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용보험 수급 경험
십 수 년 만에 받아 본 고용보험은 효용, 행정 어느 것 하나 이전에 비해 개선되지 않았고 재취업에 가장 큰 동기는 바로 너무 적은 소득 대체율이었습니다.
몇 달 전 회사에서 잘리면서 오랜만에 고용보험 수급을 신청했습니다. 고용보험은 4대보험에 포함되어 항상 돈을 내고 있었지만 지금까지는 다행스럽게도 고용보험 덕을 볼 일이 드물었습니다. 없지는 않았는데 오래 전에 일하던 한 회사가 냄새의 추억에 소개한 산화한 기름 냄새에 대한 나쁜 기억을 남긴 채 멸망하면서 한동안 고용보험을 받을 일이 있었습니다. 고용보험은 최대 금액을 받아도 소득을 전혀 대체할 수 없었지만 그나마 이 돈이라도 안 받는 것 보다는 낫다는 심정으로 고용보험에서 요구한 여러 행동들을 수행했지만 받은 돈은 근본적으로 가계를 유지할 수 없는 수준이었기에 고용보험의 매우 낮은 소득 대체율이야말로 빠른 구직을 종용하는 가장 큰 원인입니다. 종종 고용보험을 장기간 받으며 일하지 않는 사람들을 비난하는 말이 오가는데 고작 그 돈 받으며 일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은 마치 고급 자동차를 타는 수급자라는 가상의 인물을 통해 수급 시스템을 망가뜨리려는 시도와 비슷하다는 생각을 하게 만듭니다.
오래 전 처음 고용보험 수급 신청 하러 지역 고용보험 사무소에 갈 때 이 곳은 시 경계선 바로 직전 버스 정류장에 있었습니다. 당시 서울 버스는 강력하게 정보화 되어 실제 버스를 쳐다보지 않고도 다음에 올 버스를 예상하고 올바른 위치에서 버스를 탈 수 있었지만 경기도 버스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사실 버스가 정확한 위치에 정차하면 저는 좋아요에 소개한 대로 저는 정보화 되지 않은 버스를 타기 아주 어렵기 때문에 고용보험 사무소에 가는 버스를 타는 것 역시 쉽지 않았는데 정신줄을 놓고 있지 않았음에도 내려야 할 정류장을 지나치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고용보험 사무소가 위치한 시 경계의 마지막 정류장을 지나면 버스는 몇 분을 달려 시 경계를 완전히 넘은 다음 정류장에 정차합니다. 정류장을 지나친 다음 몇 초 후에 정류장을 지나쳤음을 알게 됐지만 이미 늦었고 버스는 그 다음 몇 분을 더 달린 다음에야 멈췄고 내릴 수 있었습니다. 길을 건너 반대편 정류장에 가서 다시 몇 십 분을 기다린 끝에 반대 방향으로 가는 버스를 타고 고용보험 사무소에 도착했지만 이미 시간은 늦었고 고용보험을 수급하기 위해 들어야 하는 교육이 시작된지 한참 지나 입장할 수 없었습니다. 그렇게 몇 시간을 낭비하고 아무 것도 달성하지 못한 채 집에 돌아왔습니다.
다음 교육 기간에 다시 방문해 이번에는 시간에 맞춰 교육을 들었는데 교육의 핵심은 고용보험을 부정수급 하지 말자는 것이었습니다. 여러 가지 부정 수급 사례를 소개하고 있었는데 고용보험이라도 근본적으로 보험이고 보험은 문제가 생길 경우를 대비해 미리 돈을 적립했다가 실제 문제가 생기면 그 돈에 기초해 도움을 받는 시스템일텐데 한 시간 내내 부정수급을 해서는 안된다는 말을 반복적으로 들으니 도대체 얘들은 뭐가 이렇게 문제인가 싶은 나쁜 감정을 느꼈습니다. 부정수급인지 아닌지 판단은 보험사의 책임일 것 같은데 수급자에게 거의 협박처럼 느껴지는 영상을 한 시간 내내 틀어 대서 실질적으로 부정수급이 줄어들지, 또 이 영상을 반드시 오프라인에서 시간에 맞춰 동시에 시청하지 않으면 안 될 이유가 있기는 한 것인지 의심스러웠습니다. 또 각 시점에 맞춰 올바른 서류를 제출해야 했는데 서류 제출 과정은 이상할 정도로 불친절하고 고압적인 담당자에게 마치 은전 한 닢을 간신히 마련해 머뭇거리며 서류를 보여야 할 것 같은 느낌마저 받습니다. 매 달 보험금을 받기 위해 이런 취급 받기를 반복하느니 빨리 다음 직장을 구해 이 나쁜 감정으로부터 벗어나야 한다는 절박한 기분이 들었고 다른 한편으로는 기존 소득을 전혀 대체하지 못하는 형식적인 수준의 금액을 주면서 이렇게 유세를 떨 일인가 싶고 또 소득을 대체하지 못하니 빨리 다음 직장을 구해야만 했습니다.
그렇게 시간이 많이 지난 다음 회사에서 잘려 이번에도 고용보험에 손을 벌려야 했습니다. 시간이 많이 지나는 사이에 고용보험은 소득을 대체할 수 있는 수준으로 현실화 되었을까요? 전혀 그렇지 않았습니다. 기억이 확실하지 않고 오래 전에 받았던 이름마저 저를 놀리는 것 같은 ‘취업희망카드’를 보관하지 않고 있어 금액을 비교할 수 없지만 일일 수급 금액은 거의 변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여전히 소득을 전혀 대체할 수 없는 수준의 아주 적은 돈을 줄 뿐이었고 이 돈으로는 수도권에서 생활을 전혀 유지할 수 없습니다. 이번에도 오래 전과 같이 고용보험 사무소에 가서 고압적인 직원과 실랑이를 할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머리가 아파 왔지만 이전에 비해 좀 더 어른스럽게 행동할 마음가짐을 가진 다음 고용보험 사무소로 출발합니다. 다행히 지난 몇 년 사이에 감염병이 창궐하며 고용보험 수급자 교육은 온라인으로 바뀌었는데 이 역시 고용보험을 부정 수급 하면 처벌받는다는 내용을 수 십 분에 걸쳐 친절하게 말하고 있을 뿐이었습니다.
오래 전 처음 고용보험을 수급할 때와는 다른 행정구역에 살고 있어 이번에는 다른 위치에 있는 고용보험 사무소를 찾아 갔는데 이번에는 다행히도 전철로 연결된 곳이어서 비정한 무정차를 일삼는 경기 버스 없이도 고용보험 사무소까지 이동할 수 있었고 이번에는 한 번에 시간을 맞춰 도착합니다. 미리 인터넷으로 교육 영상을 보고 필요한 주요 정보를 입력해 놓았기 때문에 접수 절차는 순식간에 끝났습니다. 그런데 어차피 온라인으로 미리 입력하고 창구의 담당자는 이를 모니터 상으로 확인하는 것이 절차의 전부여서 이 때 왜 제가 직접 고용보험 사무소에 나타나야 하는지를 이해하기는 어려웠습니다. 제가 가서 한 일이라고는 신분증을 보여주고 인터넷을 통해 미리 입력한 정보가 올바른지 여부를 확인한 것이 전부였는데 요즘 세상에 이런 일 역시 웹사이트에서 모두 처리할 수 있을 것이 분명합니다. 또 고용보험 웹사이트는 마치 프랜차이즈 가맹점들이 몇 년 마다 의무적으로 인테리어를 교체하는 것 마냥 또 웹사이트를 새로 만들고 있었는데 무슨 문제가 있는지 몰라도 이전 웹사이트와 새 웹사이트가 동시에 존재하며 양쪽 모두에서 같은 업무를 처리할 수 있었습니다. 다만 그 중 하나에는 ‘이 웹사이트는 곧 없어질 거임’이라는 공지가 표시되어 있다는 점 정도가 달랐는데 아마 이런 개발 업무가 전혀 원활하게 진행되지 않고 있는 것 같아 보입니다.
고용보험 사무소에 방문해 잠깐 수속을 밟고 나니 다음 출석일이 지정됐는데 다음 출석일은 날짜와 시간이 고정되어 있고 이를 바꿀 수가 없습니다. 정확히 그때 뭘 하는지, 뭘 준비해야 하는지 전혀 알려주지 않은 채 그냥 날짜와 시간이 정해졌으며 안내문에는 그 날 출석하지 않으면 보험금을 수급할 수 없다는 메시지만 덜렁 적혀 있을 뿐입니다. 창구 직원은 이전만큼 고압적이고 또 불친절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지쳐 보였을 뿐입니다. 하지만 이들을 둘러싼 시스템은 여전히 지독할 정도로 고압적이었습니다. 암만 생각해도 고용보험 역시 그냥 보험회사와 별로 다르지 않을 것 같은데 왜 사람들을 이런 식으로 대하는지 납득하려고 노력해 봤지만 쉽지 않습니다. 바꿀 수 없는 출석일에는 반드시 고용보험 사무소에 나타나야 하는데 만약 다른 일정으로 이 날짜를 지킬 수 없으면 그때부터는 분명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복잡하고 귀찮은 행정 절차가 기다리고 있을 겁니다. 그리고 정작 그 날짜에 출석해 보니 이전에 인터넷으로 본 영상과 거의 같은 내용을 사람이 다시 한 번 설명해줄 뿐이었습니다.
고용보험 수급은 수급 기간 동안 매 달 ‘실업인정’이라는 절차에 따른 평가를 받아 한 달 동안의 행동을 인정 받으면 실업급여를 받는 형태로 구성됩니다. ‘실업인정’이란 고용보험에서 설정한 구직에 도움이 될 것으로 예상되는 여러 활동으로 구성되는데 가령 이력서 제출, 면접 진행, 고용보험 웹사이트의 강의 시청, 국가가 지정한 교육 수행 같은 활동이 있습니다. 이론적으로는 매 달 이런 여러 가지 활동 중 어느 하나를 수행한 다음 이를 증빙하면 보험금을 받을 수 있고 또 이 행동은 어쩌면 재고용에 도움을 줄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기계적으로 매달 회사에 이력서를 제출하고 면접을 보고 ‘이력서 작성의 중요성’ 같은 영상을 시청하면 이를 구직 활동으로 인정해 실업급여를 주는 시스템이 정말 구직에 도움이 될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가령 개인적으로 지난 구직 과정은 연초에 아직 저를 자른 이전 회사에서 고용보험에 이 사실을 알리기도 전에 이미 공격적으로 자리를 찾고 이력서를 작성해 배포하고 면접을 다니면서 시작됐는데 한참 구직 과정이 진행되는 도중에서야 고용보험 사무소에 출석했고 그때서야 매 달 이력서를 제출하고 면접에 다녀야 한다는 안내를 받습니다. 그러니까 고용보험이 제 행정을 처리해 주기 이전에 이미 공격적으로 구직을 진행중인 시나리오에는 전혀 대응할 수가 없었습니다.
이 경험이 실상을 반영하지 못한다고 느낀 가장 큰 이유는 고용보험을 통해 받은 구직급여는 여러 차례 강조하듯 기존 소득을 전혀 대체할 수 없는 수준이기 때문입니다. 고용보험으로부터 돈을 받아도 이 돈으로는 가계를 지탱할 수 없어 저금을 활용해야만 합니다. 만약 수도권에 기반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이 대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을 청할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그런 기반이 전혀 없는 사람들은 순전히 저금과 구직급여만으로 구직 기간동안 생활해야 하는데 고용보험이 처음으로 행정 절차를 시작하는 시점은 실직일로부터 2주가 지난 다음부터입니다. 그렇다면 그 2주 동안의 생활은 어디서 나온 돈으로 해야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고용보험이 미래에 요구한 여러 가지 구직 활동의 상당수는 이 초반 2주 동안에 진행되었는데 이 구직 활동은 구직 급여를 받는 조건에 해당하지 않습니다. 고용보험의 실업인정 요건 충족에 관계 없이 이미 구직 절차를 진행 중이었기에 첫 달에는 고용보험 웹사이트에서 ‘이력서 작성의 중요성’을 설명하는 영상 하나를 본 다음 이 기록을 제출해 구직급여를 받습니다. 고용보험은 실업자가 구직 활동을 계속하게 만들어 재고용을 촉진하고 이 과정에 생계를 보조하는 역할을 해야 할 것 같지만 실제 재고용을 촉진한 가장 확실한 방법은 형편 없이 적은 구직급여 그 자체였습니다.
또 한 달 동안 실업인정을 위해 진행한 활동을 증빙하는 서류는 지정된 ‘실업인정일’ 0시에서 13시 사이에만 제출할 수 있습니다. 미리 조건을 만족한 다음 미리 서류를 제출할 수도 없고 오직 지정된 날짜의 지정된 시간에만 제출할 수 있으며 이 시간대를 놓치면 또 다른 복잡한 행정절차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같은 시간에 다른 일정이 있거나 국내에 없거나 지방에 있는 등의 개인적인 이유는 전혀 고려되지 않는 것처럼 보입니다. 사실 이런 규칙을 아예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닙니다. 각 창구 담당자들의 업무량을 예측 가능한 수준으로 유지하기 위한 것일 가능성이 높아 보입니다. 하지만 이를 위한 다른 방법들이 있었을 것이 분명한데도 수급자들을 지독할 정도로 빠듯한 날짜와 시간에 맞춰 움직이도록 만들고 또 절차를 충분히 설명하지 않아 창구 업무가 불가능할 정도로 문의 전화가 걸려오도록 만들어 놓은 이상 이 규칙에 의해 창구 담당자들의 업무량이 예측 가능할 것 같지도 않았습니다.
이제 곧 출근할 작정이라 다음 실업인정일까지 고용보험이 제시한 실업인정 요건을 충족할 필요는 없어졌습니다. 고용보험 웹사이트에서 실제 취업에 도통 도움 될 것 같지 않은 형편 없는 영상을 시청하거나 한 달에 이력서 하나를 제출하거나 할 필요가 없어졌고 또 절대로 바꿀 수 없는 정확한 날짜에 고용보험 사무소에 출석할 필요도 없습니다. 남은 일은 취업 사실을 신고하고 또 1년 동안 해고되지 않고 버틴 다음 조기재취업수당을 신청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 모든 절차는 고용보험에서 안내해 주지 않아 스스로 알아서 수행해야 하는데 특히 조기재취업수당의 경우 1년이 지난 다음 신청해야 하기에 1년 뒤 이를 기억해 신청하는 일은 많은 사람들에게 그리 쉬운 일이 아닐 가능성이 높습니다. 하다못해 동네 치과에서도 진료 후 반 년이 지나면 한 번 방문해 달라고 메시지를 보내 주는 마당에 고용보험은 그런 안내가 일절 없다는 점, 또 실업인정 기간에 취업이 확정된 경우에 해야 할 행동을 필요한 시점에 제대로 고지해 주지 않는다는 점 역시 어이가 없었습니다.
평생에 두 번째 고용보험을 수급해 보며 지난 오랜 세월 사이에 고용보험의 소득 대체율은 전혀 개선되지 않았고 고압적이고 불친절한 시스템은 그대로이며 수급자들을 적대적으로 대하는 지독하게 불친절한 시스템은 인터넷을 통한 기능이 일부 추가되었을 뿐 근본적인 개선은 없었고 또 그들이 생각하는 실업 인정 활동이 재취업에 도움을 주기 보다는 구직 급여 자체가 황당할 정도로 적어 이 금액 자체가 재취업을 종용하는 효과가 있었을 뿐입니다. 그리고 이런 나쁜 경험을 다시 하지 않기 위해 회사로부터 잘리지 말아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만들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