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은 생각보다 잘 하고 있다

우리들은 생각보다 잘 하고 있다

지난 금요일로부터 또 다시 어느새 다시 한 주가 흘러 다시 금요일입니다. 매주 금요일에는 대부분 원격으로 일하고 있는데 금요일에는 다른 사람들과 직접 의사소통하며 진행하는 일 대신 혼자서 좀 더 알아보고 싶은 주제나 튜토리얼 시청, 마일스톤에 해당하는 모든 지라 태스크 상태 확인 같은 일을 하곤 합니다.

오늘은 예정과 달리 갑자기 급하게 문서를 작성해서 제출할 일이 생겼는데 문서를 작성하며 서로 의견을 나눠야 할 사람들 각각이 이미 자신의 의견을 정립하고 있는 상태라면 모두가 같은 페이지에 모여서 동시에 문서를 작성해 나가며 ‘눈치껏’ 서로가 작성하는 부분을 아슬아슬하게 피하면서도 자신이 담당한 부분을 작성하고 또 그 문서 안에서 문서 그 자체로 의사소통을 하며 아주 빠르게 회의와 문서 작성을 동시에 진행할 수 있습니다. 이런 방식으로 협의하고 문서를 작성하는 방식을 아주 좋아하지만 모두가 잘 준비되어 이렇게 할 수 있을 때는 그리 많지 않습니다.

누군가는 그때서야 생각해본 다음 의견을 작성해 다른 누군가 한 명에게 보내 취합하게 만들고 그걸 보며 다시 이야기를 하기를 원할 수도 있는데 이렇게 작업하기를 원하는 사람이 경험상 더 많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렇게 일하면 30분이면 될 일이 2주씩 걸리기 쉬운데 취합, 작성, 회의, 수정 등의 절차가 서로 다른 날 일어나기 너무나 쉽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모두가 준비된 상태라면 협의와 정리는 거기 참여한 사람 수만큼 가속 되어 순식간에 완성되고 마지막으로 누군가 편집을 마치면 그대로 제출할 수 있는 상태가 될 뿐 아니라 작성한 모두가 이미 협의와 숙지를 끝낸 무척 바람직한 상태가 됩니다. 그래서 오늘은 여느 금요일에 예정한 일을 할 시간을 충분히 확보하지는 못했지만 나쁘지 않은 금요일을 보냈습니다.

한편 이번 주에는 '마이크로소프트의 액티비전 블리자드 인수에 대한 반독점 위반 소송에 증거 자료로 소니가 유성펜으로 특정 수치를 검열한 자료를 제출했는데, ...'라는 을 만났는데 이 글에서 인용한 'Sony’s confidential PlayStation secrets just spilled because of a Sharpie’을 따라가 읽어보고 문득 우리가 왜 그들만큼 대단한 게임을 만들지 못하는지 조금은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게임을 만드는데 돈이 얼마나 드는지, 몇 명이 참여하는지, 또 어느 정도 기간이 필요한지는 회사마다 비밀입니다. 위 기사에서도 소니는 이 정보들을 공개하고 싶지 않았지만 안일하게 대응하다가 정보가 공개되고 말았는데 이 정보 상의 금액은 한국에서 개발하는 어지간히 규모가 큰 프로젝트라도 구멍가게 수준으로 만들어 버릴 정도로 엄청난 규모입니다.

한국에서 게임을 개발하는데 돈이 얼마나 들 지를 각 회사들의 보안 서약을 깨지 않으면서도 대략 무식하게 계산해볼 수 있는 방법이 있습니다. 팀에 속한 사람들이 받는 급여는 제각각이지만 업계의 열악한 고용 형태와 이에 걸맞는 열악한 처우는 개발팀에 속한 모든 스탭들을 통틀어 1년에 약 5천만원 정도의 급여를 지출한다고 보면 크게 틀리지 않습니다. 그런데 회사를 운영하기 위해서는 사람 뿐 아니라 장비, 사무공간, 공간 유지비용, 사람들을 회사 안에서 먹여 살리는데 드는 돈, 온갖 라이선스비용 기타등등을 고려해 스탭 한 명에 급여로 지출하는 비용의 두 배 정도의 비용이 든다고 계산하곤 합니다. 그리고 프로젝트가 처한 상황에 따라 프로젝트에 속한 인원은 몇 명에서 몇 백 명에이르기까지 크게 변하는데 이를 상황에 맞게 고려하기에는 계산이 너무 복잡해지니 프로젝트 시작부터 끝까지 평균 100명이 계속해서 프로젝트에 고용되어 있다고 가정해 보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어지간히 규모가 큰 게임은 개발 시작부터 런칭까지 평균 3년 정도 걸린다고 희망적으로가정하겠습니다.

그러면 5천만원에 2를 곱하고 거기에 100을 곱한 다음 3년을 곱하면 3백억원이라는 엄청난 금액이 나오는데 연 인원을 항상 100명으로 가정하고 있어 실제보다 좀 더 커 보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직접 고용하는 인원을 줄이고 몇몇 부분을 외주화해서 금액을 조금 줄일 수 있겠지만 여기서 이 이상의 정확함이 필요하지는 않을 것 같으니 생략하겠습니다. 그러면 거칠게 요약해 국내에서 어지간히 알려진 대규모 게임은 개발하는데 대략 3백억원 정도 든다고 볼 수 있습니다. 실제로는 개발기간이 엄청나게 길거나 연 인원이 엄청나게 많은 식으로 인원이 크게 차이 날 수 있고 이는 종종 연 인원이 100명 수준이 아니라 몇 백 명 수준이 되어 엄청나게 큰 금액을 사용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면 호라이즌 포비든 웨스트 사례를 봅시다. 5년, 300명, 2억 1천 200만 달러를 소요했다고 합니다. 이 숫자를 위에서 어림 잡아 본 방식으로 생각해 보겠습니다. 2억 1천 200만 달러는 오늘 환율 기준으로 계산하면 대략 2천 7백억원입니다. 이를 개발기간인 5년으로 나누면 1년에 5백 4십억원을 사용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를 연 인원 300명으로 나누면 1억 8천만원인데 이를 위에서 설명한 대로 2로 나눠 한 명이 수령하는 평균 급여를 예상하면 약 9천만원이 됩니다. 이 계산은 생각보다 현실적인 것처럼 보이는데 소니의 퍼스트퍼티 프로덕션이 AAA 싱글플레이 프랜차이즈 게임을 개발하기 위해 평균 9천만원을 수령하는 3백명 짜리 팀이 5년에 걸쳐 개발하는데 대략 2억 1천만 달러 정도가 든다는 겁니다.

잠깐 소니 퍼스트퍼티의 엄청난 개발 규모를 봤으니 이 기억을 가지고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 먼저 이야기했던 한국에서 규모가 큰 프로젝트를 호라이즌 프랜차이즈 제작비와 비교할 수 있도록 인원과 규모를 맞춰 보겠습니다. 한 명 당 연 1억원을 지출하는 프로젝트를 연 인원 300명, 그리고 5년 동안의 제작 기간으로 숫자를 조정해서 계산해 보면 5년에 걸쳐 약 5백억원의 제작비를 소요한다고 가정할 수 있습니다. 이 숫자는 여전히 실제와 많이 다르지는 않은데 연 인원 300명이 5년 내내 유지되지는 않지만 국내에서 개발하는 대규모 프로젝트는 프로젝트 킥오프부터 런칭까지 3년 안에 끝내는 경우는 아주 잘 하는 소수의 회사와 팀 말고는 드뭅니다. 그래서 런칭 까지 5년 혹은 5년 이상 걸리는 사례는 오히려 흔한 편입니다.

이제 양쪽의 기간과 인원이 맞춰졌으니 금액을 직접 비교해볼 수 있는데 소니의 파스프퍼티가 플레이스테이션용 싱글플레이 AAA 프랜차이즈를 개발하는데 약 2천 7백억원이 들지만 한국에서 어지간히 큰 모바일 MMO 게임을 개발하는데 같은 기간 동안 5백억원을 사용하는 셈입니다. 대충 나눠 봐도 5분의 1 정도 비용을 사용합니다. 처음 이 글을 쓰기 시작할 때는 그렇게 해서 올린 매출 규모를 포함해서 작성할 생각이었는데 그러기에는 주간 뉴스레터의 커버스토리 치고는 규모가 커질 것 같아 매출 비교는 다음 기회에 해 보기로 하고 같은 기간에 같은 인원으로 개발하지만 비용은 5분의 1 수준의 비용을 사용해 비즈니스를 하고 있다고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적어도 국내와 적은 수의 해외 서비스 사례에서 커다란 경제적 성공을 달성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싱글플레이 게임에 비해 온라인 멀티플레이, 게다가 MMO 장르의 플레이어 간의 강한 상호작용으로 인한 복잡도 증가를 감안하면 훨씬 복잡하게 동작하는 소프트웨어를 같은 기간에 소니 퍼스트퍼티 프랜차이즈 개발비용의 5분의 1만 사용해 개발한 다음 이를 기반으로 장기간 라이브 서비스를 유지하고 또 장기간에 걸쳐 매출을 기록하는 제품을 만들고 있습니다.

이쯤 되면 사장님으로부터는 왜 이런 훌륭한 대작 게임을 못 만드냐며 그 게임과 게임 전용 콘솔을 전 직원에게 돌리거나 한국인들의 닫힌 창의력으로는 서양 개발팀과 경쟁할 만한 게임을 만들 수 없다며 개발팀을 한국 밖에 두고 한국에서는 그 팀의 보조 역할만 담당하게 만들기도 하고 또 고객들로부터 역시 왜 한국에서는 저런 대작을 개발하지 못하고 맨날 부분유료화 기반의 모바일 가챠 게임만 만드느냐고 욕을 얻어먹는 등 모멸감을 받을 만한 경험을 하는 데는 사실 다른 근본적인 이유가 있지 않나 싶은 생각을 하게 됩니다.

비슷한 비즈니스를 하는데 탑 클래스 플레이어와 비교해 예산이 20%에 불과하다면 물리적으로 뭔가에 타협할 수밖에 없습니다. 가령 소니 퍼스트퍼티는 그 정도 개발비를 지출하고도 전 지구적인 배급망을 제공하지만 여느 개발사나 여느 퍼블리셔는 그보다 훨씬 적은 개발비를 지출하면서도 그에 훨씬 못 미치는 배급망 밖에 제공하지 못합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훨씬 적은 비용을 지출하고 또 훨씬 좁은 배급망과 동북아시아의 완전 꼬인 정치 상황 속에서 의미 있는 경제적 성과와 플레이어 간에 강력한 상호작용을 통제하면서도 서비스 가능한 수준으로 동작하는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는 건 거의 기적에 가깝습니다.

고작 개발에 사용하는 연 인원이나 각 인원에 지출하는 예상 금액만 가지고 이런 생각을 하는 건 너무 많이 나간 생각임을 스스로도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회사의 지원, 충분한 급여를 받는 훈련된 인력, 전 세계적인 배급망 같은 요소들을 생각해보면 우리들이 비교하기조차 부끄러운 적은 금액으로 우리들 스스로 먹고 살 수 있는 비즈니스를 성공적으로 운영하고 있다는 사실은 비록 우리들이 사장님들로부터 모멸감을 느낄 만한 일을 겪고 또 고객들로부터도 절대로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하는 상황에도 불구하고 생각보다 잘 해 나가고 있는 것 아닌가 싶은 생각을 합니다.

종종 우리들 스스로 이 일을 하고 있음을 다른 사람들에게 잘 밝히지 않거나 질병코드로 분류될 가능성이 있는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는데 종사하고 있음에 썩 즐거운 기분이 아닐 때가 많습니다. 하지만 우리들은 탑 클래스 플레이어들과 비교할 때 아주 적은 비용을 사용하면서도 특성이 상당히 다른 복잡도 높은 소프트웨어를 개발해 고객들께 의미 있는 경험을 제공하고 또 의미 있는 경제적 성과를 거두고 있음을 인식해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 우리들은 생각보다 잘 하고 있습니다.

이번 주에도 다섯 가지 이야기를 준비했습니다.


월드오브디아블로
디아블로 4를 시작했습니다. 실은 전전작 디아블로 3나 전작 디아블로 이모탈이 워낙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기는 하지만 또 인생의 일부를 구성하는데 기여한 게임 신작이 나왔으니 이걸 당장 풀 프라이스를 지불하고 플레이 해야 할 지 그냥 좀 기다려야 할 지 한참을 고민했습니다. 그러다가 마치 아침에 눈을 떠 씻고 준비해서 출근하는 습관처럼 새
클리어 랭크 계산 사례
MMO 게임에 인스턴스 던전이 있고 던전을 클리어 하며 낸 퍼포먼스에 따라 랭크를 부여해야 하는 상황을 생각해 봅시다. 아직 높은 랭크를 기록한 고객에게 어떤 보상을 줄 지는 잘 모르겠지만 여느 액션 게임에서 스테이지를 마칠 때 스테이지에서 낸 퍼포먼스에 따라 S, A, B, C, D 등으로 이루어진 랭크를 부여하며 결과 화면에 이
고객과 함부로 약속하지 않아요
한번은 비공개 테스트를 준비하면서 비공개 테스트 고객들께 어떤 보상을 줘야 할 지 고민한 적이 있습니다. 현대에 비공개 테스트는 종종 바로 이어지는 런칭을 고려해 사실상 얼리 액세스에 가까운 형태이기도 했지만 지금 우리가 처한 상황은 전통적인 의미의 비공개 테스트에 더 가까워 게임은 아직 온전히 만들어지지 않은 상태였습니다. 심지어 게임에는 아직 인벤토리 시스템과
야라와 실제 세계 사이에 일어나는 감정의 전이
디아블로를 시작했지만 여전히 파크라이 6을 클리어 하지 못한 상태입니다. 디아블로에서 게임패드를 잡고 길고 지루한 파밍을 반복하다가 지겹고 또 피곤해지면 키보드, 마우스에 기반한 파크라이로 전환하곤 하는데 이 전환이 꽤 효과가 있습니다. 이전에는 화면 중앙의 나와 주변의 몬스터들을 바라보고 그들이 내게 하는 공격을 피하며 내게 남은 자원, 스킬 쿨타임 따위를 살피며 공격과
400명짜리 팀으로 개발할 수 있을까
소프트웨어 개발 업계에서는 아주 오래된 경험에 기반해 늦어지는 프로젝트에 추가로 인원을 투입하면 투입하기 전보다 더 오래 걸린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새로운 인원들에게 프로젝트가 돌아가는 방법을 교육하고 한 사람 몫을 하도록 만드는데 드는 추가 비용이 차라리 그들 없이 개발하는데 필요한 기간보다 더 크기 때문인 경우가 많습니다. 전설 속에 전해 오는 어떤

지난 월 초 뉴스레터 끝에 제 수많은 오타 이야기를 했었습니다. 여전히 곳곳에 제가 찾지 못한 오타들이 도사리고 있음을 알고 있습니다. 혹시 글을 읽으시다가 잘못된 표현, 오타를 발견하시면 답글로 알려주세요. :) 그리고 혹시 글을 읽으시고 조그만 도움이 되었다면 제게 커피 한 잔을 사 주실 수 있습니다. 집 근처에 이디야가 있는데 거기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시며 글 쓸 거리를 생각하려구요.

이번 한 주도 모두들 수고하셨습니다. 그럼 다음 주에 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