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x Degrees of Inner Turbulence

오래 전에 들었던 음악을 다시 듣고 그 동안의 경험과 생각에 따라 이해하는 바가 달라져 흥미로웠습니다.

Six Degrees of Inner Turbulence

활동한 지 아주 오래된 밴드 Dream Theater의 곡들을 제법 오랫동안 좋아합니다. 종종 키오스크는 악마가 만들지 않는다의 끄트머리에서 잠깐씩 이 밴드의 음악을 인용하곤 합니다. 마시고 싶은 것이 생김에서 이 밴드의 구성원으로부터 시작해 각 구성원이 활동하는 다른 밴드의 음악을 찾아 듣다가 점점 밴드의 지리적 위치가 북유럽의 추운 나라들로 옮겨가기는 했지만 여전히 프로그래시브 락 장르를 좋아하기 시작한 출발점입니다. 여러 다른 곡을 듣다가 가끔 출발점에 돌아와 어떤 제 음악 취향 중 일부가 정확히 어디서부터 시작되었는지 깨닫게 해 줄 뿐 아니라 이전 익숙하다 못해 편안한 느낌이 들어 멀리 북유럽까지 갔다가도 다시 북미 대륙으로 돌아오곤 합니다.

지난 권고사직 이후 오랜만에 집에서 시간을 주로 보내며 머릿속에서 생각되지 못하고 밀린 생각을 손가락을 움직여 생각을 진행시키기도 하고 또 사 놓기만 하고 손도 대지 않고 방치한 게임을 플레이 하고 있으며 한동안 안 읽은 책에 손을 대기도 하고 또 그 중에서는 이전에 읽다가 포기한 책을 그 동안 자질구레한 배경지식을 좀 더 익혔으니 다시 도전해볼 생각도 하고 있습니다. 한편 한동안 음악을 잘 듣지 않았음을 문득 깨달았는데 출퇴근하며 귀를 덮은 헤드폰은 주로 영상과 책, 그리고 글을 듣는데 주로 사용하고 애초에 이 기계가 만들어진 가장 중요한 이유인 음악을 듣는데는 잘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가끔 머리가 너무너무너무너무 안 돌아가 머리 바깥으로부터 정보를 받아들일 엄두가 안 나는 날 잠깐 씩 듣곤 했지만 시간이 현재에 가까워질 수록 음악을 덜 듣게 된 것은 확실합니다. 어쩌면 음악을 듣고 있으면 이 시간에 외부로부터 정보를 받아들일 기회를 날리는 것이 아닐까 하는 걱정 때문에 음악을 듣고 있으면 뭔가 너무 마음 편히 아무것도 안 하고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던 것도 같습니다. 일종의 조바심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하지만 집에서 시간을 보내기 시작하자 조바심이고 뭐고 그동안 잘 안 하던 일들, 그러니까 책 읽기, 타이핑하며 생각하기, 밀린 게임 하기, 치우려고 마음만 먹고 있던 집안에 쌓인 뭔가를 버리거나 정리하기,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기 같은 일들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목록에 말하지 않았지만 이런 일 중 하나는 오래 전에 들었지만 한동안 듣지 않은 음악을 다시 듣는 것입니다. 오늘 이야기할 엘범 Six Degrees of Inner Turbulence는 2002년 초에 발매됐는데 이미 이 시점에도 이 밴드의 음악을 무척 좋아했습니다. 특히 2000년 직전에 발매한 Metropolis Pt. 2: Scenes from a Memory 엘범은 이로부터 7년 전에 발매한 다른 엘범인 Images and Words에 수록된 곡 중 하나인 Metropolis—Part I: "The Miracle and the Sleeper"의 이야기를 확장해 엘범 하나에 수록된 여러 곡에 걸쳐 여러 사건으로 연결된 한 가지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이전에는 엘범 하나에 서로 다른 여러 곡이 아주 느슨한 맥락으로 연결된 엘범을 경험하다가 이렇게 엘범 전체가 단단한 맥락으로 연결되어 전체를 차례대로 들어야 이야기를 모두 들었다고 이야기할 수 있는 엘범을 처음 접해 꽤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사실 이런 구성은 여러 악장으로 구성된 클래식으로 가면 흔한 구성이었는데 이 시대의 저는 그런 음악을 듣지도 않았으니 엘범 전체가 한 가지 이야기로 연결된 음악을 처음 접했습니다.

21세기가 시작된 다음 2년이 지나 키보디스트가 변경되고 나서 첫 엘범을 냈는데 이 엘범이 바로 오늘 이야기할, 그리고 요즘 이전에 들었던 음악을 다시 꺼내 듣다가 튀어나온 Six Degrees of Inner Turbulence 엘범입니다. 당시에 이 음반은 CD - 제발 이게 뭐냐고 묻지 말아 주길 - 두 장으로 발매됐는데 개인적으로 이 두 장의 음반이 이 밴드의 미래를 결정하는 갈림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첫 번째 장은 여태까지 이 밴드가 만들어 온 음악과 꽤 느낌이 다른 실험적인 곡들이 실려 있었고 이 때문에 이 곡들을 썩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음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변화로부터 이미 이 때도 20여년에 걸쳐 활동해 온 밴드가 앞으로 만들어낼 음악의 변화 방향을 미리 알려준 거라고 봤습니다. 두 번째 장은 사실 음악적으로는 이 밴드의 전통을 계승한 음악에 더 가까워 더 듣기 쉽고 익숙한 느낌을 줬습니다. 물론 익숙하기만 한 것은 아니었는데 바로 이전 엘범에서 한 엘범 전체를 서로 단단한 맥락으로 연결된 여러 곡의 집합으로 만들어 버린 시도를 이번에는 익숙한 음악에 기반해 반복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때 까지는 이 두 장 중 한 장이 이 밴드의 미래를 보여줄 거라고 예상했고 당연히 이런 예상은 보란 듯이 틀렸습니다.

개인적으로 이 밴드의 음악을 크게 세 가지 시대인 고대, 중세, 근대로 구분합니다. 현대가 없는 이유는 이미 1980년대에 활동을 시작한 밴드가 지금까지 활동하고 있는데 이들이 활동을 시작한 시대와 현대를 비교해볼 때 이들이 결코 현대에 도달하지는 못할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들의 최신 음악 역시 현대가 아니라 근대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고대는 활동을 시작한 다음부터 2000년까지 약 20여년에 해당하는 기간입니다. 이 동안 밴드 고유의 음악적 지문을 구축해냈고 얼마 동안은 밴드의 각 구성원으로써 역할을 훌륭하게 수행할 멤버를 찾는데 시간을 보냄과 동시에 각 멤버들마다 서로 느낌이 상당히 다른 엘범을 만들어내면서 이미 온전히 구축한 밴드의 음악적 지문을 조금씩 고쳐 가는 시도를 했습니다. 중세는 2000년부터 드러머 마이크 포트노이가 밴드를 떠나기까지의 약 10여년 동안의 기간입니다. 이 시기에는 고대의 끄트머리에 새로 참여한 도전 루디스가 음악적 비전을 제시하며 각 엘범의 핵심 역할을 담당했는데 때때로 이 키보디스트의 색상이 너무 강해 이게 밴드의 음악인지 아니면 조던의 싱글인지 헛갈릴 때도 있어 좋은 기억으로만 남아 있지는 않습니다.

마지막으로 새로 참여한 드러머 마이크 맨지니와 함께 활동한 2010년 이후부터 현재에 디르는 기간을 근대로 보는데 이전 10년 동안은 1999년과 2002년에 저에게 큰 충격을 준 엘범 전체의 모든 곡이 서로 단단한 맥락 위에 연결되도록 한 형식의 엘범을 만들지는 않았습니다. 개인적으로 근대로 분류하는 기간 동안에는 The Astonishing이 이런 형식의 엘범이었는데 개인적으로는 무엇을 하고 싶었는지는 이해하지만 서기 2016년에 듣기에는 그리 특별하지 않은 스토리라인과 그리 특별하다고 보기 쉽지 않은 음악적 변화 덕분에 오랜만에 이런 형식의 엘범이었음에도 아주 인상 깊지는 않았습니다. 그리고 근대가 시작된지 어느새 10년이 훨씬 지난 지금은 지난 근대 기간 동안 밴드를 떠났던 드러머 마이크 포트노이가 다시 돌아왔고 이 시대를 여전히 근대로 봐야 할 지 아니면 또 다른 시대로 구분해야 할 지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지난 스튜디오 엘범을 발매한 지 이제 3년이 지나는 중이니 새 엘범을 낸다면 그때 가서 판단해도 늦지 않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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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주에는 문득 이전까지는 발매 시점 까지 밴드가 구축한 음악적 지문을 그대로 유지해 엘범 전체를 한 가지 단단한 맥락으로 연결한 형식은 흥미로웠지만 음악적으로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 ‘Six Degrees of Inner Turbulence’ 엘범의 두 번째 음반에 수록된 엘범 제목과 같은 ‘Six Degrees of Inner Turbulence’를 듣고 있는데 문득 이전에 들을 때와는 꽤 다른 느낌과 이해로 다가와 이 경험 자체가 재미있었습니다. 일단 이 엘범이 발매되던 시대에 들을 때는 밴드가 이 곡을 통해 음악적 변화를 크게 추구하지는 않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조던 루데스가 참여하고 나서 본격적으로 함께 작업한 첫 엘범이기도 하고 처음으로 곡의 시작을 아예 조던의 원맨쇼인 ‘서곡’으로 시작해 버리면서 앞으로 이 밴드의 비전을 누가 이끌어 나갈 것인지를 확실하게 보여주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음악적으로 큰 변화가 없지 않았던 겁니다.

또 처음 이 음악을 들을 때는 서로 다른 여섯 가지 정신 질환에 대한 이야기를 차례로 다룬다고 단순하게 생각했습니다. 서곡이 끝나고 나면 두 번째 파트부터 차례대로 다섯 가지 정신 질환을 겪는 개인의 경험을 다룬 다음 다시 첫 번째 이야기인 ‘About to Crash’의 또 다른 증상 혹은 경험을 다룬 다음 이어지는 ‘Losing Time’에서 해리성 장애 이야기와 함께 그랜드 피날레로 연결되는데 처음에는 마음 속에 일어나는 급격한 공기 흐름의 변화 혹은 난기류, 즉 정신 질환들의 경험 나열이라고 생각해 음악과 어울리지만 다른 한 편으로는 이런 경험을 나열하는 언어가 그리 와 닿지는 않았습니다. 그런데 세월이 흐르며 정신적으로 어려운 순간을 겪기도 하고 또 사회적으로 입 밖에 꺼내기 어려운 오직 머릿속에 떠돌아 다니는 욕망을 다스리기도 하고 - 소설 개의 설계사에 비슷한 이야기가 나옴 - 또 외부로부터 압력을 이기지 못하고 잠 자는 기능이 완전히 고장 나 이를 해결하는데 시간을 보내기도 하며 여러 엘범 전체에 걸쳐 나열된 마음 속 급격한 흐름의 변화를 겪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이전보다 훨씬 가깝게 느끼게 됐습니다. 이 엘범에 표현한 여러 경험들 만큼 고통스럽고 또 심각하지 않지만 잠 자는 기능을 회복하는 과정에서 알게 된 특징 역시 적어도 제 머리 속에서는 잔잔하지는 않은 흐름을 항상 만들어내고 있다는 점에서 엘범을 구성한 곡들 각각은 이전과는 상당히 달리 와 닿았습니다.

또 다른 관점에서는 이 엘범의 곡 각각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머리 속에서 일어나는 급격한 흐름의 변화는 사실 오직 이들만의 문제가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세상에는 이제 80억명도 넘는 사람들이 있고 이들 모두는 하루하루 서로 다른 경험을 하고 서로 다른 전투를 치르고 있으며 서로 다른 머리 속에서 서로 다른 경험과 생각을 하고 있으며 이는 각자의 머리 속에 각자의 서로 다른 어떤 공기의 흐름을 만들어내고 있을 겁니다. 이 엘범에서는 물론 정신 질환으로 분류되는 영역의 흐름에 대한 이야기를 핵심으로 하고 있지만 이 범주에 포함되지 않는 온갖 사람들의 온갖 머리 속 흐름이 있을 테고 이 엘범과 곡 전체는 그런 사람들 중 조금 더 특별한 경험을 하는 사람들의 사례를 표현하고 있을 뿐 더 넓게 보면 온갖 사람들 각자가 겪는 머리 속 온갖 경험으로 확장해 상상할 수도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일종의 머릿속에 대한 다양성에 대한 이야기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flowchart TD Overture[Overture] subgraph Six_Degrees_of_Inner_Turbulence[Six Degrees of Inner Turbulence] About_to_Crash[1-1. About to Crash] War_Inside_My_Head[2. War Inside My Head] The_Test_that_Stumped_Them_All[3. The Test that Stumped Them All] Goodnight_Kiss[4. Goodnight Kiss] Solitary_Shell[5. Solitary Shell] About_to_Crash_Reprise[1-2. About to Crash Reprise] Losing_Time[6. Losing Time] end Grand_Finale[Grand Finale] Overture ---> About_to_Crash About_to_Crash --> About_to_Crash_Reprise About_to_Crash --> War_Inside_My_Head War_Inside_My_Head --> The_Test_that_Stumped_Them_All The_Test_that_Stumped_Them_All --> Goodnight_Kiss Goodnight_Kiss --> Solitary_Shell Solitary_Shell --> About_to_Crash_Reprise About_to_Crash_Reprise --> Losing_Time Losing_Time ---> Grand_Finale

개인적으로 ‘고대’의 끝자락, 그리고 이 엘범 직전에 발매한 스튜디오 엘범인 Metropolis Pt. 2: Scenes from a Memory가 곡 중 현대에 같은 꿈을 반복해서 꾸던 주인공이 최면술사를 찾아가 최면을 통해 곡 중 과거의 이야기를 체험하게 되면서 일어나는 서로 두 가지 다른 시간대에 걸친 이야기를 엘범 하나에 걸쳐 늘어놓는 형식에 감명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다시 들어 본 ‘Six Degrees of Inner Turbulence’는 이전에 단순히 서로 다른 정신적 경험을 차례로 늘어놓았을 뿐이라고 생각했던데 비해 양극성 장애에 해당하는 ‘About to Crash’를 두 부분으로 나눠 마치 또 다른 사람의 경험에 해당하는 것처럼 배치했다는 점을 이제서야 눈치 챘습니다. 그래서 이전 스튜디오 엘범의 구성에 비해 좀 단조롭지 않은가 하는 생각을 해 왔는데 다시 들어보니 전혀 그렇지 않았고 제가 얼마나 오랫동안 단편적으로 곡들을 듣고 또 이해한 것 같은 착각을 해 왔는지 생각해보니 웃기기도 하고 또 부끄럽기도 한 감정을 느낍니다.

사실 이건 오래 전에 곡을 듣고 곡을 제대로 이해하지도 못한 채 단편적인 감정과 의견 만을 가진 채 오랫동안 살아오다가 곡을 오랜만에 다시 듣고 이전에는 파악하지 못한 특징을 발견하며 곡에 대한 이해 수준을 조금 올린 경험이기도 하지만 다른 한 편으로는 뭘 보고 들어도 잘 이해하지 못한 제 경험을 고백하는 되게 부끄러운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부끄러운 이야기는 일기에 남기고 다른 사람들이 볼 수 있는 장소에 공개하는 것은 그리 좋은 아이디어가 아닐 수 있지만 이 블로그 웹사이트 전체가 어떻게 보면 제 입장에서 쪽팔린 이야기로 가득하고 또 이런 이야기를 낯짝 두껍게 모든 사람들에게 고백하며 저 자신은 그 다음 단계로 나아가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구직을 계속하는 기간 동안에 오래 전에 들은 음악을 다시 찾아 듣는 시간을 좀 더 가지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