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받는 것을 만들기 위해서는 그것을 사랑해야 한다
고객들로부터 사랑받는 뭔가를 만들기 위해서는 가장 먼저 내 스스로가 그것을 사랑해야 합니다. 고객들은 그 사랑을 눈치챕니다.

어쩌다 보니 몇몇 게임의 캐릭터 커스터마이징을 담당하게 되었습니다. 맨 처음 커스터마이징을 담당했을 때는 인게임에서 캐릭터 하나를 구성하는 에셋 구성조차 잘 모르는 상태에서 일을 맡았는데 제가 뭔가 원하는 모양을 말할 때마다 모델을 제작하던 형은 깊은 한숨을 쉬며 “우진아. 그게 네가 생각하는 그런 모양으로 만들어지는 게 아니야.”라고 말씀하시며 그 대 만들던 게임에서 캐릭터 한 마리가 화면에 표시되기 위해 어떤 에셋들이 관여하는지 참을성을 가지고 차근차근 설명해 주셨습니다. 현대에 돌아보면 역사적으로 몇몇 게임은 우리들이 실제 세계에서 옷을 입는 것과 비슷한 방식으로 옷을 입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 게임을 살펴보면 실제 세계에서처럼 셔츠 위에 가디건을 겹쳐 입고 그 위에 목걸이를 걸기도 하지만 그 경우는 우리들과 달리 싱글플레이 환경에 가까워 옷에 그 정도 자유도를 확보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제가 캐릭터 커스터마이징을 담당한 거의 모든 게임은 멀티플레이 온라인 게임이었기에 캐릭터의 겉모습이나 의상에 그 정도의 자유도를 요구하기는 어려웠습니다.
우리들이 만드는 외형과 의상은 크게 모델과 모델의 주요 본에 붙이는 일종의 슬롯 개념으로 구분할 수 있는데 고객 관점에서 옷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사실 옷을 포함한 캐릭터 몸통 전체의 모델 에셋입니다. 가령 어떤 게임에 여성 캐릭터와 남성 캐릭터가 있을 때 이들이 각자 똑같은 흰색 셔츠를 선택할 수 있다면 인터페이스 상으로는 선택되어 있는 캐릭터에 따라 똑같은 흰색 셔츠 한 가지 의상을 선택할 수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여성 신체에 셔츠를 입혀 제작한 모델 하나와 남성 신체에 셔츠를 입혀 제작한 모델 하나, 적어도 두 가지 모델이 있다고 보면 됩니다. 게임에 따라 상하체를 분리해 상의와 하의를 별도로 선택할 수 있게 하기도 하고 상하의의 조화를 중요하게 여기는 경우에는 상하체를 분리하지 않고 항상 상하의를 한 덩어리로 제작하기도 합니다. 만약 상하의를 한 번에 한 모델로 제작할 수 있다면 상대적으로 낮은 기술적 난이도에서 좀 더 다양한 의상을 만들 수 있는데 가령 상하의가 분리되어 있다면 상체 모델과 하체 모델이 서로 간섭을 일으킬 때 상황에 따라 이들의 우선순위가 올바르게 설정되도록 하는데 상당한 자원을 사용해야 합니다. 상의 기장이 길어 하의 윗부분을 덮는다면 실제 세계에서는 그저 상의를 밖으로 꺼내 입기만 하면 되지만 가상 세계에서 컴퓨터는 어떤 옷이 밖으로 나와야 하는지 전혀 모르기 때문에 특정 복장은 긴 기장이 바지 밖으로 나와야 함을 별도로 알려줘야만 합니다. 같은 상황에 상하의가 한 덩어리로 제작된다면 처음부터 기장이 긴 상의가 하의 상단을 덮도록 제작하면 되므로 이 때 필요한 기술적 난이도는 훨씬 낮아집니다.
상의나 하의를 게임에서 표현하기 위해 옷 자체를 제작하는 것이 아니라 옷과 이 옷을 입고 있는 캐릭터의 몸통 모델을 함께 포함하고 있다는 점을 이해하면 캐릭터가 신발을 신을 때 일어나는 여러 가지 문제 역시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습니다. 치마를 입을 때는 큰 문제가 일어나지 않는 편이지만 바지를 입는다면 바지는 상의 뿐만 아니라 신발과 충돌할 수도 있습니다. 신발은 상의나 하의와 마찬가지로 신발 자체의 에셋을 제작하는 것이 아니라 신발을 신은 발과 발목, 필요할 경우 다리를 포함합니다. 개발팀에서 신발 에셋을 열어보면 무섭게도 신발 뿐 아니라 다리 일부가 잘린 채 함께 포함된 것을 볼 수 있는데 이는 상의나 하의가 이를 입고 있는 모델을 포함하는 특징과 일치합니다. 목이 짧은 운동화나 스니커류는 안에 임의의 양말을 신긴 다음 하체 모델에 연결하면 비교적 간단히 신발을 바꿔 신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슬리퍼나 샌들처럼 피부가 드러나 캐릭터의 피부색과 맞춰야 하는 경우 일이 조금 더 복잡해지고 장화처럼 신발이 하의 위로 올라와야 할 경우 앞서 기장이 긴 상의 문제처럼 일이 좀 더 복잡하게 됩니다. 여전히 컴퓨터는 어떤 신발이 장화이고 또 어떤 신발이 바지 위로 올라와야 하는지 전혀 모르므로 데이터를 입력하는 우리들이 특정 신발과 특정 하의가 조합될 때 장화가 바지를 덮고 겉으로 나와야 함을 설정해야 하는데 이를 틀리면 원하지 않게 장화를 바지 안에 넣어 신는 괴장한 모습과 마주칠 수도 있습니다.
캐릭터 머리 위에 모자를 씌우는 것도 실은 보통 일이 아닙니다. 게임에 따라 헤어스타일과 모자 양쪽 모두를 선택할 수 있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생각보다 복잡한 구현이 필요합니다. 머리카락 위에 모자를 그냥 얹기만 하면 된다면 행복하겠지만 우리들이 모자를 쓴 모습을 보면 모자로 머리카락 일부를 눌러 쓰기 때문에 모자를 쓰기 전에 머리카락이 있던 공간을 모자가 차지하는 모양이 됩니다. 앞서 상의나 하의는 옷 뿐만 아니라 옷을 걸치고 있는 캐릭터 모델을 포함한다고 했고 또 신발 역시 신발을 신고 있는 발과 다리 모델을 포함한다고 했는데 모자를 좀 편하게 구현하려면 헤어스타일에 따른 모자를 미리 만들어 놓기도 합니다. 그래서 자세히 살펴보면 게임에 따라 모자를 안 쓰고 있을 때는 긴 머리를 늘어뜨리고 있는데 모자를 쓰면 갑자기 묶은 머리로 바뀔 때가 있는데 이는 헤어스타일 각각에 따라 모자를 쓴 상태 각각을 만드는 대신 모자에 헤어스타일 한 종류만 맞춰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이렇다 보니 게임에 따라 멀티플레이 온라인 게임임에도 헤어스타일을 자유롭게 선택하고 여기에 색상 역시 자유롭게 설정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이 헤어스타일을 유지한 상태로 여러 가지 모자를 착용했을 때도 같은 헤어스타일이 유지되는 게임을 만난다면 이들은 캐릭터 커스터마이징에 상당한 에셋을 투입했더나 상당한 기술력을 투입했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사실 커스터마이징은 게임에 있어도 없어도 별로 표 나지 않는 부분 중 하나입니다. 내 캐릭터에 공을 들여 꾸몄지만 인게임에서는 아이소매트릭 뷰로 멀리 떨어진 카메라를 통해서만 내 캐릭터를 내려다 볼 수 있거나 카메라가 항상 내 캐릭터 뒷모습만 보여주는 통에 등에 어떤 장비를 장착하고 있는지는 잘 알지만 정작 얼굴은 거의 잊어버릴 지경입니다. 장르에 따라서는 아예 화면 상에 내 캐릭터가 보이지 않아 실컷 설정한 내 캐릭터를 볼 일이 아예 없기도 해서 굉장히 아쉽기도 합니다. 게임에 따라서는 기술적 한계와 장르의 특징을 잘 살리기도 하는데 사이버펑크 2077은 일인칭 게임으로 내가 정성들여 설정한 캐릭터 외형이나 지금 걸치고 있는 내 복장을 볼 일이 거의 없지만 집이나 화장실에 있는 거울을 통해 외형을 볼 수 있고 그 상태에서 표정을 지어 볼 수도 있습니다. 기술적인 이유 때문에 거울에 다가갈 때 알아서 캐릭터가 거울에 비치는 대신 거울에 상호작용 해 카메라를 고정한 다음 거울이 켜진 다음에야 내 외형을 볼 수 있는데 게임 설정 상 이따금씩 게임 속 나 자신인 V 대신 조니 실버핸드가 튀어나와 모니터 바깥의 저와 게임 속 V가 함께 ‘ㅆ발 이게 뭐야!!’라고 소리치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렇게 솜씨 좋게 외형을 설정하게 만들어 놓았으면서도 그 외형이 인게임에 별다른 영향을 끼치지 않는 상황을 잘 해결한 경우가 있는가 하면 아무 조치도 취하지 않아 게임을 시작하기 전에 공들여 캐릭터를 만들고 기본 복장을 입혔지만 게임에서는 도통 이를 정확히 확인할 수 없는 경우가 많아 김 빠지는 사례가 훨씬 더 많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캐릭터 커스터마이징을 개발하려고 할 때 이를 지시하는 분들은 게임의 첫인상을 결정하는 중요한 부분이기에 신경 써서 만들어야 한다고 말하면서도 정작 일을 시작해 이 기능을 그럴듯하게 만들기 위해 필요한 기능과 각각의 기능에 필요한 개발 비용, 에셋 제작 비용을 제안하면 말을 완전히 바꿔 그렇게까지 잘 만들 필요는 없다고 말하며 저를 웃기곤 합니다. 이런 상황은 맨 처음 배워 가며 커스터마이징을 개발했을 때를 제외한 나머지 여러 번에 걸쳐 MMO 게임에 캐릭터 커스터마이징 기능을 개발해야 했던 모든 케이스에 완전히 똑같이 반복됩니다. 덕분에 게임의 첫인상을 결정하는 캐릭터 커스터마이징을 신경 써 개발해야 하며 중요 보고와 게임 커스터마이징에 말한 것처럼 중요하지만 낮은 비용으로 애써 만든 커스터마이징이 당연하게도 충분히 훌륭해 보이지 않자 중요 보고 전에 커스터마이징 기능을 제거한 빌드를 개발해 무사히 보고를 마치면서도 정작 이 기능을 피똥싸며 개발한 사람들의 사기를 바닥으로 끌어내린 적도 있습니다. 또 이 기능은 한번 개발해 놓고 나면 그 기능에 관여한 제 스스로도 다른 일로 완전히 넘어간 다음에 이 기능의 존재를 잊어버리기에 어느 날 이 기능의 존재를 깨닫고 퀄리티를 끌어올리려고 할 때 왜 커스터마이징은 다른 부분에 비해 어색했을까 같은 당혹스러운 상황을 맞게 만들기도 합니다. 앞서 대략 설명한 대로 커스터마이징을 제대로 만들기 위해서는 상당한 기술적 비용 뿐 아니라 거의 노가다에 가까운 에셋 제작이 필요하며 후자의 비용을 조금이라도 줄이기 위해서는 전자에 대단히 큰 비용이 필요합니다. 특히 게임에 체형이 완전히 다른 다양한 클래스가 등장하고 이들 사이에 공유하는 의상이 늘어날수록 이런 비용은 더 높아지며 앞서 설명한 대로 단순히 머리카락 위에 모자를 씌우려고만 해도 이를 자연스럽게 보이도록 만드는데 높은 비용이 필요합니다. 그저 말로만 잘 만들라고 해서 될 일이 전혀 아닙니다.
그런데 이렇게 커스터마이징을 개발하려고 하면 항상 너무 뻔하지만 이를 잘 만든 게임들을 조사한 다음 이들이 당연하게 하고 있는 별 것 아닌 것처럼 보이는 기능을 조사해 우리가 해야 할 일의 수준을 정하게 되는데 이전에 세 프로젝트를 할 때마다 항상 같은 게임 두 개를 똑같이 조사해 이들의 수준을 보여주고 이들보다 더 잘 하거나 이들보다 철저히 못 하는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고 말하면 항상 업무를 지시한 분들은 마치 이런 상황을 처음 보는 듯 황당해 하곤 했습니다. 하나는 심즈 4입니다. 애초에 이 게임은 게임 아트 컨셉에 맞춰 캐릭터를 단순화한 덕분에 캐릭터에 정말 폭넓은 특성을 부여할 수 있는데 성별, 체형, 헤어스타일이나 피부, 주름 같은 요소들 뿐 아니라 제형에 따른 의상의 변화, 다양한 액세서리와 의상의 조합을 가능하게 만들었는데 이들은 필요에 맞는 에셋을 각각 제작하기 보다는 기술적인 접근으로 체형의 변화에 맞게 의상이 따라 조절되는 방식을 선택한 것처럼 보입니다. 가령 같은 의상이라도 키가 작을 때와 클 때, 체형이 더 통통하거나 마른 모양일 때에 맞춰 조절되며 상체만 해도 상체의 위쪽이 더 통통하거나 상체의 아래쪽이 더 통통하게 만들 수 있는 등 처음부터 마음 먹고 만들지 않은 채 그저 ‘중요하지만 비용을 들이고 싶지는 않은’ 수준으로 접근하는 우리들 같은 프로젝트를 철저히 짓밟을 수 있는 멋진 수준을 자랑합니다.
다른 하나는 검은사막입니다. 이 게임은 클래스에 따라 캐릭터가 정해져 있지만 그 안에서 다양한 배리에이션을 선택할 수 있습니다. 이 게임의 커스터마이징을 살펴보면 심즈처럼 기술적인 접근을 선택한 것만 같아 보이지는 않으면서도 아양한 부분에 짐착적일 정도로 다양한 배리에이션을 설정할 수 있습니다. 가령 헤어스타일을 선택하고 이를 자유롭게 염색할 수 있는 정도는 누구나 할 수 있지만 그 다음부터 헤어스타일에 변형을 가하는데서부터는 여기에 비용을 투자하지 않고서는 누구도 함부로 따라할 수 없는 영역으로 순식간에 변합니다. 머리카락을 몇 부분으로 나눠 각 부분의 꼬임을 별도로 조정하고 각 부분의 삼차원 상에서 위치와 회전을 각각 설정할 수 있게 해 마음만 먹으면 미용실에서 볼 수 있는 다양한 연애인들의 머리모양을 거의 그대로 흉내 낼 수 있을 지경입니다. 또한 이런 변경을 가할 때마다 각 단계 별로 언두 및 리두 기능을 제공하고 각 상태를 저장했다가 불러올 수 있는 등 이 기능을 사용하며 오랜 시간을 보낼 고객들을 예상해 이들에게 필요한 편의 기능 역시 충분히 갖춰 놓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캐릭터들은 커스터마이징을 하는 동안 상황에 따라 다양한 포즈와 표정을 짓는데 의상이 변경되면 고개를 숙여 의상을 살펴보거나 카메라의 이동과 회전에 따라 카메라를 바라보고 아무 것도 안 하고 있으면 지루한 표정을 짓기도 하고 또 자신이 볼 수 없는 위치와 요소를 변경하면 궁금한 표정을 짓는 등 커스터마이징을 단순히 기능으로써 접근한 것 뿐 아니라 고객이 커스터마이징을 통해 캐릭터와 교감할 수 있는 다양한 장치를 만들어 놓았습니다.
한번은 모바일 MMO 프로젝트에 참여해 이번에도 캐릭터 커스터마이징을 미리 만들자는 목표로 이 일을 담당했는데 이 때도 역시 지금까지 설명한 두 게임을 지겹게 또 다시 살펴보고 우리가 커스터마이징을 신경 써서 만들었다고 누군가에게 주장하려면 적어도 검은사막 정도로는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한 적이 있습니다. 이들은 이 기능에 사념을 품은 누군가가 높은 목표를 설정하고 이에 걸맞는 요구사항을 제안했을 것이 분명하며 자신들의 캐릭터와 이들의 외형을 꾸미는 일에 대해 강한 사념을 가지고 접근해 이 수준 높은 특별한 경험을 만들어내는데 집중했을 것이 분명합니다. 만약 이를 기능으로만 접근했다면 그저 의상이 변경되고 헤어스타일을 바꾸고 염색을 하는 뻔한 수준을 벗어나지 않았을 겁니다. 하지만 그런 과정 동안에 캐릭터는 상황에 맞는 모가짐을 하고 캐릭터의 성격에 따른 표정을 지어 상황에 맞는 캐릭터의 성격을 보입니다. 게다가 외형에 접근하는 여러 가지 방법들 역시 각 물체의 삼차원 공간 상에서 위치와 회전을 제각기 설정하면서도 이 설정에 따라 나머지 부분들이 자연스럽게 따라오도록 만들어 주로 한국에서 만드는 여러 MMO 게임이 그러하듯 흔한 미형 캐릭터의 범위를 아주 크게 벗어나지 않으면서도 꽤 도전적인 외형을 만들어낼 수도 있습니다. 만약 우리들이 정말로 커스터마이징 기능을 중요하게 생각한다면 그에 따른 비용을 지불해야만 하고 저 자신이 커스터마이징 기능에 사념을 품고 이를 바탕으로 도출한 요구사항을 개발해야만 한다고 이야기했는데 당연하게도 이런 의견은 1초가 지나기도 전에 기각됩니다.
비용을 투자할 계획이 없으면서 커스터마이징을 잘 만들어야 한다면 그건 불가능하며 저는 그냥 언리얼 엔진이 제공하는 기본 기능 중 일부를 사용해 그저 ‘동작하는 수준’의 커스터마이징을 만들 수밖에 없다고 이야기했고 그나마 이 의견은 더 이상의 반대 의견 없이 받아들여집니다. 실은 누군가 비용을 덜 쓰면서도 잘 만들 방법이 있지 않겠느냐고 말한다면 그 사람이 상사이든 누구이든 그 자리에서 철저하게 짓밟을 계획이었지만 이미 누군가의 사념이 느껴질 정도로 훌륭하게 만들어진 커스터마이징과 그렇지 않은 다른 게임들을 비교해 보고 그에 필요한 비용을 제시 받은 상황에서 그렇게까지 멍청한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 나타나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 결정에 따라 제가 제안한 커스터마이징 기능은 비용이 낮은 편이기는 했지만 정말로 동작하는 수준이었고 사실 우리들은 그 간신히 기능이 동작하기만 하는 수준에 도달하는데도 여러 가지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당연히 기능이 동작하는데 집중해 준비한 요구사항은 에셋을 제작해야 하는 아트 부서에 아무런 아이디어도 떠올리지 못하는 수준에 불과했고 그나마 미래에 다양한 클래스와 다양한 커스터마이징 요소의 추가를 염두해 둔 이 기능을 사용해 긴 시간을 보낼 고객들을 위한 언두, 리두 기능이나 중간 저장 같은 기능들 역시 굳이 이렇게 까지 해야 할까?라는 의문 앞에 힘없이 무너지고 게임의 커스터마이징 기능은 그야말로 동작은 할 뿐 새로 제작한 클래스의 예쁜 캐릭터를 전혀 돋보이게 만들어 주지도 못했고 캐릭터의 성격을 전달하지도 못했으며 당연히 고객이 커스터마이징 과정을 통해 캐릭터와 교감할 수 있는 여지 역시 전혀 없었습니다. 이 꼴을 본 아트 부서에서는 우진님이 생각하는 뭐든 다 해줄 테니 말해보라고 했지만 이미 기술적인 비용을 더 이상 투입할 수 없는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없었습니다. 이 기능은 완성되었지만 개발팀 내부에서조차 결코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고 이 때 함께 일했던 제 보스를 나중에 만나 오픈월드를 만들려면 무엇을 해야 할까 하는 고민을 나눌 때 ‘그 때 우진님이 한 일들 다 마음에 들었어요. 커마만 빼고’라는 평가를 받습니다.
한번은 게임을 출시하기 전에 홍보 영상을 제작해야 했는데 게임에는 로우폴 모델만 있을 뿐이어서 제대로 된 영상을 제작하기 위해서는 하이폴 모델을 별도로 제작해야 했습니다. 당시 우리들은 하이폴 모델을 별도로 제작할 만한 여건이 되지도 않았고 영상 제작 역량을 갖추고 있지도 않았기에 외부 업체에 제작 요청을 했는데 영상 콘티는 그리 늦지 않은 시점에 서로 합의에 이를 수 있었지만 그들이 제작한 하이폴 모델은 번번이 개발팀 모두를 당혹스럽게 만들었습니다. 그들은 분명 게임을 직접 살펴보고 로우폴 모델을 바탕으로 모델을 제작했음에도 그들이 제작한 영상을 보고 1초만에 모두들 ‘아니 쟤 너무 이상한데?’ 라고 말할 만한 수준이었습니다. 일단 우리들은 하이폴로 제작된 캐릭터가 뭔가 이상하다는 사실을 순식간에 눈치챘지만 정확히 뭐가 이상한지 말하기는 어려워 했는데 팀의 모델러님은 한숨을 푹 쉬시더니 영상 제작사로부터 모델 제작을 담당한 분들을 회사로 모셔와 회의실에서 긴 이야기를 나누기를 여러 차례 반복합니다. 우리 모델러님이 가장 힘들어 했던 점은 그들은 이미 자신들이 제작한 하이폴 모델이 로우폴 모델과 완전히 일치할 뿐 아니라 이를 바탕으로 제작한 애니메이션이 전혀 이상하지 않다고 여기고 있었다는 점입니다. 그들의 시각으로 볼 때 완전히 동일한데도 컨펌이 나지 않고 계속해서 수정 요청을 받아들이기를 반복하고 있어 많이 지쳐 있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만든 모델과 이를 바탕으로 제작된 영상은 분명 이상했고 어떤 캐릭터는 저 상황에서 저런 표정을 지을 성격이 아니며 저 상황에서 벽 뒤로 몸을 숨길 때 저런 몸짓을 하지 않으리라는 점을 우리들은 너무 쉽게 감지할 수 있었습니다. 결국 모델러님은 한동안 영상 이야기만 나오면 자동으로 욕설이 튀어나왔고 다시는 이 짓 안 할 거라고 말씀하시곤 했지만 결국 영상은 적어도 우리들이 보기에도 특별히 이상한 점을 발견하지 못할 정도로 수정되어 공개되었습니다. 물론 모델러님은 끝까지 마음에 들어 하지 않으셨지만요.
이 때 런칭한 게임은 놀랍게도 이 글을 타이핑하고 있는 지금도 서비스 중이고 어릴 때 이 게임을 플레이 했던 분들이 아직 게임을 기억하며 그런 분들은 지금 저와 함께 일하는 사무실에도 계십니다.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면 우리들은 게임이 일단 플레이 가능한 상태가 된 시점부터 매일 점심마다 게임을 플레이 했고 온갖 상황에서 캐릭터들의 성격과 이들의 몸짓, 표정에 완전히 익숙해져 있었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영상 제작사에서 가져온 샘플 영상이 시작되고 채 1초도 지나지 않아 모두들 고개를 갸웃거릴 수 있었을 겁니다. 또 영상의 여러 상황마다 캐릭터의 행동과 표정이 우리가 알고 있는 캐릭터들이 할만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 역시 바로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과연 우리들이 단지 게임을 오래 플레이하고 캐릭터들을 훨씬 더 자주 보고 이들의 성격을 더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런 이상한 점을 순식간에 찾아낼 수 있었던 것일까요? 한동안은 그렇다고 생각했지만 이제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 때 우리들은 우리들의 게임에 등장하는 그 캐릭터들을 진심으로 좋아하고 또 사랑하고 있었고 이런 자세에서 우리는 그 캐릭터들의 일거수 일투족에 관심을 가지고 항상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며 이들이 할 때 어울리는 행동과 그렇지 않은 행동에 대한 각자 나름대로의 모델을 마음속에 가지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우리들은 캐릭터에 익숙했지만 그 이전에 우리들의 캐릭터를 진심으로 사랑했고 이에 기반한 관심으로부터 나온 익숙함은 분명히 완전히 똑같이 만들었다고 생각한 하이폴 모델을 모자마자 완전히 다르다는 사실을 눈치 채게 만들었습니다.
우리들의 사랑을 받은 캐릭터들은 게임 기능에도 영향을 끼쳤는데 팀에서 상대를 처치한 다음 그 시체 위에서 점프하며 티배깅 하던 플레이는 이내 실제 기능으로 개발되어 시체를 향해 특정 키를 누르면 각 캐릭터마다 그 성격에 맞는 티배깅 애니메이션을 플레이 했는데 이 때 각 캐릭터가 짓는 표정이 너무나 이들이 할 것 같은 표정이어서 이를 담당한 분께 큰 소리로 ‘아니 진짜 이거 어떻게해요 ㅋㅋㅋㅋㅋㅋㅋ’라고 외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렇게 우리들의 사랑을 받은 캐릭터들은 게임 안팎으로 그들이 받은 사랑을 표현해 게임 기능을 더 그럴듯하게 만들고 그저 게임에서 흔히 일어날 수 있는 상황에 이야기를 부여합니다. 그리고 고객들은 우리들이 개발하며 이 캐릭터들을 진심으로 사랑했다는 사실을 눈치 채고 고객들 역시 이 캐릭터들을 오랜 세월에 걸쳐 사랑해 주고 계시다고 생각합니다.
한편 우연히 다른 회사에서 개발 중인 캐릭터의 매력이 중요한 다른 게임에 대한 이야기를 듣다가 사내에서 게임에 대한 평가 중 캐릭터가 충분히 매력적이지 않다는 소문을 듣게 되었는데 실제로 그 게임을 직접 본 적은 없지만 들려오는 여러 소문들, 그리고 몇몇 에셋들을 통해 캐릭터의 모습과 게임의 형태를 유추해볼 수는 있었습니다. 분명 그 캐릭터들은 예쁘게 만들어졌습니다. 그런데 캐릭터의 매력은 또 다른 이야기라고 생각합니다. 마치 몇 년 전 캐릭터 커스터마이징 기능을 만들기 위해 검은사막을 또 설치하고 실행했을 때 그 즈음 공개된 새 캐릭터가 카메라를 보고 그 캐릭터의 성격에 어울리는 표정을 지었을 때 우리는 결코 이들을 따라갈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들은 커스터마이징 기능으로부터 누군가의 사념을 보이고 있었을 뿐 아니라 이들은 카메라 앞에서 저렇게 자신의 성격에 잘 어울리는 모습으로 행동하는 저 캐릭터를 분명 진심으로 좋아하고 또 진심으로 사랑하고 있었음이 분명합니다. 그런 자세가 게임의 여러 기능과 에셋을 통해 드러나지만 이들은 단지 기능의 명세나 에셋 발주서 모양으로는 결코 나타나지 않습니다. 이런 경험은 근본적으로 개발자들이 이 게임, 이 게임에 등장하는 자신들의 캐릭터를 얼만큼 좋아하고 사랑하며 이에 따라 얼마나 더 고민하고 관심을 가지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고객들, 그리고 외부인들은 그런 사실을 정말 귀신 같이 눈치 챕니다.
충분히 매력적이지 않다고 평가 받는 어느 게임의 캐릭터들을 생각해보며 그 캐릭터들은 충분히 예쁘지만 어쩌면 개발팀으로부터 그들이 살아 숨쉬고 고객들이 이를 눈치 챌 만큼 사랑받지 못한 채 만들어지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이런 생각이나 가정이 어처구니 없으리라는 사실을 이미 잘 이해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다른 사람도 아니고 게임디자인 부서에서 캐릭터를 사랑하는 역할과는 가장 거리가 먼 사람 중 하나일 시스템디자인을 주로 하는 사람이 갑자기 캐릭터에 대한 진심어린 사랑 이야기를 하고 있으니 이 말이 잘 와 닿지 않으이라는 사실 역시 깊이 이해합니다. 하지만 고객으로부터 사랑 받는 무언가를 만들기 위해서는 이를 만드는 우리들 스스로가 그 무언가를 진심으로 깊이 사랑해야만 한다고 생각하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고객들은 우리들의 사랑을 받은 무언가와 그렇지 않은 무언가를 마치 하이폴 모델의 조형이 이상함을 1초도 지나지 않아 눈치 채던 우리들처럼 그 사랑을 순식간에 눈치 채고 그에 따라 행동할 겁니다.
이번 67호에도 지난 2주간 공유한 이야기를 함께 보내 드립니다.




딱 1년 전 11월 10년의 밤 끄트머리에서 원주 반계리 은행나무를 보러 새벽에 다녀온 이야기를 했습니다. 올해는 여러 가지 일로 좀 지쳐 있어 그냥 지나갈 생각이었지만 가족이 새벽에 당장 가자고 에너지를 줘 출근 시간에 영향을 안 미칠 새벽에 번쩍 일어나 원주까지 내달렸습니다. 그리고 사람이 거의 없는 - 그 새벽에도 다른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 은행나무 주변을 느긋하게 산책한 다음 다시 번개같이 서울로 돌아와 멀쩡한 시간에 출근했습니다.

정신적으로 조금 지쳐 있다는 건 어쩌면 핑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회사 생활을 하며 이렇게 까지 희미한 비전을 마주하고 또 이렇게 까지 아무 개발도 할 수 없으며 이렇게 까지 적대적일 일인가 싶은 상황이 계속되고 있어 그냥 아무것도 안 하고 새벽에 잠이나 좀 더 자고 싶은 생각이 간절했습니다만, 또 힘 내서 일어나 새벽부터 강원도 내달려 수백년 동안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나무를 바라보고 이미 일어나 출발하는 순간에 힘을 얻었지만 또 한번 힘을 얻은 것 같습니다.
이런 사진을 올렸지만 창밖은 눈으로 가득합니다. 다치지 않도록 조심하시고 또 저는 2주 뒤에 뵙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