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존은 실패할 수밖에 없었나

전설적인 개발자 존의 실패는 마치 2천년대 이후 국내에서 실패한 여러 프로젝트를 떠올리게 만듭니다.

왜 존은 실패할 수밖에 없었나

이전 존에게 진 빚에서 둠의 창조자들이라는 책을 읽은 이야기를 했습니다. 저는 실시간으로 둠을 플레이 한 세대는 아닙니다. 그보다 훨씬 나중에 퀘이크를 플레이 하며 비로소 일인칭 슈터 장르에 매력을 알게 됐고 이드소프트의 여러 게임 중 머리 속에 가장 강렬한 인상을 남긴 게임은 둠이 아니라 퀘이크였습니다. 또 이드소프트의 게임 중 가장 오랜 시간을 들여 플레이 한 게임은 퀘이크 3이었습니다. 이전까지는 이 모든 게임들이 그저 이드소프트에서 개발한 게임이라고, 존 카맥이 크게 관여한 게임이라고 생각해 왔는데 이번에 책을 읽으며 각각의 게임을 내놓을 때 어떤 일이 있었는지, 또 어떤 사람들이 더 많이 관여했는지 조금은 알게 됩니다. 가령 두 명의 존 중 존 로메로는 울펜슈타인과 둠에 더 많이 관여했고 퀘이크에는 전혀 관여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게 됐는데 이전까지는 그가 이드에서 레벨디자인에 관여했다고 알고 있었기 때문에 별 생각 없이 깊은 인상을 받은 첫 일인칭 슈터 장르인 퀘이크 역시 이 사람이 관여했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제가 경험한 게임 중 이 사람이 관여한 레벨디자인은 헤러틱을 통해 처음 접했는데 의미 있었지만 딱 그 정도가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한편 존 로메로가 존과 여러 모로 의견이 달라지고 또 개발에 집중하지 않으면서도 개발에 대한 권한은 유지하려고 하며 일어난 여러 가지 문제로 인해 결국 회사를 떠나게 되는데 이 다음의 이야기는 흥미로우면서도 슬프고 또 아주 먼 옛날의 이야기이며 이제는 흑역사로 치부되어 거의 이야기되지 않는 것 같지만 책에 묘사된 사건의 진행은 게임 만드는 일을 시작한 다음 경험했던 일과 여러 모로 닮아 있어 한번 쯤 생각해 보고 지나갈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존 로메로는 이드소프트에서 개발팀이 아주 작을 때부터 울펜슈타인 3D의 레벨디자인 도구를 직접 만들고 그 도구를 사용해 초창기 일인칭 슈터 장르의 레벨을 만들었다고 알려졌습니다. 이전에 해본 적 없는 업무를 정의하고 이에 적합한 도구를 개발하고 직접 레벨디자인을 해 냈으며 그 결과가 울펜슈타인, 헤러틱, 둠에서 경험한 바로 그 레벨디자인이라고 생각하면 완전히 없던 것을 창조해냈다는 관점에서 엄청나다고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존에게 진 빚에서 이야기한 대로 울펜슈타인은 그 기술적 한계 때문에 레벨디자인이 그리 인상적이라고 느끼지는 못했습니다. 여느 문과 벽이 모두 똑같이 생겼고 특히 모든 장소에서 바닥과 천장이 똑같이 생긴 이상 이 공간을 가상의 삼차원 공간이라고 인식하기는 너무나 어려웠습니다. 하지만 헤러틱에서 본격적인 고저차와 복층 공간을 경험하며 깊은 인상을 받았는데 적어도 이 때 까지는 존 로메로가 제가 한 경험을 만들어내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