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백고지
2016년 11월 중순 즈음에 제주도에 자전거를 가지고 갔습니다. 이전에 제주도에 자전거를 가지고 갔을 때는 종주수첩에 도장을 찍는 중이어서 둘렛길을 돌았습니다. 둘렛길은 재미있지만 오르막이 거의 없어서 조금 지루한 느낌이었습니다. 사실 그 때는 오르막에 딱히 관심이 없을 때여서 지루하다는 느낌도 딱히 없었지만 오르막에 관심을 가지고 나서는 코스 지형에 굴곡이 없으면 뭔가 심심했습니다. 제주도에는 둘렛길 뿐 아니라 천백고지가 있었고 그래서 이번에는 올라가 보기로 했습니다.
천백고지는 국내에서 자전거로 올라가볼 수 있는 포장도로 중에서 획득고도가 가장 높은 곳 중 하나라고 합니다. 다른 높은 곳은 지리산에 있다는 모양인데 조만간 가볼 작정입니다. 노형오거리부터 천백고지까지 올라가면 1031미터를 올라가게 됩니다. 가끔 외국에서 자전거 타는 분들을 보면 한방에 몇 천 미터나 되는 오르막을 오르기도 하는데 기회가 되면 그런 곳에도 가볼 수 있으면 좋겠다 싶습니다. 지리산에 가기 전까지는 1031미터가 제 스트라바 기록에서 가장 높은 기록으로 남을 겁니다.
공항에서 출발해 용두암 근처에서 아침을 먹었습니다. 아침 먹고 근처 편의점에 들려 보급한 다음 노형오거리 쪽으로 나갑니다 이 동네는 아마도 제주도에서 가장 붐비는 동네가 아닐까 싶은데 온갖 렌터카 샵이 다닥다닥 붙어 있고 버스와 트럭과 기타등등 도로에 나올 수 있는 모든 것들이 뒤섞여 달리고 있습니다. 공항에서 제주도 자전거도로로 들어간다면 올 일이 없는 길이지만 천백고지에 올라가려면 지나가지 않으면 안 되고 제주 시내는 자전거로 다니기에 아주 안전하지는 않습니다. 일단 노형오거리에서 좌회전해서 남쪽 방향으로 내려가기 시작하면 점점 차량이 줄어듭니다. 그리고 나서는 천백고지까지 거의 외길입니다.
완만한 오르막이 20킬로미터 조금 안 되게 이어집니다. 스트라바의 코스 정보에는 평균경사도가 5%라고 나오는데 체감은 그보다 더 완만했습니다. 대관령보다 조금 긴 정도가 아닐까 하는 느낌입니다. 본격 오르막이 시작되기 직전 편의점 앞에 커다랗고 멋진 오토바이를 탄 아저씨들 여러 명을 봤는데 오토바이로 올라가 보는 것도 재미있겠다 싶었습니다. 그분들은 먼저 점이 되어 사라졌고 우리는 꾸역꾸역 올라가기를 계속합니다. 올라가는 동안에 해발 100미터마다 비석이 서 있어 사진 찍는 것도 재미있고 올라가다가 문득 뒤를 돌아보면 평쳐지는 풍경도 기억해둘만 합니다. 한 600미터쯤 올라가기 시작하면 뒤를 돌아볼 따마다 놀랐습니다.
올라가다 보면 끝은 금새 나옵니다. 투어 세팅으로 짐을 잔뜩 달고서도 두시간에 한참 못 미치는 시간이면 천백고지에 도착할 수 있습니다. 다만 올라갈수록 바람이 심해지기 때문에 큰 가방을 달고 있다면 좀 부담스러울 수 있고 올라갈수록 기온이 낮아지기 때문에 중간에 옷을 입어야 할 수도 있습니다. 기회가 될 때 짐을 최소한만 들고 올라오면 훨씬 빨리 올라올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천백고지를 지나 남쪽으로 내려와 산록남로를 거쳐 미로객잔까지 갔습니다. 천백고지를 지나면 꽤 긴 구간이 내리막입니다. 원래 계획은 516 도로를 돌아서 미로객잔에 가는 것이었지만 귀찮아져 그냥 지나쳤습니다. 다만 산록남로는 관광버스와 대형트럭이 많이 다닐 뿐 아니라 렌터카 운전자들이 상당히 험하게 주행해서 이쪽 역시 아주 안전하지는 않았고 별로 다시 달리고 싶은 길은 아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