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흥 가상화폐는 이제 수명을 다했다
비트코인이나 이더리움으로 대표되는 소위 신흥 가상화폐는 여러 국가에 걸쳐 CBDC에 대한 영감을 주고 그 수명을 다했습니다.
가상화폐 앞에 ‘신흥’이라는 접두사를 붙이려니 좀 이상한 느낌입니다. 신흥 가상화폐는 대략 지난 2009년 경에 이론과 구현체가 소개되었지만 한동안 사회에 별다른 영향을 끼치지 않았습니다. 화폐는 최소한 거래 당사자들 사이에 이루어지는 약속이기 때문에 신흥 가상화폐의 존재 만으로 거래가 일어날 수는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급격하게 관심을 끌면서 널리 알려졌고 이 텍스트를 타이핑 하고 있는 2023년 가을 현재 이론의 여지는 있지만 시장에서 의미 있는 자산 보유 방법 중 하나로 동작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적어도 한국을 기준으로 하면 이 글에서 ‘신흥 가상화폐’의 범주에 넣고 있는 블록체인 기반의 비트코인이나 이더리움이 아니더라도 가상화폐 개념이 없지 않았습니다. 이미 급여를 봉투에 담긴 현찰로 받던 시대는 우리들 윗 세대에서 끝난 것 같습니다. 그 후로는 이미 우리들 모두가 가상화폐를 통해 돈을 벌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봉투에 담긴 돈을 일한 댓가로 받은 것은 본격적으로 직업을 가지기 이전 시대 뿐이었습니다.
오래 전부터 국민 대부분이 은행 계좌를 가지고 있고 또 서로 다른 은행 사이에 별 다른 장벽 없이 거래 할 수 있었기 때문에 적어도 한국인 관점에서는 가상화폐라는 개념이 그리 낯설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 글에서 말하는 비트코인이나 이더리움으로 대표되는 현대적인 가상화폐를 ‘신흥 가상화폐’라고 부르겠습니다. 애초에 거래 대부분에 정보시스템을 사용해 현금을 잘 사용하지 않는 현대에 가상화폐와 가상화폐가 아닌 것을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입니다. 가령 이번 주의 개인적인 소비 경험을 살펴보면 출퇴근 할 때는 신용카드에 붙어 있는 NFC 칩을 통해 교통비를 결제 했고 식사는 신용카드로 사 먹었으며 치약이 떨어져 온라인으로 주문할 때 이미 쇼핑몰에 등록된 신용카드 정보를 사용해 결제 했고 또 급여는 입사할 때 지정한 은행 계좌로 받았습니다. 분명 신용에 의한 외상거래가 일어났고 화폐가 오간 것은 맞지만 신용카드를 통한 거래에는 중간에 신용카드 회사가 버퍼로써 동작하고 은행을 통해 받은 급여는 신용카드를 통한 신용 자본 이동과는 약간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신용카드와 비슷한 공동 결제 네트워크를 통해 전달 받았습니다. 이 과정에서 금속이나 천으로 만들어진 ‘실물화폐’는 아예 구경도 하지 못했고 사실 지금 지갑에 들어 있는 천원 짜리 일곱 장은 이걸 도대체 언제, 어디에 써야 할 지 잘 알 수 없는 낯선 물건이 되어 버렸습니다.
이렇게 이미 급여를 받아도 실물화폐는 구경 조차 할 수 없고 은행 계좌에 표시된 숫자가 잠깐 늘어났다가 신용카드회사, 보험회사, 은행 등등이 나타나 계좌에 출금 기록을 만들고 나면 어느새 숫자로만 존재했던 급여는 더 이상 숫자로도 존재하지 않게 되는 상황을 항상 겪으며 살아가는 한국인들 입장에서는 이 글에서 표현하는 신흥 가상화폐는 딱히 새로울 것 없는 개념으로 볼 수 있습니다. 다만 2천년대 후반에 소개된 신흥 가상화폐는 기존 정부, 은행, 신용카드회사, 결제 네트워크 등을 거치지 않고 수학적인 방법으로 개개인의 자산을 증명하는 방법인 소위 ‘수학적인 탈중앙화' 개념을 가져오면서 주목을 받았습니다. 금본위제 폐지 이후 현대 화폐는 더이상 금을 기반으로 하지 않습니다. 신용카드를 종종 신용화폐라고 부르지만 금에 기반하지 않고 각국의 중앙은행이 지급 보증을 하는 현대 화폐는 국가가 발행하고 직접 통제할 수 있게 됩니다. 이 개념은 짧지 않은 세월에 걸쳐 검증 받아 왔지만 국가가 제시하는 현대 화폐에 대한 규칙을 썩 달가워 하지 않는 사용자들은 신흥 가상화폐가 제안한 수학적 탈중앙화 개념에 꽤 매료된 것 같습니다.
현대 화폐는 중앙은행이 보증하고 국가가 이를 뒷받침 하며 이 기반 위에 정보시스템을 도입해 은행 사이에 전자 거 래와 신용 거래를 할 수 있습니다. 특히 한국은 한국전쟁 이후 꽤 빠른 시점에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한 강력한 신분증명제도에 기반해 개인을 효과적으로 식별해 이 기반 위에 사기업인 은행이 주도해 개발한 정보시스템을 통해 서로 다른 은행을 사용하더라도 이를 별로 의식하지 않고 화폐를 거래할 수 있습니다. 현대의 최신 인증 기술이라도 결국 국가가 운영하는 신분증명제도에 기반하고 있음을 패스워드 없는 로그인. 인증의 연쇄에서 설명한 바 있습니다. 여기에는 다시 국가가 은행 사이의 거래를 통제하는 금융감독원 같은 기관이 동작하고 있으며 국가는 은행을 기반으로 개인 간 현금으로 주고 받지 않는 모든 거래 현황을 파악해 이 정보에 기반해 정책을 수립할 수 있을 겁니다.
다만 중앙은행을 중심으로 한 정부와 일선 은행과 신용카드 회사를 중심으로 한 사기업의 통제는 크게 두 가지 불만을 만들어낸 것 같습니다. 일선 화폐 사용자 입장에서는 돈을 보내고 받을 때 일어나는 수수료 부담, 그리고 딱히 화폐의 이동을 정부에 알리고 싶지 않은 목적을 가진 사용자들의 요구입니다. 여기서 일선 화폐 사용자의 수수료 부담은 현대에 금융회사 사이에 경쟁이 일어나며 적어도 한국에서는 이를 거의 내지 않을 수 있기는 하지만 경쟁에 의해 수수료가 일시적으로 사라졌을 뿐 이 상태가 깨질 경우 언제든지 다시 돌아올 수 있습니다. 또 이는 어디까지나 국내 상황일 뿐 서로 다른 국가의 서로 다른 은행 사이에 돈을 주고 받으려면 한국 기준의 낮거나 없는 수수료를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현금 이동을 국가에 알리고 싶지 않은 목적을 가진 사용자들 관점에서는 여전히 ‘현금’을 사용할 수 있지만 아마 굉장히 불편할 겁니다. 이들도 한국 관점의 가상화폐를 사용해 좀 더 편한 방법으로 돈을 주고 받고 싶지만 현대적인 화폐를 사용하면서 이 목적을 달성할 방법은 없습니다.=
‘신흥 가상화폐’는 이런 요구사항을 수학적인 방법을 통해 해결했다고 주장합니다. 먼저 발행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감소하는 바꿀 수 없는 계획에 따라 일어나고 개개인은 이미 구축된 정보시스템에 기반해 네트워크에 자유롭게 참여할 수 있으며 이들 사이의 거래는 비대칭 키 알고리즘에 기반한 수학적인 방법을 통해 증명합니다. 가상화폐에 많은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되며 시장이 과열됨에 따라 비대칭 키 알고리즘 기반의 수학적인 거래 검증 방법은 중앙은행과 정부에 기반한 방법에 비해 아주 많은 에너지를 사용한다는 단점이 밝혀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적어도 이론상으로는 지급보증을 하는 중앙화된 주체 없이 오직 수학적인 검증 만으로 서로 간에 거래를 일으킬 수 있음이 지난 십 수년에 걸쳐 증명되었습니다. 신흥 가상화폐가 기반 기술로 삼은 블록체인은 이를 호스팅 하고 거래 검증에 필요한 계산을 제공하는 사람들에게 새로 발행한 가상화폐를 통해 보상을 지급함으로써 네트워크를 통제하는 주체 없이, 심지어는 네트워트를 직접 호스팅 하는 특정 주체 없이 마치 없는 것처럼 동작하는 거래 네트워크를 만들어내는데 성공합니다. 이로써 적어도 정부나 사기업이 부과하는 수수료, 개인 사이, 그리고 국가 사이에 일어나는 거래에 기존 정부가 직접 통제할 방법이 아직 뚜렷하지 않은 거래 방식이 일반화 됩니다.
하지만 신흥 가상화폐는 이를 지지하는 사람들이 종종 주장하는 것처럼 기존 금융 시스템과 완전히 독립되어 동작할 수 없었습니다. 또 중앙화된 주체 없이 거래를 검증하는데 높은 비용이 든다는 사실이 밝혀졌으며 경제 확장 압력에도 불구하고 발행량이 감소하는 규칙에 따라 근본적인 문제점을 노출 하기도 했습니다. 일단 신흥 가상화폐 거래에 참여하려면 크게 두 가지 방법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합니다. 중앙화된 거래소에 실제 세계의 화폐를 지불하고 가상화폐 네트워크에 통용되는 가상자산을 구입하거나 거래 검증에 필요한 계산량을 컴퓨터를 통해 제공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참여 방법은 양쪽 모두 실제 세계로부터 완전히 벗어날 수 없습니다. 거래를 시작하기 위해 지갑을 만들고 중앙화된 거래소로부터 가상자산을 구입하거나 판매하는 정에서 이미 실제 세계의 경제주체의 일부로써 동작할 수밖에 없고 또 이 네트워크를 호스팅하는 주체들 역시 호스팅에 사용하는 인프라를 실제 세계에 통용되는 화폐를 통해 구입할 수밖에 없습니다. 가령 실제 세계에서 기준금리가 오르면 가상자산의 가치가 감소하고 또 경제 확장으로 인해 인프라 구성 및 유지 비용이 올라가면 거래수수료가 올라 거래량이 줄어들어 가치가 감소하게 됩니다.
이런 ‘신흥 가상자산’은 한때 유동성이 충분히 공급 되던 시기에 투자처를 찾지 못한 돈이 가상자산 네트워크에 나타나며 가격이 올라갔고 이 순간에 올바른 행동을 한 소수 사람들에게 부를 이전 시키는 재미있는 결과를 이끌어내기는 했지만 실제 세계 경제와 결코 분리될 수 없는 한계와 사용자 및 개발자 모두에게 적대적인 사용 환경이 합쳐져 장기적으로 유지될 수 없는 시스템입니다. 신흥 가상자산이 실제 세계 경제와 분리될 수 없다는 점은 바로 앞에서 이야기 했으니 이번에는 사용자오 개발자 모두에게 적대적인 사용 방식에 대해서만 이야기해보면 한국처럼 인터넷 뱅킹이 빠른 시점에 널리 퍼졌고 또 이 과정을 국가가 통제해 서로 다른 은행을 의식하지 않고 거래할 수 있는 환경이 당연한 상황에서 신흥 가상자산 거래는 이들 사이에 정부도 금융기관도 방해하지 않지만 거래 방식 자체가 거래를 방해합니다. 신흥 가상자산이 근거로 삼고 있는 비대칭 키 알고리즘은 한국에서 이미 일상적으로 사용하던 거래에 비해 필요 이상으로 복잡합니다.
비밀키는 전통적인 가상자산의 관점에서 내 비밀번호, 공개키는 내 계좌번호와 같은 개념으로 사용할 수 있기는 하지만 사용자인 내 행동을 검증하고 통제하는 시스템이 전혀 없어 실수에 아주 취약하고 악의적인 공격이 일어나도 구제받을 방법이 없습니다. 가령 은행 계좌에 비밀번호를 분실했다면 신분증을 들고 은행에 찾아가 보안 카메라 여러 대에 찍히는 가운데 신분증 상의 인물과 이를 들고 간 인물이 같은 사람임을 사람이 검증한 다음 구제 받을 수 있지만 가상화폐는 이런 구제 방법이 전혀 없습니다. 또 돈을 주고 받을 때 사용할 지갑 주소는 비대칭 키 알고리즘의 공개키를 그대로 사용해 도저히 기억할 수도 없고 익숙하게 사용하기도 어려우며 틀리기 쉽고 온전히 전달하기도 어렵습니다. 가령 제 지갑 이더리움 네트워크 지갑 주소는 0x77be39d8b8A5e30aA6cbE54d505A9638Ad430247
인데 이 문자열을 다른 사람들에게 온전히 전달할 방법을 모르겠습니다. 메신저에 붙여 넣는 정도로는 실수 없이 안전하게 전달하기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신흥 가상자산은 사용자 뿐 아니라 개발자에게도 적대적인데 지갑 주소 간의 거래 기능에 초점을 맞춘 비트코인 네트워크와 비교해 이더리움 네트워크는 스마트 컨트랙트를 통해 이더리움 네트워크 상에서 각기 다른 규칙에 따라 동작하는 토큰을 만들 수 있습니다. 이더리움 네트워크에 기반해 각자의 규칙에 따라 동작하는 토큰 개념은 블록체인에 연동된 소프트웨어 제품에 활용되는 전용 화폐를 만드는데 사용할 수 있었고 또 NFT 같은 독특한 형태의 토큰을 만드는데 사용되며 새로운 시장을 만들어 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이런 토큰이 유통될 규칙을 설정하는 스마트 컨트렉트는 한 번 배포하고 나면 이를 수정하기 아주 어려워 도전적인 규칙을 만들기 어렵게 합니다. 배포 전에 아무리 철저히 검증한다 하더라도 실수는 일어나기 마련이며 이에 따라 이 스마트 컨트랙트에 기반해 운용되는 토큰의 가치가 사라지거나 토큰을 도난 당하거나 의도하지 않은 동작을 그저 바라보고만 있어야 하는 사고가 일어나며 스마트 컨트렉트를 통한 토큰은 이제 위험을 거의 감수하지 않는 검증된 형태가 대부분입니다. 이런 사용자 뿐 아니라 개발자에게도 적대적인 사용 환경은 신흥 가상자산이 한국 기준에서 기존의 중앙은행이 보증하는 거래 환경과 비교해 장점이 거의 없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신흥 가상자산은 기존 금융시스템 참여자들에게 영감을 부여하는데 큰 역할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실은 이게 신흥 가상자산의 거의 유일한 업적이라고 보는 입장입니다. 한국만을 생각한다면 중앙은행이 보증하고 은행들이 구축한 정보시스템을 통해 돈을 주고 받을 수 있는 시스템과 별로 다르지 않을 수 있지만 국가마다 금융 거래 정보시스템이 구축된 정도, 또 이 시스템이 배포된 수준에 차이가 있습니다. 가령 인도는 정부가 직접 나서 CBDC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는데 상황 상 은행 같은 사기업을 통해 금융 거래 정보시스템을 구축하는데 오히려 비용과 기간이 많이 걸릴 수 있기 때문에 중앙 정부가 직접 추진하는 중입니다. 중국은 한국과 비슷하게 사기업을 통해 금융 거래 정보시스템을 구축 했지만 사실상 국가의 직접적인 통제에 기반해 구축 되었다고 볼 수 있는데 중간에 신용 화폐가 끼어들 여지 없이 바로 금융 거래 정보시스템 단계에 진입했습니다.
신흥 가상화폐 이전에는 실물화폐, 국가 주도의 정보시스템 구축, 신용화폐 도입, 국가 주도의 가상화폐 도입의 단계를 거쳐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비트코인은 시스템이 갖춰지면 정부가 이를 뒷받침해 중간 단계를 건너뛰어 한 번에 국가 주도의 가상화폐 시스템에 도달할 수 있는 영감을 줬을 겁니다. 반면 한국은 이미 잘 구축된 금융 거래 정보시스템이 있어 이 위에 신용카드 회사들이 들어올 틈이 있었고 부작용이 있었지만 신용카드가 워낙 널리 사용된 덕분에 신흥 가상화폐나 사기업의 결제시스템, 그리고 CBDC 등에 별 매력을 느끼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아 보입니다.
신흥 가상화폐는 왜 더 이상 널리 퍼지지 못했을까요. 우선 신흥 가상화폐 신봉자들의 주장과 달리 실제 세계의 경제와 분리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가상자산은 마치 그 스스로가 가치를 만들어낼 것처럼 행동했지만 자본주의 사회에서 부가가치는 오직 인간의 노동과 자본 그 자체로부터 나올 뿐입니다. 거래를 검증하는데 컴퓨팅 파워를 제공한 댓가로 비트코인을 받더라도 이 가치는 무에서 생성된 것이 아닙니다. 컴퓨팅 파워를 제공하기 위한 인프라 구축 비용, 유지 비용에 대한 댓가로 이는 결국 실제 세계에서 일어난 니간의 노동과 인프라 구입 및 유지에 소요된 자본에 의해 발생된 것입니다. 비대칭 키 알고리즘에 기반한 수학적 기반과 블록체인 기술을 사용해 탈중앙화에 집중했지만 사용자들 대부분은 탈중앙화에 별 관심이 없었고 탈중앙화의 의미에 관심을 가지지 않는 이상 신흥 가상자산은 그저 사용하기 복잡하고 어려우며 실수에 관대하지 않고 모든 문제를 직접 해결해야만 하는 사용자에게 적대적인 환경일 뿐입니다.
특히 이전에 화폐 거래에 정보시스템이 잘 발달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진 국가들 위주로 정부 주도의 정보시스템 구축, 사기업인 은행을 통한 인프라 구축, 신용화폐 도입 등의 단계를 뛰어넘어 한 번에 CBDC 도입으로 넘어가려는 시도가 나타나고 있습니다. 중장기적으로 이 시도들이 성공하면 이제 신흥 가상화폐는 각국 정부에 CBDC의 가능성에 대한 영감을 불어넣는 올바른 역할을 한 다음 CBDC와 더이상 구분할 수 없어 그 수명을 다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CBDC에 기반 하든 한국 처럼 단계를 차근차근 밟아 정보시스템에 기반해 화폐를 거래 하든 우리가 정보시스템을 통해 주고 받는 화폐와 실물 화폐 사이의 연결이 끊어지는 순간 신흥 가상화폐는 그 장점 대부분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이더리움 네트워크가 시도한 스마트 컨트랙트 기반의 커스텀 토큰은 오히려 개발자 적대적인 블록체인에 기반하는 대신 중앙화된 환경에 직접 구축하는 편이 더 싸고 더 안정적이고 더 사용자 친화적입니다. 또 이더리움 네트워크를 일종의 개인정보 증명 장치로 사용하려고 했던 ENS와 SBT 역시 같은 비대칭 키 알고리즘에 기반한 PGP와 이를 활용한 Keyoxide 같은 증명 배포 시스템이 똑같은 역할을 하고 있으며 이 과정에는 블록체인이 전혀 필요하지 않습니다.
물론 신흥 가상자산 네트워크 역시 자신의 문제를 모르지는 않았고 이를 완화 하려는 시도가 없지는 않았지만 이런 시도 중 어느 것 하나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습니다. 가령 온램프 서비스는 가상자산 네트워크를 추상화 해 개인이 비밀키를 관리할 부담을 줄여 주는 역할을 하고 나아가 사용자가 자신이 가상자산 네트워크를 통해 거래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를 숨기는 방향으로 발전해 왔지만 가상자산 네트워크의 사용자 적대성이 향하는 곳이 최종 사용자에서 온램프 서비스로 옮겨졌을 뿐 여전히 적대성은 그대로이며 이를 감당하는 사람이 달라졌을 뿐 감당해야 할 적대성은 전혀 개선되지 않은 채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근본적으로 온램프 서비스를 통해 신흥 가상자산 네트워크를 통해 거래한다는 사실 조차 잘 모르게 된다면 이 사용 경험과 CBDC 혹은 은행이 구축한 정보시스템이나 신용 화폐를 통한 거래 사이에는 아무런 차이가 없어집니다. 사용 경험을 개선하면 신흥 가상자산의 장점 대부분이 사라지고 그저 여느 금융거래 정보시스템과 다르지 않은 모양이 될 뿐입니다.
이런 생각의 흐름 끝에 신흥 가상자산, 즉 비트코인이나 이더리움으로 대표되는 가상자산은 이제 그 수명을 다했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이들은 탈중앙화를 특징으로 내세웠지만 실제 세계의 경제로부터 결코 분리될 수 없는 이상 탈중앙화에는 단점만 있습니다. 기술에 집중해 사용자와 개발자에 적대적인 환경은 정보시스템 사용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을 거래로부터 배제시켜 자기파괴적인 결과를 낳았습니다. 이더리움 네트워크 기반의 커스텀 토큰 프로토콜인 스마트 컨트랙트는 개발자 적대적인 환경을 제공한 나머지 위험을 회피하기 위해 항상 거의 비슷한 형태로만 사용 되고 있으며 그나마 이들 중 의미가 없지는 않았던 NFT는 똑같은 기술에 기반한 PGP 같은 다른 방법을 통해 똑같이 데이터를 검증하는데 활용하고 Keyoxide 같은 서비스를 통해 이를 게시할 수 있습니다. 사용자 적대적인 사용 경험을 완화하려는 시도인 온램프 서비스는 가상화폐의 특징을 지우고 사실상 기존에 구축된 정보시스템과 차이를 없애버렸습니다.
이전에 소개했던 디센트럴랜드의 랜드렌탈 사례는 이미 블록체인을 배제하고 각자의 비밀키로 사인한 인증서를 통해 거래를 검증하고 있습니다. 이 랜드렌탈 거래에 참여하기 위해 블록체인 상의 랜드 소유자는 랜드 소유권을 디센트럴랜드 파운데이션이라는 중앙화된 주체에게 넘겨야 하며 이 순간 이미 신흥 가상자산 네트워크가 특징으로 내세운 탈중앙화가 깨집니다. 블록체인과 탈중앙화에 신경을 끄고 나면 오롯이 사용자들의 비밀키로 사인한 거래 기록만 남는데 실은 이것 만으로도 충분하다는 사실을 디센트럴랜드 스스로가 증명한 셈입니다. 같은 관점으로 현재의 NFT 역시 기술적으로 블록체인에 기반할 필요가 없었다는 사실을 빠르게 눈치 채고 사용자에게도, 개발자에게도 편하지 않은 이상한 블록체인 환경으로부터 빠르게 벗어날 겁니다.
결론. 블록체인에 기반한 신흥 가상자산 네트워크는 잠깐 동안 의미 있게 동작했고 또 실제 세계의 경제에 영향력이 있는 것처럼 보였으며 나아가 국가나 정부의 통제를 받지 않을 것처럼 행동했지만 실은 전혀 그렇지 않았습니다. 실제 세계 경제와 연결을 끊을 수 없는 이상 국가로부터의 통제를 벗어날 수 없고 기술에 집중한 나머지 사용자 뿐 아니라 개발자에게도 적대적인 환경은 이를 개선하려는 온램프 같은 불완전한 시도 만으로는 한계가 명백했으며 만약 문제를 해결한다 하더라도 기존의 금융거래 정보시스템과 비교해 아무런 우위가 없습니다.
한편 블록체인 네트워크에 기반한 NFT는 이더리움 네트워크 상에서 동작하는 디센트럴랜드 스스로가 블록체인에 기반하지 않은 거래 시스템을 운용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이더리움 네트워크의 탈중앙화, 블록체인 기술이 사실은 같은 기술에 기반하더라도 훨씬 단순한 모양으로 운용 가능하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가상화폐는 이 시스템이 적당한 수준으로 동작하는 동안 금융 거래 정보시스템을 충분히 구축하지 못한 국가들에게 CBDC에 대한 영감을 불어넣어 이를 실행하게 만들었으며 이 점이 가상화폐가 그 수명을 다하며 마지막으로 우리들 모두에게 남긴 유산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번 주에도 다른 다섯 가지 이야기를 준비했습니다.
잘 지내셨나요? 저는 지난 짧은 휴가 이후 마음을 다잡고 열심히 살아 보려고 노력하는 중입니다. 생각처럼 잘 되고 있지는 않지만요. 아참. 한동안 출퇴근길에 마주치던 고양이가 어느 날에는 저를 보자 바닥에 드러누워 굴러다니고 있었는데 사실 이게 무슨 의미인지 알지만 저는 고양이에 알러지가 있어 만져줄 수는 없었답니다.
하지만 모두와 귀여움을 공유하려고 사진은 찍었죠. 항상 여기까지 읽어 주시는 모든 분들께 감사 드립니다. 그러면 다음 주에 뵙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