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발적 노동
지난 세월에 걸쳐 여러 사람의 희생과 노력으로 현대의 더 나은 노동 환경이 만들어졌습니다. 하지만 이상한 주인의식으로 이를 우리 스스로 회피하려는 시도를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상한 사람들입니다.

점심을 먹으러 회사 밖에 나갔다 돌아오는 어느 날, 바깥 날씨가 너무나 좋아 세계적으로 노동시간이 긴 한국에서 일하는 여느 회사원 답게 늘 피곤하고 졸린 상태로 회사에 돌아가기보다 당장 퇴근하고 싶은 충동을 느낍니다. 가끔 휴가를 내고 이렇게 날씨 좋은 어느 평일에 모두가 일하고 있으니 한적할 거라고 생각했던 교외의 예쁜 카페에 맛있는 케이크를 먹으러 갔다가 그 시간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노동의 굴레를 벗어나 자유로이 생활하고 있음을 깨닫고 그 분들과 제 사이에 있는 자본주의가 만들어낸 거대한 신분의 차이를 깨닫습니다. 아무리 항상 피곤하고 회사로 돌아가고 싶지 않은 오후라도 기운을 내 회사로 돌아가야 하는 이유는 점심을 먹었으니 돌아가 이를 닦아야 하기 때문이고 또 회사 안에 있는 커피 머신으로부터 커피를 받아 마셔야 하기 때문이며 그렇게 일한 댓가를 월말에 지불 받아 생계를 이어 가야 하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그렇게 짧지는 않은 기간에 걸쳐 일해 오면서 처음에는 일을 오래 하면 일하는데 점점 더 익숙해져 회사 밖에 있다가 다시 돌아가는데 큰 불만을 가지지 않으리라 생각했고 또 이 생활에 완전히 익숙해져 우는 소리 하지 않고 열심히, 또 어른스럽게 일하는 모습을 보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도 맑은 하늘을 바라보며 회사로 돌아가고 싶지 않은 기분은 똑같고 아침에 눈을 떠 회사에 도착할 때까지 겪는 온갖 마음의 변화 역시 똑같이 일어나며 지하철이 회사에 가까워짐에 따라 오늘 해야 할 일들을 떠올리며 그 일들을 또 어떻게 해낼까 하는 걱정이 점점 커집니다. 일단 출근하면 어떻게든 그 일들을 다 해내고 또 어떤 일은 다른 분들의 도움을 받아 결국 해낼 거라는 사실을 알고 또 이 사실에 기반해 스스로를 신뢰하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회사에 가까워질수록 점점 더 커지는 걱정을 잠재울 수는 없습니다. 시간이 흘러 일을 처음 시작하시는 분들 앞에서도 가끔 징징거리며 일 하기 싫은 모습을 보여 부끄럽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그게 일 하는 사람의 솔직한 모습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보기도 합니다. 이제 시간이 아무리 흘러도 이런 감정을 벗어나 어른스럽게 행동하기는 어려울 거라고 인정합니다.
다만 이 일은 프로젝트 단위로 어떤 완결된 제품과 서비스를 개발하기 위해 팀을 세팅하고 함께 일할 분들을 구해 팀을 구축하며 때때로 회사가 구입해 준 미들웨어와 회사가 구축해 준 정보시스템, 그리고 형상관리도구 정도만 덜렁 가지고 아무 것도 없는 상태에서 개발을 시작해 지독하게 어두운 터널을 지나 런칭과 서비스에 이르는 과정에 따라 일하기 때문에 어떤 확실한 목적의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바로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수행해 게임 소프트웨어를 개발하고 이를 기반으로 서비스를 수행해 고객에게 게임만이 줄 수 있는 경험을 선사하고 또 적당한 경제적 성과를 달성해 회사에 돈을 벌어다 주는 것입니다. 이 과정을 통해 개인적으로는 개발하며 겪은 온갖 사건 사고에 대한 새로운 경험과 지식, 문제해결 능력을 획득할 수 있어 다음 프로젝트에 더 나은 의사결정을 할 가능성이 조금은 더 높아집니다. 다른 한편으로는 프로젝트에 바닥부터 관여해 개발 기간 내내 다양한 방법으로 기여한 다음 이 게임이 고객을 만날 수 있는 수준으로 개발되어 런칭을 겪고 또 라이브를 겪는 과정을 이력서에 적어 놓으면 굉장히 예쁜 모양의 이력서를 가질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점심 식사를 한 다음 아무리 회사로 돌아가기 싫어도 이렇게 시간을 보내는 동안 고객에게 게임을 공개할 시점은 계속해서 다가오고 기왕에 공개할 거라면 더 나은 모습으로 공개하고 싶고 그러려면 오늘 오후에 수행할 일들이 올바르게 진행되어야 하기에 마음을 추스리고 다시 컴퓨터 앞에 앉게 됩니다.
아무 것도 없는 순간부터 서비스에 도달하는 과정을 겪으면 소프트웨어는 무생물이며 단지 반도체의 상태에 기반해 기록된 전기 신호라는 사실을 이해하면서도 스스로 이 전기 신호의 집합에 인격을 부여한 나머지 소프트웨어 뿐 아니라 이를 개발하면서 생산한 온갖 문서들마저도 특별한 감정을 가지고 대하곤 합니다. 스스로가 고객 입장이 되어 눈에 띄는 어색한 점들을 찾아내 이를 딱히 신경 쓰지 않는 분들께 할당해 수정하도록 해서 깐깐한 사람으로 낙인 찍히기도 하고 또 런칭에 도달한다면 나름의 벅찬 감정을 느끼기도 하며 회사와 어른들의 사정으로 인해 프로젝트가 중단될 때는 그에 상응하는 아픈 감정을 겪기도 하는데 지금까지 경력에 이런 프로젝트 중단을 겪을 때 경험이 너무 고통스러워 웬만하면 이 경험을 피하고 싶은 마음도 있습니다. 또 프로젝트가 개발 도중 드랍 되거나 저 자신이 환경을 더 이상 견디지 못해 프로젝트를 떠나는 선택을 하는 바람에 프로젝트의 결말을 경험하지 못하게 되는 상황 역시 별로 겪고 싶지 않기 때문에 스스로 몸과 마음을 더 잘 추스리는 방법을 익히가 어려운 문제를 적절한 방법으로 더 잘 정리하고 더 잘 해결할 방법을 계속해서 배웠습니다. 회사는 프로젝트가 중단되든 계속해서 개발하든 저를 고용하고 있는 이상 어쨌든 급여를 지불하겠지만 이 상황에서 제가 겪을 수 있는 최선의 경험은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수행해 런칭과 라이브를 겪으며 고객을 직접 대변하고 이를 바탕으로 지금까지 해 온 의사결정의 결과를 고객들의 냉정한 시선으로 평가 받는 것입니다.
요식업계에서 유명한 요리사이자 사장님은 다른 작은 가게를 운영하시는 다른 사장님으로부터 받은 ‘직원들에게 주인의식을 부여할 방법은 없느냐’는 질문을 받자마자 단 1초의 망설임도 없이 ‘없어요’라고 답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주인의식은 분명 멋지고 이를 가지는 개개인을 긍정적인 의미의 프로페셔널로 만들어 줄 것 같지만 오랫동안 이 말은 사람들을 그들이 원하지 않는 수준의 가혹한 노동조건으로 스스럼 없이 내모는데 사용됐고 이런 의식을 가지지 않는 개인들을 고통스럽게 만들었으며 회사에서 개인의 존재와 그 개개인의 일상을 지워 기계적으로 일하게 만들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회사가 프로젝트가 달성한 거대한 경제적 성과를 독차지하고 이 과정에서 신체적으로, 그리고 정신적으로 크게 망가진 직원들에게 크게 신경 쓰지 않는 모습을 보이기를 반복함에 따라 회사에 헌신해서 얻을 수 있는 것이 거의 없음을 배우게 만들었고 또 그럴 바에는 자기 일을 시작해 자기 자신도 똑같이 행동하는 것만이 주인의식을 가지고 더 큰 위험과 댓가를 기대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하게 만들었습니다.
최근에는 서서히 그렇지 않은 경우가 늘어나고 이 사실이 당연해졌지만 이 업계는 소수의 천재들에 의해 시작되었고 본격적으로 성장하는 동안에는 그들 스스로가 고객인 사람들이 모여들어 좋아하는 일을 하는 사람들로 포장되어 왔습니다. 포장이라고 말했지만 이 특징은 어느 정도 사실이며 함께 개발하는 분들 상당수는 스스로 게임을 좋아하는 고객이고 비록 회사로부터 돈을 받으며 회사가 원하는 프로젝트를 수행하고는 있지만 이로 인한 제약 속에서도 자신의 결정을 제품에 조금씩 포함해 가고 또 어려운 순간에는 런칭과 서비스를 통해 고객을 만날 생각에 단순한 회사 직원으로써 가지기 어렵다고 알려진 주인의식을 가지고 프로젝트를 수행하기에 이릅니다. 프로젝트가 중단될 때 신체의 한 부분을 잃은 것처럼 정신적으로 고통스러워 하는 만큼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동안에는 각자의 업무 범위 안에서 마치 프로젝트에 정신이 연결된 것처럼 최선을 다해 일하고 이를 통해 프로젝트가 런칭과 서비스에 성공할 때 더 큰 정신적 보상을 경험하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여전히 업계에 여러 사람들은 그들 스스로가 고객이고 그들 스스로가 사랑하는 제품을 만들기 위해 노력합니다.
이런 가운데 때때로 나는 일을 즐기며 일할 수 있을까?에 소개한 이 일을 사랑하는 강인한 분들이 업계에 남아 훌륭한 프로젝트를 이끌기도 합니다. 이 분들이 근본적으로 우리들 중 일부처럼 게임을 즐기는 고객에 가까운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적어도 프로젝트 완수를 위해 끊임 없이 공부하고 트렌드를 민감하게 인식하며 그저 그런 범인에 불과한 사람들이 훌륭하지 않은 제안을 일삼을 때 개입해 훨씬 더 단순하고 아름다운 의사 결정을 수행하며 이 과정을 즐기기까지 하는 것 만은 확실합니다. 이런 분들과 함께 일하는 경험은 정말 머릿속에 새로운 혈관이 뚫려 더 많은 산소와 영양소를 공급 받고 또 서로 연결되지 않았던 뉴런 사이에 연결이 형성되어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방법으로 전기 신호가 오가며 완전히 다른 차원의 생각을 하게 되는 훌륭한 발전 기회가 됩니다. 물론 종종 이런 대단한 분들의 존재, 그리고 각자가 고객으로써 프로젝트에 가지는 애정 같은 요소는 주인의식에 기반해 강제노동의 동작원리로써 동작하기도 하는데 현대에는 이런 움직임이 확실히 줄어들었지만 여전히 이를 강하게 원하는 조직들이 남아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유년기에는 현대보다 조금 더 가혹한 노동조건이 당연했습니다. 가령 매주 토요일에 출근해야 했습니다. 처음에는 토요일에도 풀타임으로 일했지만 시간이 흘러 정부 정책이 변경되며 격주 토요일에 출근하게 변경되었고 또 이 날 출근하더라도 본격적인 업무를 수행하기 보다는 ‘대청소’라고 해서 각자 주변을 정리하고 사무실의 지저분한 곳곳을 청소하고 책상 옆에 쌓인 종이컵이나 콜라캔을 치우며 시간을 보낸 다음 점심 시간 즈음 퇴근하는 정도로 조정됩니다. 그리고 더 시간이 흐르며 토요일에 출근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지금에 와서는 한 주에 이틀을 쉬지 않고 어떻게 개인의 삶을 유지할 수 있었는지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하루는 한 주에 걸쳐 밀린 집안일을 최대한 처리하고 다른 하루는 개인적으로 신체와 정신을 가다듬는데 필요한 행동을 하는 시간으로 삼았는데 이렇게 이틀 정도가 한 주 동안 멀쩡하게 일하기 위해 개인이 매 주 사용할 수 있는 최소한의 휴식 시간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면서도 그 이전 시대에는 한 주에 하루만 쉬었기 때문에 도대체 그 때는 어떻게 집안일을 하고 다른 사람들과 연락하고 또 개인의 신체와 정신을 가다듬었는지 이제와서 상상하기는 어렵습니다.
또 모든 회사는 포괄임금제 기반이었기 때문에 급여명세서에는 이미 수행하지도 않은 야근비가 지불되어 있었고 이를 근거로 물리적으로 가능한 범위 안에서 사실상 무한한 시간에 걸쳐 일할 수 있었습니다. 한국은 점심 시간을 업무시간으로 인정하지 않아 매일 아홉 시간 동안 회사에 머무르며 일해야 하는데 이는 그저 기본 중의 기본일 뿐이고 매일 적게는 한 시간에서 많게는 열 시간 이상 추가로 일할 때가 많았습니다. 가령 오전 아홉 시에 출근해 오후 여섯 시가 되면 강제로 주어져 업무시간으로 인정되지 않는 휴게시간 한 시간을 포함해 아홉 시간 동안 회사에 머물렀고 또 여덟 시간 동안 일한 상태이지만 여기서 네 시간에서 여섯 시간 정도를 더 일해 저녁 열 시나 자정에 퇴근하는 일이 그리 이상하지 않습니다. 이런 환경에서 프로젝트 관리는 쉽게 사람들을 추가로 일하게 만들고 또 라이브 상황에서 쉽게 사람들을 대기 시키는 결정을 하게 만듭니다. 마일스톤 계획을 수립해 이에 따라 개발을 수행하더라도 막판에 어른들의 사정으로 인해 새로운 요구사항이 끼어들더라도 스탭들의 노동시간이 물리적인 한계 안에서 제한이 없으므로 이 새로운 요구사항을 받아들이는데 아무런 제한이 없습니다. 이 요구사항이 누구로부터 시작됐는지, 어떤 목적인지, 어느 상황에서 사용될 것인지 같은 어른들의 맥락을 전해 들을 필요 없이 그냥 새로운 요구사항이 나타났고 그냥 초과근무를 통해 해결하면 됐습니다.
이런 프로젝트 운영은 라이브 상황에도 비슷하게 적용되었는데 사람들을 무한히 대기 시킬 수 있었기 때문에 업무가 종료될 시점이 명확하지 않은 상황에서 대강 필요할 거라고 예상되는 사람들을 무작정 회사에 남겨둘 수도 있었습니다. 가령 한번은 모바일 게임 라이브 서비스 도중 애플의 앱 검수가 언제 날 지 알 수 없는 상황이 있었습니다. 당시 게임은 이전에 릴리즈한 클라이언트에 문제가 있어 특정 컨텐츠를 정상적으로 사용할 수 없는 상태였고 빌드 업데이트 없이 데이터 패치만으로 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문제를 임시 방편으로 해결해 놓은 상태였지만 고객들이 겪는 경험으로 미루어 이 상황을 다음 빌드 업데이트 시점인 4주 후까지 해결하지 않을 수는 없다고 판단합니다. 그래서 재빨리 다음 빌드를 준비해 애플에 제출했지만 검수가 언제 승인될지 알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승인 되는 즉시 이에 맞는 서비스를 시작해야 했기에 고객들에게 이 상황을 알린 다음 조금만 양해해 달라고 말하고 애플의 검수 승인을 무작정 기다리기 시작합니다. 첫 날 새벽 세 시 까지 대기했다가 승인이 진행되지 않자 모두가 철수했고 도 둘째 날도 새벽 세 시 까지 대기했지만 이 날도 아무 소식이 없어 새벽 세 시에 검수 지연으로 문제를 해결하지 못해 죄송하다는 공지를 남긴 다음 철수합니다. 셋째 날에도 같은 상황이었는데 이번에는 고객들이 우리들을 걱정하는 답글을 남기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넷째 날 자정을 넘긴 시간에 검수가 완료되어 클라이언트를 배포할 수 있었고 한밤중에 임시 점검을 걸고 새 클라이언트에 맞는 인프라를 준비한 다음 고객들이 특정 컨텐츠를 플레이 할 수 없는 문제를 해결한 다음 서비스를 개시하고 모니터링 하며 일출을 보고 다른 사람들이 슬슬 출근하는 모습을 본 다음에야 철수합니다.
이런 에피소드의 긍정적인 면은 서비스를 운영하는 사람들이 주인의식을 가지고 개개인의 일상을 희생해 열악한 상황 속에서도 고객들에게 최대한의 서비스를 제공하고 할 수 있는 한 우리가 예상한 올바른 경험을 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한다는 점입니다. 며칠 동안 이런 상황이 반복됨에 따라 개인의 신체와 정신은 큰 타격을 입었지만 이에 따라 우리들의 고생을 알아 주는 고객들의 따뜻한 피드백을 보며 기운을 얻기도 하고 또 검수를 빨리 수행해 주지 않던 애플을 욕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드디어 고객들에게 온전한 서비스를 제공했다는 짧고 작은 성취감을 느끼기도 했습니다. 이런 감정을 느끼기 위해 다른 소프트웨어 프로젝트에 비해 훨씬 더 길고 또 훨씬 모호한 요구사항에 기반해 개발하곤 하는 게임 프로젝트에 계속해서 참여하고 있지 않은가 싶습니다. 반면 이렇게 프로젝트를 운영하는 과정에서 개개인은 서서히 소진되어 더 이상 프로젝트를 수행할 수 없을 상황이 되기도 하는데 이렇게 떠난 분들은 새로운 곳에서 다음 일을 시작하겠지만 지금까지 우리들이 함께 일하며 얻은 자산을 모두 날리는 커다란 손해를 피차 입게 됩니다. 밝은 면은 성취감을 느낀다는 점, 어두운 면은 개개인을 무한정 대기 시킬 수 있기 때문에 인력 운용을 방만하게 하더라도 아무런 제약이 없고 이로 인한 문제를 고스란히 개인이 떠안게 된다는 점입니다.
시간이 흘러 현대에는 여러 업계 분들의 원하지 않는 희생, 이에 따른 살아 남은 분들의 행동, 노동 관점에서 대관 행동의 결과로 이전 시대에 비해 노동 환경이 훨씬 개선되었습니다. 가령 한때 일주일에 오직 하루만 쉴 수 있던 세계에서 일주일에 이틀을 쉴 수 있는 세계가 되었고 또 포괄임금제에 근거해 방만한 인력 운용이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되던 세계에서 방만한 인력 운용은 곧장 회사의 비용 상승으로 이어지는 세계가 되었습니다. 물론 회사에 따라서는 이렇게 증가하는 비용을 별로 신경 쓰지 않고 최대 시간만큼 인력을 운용하는 사례도 있기는 하지만 최소한 이전처럼 방만한 인력 운용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댓가도 받지 못하던 시대와는 크게 달라졌습니다. 이런 소수의 사례를 제외하면 비용 증가에 신경을 써 인력 운용에 좀 더 신경을 쓰도록 압력을 느끼는 회사들이 늘어나 비효율적으로 진행되는 개발을 좀 더 민감하게 문제 삼는 문화가 자리 잡아 가고 있습니다. 관의 감시를 좀 더 강하게 받는 규모가 큰 회사들은 근본적으로 원하지 않는 불법 노동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솔루션을 사용해 법률로 정해진 경계 밖에서 일어나는 노동에 대해 아예 노무수령거부 를 하게 됐고 이에 따라 어른들의 눈치를 보며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하는 상황이 완전히 사라지고 잠긴 컴퓨터를 애틋한 눈빛으로 바라보며 어쩔 수 없이 당당히 퇴근할 수 있게 됩니다.

하지만 우리들은 여전히 우리 스스로가 만드는 이 제품에 자신도 모르는 애착을 가지고 이 제품의 개발을 완료해 고객에게 선보여 서비스를 진행하는 단계에 도달하고 싶습니다. 이제 물리적으로 회사가 사용하는 소프트웨어에 의해 일간, 주간, 월간 최대 노동시간이 제한되고 또 초과노동에 대한 당연한 댓가를 받으며 이전에 비해 노동강도가 개선되었지만 이전의 경험과 비교해 고객들을 만날 수 있는 수준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아직도 엄청난 시간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계산하지 않아도 직관적으로 알 수 있습니다. 회사 역시 이를 파악하면 스탭들에게 법적으로 제한된 범위 안에서 초과 노동을 요구할 수 있겠지만 이전 시대에 비해 이런 행동에도 한계가 있고 이런 행동에 의해 직접 비용이 증가하기 때문에 개발기간을 더 늘려야 할 지 아니면 초과노동을 요구해야 할지 이전보다 훨씬 깊이 생각해서 결정해야만 합니다. 하지만 우리들 스스로는 이전 시대에 일하던 감정과 습관이 남아 있어 비록 법률을 준수하기 위해 노무수령거부 상태가 된 기계 앞에서 망연자실하게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진심으로 아쉬워합니다.
라이브 서비스 상황에서 문제가 생겼지만 개개인의 노동시간 초과에 의해 강제로 노무수령거부 상태가 되어 고객들이 당장에 겪고 있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을 때 그 당혹스러움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이전에 좀 더 가혹한 노동조건 하에서 일하던 사람들은 회사가 도입한 불법 노동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기 위한 솔루션의 헛점을 몰래 파악해 두거나 만약을 대비한 좀 양아치 같은 인력 운용 계획을 마음속에 가지고 있기도 합니다. 어느 다른 회사에서 개발했을 개개인의 노동시간을 계산해 불법 노동이 일어나지 않도록 제어하는 소프트웨어의 동작 방식과 헛점을 미리 파악해 저 자신이 긴급 상황에 노무수령거부 상태가 된 기계 앞에서 안타까워만 하는 대신 소프트웨어의 빈 틈을 비집고 들어가 당장 제가 가장 잘 해결할 수 있는 문제 해결에 개입할 방법을 파악한 다음 이 사실을 회사나 솔루션 제작사에는 절대 말하지 않습니다. 이전에 경험했던 솔루션은 노무수령거부 상태가 되더라도 이 상태를 만든 소프트웨어 역시 윈도우 운영체제의 통제를 받는 소프트웨어라는 한계 때문에 적당한 조작을 통해 이 상태를 깰 수 있다는 사실을 몇몇 사람들이 알고 있었는데 재미있는 점은 이 방법을 스스로 파악한 사람들 거의 대부분이 오래 전 더 가혹한 노동 조건에서 일해 오던 사람들이었다는 점입니다.
이번에 온보딩 한 조직에서는 하루 단위의 최대 노동 시간 제한도 있어 생각보다 집중해서 일할 시간을 확보하기 어려워 보입니다. 가령 하루 종일 회의에 끌려 다니고 또 여러 사람과 이야기하다 보면 정작 직접 도출해야 할 일은 다른 사람들이 퇴근한 다음에야 수행할 수 있을 때가 많은데 하루 단위의 최대 노동 시간 제한에 의해 이렇게 남들 다 간 다음에 일하기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이 솔루션의 동작 방식을 찬찬히 분석해 서버와 연결이 유지되는 동안에만 시간이 흐르며 기계를 조작하지 않고 일정 시간이 경과하거나 서버와 연결이 단절되면 시간이 흐르지 않는다는 점을 알아냈습니다. 아직 노무수령거부 상태가 되면 이를 깰 방법을 알아내지는 못해 이 상태가 되기 전에 의도적으로 이 소프트웨어의 서버와 통신을 차단 시키면 자리를 비운 상태가 되고 이 때 노동 시간이 흐르지 않는 상태에서 일할 수 있다는 사실을 파악합니다. 이를 회사 안의 이전에 함께 일했던 다른 분들께 슬쩍 이야기해 봤더니 역시나 이 분들 역시 만약을 대비해 솔루션의 다양한 헛점을 이미 파악하고 있었지만 실제로 그렇게 노동하면 서비스를 빨리 복구하거나 고객들의 경험을 지킬 수는 있겠지만 불법이어서 회사를 궁지에 몰아넣을 수 있기에 다들 그 헛점을 정말 급한 상황에만 사용할 요량으로 아는 사람들만 알고 절대 다른 사람들에게 말하지 않고 있었습니다.
제가 발견한 만약을 대비한 헛점들을 어지간히 오래 일해 온 사람들 대부분이 이미 다 시도해 파악하고 있다는 점은 앞서 언급한 책임감, 또는 주인의식, 또는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개개인들 역시 다른 게임의 고객이라는 사실에 기반한 행동이라고 생각하지만 이를 어두운 표현으로 이야기하면 불법이어서 회사를 궁지에 몰아넣을 수 있고 또 자발적으로 댓가 없는 노무를 제공할 준비를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이상한 행동일 수 있습니다. 여전히 저 자신은 만약을 대비해 저 자신의 노동 운용에 실패한 상황에서 이를 수습할 방법을 조용히 알고 있을 작정이지만 이런 행동이 과연 과거로부터 이어지는 어떤 책임감이나 주인의식에 의한 것일지 아니면 일종의 가스라이팅에 의해 언제든 댓가 없는 노동을 제공할 준비를 한 것 뿐인지 결론을 내리기는 어려워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