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나이 먹어서 미친개처럼 하지 않아도 됩니다
나이가 벼슬이 아닌 시대를 향해 바람직하게 나아가고 있지만 이를 활용할 수 있다면 아직 활용하겠습니다.
이 이야기 역시 지난 권고사직 이후 구직을 위해 면접에 갔다가 받은 어떤 질문에 대답하며 말한 내용입니다. 질문은 대략 만약 조직에 성과가 충분하지 않은 것 같은 분이 계실 때 조직장으로써 어떤 조치를 취할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이 질문에는 두 가지 측면이 있는데 먼저 낮은 쪽 중간관리자에 가까운 단위 조직장은 책임이 있을 뿐 권한은 없거나 거의 없습니다. 기껏해야 조직원 분들의 휴가 결재 정도가 권한의 전부인데 이전에는 이마저 귀찮아 자동화를 만들어 상신 즉시 그냥 결재 되도록 만들어 놓곤 했습니다. 인사평가를 통해 약한 영향을 줄 수는 있겠지만 이는 개인을 긍정적인 방향으로 이끌기 어려우며 특히 나를 얼마에 팔 것인가에서 이로 인한 영향이 극히 적다고 말했지만 사람에 따라서는 적지 않을 수 있습니다.
다른 한 가지 측면은 성과를 평가하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또 다른 측면을 고려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가령 개인의 게임디자인 역량과 무관하게 구성원들의 의사소통 방식을 이해하지 못했거나 서로 다른 언어로 말하기를 반복하고 있었을 수도 있습니다. 이는 개인의 문제라기 보다는 협업에 포함된 모든 사람들이 문제의 원인이며 의사소통 과정에 이들의 서로 다른 언어를 해석해 주는 사람이 끼어들어 의사소통 하기를 반복하면 나중에 그 사람이 빠진 다음에도 원만하게 업무를 진행할 수 있게 됩니다. 또 협업 부서들에서 원하는 설명 방식이 있는데 이를 정확히 요구하지 않고 그저 원하는 방식으로 설명할 때까지 불만을 표출하기를 반복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면 겉에서 보기에는 요구사항 설정이 늦어져 전체 계획이 늦어지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데 상황을 파악해 보면 그저 원하는 것을 정확하게 설명하지 않았을 뿐입니다. 조직 구성원의 성과의 높고 낮음을 평가할 때 이런 여러 요소가 개입해 성과를 달리 보이게 할 수 있으므로 함부로 성과가 낮다고 생각하고 이를 문제로 정의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표면적으로 성과가 낮아 보인다는 사실이 변하지는 않으므로 먼저 상황을 파악해야 하는데 개인적으로 이 때 가장 중요한 자세는 개인을 일단 신뢰하는 것입니다. 모든 구성원들은 회사의 채용 절차를 구성하는 여러 단계를 밟아 이들 모두를 통과했습니다. 서류 심사를 무사히 통과했고 여러 단계의 면접을 모두 통과했을 뿐 아니라 회사에 따라 종종 요구하는 인적성검사 따위 역시 모두 통과했을 겁니다. 그렇다면 이 분은 적어도 우리들과 똑같은 과정을 거쳐 프로젝트의 일원이 되었습니다. 이 사실을 신뢰하고 인정해야 합니다. 만약 이 사실 자체를 부정하려고 한다면 이는 한 개인의 문제라고 정의하기 보다는 채용 과정 상에 문제가 있다고 정의하는 편이 올바릅니다. 그래서 성과에 초점을 맞추되 함부로 역량을 의심하지 않는 자세로 시작해야 합니다.
오랫동안 복제에 집중하면 이유를 설명하지 못하게 된다에서 잠깐 다뤘는데 지난 오랜 세월에 걸쳐 여러 회사들은 사실상 스탭에 대한 교육을 완전히 방조한 채 지내 왔습니다. 회사에서 직접 시간을 내 교육해야 할 사항을 업무 외 시간에 직접 게임을 경험해 보라고 강요하거나 심지어 채용 공고에 이런 내용을 공공연하게 표기하기도 합니다. 또 극 소수를 제외하곤 신입 직원이 알아야 할 너무 쉽게 당연하다고 여기는 항목을 정리해 두거나 기초 교육 과정을 가지고 있는 곳 역시 거의 없다시피 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구성원이 기대되는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고 해서 온전히 그 개인의 책임이라고 정의해 버리면 우리들의 문제를 발견하지 못하고 또 해결하지 못할 수 있습니다. 언제까지 빠른 시간 안에 적응해 당연히 한 사람 이상의 몫을 수행해 내는 사람이 없다고 한탄하기만 해야 할까요? 이런 자세는 구인 시장의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못합니다.
하지만 회사 차원에서 적절한 교육 프로그램을 제공하지 않는다면, 혹은 제공하지 못한다면 작은 조직 수준에서 가능한 수준의 교육을 제공해야 합니다. 이 단위 조직 수준의 교육 필요성 때문에 신규 인력을 충원하면 이제 조직원 수는 +1명이 아니라 -1명 또는 그 미만이라고 말하곤 하는데 누군가 처음 조직에 들어오면 이 분께 최소한의 교육과 피드백을 제공할 사람 역시 업무량을 조절해야 하기 때문에 사람 수는 한 명이 늘었지만 이들이 내는 퍼포먼스는 적어도 1명 이상 줄어들었다고 봐야 합니다. 일단 2024년 초 현재 아직 까지는 기계보다 사람이 우위에 있는 신경망 학습을 통해 지금까지 생산한 문서와 개발 과정 기록, 동작하는 빌드를 신경망에 입력해 상황을 인식하고 업무 방식을 파악하며 제공한 자료만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을 질문해 달라고 요청하는 것으로 시작할 수 있습니다. 초기 기간 동안 신경망 학습과 질의응답이 마무리되고 나면 그 때부터 슬슬 업무를 할당하기 시작하는데 이 때도 일단 다른 부서와 협업이 필요한 업무보다는 일단 조직 안에서 끝낼 수 있는 업무 위주로 할당하고 그 다음 단계에 본격적으로 협업에 나서는 순서로 할당합니다. 이를 교육이라고 하긴 좀 뭣하지만 일종의 가이드 정도로는 볼 수 있을 겁니다.
협업 업무를 할당하기 시작하면 컨텍 포인트와 협업을 시작하는 단계를 가이드 하긴 하겠지만 이 다음부터는 사실 온전히 협업 당사자들 사이의 조율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어느 정도 가이드는 하겠지만 이 과정에서 시행착오가 필요합니다. 회사 사정에 따라 이런 시행착오를 견뎌 줄 수 있는 조직이 있고 그렇지 않은 조직이 있습니다. 어지간히 이름이 알려진 회사들은 시행착오를 견뎌 줄 체력이 있습니다. 마일스톤 결과가 기대에 약간 못 미치더라도 이를 만회할 기회와 자원이 있습니다. 하지만 돈이 없는 조직은 돈이 곧 시간이므로 시행착오를 잘 용납하지 않는데 이럴 때는 시행착오가 일어나지 않도록 처음부터 협업에 강하게 개입해야 하므로 전체적으로 볼 때 시행착오는 덜 일어나지만 개개인의 성장은 훨씬 느린 편입니다. 만약 시행착오를 견딜 수 있는 조직이라면 의도적으로 시행착오가 일어나도록 방치하는데 제 개인적인 특성 상 주변 일정 반경 안에서 오가는 대화를 거의 모두 듣고 있어 조직 구성원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모르고 있지는 않습니다. 대강 지금 상태로 대화가 이어지면 문제가 생길 것 같지만 당장 개입하지 않고 일단 가만 놔 둡니다.
어느 때는 그냥 문제가 있는 상태로 그냥 진행하도록 놔두기도 하고 또 어느 때는 논의 결과를 보고하러 저를 찾아 오셨을 때 방금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설명하고 가이드를 드리기도 합니다. 비용에 따라 달라지는데 수정 비용이 그리 비싸지 않다면 그냥 문제가 생기도록 놔두는 쪽을 더 선호합니다. 문제가 생긴 다음 함께 돌아다니며 문제를 함께 해결하면 한번에 더 많이, 그리고 확실히 배울 수도 있고 또 저 자신이 그런 문제를 잘 해결하는 사람이기도 해서 이런 방법을 잘 사용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수정 비용이 비싸다면 보고 때 바로 개입해 문제가 일어나지 않도록 조율해야 합니다. 물론 이 때에도 조율하기 전에 먼저 조직 안에서 지금 상태로 진행되어서는 안되는 이유와 이 때 올바른 방법 따위를 미리 설명한 다음 개입합니다. 사실 이 쪽은 제 관점에서 문제가 아직 일어나지 않았으니 문제를 해결할 때보다 덜 재미있고 또 문제 해결 과정을 통해 설명하는 대신 직접 모든 설명을 해야 하니 귀찮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확실히 후자 쪽이 프로젝트 관점에서 비용이 낮습니다.
다른 한편으로는 프로젝트 전체, 더 나아가 회사에 일정 수준 이상의 신뢰를 구축해 서열에 무심한 결과 같은 적절하지 않은 상황에 구성원들이 신경 쓸 필요 없는 상황을 만들기도 해야 합니다. 문제를 일단 일으키고 나서 이를 해결하며 교육을 하는 것도 일단 조직장 자신이 프로젝트 전체에 걸쳐 어느 정도 신뢰를 획득하기 전에는 시도조차 할 수 없습니다.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괜히 중간에 끼어들어 문제를 해결하려 했다가 망신만 당하고 이후 오랜 기간에 걸쳐 이 때 당한 망신으로 인한 신뢰 하락의 댓가를 감당해야 할 수 있습니다. 때문에 조직장이 조직에 맨 먼저 세팅 되어야 가장 편하게 일할 수 있고 팀이 세팅된 다음에 조직장으로 조직에 참여하게 된다면 온전한 기능으로 동작하기 전에 신뢰를 쌓는 구간이 필요하며 이 동안에는 위에 질문 받은 상황에 함부로 대응하려 해서는 안됩니다. 처음에는 그저 상황을 파악하고 신뢰를 쌓는데만 집중해야 합니다.
다만 시간이 흐를수록 초반에 신뢰를 쌓는 과정이 조금씩 수월해지는 느낌을 받는데 이는 분명 제가 그 상황을 더 잘 통제하고 있기 때문이 아닙니다. 이는 마치 서열에 무심한 결과 에서 서열 정리를 하러 저에게 말을 걸었던 사람들이 그저 제 나이를 확인하고 자리로 돌아가는 행동을 하던 것처럼 시간이 흐르며 저 자신이 점점 더 나이를 먹고 있기 때문일 수 있습니다. 점점 더 나이가 벼슬이 아닌 세계로 나아가고 있지만 여전히 사회 곳곳에 남아 있는 문화는 나이를 통한 서열 정리를 사람들 사이에 간단한 정리 방법으로 사용하고 있는 것 같아 보입니다. 개인적으로 이런 접근은 분명히 잘못됐고 시간이 흐를수록 이런 접근이 더더욱 통하지 않는 세계로 나아갈 거라고 생각하지만 일단 지금은 시간이 흐름에 따라 개인적인 궁극적 목표에 따라 업계에 살아 남아 있는 입장에서 지금 제가 은근슬쩍 무임승차 할 수 있는 상황을 거부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우연히 그런 문화에 기반한 세계에서 태어나 성장했고 그런 문화가 점점 사라지고 있지만 아직 남아 있으며 그런 상황에서 우연히 종종 나이가 좀 더 많은 사람이 될 수 있다면 미안하지만 이 상황을 활용해야 합니다. 신뢰를 쌓는 과정이 점점 수월해지는 것 같은 느낌을 받는 이유는 이 때문일 겁니다.
어릴 때는 분명 프로젝트가 잘못된 방향으로 흐르고 있을 때 이를 바로잡아야 한다고 생각한 나머지 신뢰를 획득했는지 자신을 돌아보지도 않은 채 모두를 이끌려고 했습니다. 이런 행동은 분명 여러 사람들에게 올바르지 않게 보였을 겁니다. 특히 임무 달성을 위해서 종종 공격적인 방법을 마다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 시대의 제 행동을 본 사람들은 저를 그리 좋지 않게 평가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지난 10년의 밤 사례에서 저를 본 어떤 분은 1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제 주변에서 일어난 문제의 원인이 저라고 쉽게 단정하는 모습을 보였으며 이런 이야기는 업계 전체에 퍼져 이번 구직 때 제 리퍼 체크에 나온 질문 중 하나가 ‘그 사람 커뮤니케이션에 문제가 있다고 하던데 실제로는 어떰?’ 이라는 말을 전해 듣고 신뢰를 쌓지 않은 채 하는 행동이 다른 사람들에게 어떻게 보일지 아주 깊이 배웠다고 생각합니다. 시간이 지나 여러 경험을 하며 과거의 제가 뭘 잘못했는지 지금은 알고 있지만 과거의 제가 한 잘못에 의한 제 평가는 지금의 제가 오롯이 감당해야만 합니다. 그리고 만약 오래 전 저에게 이런 사실을 교육할 누군가가 있었다면 지금의 제가 받는 평가를 조금이라도 개선할 수 있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이제 다시 질문으로 돌아가 만약 팀에 기대보다 낮은 성과를 보이는 분이 계시다면 성과를 끌어올릴 수 있는 가이드와 어떤 교육이 필요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개인의 성과는 여러 측면에서 달리 해석될 수 있어 함부로 성과를 판단해서는 안됩니다. 또 오랜 세월에 걸쳐 업계에서 교육의 의무를 거의 방치하다시피 했기 때문에 현대에 기대보다 성과가 낮은 분이 계시다고 해도 크게 이상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어쨌든 기대보다 낮은 성과를 보이는 분이 계시다면 어떤 방식으로든 가이드와 교육이 필요한데 개인적으로 선호하는 방법은 회사가 이를 견딜 수 있다는 전제 하에 일단 문제를 일으키도록 방치한 다음 함께 문제를 수습해 가는 것입니다. 이 과정을 통해 문제의 원인, 같은 문제를 겪지 않기 위한 요령 따위를 간접적인 설명 대신 직접적인 체험을 통해 배울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를 위해 조직장은 조직에 맨 처음부터 있으며 신뢰를 획득한 상태인 편이 가장 좋습니다. 어쩔 수 없이 중간에 합류하게 된다면 일단 프로젝트, 나아가 회사에 일정 수준 이상의 신뢰를 구축하는 준비 과정이 필요하며 이 과정 없이는 교육, 업무, 문제해결 등 그 무엇도 효율적으로 처리할 수 없습니다. 이 사실을 무시한 채 업무를 강행하면 아주 나쁜 평가를 아주 오랜 세월에 걸쳐 원죄처럼 지고 가는 신세가 됩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며 신뢰를 획득하는 과정은 조금씩 수월해지고 있는데 이는 어쩌면 아직 까지는 나이가 벼슬인 문화가 조금은 남아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런 문화는 올바르지 않으며 앞으로 점점 더 사라져 가겠지만 일단 우연히 지금 이를 활용할 수 있다면 적극적으로 활용해 신뢰 획득 비용을 낮추고 더 빨리 중간 관리자 본연의 업무에 뛰어들 수 있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