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아무도 아메리칸 프로메테우스를 읽은 사람은 영화 오펜하이머를 보면 안된다고 경고해 주지 않았나요?

책 아메리칸 프로메테우스를 읽고 감정의 변화를 느낀 적 있다면 영화 오펜하이머를 볼 때 조금 주의하세요.

왜 아무도 아메리칸 프로메테우스를 읽은 사람은 영화 오펜하이머를 보면 안된다고 경고해 주지 않았나요?

지난번 은하수를 보러 가면서 걱정한 점은 혹시 보고 싶었던 영화가 너무 일찍 내려가는 바람에 영화를 영화관에서 못 보게 되지 않을까 싶은 거였습니다. 마지막 작별인사를 준비하며에서 떠들썩하게 마치 그 주에 당장 마지막으로 인디와 작별 인사를 하러 갈 것처럼 굴었지만 주말에 다른 일이 생겨 영화관 방문을 한 주 미뤘는데 영화는 흥행에 참패해 순식간에 주변 극장에서 사라지고 있었습니다.

특히 비슷한 때에 개봉한 미션임파서블 새 시리즈가 대규모로 스크린을 점유하는 상황이어서 흥행하지 못할 만한 웬만한 영화가 영화관에서 사라지고 있었습니다. 드디어 시간이 나서 혹시 인디와 마지막 작별 인사를 할 수 있을까 하고 영화관 앱을 조회했더니 집에서 가장 가까운 새 인디애나존스를 아직 상영하고 있는 영화관은 집에서 64킬로미터 떨어진 곳이었고 아무리 시간이 나도 앞뒤에 그 거리를 이동할 시간을 포함하고 나니 도저히 낼 수 없는 시간이라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2023년 8월 31일 현재 영화는 아직 유료로 온라인에 공개되지 않았고 여전히 인디와 마지막 작별 인사를 하지 못했습니다.

영화 오펜하이머는 역사적 사실을 다루고 있지만 스포일링에 예민한 편이라면 여기부터는 읽지 않으시는 것을 추천합니다. 책 아메리칸 프로메테우스와 영화 오펜하이머의 내용, 그리고 결말을 간접적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오펜하이머라는 영화가 제작 중이고 또 개봉 예정이라는 이야기를 전해 듣고 도대체 무슨 내용일지 짐작할 수 없었습니다. 2022년 상반기에 읽은 책 리뷰 때 드디어 오래 전에 사 놓고 앞 부분만 읽은 다음 자리만 차지하고 있던 아메리칸 프로메테우스를 끝까지 읽고 온갖 생각을 했습니다. 마침 운 좋게도 비슷한 시기에 파인만이나 하이젠베르크의 책을 읽고 또 그 시대의 이야기에 관심을 가졌는데 덕분에 아메리칸 프로메테우스에서 그 동안 읽지 않았던 트리니티 실험 이후에 일어난 오펜하이머 본인과 가족, 주변 사람들에게 벌어진 일의 배경과 그 시대상을 조금은 그려볼 수 있었습니다. 그런 기억에 근거해 만약 영화 제목이 트리니티 실험 이후 그에게 붙은 이름 아메리칸 프로메테우스라면 그의 업적을 칭송하는 내용이거나 책 제목과 마찬가지로 그의 전기일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영화 제목이 오펜하이머라면 어쩌면 그에게 붙은 여러 수식어를 떼고 남은 세계대전과 냉전시대, 그것도 상호확증파괴 시나리오가 성립하는 새로운 세계를 여는데 기여한 개인의 이야기일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했습니다.

오래 전에 책 아메리칸 프로메테우스를 사 놓고 앞 부분만 읽은 다음 더 이상 읽지 않은 가장 큰 이유는 이미 앞부분에서부터 오펜하이머 개인의 감정에 이입한 채로 책을 읽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인생의 전반부에 여러 사람을 만나고 여러 사건을 겪으며 현대를 사는 사람 관점으로 볼 때 그의 생각은 그 시대에는 많이 위험하게 받아들여질 수 있는 방향으로 흘렀습니다. 당시 미국은 전쟁 중이었고 국가는 모든 생산력을 전쟁에 집중하고 있었습니다. 전투에 직접 참여하지 않는 오펜하이머를 포함한 민간인들은 그들이 접근할 수 있는 정보에 기반한 생각을 교환했고 이 중 일부는 어쩌면 당시 미국이 처한 상황과 미국이 자국민들에게 심고 싶었던 사상과는 차이가 있었을 수도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오펜하이머의 주변 사람들, 그들의 생각과 에피소드들은 이 이야기가 결코 해피엔딩으로 이어지지 않을 것임을 강하게 암시했습니다.

학창시절을 보내고 또 이론물리학 분야로부터 의미 있는 업적을 기록하고 또 저 유명한 멘해튼 프로젝트의 과학 총괄로써 프로젝트를 성공으로 이끌며 배우자 키티에게 침대보를 갈아도 된다는 메시지를 전달할 때 까지는 마치 책을 읽는 제 스스로가 트리니티 실험장에 있었던 것 같은 느낌을 받으며 책을 따라갔습니다. 하지만 트리니티 실험 후 그렇게 개발된 무기가 실제로 사용되어 전쟁이 종료되었고 이 사실에 그 무기 개발에 총 책임자였던 오펜하이머의 감정을 책이 이끄는 대로 따라 가고 있었는데 전쟁이 끝난 다음 미디어로부터 엄청난 조명을 받으며 세상이 이 사람을 결코 가만 놔두지 않으리라는 사실을 문득 깨달았을 때 책이 저를 이끈다고 해서 계속해서 따라가다가는 마음이 힘들 수도 있겠다는 걱정을 합니다. 그리고 마침내 그가 트루먼 대통령을 만나 손에 묻은 피 이야기를 했을 때 그로부터 수 십 년이 넘게 흐른 미래의 제 3세계에 살고 있는 사람 입장에서 볼 때 이제 이 사람은 결코 행복한 결말을 맞이할 수 없으리라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더 큰 고통을 맞이하기 전에 책을 덮었고 오랫동안 읽지 않았습니다.

이 책은 위압감을 주는 두께 때문에 책장 맨 아래 칸 구석에 꽂아 놨지만 항상 그 근처를 지나갈 때 존재감을 드러냈고 그 책의 존재를 절대 잊어버릴 수 없게 만들었습니다. 집을 청소하다가도, 빨래를 정리하다가도, 또 힘든 하루를 보낸 다음 퇴근해 의자에 널브러져 있을 때도 그 책은 피곤한 눈을 꾹 감았다 뜨면 시야에 들어왔고 트루먼 대통령과 대면한 오펜하이머가 아마도 맞이하게 될 결코 행복하지는 않을 결말을 눈 앞에 두고 언제까지 피해 다니기만 할 것인지 고민했습니다. 그리고 작년 언제 즈음 기어코 책장의 먼지 쌓인 맨 아래 칸에서 그 앞에 쌓인 먼지를 쓸어내며 커다란 책을 뽑아 펼쳐 그 다음의 이야기와 대면합니다. 마치 오펜하이머가 한 가지 방법이라고 생각한 전쟁을 끝내기 위한 의사결정을 반복하고 있었을 대통령에게 자신의 의견을 감정적으로 표현해 나쁜 결과를 얻었지만 그 대면을 피하지 않은 것처럼 거기까지 읽고 느낀 행복하지 않은 미래를 결국은 대면하게 됐고 이번에는 중간에 책을 덮지 않고 끝까지 이야기를 따라갑니다.

매카시즘. 실은 이 단어를 이전부터 알고 있었지만 이게 사람 이름으로부터 비롯된 거라는 사실은 처음 단어를 접했을 때보다 훨씬 늦게 알게 됐습니다. 커다란 전쟁이 끝나고 세계는 이념에 따라 나눠져 새로운 냉전 시대가 시작됐는데 직접적인 전쟁으로 이어지지는 않았지만 양분된 세계는 전쟁을 방불케 하는 첨예한 대립 상태로 치달았고 이에 따라 마치 이전에 실제 전쟁을 치르던 시대 만큼이나 자국민들의 사상을 통제하고 싶었을 것 같습니다. 이런 사회상은 이념을 통해 사람들을 분리하고 정의함으로써 효과적으로 사람을 통제할 수 있는 방법이었는데 미래에 사는 사람 입장에서는 이 때 어떻게 행동해야 이 시대를 무난히, 또는 무사히 넘길 수 있었는지 알 수 있지만 그 시대를 직접 살아가는 사람 입장에서, 또 사회적으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위치에서는 그런 행동이 어떤 위험을 수반하는지, 또 어떤 결과를 초래할 수 있는지 잘 알기 어려웠을 수 있습니다.

과거에 일어난 어떤 생각지도 못한 시점의 미래에 엄청난 영향을 끼치게 되는데 아메리칸 프로메테우스에서는 그런 일이 바로 ‘슈발리에 사건’이라고 생각합니다. 1930년대 후반 오펜하이머와 친구가 되었지만 친구로써 만난 편안한 자리의 어느 한 순간 연구 자료를 넘길 수 있느냐고 물었고 오펜하이머는 이를 거절하지만 친구라고 여긴 이 사람의 이름을 프로젝트 보안 담당자에게 제대로 말하지 않고 또 이후 거짓 진술을 합니다. 이 사건은 미래에 오펜하이머를 파멸 시킨 가장 큰 원인으로 작용하는데 책에서는 처음부터 이 사건을 그의 삶에서 가장 미스테리한 부분 중 하나로 언급하며 이 사건이 미래에 미칠 영향에 대한 힌트를 주고 시작하지만 사건을 시간 순으로 나열해 놓고 보면 슈발리에 사건 때 오펜하이머는 이 사건, 그 이후의 진술, 미래의 진술 번복이 이를 근거로 한 그 자신을 포함한 주변의 파멸의 단초가 되리라 예상하지는 못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저 친구를 보호하려 했고 그와 동시에 프로젝트에 위험성을 보고하는 두 가지 목표를 달성하려 했지만 결국 이 사건은 오펜하이머를 파멸 시킵니다.

오펜하이머의 바램과 달리 핵무기의 개발로 세계는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고 그의 예상대로 세계는 서로 더 많은 핵을 가지기를 원했고 실제로 가졌으며 그 자신과 그 주변 사람들이 파멸하고 또 오펜하이머의 자식 세대까지 파멸하는 결말을 맞이합니다. 아메리칸 프로메테우스는 이렇게 그 자신, 그 주변 사람들, 그의 자식들 마저 파멸해 가는 과정을 하나하나 낱낱이, 그리고 또 적나라하게 나열하는데 프린스턴 고등연구소 소장으로 취임하며 스트로스와 관계가 시작되고 이 관계가 틀어지며 저 유명한 청문회를 통해 처음으로 파멸이 시작됩니다. 이로부터 오펜하이머 본인, 배우자의 신체적, 정신적 고통과 알콜 중독, 주변 사람들의 해고에 의한 경제적인 고통, 그의 자식 세대에 까지 이른 사회적 낙인에 의한 죽음이 차례로 이어지며 책 표지에 그려진 사람과 그를 둘러싼 모든 세계가 하나하나 조각조각 파괴되어 책을 이룬 종이 저 편으로 무너져 내렸습니다.

세계 역사에 한 사람이 세계 질서와 규칙을 이렇게 까지 크게 바꾸고 또 학문적으로 커다란 업적을 이뤘으며 정치적으로도 자신이 열어 젖힌 세계에서 자신의 창조물이 가져올 위험을 그 시대에 어울리지 않고 또 전혀 효율적이지 않은 방법으로라도 수습해보려고 한 사람이 어떻게 정신적으로, 신체적으로, 또 사회적으로 어디 까지, 또 어떻게 까지 파멸 할 수 있는지 생각해 볼 계기였습니다. 또 그는 지속적으로 세계대전 당시 우방이던 소련에게 정보를 공유해야 함을 주장했는데 어떻게 보면 이는 순진한 생각으로 비칠 수 있지만 하이젠베르크의 부분과 전체에서 독일의 물리학자들은 세계대전 중 핵무기 개발 대신 현대적인 원자력 발전에 가까운 주제의 연구에 집중하면서 결과적으로 나치보다 미국이 먼저 핵무기를 가지게 만드는데 기여합니다. 결국 미국 역시 독일 이론 물리학자들의 생각과 이들의 연구 상황을 파악했다면 세계대전을 끝내고 완전히 새로운 세계를 시작한 이 극단적인 무기를 창조해내는 대신 어떤 다른 선택을 했을 가능성도 없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기억의 기반을 가지고 영화관에 갔고 영화가 시작됩니다. 사실 개인적으로 걱정한 점은 만약 이전에 읽은 책의 시간 순서대로 진행된다면 첫 30분은 재미있겠지만 나머지 2시간 30분은 아주 고통스럽거나 아주 재미없을 거라는 점입니다. 옆 자리에 고통스러운 냄새를 풍기는 오징어를 들고 들어온 남자가 앉았길래 오늘의 영화 관람은 그리 순탄하지 않을 거라고 예상했지만 몇 분 지나자 그 자리를 예매한 다른 사람들이 나타나고 그 남자는 몇 칸 떨어진 다른 자리로 이동하면서 세 시간 내내 오징어 냄새에 고통 받으며 ‘저기 한 조각만 주실래요?’라고 물을지 말지 고민하느라 영화에 집중 못하는 사태를 모면합니다.

그리고 조명이 어두워지고 영화가 시작됐는데 차에서 내린 오펜하이머를 누군가가 안내하는 장면이 나타나는 순간 이 장소가 이미 트리니티 실험이 일어나고 세계대전이 끝난 다음의 프린스턴 고등연구소라는 사실과 지금 오펜하이머를 안내하는 바로 저 사람이 그를 파멸 시키는데 일조한 바로 그 스트로스라는 사실을 깨닫고 이 영화는 걱정처럼 초반 30분만 재미있는 영화가 아닐 것이며 오히려 재미있는 부분 없이 세 시간 내내 고통스러운 영화가 될 거라는 사실을 바로 알 수 있었습니다.

평소에 영화나 책의 스포일링을 그리 신경 쓰지 않습니다. 뭔가 대단하고 또 예상하지 못한 결말이 있다 하더라도 그 결말을 반드시 제작자가 설정한 방식 그대로 경험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도 않습니다. 물론 그 경험이 대단할 수 있지만 결말을 안다고 해서 그 과정이 가진 가치가 사라지지 않으며 그 과정으로부터 경험할 수 있는 감정의 변화 역시 의미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스포일링을 당하지 않았다면 그 상태로 미디어를 접할 수 있고 만약 스포일링을 당했다면 미래를 알고 있는 상태로 그 미래에 도달하는 드라마에 집중하는 경험을 할 수 있습니다. 영화 오펜하이머는 미래를 알고 있는 사람이 그 미래에 아무런 영향을 끼칠 수 없는 상태에서 그저 파멸로 가는 미래를 바라보기만 해야 하는 입장에서 드라마를 보게 만들었습니다.

영화 속에 새로운 등장인물이 나오고 그 사람이 책에서 읽은 누구인지 알게 되고 또 상황이 일어나고 그게 무슨 사건인지 알게 될 때마다 책을 읽으며 느낀 감정이 되살아나 시간이 흐르는 내내 영화를 보고 있기 쉽지 않았습니다. 마치 영화 인터스텔라에서 책장 반대쪽을 두드리며 가지 말라고 외치는 장면이나 영화 어라이벌(한국명 컨텍)의 원작 네 인생의 이야기 결말 처럼 미래를 알고 있지만 이를 피할 수 없음을 받아들이고 한편 그 안으로 걸어 들어가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방금 영화에 처음 등장한 저 사람이 바로 진 테트록이고 또 모임에서 가볍게 이야기를 나누는 저 사람이 바로 슈발리에이며 지금 이 상황이 저 유명한 슈발리에 사건임을 깨닫는 순간 순간마다 미래를 알고 있지만 결코 이를 바꿀 수 없이 그저 그 미래를 향해 계속 다가가기만 하는 무력감, 그리고 안타까움을 느꼈습니다.

책에서는 말년의 생활, 그 자식 세대 까지 계속된 파멸, 그의 죽음과 재조명에 이르고 있는데 비해 영화는 아마도 감독이자 각본가가 창조했을 것 같은 아인슈타인의 말로 끝을 맺는데 어쩌면 감독은 그 한 마디 말을 하기 위해 세 시간 짜리 영화를 만들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미 글 전체에서 수없이 영화 스포일링을 한 마당에 그 대사를 정확하지 않은 기억에 의존해 옮기지는 않겠습니다. 하지만 아메리칸 프로메테우스라 불리는 오펜하이머가 겪은 온갖 파멸은 세상을 바꾼 업적을 달성한 사람들이 오랜 세월에 걸쳐 겪은 서로 다른 파멸과 그리 다르지 않으며 오펜하이머 역시 새로운 세계를 시작했으니 그 댓가를 치러야 한다는 사실을 실존 인물이 말하는 가상의 대사를 통해 영화 속 본인에게 말하는 그 장면은 마치 비록 영화 속 미래에 아무런 영향을 끼칠 수 없어 고통 받으며 세 시간을 견뎌 온 저를 위로하는 것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왜 아무도 아메리칸 프로메테우스를 읽은 사람은 영화 오펜하이머를 볼 때 주의하거나 차라리 영화를 피하라고 이야기해 주지 않았을까요. 영화가 계속되는 세 시간 내내, 정확히는 영화가 시작된 다음 늙은 아이언맨의 얼굴을 한 바로 저 사람이 책에서 읽은 스트로스라는 사실을 알게 된 순간부터 영화가 끝날 때까지 재미있지만 괴로웠고 두근거렸지만 가슴이 아팠습니다. 트리니티 실험에 성공할 때는 등장인물들 처럼 기쁜 감정을 느꼈지만 이제부터 시작될 진정한 파멸을 예상하고 그 파멸을 차곡차곡 따라갈 때는 너무나 힘들었습니다. 마지막에 아인슈타인의 말이 그런 괴로움을 위로해 주는 느낌을 받으며 영화관을 나섰습니다.

이미 많은 분들이 영화를 보셨겠지만 만약 아메리칸 프로메테우스를 읽은 적이 있고 책을 읽으며 어떤 감정의 변화를 경험한 적이 있다면 영화를 보기 전에 좀 더 각오하고 보는 편이 좋을 것 같습니다. 이 경험은 결과적으로 좋았지만 그 과정은 괴로웠습니다.

이번 주에도 다른 다섯 가지 이야기를 준비했습니다.


에어컨의 날
과거 어느 여름날 반복되는 더위를 참지 못한 저는 딱 하루만 더 참으면 되는 상황에 충동적이고 또 잘못된 소비를 저지르고 맙니다.
인간 vs. 아틀라시안 인텔리전스
아틀라시안 인텔리전스는 그동안 사용해 온 위키를 기계에게 읽힌 다음 질문할 수 있다는 점에 기대하게 만들었지만 아직 부족합니다.
감히 우리가 걸작에 손 댈 수 있을까?
이전에 역사적으로 의미 있는 레벨을 사용해 흥미로운 결과를 얻었습니다. 이번에는 그런 레벨을 수정해야만 할 상황에 처했고 걸작에 손을 대는 것이 올바른지 고민입니다.
왜 인벤토리에서 아이템을 더블클릭 해서 사용하게 만들었을까?
인벤토리에서 아이템을 바로 사용할 수 있는 게임과 그렇지 않은 게임은 그 의도가 크게 다릅니다.
자기가 뭐 만드는지 아는 기획자가 있어요?
스스로 뭘 만드는지 자조적으로 모른다고 말해 왔지만 그러면 안 되는 자리에서 그렇게 말해 큰 실패를 겪고 말았습니다.

지난 처음 본 은하수세계를 잠시 떠나는 의식 끄트머리에서 주제의 양에 집중하는 글쓰기를 하다 보니 오타를 잘 찾지 못해 읽으시다가 오타를 발견하시면 답글을 통해 알려 달라는 부탁을 드린 적이 있습니다.

글을 읽어 주시는 것으로도 이미 충분히 감사한데 여기에 눈에 띈 오타를 알려 달라는 부탁 까지 하는 일이 얼마나 염치 없는지 잘 알고 있지만 또 오타를 그냥 전시해 두기에는 너무 부끄러웠거든요. 그런데 드디어! 처음으로 오타를 지적해 주신 분이 계셨습니다! 덕분에 부끄러운 오타를 수정했고 제 부끄러움의 총량이 감소했습니다. 이 자리를 빌어 감사드립니다!

오타를 발견하시면 그 글의 답글, 마스토돈 계정, 엑스(구 트위터), 이메일등 어느 수단으로라도 알려주시면 제 부끄러움의 총량을 줄여 주실 수 있습니다. 항상 여기까지 읽어 주시는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또 다음 주에 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