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가지 신화
인생에 걸쳐 기억에 남을 경험과 역사적 지식을 연결하는 역할을 한 어쎄신크리드 신화 3부작을 마무리했습니다.
쉬는 동안 시간을 많이 필요로 할 것이 분명해 오랫동안 미뤄 뒀던 게임을 조금 플레이 했습니다. 그 중에는 어쎄신크리드 발할라도 포함되어 있는데 출시 후 평가는 그리 좋지 않은 것 같지만 신화 3부작의 대미를 장식하는 게임이어서 출시 때부터 할 생각을 했지만 시간을 내기 어려워 오랜 동안 스팀 라이브러리에 설치되지 않은 채 방치되고 있었습니다. 신화 3부작은 맨 처음 어쎄신크리드 시리즈가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제목 그대로 그 근원을 탐구하고 또 그 근원에 이르는 역사를 설명하는 스토리로 구성되는데 발할라 이전의 오리진과 오딧세이를 워낙 만족스럽게 플레이 했고 또 이전의 어쎄신크리드가 롤플레잉으로 게임 스타일을 완전히 바꾸면서도 프랜차이즈의 계보를 잇는 괜찮은 게임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해낸 시리즈이기도 합니다.
사실 현생 인류 이전의 고대 인류가 있었고 우리는 그들의 피조물이라는 설정은 온 세계의 여러 신화들이 기반을 둔 어떻게 보면 흔해 빠진 스토리라고 할 수 있지만 그런 뻔한 스토리의 기반을 온갖 시대의 실제 역사에 기반해 적당히 각색하고 또 이를 직접 체험할 수 있도록 게임으로 만들어 제시하는 점은 정말 대단합니다. 게다가 프랜차이즈의 시작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전체 스토리를 처음부터 구상했을 것 같지는 않지만 초반에 뿌려 놓은 떡밥을 적절히 봉합하고 아쉬운 점이 없지는 않지만 그 동안 펼쳐진 스토리를 다시 한 점으로 모은 다음 미래를 준비하기까지 한 신화 3부작의 결말은 어쎄신크리드 발할라 플레이 경험이 썩 만족스럽지 않은 점에도 불구하고 굉장히 높이 평가합니다. 오늘은 한동안 시간을 많이 들여 플레이 한 어쎄신크리드 발할라의 엔딩, 그리고 신화 3부작의 마무리를 경험한 다음 드는 생각, 감정들을 설명해 보고 이 경험이 제 평생에 걸쳐 끼칠 영향으로 확장된 이야기를 해 보겠습니다.
어쎄신크리드 시리즈를 한참 플레이 하기는 했지만 맨 처음부터 모든 시리즈를 따라온 소위 골수 팬은 아닙니다. 처음에는 이런 게임의 존재를 알지도 못했고 처음 이 시리즈의 존재를 알게 됐을 시점에는 이미 이전 주인공이 한바탕 세계 멸망을 막은 이전 3부작이 끝난 다음이었습니다. 지금은 그 스토리를 알고 있지만 당시 최신 어쎄신크리드 게임을 플레이 하기 위해 이전 스토리를 혹시 모두 알아야 하는 건가 하고 걱정했습니다. 다행히 그렇지 않았고 이 프랜차이즈는 기억에 기반한 일종의 시뮬레이션인 애니머스의 바깥 이야기에 신경 쓰지 않더라도 시뮬레이션 안에서 벌어지는 이야기와 게임플레이 자체에만 집중해도 게임을 플레이하고 이해하는데 전혀 지장이 없어 한동안은 시뮬레이션 바깥의 스토리를 별로 알려고 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렇다 보니 한동안 이 게임의 소위 ‘현대 파트’는 갑자기 몰입을 깨는 요소로 다가왔고 항상 별로 만족스럽지 않아 왔습니다. 그래서 2024년 초봄 현재 이미 출시되어 혹평을 받았다고 알려진 어쎄신크리드 미라지에는 현대 파트가 없다는 말을 듣고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한 적도 있습니다.
한편 신화 3부작은 각각 오리진, 오딧세이, 그리고 발할라라는 이름이 붙어 있고 각각 이집트 말기, 그리스 시대, 그리고 바이킹이 세력을 확장하던 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어쎄신크리드 오리진은 애초에 이 비밀 결사단 혹은 암살자 집단이 처음에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설명합니다. 시리즈 처음으로 게임 장르가 롤플레잉으로 바뀌었고 이와 함께 성장, 전투 경험이 이전과 완전히 달라져 기존 팬들에게는 나쁜 평가를 받기도 했지만 개인적으로는 결국 이 시리즈가 더 다양한 사람들에게 다가가기 위해서는 언젠가 할 수밖에 없는 선택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변화에 대한 평가와 별개로 이들이 현대에 다시 만들어낸 말기 이집트는 이게 컴퓨터 게임이고 저는 주인공 캐릭터를 모니터 밖에서 게임패드를 통해 조작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 뿐 아니라 게임 자체도 설정 상 이 가상의 이집트는 심지어 게임 속에서조차 시뮬레이션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그 속을 돌아다니고 지나가는 사람들을 지켜보고 뗏목을 저어 강을 건너고 건물 위를 점프해 돌아다니며 역사적인 건물을 알아보고 직접 그 안에 들어가고 또 그 위에 올라가는 모든 경험이 너무나 황홀했습니다. 이집트의 온갖 신전과 피라미드 안을 직접 거닐고 그 안에서 싸우고 저 유명한 클레오파트라를 양탄자로 감싸 직접 들고 로마 병사들 사이를 조심스럽게 걷는 경험은 이 스토리가 역사에 기반한 허구임을 알지만 마치 이 일을 직접 경험한 것 같은 느낌을 받기에 충분합니다.
어쎄신크리드 오리진 끝부분에서 이 시리즈의 상징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알려주는데 이 장면을 보는 순간 이 순간의 경험이야말로 허구라는 사실을 알지만 세계의 여러 역사적인 순간으로 이어지는 결사단의 시작을 함께하는 벅찬 느낌을 주었을 뿐 아니라 이후 어쎄신크리드 시리즈의 로고에 남다른 감정을 가지게 됩니다. 처음부터 이런 이야기를 생각했을지, 아니면 적어도 10년 이상 프랜차이즈가 지속된 상황에서 만들어낸 최초의 스토리일지 알기 어렵지만 이렇게 스토리의 시작을 매끄럽게 다듬을 수 있을까 싶습니다. 스토리를 마무리하고 어지간한 퀘스트를 모두 마무리한 다음에도 주인공들의 이야기가 이미 끝난 것과 아무 상관 없이 게임 속 가상의 이집트는 여전히 살아 움직이고 있었는데 여전히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은 그 자리에 있었고 여전히 파로스 등대도 그 자리에 있었습니다. 퀘스트 없이 간 등대는 등대의 나선 계단을 오르며 적과 싸우던 기억을 남겼지만 모든 이야기가 끝난 다음에 간 등대는 이제 빈 나선 계단으로 다가올 뿐이었습니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엄청나게 유명한 이런 건물에 시뮬레이션의 시뮬레이션으로나마 직접 와 보고 이 경험을 마치 제가 직접 한 것처럼 기억에 남길 수 있으며 이 경험을 다른 사람들에게 이야기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감격스럽습니다.
이렇게 대단한 게임 경험을 뒤로 하고 다음 게임인 어쎄신크리드 오딧세이가 전작보다 훨씬 과거인 그리스 시대를 배경으로 한다는 소식을 듣고 잠깐 괜찮을까? 하는 걱정이 먼저 들었습니다. 이미 전작 오리진에서 암살단의 시작을 훌륭하게 다뤘는데 그보다 더 과거로 돌아가 도대체 무슨 이야기를 할 지 상상하기 어려웠기 때문입니다. 누군가 오리진의 오리진이라든지 이러다가 미래의 어쎄신크리드는 공룡과 싸우는 것 아니냐는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들었고 어쩌면 그럴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개그 섞인 걱정을 했습니다. 하지만 앞에서 잠깐 소개했다시피 이 시리즈는 시뮬레이션 바깥에서 일어나는 ‘현대 파트’의 스토리를 완전히 무시하더라도 시뮬레이션 안의 경험이 훌륭하기에 이미 충분히 멋지게 설명해 낸 암살단의 시작보다 더 앞으로 돌아가더라도 그리스 시대를 체험할 수 있으리라 기대했습니다. 그리고 게임은 이를 전혀 배신하지 않았습니다. 어쎄신크리드 오딧세이는 역사상 가장 넓은 세계에 그리스 전역을 구현했는데 여러 도시국가로 나뉜 그리스의 여러 장소는 이들을 그저 방문하기만 해도 시각적으로 너무나 만족스러웠습니다. 전 지구적으로 보면 아주 크지는 않은 고대 그리스라는 세계가 이렇게 다양한 시각적 경험을 주는 도시국가로 나뉘어 서로 교류하고 또 발전해 가고 있었음을 배울 수 있었고 이번에도 그저 역사 지식으로부터 그 이름을 알고 있었을 뿐인 온갖 아름다운 신전 주변을 거닐고 또 그 위에 올라 주변에 펼쳐진 풍경을 바라보는 것 만으로도 너무나 즐거웠습니다.
특히 오딧세이에서는 역사적으로 유명한 인물들과 함께 하는 퀘스트 경험이 너무 즐거웠는데 가령 이전 오리진에서 클레오파트라나 시저 같은 인물들의 등장과 함께하는 스토리는 이 역사의 순간에 저 자신이 함께한 것 같은 느낌을 줬습니다. 이번 오딧세이에서도 소크라테스, 피타고라스 같은 인물들이 등장하는데 이들의 등장은 실제 역사적으로는 알맞지 않지만 뭉툭하게 그 시대의 인물들이 현대까지 알려진 특징에 기반해 살아 움직이고 말하고 함께 걷는 그 순간들 역시 너무나 즐거웠습니다. 소크라테스를 감옥에서 구출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병사들을 죽일 때 소크라테스가 뒤따르며 지금 당신은 자신 한 사람을 살리기 위해 병사 두 명을 죽였는데 그렇다면 소크라테스 한 사람의 가치가 그 병사 두 명의 가치보다 더 가치 있다는 말이냐고 물었는데 한참 바쁘게 목숨을 걸고 앞길을 막는 병사들과 싸우는 상황에 그런 말을 듣자 왜 이 사람이 그리스 사람들에게 맞고 다녔는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아 웃겼습니다. 시대에는 어울리지 않고 또 너무 근엄하게 등장해 소크라테스 만한 재미는 없었지만 피타고라스의 등장 역시 흥미로웠는데 이를 통해 전작에서 암살단의 시작을 설명했다면 이번에는 이 신화 3부작 이전에 언급된 인류 이전의 선대 인류와 암살단의 연결을 설명합니다. 현생 인류는 선대 인류의 피조물이며 이런 저런 사건을 거쳐 결국 현생 인류가 지구에 살아 남아 문명을 일으켰는데 이 과정과 이후 역사에는 여전히 선대 인류의 역할이 포함되었고 선대 인류의 힘에 기반한 통제에 반하는 집단이 바로 암살단인데 오리진에서는 이들의 시작을 매끄럽게 설명했다면 이번에는 선대 인류와 현생 인류 사이를 그리스 신화에 기반해 매끄럽게 연결해 냈습니다.
이번에도 이 세계는 어지간한 퀘스트를 모두 마무리한 다음에도 여전히 살아 움직였고 이 세계의 거리를 돌아다니는 사람들은 이 세계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모른 체 그저 간단한 행동 규칙에 따라 움직이고 있을 뿐입니다. 하지만 이들이 배경과 함께 어우러져 만들어낸 고대 그리스는 마치 제가 고대 그리스의 여러 도시국가와 여러 역사적인 장소에서 직접 교단원들을 처단하고 저 자신과 비슷한 일을 하는 여러 용병에 맞서 싸운 경험을 한 것 같은 느낌을 줬으며 이후 여느 매체에서 현대 그리스에 남은 유적이나 고대 그리스의 역사에 대해 언급할 때 저 자신이 시뮬레이션의 시뮬레이션 상에 펼쳐진 고대 그리스에서 했던 경험을 떠올리며 낯설지 않은 느낌을 받았습니다. 어쎄신크리드 오딧세이의 세계는 여러 도시국가 별로 서로 상당히 다른 시청각적 경험을 주고 있어 이번에도 그저 여러 지역을 돌아다니는 것 만으로도 즐거웠는데 세계를 잠시 떠나는 의식에 설명한 것처럼 세계에 몰입해 플레이 하기 위해 어지간하면 빠른 이동을 사용하는 대신 직접 걷거나 말을 타고 먼 거리를 이동하며 아름답게 만들어진 고대 그리스의 여러 풍경을 조금이라도 더 눈에 담으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렇게 더 이상 게임에 마땅한 목적이 없게 되어 이제 슬슬 게임을 마무리해야겠다는 생각이 든 다음에도 한참이나 가끔 실행해 주변을 둘러보기를 반복하다가 아쉬움에 세계를 떠나지 못하다에 소개한 것처럼 마지막으로 이 아름다운 세계와 그 안에서 제 경험을 추억한 다음에야 게임을 종료하고 삭제할 수 있었습니다.
이런 게임 경험은 제 평생에 걸쳐 큰 영향을 줬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현대까지 알려진 실제 역사에 기반해 여러 부분을 가상의 설정에 맞춰 각색한 이야기라는 사실을 알고 있지만 적어도 시뮬레이션 안에서 일어나는 이야기는 각각의 시대를 충분히 체험할 수 있었고 역사적인 여러 사건을 직접 체험할 수 있었기 때문에 이 경험은 역사적인 사실이 그냥 책 속에 박제된 텍스트가 아닌 마치 직접 경험한 것 같은 느낌을 줬습니다. 이를 시작으로 그저 역사의 조각을 설명하고 있을 뿐인 여러 책이나 영상들로부터 제가 이 프랜차이즈로부터 체험한 역사에 대한 언급을 들으면 제가 게임으로부터 한 체험과 새로 들은 역사적 사실들이 서로 연결되어 머릿속 가상의 지구본 안에서 시간이 흐르며 서로 연결되어 이전보다 훨씬 더 풍부하게 받아들일 수 있었습니다. 마치 유튜브 알고리즘이 추천해주는 영상을 아무렇게나 볼 때는 각각의 주제가 별 것 아닌 가십처럼 지나가지만 문득 그렇게 지나간 내용에 기반해 높은 해상도로 읽은 책 죽음의 청기사 같은 경험을 하며 여러 매체로부터 새로 접하는 역사적 사실들이 이전에 비해 훨씬 가깝게 느껴집니다. 신화 3부작 중 앞의 두 게임으로부터 이들로부터 한 경험을 인생의 한 경험으로 삼고 있었기에 나머지 한 게임을 기대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다만 이전의 두 게임에 비해 바이킹과 잉글랜드에 대해서는 아는 것이 전혀 없어 이전과 같이 낯선 장소에서 익숙한 건물이나 인물을 만나는 경험을 할 수 있을지 조금 걱정되기도 했는데 그런 걱정은 별 의미가 없었던 것이 어쎄신크리드 발할라가 출시되고 한참이 지나서도 게임을 플레이 할 시간을 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지난 몇 주에 걸쳐 아주 많은 시간을 들여 어쎄신크리드 발할라를 플레이 했습니다. 사실 중간에 상당히 지루한 느낌이 들어 그만 둘까 말까 한참을 고민했는데 저와 같은 느낌을 받은 사람이 저 한 명 뿐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는 기와 이렇게 된 거 끝까지 플레이 하기로 했습니다. 이 게임은 이전과 비슷한 듯 보이지만 퀘스트 구성이 상당히 지루할 수밖에 없는 구조로 만들어져 있고 또 시각적으로도 만족스럽지 않은 구석이 많아 이전처럼 황홀한 느낌을 줄만큼 훌륭하지는 않습니다. 가령 잉글랜드의 곳곳은 말기 이집트 같은 이색적인 느낌이나 고대 그리스 같은 다채로운 느낌과는 거리가 멀었고 잉글랜드 전역을 돌아다녀도 주요 랜드마크가 아니면 서로 다른 두 지역 사이에 시각적 차이를 느끼기가 어려웠습니다. 하지만 그런 세계의 경험이 모두 만족스럽지 않은 것은 아니었는데 가령 말을 타고 숲 속에 난 길을 달리다가 문득 완전히 쇠락한 거대한 건물의 잔해를 만날 때 이 건물이 로마 시대의 양식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느낀 반가움은 실망으로 가득 찰 뻔한 게임 경험을 끌어올렸습니다. 이 게임의 이전 시리즈에서 말기 이집트, 그리고 로마의 가장 영광스러운 시대를 경험한 바 있었습니다. 하지만 로마는 결코 영원하지 않았기에 시대의 흐름에 따라 쇠락하고 다른 국가들이 그 다음을 이었지만 전혀 예상하지도 않은 잉글랜드의 어느 숲 속에서 과거 로마의 가장 영광스러운 시대와 함께했을 건물을 만나니 이번에도 마치 그 건물과 천 년 만에 만난 것 같은 반가움을 느꼈고 이 세계가 시각적으로는 좀 아쉽지만 곳곳에 그런 반가움을 포함하고 있음을 알게 되자 게임이 조금 덜 지루해졌습니다.
이 게임이 근본적으로 지루한 이유는 퀘스트 시스템이 마치 멀티플레이를 고려한 것 같은 느낌으로 만들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가령 비밀 지도에 따라 메인 잉글랜드 레벨에는 나오지 않지만 작은 강 레벨에만 나오는 여러 지역을 습격하는 경험은 바이킹들이 잉글랜드로 세력을 확장하며 일어난 역사적 사실을 반복하고 또 마인크래프트와 테라리아에서 지겹게 농사를 짓고 심지어 팜 시뮬레이터에서도 농사를 지어 먹고 살아가며 최근에는 팰월드에서조차 농사를 지어 농사라면 좀 꺼려지던 마당에 남들이 잘 가꿔 놓은 자원을 약탈하는 경험은 꽤 즐가웠습니다. 게다가 어쎄신크리드 시리즈는 대체로 주인공 혼자 진행해 나가는 게임이고 이 게임 역시 거의 같은 시스템을 채용했지만 동료가 있어야만 열 수 있는 문, 그리고 궤짝 같은 간단한 시스템은 사실 시간을 들여 혼자서 거점의 모든 적을 처치할 수 있더라도 습격을 마무리하기 위해서는 동료가 필요하도록 만들고 또 그 동료들이 몰려와 약탈을 마친 다음 주변에 온통 불을 질러 연기가 자욱하게 만들어 홀로 플레이 하는 어쎄신크리드 시리즈임에도 나름 여럿이 거점을 습격하는 감정을 가질 수 있어 좋았습니다. 하지만 매번 강 레벨을 반복해서 플레이 할 때 이전에 약탈했던 거점이 다시 살아나 습격에 포함된 퀘스트에 집중하지 못하게 만들고 또 여러 습격 레벨마다 긴 플레이 시간을 요구하게 만들고 있는데 이는 마치 이 레벨이 멀티플레이 환경에서 반복 플레이를 요구하는 것처럼 느껴졌고 게임과 상당히 이질적이라고 느꼈습니다.
같은 문제는 잉글랜드 전역과 동맹 관계를 맺어야 하는 핵심 플레이에서도 나타나는데 근본적으로 이 게임은 혼자 잠입해 적을 암살하거나 직접 적과 맞서 싸워 보상을 획득하는 롤플레잉 게임입니다. 이 장르의 게임은 플레이어 자기 자신의 성장에 집중하는 것이 기본이고 거기서 조금 더 할 거리를 만들어 준다 하더라도 마을의 성장, 그리고 함께 습격을 나가는 바이킹들을 성장 시키는 정도가 이 장르에서 기대할 수 있는 거의 한계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여기에 잉글랜드 전역의 여러 세력들과 동맹을 맺는 각각의 과정들은 이 게임이 마치 삼국지처럼 전역을 통일하는 것이 핵심 목적인 게임이라면 몰라도 주인공인 에이보르가 노르웨이에서 잉글랜드로 내려와 새로운 정착지를 만들고 세력을 넓혀 가는 가운데 자기 자신을 둘러싼 비밀을 풀어 가는 것이 핵심인 게임에는 잘 어울리지 않습니다. 잉글랜드에서 세력을 넓혀 가는 과정은 어느 정도 납득할 수 있지만 잉글랜드 전체를 규합하고 바이킹과는 잘 어울리지 않는 부패한 권력으로부터 민중을 해방하는 등의 시나리오는 플레이 하면서도 고개를 갸웃하게 만듭니다. 개인적으로 잉글랜드 전역을 규합하는 플레이는 어쎄신크리드와 별 관계 없는 별도 게임처럼 보이고 습격 시스템은 멀티플레이 환경에서 반복 플레이를 요구하기 위한 요소로 보여 게임과 잘 어울리지 않으면서도 플레이 시간을 지속적으로 늘려 게임을 지루하게 만든 가장 큰 원인이라고 생각합니다.
어쎄신크리드 발할라가 신화 3부작의 앞 두 게임으로부터 받은 최고로 만족스러운 경험을 그저 그런 경험으로 마무리할 위기에 처했을 때 게임 후반으로 이어지는 사건들은 이전 오딧세이에서처럼 선행 인류와 현생 인류를 연결하는 스토리가 앞으로 어쎄신크리드 프랜차이즈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 충분히 설명하고 이전까지 펼쳐 왔던 스토리를 한 점에 모으는 역할을 하며 게임을 플레이 하던 도중에 느낀 지루함을 충분히 무마할 수 있었습니다. 신화 3부작의 현대 파트 주인공인 레일라 핫산의 시뮬레이션 밖 목표는 머지않아 지구에 닥칠 위험에 대항하는 것인데 이에 대한 힌트를 얻기 위해 과거의 기억을 탐색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암살단의 기원인 이집트 시대, 그리고 선행 인류와 현생 인류를 연결하는 그리스 시대를 지나 어쎄신크리드 발할라에서는 선행 인류가 드디어 현생 인류 뿐 아니라 게임 속 현대에 연결되며 시리즈 전체의 이야기가 한 점에 모입니다. 사실 북유럽 신화에 기반한 후반 스토리는 어느 정도 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물론 이전에 알고 있던 북유럽 신화의 일부를 오딘의 입장에서 직접 플레이 할 수 있어 나쁘지 않았지만 이 신화 속 세계는 2024년 한국에 살고 있는 제 입장에서 이 세계와 제 경험을 직접 연결 지을 수 있는 세계는 아니기에 썩 만족스럽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그런 북유럽 신화 속 세계가 사실은 선행 인류로부터 기원했으며 주요 등장인물 모두가 선행 인류이고 이들이 다시 이후 가상의 역사에 다시 나타난다는 스토리는 이들의 이야기가 현생 인류에 영향을 끼침은 물론 현대에 직접 와 닿는 순간을 큰 놀라움으로 만들기에 충분합니다.
어쎄신크리드 발할라의 시뮬레이션 속 주인공인 에이보르는 과거에 자신을 위협하던 적 밧심을 선행 인류가 만든 게임 속 현대의 애니머스와 비슷한 장치에 가두는데 성공합니다. 이 시점에 스토리는 밧심이 선행 인류로부터 기원했으며 주인공 에이보르도 마찬가지이고 선행 인류로부터 기원한 이전 북유럽 신화 속 원한 관계가 이 시대에도 계속해서 반복되고 있음을 이미 알려줍니다. 현대에 레일라 핫산은 지구에 가해지는 위협을 늦추기 위해 천 년 전 에이보르가 밧심을 가둔 바로 그 유적에 도달해 선행 인류의 시뮬레이션에 접속하지만 천 년 동안 시뮬레이션이 중단된 어둠 속에 있던 밧심을 만나 그를 시뮬레이션으로부터 해방시키고 자기 자신은 어쩔 수 없이 그곳에 남게 됩니다. 이 게임에서 밝혀진 과거 에이보르를 위협한 밧심은 천 년의 세월이 흐른 다음 게임 속 현대에 다시 나타나 영향을 끼치게 된 것입니다. 이 시점에 지금까지 시뮬레이션 밖 주인공이던 레일라 핫산은 이전 주인공인 데스몬드 마일즈와 같은 운명을 맞이해 게임 속 현대에서 사라지고 에이보르와 같은 시대를 살아가던 밧심이 다시 이전의 육체로부터 현대에 시뮬레이션 밖 주인공이 됩니다. 사실 이 장면을 직접 체험하기 전 이미 그리 좋지 않은 평가를 받았다고 알려진 어쎄신크리드 프랜차이즈의 2024년 기준 최신작 어쎄신크리드 미라지의 주인공 이름이 밧심이고 또 지금까지 시뮬레이션 또는 게임 자체에 몰입을 방해하던 현대 파트를 완전히 제거했다는 이야기를 기억해냈습니다. 그리고 이 순간 그게 무슨 의미인지 완전히 이해했습니다.
세 가지 신화는 그렇게 마무리 됩니다. 첫 두 신화는 프랜차이즈 관점에서 이 모든 이야기의 시작, 그리고 선행 인류와 게임 속 설정을 연결해 주었고 마지막 신화는 그 속에 반복되는 역사가 게임 속 현대와 만나 지금까지 진행해 온 선행 인류와 암살단 사이에 거의 모든 이야기를 깔끔하게 마무리 지었습니다. 또한 이 결말에 기반해 미래의 어쎄신크리드 프랜차이즈가 이 한 점으로부터 다시 시작할 뿐만 아니라 또 시간이 지난 어느 미래에 지금 선행 인류의 시뮬레이션에 묻어 둔 이전의 두 시뮬레이션 밖 주인공들 역시 유효하게 등장할 여지가 있을 겁니다. 비록 최신 시리즈가 썩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지만 마지막 신화의 결말에 연결되는 그 다음 이야기를 이어서 플레이 하지 않을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세 가지 신화는 결국 그 마지막이 이전만큼 대단하지는 않았지만 시뮬레이션 속 경험만이 그렇고 세 번째 신화의 결말은 시뮬레이션 밖 경험을 최고로 만들어 주었습니다. 이 모든 경험은 남은 인생 전체에 걸쳐 역사 속 세계와 사건을 가상의 이야기를 통해 직접 체험하게 해 줬을 뿐 아니라 이에 기반해 이후 접하는 여러 역사가 이 경험에 기반해 서로 연결되어 더 깊고 풍부하게 이해할 수 있는 기반이 되었습니다. 또 신화의 결말은 프랜차이즈 전체에 걸쳐 펼쳐진 스토리를 다시 한 점으로 모아 이후에도 계속해서 펼쳐질 스토리를 시작할 완전히 새로운 지점을 만들어냈습니다. 결과적으로 이 세 가지 신화 속 경험은 완벽하지는 않고 또 끝이 좀 삐걱거리기는 하지만 충분한 시간을 들여 느긋하게 세계를 경험할 생각이 있다면 추천하고 싶습니다. 저 자신은 일단 세 가지 신화를 그만 놓아 주고 어쎄신크리드 미라지가 스팀에 나타나 적절한 가격으로 할인하는 시점을 마치 언젠가 시뮬레이션을 다시 가동 시킬 기억의 전달자 레일라 핫산이 나타날 때까지 천 년을 기다리던 밧심처럼 기다릴 작정입니다.
이번 44호에도 다섯 가지 이야기를 준비했습니다.
지난 2019년부터 자잘한 작업을 자동화하고 또 인터넷에서 제 활동을 뒷받침 해 주는 여러 서비스를 돌리는 용도로 라이트세일에 작은 인스턴스 하나를 띄워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여기에는 IFTTT나 Zapier처럼 여러 서비스에 걸친 API 연동을 자동화 해 주는 n8n, 온갖 자잘한 정보를 쌓는 MySQL 데이터베이스, 여기에 쉽게 접근할 수 있게 해 주는 phpmyadmin, 개인 파일의 버전관리에 사용하는 Perforce, 여러 서비스를 모니터링 하는 uptime-kuma, 마스토돈 서버에 나타난 스팸을 모니터링하고 처리하는 스크립트 같은 여러 도구가 돌아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퍼포스 사용량이 늘어나면서 원래 월 5-10달러만 지불하면 됐던 라이트세일 이용요금이 폭발적으로 늘어났습니다. 한동안은 가난뱅이의 버전관리 서버 운영에 소개한 대로 제가 잠자는 동안에는 서버를 중단 시켰지만 여전히 높은 스토리지 비용이 청구됐고 이러다가는 열심히 돈 벌어 제프 베조스가 더 부자가 되도록 하다 끝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지난 몇 년에 걸쳐 절대 집 안에 서버 기계를 두지 않겠다고 다짐하고 행동해 왔지만 이 다짐을 깨기로 했습니다.
쿠팡에서 할인하는 맥미니를 사용해 이전 라이트세일에서 돌던 온갖 소프트웨어를 모두 이 기계에서 동작하게 만들었고 이전 라이트세일을 사용할 때는 램이 1기가 뿐이어서 엄두도 못 내던 도커를 사용해 서비스 각각을 분리했습니다. 실은 도커를 처음 써보는 거라 이렇게 직접 서비스에 적용해도 되는 건지 좀 의심스럽기는 하지만 잘 동작할 뿐 아니라 아주 오래 전에 집 안에 서버를 두던 것에 비해 네트워크 연결조차 그냥 무선으로 처리해 전원만 덜렁 꽂혀 있어 간결한 점이 좋습니다.
하드웨어 유지보수 관련 이슈를 겪고 싶지 않아 몇 년 동안 라이트세일을 사용해 왔지만 서버에 대한 제 용도가 저렴하게 사용할 수 있는 한계를 넘은 것 같아 어쩔 수 없이 서버 하드웨어를 집 안에 두게 됐고 잠재적인 하드웨어 유지보수 이슈를 감당할 수밖에 없게 됐지만 현대에는 이전 시대에 비해 하드웨어가 좀 더 신뢰할 수 있게 동작할 거라는 작은 기대를 해 봅니다. 또 처음으로 도커라는 소프트웨어를 사용해보며 배운 점도 있는데 이런 이야기는 나중에 따로 해보겠습니다.
그럼 또 다음 주에 뵙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