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까지 숨어다닐 수 있을 줄 알았습니다
몇 년 만에 처음 코로나에 걸렸고 이제 31번 환자와 제 사이에 어떤 연결이 생긴 것 같은 느낌입니다.
지난 23호 뉴스레터 ‘왜 그 개발자는 던전에 누웠을까’ 끝에서 코로나에 걸린 이야기를 잠깐 했습니다. 이미 그 전 주 22호 뉴스레터 ‘여러 동네 고양이들’에서 온몸에 열이 올라 도저히 그 주에 일어난 아무 일로 커버스토리를 작성할 수가 없을 것 같아 그동안 찍은 고양이 사진을 끌어 모아 고양이 사진 설명을 하며 커버스토리 한 회를 때우며 코로나 바이러스의 무서움을 충분히 느끼고 있었습니다. 실은 지난 몇 년 동안 코로나 바이러스에 걸리지 않아 왔습니다. 나름 다른 사람들에 비해 꽤 높은 수준의 위생 관념에 기반해 생활했고 지난 몇 년 사이에 마스크를 목에 고정 시키는 목걸이는 이제 신체의 일부가 되어 지난 몇 년 사이에 찍힌 사진에는 모두 실내에서는 마스크를 쓰고 있거나 실외에서는 마스크가 목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모습이었습니다.
여러 보도를 살펴보면 코로나는 이제 슬슬 종료 국면으로 진입하고 있는 모양이었고 출퇴근 지하철에서 마스크를 쓰고 있으면 오히려 사람들이 지나가다가 흘끔 거리는 상태가 되어 가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아직 코로나에 한 번도 걸리지 않아 이 열차에 탄 수많은 마스크 안 쓴 사람들 중 누군가 한 명 쯤 코로나에 걸린 사람이 있을 수 있는 이상 다른 사람들이 오히려 마스크 쓴 사람을 흘끔거리더라도 마스크를 벗을 생각은 없었고 계속해서 주변에 거의 남지 않은 코로나에 한 번도 안 걸린 사람 지위를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이제 코로나에 걸리면 치료비 전액을 직접 부담하는 것으로 바뀌었고 또 자가격리 의무도 없어진 마당에 이제와서 코로나에 걸리면 너무 아쉬우니 끝까지 코로나에 안 걸린 채로 넘어갈 수 있으리라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이제 와서 생각해 보면 코로나에 잘 안 걸렸던 이유는 회사, 집, 회사, 집을 반복하는 단조로운 일상 덕분이었던 것 같습니다. 제가 조심했기 때문이 아니라요. 올 여름에는 지난 몇 년 동안과는 달리 어쩌다 보니 처음 본 은하수, 점진적 닭갈비 디자인 이야기처럼 집을 떠나 어딘가 놀러 다닐 일이 자주 있었습니다. 마스크를 아무리 잘 쓰고 다닌다 하더라도 여행지에서 밥이라도 먹고 커피라도 마실라 치면 마스크를 벗지 않을 수 없었고 특히 여행지에서는 마스크를 쓰고 있으면 지하철에서 받는 시선과는 차원이 다른 시선을 받곤 했는데 마치 여행지에는 코로나 따위 없으니 마스크를 쓰고 있는 제가 코로나에 걸렸기 때문에 마스크를 쓰고 있는 것처럼 해석되는 것 같았습니다.
이번에도 어느 한 주말에 집에서 멀리 나갔다 돌아왔고 그 주 월요일에 출근해 일한 다음 멀쩡한 컨디션으로 집에 돌아와 평소처럼 운동 하고 자기 전에 좀 쉬고 있는데 어째 오늘 따라 집이 추운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열이 있어 춥다고 느낀다고 생각하기 전에 아직 날이 습해서 밤에는 에어컨을 켜고 있었기 때문에 에어컨인가보다 싶어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자리에 누웠지만 그 날 밤 전체 동안 잠든 시간은 거의 없었습니다. 몸은 순식간에 으슬으슬해졌고 한밤중에 화장실에 갔다가 체온을 재니 조금만 더 오르면 40도를 돌파하기 직전이었는데 한밤중에 당장 할 수 있는 일이 없어 상비약에서 해열제를 꺼내 먹은 다음 몸을 작게 말아 누워 끙끙 앓다가 잠들었습니다.
다음 날 아침 해열제가 전혀 듣지 않았음을 깨달았지만 감기 몸살이 세게 왔다고 생각했습니다. 일 이년에 한 번 정도는 감기 몸살을 앓곤 했는데 최근 몇 년 사이에는 그런 적이 없어 슬슬 몸살 한 번쯤 날 때가 되긴 했습니다. 이제 몸을 작게 말아 누운 채로 끙끙 앓다 보니 몸 마디마디가 아파 소염진통제를 또 두어 알 먹고는 휴가를 내고 하루 종일 끙끙거리다가 동네 병원이 진료를 종료하기까지 시간이 많이 남지는 않았을 때 이건 도저히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어 주변에 널브러져 있단 아무 옷을 주워 입고 여전히 체온이 거의 40도에 가까운 상태로 비척거리며 병원에 걸어갑니다. 병원 계단을 올라가며 병원 입구에 있는 체온 측정기에 걸리면 뭐라고 설명을 해야 하나 걱정하며 병원에 들어섰는데 잭 스페로우 선장처럼 비척거리며 체온 측정기 앞을 지나가서 그런지 화상 체온 측정기는 저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통과시켜 줍니다.
의사선생님 앞에 앉아 ‘열이 납니다’라고 했더니 옆에 간호사님이 체온을 측정해 말 없이 의사 선생님께 보였고 바로 옆 방으로 이동해 투명 아크릴로 된 페이스 마스크를 착용하시더니 양쪽 콧구멍을 서로 다른 면봉으로 쑤셔 각각 독감 검사와 코로나 검사를 수행합니다. 실은 독감 예방접종은 그 전 주에 회사에 다른 분이 독감에 걸리셨다는 말을 듣고 바로 다음 날 출근 전에 병원에 들러 예방접종을 맞은 참이었는데 독감이면 그것도 웃기겠다 싶었는데 독감은 아니었고 바로 지난 몇 년 동안 그렇게 잘 피해다녔다고 생각한 바로 그 코로나에 당첨됩니다. 간이 검사 키트에 두 줄이 나타난 모습을 실제로 처음 봤습니다. 게다가 그게 제 콧구멍에서 나온 검체로 테스트 한 결과라는 것 역시 고온으로 비몽사몽한 가운데 신기해서 사진이라도 찍어 두고 싶었지만 정신이 없어 그러지는 못했습니다.
서기 2023년 가을 현재 코로나에 걸리면 일단 모든 치료비를 본인이 부담해야 합니다. 그리고 법적으로 자가격리 의무가 없기는 하지만 의사는 환자에게 자가격리를 권고하도록 되어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자가격리를 권고한다는 설명을 듣고 바로 이어 처치를 받습니다. 처치는 크게 두 가지였는데 하나는 당장 40도에 육박하는 체온을 끌어내리기 위한 주사제, 그리고 만신창이가 된 사람이 멀쩡히 집까지 걸어 돌아갈 수 있게 해 주는 또 다른 주사제입니다. 종종 기운이 너무 없을 때 비급여로 주사제를 처방 받는다는 말을 들어본 적은 있었는데 그걸 직접 맞아본 건 처음이었습니다. 평소 같으면 ‘에이 뭐 그런 것 까지..’ 하고 그냥 넘어갔을텐데 이 날은 정말 몸이 말이 아니었습니다. 주사제를 처방 받기 전에 잠깐 화장실에 갔다 돌아오는데 시간을 좀 지체하자 간호사님들이 제가 화장실에서 쓰러진 줄 알고 화장실 앞까지 와서 기다리고 계시는 바람에 비몽사몽한 동안에도 쪽팔렸습니다.
주사를 받으며 누워 있다가 지난 몇 년 동안 코로나 바이러스를 피해 다니던 여러 에피소드가 아직 겪어본 적 없는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갑니다. 바이러스가 국내에 들어온지 얼마 안 된 시점, 아직 파악된 감염자 각각에 단일 번호가 붙던 시대에 저 유명한 31번 환자에 의해 전국적으로 감염이 시작된 이래 판교에서 첫 감염자가 발생해 건물 앞에 구급차가 대기했다가 감염자를 모셔간 적이 있었고 건물 앞에 기다리는 구급차와 회사 건물이 사진에 찍혀 널리 보도된 적이 있었는데 그게 그 때 일하던 회사 건물이었습니다. 그 날 야근 전에 저녁 먹으려고 구내식당에 내려갔더니 사람들이 아무도 식당에 안 와서 구내식당 스탭들은 음식을 다 버려야 한다며 울상이었고 저는 한 손으로 셀 수 있을 정도의 사람들만 앉은 식당에서 쾌적하게 식사를 하고 다시 야근을 하러 올라오며 식당이 평소에도 이렇게 한산하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후 결코 이 업계에서는 일어나지 않으리라 생각한 원격근무가 도입되었고 아슬아슬한 기반 위에서 생각보다 훨씬 더 잘 동작했습니다. 게임 개발은 개발 빌드를 실행하는데 꽤 무거운 시스템이 필요하고 원활한 업무 수행을 위해 모니터 여러 대를 놓고 일할 때가 많은데 이런 환경을 원격에서 수행하기는 쉽지 않으리라 예상했습니다. 또 그때까지 회사가 아무리 코너에 몰려도 사람들을 원격에서 일하게 두지 않으리라 생각했고요. 그런데 회사 기계를 켜 놓고 퇴근한 다음 회사에서 제공한 VPN을 경유해 mstsc.exe
로 회사 기계에 접속해 보니 생각보다 훨씬 쓸만한 환경에서 일할 수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클라이언트 실행에 어려움이 있지 않을까 싶었는데 이 역시 프레임레이트에 민감하게 반응해야 하는 직군 외에는 크게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높은 프레임레이트가 필요한 직군들은 별도 원격 소프트웨어를 사용했는데 제가 포함된 직군은 그럴 필요 까지는 없었습니다.
다만 이 때는 집 기계에 모니터가 한 대 뿐이어서 그 동안 언리얼 에디터를 모니터 여러 대에 띄워 두고 작업하던 환경을 모니터 한 대 안에서 언리얼 에디터의 주요 구성요소를 모두 띄워 놓고 작업하기 위해 여러 윈도우를 이리 저리 도킹한 괴상한 조합을 사용하게 됐습니다. 이 조합은 이 후 모니터 여러 대를 사용할 수 있는 환경에서도 유지하면서 제 자리에서 언리얼 에디터로 뭔가 시도하려던 분들을 손쉽게 당황시키거나 좌절시킬 수 있게 됩니다. 가령 이전에는 뷰포인트 하나가 모니터 하나를 차지하고 컨텐츠 브라우저와 디테일 팝업만으로도 모니터 한 대를 사용하는 식으로 모니터를 방만하게 사용했지만 모니터 한 대로 언리얼 에디터 전체를 띄워야 하는 상황이 되자 뷰포인트 하나, 컨텐츠 브라우저 4개를 탭으로 구분해 한 곳에 겹쳐 띄우고 또 이들을 세로로 길게 배치해 파일 이름만 보도록 했습니다. 생각 같아서는 뷰포인트도 디테일이나 컨텐츠 브라우저처럼 겹쳐 놓고 빨리 전환하고 싶었지만 언리얼 에디터는 뷰포인트 탭끼리 겹치는 동작을 허용하지 않았기 때문에 하는 수 없이 뷰포인트만은 평소에는 축소해 놨다가 필요할 때만 꺼냈는데 주로 시네마틱 뷰포인트가 필요할 때 그렇게 하게 됐습니다.
당시 회사는 코로나 감염자 발생에 꽤 민감하게 반응했는데 원격 근무를 기본으로 하더라도 직급자들은 웬만하면 출근하게 했지만 그 안에서도 코로나 환자가 발생하면 출근했던 모든 사람들은 당장 집으로 쫓겨나야 했습니다. 또 짐을 챙겨 회사를 빠져나오는 길에 돌아보면 공조기가 최대한으로 돌고 있어 회사가 어지간히 이 문제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다음 날에는 다시 출근해야 했지만 사람을 다 쫓아내고 공조기를 돌리고 방역을 하는 등 그 난리를 피운 덕분인지 회사에서 감염된 사례는 거의 없었던 것 같습니다. 밥 먹을 때는 어쩔 수 없었지만 그 외에는 항상 마스크를 쓰고 있었고 또 구내식당에는 맞은편에 앉은 사람과 직접 공기가 오가지 않도록 아크릴 판으로 구획을 나눠 독서실 같은 분위기에서 식사를 해야 했는데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굳이 투명 아크릴판일 필요가 있었을까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한편 코로나는 채용과 면접에도 큰 문제를 일으켰는데 웬만한 면접은 모두 원격으로 전환되어 우리들은 회의실에서, 면접 보실 분은 원하는 장소에서 줌을 통해 면접을 진행했는데 회의실에 모인 우리들은 마스크를 쓰고 있고 면접 보시는 분은 마스크를 안 쓰고 있어 지금 생각해 보면 꽤 기괴한 분위기로 면접을 진행했습니다. 경력 채용 면접은 그렇게 할 수 있었지만 회사에서 진행하던 인턴십 면접은 그러기가 어려워 어쩔 수 없이 오프라인에서 면접을 진행했는데 그 때도 구내식당과 비슷하게 6인용 회의실 테이블에 투명 아크릴 판을 세워 놓고 서로 마스크를 쓴 채 면접을 진행했는데 이와 비슷한 장면을 교도소에 면회 가는 장면이 나오는 드라마와 영화에서 본 적이 있어 면접자분께 질문하다가 그 장면이 생각나는 바람에 웃음을 참느라 고통 받았습니다.
회사에서 나눠 준 마스크를 걸어 놓는 목걸이는 굉장히 긴요했는데 이후 몇 년 동안 그 목걸이에 마스크를 걸고 다니며 이제는 거의 신체의 일부가 되었습니다. 집 밖에 나갈 때 마치 안경을 쓰듯 자연스럽게 목에 마스크를 걸고 마스크를 쓴 다음 헤드폰을 끼는 절차가 외출 전 표준 절차가 됩니다. 한번은 그 절차가 너무 익숙하게 느껴져서 언젠가 마스크를 안 쓰는 날이 오면 오히려 이 절차를 수행하지 않을 때 그 상황을 어색하게 느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모든 사진에 마스크를 썼거나 마스크 목걸이를 한 채로 나왔고 어디 멀리 나다니지도 않았으며 그러는 사이에 여권이 만료됐지만 재발급 신청을 하지도 않은 채 국내 여행을 조금씩 다니는데 만족하며 주변에 거의 모든 사람들이 코로나에 걸리는 동안 코로나에 안 걸린 상태를 유지하며 끝까지 숨어다닐 수 있을 줄 알았습니다.
코로나 양성 판정을 받고 사람을 멀쩡히 집까지 걸어 돌아가게 만들기 위한 주사제를 처방 받은 다음 멍하니 병원 천장을 바라보며 누워 있다가 여태까지의 여러 노력이 다 무슨 소용인가 하는 생각이 먼저 들었습니다. 지하철에서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받으며 혼자 마스크를 쓰고 있기도 하고 새로 이사한 회사 건물 화장실이 안에서 당겨 여는 구조로 되어 있어 어처구니 없어 하기도 했으며 이제 슬슬 낡아 인쇄된 이전 회사 캐릭터가 서서히 희미해져 가는 마스크 목걸이를 아침마다 습관처럼 목에 걸기를 반복했지만 결국은 남들보다 몇 년 늦게 바이러스에 감염됐고 다른 사람들이 치료비를 지원 받고 또 회사로부터 격리 용품을 지원 받기도 하던 때가 다 지나간 다음 늦게서야 걸려 억울한 감정도 들었습니다. 차라리 먼저 걸렸으면 치료비도 지원 받고 또 다른 사람들과 비슷한 시점에 비슷한 경험을 하고 지나갈 수 있었을 텐데요.
다른 한편으로는 처음 0번 환자가 국내에 발생한 다음 다음 환자가 서서히 나타나다가 유명한 31번 환자가 전국을 휩쓸고 다니며 본격적으로 빠른 확산이 일어난 것으로 미루어 2023년 가을에서야 코로나에 처음 걸린 한 환자인 저는 어쩌면 저 31번 환자와 어떻게든 연결되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몇 년의 시차를 두고 31번 환자와 저 사이에 다른 여러 환자들을 거치며 바이러스는 이전에 비해 좀 더 약해진 특성을 가지게 된 것 같고 저에게는 고열과 인후통, 그리고 고열에 의한 통증을 동반했을 뿐 널리 알려진 미각 상실이나 머리가 멍한 상태가 풀리지 않는 등의 후유증이 나타나지는 않았습니다. 만약 지금 억울하다고 해서 다른 사람들과 같은 때 경험했다면 어쩌면 그런 후유증을 동반했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저 TODO-4420 코로나
태스크는 매일매일 처방약 복용, 체온 측정, 회사에 휴가 선언, 보험 청구 같은 서브태스크들로 구성되어 있는데 맨 마지막 서브태스크는 코로나 자가검사키트로 검사하는 태스크였습니다. 처방약을 다 먹고 측정한 체온이 정상 체온보다 약간 높은 상태임을 알고 있는 상태에서 시간이 좀 지난 다음 마지막으로 자가검사키트에 음성이 나오는지 확인한 다음 메인 태스크를 닫을 작정이었고 감사하게도 병원에서 비몽사몽한 가운데 본 것 같기도 하고 잘못 본 것 같기도 한 두 줄이 뜬 검사키트와는 달리 뚜렷한 한 줄만 나타났고 이제 다른 사람들처럼 코로나에 걸려 본 사람이 되었음을 확인한 다음 태스크를 닫았습니다.
살펴보니 한 번 걸리면 앞으로 반영구적인 면역을 갖는 질병과 달리 코로나는 독감의 일종에 가까운 것 같아 보입니다. 그래서 한 번 걸린 사람들도 변종에 다시 감염되기도 하는 것으로 미루어 지하철에서 여전히 사람들의 시선을 받겠지만 여전히 마스크를 쓰고 다닐 작정이고 한동안 국내 여행을 다니며 조금 느슨하게 행동했던 것들 역시 좀 더 신경 써서 행동하게 될 것 같습니다. 또 이전처럼 이렇게 조심하면 앞으로도 코로나에 안 걸릴 거라는 믿음 보다는 이렇게 조심해서 다음번 바이러스에 감염될 시점을 늦추면 비록 치료비는 제가 직접 지불해야 하겠지만 그러는 사이에 바이러스가 여러 사람들의 몸을 거치며 특성이 변해 좀 더 오랜 세월에 걸쳐 사람들 주변에 남아 있을 수 있도록 좀 더 약한 증상과 후유증을 일으키는 모양으로 변할 거라고 생각하기로 했습니다. 조심해서 늦게 걸리면 늦게 걸릴 수록 덜 앓고 지나가면 그것도 나쁘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한편 이번에 알게 된 사실은 코로나에 뚜렷한 치료 방법이 없다는 겁니다. 처방전을 살펴보니 기침과 가래를 막는 약, 인후통을 완화하는 진통제, 막강한 항생제, 이 약들을 한번에 먹고도 토하지 않게 만드는 약, 그리고 항히스타민제가 짬뽕된 알약 여러 개로 구성되어 있었는데 이 조합은 코로나가 아니더라도 다른 여느 바이러스성 질환에도 똑같이 처방될 것 같은 조합입니다. 여전히 코로나 바이러스에 대한 백신은 있지만 치료제는 없는 모양이어서 결국 언젠가는 다시 걸릴 일이 생기겠지만 최대한 늦게 걸리도록 조심하는 수밖에 없다 싶습니다.
지난 몇 년 사이에 주변 사람들 모두가 코로나에 걸리는 동안 잘 피해 다녔고 앞으로도 그럴 수 있으리라 생각했지만 제 운은 여기까지였습니다. 뚜렷한 후유증 없이 병치레를 마무리한데 감사하기로 하고 앞으로도 이전처럼 조심해서 이제 몸의 일부가 된 마스크 목걸이를 본능적으로 챙겨 외출하는 삶을 계속할 작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