가 직접 터치할 수 있는 입장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미움 받을 용기 없는 상태에 매몰되어 어쩌면 성공할 수도 있었을지 모르는 개발을 실패하게 만들지 않았나 싶기도 합니다. 갑작스러운 결말이지만 여기까지 새 PvE 개발이 왜 실패했는지 개인적으로 생각해본 의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