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에서 깨는 습관, 폰을 집어드는 습관

아이폰의 자동화 기능인 단축어 앱을 사용해 몇몇 이벤트가 일어날 때 이를 기록했다가 제가 얼마나 게으른지 알고는 있었지만 이를 숫자를 통해 대면할 수 있었습니다.

잠에서 깨는 습관, 폰을 집어드는 습관

이 글을 작성하는 시점은 2023년 12월 31일 저녁입니다. 타임라인을 둘러보니 다들 뜻 깊은 연말을 보내며 올해가 가기 전에 한 해 동안 일어난 여러 가지 일들을 정리하시는 것 같아 보입니다. 1년은 생각보다 그리 길지 않고 내일은 오늘과 똑같은 하루일 뿐이지만 그래도 1년은 뭔가의 진행을 돌아보고 정리하기에는 적당히 너무 길지도, 또 너무 짧지도 않은 기간입니다. 올해에는 이전부터 적극적으로 사용하던 아이폰 단축어 앱을 이전보다 좀 더 적극적으로 활용해 보려고 여러 시도를 했는데 그 중 하나는 평상시에 아이폰을 사용할 때 일어나는 이벤트를 기록하는 것입니다.

가령 아이폰 자동화에는 충전을 시작할 때, 충전을 끝낼 때, 잠 자기 시작할 때, 잠에서 깨 일어날 때, 알람을 미룰 때, 미리 설정한 지오펜스에 들어가거나 지오펜스로부터 나갈 때 이벤트를 일으킬 수 있는데 이 때 특정 작업을 수행하지 않더라도 이 이벤트가 일어나는 시점을 그냥 기록해 두면 나중에 돌아볼 때 재미있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오늘은 올해(2023년)가 가기 전에 지난 3월에서 4월 사이에 시작한 몇몇 이벤트 기록을 살펴보고 아이폰이 기록한 저는 어떻게 행동했는지 조금 알아보겠습니다.

기록한 방법은 아이폰의 자동화에서 주요 이벤트가 일어날 때 저에게 묻지 않고 바로 인터넷을 통해 온갖 용도에 사용하는 MySQL 서버에 쿼리를 보내 기록하게 했습니다. 처음에는 이런 이벤트가 일어날 때마다 인터넷을 사용하는 것이 썩 마음에 들지 않아 다른 방법을 사용해 보려고 했지만 아이폰 로컬에서 다양한 기록 요구를 유연하게 만족할 방법을 찾지 못했습니다. 처음에는 아이폰에서 Numbers 앱을 경유해 기록해 보기도 하고 직접 JSON 파일을 만들어 기록해 보기도 했으며 아이폰 메모 앱에 기록해 보기도 했지만 어느 쪽도 그리 만족스럽지 않았고 또 어느 쪽도 필요할 때 편안하게 조회하기도 어려웠습니다. 결국 오픈서치로 시작한 임시변통 로그 집계 환경마지막 아르바이트의 유산에서 소개한 그나마 편안하게 사용할 수 있고 또 다양한 기록 요구에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는 방법으로 항상 인터넷을 경유해 MySQL에 데이터를 기록하기 시작했고 예상 대로 이 방법이 오랜 기간에 걸쳐 데이터를 기록하고 또 편안하게 조회할 수 있는 방법이었습니다.

사실 여러 이벤트가 일어날 때 결국 같은 데이터베이스에 기록하고 있는데 위 스크린샷에서 알람이 울릴 때와 잠자기 시작할 때 기록하는 방법이 서로 달라 보이는 이유는 알람을 기록하던 시점에는 n8n이라는 자동화 도구의 존재를 몰랐기 때문에 서버에 쿼리를 직접 받는 웹 스크립트를 만들어 놓고 거기에 쿼리 문자열을 직접 보내 기록하는 방식을 사용했습니다. 그런데 n8n이라는 자동화 도구의 존재를 알고 난 다음에는 이를 쿼리를 직접 받는 위험한 스크립트 대신 n8n의 인커밍 웹훅으로 교체하는 중인데 아직 일부는 교체하고 나머지는 아직 교체하지 않아 같은 테이블에 기록하는 자동화인데도 서로 다른 방법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대략 3월 말부터 아이폰을 충전 패드에 올려놓을 때, 충전 패드로부터 집어 들 때마다 이벤트와 이벤트가 일어난 시각을 기록합니다. 의도는 하루에 아이폰을 얼마나 자주 집어 드는지 기록해 보고 싶었던 것인데 아이폰을 집어 들 때 아이폰은 충전 중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습니다. 실내에서 보내는 시간이 긴 평일에는 주로 아이폰을 충전 패드로부터 집어 들 때가 많겠지만 실외에서 보내는 시간이 긴 날에는 여러 번 아이폰을 집어 들더라도 충전 패드로부터 집어 들지는 않을 겁니다. 하지만 적어도 평일에 회사나 집에 있을 때는 웬만하면 아이폰이 충전 패드에 올라가 있기 때문에 경향을 대략 파악할 수 있을 거라고 예상하고 기록을 시작했습니다. 위 기록은 이 기록을 시작한 3월 말부터 현재까지 매일 충전 패드로부터 아이폰을 집어 든 횟수를 센 기록인데 대략 평일과 주말 사이에 편차가 있습니다. 평일에는 실내에서 주로 아이폰이 충전 패드 위에 올려져 있으니 더 자주 아이폰을 집어 든 기록이 있다가 주말에는 실내에 있을 때도 아이폰을 별로 손 대지 않고도 다른 할 일이 잔뜩 있기 때문에 아이폰에 손을 거의 대지 않습니다. 그래서 주중에는 아이폰을 더 자주 집어 들고 주말에는 훨씬 덜 집어 드는 경향이 나타난 것 같습니다.

연중 대체로 비슷한 사용 습관을 보이다가 한창 낮과 밤 구분 없이 바쁘게 일한 기간이 끝난 8월에는 전반적으로 아이폰을 다른 때에 비해 덜 집어 들었는데 확실히 저 때는 회사에서도 집에서도 정신적으로 좀 지쳐 있어 딴짓을 하려는 욕구 자체가 좀 적었다고 생각합니다. 일을 할 때 개인적으로 ‘딴짓력’이라고 부르는 스테이터스가 있는데 이 딴짓력이 부족하면 일을 수행하는데 어려움을 겪습니다. 이럴 때는 말 그대로 뭐가 됐든 딴짓을 하며 ‘딴짓력’을 일정 수준 이상 충전해야 다음 일을 진행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아예 엄청나게 바빠서 몸도 마음도 지쳐 있을 때는 분명 딴짓력이 부족해 일이 잘 진행되지 않는 상태임을 인식하면서도 딴짓력을 채우려는 욕구 자체도 부족한 상태가 되는데 전반적으로 멍한 상태와 비슷하지 않나 싶습니다.

한편 12월 초에 갑자기 하루 종일 아이폰을 들었다 놨다 하는 기록이 있는데 이 때는 권고사직이 일어난 직후 동네방네 제가 회사에서 잘려 다음 직장을 찾고 있음을 알리기 위해 연락을 돌리느라 웬종일 아이폰을 붙들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시점에는 꽤 마음이 급하고 또 안절부절 못한 상태였는데 시간이 조금 지나 이력서와 자기반성을 할 시점에는 마음이 좀 진정되어 급하게 굴지 않는 상태가 됐고 이 기록에 그런 상태가 조금 드러나고 있습니다.

한편 저는 지독한 올빼미형 인간인데다가 또 지독하게 게으릅니다. 사실 그러면서도 회사 생활을 하며 거의 지각하지 않기는 하지만 오전 보다는 주로 오후에 일이 좀 더 잘 되는 타입입니다. 그러면서도 저보다 더한 올빼미형 인간들이 출근하기 전까지 오전의 그 한가한 분위기를 좋아하는데 오후에는 다른 사람들과 협업하며 능률을 올릴 수 있지만 오전의 한가한 분위기 속에서 일을 준비하는 경험도 그리 나쁘지 않습니다. 특히 회사에 맨 처음 도착해 아무도 불을 켜지 않았으면 굳이 불을 켜지 않고 조용히 어둠 속에서 컴퓨터 앞에 앉아 그 분위기를 즐기기도 합니다.

그래서 이 그래프는 제가 얼마나 지독하게 게으른지 보여주는 자료인데 아이폰에서는 알람이 울릴 때 다시알림(Snooze)을 할 때마다 기록하고 또 알람을 종료하고 수면 모드를 종료할 때 기록을 남긴 것입니다. 처음 알람이 울린 시각, 다시알림을 선택한 시각과 횟수, 그리고 알람을 종료한 시각, 수면 모드가 종료된 시각 각각을 모두 기록하는데 여기서는 매일 다시알림을 선택한 횟수를 세어 표시했습니다. 날짜마다 횟수가 많다면 그만큼 다시알림을 여러 번 누르고 일어날 시간이 지났는데도 계속해서 밍기적 거리며 침대에서 빠져나오지 않았다는 의미이고 이 횟수가 적거나 아예 한 번인 날은 알람이 울릴 때 바로 일어났다는 의미입니다.

평소에 제가 아침에 엄청나게 게으르다는 사실을 알고는 있지만 막상 이렇게 숫자를 마주하니 정말 해도해도 너무 한다는 생각이 드는데 가령 4월 중순 즈음에 하루에 다시 알림을 선택한 횟수가 최대 12회 까지 기록되어 있습니다. 아이폰은 다시 알림을 선택하면 항상 9분 후에 알람이 다시 울리는데 다시 알림을 열 두 번 눌렀다는 말은 거의 두 시간 가까이 밍기적 거렸다는 의미입니다. 설마 평일에 저랬나 싶어 기록을 찾아보니 무려 금요일에 저랬는데 대체 전날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저 날 오전 반차를 쓰지 않았다면 분명 엄청나게 늦게 출근했을 겁니다.

앞에 지각은 거의 하지 않는다고 했고 실제로 1년에 한 번 지각할까 말까 한데 이 날이 바로 그런 날이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하늘로 치솟은 날에 기록한 다시 알림 횟수를 살펴보면 8회, 7회인 기록이 각각 두 번 씩 보이는데 이들 역시 횟수에 9분을 곱해서 생각하면 각각 아침에 적어도 한 시간도 넘는 시간 동안 밍기적거리며 침대를 떠나지 않고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거나 정신은 완전히 깨어났으면서도 눈을 감고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는 상태였을텐데 이렇게 숫자로 살펴보니 정말 지독하게 게으르다 싶습니다. 이 숫자들을 곱한 값을 모두 더하면 기록 상 총 475회, 이를 날 수로 환산하면 2.96일로 거의 3일에 가까운데 1년 동안 3일을 침대 위에서 밍기적거리는데 사용했다고 생각하면 이건 그냥 웃고 넘어갈 만한 상황이 아닙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처음 알람이 울린 시점부터 알람을 종료하고 수면 모드를 종료한 시점 사이의 시간을 구해 봤습니다. 이 기록은 수면 모드를 종료한 시각에서 처음 알람이 울리기 시작한 시간을 뺀 다음 이를 시간, 분으로 나타낸 것인데 위 다시 알림 횟수 그래프와 차이가 나는 지점들이 있습니다. 이는 알람을 종료하고 나서 그대로 누워 수면 모드를 종료하지 않았을 때 나타나는 기록인데 이쯤 되면 아마 단순히 안 일어나고 버텼다기 보다는 뭔가의 이유로 반차를 썼지만 알람은 제 시간이 울려 이를 종료한 다음 수면 모드를 종료하지 않고 그냥 계속 누워 있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분명 저 날의 기록을 살펴보면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 수 있기는 할텐데 거기 까지는 이 글에서 다루지 않을 작정입니다.

한편 전체적으로 다시 알림 횟수와 알람이 울린 시점부터 일어날 때까지 걸린 시간 사이에는 눈으로 볼 때 대략 뭔가 상관관계가 있을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계산해 보면 그리 큰 상관관계가 있지는 않았습니다. 검산 차원에서 이 시간을 모두 합한 다음 24시간으로 나눠 보면 위에서 계산한 2.96일과 비슷한 숫자가 나오는데 정말 이런 식으로 시간을 그냥 보내면 안되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별 의미는 없어 보이지만 일어날 때 다시 알림을 선택한 횟수와 그 날 충전 패드로부터 아이폰을 집어 든 횟수를 함께 겹쳐 놓고 살펴봤는데 뭔가 의미 있는 정보를 찾을 수는 없었습니다. 계산 상으로도 거의 의미 없는 상관관계가 있을 뿐이었고 그냥 재미 삼아 매일 일어날 때 다시 알림을 얼마나 선택했고 그 날 아이폰을 충전 패드로부터 얼마나 집어 들었는지를 알아볼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를 찾아야할 것 같습니다. 이 외에도 집 일정 반경에 도착한 시각, 회사 일정 반경에 도착한 시각, 몇몇 의미 있는 장소 주변에 도착한 시각 따위를 같은 방식으로 기록하고 있는데 이들을 조회해 보면 매일매일 이동에 사용하는 정확한 시간 기록을 알아낼 수는 있겠지만 항상 같은 교통수단을 통해 이동하니 그리 의미 있는 정보는 아닐 가능성이 높습니다. 또 이렇게 계산하지 않더라도 주의력이 부족한 사람의 일상 기록에 소개한 Life Cycle 앱이 몇 년 째 출퇴근 이동 시간을 걷는 시간을 포함해 알아서 기록해 주고 있으니 굳이 별도로 알아볼 필요는 없어 보입니다.

크게 두 가지 측면에 아쉬움이 있는데 하나는 스스로가 아침에 게으르다는 사실을 알고는 있었지만 1년에 거의 3일을 밍기적거리는데 사용했다는 현실을 마주하니 자기 자신에 대한 깊은 아쉬움과 함께 이렇게 살명 안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또 다른 아쉬움은 이런 식으로 아이폰을 통해 더 다양한 이벤트를 기록할 수 있으면 좋지 않을까 싶습니다. 가령 아이폰을 충전 패드에 올려 놓거나 충전 패드로부터 집어 드는 이벤트 외에도 그냥 언락 할 때마다 이벤트를 받아 기록하거나 락 될 때 이벤트를 받는 등 좀 더 다양한 상황을 이벤트로 받아 기록할 수 있으면 그냥 대략 알고 있는 습관을 좀 더 적나라한 숫자로 마주할 수 있어 재미있을 겁니다. 물론 매일 매일에 걸쳐 사진을 찍은 시각들, 메시지를 주고 받은 시각들도 조회가 불가능하지는 않을 것 같지만 이렇게 편안하게 이벤트를 직접 받아 기록할 수 있지는 않고 직접 이 정보를 읽어 와야 해서 굳이 이런 장난에 그 정도 노력을 기울일 필요가 있을까 하는 의문 속에 가능함에도 실행하지는 않고 있습니다.

2023년을 마무리하며 자신의 게으름을 적나라하게 표현한 이 숫자들을 마주하며 내년에는 이렇게 까지 시간을 낭비하지는 말아야겠다는 다짐을 하며 한 해를 마치겠습니다.


아 참. 종종 알람을 여러 개 맞춰 놓은 다음 알람 하나를 끌 때마다 조금씩 잠에서 깨어나다가 마지막 알람과 함께 자리에서 일어나는 분들이 계신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제가 매번 다시 알림을 누르는 행동과 속성이 비슷한 행동일 것 같은데 혼자 있을 때는 문제가 없지만 다른 사람들과 함께 생활한다면 매번 울리는 알람은 다른 사람들을 심각하게 방해할 수 있습니다. 때때로 다른 층에서 바닥에 놓인 폰으로부터 울리는 알람 진동 때문에 엉뚱한 시간에 깨어나 고통 받은 적도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잘 때 애플워치를 하고 자는데 이 때 애플워치를 무음 모드로 설정하면 아이폰에서 설정한 알람이 울릴 때 소리 없이 진동으로만 알람이 울립니다. 그래서 소리 없이 저 한 사람에게만 알람이 와서 다른 사람들을 깨우지 않고서도 다시 알림을 눌러 가며 밍기적 거릴 수 있습니다. 한쪽 팔에만 애플워치를 계속하고 있으면 피부에 문제가 생길 수 있으니 낮과 밤에 각기 다른 쪽 손목에 애플워치를 착용하면 부담을 줄일 수도 있으니 참고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