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서와요. 인디애나존스.
이제 존스 박사에게 작별을 말할 용기를 낼 수 있었습니다.
석 달 전 당장이라도 영화관에 달려갈 것처럼 굴며 마지막 작별인사를 준비하며를 썼지만 결국 시간이 났을 때 집에서 가장 가까운 인디애나존스 마지막 영화를 상영하는 영화관은 집에서 64킬로미터 떨어져 있던 웃픈 결말을 한달 전 왜 아무도 아메리칸 프로메테우스를 읽은 사람은 영화 오펜하이머를 보면 안된다고 경고해 주지 않았나요?에서 고백했습니다. 어지간한 영화라도 영화관에서 내려간 다음 시간이 조금 지나면 영화가 얼마나 흥행했었는지에 따라 시작 가격이 다를 뿐 결국 유튜브에 나타날 거라는 사실을 그 동안의 체험을 통해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비록 영화관에서 작별인사를 할 기회를 놓쳤지만 금방 만회하기를 기대했습니다. 하지만 제법 시간이 지나는 동안 인디애나존스는 유튜브 근처에도 나타나지 않았고 이건 디즈니가 감히 인디와 마지막 작별인사를 영화관에서 하지 않은 제게 벌을 주고 있지 않은가 하는 의심을 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그렇게 9월 말에서 10월 초로 이어지는 연휴 끄트머리에 아무 사전정보 없이 유튜브 초기화면을 새로고침 했다가 영화 목록에 인디아나 존스: 운명의 다이얼이 작별을 준비했던 날로부터 석 달이 흐른 다음 이번에는 마음의 준비를 별로 하고 있지 않았던 연휴 마지막 날 드디어 나타납니다. 사실 오후에는 다른 할 일이 있었지만 전부 다 없애고 연휴 마지막 날 오후는 온전히 인디애나존스에 투자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일정을 모두 없앤 다음 방 창문을 조금 열어 중간에 더위에 고통 받지 않도록 준비하고 블라인드를 조금 내려 방 안을 조금 어둡게 만든 다음 구글에 만 얼마를 내고 영화를 구입한 다음 경건하고 또 조금 미안한 마음으로 영화를 보기 시작합니다. 실은 그냥 컴퓨터로 볼까 했는데 디즈니가 컴퓨터를 통해 영화를 보는 사람들을 싫어해서인지는 몰라도 480p로 밖에 재생할 수 없어 애플티비를 통해 재생해야만 했습니다.
영화는 엔드 크레딧을 빼고도 두 시간을 훌쩍 넘겼고 영화를 볼 때 영화가 충분히 재미있거나 그렇지 않거나의 개인적인 기준인 중간에 시간을 확인하는지, 확인한다면 몇 번이나 확인하는지 기준에 의하면 중간에 시간을 두 번 확인할 정도의 영화였습니다. 사실 시간을 두 번 확인할 정도면 적어도 다른 사람들에게 이 영화를 추천하기는 어려운 수준이라는 의미입니다. 하지만 십 수년 전 자정을 훨씬 넘긴 시각 선릉에 있던 사무실을 나서 코엑스까지 차가운 밤바람을 맞으며 걸어 가 모자란 잠을 포기하며 본 지난 인디애나존스가 선사했던 처참한 감정을 겪지는 않았습니다. 여러 가지 아쉬운 점은 있지만 드디어 닥터 핸리 존스, 혹은 인디애나 존스 박사에게 제대로 작별인사를 하고 그가 평생에 걸친 기나긴 모험을 마무리하고 드디어 집으로 돌아와 남은 가족과 관계를 회복하고 또 팬들에게도 적당한 작별인사를 해냈다고 생각합니다.
영화가 왜 영화관에서 그렇게 까지 순식간에 사라졌는지는 두 시간 좀 넘는 시간 동안 시간을 두 번 확인한 자신의 행동으로부터 이미 설명할 수 있었습니다. 이번 인디애나존스는 독립된 엔터테인먼트로써 흥행을 노리는데 집중하기 보다는 인디애나존스, 그리고 해리슨 포드의 팬 무비에 가깝고 만약 이 관점에서 본다면 영화는 약간 비틀어져 있긴 하지만 목적을 충실히 달성했습니다. 하지만 새로운 영화를 보는 관점으로 이 영화롤 보기 위해 영화관을 찾은 사람들이라면 당혹스러울 수밖에 없었을 겁니다. 나름 인디애나존스의 오랜 팬이라고 생각하는 입장에서도 잠시나마 당황스러울 때가 있었는데 그렇지 않은 입장에서 이 영화는 지루함과 당혹스러움을 이겨내야만 끝까지 자리에 앉아 있을 수 있는 그런 종류의 영화였습니다.
이 영화는 인디애나존스 시리즈의 마지막 영화이지만 첫 영화가 개봉한 지 40년도 넘은 영화이기도 합니다. 십 수년 전 지난 인디애나 존스 크리스탈 해골의 왕국은 영화가 끝나고 차마 차라리 그 시간에 잠을 잤으면 그보다는 기분이 덜 나빴을 것 같은 어처구니 없는 감정을 느끼게 만들었지만 이번에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전작은 나름 세대 교체를 시도했지만 제작자들 스스로도 그 시도가 처참하게 실패했음을 깨닫고 영화가 끝날 때 그 사실을 존스 박사의 아들이 쓰고 있던 중절모를 벗겨 도로 자신이 쓰는 장면을 통해 말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세월이 흘렀고 이제 과거에 영광을 누리던 여러 영화 프랜차이즈들이 한 시대를 마무리하고 다음을 준비하거나 가장 명예로운 자리를 통해 그 마지막을 장식하던데 비해 인디애나존스 시리즈는 십 수년 전의 처참한 실패로부터 아직 한 시대를 마무리하거나 명예롭게 그 마지막을 장식하지 못한 상태였습니다.
하지만 인디애나존스 운명의 다이얼은 시리즈의 오랜 팬들에게 충분히 서비스를 하고 또 누구 생각인지 모르겠지만 해리슨 포드 주연의 오래된 영화 오마주를 포함했을 뿐 아니라 이 세계관이 존재하는 한 영원히 고통 받을 나치들을 다시 한 번 충분히 괴롭혔고 또 존스 박사가 고고학자로써 평생에 걸쳐 연구하고 결코 만날 수 없을 그리워하던 역사와 직접 대면하게 만들었을 뿐 아니라 스토리 상 개인적으로도 가족과 관계 회복을 통한 가장 행복한 결말을 맞이했습니다. 이 과정을 두 시간 넘게 함께한 팬 입장에서도 대단히 훌륭하지는 않지만 한 솔로의 최후처럼 준비되지 않은 채 당혹스러운 결말을 맞이하지는 않게 해 주었습니다.
혹시 거기 계시면 제게 알려주세요에서 처음 뉴스레터를 시작할 때는 글 하나 당 대략 4천자 전후로 분량을 조절해 글을 쓰기 시작했는데 그로부터 반 년이 지난 지금은 말이 점점 더 길어져 글에 따라서는 처음의 두 배에 가까운 분량이 되기도 해 이거 손가락 찬호박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기는 합니다. 하지만 오늘은 평소보다 더 많이 주접스럽더라도 오래된 영화들의 오마주, 영원히 고통받는 나치, 고고학자로써 일생 일대의 순간, 상당히 뻔한 가족과의 관계 회복과 서기 2023년을 사는 사람 관점에서 이 부분에 아쉬운 점에 대해 장황하게 하나하나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이번 인디애나존스는 인디애나존스 팬 무비임과 동시에 해리슨 포드 팬 무비이기도 합니다. 일단 자기 자신이 전작들로부터 여러 요소를 가져와 활용하고 있는데 가장 두드러지는 부분은 음악입니다. 어떻게 생각하면 아쉽게 여길 수도 있지만 영화가 계속되는 내내 나오는 모든 음악은 전작에 사용되었던 음악을 이번 영화 속 상황에 맞게 다시 편곡한 것입니다. 4편은 잘 기억나지 않지만 적어도 1, 2, 3편을 제작하던 시대에는 영화 전체에 걸쳐 거의 끊기지 않는 음악 한 곡이 계속되도록 음악을 만드는 노력을 서슴지 않던 시대였습니다. 그래서 이전에 사용했던 음악이 그 음악과 함께 기억하던 장면과는 다른 장면과 함께 나올 때 처음에는 조금 당혹스러웠습니다. 하지만 다른 한 편으로는 이전의 여러 모험과 함께했던 긴 한 곡의 음악이 이제 낱낱이 분해되어 새로운 영화를 통해 다시 연결되어 또 다른 한 곡을 만들어내고 있는 점은 나름 재미있는 경험이었습니다. 눈으로는 운명의 다이얼을 뒤쫓는 모험을 함께하며 귀로는 음악을 듣고 그와 함께 머릿속으로는 그 음악이 처음 사용되었던 전작들을 떠올리며 동시에 여러 영화를 함께 보는 것 같은 굉장히 풍성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개인적으로 이 영화가 해리슨 포드 팬 무비라고 생각하는 이유는 CIA 요원들의 이유 모를 - 적어도 이 시점까지는 - 추격을 받는 무대인 달 착륙 기념 퍼레이드는 영화 도망자에서 주인공 킴블 박사가 아내를 죽인 범인이라고 생각한 교도소에 있던 인물과 면회를 마치고 교도소를 빠져나오면서 제러드 형사 일행의 추격을 따돌리던 바로 그 퍼레이드와 똑같습니다. 두 영화에 걸쳐 같은 배우가 서로 다른 집단의 여러 사람을 피해 퍼레이드에 섞여 도망칠 때 퍼레이드의 목적은 서로 다르지만 같은 음악을 연주하는 가운데 이 선곡은 해리슨 포드의 이전 출연작을 생각하지 않았다면 할 수 없는 설정입니다. 물론 퍼레이드에 섞여 추적자들을 따돌리는 방식은 인디애나존스 오리지널에 가깝고 반전 시위에 섞여 함께 구호를 외치다가 피켓을 집어 들어 요원들을 후려친 다음 말을 타고 도망치는 스타일은 이 프랜차이즈 전체에 걸쳐 가장 많이 나오는 인디애나존스 스타일의 추격 장면 바로 그 자체입니다. 젊은 킴블 박사를 떠올리며 미소 짓는 사이 훨씬 나이 든 얼굴의 존스 박사는 말을 타고 자신을 향해 정면으로 달려드는 열차를 피해 다음 역에 도착해 열차로 갈아타며 말에서 내려 열차에 올라탄 자신을 쳐다보는 놀란 사람들에게 '(말보다) 지하철이 빨라서요’라고 말하는 그 순간 까지 이런 스타일이야말로 오래된 인디애나존스식 유머 코드입니다.
하지만 여기까지 오는 사이에 영화는 인디애나존스 시리즈 답지 않은 불편한 감정을 느끼게 만들기도 했습니다. 인디애나존스 시리즈의 장르는 액션이기도 하고 코미디이기도 합니다. 이 영화가 코미디인 이유는 존스 박사가 자신에게 닥쳐 온 너무나도 거대한 위기를 맞이해 얼 빠진 얼굴을 하는 순간을 제외하고는 그 어떤 순간에도 벗겨지지 않는 모자와 모험이 계속되는 동안 분명히 사람들이 여럿 죽어 나가지만 그들의 죽음이 그들에게는 조금 미안하지만 가볍고 유쾌하게 느껴지도록 만들어 왔기 때문입니다. 또 존스 박사가 쏘는 손바닥 만한 권총을 쏠 때는 엽총을 쏠 때나 날 것 같은 대단한 소리가 나고 존스 박사가 휘두르는 주먹이 상대의 얼굴에 처박힐 때는 야구방망이로 고기를 패는 소리가 나지만 적들이 쏘는 총소리는 맥이 없고 또 그들이 휘두르는 주먹 역시 강하게 느껴지지 않습니다. 이런 밸런스가 폭력이 난무하고 사람들이 죽어 나가는 가운데 영화를 경쾌하고 또 유쾌하게 만들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이미 여기까지 오는 사이에 여러 사람들이 불필요하게, 그리고 불쾌하게 죽어 나갔습니다. 영화 전체에 걸쳐 존스 박사 일행을 뒤쫓는 나치들, 그리고 CIA 요원들은 이상할 정도로 적과 비무장 민간인을 가리지 않고 마구잡이로 총을 쏴 댔고 그들은 당연하게도 아무 저항 없이 쓰러졌으며 이런 건 인디애나존스 시리즈에서 그 동안 보여준 유쾌하고 가벼운 죽음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존스 박사의 사무실이 있는 같은 층에서 일하는 동료 교직원이나 교무원일 뿐이었으며 인디의 오랜 친구였고 또 고대 로마와 그리스의 병사들일 뿐이었습니다. 이 프랜차이즈 전체에 걸쳐 명백한 이유 없이 맞고 고통 받고 또 죽어도 괜찮다고 영화 제작자와 관객 사이에 서로 약속한 사람들은 나치들 뿐이었는데 이번에는 나치와 나치가 아닌 사람을 가리지 않고 아무나, 정말 아무나 그냥 너무 쉽게 죽였습니다. 그들의 죽음이 영화에 어떤 의미를 부여한다고 보기도 어렵습니다. 영화를 보다가 ‘아니 미친. 그 사람들을 왜 이렇게 죽여?’라고 말할 수밖에 없었고 아주 많이 실망스러웠습니다.
나치들 조차도 의미 없이 쉽게 죽지 않았는데 가령 레이더스에서 나치들은 성궤를 열어 그 안에서 나온 악마를 봤기 때문에 떼죽음을 당했고 사람을 재물로 바치던 사람들은 칼리 신을 배신했기 때문에 신의 저주를 받아 죽었으며 성배를 찾던 나치들은 같은 편이 멍청하게 모는 탱크에 치여, 같은 편의 탱크에 깔려, 그리고 그 탱크와 함께 장렬히 추락해 죽었고 또 잘못된 성배에 든 물을 마셔서, 성배가 존재할 수 있는 사원 밖으로 성배를 가져가려다가 욕심에 굴복해 죽었습니다. 이들은 때때로 자신들의 권총을 빼앗은 인디가 쏜 총에 맞아 한 방에 두 명이 쓰러지며 상황을 유쾌하게 만들기도 하고 해안에서 더 이상 피할 곳이 없는 순간에 존스 박사 일행을 덮친 전투기는 하늘로 날아오른 갈매기와 부딪쳐 장렬히 산화했습니다.
그렇게 자잘한 인물부터 중요한 악당에 이르기까지 죽는 사람 하나하나가 상황을 웃기게 만들거나 자기들끼리 손발이 안 맞아 어이없이 죽거나 장렬하게 죽어 왔지만 이번엔 그렇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은 뚜렷한 피아 구분 없이 그저 상대가 별 의미 없이 쏜 총에 그냥 죽었습니다. 이들의 죽음은 상황을 경쾌하게 만들어주지도 못했고 존스 박사에 비해 오합지졸로 묘사되는 자신들을 표현하기 위해 죽은 것도 아니며 나름 존스 박사 일행과 끝까지 맞서 싸우다가 장렬하게 전사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영화 속에서 사람들이 의미 없이 죽어 나갈 때마다 영화롤 영화로 즐기며 웃을 수가 없었습니다. 아주 불편했습니다.
영화는 처음 운명의 다이얼과 만난 과거 이야기, 현재에 도망자가 된 존스 박사, 모로코 에피소드, 해저 에피소드, 그리스 에피소드, 그리고 먼 과거 에피소드와 에필로그로 구성되는데 이 나열을 보며 이미 짐작하셨겠지만 영화는 마지막으로 너무 많은 것을 한 번에 보여주려고 한 것 같습니다. 마치 블로그 글을 8천자 정도 쓴 다음 이렇게 긴 텍스트는 아무도 읽지 않으리라는 사실을 너무나 잘 알지만 글을 둘로 나누기도 애매해서 하는 수 없이 거의 1만자에 달하는 긴 텍스트를 읽기 힘들 정도로 굵직한 문단 몇 개로 나눠 게시하는 그런 느낌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특히 해저 에피소드는 지난 최후의 성전에서 존스 박사가 그동안 뱀을 무서워한 이유를 설명하는데 이를 또 한번 설명함과 동시에 바닷속에서 안티카테라의 나머지 반쪽을 찾기 위한 ‘망할놈의 지도’를 손에 넣는데 몇 십 분을 할애합니다. 다행히 이번에는 전작에서처럼 존스 박사에게 모멸감을 주고 또 관객들을 지겹게 만들며 거대한 뱀을 앞에 두고 ‘밧줄을 잡아요 인디’라고 말하지는 않았습니다. 이 에피소드 전체가 물 속에서 일어난 덕분에 뱀처럼 보이는 장어들을 앞에 둔 존스 박사가 지겹게 이들을 무서워 하는 장면을 귀로도 듣지 않을 수 있어서 다행이었는데 이 에피소드가 마무리될 즈음에는 이 에피소드 전체를 덜어내 영화의 호흡을 훨씬 경쾌하게 만들 수 있었을 거란 생각이 듭니다.
감동적인 두 장면이 있는데 하나는 비록 나치들의 손아귀에 들어간 채였지만 운명의 다이얼을 작동 시켜 과거로 돌아가 이 장치를 만든 아르키메데스의 의도 대로 시라쿠사 전투에서 로마군을 몰아내며 평생에 걸쳐 연구해 온 역사와 직접 대면하는 장면입니다. 사실 시간의 틈을 통과하기 직전 대륙이동설을 언급하며 시간의 틈을 통해 이동하려는 좌표에 오차가 있을 거라고 말하는 존스 박사의 설명은 아무리 시나리오를 발로 써도 이보다는 좀 더 그럴듯한 이유를 만들 수 있지 않았을까 싶은 생각이 들어 우스운 기분이 들었습니다. 또 시간의 틈을 넘어 도착한 순간이 아르키메데스가 살아 있던 그리스군과 로마군이 싸우던 바로 그 순간임을 알았을 때, 시간의 틈을 통과한 비행기 바깥으로 바다 위에 떠 있는 로마군의 함선들이 보일 때 ‘이건 좀 많이 오버한 거 아닌가?’ 싶은 생각을 잠깐 했지만 영화 처음 부분에 존스 박사가 졸고 있는 학생들에게 갑작스레 열정을 가지고 설명한 역사 속 장면, 그리고 중간에 배 위에서 헬레나의 카드 마술을 보며 항상 같은 카드를 뽑게 되어 있는 트릭으로 충분히 복선을 준 마당에 이 정도 오버는 할 만 하다 싶습니다. 현대 물리학에서 과거로 시간여행은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과학적으로 증명하고 있지만 과거의 인물과 조우하고 이 사건이 시간 속에서 영원히 반복되며 인과관계를 성립하게 만드는 이야기는 백 투더 퓨처에서도, 별의 계승자 시리즈에서도 충분히 설득력 있고 매력적입니다.
다른 한 장면은 그 시대에 남겠다는 존스 박사의 바램을 거부한 헬레나의 강력한 한 방에 현대로 돌아와 마치 한 번도 떠난 적 없었던 것처럼 가게에서 먹거리를 사 들고 집으로 돌아온 마리온을 마주하는 장면입니다. 어디에나 있는 흔한 관계의 회복과 가족의 재결합 장면으로 치부할 수도 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마리온은 과거에 안티카테라를 손에 넣은 프롤로그가 끝나고 존스 박사의 현대에 냉장고에 붙어 있는 사진으로만 등장했을 뿐 모험이 계속되는 내내 단 한 순간도 등장하지 않았습니다. 특히 마리온 레이번우드의 별거 신청 서류는 현실의 물건이지만 냉장고에 붙어 있는 마리온의 사진은 젊은 시절 마리온이어서 이 영화 역시 레아 장군이 영화 밖에서 했던 말처럼 남성은 생긴 그대로 늙을 수 있는 특권을 가졌다는 사실을 재확인하는 수준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들어 언짢은 감정이 들었습니다.
인디애나존스 프랜차이즈의 마지막 영화에서 마리온을 그런 식으로 보내서는 안된다고 생각하는데 마리온은 이 프랜차이즈가 시작된 잃어버린 성궤에서부터 함께한 인생의 동반자이기 때문입니다. 비록 철저하게 실패한 전작을 완전히 지워버리고 시작하기 위해 자원 입대한 아들의 죽음, 반려인과 별거, 반전 시위를 통한 위기 탈출의 과정을 거치지만 그냥 그렇게 젊은 마리온의 사진을 가려 버리는 그런 장면으로만 존스 박사의 동반자와 작별해서는 안됐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에필로그에 현실의 모습 그대로 등장한 마리온은 레아 장군의 말을 다시 한 번 떠올리게 만들었지만 그 전까지 들던 아쉽고 불편한 감정을 조금은 부드럽게 만들어 주었습니다. ‘당신이 돌아왔다는 소식을 들었어’라는 마리온의 말은 사실 마리온이 인디를 떠난 것이 아니라 아버지를 열 받게 만들기 위해 입대한 아들이 전사하자 자기 자신과 아버지가 그랬던 것처럼 모험을 통한 관계 회복에 이르지 못했음에 좌절한 인디 본인이 마리온을 떠났음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마리온은 물리적으로 인디를 떠났지만 사실 슬픔에 빠져 마리온을 떠난 것은 바로 인디애나존스 본인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번 모험을 통해 또 하나의 나치를 고통 받게 만들고 또 고고학자로써 항상 탐구하고 염원하던 역사의 순간과 조우하는 경험을 한 존스 박사는 이제 자신의 여생에 남은 것은 평생의 반려자였고 앞으로도 반려자일 마리온이라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그래서 에필로그에 마리온이 냉장고에 붙은 오래된 사진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의 모습으로 나타났을 때 여전히 마음에 안 드는 지점이 있었지만 아슬아슬하게 따뜻한 느낌을 받기로 결정했습니다.
하지만 비록 첫 영화가 개봉된 지 40년도 넘게 지난 오래된 프랜차이즈라는 사실을 감안하더라도 이 프랜차이즈의 마지막 영화는 서기 2023년에 개봉되었음을 고려할 때 아쉬운 점들이 남아 있습니다. 이 아쉬움은 은 이제 극장판 인디애나존스 프랜차이즈가 종료된 마당에 이 프랜차이즈를 통해 해결할 수 없음을 잘 알고 있습니다. 대신 아쉬움을 머릿속 밖으로 끄집어내 직접 대면하고 미래의 다른 영화들을 지켜보는데는 도움이 될 겁니다. 일단 이번에는 헬레나 쇼라는 매력적인 캐릭터가 새로 등장했는데 여태껏 인디애나존스 프랜차이즈를 통해 등장한 적 없는 오랜 친구 바실 쇼의 딸이라는 설정입니다. 영화 속에서 스스로 말하기도 하지만 강하고 독립적인 여성으로 인디애나존스 마궁의 사원에 등장했던 존스 박사와 쇼티를 영화 속 현대에 재현한 조합이기도 합니다.
존스 박사를 속여 안티카테라를 얻어낸 다음 이를 경매에 팔아 치워 돈을 얻으려는 모습, 도박 빚을 갚기 위해 약혼하지만 약혼자를 배신하고 도망쳐 다니며 나름 자유롭게 살아가는 헬레나와 테디는 상하이의 한 클럽에서 유물과 다이아몬드를 교환하려다 멸망한 인디애나존스의 모습 그대로입니다. 스스로 고고학자와 도굴꾼 사이를 오가는 것과 비슷하게 고고학을 전공했지만 유물을 팔아 치우려는 모습은 마지막 영화에서 존스 박사에 대한 예의를 지키기는 하지만 그가 한때 도굴꾼이었다는 현실을 부정하지는 않는 장치입니다.
유쾌하고 매력적인 이 두 새로운 캐릭터들은 늙은 존스 박사의 멱살을 붙잡고 끝까지 모험을 이어 나가게 만들었지만 한편으로는 나이 든 남성과 젊은 여성의 좀 많이 뻔한 조합으로 이야기를 전개하는 방식이 마냥 유쾌하기만 하지는 않았습니다. 물론 이들은 매력적인 캐릭터들로 전작에서 잠시 프랜차이즈의 다음을 이끌어 갈 새로운 캐릭터를 만들려 시도했다가 철저하게 실패한 사례와 비교할 때 새로운 시대에 새로운 프랜차이즈를 만들어 갈 만한 충분한 잠재력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적어도 이번 영화에 한해서는 이들이 젊은 존스 박사와 쇼티를 오마주한 조합이라 하더라도 너무 쉬운 캐릭터 선택이지 않았나 싶은 아쉬움이 있습니다. 또한 앞에서 이야기한 관계의 회복과 가족의 재결합을 충분히 개연성 있게 만들기 위해서는 존스 박사의 이번 모험의 핵심을 헬레나와 함께했더라도 이 모험의 어느 한 부분이라도 마리온이 개입했어야 합니다. 영화 내내 아무 이야기에도 개입하지 않다가 존스 박사의 마음이 드디어 슬픔을 벗어나 현실로 돌아왔다는 말을 듣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것처럼 걸어 들어온 마리온의 모습 만으로 관계의 회복을 말하기에는 마리온에게 폭력적이지 않은가 싶습니다.
다른 아쉬운 점으로는 앞에서 잠깐 이야기한 사람들의 의미 없는 죽음과도 관계가 있는데 악당의 죽음이 충분히 통쾌하지 않다는 점도 있습니다. 과거를 돌이켜보면 존스 박사와 싸웠던 악당들은 조금 멍청하고 조금 웃기기는 했지만 나름 전력을 다해 존스 박사 일행을 상대한 끝에 장렬한 최후를 맞이했습니다. 존스 박사에 앞서 성궤를 발견했지만 충분한 지식을 갖춰 준비하지 않았기에 죽음을 맞이하거나 칼리 신을 배신한 나머지 저주를 받아 절벽에서 떨어져 죽거나 독일군 장교로써 총통의 지시를 충성스럽게 이행하다가 자신의 탱크와 함께 추락해 죽거나 잘못된 성배의 물을 마시고 죽거나 성배에 대한 욕심을 버리지 못해 죽거나 지식을 갈망한 나머지 인간으로써 감당할 수 없는 지식을 받아들이며 죽어간 사람들의 최후는 비록 악당이라 하더라도 이들의 장렬한 죽음에 통쾌함과 함께 아쉬움을 느끼게 해 주었습니다. 그러나 이번 악당 발러 박사는 시간의 틈을 통과해 로마군 위를 비행하다가 창에 맞은 비행기가 더 이상 조종할 수 없는 상태가 되어 추락해 죽었을 뿐입니다. 굳이 비교하면 최후의 성전에서 갈매기에 부딪쳐 죽은 이름 없는 전투기 조종사의 죽음과 별로 다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악당이 최후를 맞이하는 순간에도 별다른 감흥을 느낄 수 없었습니다.
어쨌든 그렇게 영화는 끝이 났고 40여년에 걸친 인디애나존스 영화 프랜차이즈는 막을 내렸습니다. 해리슨 포드가 영화를 계약할 때 처음부터 다섯 편을 찍기로 했었다고 합니다. 지난 크리스탈 해골의 제국 때만 해도 이런 상태라면 차라리 다음 영화를 찍지 말고 최후의 성전에 머무르며 프랜차이즈를 마무리하는 편이 더 낫다고 생각했습니다. 적어도 거기서는 아버지 헨리 존스와 모험을 함께하며 관계를 회복하는데 성공했고 때때로 좀 멍청하지만 나름 매력적이고 또 전력을 다하는 악당들이 끝까지 존스 박사 일행을 괴롭히며 멋진 최후를 맞이했으니까요. 반면 이전에는 아무것도 얻지 못했고 차라리 전작을 부정하고 싶었습니다. 이번에는 영화 스스로 아들의 죽음을 설정하며 전작을 온전히 부정하고 새로운 매력적인 캐릭터들을 선보이며 인디애나존스 프랜차이즈 관점에서 꽤 괜찮은 모험 이야기를 만들어냈습니다. 여전히 모험에 참여하지 않는 마리온과 관계 회복이나 나이 든 남성과 젊은 여성의 조합을 위해 친구 딸과 모험을 함께하는 설정, 그리고 너무 많은 것을 보여주려다 지루해진 에피소드를 생각하면 아쉬움은 남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이 영화를 인디애나존스 프랜차이즈로 인정하고 40여년에 걸친 긴 여정이 이제 정말로 막을 내렸음을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석 달 전 마지막 작별인사를 준비하며에서 준비하던 바로 그 작별을 비록 어두운 영화관에서 비슷한 감정을 느끼며 비슷한 경험을 함께한 사람들 사이에서 하는 대신 비슷하게 어둡기는 했지만 방 안에서 홀로 마주한 경험은 영화에 아쉬운 점에도 불구하고 이제는 인디를 떠나보낼 용기를 얻었습니다. 지난번 나는 클라리스 스탈링. FBI 소속이다에서 가장 좋아하는 영화와 소설을 떠나보낸 것처럼 이번에도 가장 좋아하는 모험 이야기이자 매력적인 사람들을 조금은 마음 편히 떠나 보내며 이젠 화를 낼 수도 없을 테니 마음 놓고 불러 보며 마무리합니다.
어서와요. 헨리 존스, 주니어.
기나긴 주접 끝에 이번 주에도 다른 다섯 가지 이야기를 준비했습니다. :)
어제는 아침 기온이 낮다는 예보를 봤지만 '아조시는 이런 날씨에도 굴하지 않지!' 라며 반팔을 입고 나갔다가 하루 종일 냉동인간인 채로 생활해야 했습니다. 오늘은 어제의 경험을 교훈 삼아 제대로 긴팔을 입고 출근했는데요, 이제 순식간에 겨울이 찾아올 모양입니다. 건강에 유의하시고 다음 주에 뵙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