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픈월드를 만들려면 무엇을 해야 할까

오픈월드 게임을 바닥부터 개발하려면 기획적으로 어떤 준비를 해야 할까요?

오픈월드를 만들려면 무엇을 해야 할까

이전 오랫동안 복제에 집중하면 이유를 설명하지 못하게 된다는 이야기를 나누던 자리에서 나온 다른 주제는 우리가 과연 오픈월드 게임을 만들 수 있을지, 또 만약 오픈월드 게임을 만든다면 무엇을 준비해야 할 지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직전에 망한 프로젝트 역시 궁극적으로 오픈월드 게임을 지향하고 있었기에 저 역시 우리들이 과연 오픈월드 게임을 만들 수 있을지 확신이 전혀 없어 프로젝트 초반에 오픈월드 게임 개발에 지레 겁먹기도 했습니다. 그 당시 플레이 하던 파크라이 시리즈는 유비소프트의 다른 게임 프랜차이즈인 고스트 리컨 시리즈와 같이 유비소프트의 공장식 오픈월드 게임이라고 비난 받곤 했지만 막상 게임 속 가상 세계에 몰입하기 위해 세계를 잠시 떠나는 의식 같은 방법으로 좀 엉성한 이 세계의 규칙을 인정하면 제가 스팀을 통해 지불한 금액에 비해 훨씬 오랜 시간을 신나고 즐겁게 보낼 수 있습니다.

유비소프트의 소위 공장식 오픈월드 게임이 비난을 받는 이유는 아마도 여러 게임이 오픈월드 형식을 취하면서도 플레이 해 보면 게임 마다 서로 거의 비슷한 시스템에 기반하고 있기 때문일 거라고 예상합니다. 파크라이로부터 미국 중부에 있는 가상의 시골 지역을 배경으로 하거나 쿠바와 비슷한 가상의 섬 야라를 배경으로 하고 또 완전히 시대가 다른 이집트 말기 시대를 배경으로 하더라도 게임은 아주 넓은 지역에 순차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 컨텐츠와 비순차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 컨텐츠를 넓게 흩뿌려 놓고 이들 사이를 퀘스트 시스템을 통해 가이드 하는 거의 똑같은 방식을 취함합니다. 게임 속 가상 세계는 아주 넓어 여러 가지 이동 방식을 제공하고 또 어쎄신 크리드 프랜차이즈의 경우 그 세계가 시뮬레이션에 기반한 명시적인 가상 세계라는 사실에 기반해 게임 내 탈것을 사용하지 않는 순간 이동에도 아주 그럴듯한 설정을 제공하기도 합니다. 서로 다른 세계에 따라 배경을 구성하는 식생, 자연물과 인공물, 이들 사이에 섞여 있는 가상의 사람들이 세계의 특성에 따라 서로 조금씩 달리 행동하기는 하지만 근본적으로 이들의 행동이 크게 다르지는 않습니다. 또 서로 다른 시대와 지역이라 하더라도 거점을 지키는 사람들을 모두 제거하고 이를 탈환하기를 반복하는 행동 자체가 달라지지는 않아 배경이 아무리 달라져도 고객들은 이들이 서로 꽤 다른 게임이라는 사실을 잘 인식하지 않는 것 같기도 합니다.

개인적으로 유비소프트가 이렇게 서로 다른 여러 스튜디오에서 적어도 고객 관점에서 볼 때 꽤 짧은 기간마다 평작 이상의 오픈월드 게임을 오랜 세월에 걸쳐 지속적으로 출시해 내는 모습을 마치 공장과 같다고 말할 수 있기는 하지만 여느 고객들처럼 부정적인 의미 보다는 찬사의 의미를 담아 공장식 오픈월드 게임이라고 평가합니다. 국내에 여느 여러 게임을 개발하는 회사를 생각해 보면 회사 안 여러 프로젝트들은 각자 개발에 치여 서로 정보를 거의 공유하지 않아 서로 다른 여러 프로젝트가 같은 문제를 서로 다른 여러 가지 방법을 사용해 여러 번에 걸쳐 해결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더 안타까운 점은 서로 같은 문제를 각자 반복해서 풀고 있음이 거의 확실하지만 서로 정보를 거의 공유하지 않기에 서로 그러고 있다는 사실 자체를 확인할 수도 없다는 점입니다. 유비소프트는 실제로 그 안에서 일해본 적은 없기에 단언할 수 없지만 오픈월드 게임을 개발하는 여러 스튜디오에 걸쳐 개발 과정을 서로 꽤 많이 공유하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렇지 않고서는 단기간 내에 많은 개발 비용을 요구하는 오픈월드 게임을 그렇게 균일한 기간 만에, 그렇게 균일한 수준으로, 그렇게 지속적으로 만들어내기는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만약 제가 오픈월드 게임을 개발해야 하는 프로젝트에 속한다면 상당히 스트레스 받을 것 같습니다. 애초에 제 역할이 처음 개발해 보는 결과물의 구조를 파악한 다음 이를 설계해 실행 가능한 계획으로 바꾸는 역할이기는 하지만 오픈월드 게임은 그 비슷한 것도 이전에 만들어본 적이 없어 도대체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알기 어렵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가령 GTA와 같은 게임을 개발하려 한다면 도무지 어디부터 시작해야 할 지 감을 잡기도 어려울 겁니다. 이전에 설명한 적이 있는데 만약 MMO 게임을 만든다면 익숙하게 플레이어, NPC와 몬스터, 레벨, 아이템 따위를 분리해 기본적인 요구사항을 충족하는 설계를 빠른 시간 안에 만들어내고 게임의 특징을 포함한 부분에 좀 더 신경 쓸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GTA는 이런 여러 시스템들이 서로 놀랄 정도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어 어느 부분을 독립된 시스템으로 분리해 개발을 진행해야 할 지 판단하기 쉽지 않습니다. GTA의 핵심은 자동차 운전과 무기 사용이기는 하지만 단순히 이렇게 분리하려고 보면 도로 위를 달리는 내 자동차와 다른 자동차 사이의 상호작용, 플레이어가 무기를 사용하거나 사용하려고 할 때 주변 NPC들의 반응 등을 함께 생각해 보면 이들을 함부로 단일 기능으로 분리하기 쉽지 않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오픈월드 게임을 접하면 그 가상 세계가 조금 멍청하게 동작하더라도 이입해서 즐겁게 플레이 할 수 있지만 막상 그걸 만들라고 하면 정말 해낼 수 있을지 심각하게 고민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 날 이야기를 나누다가 이 주제가 나오게 된 이유는 조만간 신작을 시작할 예정인데 이 신작의 특징 중 하나가 오픈월드이기 때문입니다. 오픈월드 게임을 바닥부터 개발하려고 할 때 국내에 어지간한 조직은 오픈월드 게임을 개발해 본 경험이 거의 없기 때문에 도대체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 지 전혀 알 수 없기 때문에 정식으로 개발을 시작하기 전에 미리 기반 지식을 수집해 없앨 수는 없겠지만 시행 착오를 조금이라도 줄여야 하는 상황이라고 합니다. 또한 오픈월드 게임을 개발한다면 크게 기술적인 접근과 기획적인 접근으로 구분할 수 있는데 이들 중 당장 통제할 수 있는 기획 자원을 활용해 미리 준비할 방법을 찾도록 할 수 있을 것 같지만 이런 요청에 의미가 있을지조차 불확실한 상황이기도 합니다. 일단 기술적으로 어떤 도전이 있을지 알기 어렵기는 하지만 현대의 대규모 게임 개발에 거의 표준으로 통용되는 엔리얼 엔진이 여러 모로 오픈월드 개발을 기술적으로 지원하고 있기는 합니다. 특히 이전에는 지역을 레벨과 서브레벨로 격리한 구조 때문에 이에 기반해 오픈월드를 만들려면 어느 MMO 게임처럼 엔진을 마개조해 오픈월드를 지원하게 만들거나 하드웨어의 한계에 도전해 아주 큰 레벨을 만들어 오직 이 레벨 하나만 로딩해서 게임 전체가 동작하도록 만들어야 했습니다. 반면 최근에는 엔진이 직접 여러 직군에 걸친 동시 작업이 가능한 파일시스템에 기반한 새로운 레벨 시스템을 제공하고 있고 이를 인게임 상에서 동적으로 불러올 수 있게 되었습니다. 때문에 모르긴 몰라도 이런 환경에 기반한다면 기술적으로 오픈월드 그 자체는 아주 큰 기술적 도전은 아닐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반면 기획적으로는 이전에 오픈월드 게임을 개발해 본 사람이 극히 드물어 오픈월드 환경에서 의미 있는 게임 플레이를 만들어낼 수 있을지는 상당히 의심스럽습니다. 특히 고객들의 눈높이는 이미 긴 세월에 걸친 시행착오를 통한 교훈을 갖춘 이미 오픈월드 게임을 잘 만들고 있는 사례를 최소한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회사 입장에서 아무리 오픈월드 게임을 처음 만들더라도 어설픈 수준으로는 시장에서 결코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없을 겁니다. 이전에 주로 만들던 MMO 게임에서는 게임 상에서 서로 상호작용 가능한 요소가 전혀 다양하지 않았습니다. 가령 플레이어와 몬스터는 서로 스킬을 주고 받을 수 있었고 또 플레이어와 상호작용 가능한 물체는 제한된 방법으로 조작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여느 오픈월드 게임을 생각해보면 이들은 좀 더 본격적으로 지형이 레벨디자인에 영향을 끼치고 건물과 NPC들의 배치에 따라 플레이 스타일이 완전히 달라지며 예상하지 못한 상호작용을 통한 일종의 창발적인 플레이를 지향하기도 합니다. 기존 MMO를 개발하던 인력들이 이런 새로운 요구사항에 잘 적응해 평균 이상의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을지는 기술적 도전과는 또 완전히 다른 차원의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GTA를 보며 느꼈던 무력감은 사이버펑크를 보며 꽤 낮은 수준이기는 하지만 꽤 현실적인 가능성을 보여주기는 했습니다.

그렇다면 오픈월드 게임을 만들어 본 적 없는 기획자들과 평균 이상의 오픈월드 게임을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당장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까요. 개인적으로 좋은 출발점이라고 생각하는 게임은 메탈기어솔리드 5 팬텀페인입니다. 오픈월드 게임으로 아주 널리 플레이 되지는 않은 것 같지만 일단 아주 잘 만들어진 오픈월드 게임일 뿐 아니라 앞에서 잠깐 설명한 여러 이동 방식, 미션 시작 및 종료 방식 등을 어쎄신 크리드 시리즈와 비슷한 수준으로 훌륭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또한 그저 레벨이 넓을 뿐인 수준에서 벗어나 레벨의 각 구성요소가 시뮬레이션 되며 시간대나 상황에 따라 서로 달리 행동하고 이를 예측할 수 있어 시뮬레이션에 따라 플레이어가 달리 행동하고 또 이를 예측할 수 있는 재미가 아주 뛰어납니다. 이 게임을 오픈월드 게임 개발을 준비하기 위한 출발점으로 추천하는 이유는 이 게임 역시 기존에는 오픈월드 게임을 개발하지 않던 조직에서 처음으로 개발한 오픈월드 게임이기 때문입니다. 이들이 기존 개발 경험 없이 이 정도 오픈월드를 개발할 수 있다면 우리들도 딱히 못 할 이유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디렉터의 인터뷰를 살펴보면 처음부터 GTA처럼 도시의 모든 공간을 컨텐츠로 가득 채우는 형태로는 개발할 수 없으리라 생각했다고 합니다. GTA는 기본적으로 어디를 가든 주변 공간을 채운 여러 가지 구성요소의 밀도가 높으며 이들 각각과 높은 수준으로 상호작용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수준 높은 상호작용 가능성은 이 게임이 기본적으로 모든 장소가 여러 가지 구성 요소로 가득 차 있을 수밖에 없는 도시를 배경으로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만약 GTA 수준으로 주변을 가득 채우려면 GTA와 같이 복잡한 도시를 배경으로 한 게임을 기획하거나 여러 식생으로 가득한 배경에 기반해 이들 모두와 상호작용 할 수 있는 일종의 동식물 채집 게임 같은 것을 만들어야 할 겁니다. 하지만 메탈기어솔리드는 이전부터 전략 잠입 액션이라는 장르를 걸고 있었을 뿐 아니라 팬텀페인의 시나리오는 1960년대의 아프가니스탄을 배경으로 하기 때문에 GTA와 같은 높은 밀도를 만들어낼 수는 없었고 디렉터는 이 사실과 한계를 처음부터 인정하고 시작합니다. 유비소프트에서 개발한 여러 오픈월드 게임이 그렇게 하듯 일단 아주 넓은 공간을 그럴듯한 배경으로 채우되 주요 거점에는 정성 들인 레벨디자인을 포함한 핵심 놀이터들을 배치할 수 있도록 이들이 가상 세계의 나머지 구성 요소와 독립적으로 동작하게 만들면 일단 오픈월드 비슷한 뭔가를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메탈기어솔리드 팬텀페인을 플레이 하며 미션에 의해 플레이를 시작하면 흥미로운 점이 하나 있는데 미션을 시작할 때 그 미션에 등장하는 레벨디자인을 제작한 사람 이름이 스탭롤처럼 등장합니다. 애초에 디렉터는 영화를 만들고 싶었지만 영화적 센스는 B급 영화를 벗어나지 못하지만 게임은 잘 만드는 저주에 걸린 사람이어서 게임 곳곳에 어떻게든 영화 같은 느낌을 내기 위해 노력하곤 합니다. 그래서 게임을 처음 시작할 때 나오는 기나긴 컷씬 곳곳에 주요 스탭들 이름이 나타나고 컷씬의 일부를 플레이 하는 동안에도 이름이 나타나 독특한 경험을 주기도 했습니다. 여기에 미션을 시작할 때 그 미션을 수행할 레벨에 진입하면 레벨디자인을 제작한 사람 이름이 별도로 나타나는 것은 굉장히 독특합니다. 실제로 이를 플레이 해 보면 과연 레벨디자인 담당자 이름을 별도로 표시해야 마땅하다는 느낌을 받을 정도로 각 거점에 위치한 레벨은 심혈을 기울여 만들어져 있습니다. 쉬운 돌파 방법부터 아주 어려운 돌파 방법, 의도적으로 만든 예상 밖의 빈 틈, 시뮬레이션 진행에 따라 특정 조건일 때만 도전할 수 있는 방법 등 아주 다양한 돌파 방법을 제공하며 까다롭게 정해진 과정을 거쳐야 할 것처럼 보이지만 완전히 창발적인 방법으로 클리어 할 수 있게 만들어져 있기도 합니다. 분명 이 거점 하나하나는 전담 인력이 오랜 기간에 걸쳐 정성 들여 만들었을 것이 분명합니다. 이와 유사한 개발 방식은 이전에 플레이 했던 언처티드 시리즈에서도 사용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오픈월드 상의 거점 하나하나를 아주 정성들여 만들 수 있는 적절한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사례와 어쎄신크리드 시리즈나 파크라이 시리즈, 그리고 고스트리컨 시리즈의 거점 레벨디자인을 비교해 보면 이들은 분명 다른 장소에 비해 주요 거점의 레벨디자인을 조금 더 신경 쓴 것 같기는 하지만 메탈기어솔리드 팬텀페인에 비교할 만큼 훌륭하지 않습니다. 물론 유튜브에서 플레이 영상을 찾아 보면 레벨의 구성 요소와 이들의 이동 규칙 및 순서를 완전히 파악한 다음 가장 빠른 시간 안에 모든 사람을 죽이거나 가장 빠른 시간에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고 미션을 완료하거나 모든 사람을 사고를 통해 죽이는 등 다양한 플레이를 할 수 있기는 하지만 이들은 레벨 제작자들이 의도한 플레이는 아닐 가능성이 높아 보입니다. 또한 상호작용 가능한 요소, 가령 자동차, 거치 된 무기, 사람들이 세계 전체에 걸친 시뮬레이션에 의해 동작한다기 보다는 훨씬 단순한 요소 각각의 규칙에 따라 이동하고 요소들 사이에 상호작용 역시 거의 없어 이들의 행동을 예측하기는 훨씬 쉽지만 이를 예측한다고 해서 이로부터 느낄 수 있는 재미는 거의 없습니다. 하지만 의외의 창발적인 플레이를 허용하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가령 고스트 리컨 시리즈의 몇몇 후반 미션은 자동차를 타고 추격을 피해 도망치거나 아주 까다로운 상황 속에서 탈출하는 상황이 등장하는데 본격적으로 미션을 시작하기 전에 원래 그 장소에 없는 헬리콥터 같은 장비를 미리 갖다 놓으면 자동차 대신 헬리콥터를 타고 아주 편하게 도망칠 수 있고 게임도 이런 플레이를 허용합니다. 하지만 여전히 거점 각각의 완성도를 비교하면 이 게임들은 팬텀페인과 비교할 때 아주 처참한 수준입니다.

어떤 방법으로든 오픈월드와 그 위에 배치할 주요 거점을 만들 계획을 세웠다면 이제 나머지 영역을 채울 차례입니다. 도시처럼 자연스럽게 상호작용 가능한 여러 요소를 배치할 수 없는 자연이 주가 되는 배경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면 그 안에서 적당한 수준으로 거점 사이의 빈 공간을 채울 수 있는 메커닉을 고안해야 합니다. 이동하는 도중 볼 수 있는 배경 자체를 아름답게 만드는 것 역시 직접적인 상호작용이 아니더라도 가능하고 또 의미 있는 한 가지 접근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개인적으로 어쎄신크리드 시리즈 중 신화 3부작인 오리진, 오딧세이, 발할라 중 첫 두 게임을 플레이 할 때 특히 배경의 아름다움과 배경이 빚어내는 그 시대와 그 장소의 느낌이 정말 훌륭합니다. 서기 0년에 가까워 오는 이집트는 이미 알고 있는 커다란 주요 유적들을 알고 있는 상태에서 이들을 게임 속 가상 세계에서 직접 보고 직접 올라가 볼 수 있고 그 주변을 돌아다니는 사람들은 꽤 그럴싸하게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간단한 퍼즐로 만들어진 피라미드는 이를 올라가는 과정을 흥미롭게 만들었고 그 꼭대기에서 내려다 보는 고대 이집트는 그 광경과 아무런 상호작용을 할 수 없음에도 충만한 만족감을 줍니다. 오딧세이에서도 마찬가지인데 그리스 시대의 널리 알려진 건축물 주변을 직접 거닐고 올라가고 그 위에서 싸우는 경험 각각은 배경 그 스스로가 오픈월드 게임에서 얼마나 큰 역할을 할 수 있는지를 깨닫헤 해 주었습니다.

한편 핵심 거점은 상대적으로 높은 비용을 들여 개발하지만 게임 전체에 그 정도 비용을 들인 레벨디자인 요소를 가득 채우기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합니다. 사실 사이버펑크 2077이 레벨디자인을 수직으로 쌓아 올리는 시도를 한 바 있지만 이는 레벨 구성을 수직으로 쌓아 올렸을 뿐 그 레벨을 플레이 하는 경험을 달리 만들어 주지는 못했습니다. 핵심 거점보다 낮은 비용으로 개발해 게임의 주요 이동 경로에 배치해 이동 과정을 심심하지 않게 만들어주는 보조 거점이 필요합니다. 가령 파크라이 시리즈나 메탈기어솔리드 팬텀페인은 주요 이동로에 검문소가 있어 마냥 편안하게 이동할 수 있도록 하지 않습니다. 검문소는 여러 가지 방법으로 돌파할 수 있고 때에 따라서는 그냥 무시하고 진행할 수도 있어 단순하지만 여러 가지 선택지를 제공합니다. 팬텀페인의 검문소는 난이도에 따라 여러 배리에이션이 있는데 상황에 따라 그냥 말을 타고 지나가며 한 쪽으로 몸을 기울이기만 하면 통과할 수 있기도 하고 또 어떤 검문소는 그 주변의 레벨을 활용해 검문소와 마주치지 않고 조용히 지나갈 수도 있습니다. 레벨디자인을 통한 검문소 돌파는 파크라이 6에서 눈에 보이는 통로와 이들 사이사이를 연결한 비밀 통로를 겹쳐 만든 입체적인 레벨디자인 덕분에 훨씬 흥미로운데 표면적으로 보이는 도로 아래를 지나는 작은 물길이나 하수도는 게임의 테마인 게릴라들이 활동하는 것처럼 갑자기 나타나 검문소를 급습한 다음 본격적인 적 병력이 몰려오기 전에 순식간에 사라지는 플레이를 할 수도 있습니다.

오픈월드 게임을 완전히 바닥부터 만들기 위해 기획 측면에서 준비해야 할 점은 무엇일까요. 이 자리에서는 먼저 기술적인 측면과 기획적인 측면을 구분한 다음 기술적인 측면은 현대적인 미들웨어를 통해 어느 정도 극복할 수 있으리라 가정한 다음 기획적인 측면에 집중합니다. 메탈기어솔리드 팬텀페인과 마찬가지로 우리가 도시를 배경으로 하지 않는 이상은 플레이어 주변을 채운 모든 공간을 상호작용 가능한 요소로 가득 채울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는데서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를 어설프게 접근하면 사이버펑크 2077처럼 상호작용 가능한 요소가 많기는 하지만 그 상호작용 각각의 수준이 낮아 이를 개발하기 위한 기술적 난이도는 높지만 만족도는 그리 높지 않은 결과를 만들 수 있습니다. 다음으로 게임의 설정에 따른 레벨의 시각적 만족도를 고려해야 하는데 배경과 직접 상호작용 하지는 않지만 오픈월드 게임 플레이의 꽤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이동 과정에서 사려 깊게 만들어진 배경은 큰 만족감을 줄 여지가 있습니다. 게임 장르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핵심 거점의 레벨디자인에 높은 비용이 필요함을 인지하고 이를 개발할 수 있는 파이프라인을 구축해야 하며 나머지 거점은 적당한 수준에서 다양한 돌파 방법을 제공하되 핵심 거점 레벨디자인에 비해 비용이 낮은 방식으로 만들어 핵심 거점 사이의 공백을 줄이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만약 이 단계까지 도달하는데 성공했다면 이제 움직이는 가상 세계를 직접 활용한 어쩌면 뻔하지만 빠뜨리자니 아쉬운 요소들을 고려할 수 있습니다. 가령 식생을 이용한 사냥, 수집, 낚시 같은 요소를 게임의 핵심 요소와는 아무 관계 없이 고려할 수 있고 또 탈것이 여럿 등장하는 세계라면 경주를 만들 수도 있습니다. 팬텀페인에서는 메탈기어솔리드 대대로 사용해 온 상자를 이용해 가장 먼 거리를 미끄러지는 기록을 낼 수도 있고 GTA 시리즈에서는 자동차로 점프해 가장 먼 거리를 날아가는 기록을 낼 수도 있는데 이런 요소들은 메인 퀘스트로부터 플레이하기를 요구 받지는 않지만 가상 세계를 가득 채우고 있는 여러 놀 거리 중 하나로 동작하며 고객에게 만족감을 줄 겁니다. 하지만 이런 요소는 게임의 핵심 플레이가 구축된 다음 남는 자원을 사용해 구축해야 합니다. 처음부터 이들을 함께 구축하려고 하면 핵심이 분산 되어 제한 시간 안에 의미 있는 플레이를 만들어내지 못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입니다.

이 날 몇 시간 동안 이야기하며 주고 받은 오픈월드 게임을 개발하기 위해 기획에서 준비해야 할 것들을 지금까지 제가 주로 플레이 해 온 오픈월드 게임 경험에 기반해 생각해 보았습니다. 가끔 면접 자리에서 만들고 싶은 게임이 뭐냐는 질문을 받을 때 그 팀에서 만들고 있는 게임과 같거나 비슷한 장르가 아닌 뜬금없는 GTA를 답하곤 했는데 여전히 기회가 있으면 오픈월드 게임을 만드는데 참여해 보고 싶습니다. 열린 세계에서 온갖 요소들이 서로 상호작용 하며 일어나는 온갖 사건을 적당한 선에서 통제할 수 있으면 고객들의 기억에 오래 남을 흥미로운 가상 세계를 만들 수 있을 테고 이걸 만드는 일은 생각하기만 해도 너무 신나는 일일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