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인벤토리에 전체화면 인터페이스를 사용하려고 하나요?
장르에 따라 인벤토리에 전체화면 인터페이스를 사용할지 여부는 답이 있는 문제입니다.
긴 기간에 걸쳐 비슷한 장르를 개발해본 경험이 있는 스탭들과 일하면 종종 서로 너무 당연하게 생각하는 것들을 명확히 의사소통 하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너무 당연하게 생각해 기획서에 빼먹고 기획서를 확인하는 사람들도 그게 빠졌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걸 보고 개발하는 사람들도 명시적인 요구사항에는 없지만 당연히 있을 거라고 생각해서 결국 아무도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개발된 빌드에는 우리들 대부분이 당연하게 생각한 그 기능이 들어가 있고 중간에 아슬아슬한 문제가 있었음을 아무도 눈치 채지 못하곤 합니다. 이런 상황은 팀이 서로의 경험을 신뢰할 수 있게 해 줘 잘 동작하면 사기를 올려 주지만 아니 그건 이미 지금도 되는거였어요에서 소개한 서로 의사소통을 제대로 한 줄 알았지만 전혀 그렇지 않았음을 나중에야 알게 되는 사고를 일으킬 수도 있습니다.
반대 경우도 있는데 기획 내부에서 조차 개인적으로는 간단한 결정을 하기 위해 여기에 의문을 가지는 모든 사람들에게 어떤 메커닉을 도입한 이유를 반복해서 여러 번 설명해야 할 때도 있습니다. 이런 질문에는 순수하게 정말 궁금해서 하는 질문도 있습니다. 물론 그 정도 경력이면 이 이유를 스스로 발견하지 못한다는데 살짝 실망스럽기도 하지만 평소에 이런 주제에 관심을 가지고 이유를 고민하지 않았다면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제라도 정확한 이유를 들어 배울 수 있고 또 앞으로 비슷한 상황에 비슷한 관점으로 고민해 스스로 결론을 내린 다음 이번과 같이 질문하는 다른 사람들에게 설명할 수 있기를 기대할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이런 질문은 종종 스스로 이해하지 못하는 의사결정을 번복 시키기 위해 반복해서 질문해 의사결정에 관여한 사람들을 굴복 시키려는 의도에 기반할 때도 있습니다. 성별 이름을 생략하기에서 소개한 같은 질문을 거의 1년에 걸쳐 반복한 경우가 대표적입니다. 이런 시도는 의도 대로 매번 같은 답변을 거듭하다가 그냥 때려치고 당신이 하고 싶은 대로 하라고 포기하게 만들기 때문에 원하는 바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상당한 끈기와 인내가 필요합니다. 이런 시도의 가장 피곤한 점은 정답이 있는 문제를 토론과 협의가 필요한 문제처럼 보이게 만든다는 점인데 이는 마치 각의 삼등분 작도가 가능하다는 주장에 회의를 열어 토론해야 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게 만들어 같은 질문에 반복해서 같은 답변을 하는 것 보다 훨씬 피곤합니다.
지난 얼마 동안에 걸쳐 게임에 인벤토리 모양을 결정하면서 방금까지 설명한 정도는 아니지만 이와 비슷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우리는 지난 짧은 서비스 이후 다음 빌드를 개발하고 있는데 지난번에는 게임에 쌓을 수 있는 요소가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NFT 홀더들이 각자의 지갑으로 로그인 해 NFT에 보이던 이미지와 똑같이 생긴 아바타로 몇몇 게임 모드를 플레이 할 수 있음을 증명했고 이 게임이 현실성 있는 개발 계획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밝혔습니다. 그 다음 단계는 게임에 투입한 시간에 따른 결과를 게임 안에 쌓을 수 있는 가장 근본적인 장치인 인벤토리와 이 인벤토리에 근거한 메커닉을 추가하는 것입니다. 온라인 멀티플레이 슈터에 인벤토리가 있다는 것 자체에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지만 인벤토리 인터페이스에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들은 많았습니다.
모바일 게임을 만들 때 인벤토리에 대해서 장착한 장비가 인벤토리를 차지해야 할까요?나 인벤토리 인터페이스 설계 철학에서 왜 게임마다 인벤토리 인터페이스가 서로 다른 모양인지 설명했습니다. 또 게임에 따라서는 인벤토리를 왜 그런 모양으로 만들어야 하는지 이해하고 인벤토리 인터페이스를 설계한 반면 어떤 게임은 게임 메커닉과 인벤토리 인터페이스가 서로 맞지 않아 나중에서야 이를 알게 돼 인벤토리 인터페이스에 지불한 매몰비용을 포기하는 대신 다른 보조 인터페이스를 도입해 문제를 완화하는 결정을 하기도 합니다. 우리도 인벤토리 인터페이스를 설계해야 했는데 시각적으로 보이는 가장 큰 의사결정은 인벤토리가 윈도우 모양으로 화면의 일부만 차지하느냐, 아니면 인벤토리가 화면 전체를 덮는 씬 모양이냐 하는 것입니다.
개인적으로 이 문제는 적어도 우리들에게는 답이 있는 문제라고 생각했습니다. 우리에게 어울리는 인벤토리 모양은 인벤토리가 화면 전체를 덮는 씬 모양이어야 합니다. 우리가 만드는 장르에서는 이런 모양을 선택할 수 밖에 없고 만약 시각적인 이유로 타협한다 하더라도 게임 진행을 볼 수는 있겠지만 인벤토리를 닫기 전에는 눈에 보이는 게임과 상호작용 할 수 없는 모양이어야 합니다. 그래서 특별히 이유를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고 기획서에는 요구사항을 언급하기만 했는데 이미 기획팀 안에서도 이 인터페이스 모양에 의문을 가지는 사람이 있어 짧게나마 답답한 기분이 들었지만 이유를 설명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이 행동은 문서가 팀 밖으로 나가서도 같은 답변을 반복하게 만드는 상황의 시작으로 오랜만에 이런 상황을 대비하게 만드는 역할을 했습니다.
인벤토리 인터페이스 모양을 결정하는데는 크게 두 가지 고려할 점이 있습니다. 첫째. 인벤토리를 연 상태에서 게임을 플레이 할 수 있는지 여부, 둘째. 인벤토리를 연 상태에서 게임 상태를 관찰해야만 하는지 여부입니다.
먼저 인벤토리를 연 상태에서 게임을 플레이 할 수 있다면 인벤토리는 화면 전체를 덮지 않고 화면의 일부만 사용하고 인벤토리를 연 상태로 게임을 플레이 하게 만들어도 됩니다. 반드시 그렇게 할 필요는 없지만 게임에 따라 서비스 기간이 길어지면 게임이 고객에게 점점 더 다양한 아이템을 요구해 종종 인벤토리를 열고 플레이 하면 더 편할 때가 있어 장기적으로 더 나은 선택일 수 있습니다. 최근에 플레이 한 디아블로 4는 키보드마우스로 조작할 때는 마우스 커서가 열려 있는 인벤토리와 플레이어 주변 땅과 적들을 인터페이스 전환 없이 아주 빨리 가리킬 수 있어 인벤토리를 열고 플레이 하는 데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게임패드로 플레이 하면 마우스를 쓸 때처럼 인벤토리 인터페이스와 인게임을 아주 빨리 전환하며 조작하기는 어렵지만 인벤토리를 닫으면 즉시 인게임 조작으로 전환돼 바로 게임 내 상황에 대응할 수 있습니다. 이런 환경에서 인벤토리 인터페이스는 화면을 다 가리지 않고 인게임과 함께 조작할 수 있게 만들어야 합니다.
그리고 인벤토리를 열고 있는 상태에서 인게임 상태를 관찰할 필요가 있다면 인벤토리 인터페이스를 윈도우 모양으로 만들어 화면 전체를 가리지 않아야 합니다. 소위 필드 막피가 가능한 게임은 마을 같은 명시적인 안전지대가 아닌 이상 항상 주변을 배회하는 몬스터와 사람들, 이들이 일으키는 상호작용과 주변에서 일어나는 이벤트의 진행 상황을 계속해서 관찰해야만 합니다. 그런 거 무시하고 플레이 할 수 있겠지만 그러다가 상대로부터 공격 받아 죽을 때 패널티가 다른 게임에 비해 크기 때문에 인벤토리를 열어 뭔가 다른 일을 하고 있더라도 인게임에서 일어나는 일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어야만 하기 때문에 이런 게임에서는 인벤토리가 화면 전체를 가리면 안됩니다. 종종 풀스크린 인터페이스를 띄울 때 공격 받거나 가까이에 적대 대상이 있으면 알려주는 경우도 있지만 죽을 때 패널티가 큰 게임은 이 정도의 알림 만으로는 이미 죽어 패널티를 받은 고객의 분노를 막을 수 없습니다.
이런 이유로 1인칭 혹은 3인칭 슈팅 게임은 인벤토리 인터페이스를 풀스크린 기반으로 고안해야 합니다. 일단 어떤 조작 장치를 사용하더라도 일단 인벤토리를 열면 인게임과 인벤토리를 빠르게 전환하며 조작할 수 없습니다. 디아블로나 여러 MMO 게임에서는 마우스커서를 오가는 것 만으로 인게임과 인벤토리를 전환할 수 있지만 슈터 장르에서는 인게임에서 마우스 커서를 크로스헤어가 독점하고 있습니다. 게임패드로 조작한다 하더라도 왼쪽 스틱은 이동, 오른쪽 스틱은 조준인 경우가 많아 열려 있는 인벤토리를 조작하도록 설계하기 아주 어렵습니다. 이런 게임에서 인벤토리 인터페이스를 윈도우 모양으로 만들면 인벤토리를 여는 순간 인게임을 전혀 조작할 수 없는 상태가 되기 때문에 인벤토리 인터페이스를 윈도우 모양으로 만들면 안됩니다.
풀스크린 모양으로 만든 인벤토리 인터페이스는 위에서 이미 설명한 걱정을 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풀스크린 인벤토리를 열고 있다가 다른 사람이 총 쏘면 어떻게 하는지, 몬스터에게 공격 받으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인게임 상황을 못 보면 답답해서 어떻게 하느냐는 등등 온갖 질문을 받게 됩니다. 일단 인게임을 관찰할 필요가 있든 없든 아주 빠르게 전환할 수 없는 이상 인벤토리가 윈도우 모양으로 열리든 풀스크린 모양으로 열리든 인벤토리 열고 있다가 죽는 건 똑같습니다. 이는 실제 세계의 규칙과도 비슷한데 총알이 빗발치는 전장에서 가방에 머리를 처박고 뭘 찾고 있다가 머리가 뚫리면 그건 본인 잘못입니다. 내 머리에 총을 쏜 사람 잘못이 아닙니다. 이미 인터페이스 간 전환이 느린 상황에서 윈도우 모양 인벤토리와 풀스크린 모양 인터페이스는 서로 별 차이가 없습니다.
이렇게 설명하면 누군가는 그래도 인게임 상황을 관찰해야 하지 않느냐고 물을 수 있는데 이는 일리가 있습니다. 가령 포트나이트는 인게임에서 인벤토리를 열면 반투명으로 인게임 상태를 보여주는 인터페이스를 열어 인벤토리 조작만 할 수 있지만 인게임 상황을 지켜볼 수는 있습니다. 만약 인게임에 대응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했다면 인벤토리를 닫은 다음 대응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비슷한 게임 방식의 다른 게임들은 종종 인게임을 완전히 가리는 풀스크린 인벤토리 인터페이스를 채용하는데 이들 역시 인벤토리 인터페이스가 화면 일부를 가려 봤자 즉시 조작 전환이 안 되는 장르 특성 상 화면의 일부를 가리는 모양으로 만들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또한 이들 중 상당수는 주변 상황에 민감하게 반응해야 하는 플레이 특성을 보이는데 이런 특성에 기반해 풀스크린 인벤토리 인터페이스를 여는 상황은 긴장되는 상황을 만들어 냅니다. 인벤토리를 열어 아이템을 정리하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들의 눈을 피해야 합니다.
우리가 처한 상황은 이번 마일스톤에 인벤토리와 인벤토리 인터페이스를 개발해야 하는데 이 때 참고할 핵심 게임 플레이가 온전히 정립되지 않은 점입니다. 온전히 정립된 게임 플레이의 요구사항에 따라 인벤토리 인터페이스를 정하면 좋겠지만 그럴 수 없는 상황이라면 미래를 예측하고 또 예측이 틀릴 때 매몰비용이 낮은 방법을 선택해야 합니다. 먼저 슈터 장르에서는 인벤토리가 윈도우 모양으로 열려도 빠른 조작 전환이 불가능하므로 별 의미가 없습니다. 또 이번에 함께 개발될 핵심 게임 플레이에서 상황에 기민하게 대응하지 못한 댓가로 플레이어에게 강한 패널티를 줄 가능성은 높지 않아 보입니다. 즉 풀스크린 인벤토리를 열 때 여느 참예한 대립 상황에 기반한 게임들처럼 스트레스를 받지는 않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런 정보 조각들에 기반해 풀스크린 모양의 인벤토리 인터페이스를 제안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이런 생각 끝에 이 문제는 적어도 제 입장에서는 정답이 있는 문제이고 그에 맞는 답을 골랐지만 여전히 이 사고의 과정, 다른 게임의 사례 따위를 예쁘게 정리해 오랫동안 비슷한 장르를 만들어 온 사람들에게 설명하는 과정은 필요했고 개인적으로는 이 상황이 조금 아쉽게 느껴집니다. 특히 아직 존재하지 않는 가상의 핵심 플레이를 가져와 이를 근거로 자신의 의견은 없지만 제안에 그저 의문을 가지려는 의도 만으로 질문하는 의도가 너무 명백한 상황들은 경력에 무슨 의미가 있나 싶은 좀 답답한 느낌을 받게 만들었습니다.
결론. 게임 장르에 따라 인벤토리 인터페이스 모양을 결정하는 문제는 게임 상황에 따른 패널티의 강도, 인터페이스 전환을 얼마나 빨리 할 수 있는지 여부에 따라 결정하는 소위 답이 있는 문제입니다. 답이 있는 문제에 대한 문제 제기를 수용할 때는 문제 제기의 의도를 미루어 짐작할 필요가 있으며 상대의 의도에 따라 설명 수준을 결정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