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록체인이 불필요한 스타벅스 프리퀀시 사례

블록체인은 신뢰할 수 있는 외부 대상 즉 오라클을 신뢰하지 않고서는 블록체인 바깥의 그 무엇과도 연결될 수 없습니다. 그런데 블록체인 밖에서 거래되는 여러 가지 것들은 간단히 신뢰할 수 있는 당연한 대상을 경유해 자유롭게 거래됩니다.

블록체인이 불필요한 스타벅스 프리퀀시 사례

이전에 쓴 신뢰 대상을 만들지 않는데 집중한 이상한 결과는 제목이 모호해서 무슨 이야기를 하려는 것인지 이해하기 어려웠을 수 있습니다. 이 제목은 의도적으로 어그로를 끌지 않기 위해 모호한 제목을 골랐는데 신뢰할 대상을 만들지 않고 거래를 해 내는데 집중해 컴퓨팅 파워를 통해 신뢰를 획득하거나 블록체인 상에 더 많은 코인을 보유함으로써 블록체인의 신뢰성과 자기 자신의 이익이 일치하도록 만들어 신뢰를 획득하는 등의 방식을 만들어 온 과정을 신뢰할 대상을 만들지 않는데 집중했다고 표현했습니다. 그러니까 그냥 블록체인이 이상하다는 이야기였습니다.

이 밖에도 좀 더 모호하지만 어떤 블랙박스 알고리즘을 도입해 수학적으로 신뢰할 수밖에 없는 결과를 거래 요청과 함께 제출하는 방식도 연구되어 이를 도입한 블록체인들도 나타나고 있는 것 같지만 항상 잘 모르는 뭔가를 사용할 때는 ‘맘 팩터’를 적용해 보라는 사실을 마음에 두고 있습니다. ‘맘 팩터’는 대상의 스테레오타입에 기반한 차별적인 표현이어서 썩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이 표현 만큼 상황에 잘 맞는 표현을 찾기 쉽지 않은 것도 사실입니다. 맘 팩터의 좀 더 강화된 버전에는 ‘그랜마 팩터’가 있습니다.

핵심은 뭔가 이해하기 어려운 복잡한 개념이나 사건이 있을 때 이를 어머니에게 설명할 수 있을 정도로 쉽게 풀어낼 수 있는지 여부에 따라 이 개념이나 사건을 신뢰할지 아니면 신뢰를 보류할지를 결정하는 것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초기 비트코인 네트워크가 도입한 컴퓨팅 파워에 따른 신뢰 획득은 아슬아슬하게 설명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시도해보지는 않았지만요. 또 코인 보유에 따른 신뢰 획득 역시 재벌 가문 사람들이 흔하게 등장하는 드라마 속 최대주주의 개념을 통해 설명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수학적으로 올바른 블랙박스는 일단 맘 팩터 이전에 저 자신이 이를 이해하고 설명할 수 없기 때문에 신뢰를 보류하고 있습니다.

한편 지난 신뢰 대상을 만들지 않는데 집중한 이상한 결과의 핵심은 블록체인 기술을 바탕으로 사회의 여러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블록체인은 그 스스로 발행한 코인 또는 토큰을 증명할 수 있을 뿐 여기에 연결되는 실제 세계의 어떤 대상이나 정보에 대한 신뢰를 증명할 수는 없어 블록체인 그 스스로는 의미가 있지만 바깥 세상에는 아무런 영향을 끼칠 수 없다는 것입니다. 흔히 블록체인 업계에서 오라클 문제라고 부르는 블록체인을 외부 대상과 연결하기 위해 블록체인 바깥의 누군가를 신뢰해야만 하는 온갖 상황에 오라클을 신뢰하지 않을 명확한 방법을 제시하지 않는 이상 블록체인은 그 스스로 블록체인 바깥의 그 무엇도 증명할 수 없습니다.

가령 저 유명한 텅스텐 큐브 사례를 생각해 보면 NFT와 실제 세계의 물건을 연결하는 흥미로운 사례임에 분명하고 NFT의 거래에 따라 텅스텐 큐브의 소유권이 이전되며 소유권에 따른 권한 역시 함께 이전됨을 보증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는 법적으로 보장되지 않으며 텅스텐 큐브를 보관한 회사가 사라지거나 NFT 소유주의 의사에 반해 실물 텅스텐 큐브를 처분해 버린다 하더라도 이를 막을 수도 없고 보상을 받을 수도 없습니다. 어쩌면 지리한 법정 공방에 의한 유권 해석 끝에 보상을 받을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거기까지는 많은 시간과 비용이 필요할 겁니다. 이 사례의 핵심은 블록체인 상의 데이터와 실제 세계의 텅스텐 큐브와 연결을 신뢰하기 위해서는 텅스텐 큐브를 보관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회사를 신뢰해야만 한다는 점입니다.

이전에 슈페리어라는 게임을 살펴보기 위해 회사가 판매하고 있는 얼리 액세스 패스 NFT를 구입한 적이 있습니다. 게임은 특색 없이 그저 그런 게임일 뿐이었고 NFT에 기반한 캐릭터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이익은 오히려 게임 수명을 파괴하는 희한한 구조로 설계되어 있어 이를 파악하면서도 도대체 왜 이렇게 만들었을지 의심스러웠던 기억입니다. 이 그저 그런 게임을 살펴봤던 이유는 이 게임이 스팀에는 블록체인 관련 요소가 없는 버전으로 출시됐고 블록체인 관련 요소를 포함한 별도 버전을 동시에 서비스 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마일스톤이 끝나자마자 잘린 이전 프로젝트도 이와 비슷한 방식으로 서비스 해야 할 지도 몰랐기 때문에 이들이 어떻게 하고 있는지 알아보면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스팀에서는 한 3만원 정도에 팔고 있어 이를 구입해 살펴봤는데 비슷한 게임이 넘치는 세계에서 딱히 새로울 것은 없어 보였고 딱히 오랜 시간 플레이 하지도 않았습니다.

게임을 NFT 모양으로 구입해 플레이 할 수 있는 버전은 일단 NFT를 구입한 다음 지갑을 사용해 로그인 하면 지갑에 있는 NFT를 감지해 게임을 시작할 수 있게 되어 있습니다. 본격적으로 비싼 캐릭터 NFT를 구입해 게임을 시작하면 추가 보상을 받을 수 있고 반복 플레이 마다 스킬 포인트를 얻어 더 빨리 성장해 게임 컨텐츠를 짧은 시간 안에 접근할 수 있는 특전이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 캐릭터 NFT를 시험 삼아 구입해 보기에는 너무 비싸 아무런 특전도 없지만 그냥 게임을 실행해볼 수는 있게 해 주는 얼리 액세스 패스 NFT를 구입했는데 이 가격은 스팀을 통해 판매하는 가격과 비슷하게 책정되어 있었습니다. 혹시 뭔가 다른 점이 있을까 싶었지만 스팀을 통해 플레이한 경험과 전혀 다르지 않았고 게임은 아직 개발 중이어서 사람들이 관심 있어 할 인게임 재화를 블록체인을 통해 외부화 하는 메커닉은 아직 만들어지지 않은 상태였습니다.

게임 상태에 실망해 별 것 없다는 보고서를 작성하다가 문득 게임 사용 권한을 NFT 모양으로 가지고 있기 때문에 회사의 제한이나 플랫폼의 정책과 관계 없이 그냥 NFT를 다른 지갑으로 보내면 게임을 팔거나 그냥 줘 버릴 수 있다는 점이 흥미로웠습니다. 그래서 혹시 이 게임을 플레이 해 보고 싶은 분이 있으면 아무나 지갑 주소를 주시면 NFT를 그냥 보내드리겠다고 했지만 이미 스팀으로 이 게임이 얼마나 재미 없는지 알고 있던 사람들은 아무도 손을 들지 않아 지금도 그냥 가지고 있습니다.

분명 게임을 NFT 모양으로 회사나 플랫폼에 관계 없이 주고 받을 수 있는 가능성은 흥미로웠습니다. 하지만 이 역시 블록체인 상의 데이터와 블록체인 바깥의 게임 서비스의 연결을 보증하기 위해서는 게임 개발사나 퍼블리셔를 신뢰해야만 합니다. 만약 게임 NFT를 구입했다 하더라도 개발이 중단되거나 서비스가 종료되면 - 결국 같은 말이지만 - 블록체인 상의 데이터는 아무 의미가 없어집니다. 이 게임 NFT는 게임 제작사나 퍼블리셔라는 오라클을 신뢰해야만 의미가 있으며 블록체인 상의 데이터 자체만으로는 아무런 의미도 가치도 없습니다.

한편 연말의 엄청난 한파를 뚫고 간 송년회에서 가벼운 음주를 곁들인 식사를 한 다음 2차로 수다를 떨 작정으로 근처 스타벅스에 갔습니다. 마실 것을 시켜 놓고 한참 이야기하다가 문득 스타벅스 프리퀀시 사용 기간이 얼마 안 남아 누군가에게 서로의 프리퀀시를 몰아주면 좋겠다는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곧 한 사람에게 프리퀀시를 몰아 주기 시작했는데 다들 프리퀀시를 모으는데 그리 관심이 있지는 않아서 별 도움이 되지 않는 수량을 전달할 수 있을 뿐이었습니다. 하지만 또 다른 누군가는 어쩌다 보니 스타벅스를 자주 가서 프리퀀시를 의미 있는 갯수 만큼 가지고 있었지만 그렇다고 올해 안에 프리퀀시를 완전히 모을 수는 없는 상황이었고 그 스스로도 그럴 생각이 없어 보였습니다. 하지만 이들의 프리퀀시를 모두 한 사람이 모으자 이제 선물을 받을 수 있는 유의미한 수량이 됩니다. 다만 그 즈음 폐점 시간이 되어 선물은 다른 날 다른 매장에 가서 수령하게 됐습니다.

스타벅스 프리퀀시는 스타벅스 회사를 신뢰하고 또 회사가 운영하는 시스템이 동작하는 한 이를 신뢰할 수 있습니다. 게다가 보상 책임이 있을 것 같지는 않지만 관련 법률을 통해 최소한의 보호는 받을 수 있을 겁니다. 사람들은 스타벅스 앱을 설치하고 로그인한 다음 서로 자유롭게 프리퀀시를 주고 받을 수 있는데 이는 오직 스타벅스 코리아에서 개발하고 운영하는 시스템을 필요로 할 뿐 여기에 블록체인 같은 신뢰할 대상을 만들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별도 플랫폼을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또한 만약 스타벅스 프리퀀시가 블록체인 기반으로 동작한다 하더라도 블록체인 관점에서 스타벅스 프리퀀시는 아무 의미 없는 디지털 쓰레기에 불과하며 이 데이터에 의미를 부여하기 위해서는 스타벅스 코리아라는 오라클을 신뢰해야만 합니다.

스타벅스 코리아를 신뢰해야만 하는 순간 그 기반이 블록체인이든 스타벅스가 직접 개발하고 운영하는 중앙화된 시스템이든 그 차이가 완전히 없어집니다. 오히려 블록체인은 거래를 위해 정확히 누구에게 지불되는지도 불분명한 가스비 - 일종의 블록체인 사용 수수료 - 를 지불해야 하지만 회사가 직접 운영하는 중앙화된 서비스를 사용하는 이상 거래 비용은 회사가 지불하며 이 과정은 무척 잘 정돈되어 있습니다.

지난 신뢰 대상을 만들지 않는데 집중한 이상한 결과에서 블록체인은 그 스스로 만들어낸 데이터를 증명할 수 있을 뿐 실제 세계의 그 무엇과도 신뢰할 수 있는 연결을 그 스스로 만들어내지 못하며 이를 극복하기 위해 오라클을 신뢰하는 순간 블록체인 자체에 의미가 없어진다는 이야기를 하면서 굳이 어그로를 끌 필요는 없을 것 같아 모호한 제목을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스타벅스 프리퀀시 교환 사례를 보듯 실제 세계의 대상을 신뢰하려면 이를 보증하는 주체가 필요하며 이 주체를 신뢰하는 순간 블록체인이 개입할 여지가 없음을 보이고 있습니다. 블록체인이 실제 세계의 거래에 개입하기 위해서는 오라클이 필요한데 오라클을 신뢰하는 순간 블록체인은 불필요합니다. 위에서 살펴본 게임에도 불필요하고 프리퀀시에도 전혀 필요하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