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인벤토리에서 아이템을 더블클릭 해서 사용하게 만들었을까?

인벤토리에서 아이템을 바로 사용할 수 있는 게임과 그렇지 않은 게임은 그 의도가 크게 다릅니다.

왜 인벤토리에서 아이템을 더블클릭 해서 사용하게 만들었을까?

오래 전에 장착한 아이템이 인벤토리에 남아있는 게임은 왜 그럴까를 설명한 적이 있는데 시간이 흐른 다음 다시 읽어보니 의문을 제기했지만 제대로 설명하지 않고 글이 끊어진 느낌을 받아 당황했습니다. 그래서 이 블로그의 전통(?!)대로 기존 글을 고치는 대신 같은 주제를 다시 설명한 장착한 장비가 인벤토리를 차지해야 할까요?를 작성했습니다. 이 링크들을 클릭해볼 필요 없이 핵심을 설명하면 인벤토리에 장착한 무기가 남아 있는 게임은 인벤토리로부터 무기 장착 상태를 계속해서 확인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주로 잘못된 장비를 장착하고 있을 때 그로부터 일어나는 패널티가 크고 고객들이 이런 상황에 민감한 경우 장착한 아이템을 인벤토리에 남겨 항상 점검할 수 있게 합니다.

여기서 게임 스타일에 따라 인벤토리 요구사항을 확장해 가면 왜 인벤토리에서 아이템을 자동으로 사용할 수 있나요?에서 설명했듯 인벤토리가 일종의 항상성을 유지하는 수단 및 아이템을 소모하는 다양한 종류의 스킬 인터페이스에 빠르게 접근하는 일종의 넓은 바로가기 인터페이스 역할을 합니다. 이런 의미를 이해하면 왜 인벤토리 크기를 키워야 하나요?, 인벤토리 한 칸에 아이템을 몇 개 까지 겹칠 수 있나요? 같은 질문에 답할 수 있게 되며 근본적으로 개발하는 게임의 인벤토리 인터페이스 설계 철학을 정립할 수 있게 됩니다. 현대의 멀티플레이 게임에서 고객이 게임에 들인 시간과 노력을 게임에 남겨두기를 원한다면 인벤토리 같은 수단을 채용하지 않기 어렵고 일단 인벤토리를 게임에 채용했다면 용도와 특징을 잘 이해해야 이상한 의사결정을 피할 수 있습니다.

한편 최근에 인벤토리를 설계하는 업무를 팀에 할당했는데 개인적으로는 우리들이 이미 이 장르 게임을 제법 플레이 해 봤고 다른 장르와 지금 우리가 만들고 있는 장르 사이에 인벤토리가 가지는 특징을 서로 잘 이해하고 있을 거라고 예상했습니다. 그런데 초반에 담당자님과 제가 생각을 맞춰 가는 과정에서 서로 생각이 상당히 다르다는 사실을 알게 됐고 서로 의견을 말해 생각을 맞추는 과정에서 서로 생각한 인벤토리 모양이 서로 상당히 달랐음 역시 파악하게 됩니다. 저는 이전에 플레이 하던 싱글플레이 오픈월드 FPS 게임의 인벤토리를 상상했고 담당자님은 이전에 익숙하게 만들던 모바일 MMO 게임의 인벤토리를 상상하고 있었습니다.

스크린샷을 찍어 놓고 보면 이들 두 장르 게임의 인벤토리는 그저 그리드 모양에 아이템 아이콘이 늘어선 비슷한 모양이지만 이들 사이에 아이템을 사용하는 방법, 아이템 정렬에 대한 요구사항, 아이템 필터링 방법 따위가 서로 상당히 다르기 때문에 이를 잘 정리해 두지 않으면 한참 설계를 진행한 다음에 문제를 발견해 비용을 낭비하게 될 수 있습니다.

인벤토리에서 아이템을 더블클릭 하거나 아이템에 커서를 놓고 ‘사용’ 메뉴 또는 버튼을 조작해 아이템을 사용하는 방식은 너무 익숙하게 사용해 와서 이 방법 말고 다른 방법이 있을까 싶은 생각을 하게 만들기도 하지만 모든 게임이 그런 것은 아닙니다. 게임에 따라서는 인벤토리에 있는 아이템은 항상 다른 아이템과 합쳐지거나 별도 영역에 장착되거나 퀘스트 아이템처럼 소유 여부로 진행 상태를 파악하거나 재화 처럼 거래에 활용될 뿐 인벤토리 자체에서는 사용할 수 없는 경우도 있습니다.

가령 위에서 제가 생각한 싱글플레이 오픈월드 게임 사례에는 얼마 전까지 플레이 하던 파크라이 6이 있는데 이 게임에서는 인벤토리에서 아이템을 직접 사용하는 개념이 없습니다. 인벤토리에 있는 장비를 클릭해 장착하고 세계 곳곳에서 입수한 재료 아이템을 베이스캠프에 있는 상인에게 팔아 상위 재료를 얻거나 제작에 사용합니다. 총알, 수류탄, 야구공, 다이너마이트 같은 소모성 아이템이 있지만 이들은 별도의 ‘아이템 사용’ 인터페이스를 통해 사용하며 인벤토리 자체에서는 아이템을 사용할 수 없습니다. 이렇게 설계한 이유는 이 게임 자체가 플레이어의 ‘행동’에 의해서 세계에 변화를 일으켜야 하며 플레이어 자체는 성장하지 않고 또 성장하지 않는 플레이어의 항상성을 유지할 필요도 없기 때문입니다.

일단 파크라이 세계에서 플레이어캐릭터 자체는 롤 플레잉 장르처럼 성장하지 않습니다. 그저 메인 퀘스트를 플레이 해 감에 따라 더 넓은 세계를 발견하고 더 많은 자원을 발견하고 더 좋은 무기를 제작하고 더 빠르고 강한 탈것을 입수하기를 반복할 뿐입니다. 동물의 숲과 디아블로의 성장 표현 방법에서 설명한 대로 캐릭터 자체를 성장 시키기 보다는 캐릭터를 둘러싼 세계를 변화 시켜 성장을 표현하는 게임입니다. 그래서 이 장르에서는 아이템 사용 대상이 ‘자기 자신’인 아이템을 인벤토리에서 사용하는 플레이에 의미가 없습니다.

총알, 수류탄, 다이너마이트, 야구공 같은 소모성 아이템은 모두 장착해서 플레이 도중 직접 사용하는 방식을 택해 아이템의 사용은 플레이어를 대상으로 하는 대신 플레이어를 둘러싼 세계 자체를 향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인벤토리는 아이템을 사용하는 인터페이스를 제공할 필요가 없습니다. 만약 인벤토리에서 포션을 사용하게 만들었다면 한참 총격전을 벌이다가 ESC 키를 눌러 인벤토리를 열어 포션을 스크롤 해서 더블클릭해서 사용한 다음 다시 ESC 키를 눌러 인벤토리를 닫는 완전 이상한 플레이를 만들어냈을 겁니다.

반면 최근에 플레이 한 디아블로 4에서는 인벤토리 인터페이스가 화면을 절반만 가리며 인벤토리와 함께 프레이어의 성장 정보를 함께 보여줘 정보 밀도가 높은 형식을 보여줍니다. 먼저 인벤토리가 화면의 일부만 가려 인벤토리를 연 상태에서 게임 속 상황을 볼 수 있도록 만든 이유는 인벤토리를 연 상태에서도 언제든 공격 받을 수 있는 게임이기 때문입니다. 인벤토리 인터페이스 설계 철학에서 몇몇 모바일 게임의 서로 다른 인벤토리 모양을 비교했는데 인벤토리가 화면 일부만을 가리는 게임은 인벤토리를 연 상태에서도 게임 상황을 항상 관찰해야만 하는 장르이거나 인벤토리 상에서 아이템을 직접 사용할 수 있어 인벤토리가 사실상 일종의 스킬 바로가기 같은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가령 왜 슬롯을 아래로 당기면 위로 올라가나요?에서 설명한 모바일 리니지 시리즈의 아이템 및 스킬 자동사용 인터페이스는 인벤토리를 열지 않아도 필요한 아이템과 스킬을 고객이 원할 때 즉시, 혹은 필요할 때 자동으로 사용하게 만들지만 이 바로가기가 게임이 요구하는 모든 상황에 대응할 수 있지 않습니다. 게임은 점점 확장되어 가고 고객 역시 게임에 점점 더 잘 적응하면서 게임이 제공하는 다양한 아이템과 스킬을 효과적으로 사용해 게임 속 여러 상황에 더 똑똑하게 대응하기 시작하는데 이 상태로 시간이 흐를 수록 고객이 빠르게 접근하기를 원하는 바로가기 인터페이스에 올려 놓고 싶은 아이템과 스킬의 종류가 점점 늘어나고 결국 고객은 첨예한 상황에 대응하기 위해 아예 인벤토리를 열어 놓고 인벤토리 전체를 현황판이자 스킬 및 소모성 아이템 바로가기 처럼 사용하기에 이릅니다.

장착한 장비가 인벤토리를 차지해야 할까요?에서 설명했듯 인벤토리에 장착한 아이템이 남아 표시되어야 하는 이유는 굳이 장착 슬롯을 열지 않고서도 인벤토리 인터페이스를 통해 올바른 아이템을 장착하고 있는지 계속해서 확인해야만 하기 때문입니다. 인벤토리를 열고 플레이 해야 하는 이유는 게임이 제시하는 다양한 상황에 대응하기 위해 항상 인벤토리에 있는 다양한 스킬, 소모성 아이템을 언제든 사용할 수 있도록 준비되어 있어야 하기 때문이며 이 요구사항에 대응하기 위해서 인벤토리는 화면의 일부만 가려야 하고 아이템은 항상 더블클릭 같은 쉬운 동작으로 사용할 수 있어야 합니다.

또한 이런 요구사항에 기반해 인벤토리는 고객 별로 서로 다른 중요도로 아이템을 정렬하고 싶어 하기 때문에 오름차순 정렬 및 내림차순 정렬 기능을 제공하고 동시에 드랍다운 박스에 여러 줄로 표시되는 다양한 아이템 정렬 방법을 제공해야만 합니다. 가령 인벤토리 맨 처음부터 현재 장착 중인 무기, 주문서류로 대표되는 소모성 아이템에 기반한 스킬 목록, 항상성 유지를 위해 자동 사용되는 물약류, 빠르게 특정 능력치나 체력을 복구해 주는 물약류, 목표 삼은 아이템의 종류와 수량을 파악하기 위한 수집 아이템 목록을 차례대로 나열해 놓고 플레이 하려는 고객에게 인벤토리는 즉시 사용 방법, 서로 다른 여러 가지 정렬 방법을 함께 제공합니다. 그래서 국내에 꽤 흔한 모바일 MMO 게임 상당수가 비슷한 모양과 기능의 인벤토리를 제공합니다.

만약 여기서 초반 판단에 실패해 인벤토리를 열고 플레이 하는 게임을 만들었지만 인벤토리가 화면 전체를 가리도록 만들어 버렸고 이를 수정할 비용이 너무 비싸다면 제2의나라 아이템 자동사용 인터페이스처럼 별도의 화면을 가리지 않는 항상성 유지 아이템 인벤토리를 제공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근본적으로 인벤토리가 화면 전체를 가리지 않았다면 이런 인터페이스가 필요하지도 않았을 겁니다.

이런 관점들을 교환하며 우리 게임에 들어갈 인벤토리 요구사항을 다시 정의하고 담당자님과 제가 요구사항을 비슷한 수준으로 이해하는데 시간을 사용했습니다. 일단 다행히 초반에 시간을 사용해 서로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이를 비슷하게 맞출 수 있었습니다. 아마 또 다시 근미래에 이런 생각의 차이로 인한 비용 손실이 발생하겠지만 어쩔 수 없습니다. 더 자주 생각을 교환해 손실을 줄일 뿐입니다. 이 이야기를 나누며 개인적으로도 지금까지 서로 다른 여러 글에 분산해 소개한 게임마다 다른 인벤토리 요구사항들에 대한 생각을 정리하고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기회가 되었습니다.

결론. 게임마다 인벤토리는 서로 꽤 다른 모양이고 또 다른 기능을 제공하는데 여기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게임에 따라 인벤토리를 연 상태로도 게임 진행을 신경 써야 하기도 하고 인벤토리가 바로가기 역할과 아이템 장착 현황, 목표 달성 현황을 파악하는 종합 상황판 같은 역할을 하기도 합니다. 이에 따라 인벤토리 인터페이스를 설계해야 하는데 만약 초반에 이런 요구사항이 확실하지 않은 상태에서 잘못된 모양으로 설계할 경우 나중에 추가되는 게임 요구사항과 인터페이스가 맞지 않는 상황에 놓여 어쩔 수 없이 군더더기처럼 보이는 보조 인터페이스를 추가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게임에 인벤토리가 있다면 게임이 지향하는 바에 따라 인벤토리 인터페이스는 그에 맞춰 달라져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