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가 후 업무 파악은 고통스럽습니다
휴가 후에는 다른 분들처럼 바로 업무를 시작하는 대신 이전 업무를 파악하는 과정을 거치고 있습니다.
한 번에 휴가 여러 개를 쓴 다음 멀리 다녀오면 출근하기 전날 저녁에 걱정하기 시작합니다. 다른 사람들은 별로 그렇지 않은 것 같은데 오랜만에 출근해 이전에 하던 일을 이어서 하려고 보면 그 일들이 꽤 생소하게 느껴져 그 모든 일을 다시 파악하고 다시 익숙한 느낌이 들게 만드는데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프로젝트에 어떤 분들은 휴일이나 휴가 동안에도 계속해서 회사 슬랙을 보고 멘션에 반응하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정신적으로 안전하지는 않은 행동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디에서도 일 생각과 실제 일을 멈출 수 없다면 퇴근해서 쉰다는 개념이 없어지고 정신력이 엄청나게 충분하지 않다면 문제가 생길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퇴근한 다음, 주말, 휴가 동안에는 의식적으로 일에 대한 생각을 안 하려고 하고 또 회사로부터 오는 멘션 수준의 연락에 응답하지 않기 위해 아예 알림이 오지 않도록 해 둡니다.
이런 행동의 댓가로 정신적인 안정을 얻었지만 한편 쉬고 난 다음 출근해서 한동안은 분명 제가 하다 만 일인데도 마치 다른 사람이 한 일을 이어서 하는 것 같은 생소한 느낌을 받기도 하고 또 출근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다른 누군가가 이전에 진행하던 일에 대해서 질문한다면 상당히 당황하곤 합니다. 실은 최근에는 어떻게 된 일인지 이런 질문에 유창하게 대답해 버려서 그 대답을 하는 저 자신을 바라보는 또 다른 제가 ‘뭐야 얘 미친 건가?’ 하는 생각을 할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웬만하면 휴일이 지난 다음 출근해서 처음 몇 십 분 동안은 아무도 질문하러 오지 않았으면 하는 작은 바램이 있기는 합니다. 출근해서 처음 몇 십 분 동안은 쉬러 가기 전의 제가 일하며 남긴 기록을 다시 빠르게 읽으며 무슨 일이 있었고 어떤 생각을 했으며 어디까지 일을 진행했는지 파악해 쉬러 가기 전과 비슷한 머릿속 상태를 만들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여기에는 기반이 필요한데 주의력이 부족한 사람의 일상 기록을 통해 의도하지 않아도 업무와 일상에 기록이 남도록 만들고 또 주의력이 부족한 사람의 할 일 관리 방법을 통해 소개한 대로 적극적인 할일 관리를 통해 이어서 할 일이 뭔지 몰라 허둥대는 상황을 만들지 않도록 노력하고 있습니다. 쉰 다음 출근한 다음 얼마 동안은 쉬러 가기 전에 일하던 머릿속 상태에 도달할 수 없기 때문에 의식적으로 직접 이전에 하던 일을 시작하기 보다는 ‘휴가 후 업무파악’ 이라는 태스크를 명시적으로 만들어 이전에 하다 만 일 기록 여러 개를 읽고 이전 상황을 복기한 다음 이전과 비슷한 머릿속 상태가 된 것 같은 느낌이 들면 그때서야 본격적으로 이전에 하던 일을 계속합니다.
이런 행동은 평소에는 별 문제를 일으키지 않고 또 개인적으로는 이런 행동이 쉬는 날 다음 출근한 날을 시작하는 루틴이 되어 이 태스크를 수행함에 따라 일하는데 자신감을 회복하는 방법으로 작용합니다. 하지만 종종 아주 바쁠 때는 이런 방법과 이런 개인적인 요구사항이 문제를 일으킬 때가 있습니다. 가령 뭔가 문제가 일어나 이미 출근하기 전부터 문제에 대한 연락을 받은 다음 출근 직후부터 대응하거나 출근 직후부터 회의를 해야 할 때입니다.
실은 이럴 때도 그냥 평소처럼 대응하고 평소처럼 회의 하면 되고 최소한 겉으로는 아무 문제도 일어나지 않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이런 상태가 되면 평소 처럼 루틴을 수행하던 다른 때에 비해 스스로 훨씬 허둥대는 느낌이 들고 또 스스로 하는 행동이나 의사결정에 자신이 없어집니다. 그래서 중요한 의사결정을 출근 직후 이어진 회의에서 해야 한다면 이 상황이 과연 그렇게 까지 급한 것이 맞는지 다시 한 번 확인한 다음 만약 그렇게 까지 급하지 않다면 결정해야 할 사안을 확실하게 정의하는 선에서 회의를 마무리하고 휴일 다음 출근일의 루틴을 수행한 다음 결정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안타까운 점은 다른 사람들은 이런 문제를 겪지 않는 것 같다는 점입니다. 다른 분들은 출근하자마자 이전에 하던 일을 바로 이어서 진행하기도 하고 출근해서 아직 자리에 도착하기도 전에 협업 부서 사람들과 자연스럽게 오늘 진행할 업무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도 하며 출근하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 휴가 이전에 진행하던 업무 이야기를 해도 너무나 자연스럽게 답하고 있었습니다. 그런 모습을 보며 이건 다른 분들에 비해 머리가 나쁘기 때문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하고 그런 나쁜 머리로 세상을 살아가는 일은 생각보다 아주 어렵다는 또 다른 생각이 들어 종종 위축되기도 합니다.
어쩌면 이런 단점은 이전에 생각의 멱살에서 설명한 특징일 수도 있는데 만약 그렇다면 지금의 루틴을 유지해 쉬러 가기 전 머릿속 상태와 자신감을 회복하는 지금의 명시적인 태스크를 유지하는 것이 이런 자신에 대응해 멀쩡한 것처럼 행동하며 살아가기 위한 방법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