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일찍 발행된 어음
옳은 비전이 자기 시대의 기술 스택을 한참 앞질러 발행된 어음으로 남았다가, 30년 뒤 같은 아이디어가 산업 표준이 된 자리에서 뒤늦게 결제된 IBM Mwave의 이야기를 정리해봤습니다.
1996년 어느 저녁 미국 어느 가정의 거실 풍경을 떠올려 봅니다. 가족이 큰 마음을 먹고 2,000달러 가까이 주고 들여놓은 IBM Aptiva 한 대가 책상 위에서 윙윙거리고, 화면에서는 Winamp가 좋아하는 곡을 흘려보내고 있습니다. 그러다 잠깐 친구와 인사라도 나누려고 AIM에 로그인하기 위해 모뎀을 연결합니다. 카드 한 장에 사운드카드와 모뎀을 같이 담았다고 자랑하던 Mwave 모뎀이 핸드셰이크의 익숙한 휘파람 소리를 내며 연결을 잡는 순간 음악이 뚝 끊깁니다. 모뎀을 그대로 둔 채 노래만 다시 재생하려고 일시정지를 풉니다. 그 순간 컴퓨터 전체가 통째로 굳어 버립니다. 화면도 멈추고 마우스도 죽고 키보드도 응답하지 않아서 결국 본체 뒤편의 전원 스위치를 눌러 강제로 꺼야 합니다. 이런 장면은 농담이 아니라 그 무렵의 어느 평범한 가정에서 매일같이 벌어지던 일이었습니다[^IBM Made A Sound Card? Who Knew!]. 광고에서는 카드 한 장으로 사운드와 모뎀과 팩스와 자동응답기를 모두 처리한다고 자랑했지만 막상 사용자는 음악과 통신 가운데 한쪽만 고를 수 있었고, 둘을 같이 쓰겠다고 욕심을 내면 운영체제가 통째로 응답을 멈췄습니다. 그래도 사람들은 그 약속이 머지 않아 지켜지리라 기다렸습니다. 카드값에 이미 약속이 함께 들어 있다고 광고가 분명히 적어 두었기 때문입니다.
이 이야기를 생각하면 자기 잔고로는 결코 결제할 수 없는 어음을 너무 일찍 끊어 둔 어느 회사의 그림이 자꾸 떠오릅니다. 약속어음이라는 표현이 낯선 분도 계실 텐데, 발행한 사람이 만기일에 정해진 금액을 지급하겠다고 종이 한 장에 적어 두면 그 종이가 시장에서 돈처럼 돌아다니다가 만기일에 발행자 통장에 잔고가 부족하면 부도가 나고 그 손해를 종이를 받아 든 사람이 그대로 떠안는 옛 거래 수단입니다. 카드 한 장이 약속한 기능 목록을 어음의 액면가로, 그 약속을 지킬 기술 스택의 성숙도를 발행자의 통장 잔고로 바꿔 읽으면 Mwave 이야기 전체가 한 장의 어음 거래로 정리됩니다. 1992년 11월 IBM이 텍사스 인스트루먼츠와 함께 발표한 Mwave는 어떤 기준으로 보아도 옳은 비전이었습니다[^InfoWorld 1992-11-02: Vol 14 Iss 44]. 당시 사용자는 사운드 블래스터 16, USR 스포츠스터 모뎀, 음성응답기를 따로따로 구매해 귀중한 ISA 슬롯 세 개를 잡아먹고 부품값도 각각 따로 부담해야 했습니다. 카드 한 장에 프로그래머블 DSP 한 칩만 올려 두고 그 위에서 모든 신호처리를 소프트웨어로 돌리겠다는 아이디어는 30년 뒤 모든 스마트폰 SoC와 모든 노트북의 NPU와 모든 통합 오디오 컨트롤러가 정확히 그대로 따라가는 길입니다. 문제는 그 아이디어가 옳다는 사실이 아니라, 그 아이디어를 결제할 잔고가 1992년의 통장에는 들어 있지 않았다는 사실이었습니다. IBM은 약속어음을 끊었고, 어음을 받아 든 사용자는 만기일에 은행을 찾아갔지만 은행에는 그 어음을 막을 만한 컴퓨팅 자원도 드라이버 모델도 표준도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30년 뒤 같은 자리에 도착한 사람들은 같은 어음을 쥐고도 무사히 결제를 받습니다. Mwave는 결국 비전의 실패라기보다는 어음을 너무 일찍 발행한 실패였습니다.
이 어음의 액면가가 얼마나 컸는지 잠깐 살펴보면 IBM이 무엇을 가불하고 있었는지 분명해집니다. Mwave가 약속한 기능 목록은 사운드 블래스터 2.0과 프로 그리고 윈도우 사운드 시스템의 소프트웨어 에뮬레이션, 32보이스 웨이브테이블 MIDI 합성, MPEG 오디오 디코딩, QSound 3D 입체음향, 클래스 2 G3 팩스, 자동응답기, 풀듀플렉스 스피커폰, V.32bis 14.4 kbps에서 출발해 V.34 28.8과 33.6을 거쳐 V.90 56K까지 가겠다는 모뎀 표준 전 계열이었습니다. IBM은 이 모두를 단 한 장의 ISA 카드로 실현했고, 같은 카드가 새로운 표준이 나올 때마다 펌웨어 교체만으로 따라잡을 것이라 광고했습니다. 실제로 Aptiva의 Mwave는 1995년 무렵 28.8 모뎀에서 1997년 33.6 모뎀으로 드라이버 패치만으로 올라갔고, ThinkPad 600/770의 후속 칩은 V.90 56K까지 같은 방식으로 따라잡았습니다[^Latest MWAVE Drivers Featuring 33.6 and DirectSound Support]. 이 한 가지 사례는 어음의 정수를 보여줍니다. 어음은 빈 약속이 아니라 일부는 실제로 결제될 수 있는 일부 잔고를 담보로 끊은 것이고, 그 일부 결제가 보였기 때문에 사용자는 나머지 어음에도 같은 신뢰를 보냈습니다. 그래서 후에 결제가 막혔을 때 사용자가 느낀 배신감의 크기는 어음의 액면가가 아니라 처음 일부가 무사히 결제되었을 때 받은 신뢰의 크기에 비례했습니다.
문제는 IBM 자신이 누구보다 먼저 어음의 결제 한도를 알고 있었다는 점입니다. Mwave의 핵심 칩 MDSP2780은 스펙시트상 60 MIPS의 처리능력을 가졌지만 ISA 환경에서는 사실상 25 MIPS 정도로 동작했고, 그 한계 안에서 14.4 kbps 모뎀과 16보이스 MIDI(MIDI에서 동시에 발음할 수 있는 음의 수를 보이스라고 부릅니다)는 같이 돌릴 수 있어도 24보이스 MIDI는 14.4 kbps와 함께 불가능했고, 32보이스 MIDI는 어떤 모뎀 속도와도 함께 돌아가지 않았습니다. IBM 자체 서비스 팁 문서가 이 사실을 공식 문서로 인정했고, 사용자에게는 모뎀 최고속도를 19.2 또는 14.4 kbps로 낮추라고 권고했습니다. 정확히는 "60 MIPS 2780 칩이 과부하될 수 있으며 그럴 경우 모뎀 속도를 자동으로 낮추거나 오디오 기능을 일시 중단할 수 있다"는 표현으로, 광고했던 동시 사용 시나리오 자체를 IBM 스스로 문서로 철회한 셈입니다[^MWave - Various questions and answers]. 광고 카피에서는 28.8 kbps 모뎀과 CD 오디오와 웨이브 오디오를 동시에 흘리는 그림이 인쇄되어 있었지만 공식 동시성 시나리오 목록에는 28.8 kbps 모뎀과 DOS 사운드 블래스터 게임 조합이 아예 빠져 있었고, Quake II 3.13 패치 노트에는 Mwave 카드를 쓰는 사용자에게는 저품질 게임 사운드에서 좌우 채널이 반전되니 고품질로 바꾸라는 예외 처리까지 들어가야 했습니다[^Quake II v3.13 Patch]. 어음을 끊은 본인이 만기일에 잔고가 모자란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빨리 알고 있었지만 일단 어음은 시장에 풀려 있었습니다.
여기까지가 하드웨어 쪽 어음의 사정이라면 소프트웨어 쪽 어음은 더 심하게 부도가 났습니다. Mwave 개발에 직접 참여했던 외부 컨트랙터 Ted Felix는 회고에서 IBM이 16비트 윈도우 드라이버에서 32비트 윈도우 드라이버로 끝내 졸업하지 못했고, 윈도우 95가 등장한 순간 Mwave는 이미 죽을 운명이었으며 DirectX가 마지막 못이었다고 직설적으로 적었습니다[^Ted's Mwave History]. 본인 스스로도 1996년 8월과 1998년 3월 두 차례에 걸쳐 16비트 Mwave API DLL을 Win32 환경에서 쓰기 위한 썽킹 레이어를 직접 작성하려다 콜백을 썽크 너머로 전달하는 방법을 찾지 못해 포기했다고 기록했습니다. 본사 IBM이 같은 문제를 몇 년째 풀지 못한 사실을 외부 컨트랙터 한 사람의 시제품 시도가 그대로 비추는 셈이었습니다. 윈도우 NT에는 사실상 공식 드라이버가 없었고 DirectSound 네이티브 드라이버는 끝내 나오지 않았으며, 1995년 이후 게임 시장은 Mwave를 조용히 외면했습니다. 어음을 발행한 본사가 어음의 결제 통화 자체를 환전할 줄 모르는 상황이었습니다.
게다가 어음을 결제할 은행 카운터에서 IBM을 일부러 줄 끝으로 돌려세우는 손님이 있었습니다. 1990년 윈도우 3.0의 깜짝 성공 이후 IBM과 마이크로소프트의 OS/2 공동개발은 사실상 결별했고, 1994년 마이크로소프트가 OS/2 개발을 완전히 중단하면 컴팩과 동등한 라이선스 조건을 주겠다는 제안을 IBM이 거절한 직후, 1995년 8월 24일 윈도우 95 출시 15분 전에야 IBM PC Company가 OEM 라이선스를 손에 쥐었다는 사실은 미국 정부 대 마이크로소프트 반독점 재판의 사실 확인 절차에서 정식으로 기록되었습니다[^Findings of Fact - United States of America v. Microsoft Corporation, C.A. 98-1232; State of New York, ex rel. Eliot Spitzer, et al., v. Microsoft Corporation, C.A. 98-1233]. Jackson 판사는 마이크로소프트가 IBM PC Company를 더 높은 가격, 늦은 윈도우 95 라이선스, 기술 및 마케팅 지원 보류로 처벌했다고 적었습니다. DDK 자체가 차단된 것은 아니었지만 협력공학이 사실상 끊겼고, Mwave처럼 DSP 위에서 사운드 블래스터를 소프트웨어로 흉내 내는 비정통 하드웨어는 바로 그 협력공학이 가장 절실한 종류였습니다. IBM은 어음을 결제할 환전소에서 항상 한 번씩 더 줄을 서야 했고, 결제 시한은 그만큼 자꾸 뒤로 밀렸습니다.
조직 내부에서도 어음을 책임지고 막을 사람이 없었다는 사정이 있었습니다. Mwave의 뿌리는 1979년 IBM 취리히 연구소의 DSP 연구이고, 실시간 마이크로커널 Mwave/OS는 이스라엘 하이파 연구소가 설계했으며, MDSP2780 칩 자체는 미국 동부의 IBM 마이크로일렉트로닉스가 만들었고, Aptiva와 ThinkPad에 카드를 통합하고 소비자에게 드라이버를 배포한 것은 보카 라톤과 노스캐롤라이나 RTP의 PC Company였고, 초기 개발자 키트는 외부 인터메트릭스에 외주를 주었습니다[^Mwave]. 어디에도 단일 손익책임자가 존재하지 않았고, 그래서 WDM이나 DirectSound처럼 OS 벤더와 수개월씩 깊이 협업해야 하는 작업이 발주되지 않은 채 어음의 만기일이 흘러갔습니다. Ted Felix의 증언이 다시 한번 정수를 찌르는데, 그는 회고에서 IBM이 새 드라이버를 제때 제공하지 못했고 그마저도 비용을 받고 팔았다고 적었습니다. 소비자 하드웨어 지원 부서가 드라이버를 유료화하기 시작하면 그 카드는 사실상 사용설명서가 닫힌 카드입니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어음의 액면을 그대로 믿고 카드를 산 사람이 가장 큰 손해를 봤습니다. 비슷한 자리에 직접 앉아 본 적이 있어 이 손해의 풍경이 더 또렷이 보입니다. 오래 전 산 컴퓨터 — 지금은 사라진 현대전자에서 내놓은 멀티캡 — 안에 Mwave MDSP2780 카드가 들어 있었고, 사운드 블래스터 드라이버와 완전히는 호환되지 않아 여러 게임에서 소리가 아예 안 나는 일이 흔했고 모뎀은 통화 중간에 자꾸 끊겼습니다. 따로 56K 모뎀을 한 장 더 사서 설치하고 나서야 전화가 언제 끊길지 모른다는 긴장에서 풀려날 수 있었고, 그 시점에서 Mwave 카드의 모뎀 기능은 사실상 죽은 약속이 되었습니다. AnandTech의 한 사용자는 Aptiva C55를 산 뒤 약속된 모뎀 업그레이드 드라이버가 거의 2년이 지나서야 나왔다고 보고했고, Aptiva 도움말 게시판의 90퍼센트가 Mwave 문제였으며 거의 매일 카드를 물리적으로 부숴버린 복수담이 올라왔다고 증언했습니다. ThinkPad 760XD를 산 사용자들 사이에서는 차라리 Mwave 카드를 뽑아내고 같은 라인업의 760XL이 쓰던 ESS1688 칩을 이식하는 방법이 알음알음 돌았습니다. IBM 본사는 처음 한동안 NDA 조건으로 모뎀과 사운드카드 교체품과 수표를 비공식으로 지급하다가 요청이 폭증하자 그마저 끊었고, 일부 사용자에게는 인터넷 포럼에 보상 내용을 공개하면 접근을 차단하겠다는 내용으로 침묵을 강요했다는 정황이 여러 1차 자료에서 일관되게 증언되었습니다.
결국 어음을 부도낸 회사가 향하는 곳은 법정뿐이었습니다. 1998년 1월 30일 뉴욕 남부 연방지방법원에 Patricia J. Kaczmarek 등이 IBM을 상대로 집단소송을 제기했고, 사건은 앨라배마 터스컬루사 카운티 순회법원으로 이관되어 2000년 11월 합의가 성립되었습니다. 합의 조건은 적격 Aptiva와 ThinkPad 구매자가 대체 모뎀이나 사운드카드 영수증을 제출하면 최대 100달러 현금과 IBM닷컴 10퍼센트 할인쿠폰을 받는 것이었고, 적격 구매 마감일은 2001년 5월 27일, 수표 발송은 2002년 8월 7일부터 시작되었으며 캐나다 청구자에게는 2003년 4월에야 수표가 도착했습니다[^Mwave Class Action Suit - Checkwatch]. 원고 측 변호사 수임료가 약 1,060만 달러로 보고된 것을 생각하면, 한 장의 카드에 들어 있던 어음의 진짜 결제 가격은 사용자 1인당 100달러가 아니라 사회 전체로 환산했을 때 그보다 훨씬 컸습니다. 같은 해 5월 IBM은 마지막 Aptiva 라인을 단종했고 가정용 PC 시장에서 조용히 철수했으며, 2005년에는 PC 사업부 전체를 레노버에 넘겼습니다. 한 장의 카드가 부도낸 어음이 회사의 한 사업부 전체를 결제 한도에서 밀어낸 셈입니다.
이 어음을 생각하면 가장 묘한 부분은 같은 어음이 30년 뒤에는 무사히 결제된다는 점입니다. 2024년의 Apple M4 칩은 단일 패키지 안에 P/E 코어, 하드웨어 레이트레이싱 GPU, 38 TOPS의 16코어 뉴럴 엔진, AMX 행렬 엔진, ISP, Secure Enclave, ProRes 미디어 엔진을 통합 메모리로 묶었습니다[^Apple introduces M4 chip]. Qualcomm Hexagon DSP는 2011년 한 해에만 12억 개가 출하되었고 Snapdragon X2 Elite Extreme에서 80 TOPS에 도달했습니다. Mwave가 카드 한 장에 사운드와 모뎀과 팩스를 합치려 했던 소박한 통합은 이제 셀룰러 5G와 Wi-Fi 7과 Bluetooth와 UWB와 NFC와 GPS와 ISP와 NPU와 비디오 코덱을 단일 패키지에 합치는 수준으로 올라갔고, 심지어 5G 기지국 자체가 srsRAN과 OpenAirInterface 같은 소프트웨어로 가상화됩니다. NVIDIA Broadcast와 Krisp가 GPU와 CPU의 남는 여유로 실시간 노이즈 제거와 가상 배경을 처리하는 모습은 Mwave가 DSP 한 칩에 욱여넣으려 했던 실시간 오디오 처리의 꿈이 호스트 CPU의 여유분만으로 자연스럽게 돌아간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같은 어음, 같은 액면, 같은 결제 요구입니다. 다른 것은 잔고뿐입니다.
이 잔고의 차이를 한 번에 보여주는 숫자가 1992년 Mwave의 17~60 MIPS와 2024년 NPU의 38~80 TOPS 사이의 약 100만 배 격차입니다. 거기에 표준화된 클래스 드라이버 모델이 있어 OS 한 번 바뀔 때마다 벤더가 따로따로 16비트에서 32비트로 다시 32비트에서 64비트로 모든 것을 다시 짜야 했던 지옥이 사라졌습니다. AC'97과 HD Audio가 도입한 클래스 드라이버는 한 번 작성한 드라이버로 모든 벤더의 칩을 지원하게 만들었고[^Universal Audio Architecture - Windows drivers], Apple의 Core Audio와 Linux의 ALSA와 PREEMPT_RT 커널은 서브밀리초 단위의 지연을 보장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가벼운 작업은 CPU가, 중간 작업은 GPU가, 전문 작업은 NPU나 DSP가 분담하는 이기종 컴퓨팅 모델이 자리 잡으면서 한 장의 칩이 모든 작업을 동시에 떠안아야 한다는 1992년 Mwave의 비현실적인 가정 자체가 사라졌습니다. Mwave가 한 칩에 모든 신호처리를 욱여넣으려다 실패한 자리에 현대 SoC는 여러 종의 가속기를 한 패키지에 묶고 작업을 적응적으로 분배하는 방식으로 같은 통합의 이상을 안전하게 결제합니다. 같은 어음이 통과하느냐 부도가 나느냐의 차이는 그 사이 30년간 인프라가 어디까지 자랐는가에 달렸습니다.
여기서 한 가지 짚고 가고 싶은 부분이 있습니다. Mwave의 진짜 실패 원인을 묻는 글들은 대체로 60 MIPS DSP의 한계, 16비트에서 32비트로의 드라이버 전환 실패, OPL FM 칩의 부재, OS/2와 Aptiva의 조직적 분리, 마이크로소프트의 보복, Gerstner의 서비스 피벗(1993년 취임한 Lou Gerstner CEO가 IBM의 무게중심을 하드웨어에서 서비스로 돌려세우면서 소비자 PC 우선순위가 한참 뒤로 밀린 흐름) 같은 여러 요인을 늘어놓고 어느 쪽이 더 큰 원인이었는지 따집니다. 이런 분류는 분명 유용하지만 한 단계만 더 위로 올라가면 모든 요인의 공통분모가 보입니다. 그것은 IBM이 1992년이라는 시점에 자기 회사가 동원할 수 있는 컴퓨팅 자원, 자기 회사가 통제할 수 있는 OS 생태계의 폭, 자기 회사 내부에서 단일 책임자를 세울 수 있는 조직 구조, 자기 회사가 마이크로소프트와의 정치적 마찰 속에서도 협력공학을 유지할 수 있는 협상력 — 이 모든 기술적 현실의 한계를 충분히 인식하지 못한 채 그 한계를 넘는 약속을 발행했다는 사실입니다. 60 MIPS는 카드 한 장으로 모든 신호처리를 하기에 작은 숫자였습니다. 16비트 드라이버 인력만 가진 조직이 윈도우 95와 DirectX와 윈도우 NT의 동시 전환을 감당하기에 부족했습니다. 네 개의 지리에 흩어진 조직이 단일 P&L 없이 OS 벤더와의 깊은 협업을 발주하기에 어울리지 않았습니다. 이 한계들 중 하나만 정직하게 인식했더라면 Mwave의 광고 카피는 훨씬 좁아졌을 것이고, 그 좁아진 약속은 부도가 나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이 관점에서 보면 가장 마음 아픈 대목은 IBM이 그 한계를 자기 손으로 문서화한 흔적입니다. 60 MIPS 칩이 과부하될 수 있으니 모뎀 속도를 19.2 또는 14.4 kbps로 낮추라는 권고는 마케팅 부서가 결제할 수 없는 어음을 끊는 동안 엔지니어링 부서가 그 어음의 잔고 부족을 이미 자기 글자로 인정한 문서입니다. 공식 동시성 시나리오 목록에서 28.8 kbps와 DOS 사운드 블래스터 게임의 조합이 빠진 것은 같은 인정의 다른 표현입니다. 이런 인정이 광고 카피와 같은 페이지에 인쇄되어 있었더라면 Mwave는 1990년대의 좁은 영역에서 충실하게 작동하는 평범한 카드로 남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광고 카피는 늘 어음의 액면가를 따라가고 잔고는 늘 광고 카피보다 작습니다. 한 회사 안에서 두 부서가 다른 액면의 어음을 들고 있을 때 어음은 결국 가장 낙관적인 부서의 액면으로 시장에 풀립니다. 지난 「고객과 함부로 약속하지 않아요」에서 같은 결의 이야기를 한 적이 있는데, Mwave의 광고 카피는 그 권고와 정반대 방향에서 가장 큰 어음을 끊은 사례에 해당합니다. 그것이 Mwave 이야기 가운데 가장 보편적인 교훈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Mwave의 모든 어음이 부도났다고 보기는 어려운 면도 있습니다. ThinkPad 600/770의 MDSP3780i가 V.34 33.6에서 V.90 56K로 펌웨어 교체만으로 올라간 것은 어음의 일부가 실제로 결제된 사례이고, 2001년 2월 13일 IBM이 GPL로 공개한 ThinkPad용 Linux 드라이버가 2002년 커널 2.5.45에 통합되어 2026년 Linux 7.0에서야 제거되기까지 25년간 그 하드웨어의 수명을 연장한 것은 상업 지원이 끝난 뒤에도 어음의 일부를 다른 통화로 갚은 사례입니다[^IBM Releases GPLd WinModem Support For Linux]. ThinkPad 사용자에 한해서는 "어음의 부분 결제"가 가능했고, 이 비대칭은 결국 데스크톱 Aptiva 사용자가 집단소송 원고단의 중심이 된 이유이기도 합니다. 같은 카드, 같은 비전, 같은 약속이라도 어음을 받아 든 사용자가 어떤 노트북에 들어 있느냐에 따라 결제 가능성이 달라졌다는 사실은 어음의 액면이 통일되어 있어도 잔고는 라인업마다 따로 관리되었다는 뜻입니다. 어음을 발행하는 회사 입장에서는 가장 야심찬 라인업의 액면에 맞춰 광고를 만들기 마련이고, 가장 약한 라인업의 사용자가 가장 큰 손해를 봅니다. 이 비대칭도 1990년대 IBM에만 해당하는 이야기는 아닐 겁니다.
이 이야기를 생각하면 같은 종류의 어음이 지금 어디서 다시 발행되고 있는지 자꾸 떠오릅니다. 데스크톱과 모바일을 넘나드는 어떤 GPU의 펌웨어가 미래 OS에서도 같은 게임을 같은 성능으로 돌리겠다고 약속한다거나, 어떤 자율주행차 회사가 5년 뒤 OTA 업데이트로 완전 자율주행이 가능해진다고 광고한다거나, 어떤 AI 가속기가 CUDA를 흉내 내며 같은 모델을 같은 처리량으로 돌리겠다고 마케팅하는 모습은 모두 어음의 사촌처럼 보입니다. 어음의 액면이 결제될지 부도날지를 가르는 것은 그 약속 자체가 옳은가가 아니라, 그 약속을 결제할 잔고가 만기일까지 통장에 들어와 있을지의 문제입니다. Mwave의 비전은 옳았고 30년 뒤 산업 전체가 그 비전을 결제했지만, 정작 1992년에 어음을 받아 든 사용자는 자기 손에 있던 카드 한 장을 부숴버리는 식으로 분풀이를 해야 했습니다. 비전이 옳다는 것만으로는 약속을 결제할 수 없고, 약속을 결제할 잔고가 들어올 때까지 기다릴 수 있는 인내 또는 잔고를 직접 통장에 채워 넣을 수 있는 역량이 있어야 합니다. IBM에게는 둘 다 부족했습니다.
오늘날 SoC 안에서 Hexagon NPU가 음성 인식을, 뉴럴 엔진이 카메라 노이즈 제거를, 통합 모뎀이 5G 신호를, Realtek HD Audio 후손 칩이 이어폰 출력을 처리하는 모습을 볼 때마다 1992년 IBM이 카드 한 장으로 하려 했던 일이 정확히 그것이었음을 새삼 떠올리게 됩니다. 다만 30년 사이 어음을 결제할 통화의 가치가 100만 배 올라갔고, 어음을 받아 줄 환전소가 표준 클래스 드라이버라는 이름으로 어디에나 들어섰고, 어음을 발행한 회사 안에서 단일 책임자가 어음의 액면을 다시 정직하게 좁히는 작업이 일상이 되었을 뿐입니다. Mwave의 이야기를 두고 비전이 시대를 앞섰다고 위로하기는 쉽지만 위로보다 정직한 표현은 따로 있습니다. 자기 시대의 잔고를 정직하게 계산하지 않은 채 끊은 어음은 만기일에 부도가 나고, 그 부도의 비용은 약속을 가장 진지하게 받아 든 사람이 가장 크게 치릅니다. Mwave가 남긴 가장 깊은 교훈은 이 한 줄에 가까운 경우가 많다고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