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vP는 정말 저렴한가? 의사결정 따라잡기

게임 만들던 스타트업의 피봇 과정에서 제품의 방향성이 바뀌었습니다. 이 의사결정은 제 소관이 아니지만 PvE가 PvP로 바뀜에 따른 비용 절감 목표를 달성할 수 있을지 생각해봤습니다.

PvP는 정말 저렴한가? 의사결정 따라잡기

지난 주 31호 뉴스레터에 공유 드린 라이브 서비스의 정수와 이 글에서 인용한 이전에 작성한 다른 글들을 통해 여러 번에 걸쳐 온라인 멀티플레이 게임에서 개발팀이 결코 고객과 컨텐츠 소비 속도로 경쟁할 수 없기 때문에 고객의 요구에 관계 없이 PvP를 도입하곤 한다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이는 근본적으로 게임에 신규 컨텐츠를 투입하는데 필요한 비용과 시간, 그리고 흥행 실패 가능성에 따른 위험을 고려할 때 개발팀이 고객을 대상으로 컨텐츠 소비 속도를 결코 감당할 수 없기 때문에 고객들이 서로 상호작용을 통한 서사를 만들어낼 가능성이 높다고 검증된 PvP를 통해 개발팀이 시간을 벌어 이후 업데이트를 준비할 수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난 다음 이 주장들을 다시 살펴보니 마치 PvE에 비해 PvP를 제작하고 운용하는데 비용이 덜 들기 때문에 PvP를 개발한다는 식으로 읽힐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실상은 PvP 역시 흥행에 실패해 왜 룩템을 PvP 보상에만 넣나요?에 설명한 별로 달갑지 않은 방식으로 고객들을 반 강제로 PvP 플레이에 밀어 넣기도 합니다. 오늘은 고객의 컨텐츠 소모 속도를 감당하기 위한 관점에서 PvP는 의미 있지만 이 말이 PvP의 제작 비용이 낮음을 의미하지 않음을 설명해 보려고 합니다.

참여하는 프로젝트는 처음 설계할 때 PvP를 아예 고려하지 않고 시작했습니다. 상당히 오랜 기간에 걸쳐 PvP플레이에 대한 고려 없이 PvE 플레이를 개발하며 미래에 고객으로부터 요구가 있을 때에 한해 PvP를 투입할 계획이었습니다. 종종 과거에 스타크래프트 시리즈 같은 RTS 게임을 만들 때 먼저 PvP를 만든 다음 이 기반으로 PvE를 개발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고 이 개발 순서에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PvE를 먼저 만들었는데 나중에 도입된 PvP에서 유닛의 특징이 변경되어야 한다면 이전에 개발한 PvE에 광범위한 영향을 주어 개발 비용을 올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어느 정도 궤도에 오른 PvP에 기반해 PvE를 개발한다면 이런 문제로부터 상대적으로 자유로울 수 있으며 PvP 요구사항이 변경된다 하더라도 그 반대 방향에 비해서는 제작비 상승 폭이 훨씬 적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래서 초반에 PvE를 우선 개발한다는 계획에 의문을 가졌습니다. 삼인칭 슈터라는 장르를 보는 순간 분명 고객들은 PvP를 떠올릴 텐데 PvP없이 PvE를 개발한다면 이를 고객들에게 납득시킬 수 있을지 자신이 없었습니다.

이런 우려에도 여러 논의를 거쳐 결국 PvE 개발을 시작합니다. PvE는 NFT를 구입한 고객들을 대상으로 NFT를 포함한 이더리움 지갑으로 로그인 하면 지갑에 있는 NFT를 감지해 인게임에 캐릭터를 표시하고 이 캐릭터로 직접 플레이 해 몬스터를 소탕하는 내용입니다. 몬스터를 소탕하다 보면 나중에 보스가 등장 하는데 보스는 강력한 근거리 및 원거리 공격을 퍼붓는데 이를 이겨 내고 보스 체력을 0으로 만들면 승리합니다. PvE 모드 개발은 우리들이 처음 모여 합을 맞춰 보는 팀이라는 사실을 감안할 때 꽤 순조로웠는데 슈터 장르로써의 기본적인 동작, 서버 기반의 동기화 같은 핵심 기능들을 미들웨어에서 제공하는 기능을 적극적으로 사용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플레이 가능한 빌드는 꽤 빠르게 개발 되었지만 본격적으로 자잘한 문제에 대응하기 시작하자 여느 개발과 비슷하게 겉보기에는 큰 변화가 없지만 사람들을 계속해서 바쁘게 만드는 여러 문제를 고치게 됐습니다. 이 상황은 전혀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아무리 고가의 미들웨어로 빠르게 시작한다 하더라도 결국 우리들의 의도에 맞는 동작을 보이는 상태를 만들기 위해서는 미들웨어 수준에서 아무리 동기화나 슈터 기본 기능을 유연하게 제공한다 하더라도 눈에 잘 안 띄는 여러 부분을 스스로 개발 해야만 했습니다.

그렇게 한참 PvE 개발이 어느 정도 진행되어 그럭저럭 여러 사람이 동시에 플레이 해도 나쁘지 않게 동작하며 미래에 우리가 만들어 갈 PvE 컨텐츠의 방향을 충분히 볼 수 있게 되어 갈 때 즈음 문득 딱 이 모드 하나만으로 NFT 홀더들을 대상으로 한 비공개 서비스를 진행하는 건 좀 무리가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고객들은 기존에 실제 빌드를 아예 만들 능력이 없거나 만들더라도 그다지 인상적이지 않은 수준의 빌드 밖에 만들 수 없는 개발팀에 여러 번 실망하며 지쳐 있었고 그런 고객들은 우리들에게도 어느 정도 비슷한 시선을 보내고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그에 비해 우리들은 실제 빌드를 개발할 능력이 있었지만 이를 증명할 방법은 결국 실제 우리가 말한 대로 동작하는 빌드를 개발 시점에 따라 NFT홀더들에게 실제로 보여주는 방법 밖에 없습니다. 고작 PvE 미션 하나를 동작하게 만들었을 뿐이었지만 사실 이걸 게임 플레이에 대한 버티컬슬라이스라고 주장할 수는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냥 순수하게 게임 만드는 사람 입장에서 우리들을 증명하는 것을 떠나 고작 보스를 잡는 PvE게임 모드 하나를 제공하는 수준으로 비공개 테스트를 해도 괜찮은 것인가 싶은 의문이 계속해서 들었습니다. PvE 모드에 등장하는 보스는 이 보스 조차 NFT 시장에서 널리 알려진 디자이너의 몬스터 NFT를 기반으로 하고 있었는데 사실 이 정도면 우리들이 앞으로 뭘 어떻게 해 나갈 지 충분히 설명할 수는 있을 겁니다. 하지만 이것 만으로는 좀 부족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우리가 만든 것은 몬스터를 대상으로 플레이 하는 PvE 모드였지만 암만 생각해봐도 지금까지 만든 메커닉을 언리얼 에디터 상에서 복제해 무기를 한 세트 더 만들고 게임모드 에셋을 하나 더 정의해 플레이어들 사이에 서로 공격할 수 있게 만들면 적당히 꾸며진 레벨에서 서로 쏘며 플레이 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다행히도 당시 PvE게임모드는 해결하기 좀 난처하고 또 잘 재현되지 않는 블로킹 이슈를 해결하고 있어 문제가 재현되기 전에는 시간을 좀 낼 수 있을 것 같았고 이 틈을 타 미래에도 한동안은 PvP를 개발하지 않기로 하고 시작한 프로젝트에 PvP를 넣어 보자는 의견을 냅니다. 그리고 레벨은 공개 되어 있는 한때 전설적인 위상을 가졌던 레벨을 가져와 테스트 해 보면 어떻겠느냐는 제안을 했고 감사하게도 제안이 팀에 받아들여집니다. 실은 이전에 다른 TPS 프로젝트에 참여할 때도 우리들 만의 레벨을 제작하기 전에는 게임을 개발하며 우리들 스스로도 레벨에 대한 감을 잡기 위해 당시 널리 알려진 다른 게임의 레벨을 그대로 복제 해다가 사용한 적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내부 테스트 용도로만 사용하고 출시할 때는 이 레벨을 모두 제외한 채로 내보냈습니다.

선택한 레벨은 저 유명한 Q3DM17이었는데 1990년대 말에서 2천년대 초중반을 장식한 아레나 슈터 장르를 발명한 게임 중 하나인 ‘퀘이크 3 아레나’의 데스매치 레벨입니다. 이 레벨은 싱글플레이 모드에도 나오는데 사방이 트여 있는 구조에 점프를 통해서만 이동할 수 있는 위치에 현대의 스나이퍼라이플과 거의 비슷하게 동작하는 레일건이 놓여 있고 일단 레일건을 먹으면 탁 트인 레벨 구조 덕분에 레일건 싸움이 되기 쉽습니다. 그러면서도 레벨건에 눈독을 들이지 않는다면 숨을 곳이 거의 없는 근거리에서 중거리 무기로 정신 없는 교전을 할 수 있었습니다. 어째서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는 사람들과 멀티플레이를 할 때도 유난히 이 레벨을 많이 사용했는데 다른 레벨로 넘어갔다가도 지겨워지면 다시 이 레벨로 돌아와 레일질을 하고 있는 자신들을 발견하게 되는 어떻게 보면 퀘이크의 고향 같은 느낌이 듭니다. 다만 이 레벨을 게임에 가져와 사용하려고 할 때 좀 걱정한 점은 퀘이크는 FPS 장르로 화면에 내 캐릭터가 보이지 않지만 우리는 TPS 장르로 화면에 내 캐릭터과 보이기 때문에 다른 느낌이 들지 않을까 하는 점입니다. 실제로 사람들은 이 레벨에서 데스매치를 플레이 하며 자기 자신이 화면에 보이거나 보이지 않거나에 별로 신경 쓰지 않았는데 그게 슈터 장르의 속성이기 때문에 그랬을지 아니면 사람들 대부분은 이 레벨을 퀘이크를 통해 접하지 않았기 때문일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모양은 똑같지만 그냥 흰색 벽으로 둘러싸인 Q3DM17에서 플레이를 만드는 사이에 아트에서 이 레벨을 우리 테마에 맞는 그럴싸한 모양으로 만들어 주셨고 제 입장에서는 이전에 비해 시인성이 떨어져 훨씬 많이 죽기 시작했고 또 사람들을 이전에 비해 훨씬 덜 맞추게 되었지만 꽤 게임에 어울리는 모양으로 굳어집니다. 이 상태로 NFT홀더를 대상으로 한 서비스를 진행했는데 PvE플레이에 비해 PvP가 압도적으로 더 많이 플레이 됩니다. 어쩌면 한동안 아레나 장르의 슈터가 현대적인 관점으로 순화되어 현대에는 이전과 같은 아레나 슈터가 드물던 때에 이런 플레이를 할 수 있는 환경이 나타나 더 강하게 반응한 것일 지도 모르겠습니다. 만약 PvE 게임모드 하나만 있었다면 고객들이 더 오랜 시간 플레이 하는데 무리가 있었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PvP 모드가 계속해서 고객들을 게임에 남도록 해 준 덕분에 꽤 근사한 숫자를 얻었고 우리들 스스로도 고객들 사이에 섞여 플레이 하며 간만에 이런 아레나 장르를 플레이 할 기회를 얻었습니다. 이 작은 서비스가 끝난 다음 이전까지는 PvP는 먼 미래에 고려하겠다는 방침이 조금 바뀌어 다음 작은 서비스 때도 법적인 문제 없이 가져올 수 있는 레벨을 골라 우리 PvP플레이에 적용해 보자는 계획이 마일스톤 계획 수립 단계부터 나타났고 이제 이전과는 달리 좀 더 본격적으로 PvP를 준비할 수 있게 됩니다.

이런 상황이 기쁘기만 한 것은 아니었는데 근본적으로 이 레벨은 우리가 만든 것이 아니며 이 레벨에서 일어나는 플레이 역시 우리가 전적으로 만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고객들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은 플레이의 대부분은 레벨로부터 나왔고 이 레벨은 20여년 전 산업을 만들어낸 천재들에 의해 만들어진 것입니다. 우리는 그저 그들의 업적을 미래에 가져와 이를 체험해본 적 없는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호평을 도둑질 하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 약간 언짢았습니다. 이전과 비슷한 느낌으로 PvP는 우리가 직접 레벨디자인을 하는 대신 법적인 문제가 일어나지 않을 다른 게임의 유명한 레벨을 가져오기로 했는데 이번에는 어떤 레벨을 가져올 수 있을지 고민이 많았습니다. 개인적으로는 헤일로와 하프라이프가 나타나기 전 이 장르는 퀘이크와 언리얼 토너먼트가 이끌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지난번에는 퀘이크에서 널리 알려졌고 또 스스로도 엄청난 시간을 들여 플레이 한 레벨을 가져왔으니 이번에는 언리얼 토너먼트로부터 레벨을 가져와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했고 그렇게 결정한 레벨이 ‘Facing Worlds’입니다.

Facing Worlds Is One Of The Greatest Multiplayer Maps Ever

이전 Q3DM17은 이런 플레이에 익숙한 고객들에게는 무한한 아드레날린을 제공했지만 이 장르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스폰킬의 고통을 선사할 뿐이었는데 이 때문에 고객들은 숨을 곳이 있는 레벨, 그리고 FFA 대신 TDM 규칙을 만들어줄 것을 요구했습니다. 또 스폰킬을 막는 장치를 고안해 달라고도 요구했는데 이 글을 작성하는 2023년 겨울 현재 우선순위에 밀려 결국 스폰킬을 해결할 적당한 규칙을 구현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새 레벨의 스타팅 포인트를 조정해 압도적으로 한쪽이 밀린 상황이 아닌 이상 스폰킬이 일어나지 않도록 만들기는 했습니다.

‘Facing Worlds’는 원래 CTF 규칙으로 구동되는 레벨입니다. 레벨 양쪽 끝에 있는 타워에 깃발이 있고 이를 들고 반대쪽 자기 진영까지 살아서 들고 와야 점수를 획득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CTF를 만들지 않았고 상황 상 TDM 모드를 간신히 개발한 상태여서 레벨을 좀 트윅해서 CTF대신 TDM으로 플레이 하도록 만들었습니다. 레벨에는 오리지널 레벨에는 없던 플레이어를 한방에 타워 꼭대기로 날려버리고 또 한 쪽 진영에서 상대 진영으로도 한 방에 플레이어를 날려 버리는 런치패드를 설치했고 상대 타워에 갈만 한 이유를 무기를 제공함으로써 유도했으며 상대 진영으로 가는 길에 단차를 만들어 이 단차를 통과하면 쉽게 적들의 공격에 노출되지만 빠르게 뒤돌아 도망갈 수는 없는 모양을 만들었습니다. 그러면서도 내내 감히 우리가 걸작에 손 댈 수 있을까? 하는 찜찜함이 계속됩니다.

헌데 그렇게 개발하는 사이 프로젝트에 참여한 사람들을 물리적으로 먹여살리는데 필요한 개발비가 슬슬 바닥나기 시작했습니다. 원대한 계획 상으로 여러 방법으로 개발비를 조달해 런웨이를 확보할 예정 이었지만 여러 가지 이유로 이 과정이 원활하게 진행되지 않고 있습니다. 어떻게든 이 상태를 돌파할 수 있겠지만 이전에 세웠던 장기 계획과 비교할 때 이미 지금도 개발비를 최소화 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앞으로는 더더욱 개발비를 줄일 방법을 고안해야 하는 상황입니다. 그렇다 보니 이전에 세웠던 계획 역시 지금보다 더 짧은 런웨이, 지금보다 더 적은 개발비로 개발할 수 있는 형태로 바꿔야 하게 됐는데 아직은 우리가 개발하고 있는 제품이 게임에 가깝지만 스타트업은 근본적으로 이런 상황을 맞을 때 피봇을 해 살아남곤 하는 모양인데 그 결과 우리가 개발하는 제품이 게임이 아니게 될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다만 그건 회사 차원의 중대한 의사결정에 참여하는 사람이 아닌 제 수준에서는 좀 더 미래에 불확실성이 좀 더 줄어들었을 때 할 걱정일 것 같고 지금 당장은 개발비를 낭비하지 않는 선에서 마일스톤 목표를 달성하는데 집중하는 것이 제게 주어진 임무입니다. 제가 제 임무에 집중하는 동안 회사에서는 이런 상황에 대응하는 미래 계획을 수립하기 시작했는데 이 계획은 과거에 PvE를 개발하고 먼 미래에 고객들로부터 요구가 있을 때 PvP를 도입하자는 것에서 완전히 바뀌어 혹시 넣어 보면 어덜까 하고 시작한 PvP 모드를 메인으로 하는 계획을 포함하고 있는 것 같아 보입니다.

PvE 대신 PvP 위주로 개발하는 전략은 표면적으로는 개발 비용을 덜 쓰면서도 제품을 만들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지금까지 우리가 개발해 온 그리 길지 않은 경험에 근거해 판단한다면 이 방향 변화는 그럴듯 합니다. PvE를 개발하기 위해서는 미들웨어에서 제공하는 기능을 적극적으로 도입 하면서도 꽤 큰 비용이 들었지만 PvP를 개발할 때는 레벨을 가져온 다음부터는 꽤 낮은 비용으로 게임을 만들 수 있었습니다. 또 두 번째 레벨을 가져올 때도 레벨디자이너가 레벨을 CTF 대신 TDM으로 동작하게 하기 위한 메커닉을 설치하면서 시간을 좀 썼지만 이전에 PvE를 개발하는데 들어간 비용에 비하면 압도적으로 낮은 비용인 것이 사실입니다. 이런 경험과 상황 속에서 PvE 대신 PvP위주로 개발하는 것으로 방향을 전환하는 것은 스타트업의 피봇 만큼은 아니지만 나름 꽤 큰 변화이고 또 나름 의미 있는 변화입니다. 다만 개인적으로 이 판단의 근거인 PvP이 낮은 제작 비용에 대한 근거는 착시를 일으키기 쉬운 환경 속에서 진행한 개발 결과에 근거하고 있어 곧이 곧대로 판단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PvE 모드의 강점은 게임 시스템이 구축되어 어느 정도 고정되어 있는 상태라는 전제 하에 개발 비용을 예측할 수 있다는데 있습니다. MMO 게임에 새로운 던전을 추가할 때 이전에 없던 새로운 메커닉을 추가하는데 큰 비용을 사용하지 않는다면 이전에 이미 개발된 메커닉을 조합해 새 던전을 개발하는데 드는 인력과 기간은 대략 예상할 수 있습니다. 레벨 크기, 등장하는 몬스터 수, 이들 중 신규 제작할 분량과 기 제작된 것을 사용할 빈도, 던전 보스 몬스터의 메커닉 수준, 연출의 빈도와 퀄리티 등을 고려해 기간 내에 개발해 테스트한 다음 수정하고 서비스에 런칭할 수 있을지 판단 가능합니다. 반면 PvP는 이야기가 약간 다른데 과거 아레나 장르 게임들처럼 모든 시스템을 그대로 둔 채 오직 레벨디자인에만 집중한다 하더라도 의도에 맞는 레벨을 기간 안에 개발할 수 있을지 여부는 확실하지 않습니다. PvE 모드를 개발할 때처럼 주요 물량을 개발할 물리적인 시간 위주로 계획을 수립할 때와는 달리 PvP는 오직 레벨디자인을 만들려고 해도 레벨 제자거이 끝나는 시점을 예측하기 어렵습니다. 처음 개발을 시작할 때 가지고 있던 아이디어에 근거해 기반을 만들 수 있겠지만 이 레벨에서 일어나는 서로 다른 멀티플레이 규칙과 서로 다른 여러 가지 상황을 고려한 수준 높은 레벨 디자인을 만드는데는 수없는 테스트와 반복 제작이 필요한데 이를 예측하기는 어려울 겁니다.

지금까지 PvP개발 비용이 PvE 개발 비용에 비해 압도적으로 낮았던 이유는 크게 두 가지입니다. 첫째. PvE를 개발할 때는 아직 게임의 핵심 메커닉이 정립되지 않아 PvE 개발과 동시에 게임의 핵심 메커닉을 동시에 개발해야 했습니다. 이는 동시에 핵심 메커닉을 둘러싼 서비스를 위한 기능을 함께 개발해 서비스 가능한 모양으로 만드는 비용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또 PvE 게임모드에 사용된 레벨은 우리가 직접 만든 레벨이었기 때문에 PvP 레벨 만큼은 아니지만 비용이 낮지는 않았습니다. 둘째. 이전까지 개발했고 또 지금 두 번째 모드를 준비 중인 PvP 레벨은 이전에 PvE를 개발하며 구축한 기반 위에서 진행하고 있고 또 개인적으로 가장 큰 비용이 들어간다고 생각하는 레벨디자인 비용이 게임디자인 관점에서 거의 0에 가까웠기 때문입니다. 그저 공개된 레벨 모델을 임포트 해 게임에 넣고 스타트 포인트를 찍고 주요 메커닉을 우리 시스템으로 대체한 다음에는 바로 플레이 할 수 있었습니다. 레벨의 재미는 이미 20여년 전에 검증 됐고 활발한 플레이 테스트 대신 다른 기능을 개발하는데 집중할 수 있었으며 이러는 사이에 아트에서는 우리 게임에 맞는 외형으로 레벨을 안정적으로 수정하고 이 과정에 재작업이 없었습니다. 비용이 낮을 수밖에 없습니다.

또 이전에 PvE 모드를 개발해야 했던 이유가 희석될 수 있습니다. 우리들이 개발하던 제품은 전통적인 게임과 약간 달리 이더리움 블록체인 상의 지갑을 사용해 로그인 하고 NFT에 근거해 캐릭터를 생성해 플레이 할 수 있으며 미래에는 인게임에서 획득한 재화나 자원을 미리 정해진 방법을 통해 게임 외부로 옮길 수 있게 하려는 계획이 있습니다. 또한 외부 에셋을 NFT에 근거해 인게임에 나타나게 할 수 있을 겁니다. 흔히 이런 기능을 포함한 제품을 메타버스라고도 하는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여전히 전통적인 게임 만들던 사람 관점에서 이런 경제 시스템을 의도한 대로 동작하도록 설계할 수 있을지 좀 무섭지만 요구사항과 다른 플레이어들의 사례를 이해하고는 있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PvE 모드를 만들어야 하는 이유는 앞에서 잠깐 설명한 NFT 기반 아티스트들이 만든 에셋을 우리 게임에 꽤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들기 위해서입니다. 이전 PvE 모드 보스로 등장한 몬스터는 NFT로 발행되어 있는 몬스터였고 이는 장기적으로 이 NFT를 보유한 사람들이 불러낼 수 있거나 더 많은 보상을 획득하게 하는 등의 다양한 접근을 통해 게임에 다양한 NFT가 드나들 수 있도록 할 계획이 있었습니다. PvP 모드라고 해서 비슷한 접근을 할 수 없지 않지만 분명 지금까지 고려해 온 것과는 상당히 다른 아이디어가 필요할 테고 그런 비슷한 고민의 깊이에 도달하는데는 잘 드러나지 않는 시행착오와 비용이 필요할 겁니다.

결론. 프로젝트를 둘러싼 상황 변화로 인해 스타트업이 경험하는 피봇과 비슷한 느낌으로 기존 PvE 기반으로 개발하려던 계획을 PvP 기반으로 개발하는 쪽으로 변경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이 의사결정의 핵심 근거는 우리가 지금까지 개발해 온 경험 상 PvE에 비해 PvP가 더 낮은 비용으로 개발할 수 있기 때문인 것 같아 보입니다. 그런데 개인적으로는 우리가 PvE에 비해 PvP 개발에 압도적으로 낮은 비용을 사용한 이유는 PvE 개발은 핵심 메커닉 구축과 주요 서비스 시스템과 동시에 개발 되었고 또 핵심 메커닉이 구축되어 있다는 가정 하에 PvP 개발에 가장 큰 비용이 든다고 생각하는 레벨디자인 비용을 거의 들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 점을 고려하지 않으면 비용을 낮추기 위한 의사결정을 했지만 예상만큼 비용이 감소하지 않는 결과에 다다를 가능성이 있습니다.

이번 주에도 다섯 가지 다른 이야기를 준비했습니다.


돌고 돌아 퍼포스
큰 파일, 많은 파일, 바이너리 파일을 퍼포스만큼 잘 다루는 다른 도구는 없습니다.
개인정보 노출 없이 배터리만 갈고 싶은데요
아이폰은 해가 갈수록 단위 비용 당 배터리 가격이 비싸지고 있습니다. 게다가 배터리를 교체할 때마다 의도하지 않은 개인정보 노출을 겪고 있습니다.
고위 의사결정자 이상의 의사소통 방식
실무에 더 가까운 사람들의 의사소통 방식과 고위 의사결정자 분들의 의사소통 방식은 서로 관심 분야가 달라 굉장히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사람들을 야근 시키는 방법
유연근무제도가 야근을 위협하고 있지만 그래도 괜찮습니다. 전통적인 지원 제도를 유지해도 야근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설거지는 누가 해야 할까
누가 언제 어떻게 설거지 할 지 생각하지 않은 채로는 다회용 컵 사용을 강제할 수 없습니다.

한참 전에 제게 커피 한 잔 사 주시겠어요?라는 이야기를 드린 적이 있습니다. 그 후로 정말 감사하게도 제게 커피를 사 주신 여러 분들이 계셨습니다. 사실 매주 토요일 글 쓰는 날에는 제 돈으로 커피를 사 마셨고 제게 커피를 사 주신 돈은 모았다가 이 사이트의 도메인을 연장하는데 사용할 생각입니다. 뉴스레터라는 이름을 붙이기에는 부끄러운 '뉴스'와는 아무 관계 없는 글이지만 매주 관심 가져 주시고 또 제게 커피를 사 주시는 모든 분들께 항상 감사드립니다.

한편 제게 커피를 사 주실 때 사용하는 'Buy me a Coffee'서비스가 한국에서 사용하기에는 굉장히 불편함을 잘 알고 있습니다. 애플페이를 통하면 편리해지지만 한국에서 애플페이 사용은 여전히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토스 링크도 열고 있으니 혹시 제 글이 어떤 영감을 얻으시는데 기여 했다면 제게 커피 한 잔 사 주시는 것을 고려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이 웹사이트의 호스팅과 도메인을 유지하는데 큰 도움이 될 뿐 아니라 제가 겪는 경험과 생각을 공유 드리는데 도움이 됩니다. 한편 토스 링크로는 익명 질문을 남길 수도 있으니 궁금한 점이 있으면 물어봐 주세요.

여기까지 읽어 주시는 모든 분들께 항상 감사드립니다. 또 다음 주에 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