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랫동안 복제에 집중하면 이유를 설명하지 못하게 된다
다른 게임을 복제하도록 요구받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과정이 길어지면 복제에만 익숙해져 문제가 생길 수 있습니다.
쉬는 동안 간만에 여러 사람들을 만나고 있습니다. 다들 1년에 한 두 번 볼까 말까 한 분들이지만 모두가 각자의 프로젝트에서 고통 받으며 열심히 살고 있다는 사실은 잘 알고 있습니다. 연락이 오지 않는다는 사실이 그 증거인데 만약 연락이 왔다면 프로젝트가 런칭했거나 런칭하지 못했거나 둘 중 하나 입니다. 그래서 연락이 오지 않는다면 잘 개발되고 있거나 별 일 없이 라이브 중이라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번처럼 저 자신에게 문제가 생기면 그때서야 연락을 돌리게 되는데 이게 바로 몇 년 동안 연락 없이 지내던 분들과도 제가 백수여서 편하게 시간을 맞출 수 있게 된 김에 만나 가볍게 이야기나 하자고 할 수 있는 기회입니다. 이번에는 이전에 함께 일한 적 있지만 지금은 훨씬 큰 성공을 거두신 끝에 프로젝트에서 아주 큰 역할을 하고 계신 분의 시간을 써서 이야기를 나누기로 합니다.
근처 카페에서 커피를 앞에 놓고 이야기를 시작했는데 첫 번째 주제는 지난번 소개를 통해 봤던 면접이 폭망한 이유에 대한 것입니다. 이번 구직 과정에서 굉장히 운이 좋은 점은 각각의 면접 모두 이전에 함께 일했던 동료 분들의 소개를 통해 서류를 제출하게 되어 당락에 관계 없이 면접 과정에 대한 피드백을 받을 수 있었다는 점입니다. 사실 면접은 피드백을 통해 결점을 개선해 나가는 관점에서 아주 고약한 문제 중 하나인데 발전을 위해서는 피드백이 필요하지만 면접 대부분은 어떤 피드백도 받을 수가 없습니다. 오직 당락에 대한 정보만을 알 수 있는데 이것 만으로는 당락이 결정된 원인을 오직 추측할 수만 있습니다. 아니면 입사 후 조금 편안한 자리에서 피드백을 받을 기회를 만들 수 있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그런 기회를 만들기 어렵습니다. 때문에 면접, 이와 관련된 서류를 작성하는 것 모두 피드백 없이 이 과정에 참여하지 않는 사람들의 별 영양가 없는 평가에만 의존해서 개선하려고 시도해야 하기에 개선 자체가 쉽지 않고 또 개선 방향을 설정하기도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소개해 주신 분을 통해 당락에 관계 없이 간단하게나마, 그리고 간접적으로나마 피드백을 받을 수 있었고 이건 여간해선 얻기 힘든 기회입니다.
지난 면접에 폭망한 다음 피드백을 받기 전까지 생각한 원인은 여러 가지였습니다. 이를테면 인생을 바꿨다고 말할 만한 게임이 있었느냐는 질문을 받고 제가 생각한 있는 그대로 답변했는데 그 게임은 이 회사와 제가 기회를 얻을 가능성이 있던 프로젝트와는 완전히 상관 없는 것이었습니다. 모바일 수집형 장르에 액션 요소와 미니게임을 포함한 게임을 만들려는 곳에 가서 제가 개인적으로 가장 만들고 싶은 장르는 GTA 같은 스타일의 오픈월드 게임이라고 말했으니 짜게 식을 만도 합니다. 질문 자체가 제가 가장 만들고 싶은 게임에 대한 것이었으니 그렇게 답한 것이 거짓은 아니었지만 상황과 의도에 좀 더 부합하는 답변을 한다면 이렇게 말해서는 안됐습니다. 이런 범위가 넓은 것 같은 질문은 어느 면접에서나 나올 가능성이 충분하기 때문에 준비해 두면 좋은데 면접을 진행할 팀이나 프로젝트를 미리 알고 있다면 이에 맞춘 자연스러운 답변을 준비해 두면 분명히 가산점을 받을 수 있습니다. 물론 서로 이 말이 거짓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갑자기 개발 중인 프로젝트와 같은 장르 게임을 꼭 만들고 싶은 사람이 면접에 나타날 가능성은 없습니다. 하지만 서로 거짓임을 잘 알고 있는 그런 답변은 이 사람이 면접을 준비했다는 인상을 주고 이는 나쁠 것이 없습니다.
개인적으로 이런 상황과 이에 맞는 답변을 하는 행동을 영화 쉰들러 리스트의 한 장면에 빗대 말하곤 합니다. 영화에서 수용소에 갇힌 여자들은 하루 종일 노역에 투입되는데 아침에 노역에 투입할 사람들을 선발하는 자리가 있습니다. 여기서 건강해 보이면 노역에 투입되어 그 날 하루를 연명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건강해 보이지 않는다면 노역에 투입되지 않고 끌려가 죽게 됩니다. 그래서 돌아가며 한 사람씩 손끝을 찔러 피를 낸 다음 이를 모두의 볼에 칠해 생기 있는 것 같은 인상을 만들어 건강 상태에 관계 없이 노역에 동원되고 그 날 하루를 살아갈 수 있습니다. 수용소의 삶에 비교하는 것 자체가 그리 좋은 방법은 아닐 것 같지만 우리들이 기회를 얻기 위해 하는 여러 행동이 근본적으로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흔히 게임 만드는 일을 하는 사람들은 일하는 게임과 쉬는 게임이 서로 다른 경우가 많은데 저 자신도 그런 사람 중 하나입니다. 회사에서는 고객들로부터 결코 좋은 소리를 듣지 못할 모바일 수집형 장르에 가챠 메커닉을 설계하지만 집에 돌아와서는 다른 게임을 하며 쉬곤 하는데 이 둘이 서로 일치한 경우는 아직까지는 없습니다. 기회를 위해서는 적어도 겉으로 표현하는 내 취향과 목표를 회사나 프로젝트의 그것과 일치하는 것처럼 행동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런 행동이 제 하루를 늘려 줄 겁니다.
그렇게 피드백을 받기 전에는 몇몇 질문을 복기하며 원하는 답변을 하지 못했을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해 왔고 이후 다른 면접에는 당장 이 질문에 대한 답변을 완전한 거짓말은 아니지만 좀 더 상황에 맞는 형태로 바꿔서 했습니다. 가령 이후 다른 면접에서 비슷한 형식으로 주변 상황에 관계 없이 게임 하나를 만들 수 있다면 어떤 게임을 만들고 싶냐는 질문을 받았습니다. 이번에도 이 프로젝트가 무엇인지 정확히 알고 있었기 때문에 제가 원했다면 완벽한 답변을 창조할 수도 있었겠지만 그렇게까지 거짓말을 할 필요는 적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이전과 같이 GTA 같은 게임을 만들고 싶다고 답했지만 이번에는 여러 가지 쿠션을 넣어 답변합니다. 가령 일을 처음 시작할 때는 만들고 싶은 게임을 설명하기 위해 게임 메커닉을 직접 설명해야 했지만 시간이 흐르며 그런 게임은 이미 누군가가 개발해 버렸기 때문에 이제 만들고 싶은 게임을 설명하려면 그냥 ‘무슨 게임 같은 거’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는 밑밥을 깔았습니다. 또 GTA를 예로 들며 그 프로젝트에서 개발하고 있는 게임의 특성을 가져와 서로 비슷한 특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 장르에 매력을 느낀다고 답했는데 비슷한 특성을 공유하는 것은 사실이었지만 이 사실을 이끌어내는 과정에는 상당한 무리수를 둬야 했던 것도 사실입니다.
개인적으로 GTA같은 게임을 만들고 싶고 이 장르에 매력을 느끼는 가장 큰 이유는 게임 시스템을 설계하는 사람 입장에서 전체 게임을 만들기 위해 어떤 부분들을 시스템으로 분리해 설계하고 이들 각각이 서로 상호작용 하도록 만들어야 할 지 게임을 작은 단위로 쉽게 분리할 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기본적으로 이 게임이 보여주는 세계는 정말 대단한데 너무나 대단한 나머지 어디까지가 각각의 구성요소 본연의 기능이고 어디까지가 구성요소 간의 상호작용인지 구분하기 어려웠습니다. 가령 GTA의 핵심 구성요소 중 일부를 조금 분해해 탈것을 만들고 NPC를 만들고 PC를 만들 수는 있을 겁니다. 그런데 이들이 세계 속에서 자연스럽게 상호작용 하는 모양을 MMO 만들던 이런 낡은 접근으로 잘 설계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가령 횡단보도 정지선을 넘어 정차한 차량에 욕설을 하며 차를 돌아 횡단보도를 건너는 사람이 나오는 상황을 이렇게 서로 구분한 시스템으로 설계해 이들 사이의 상호작용을 통해 만드는 일은 정말 보통 일이 아닐 것 같습니다. 그래서 각각의 구성요소를 분리하고 이들 사이의 상호작용을 고려한 설계를 해야 한다면 이는 게임 만드는 사람 입장에서 아주 흥미로운 도전거리일 뿐 아니라 그 결과를 제 스스로가 좋아하기까지 해 만드는 일, 그리고 그 결과를 플레이하는 일까지 굉장한 경험일 거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GTA는 이를 너무나, 너무나 너무 너무도 훌륭하게 해 내 감히 이를 복제할 엄두조차 내기 어려웠습니다.
하지만 이런 거의 자포자기에 가까운 생각은 ‘사이버펑크 2077 1.0’이 출시되면서 상당히 개선되었는데 GTA에서는 각 구성요소가 게임에 너무 잘 통합되어 있어 구성요소를 구분하는 것 조차 쉽지 않았다면 사이버펑크 2077 - 이하 사이버펑크 - 은 구성요소가 게임에 아주 잘 통합되지는 않아 투박하게 드러나 있었고 플레이 하는 내내 구성요소 각각의 동작과 이들 사이의 상호작용을 구분하기 훨씬 쉬웠습니다. 가령 GTA에서 자동차에 타면 라디오 채널을 바꿀 수 있습니다. 이 자체만 놓고 생각하면 복잡하지 않다고 볼 수도 있지만 게임 만드는 사람 입장에서 이 단순한 라디오가 포함된 가장 공포스러운 상황이 있습니다. 퀘스트 때문에 자동차를 운전하며 전화통화를 할 때 1인칭으로 전환해 보면 한 손으로 스티어링 휠을 잡고 나머지 한 손으로 전화를 들고 있습니다. 이 때 인터페이스를 조작해 라디오 채널을 전환하려고 하면 캐릭터가 짜증을 내며 전화를 끊거나 집어던진 다음 그 손으로 라디오를 조작해 채널을 전환합니다. 플레이어 캐릭터, 퀘스트, 자동차, 전화, 라디오 각각을 구분한 다음 하나하나를 설계하는 일은 아마 그렇게 어렵지는 않을 겁니다. 하지만 도대체 이들이 동시에 상호작용하는 위와 같은 상황은 어느 시스템의 어느 규칙이 적용되고 있는 것인지 알기 쉽지 않았고 이 경험을 한 다음부터 이 게임은 천상계 사람들이 만드는 근본적으로 뭔가 다른 게임이라고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반면 사이버펑크에서 라디오 채널 전환은 그냥 별도 모달 팝업을 띄울 뿐이었고 이동 중 다른 사람들과 바로 통신할 수 있는 홀로콜은 플레이어 캐릭터의 행동에 전혀 영향을 주지 않습니다. 그저 플레이어가 전투 상태에 돌입하면 끊겠다고 말하고 통화가 종료되며 전투 상태에서 벗어나면 다시 통화를 시작해 ‘어디까지 이야기했지?’ 하며 대화를 이어 나가는데 이러는 사이에 사람은 팔이 두 개 밖에 없기 때문에 운전하며 전화 통화 하며 라디오를 조작할 수 없는 규칙 같은 것이 개입할 여지가 없습니다. 그냥 홀로콜, 전투, 운전, 라디오 채널 전환 각각을 만들고 이들이 서로 상호작용 하지 않도록 놔 두면 되는 상대적으로 훨씬 단순한 방식으로 게임을 만들었습니다. 첫 버전이 어른들의 사정에 의해 출시 당할 때 수많은 진행 불가능한 문제점에도 실망했지만 개인적으로는 GTA와 비교해서 각 시스템들이 서로 매끄럽게 상호작용해 각 시스템의 경계선을 알아내기 어렵게 만드는 수준을 기대했다가 이 정도 수준에는 근접하지도 못한 결과에 실망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사이버펑크를 보고 미래에 GTA 같은 게임을 아예 못 만들지는 않을 것 같다는 아주 작은 자신감도 얻었는데 잘하면 사이버펑크는 판교에서도 만들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고 그 다음부터는 현실적으로 사이버펑크를 만들겠다고 말할 수 있을 겁니다. 이들 사이의 차이는 구성요소 사이에 일어나는 상호작용 수준의 차이입니다.
구성요소 간의 상호작용 수준에 초점을 맞춰 만들고 싶은 게임에 대해 거짓말 하지 않으면서도 장르는 다르지만 여전히 구성요소 간의 강한 상호작용이 핵심인 게임에 맞춰 나름 나쁘지 않은 대답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제가 이전에 만들어 온 모바일 MMO 장르는 다양한 구성요소가 등장하기는 하지만 지원 동기: 현대 MMO 디자인에 대한 갈증에 설명했듯 구성요소 간의 상호작용을 강하게 제한하고 개발자가 정확히 의도한 형태로만 상호작용 하도록 강제해 라이브 때 게임을 통제하기는 더 쉽지만 상대적으로 예상하지 못한 다양한 상호작용에 의해 일어날 수 있는 창발적 플레이를 만들기는 어려웠고 만드는 사람 입장에서는 그리 나쁘지 않았지만 이를 플레이 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실망스러웠습니다. 이런 이야기를 포함해서 만들고 싶은 게임에 초점을 맞추기 보다는 만들고 싶은 게임의 특징과 이 프로젝트에 대해 제가 생각하는 특징의 비슷한 점을 적당히 엮어 이야기했는데 이전처럼 그냥 게임 이야기를 할 때에 비해 일단 겉으로는 나쁘지 않은 반응을 얻었고 결과 역시 나쁘지 않았습니다. 만약 피드백을 받지 못했다면 이런 개선을 직접 생각해내기는 훨씬 어려웠을 겁니다.
한편 이 이야기가 지나간 다음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 나서 이야기를 시작한 주제는 우리들이 지난 오랜 세월에 걸쳐 스탭들을 교육하는데 소홀한 결과 현대에 적당한 스탭을 구인할 수가 없을 뿐 아니라 한국 바깥에 있는 스탭들과 비교할 때 상대적 우위를 점하기 어려운 상태가 되어 버렸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종종 회사는 학교가 아니라는 아무리 봐도 어그로를 끌려고 쓴 것이 확실한 글이 긍정적 반응 및 부정적 반응을 함께 받곤 했습니다. 물론 회사는 학교가 아니지만 회사에서 가르쳐야 할 것을 회사가 아닌 곳에서 배워 올 방법은 없습니다. 이번 구직 때 여러 구인 공고를 살펴봤는데 어떤 공고에는 특정 게임을 언급하며 ‘그 게임의 어느 부분까지 플레이 한 경험이 있을 것’을 필수 조건에 적어 놓기도 했는데 아무래도 이쯤 되면 너무 한 것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떤 프로젝트가 참고하고 있는 다른 게임의 핵심 경험을 획득하는 것은 회사에서 수행해야 할 업무입니다. 그 게임을 플레이 한 사람을 구인 하는 것이 아니라 일단 적당한 사람을 구인 한 다음 이 사람이 업무로 특정 게임의 핵심 경험을 획득하도록 해야 합니다. 어쩌면 이 구인 공고는 회사 안에서 수행할 경험을 회사 밖에서 수행하도록 해 업무를 하고 있지만 돈은 내고 싶지 않은 의도를 드러내는 것처럼 보여 썩 인상적이지 않았습니다.
이와 유사한 여러 가지 방법을 통해 교육을 등한시하는 형태가 너무 당연하게 업계 전체에 자리 잡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가령 게임디자이너는 아무리 신입이더라도 바로 아주 작은 부분부터 직접 담당해야 합니다. 물론 실무가 가장 좋은 교육이기는 하지만 규모와 역사가 상당한 곳들도 업무에 대한 거의 아무런 교육을 제공하지 않습니다. 그저 개인이 회사 내부 자료를 살펴보고 주어진 미션에 따라 적당히 흉내 내는 단계부터 시작하게 되는데 이 과정이 교육이라고 말할 수도 있지만 좀 더 체계적인 교육 과정이 있다면 개개인을 더 빨리 발전 시킬 수도 있었을 겁니다. 만약 운이 좋아 스탭 개개인이 전체 그림을 상상하고 그 안에서 자신의 업무가 왜 필요하고 어떤 위상을 가지는지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면 업무를 초과 달성할 가능성도 있었을 겁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면, 또 이런 가이드를 전혀 하지 않는다면 이들은 쉽게 시야가 좁아져 자기 자신의 업무 결과에만 집중하고 다른 부서와 협업할 때 조금만 다른 시각으로 봐도 쉽게 찾을 수 있는 보완 사항을 직접 발견하지 못하는 상태에 빠지는데 이런 상태를 잘 가이드 하지 않으면 상황의 원인을 찾지 못하고 그저 스트레스만 받는 상태가 계속될 수도 있습니다.
지난 몇 년 사이에 이야기를 나누던 이전 동료님과 제가 비슷하게 느끼는 점 중 하나는 서로 특정 게임을 복제하는데 집중하다 보니 다른 게임을 보고 이를 역설계해 우리가 개발할 수 있는 모양으로 만들 수는 있지만 게임의 구성요소 각각이 왜 필요하고 어떤 역할을 수행하는지에 대한 이해는 점점 낮아진 것 같다는 것입니다. 정확히는 모바일 리니지 시리즈의 비즈니스모델이 커다란 경제적 성공을 거뒀고 수많은 회사들이 이를 복제하려고 했습니다. 초반에는 그냥 복제하는 것도 잘 못해 이전에 그들 각각이 만들던 게임에 모바일 리니지의 특성을 별 생각 없이 도입하다 보니 핵심 메커닉이 망가졌지만 그런 상태를 인지하지도 못한 채 출시해 적어도 그들은 예상하지 못한 인상적이지 않은 결과를 맞이한 사례가 많았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적어도 이 비즈니스모델에 대한 이해가 조금 더 깊어져 자신들이 여태 개발하던 게임에 모바일 리니지의 비즈니스모델을 무난하게 도입하거나 아예 거의 모든 게임을 그대로 복제해 망가지고 자시고 할 것 없는 상태의 게임을 개발하기도 했는데 이 역시 적어도 비즈니스모델을 이해하지 못해 핵심 메커닉을 망가뜨리는 것 보다는 나은 선택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런 프로젝트가 오랜 기간에 걸쳐 시장을 가득 채우다 보니 고객 관점에서도 이 장르에 대한 피로도가 너무 높아졌고 만드는 사람 입장에서도 몇 년, 그리고 여러 게임에 걸쳐 똑같이 다른 게임을 복제하는 임무를 반복해서 수행하다 보니 이 임무를 빨리, 정확히 수행할 수는 있지만 이 임무 각각이 왜 필요한지는 더이상 고민하지는 않게 된 것 같습니다.
이제 시대가 변해 한국에 있는 회사라도 오직 한국 스탭들과 일하지 않게 됐습니다. 이미 오래 전부터 아트 에셋 제작의 상당 부분은 한국 밖에 있는 회사들에 의존해 제작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다른 나라에 적극적으로 게임을 출시하는 회사들은 이제 그 나라의 비즈니스 스탭 뿐 아니라 개발 스탭들의 도움을 함께 받아 개발해 나가고 있다고 합니다. 좀 더 적극적으로 해외 퍼블리셔들과 협업 하는 사례에서는 그 쪽 게임디자인 스탭들을 아예 한국으로 데려와 같은 공간에서 일하기도 하는데 이런 과정에서 한국 쪽 스탭과 비교해 이들의 교육수준이 대단히 높고 또 위에서 설명한 한국 쪽 스탭들의 생각하는 방법, 이유에 대한 탐구 같은 관점을 월등한 수준으로 갖추고 있다고 합니다. 물론 그분들은 나름 해외 퍼블리셔에서도 높은 수준의 스탭들일 가능성이 높기는 하지만 이분들이 우리들과 비교해 더 나은 기량을 가지고 있다는 점은 사실이며 이들이 국내에 들어와 우리들과 같은 공간에서 일하기 시작했고 머지 않아 이들과 직접 비교되는 시점이 올 겁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들은 지난 오랜 기간에 걸쳐 개인적인 판단을 최소화하고 목표를 최대한 빨리 달성하는데 집중한 개발을 반복하다 보니 각 메커닉이 필요한 이유, 서로 다른 메커닉이 한 게임에 들어갈 때 이들이 맞물려 동작할지 아닐지에 대한 판단 따위를 이전 시대에 비해 훨씬 못하는 상태가 되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외부에서 진입한 게임디자이너들과 경쟁한다면 분명 결말은 그리 좋지 않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전에 어떤 망한 프로젝트에서 일할 때 그 회사에서 아주 오랫동안 일하신 분으로부터 조언을 받으며 일할 기회가 있었는데 이 분은 거의 국내 1세대 개발자들 중 한 분으로 여러 게임을 봐 오셨고 회사에서도 이 분이 게임의 구성요소를 빠르고 정확하게 파악하고 이들 사이에 일어날 바람직한 상호작용과 그렇지 않은 상호작용을 알아내는 능력을 높이 평가해 이 분이 여러 프로젝트에 조언을 할 수 있게 했습니다. 이 분과 일하며 여러 가지를 배웠지만 가장 큰 배움은 게임에 어떤 시스템을 넣으려고 할 때 이 시스템이 게임에 어울리는지 판단하기 위해 시스템의 역할을 게임 전체 관점에서 정확히 파악하고 또 이 시스템이 이전에 여러 다른 게임의 역사에서 어떻게 사용되었는지 설명할 수 있는 상태에서 개발하는 것입니다.
가령 어떤 게임에서 모바일 리니지 시리즈의 비즈니스모델 중 하나인 컬렉션 시스템을 복제할 작정이라고 해 봅시다. 컬렉션 시스템은 게임 상에서 획득한 다양한 아이템과 그 아이템의 다양한 성장 상태를 요구한 다음 이를 영구적인 능력치 상승으로 되돌려주는데 이 메커닉이 의도에 맞게 동작하려면 게임 자체가 액션 보다는 스테이터스에 따른 연산이 결과에 더 큰 영향을 주도록 설계되어야 하고 또 고객들 사이에 아이템 거래를 개발자가 의도한 방법만을 따르도록 강력하게 통제해야 합니다. 한 게임에 이들이 동시에 포함되지 않으면 분명 컬렉션을 복제했지만 예상대로 동작하지 않을 수 있는데 이런 상호작용 요소, 그리고 역사적으로 이 시스템이 발전해 온 과정에 대한 설명을 한번에 연결된 맥락을 통해 듣고 개발하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 사이에는 분명 큰 차이가 있었을 겁니다.
저 자신도 그런 설명 방법, 기능에 대한 접근 방법 등에 굉장히 크게 감명 받았고 비슷한 관점을 가지기 위해 노력했는데 지금은 그 분 정도 수준은 아닐 테지만 비슷한 방식으로 여러 요소를 설명하고 또 여러 요소를 확인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가령 기대작이 출시되었다길래 플레이 해 보니 게임 하나를 구성한 다양한 요소가 서로 다른 게임으로부터 왔을 것이 확실한데 다른 게임으로부터 여러 구성요소를 가져오기만 했을 뿐 이들이 각각의 게임에 왜 존재하는지, 어떤 조건에서 의도에 맞게 동작하는지는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채 그냥 가져와 한 게임에 포함된 여러 구성요소가 서로 엉뚱하게 동작하는 상태를 파악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폰을 붙들고 한참을 플레이 하다가 ‘아이고… 이 집 이제 어떻게 하냐…’ 같은 말을 한숨을 쉬며 했는데 아마 좀 더 들여다 보면 어떻게 해야 할 지 방법을 찾을 수 있긴 하겠지만 저는 제 프로젝트에 집중해야 하니 부주의하게 개발된 다른 게임을 고칠 방법을 찾을 필요는 없습니다. 이런 과정을 거치며 업계에서 그래도 밥 정도는 먹고 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야기가 좀 새고 말았는데 핵심은 최근 적당한 게임디자인 스탭을 구인 하기는 쉽지 않고 외부에서 들어온 스탭들은 훨씬 훌륭한 퍼포먼스를 보이고 있는데 이런 상황이 일어난 원인은 우리들이 지난 오랜 세월에 걸쳐 교육을 등한시 해온 것, 그리고 시장 상황 상 빠른 복제에 초점을 맞추다 보니 복제 대상 구성요소가 존재하는 원인을 파악하지 못한 채로 그저 같은 동작을 하도록 옮겨 오는데 집중한 나머지 기능의 존재 이유를 파악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여전히 다른 게임의 구성요소를 복제할 일은 피할 수 없습니다. 다만 앞으로 업계에서 살아 남으려면 그럴 때마다 구성요소가 그 게임에 존재하는 이유, 효과, 다른 구성요소와의 상관관계, 그리고 상호작용 방식 따위를 함께 파악하는 습관을 가지면 좋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