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실 창문의 유용함
보안 상 그래선 안되지만 화장실 창문을 열어 두면 위기를 모면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오늘은 서울에 처음 이사 와서 마지막 아르바이트의 유산 같은 사건을 겪던 지금보다 훨씬 구질구질한 시대 이야기로 시작해 보겠습니다. 몇 번인가 의지와 관계 없이 이사를 해야 했는데 제가 가진 돈에는 한계가 있었고 세계는 계속해서 인플레이션이 일어났기 때문입니다. 임대차 계약이 지속되는 2년 동안 보증금을 모아야 했는데 월급을 전부 저축한다 하더라도 같은 집에 2년 보다 긴 기간 동안 임대차 계약을 유지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임대차 계약을 갱신할 때 이사를 해야 했는데 그 때마다 인플레이션에 의해 비슷한 금액으로 구할 수 있는 집은 상태가 점점 안 좋아지는 추세를 유지합니다. 그 중 한 집은 영화 기생충에 나오는 화장실처럼 변기가 화장실 안 저 높은 곳에 있어 그 변기에 앉을 때마다 세상의 가장 높은 곳에서 느낄 것만 같은 외로움을 느껴야 했습니다.
이 화장실은 지난 에어컨의 날에 언급한 원래 한 덩어리이던 집을 두 조각으로 나누느라 구조가 이상해져 엉뚱한 곳에 화장실이 붙어 있던 그 집과 비슷했는데 반지하여서 이전에 살던 집보다 공간이 넓기는 했지만 여전히 화장실은 이상한 위치에 이상한 모양으로 붙어 있었습니다. 화장실 역시 공간이 넓었는데 면적 상으론 널직 했지만 폭이 상대적으로 좁고 안쪽으로 긴 구조여서 그 끝에서 다시 아주 작은 타일로 덮인 계단을 세 칸 오른 다음 그 위에 올려져 있는 변기는 거기 앉을 때마다 더더욱 외로운 느낌이 들게 만들었습니다. 또 변기에 앉았을 때 느끼는 외로움 만큼이나 화장실에 처음 들어갈 때 느끼는 압박감도 있었는데 화장실 문을 열면 마치 높으신 분들 방에 들어갈 때 문에서 책상까지 거리가 멀수록 주눅 드는 기분이 드는 것과 비슷하게 저 화장실 문에서 멀리 떨어진데다가 제 눈높이보다 위에 있던 그 변기는 지켜볼 때마다 과연 제가 저기 앉을 만한 사람인지 한번 더 생각해 보게 만들곤 했습니다.
한편 이 화장실에는 창문이 있었는데 창문은 변기에 앉으면 바로 옆에 있었습니다. 다행히도 반지하 집인 덕분에 화장실 창문은 집과 담벼락 사이에 아주 좁은 공간을 바라보고 있었고 그 사이로 사람이 지나다니지는 않았습니다. 가끔 그 사이로 고양이가 지나갈 때도 있었지만 고양이들 대부분은 담을 타고 위로 지나다녔기 때문에 반지하 창문으로는 볼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어떤 이유에서 인지 바닥으로 다니는 고양이들이 있어 가끔 그들과 눈이 마주칠 때도 아예 없지는 않았습니다. 집이 있던 동네는 제가 학교를 졸업하기 전에 서울에 올라와 일을 구하던 시대 직전까지는 매년 그 옆에 있던 작은 물길이 넘쳐 항상 수해를 입었다고 하는데 마침 제가 올라오기 직전에 반복되는 수해를 방지하기 위해 펌프장을 여러 개 지어 여름에 더 이상 수해를 겪지 않게 되었다고 합니다. 생각해 보면 화장실에 난 그 창문 높이로 미루어 반드시 창문 바깥에 물이 찼을 테고 그 물은 창문을 닫아도 화장실 안으로 아마 넘쳤을 것 같은데 그런 생각만 해도 손발이 차가워지는 그런 일을 직접 겪지는 않아 다행입니다.
오래 전에 인터넷에 돌아다니던 유머에는 집 밖에 나갔다가 가방을 둔 채로 잠깐 집에 일이 있어 돌아왔는데 집 열쇠가 가방에 들어 있어 가방을 가지러 다시 돌아갈지 아니면 어떻게든 집에 들어갈 방법을 찾을지 고민하다가 집 안에 들어갈 방법을 찾는 이야기가 돌아다녔습니다. 잠긴 입구로 들어갈 방법은 없었으니 이 글을 처음 썼을 누군가는 머리에서 김이 나도록 머리를 굴린 다음 화장실 창문을 열 수 있다는 사실을 생각해냈고 그리 유연하지 않은 몸을 어떻게든 높은 곳에 있던 화장실 창문으로 구겨 넣어 집 안에 들어가는데 성공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가지고 나오려던 물건을 가지고 나오며 여벌 열쇠로 다시 문을 잠그고 기뻐하다가 문득 곰곰이 생각해보니 자신이 화장실 창문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면 도대체 입구를 잠가 봐야 무슨 소용이었는가 하는 생각이 들어 현타가 세게 왔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이 이야기는 남 이야기가 아닙니다. 저 역시 열쇠가 없는 상태로 집 입구 앞에 서서 어떻게 해야 할 지 고민하는 상황을 겪었습니다. 정확히 무슨 일 때문이었는지는 이제 기억나지 않지만 잠긴 문 앞에 서서 한참을 고민하고 또 반지하로 내려오는 계단에 주저앉아 열쇠공을 불러야 하나, 그리고 열쇠공을 부르면 돈이 얼마나 들까, 지금 현금이 없는데 계좌이체는 가능할까, 계좌이체를 해서 이번 달에 쓸 돈이 줄어들면 무슨 일이 일어날까 등등을 생각하며 손발이 차가워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문득 담벼락을 마주 보고 있는 그 낮은 곳에 있는 화장실 창문을 생각해 냅니다. 그 창문은 꽤 작아서 사람이 들어가기에는 무리가 있을 것 같아 거의 잠그지 않았고 변기에 앉아 있을 때만 잠깐 열었다가 닫곤 했습니다. 그래서 대문 밖으로 나가 고양이들이 지나다니는 담벼락을 정말 추한 자세로 넘어 집과 담벼락 사이의 좁은 공간에 내려 섭니다. 그 공간은 사람 한 명이 앞을 보고 똑바로 걸을 수 없을 정도로 좁아서 옆으로 걸어야 했는데 화장실 창문 앞에 도착해 창문을 움직여 보니 역시 잠겨 있지 않았습니다.
여기부터는 좀 웃기고 슬프지만 그때는 정말 절망적인 상황이 이어졌습니다. 담벼락과 집 벽 사이 공간이 좁아서 옆으로 서 있던 저는 무릎 높이에 있던 창문에 몸을 구겨넣어야 했는데 공간이 비좁아 몸을 돌리기가 어려웠습니다. 머리부터 들어갈지 다리부터 들어갈지 고민하다가 아무래도 다리부터 들어가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고 또 창문을 바라보고 들어가면 등이 바닥을 향하게 되니 위험할 것 같아 몸을 돌려 무릎이 바닥을 향하는 방향으로 다리를 집어넣기 시작합니다. 이미 그 좁은 공간에서 뒤로 돌아서기 위해 양쪽 어깨가 집과 담 사이에 끼어 양쪽을 옷으로 깨끗하게 닦아냅니다. 이제 화장실 창문을 등진 상태에서 열린 창문을 통해 발부터 조심스럽게 화장실 안으로 밀어 넣기 시작했는데 어찌어찌 다리가 다 들어가고 안쪽에서는 발이 변기 옆 바닥에 닿아 이제 조심스럽게 상체를 집 안으로 빼내기만 하면 되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어깨와 양쪽 손을 집어넣으려고 보니 창문이 좁아 양쪽 팔이 들어가질 않습니다.
양쪽 팔을 동시에 좁은 창문으로 집어넣으려 해서 안 들어가는 거라고 생각하고 한번에 팔 한 짝 씩 집어넣으면 될 거라고 생각하고 실행했는데 팔은 한 짝 씩 들어갈 수 있었지만 하필 그 팔 두 짝은 고정된 어깨에 달려 있어 팔 두 짝을 한번에 창문 안으로 넣을 수가 없었습니다. 더이상 들어가는게 불가능하다고 판단하고 팔을 빼려고 했지만 이번에는 다리가 변기와 그 주변 뭔가에 걸려 더이상 몸을 빼낼 수 없는 상태가 됩니다. 한참 버둥거리다가 지쳐서 멍하니 슬슬 어두워지기 시작하는 하늘을 올려다 보고 지금 이게 뭐 하는 짓거리인가 생각하다가 만약 이대로 화장실 창문으로부터 몸이 빠지지 않을 때 일어날 수 있는 일을 상상해 봤습니다. 구급차의 반짝이는 경광등, 담과 집 벽 사이의 좁은 틈에 몰려온 구급대원들, 담벼락 너머로 화장실 창문에 몸이 낀 사람을 구경하는 근처 사람들. 그런데 그런 쪽팔림은 둘째 치고 바지 주머니에 들어있는 전화를 꺼낼 수도 없었습니다. 팔은 오른팔이 창문 안쪽에 들어가 있었는데 전화는 왼쪽 바지 주머니에 들어 있었고 왼쪽 팔은 창문에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그러니까 지금 이 상황에서 누군가에게 구조를 요청할 수도 없었습니다.
이 이야기는 싱겁게도 그 상태로 몇 십 분 쯤 앞뒤로 버둥거리고 또 몸뚱이를 이리 저리 비틀다가 기적적으로 상체 전체가 한번에 화장실 안으로 빨려 들어가듯 한 번에 무너져 내렸고 화장실에서 높이 솟아 있는 변기 높이로부터 한 번에 바닥에 나동그라지느라 이번에는 뒤통수가 깨질 뻔 했지만 거의 한 시간 반 넘게 걸려 집 안에 들어오는데 성공했습니다. 하지만 이 시간이면 열쇠를 가지러 다녀왔어도 충분한 시간인 것 같은 생각이 들어 도대체 이게 무슨 짓거리인가 싶었습니다. 그런데 다른 한 편으로는 앞서 이야기한 유머 사이트에서 읽은 이야기가 남 일이 아니라는 사실을 떠올렸습니다. 그러니까 실컷 문을 잠그고 다녀도 열쇠 없는 사람이 좀 힘들긴 했지만 집 안에 들어올 수 있었습니다. 물론 그렇게 들어온 집에선 딱히 가져갈 만한 물건이 없어 힘들게 들어온 보람은 없었겠지만 집 문을 잠그는 정도의 보안으로는 집안의 보안을 유지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또 화장실 창문은 앞으로도 잠그지 않기로 했는데 이 창문은 곤경에 처할 때 평소에 보안을 조금 낮춰 도움을 받을 수 있는 방법이었습니다.
자. 이제 과거 이야기는 그만 두고 현대로 돌아와 뜬금 없이 개인 서버 이야기로 이어 봅니다. 제 개인 서버는 AWS 서울 리전에 있는 한달에 5달러씩 내며 돌리는 아주 작은 리눅스 서버인데 이 작은 서버는 온갖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아무렇게나 만든 구질구질한 php 스크립트를 구동해 아이폰의 단축어 앱이나 여러 가지 자동화 도구로 처리하기 불가능하지는 않지만 좀 귀찮고 애매한 동작을 비교적 편안하게 24시간 처리하고 또 자잘한 개인 데이터를 제대로 된 데이터베이스에 쌓고 또 오픈서치로 시작한 임시변통 로그 집계 환경에서 소개한 본격적인 통계에는 활용하기 어려운 오픈서치 쿼리 워크벤치를 대신해 제대로 된 데이터베이스 기반 조회 환경을 제공하기도 합니다. 또 같은 서버에서 개인적으로 운영하는 다른 서비스를 모니터링하는 Uptime Kuma라는 서비스가 돌고 있고 또 같은 서버에서 최근에 소개 받은 n8n이라는 자동화 도구도 돌고 있고 또 forgejo 기반의 버전 관리 도구도 돌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이 서버가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이 서버 덕분에 자잘하고 귀찮은 일들을 부드럽게 처리할 수 있고 또 자잘하고 귀찮은 기록을 자동화 하고 있습니다. 적어도 한달에 5달러를 지불하는 장난감 치고는 꽤 훌륭합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이런 직접 관리해야 하는 환경 보다는 완전관리되는 환경을 더 선호합니다. 가령 개인 위키와 할일관리 소프트웨어는 완전관리되는 컨플루언스와 지라를 사용하고 있고 마스토돈 서버 역시 완전관리 서비스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완전관리 서비스는 바꿀 수 있는 것이 별로 없지만 제가 직접 관리하거나 신경 쓰지 않아도 항상성을 유지하며 제가 실수로 망가뜨릴 일도 없고 백업, 재해복구, 버전업 같은 유지보수 문제로부터 완전히 신경 끌 수 있게 해줍니다. 개인 위키를 직접 관리하는 환경에서 사용할 때는 가끔 대용량 파일이 잘 안 올라가면 원인을 직접 찾아 설정을 바꿔야 했고 가용성을 올리기 위해 서버를 늘리려고 보니 소프트웨어가 확장을 거의 고려하지 않아 상당히 고생한 끝에 결국 위키 소프트웨어를 바꿀 결정을 하게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완전관리 서비스는 이런 생각을 아예 안 하게 해줍니다. 그냥 서비스를 신청하고 돈을 내고 나면 서비스는 항상 돌아가고 있고 저는 그냥 사용하기만 하면 됩니다. 만약 마스토돈 서버를 직접 만들었다면 다른 사용자를 받을 생각을 아예 하지 않았겠지만 완전관리 서비스를 사용하기 때문에 믿을 수 없는 제 관리 대신 전문가의 관리를 받아 다른 사용자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이런 걱정을 한다는 말은 가끔 사고를 쳐서 곤란을 겪기도 한다는 의미인데 최근에 두 가지 어처구니 없는 사고를 겪었습니다. 한번은 서버에 새 서비스를 올리려고 설정하고 있었습니다. 리눅스를 잘 이해하지는 못하지만 어쨌든 서버가 돌아가게 하려면 최소한의 지식과 최소한의 명령어 정도를 알고 있어야 했는데 지금까지 살펴본 바로는 리눅스에서 가장 중요한 명령어는 sudo
인 것 같습니다. 리눅스는 평소에 명령 대부분을 거절하며 제 요청에 전혀 협조하지 않을 것 같다가도 앞에 이 명령을 붙이기만 하면 군소리 없이 명령을 수행해 줬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어지간한 명령어는 그때그때 검색해서 사용법을 다시 확인한 다음 사용하지만 저 명령어 만큼은 금새 기억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서비스를 설정하다가 디렉토리의 소유권을 바꿀 일이 있었는데 디렉토리에 소유권을 바꾸는 리눅스 명령어는 대충 이랬습니다.
sudo chown -R someone ./
이 명령어를 사용하면 현재 디렉토리에 있는 모든 파일의 소유권을 지정한 계정으로 바꿔줍니다. 구동하려는 서비스에 따라 최고 관리자가 파일을 소유하고 있어야 하거나 서비스를 구동하기 위한 전용 계정이 파일을 소유하고 있어야만 권한 문제를 일으키지 않고 동작하는 사례를 이전에도 겪어서 서비스가 권한 문제로 구동되지 않자 깊이 생각할 것 없이 디렉토리 안에 있는 모든 파일과 서브디렉토리의 소유권을 특정 계정으로 바꾸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타이핑을 대강 하다 보니 위 커맨드에 포함된 점(.
)을 빼먹은 채 타이핑 했고 타이핑한 커맨드를 눈으로 정확히 확인할 것도 없이 타이핑을 마치자 반사적으로 엔터 키를 누릅니다.
sudo chown -R someone /
명령어가 순식간에 실행될 것을 기대하고 있었는데 엔터를 누르고 한 2초 정도가 흐르도록 실행이 끝나지 않자 뭔가 잘못됐다는 생각이 들었고 갑자기 슬래시(/
) 문자 앞에 점이 없는 명령어가 눈앞을 가득히 채우며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깨달았습니다. 반사적으로 Ctrl + C
를 눌러 실행을 중단했지만 잠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파악하지 못한 한 2초 사이에 현재 디렉토리 내부에 있는 파일과 서브디렉토리의 소유권을 바꾸기를 의도한 명령어는 리눅스 파일시스템 전체의 소유권을 특정 계정으로 바꾸려고 했고 2초 동안 얼마나 많은 파일의 소유권이 의도하지 않게 변경되었을지 알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한 가지 사실 만은 확실히 알 수 있었는데 이 순간부터 앞에서 설명한 리눅스에서 가장 중요한 명령어 처럼 보이는 sudo
가 작동하지 않게 됐습니다. 잘못된 명령어가 실행되는 약 2초 사이에 충직한 리눅스 시스템은 군소리 없이 잘못 타이핑한 명령을 실행했고 sudo
명령어를 실행하는데 필요한 설정 파일의 소유권을 바꿔 버린 겁니다. 그래서 sudo
명령어를 사용하려 하자 평소 같으면 군소리 없이 실행해 주던 리눅스 운영체제는 이제 이 명령을 실행하려 하면 명령어의 설정 파일의 권한이 잘못 되었다는 메시지를 남기고 마치 이 명령을 실행하지 않을 때처럼 모든 명령 수행을 거부하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이 시스템에 최고 권한을 사용할 수 있는 인증서를 통해 서버 터미널에 접속해 있었지만 그 권한을 사용할 방법이 없어집니다. 리눅스 시스템은 sudo
명령 앞에 너무나 충직한 나머지 자기 자신을 파괴하는 동작을 하는 명령도 군말 없이 실행해 버렸습니다.
세계에는 분명 저와 똑같은 멍청한 실수를 한 사람이 더 있을 거라고 생각해 문제를 검색하자 맨 위에 이 상황으로부터 빠져나오는 방법을 질문하고 대답한 글이 나타났습니다. ‘그럼 그렇지’ 하고 피식 웃으며 평소에 하던 다른 실수를 해결할 때처럼 별 일 아니겠거니 하고 문제 해결 방법을 읽다가 갑자기 손발이 차갑게 식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권한 설정이 망가져 sudo
명령어를 사용할 수 없을 때는 su
명령을 사용해 관리자 콘솔에 진입한 다음 그 안에서 권한이나 소유권이 잘못된 파일을 수정하면 된다고 적혀 있었습니다. 그런데 su
명령은 패스워드를 요구했고 이 시스템은 인증서 기반으로 접근하고 있어서 패스워드가 없는 상태였습니다. 이번에는 AWS에 이 리눅스 이미지를 배포한 회사 웹사이트를 검색해 인증서 기반 시스템에서 su
명령어를 사용하는 방법을 검색합니다. 그리고 그 웹사이트는 아주 친절하게 자기 회사에서 만든 리눅스 이미지에서 su
명령을 사용하는 방법을 소개하고 있었습니다.
sudo su
완전히 망했음을 깨닫고 그 날 새벽 4시 백업으로 되돌릴까 하다가 그 날 입출력한 데이터를 살릴 수 없을까 싶어 시스템은 백업으로부터 복원하되 데이터베이스는 문제가 생긴 시스템으로부터 뽑아내 새 시스템으로 이동하기로 결정합니다. AWS가 자동으로 만든 스냅샷을 사용해 새 서버를 만드는 건 단순했지만 이전에 사용하던 데이터베이스 파일을 뽑아 새 서버에 옮기고 새 서버에서 이전 처럼 사용할 수 있도록 설정하는데는 힘이 좀 들었습니다. 처음에는 그냥 파일을 복사해다가 같은 자리에 올려 놓으면 돌아갈 줄 알았는데 그보다는 좀 더 복잡했습니다. 그런데 새 서버에 이전 데이터베이스 파일을 옮긴 다음 이 파일들에 설정되어 있던 권한을 우회해 새 서버에 맞는 권한을 부여하는 과정이 마치 과거에 잠겨 있는 입구로 못 들어가 화장실 창문으로 한 시간도 넘게 고생하며 몸을 우겨 넣던 기억과 비슷해서 좀 웃기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사건 이후 리눅스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 sudo
명령어를 사용하는데 좀 더 신중해졌고 엔터 키를 누르기 전에 명령어를 한번 더 훑어보는 습관을 가지게 됐습니다.
한편 이 글을 쓰고 있는 목요일 밤 기준으로 어제는 데이터베이스에서 root
유저로 다른 유저를 추가하는 작업을 하고 있었습니다. 로그를 조회할 때 사용할 전용 계정을 만들어야 하는 상황이었는데 계정을 만들고 권한을 조정했습니다. 그런데 권한 설정을 마칠 즈음에 이 계정이 필요하지 않도록 상황이 바뀌었습니다. 그래서 계정을 삭제할까 하다가 일단 지금은 잠그기만 하면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 계정을 유지한 채로 잠그기만 하려고 했는데 데이터베이스를 조작하는데 사용하던 phpmyadmin 웹 인터페이스에서 Lock
링크를 클릭 하려다가 클릭하려던 링크의 한 줄 아래에 있던 root
계정의 Lock
링크를 눌러버립니다. 그리고 웹페이지를 새로고치자 계정이 잠겨 로그인이 풀리고 데이터베이스에 접근할 수 없는 상태가 됐습니다. 데이터베이스에 모든 권한을 가진 root
유저 계정이 잠겼습니다.
이번에도 일단 침착하게 구글에 저와 똑같은 멍청한 실수를 한 사람들의 글을 찾았는데 여러 가지 방법이 있었지만 이들 중 어느 것도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습니다. 가령 계정을 사용할 수 없다니까 무지성으로 패스워드 리셋하는 방법을 붙여 넣는 사람들의 답변을 일단 무시했습니다. 다음으로 사용자 테이블에 잠김 상태를 해제하는 쿼리를 실행하는 방법이 그럴 듯 해 보였는데 이 방법은 오래 돼서 그런지 글에서 언급한 칼럼이 지금 사용하는 데이터베이스의 사용자 테이블에 없었습니다. 이전 시대에는 사용자 테이블에 잠김 상태를 표시했던 것 같지만 지금은 더이상 그러지 않는 것 같았고 사용자의 잠김 상태는 테이블에서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다음으로 데이터베이스의 권한 시스템을 완전히 우회한 다음 root
사용자의 권한을 복원하는 방법이 있었는데 이 방법은 답글에 이 방법을 통해 문제를 해결했다는 말들이 있었지만 실제로 해보니 권한 시스템을 우회한 상태에서는 권한을 복원하는 쿼리를 실행할 수 없다는 에러 메시지를 볼 수 있을 뿐이었습니다. 어떤 방법도 통하지 않자 이번에도 새벽 백업으로 새 서버를 만들고 데이터베이스 파일을 뽑아 옮기는 귀찮고 복잡한 과정을 거쳐야 할지 고민하다가 문득 과거의 잠긴 문과 화장실 창문을 다시 떠올립니다.
생각해보니 최근 이 서버에 새로운 서비스를 돌리면서 데이터베이스에 접근하기 위해 새 계정을 만들었는데 그 계정에 권한 설정을 똑바로 안 했던 것을 기억해 냅니다. 떨리는 가슴을 진정 시키고 이번에도 겉으로는 침착한 모습으로 며칠 전에 만든 그 계정으로 로그인 한 다음 root
사용자의 Lock
상태를 해제해봤고 지금까지 거의 한 시간 동안 삽질하며 시도한 여러 가지 방법이 무색할 정도로 너무나 쉽게 root
사용자 권한을 복구할 수 있었습니다. 상황은 너무 싱겁게 끝났지만 이 상황이야말로 정말 입구를 잠갔지만 잠그지 않은 화장실 창문 덕에 위기를 모면한 느낌이었습니다. 최고 사용자와 같은 권한을 가진 다른 계정을 만들어 놓는 것은 분명 보안 상 문제가 될 행동이지만 이번에는 권한을 필요한 수준에 정확히 맞춰 제한하는 대신 아무 설정도 안 한 덕분에 최고 관리자와 똑같은 권한을 가지고 있던 다른 사용자, 그러니까 잠그지 않은 화장실 창문 덕분에 새 서버를 만들고 데이터베이스 파일을 옮기고 또 그 서버에 맞춰 권한을 조정하는 완전관리 서비스를 선호하는 입장에서 거의 무의미한 작업을 피할 수 있었습니다.
지금 사는 집은 열쇠로 문을 열지도 않고 화장실에 창문이 있지도 않으며 화장실은 이전에 살던 그 집보다 훨씬 좁고 변기는 바닥과 같은 높이에 놓여 있을 뿐 아니라 화장실 입구부터 변기까지 거리가 멀지도 않습니다. 문을 열 때마다 비밀번호를 입력해야 하고 만약 도어락에 배터리가 떨어지면 임시로 9볼트 배터리를 사 와 잠깐 충전한 다음 도어락을 작동 시킬 수 있습니다. 하지만 만약 어떤 이유로 도어락 비밀번호를 잊어버린다면 이전처럼 열린 화장실 창문을 통해 집안에 들어가 위기를 모면할 방법은 이제 없습니다. 이전에 비해 보안 수준이 높아지기는 했지만 이제 문제가 생기면 반드시 다른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야 하게 됐습니다. 다만 이전에 비해 지금은 다른 누군가의 도움을 받으려 할 때 화장실 창문에 상반신만 끼인 채로 주머니에 든 전화를 꺼내지도 못해 살려달라고 외칠 지도 모르는 그런 처참한 꼴로 도움을 청하지 않아도 되어 이전 보다는 나아진 것 같긴 합니다.
이번에는 과거의 열린 화장실 창문과 비슷하게 권한이 잘못 설정된 사용자 계정 덕분에 위기를 모면했습니다. 이번에 위기를 모면하게 해 준 계정의 권한을 딱 필요한 만큼으로 조정할지 아니면 그냥 지금처럼 놔둘지는 좀 고민입니다.
이번 주에도 다섯 가지 다른 이야기를 준비했습니다.
간만에 제게 커피 한 잔 사 주시겠어요? 페이지를 업데이트 했습니다. 이전에는 'Buy me a Coffee' 서비스만 사용할 수 있었는데 이제 '토스 아이디'를 사용할 수 있습니다. 다만 원하는 계정 이름을 이미 다른 분이 사용하고 있어 이름이 통일되어 있지 않아 제가 제시한 주소들의 진위 여부를 검증할 수 있는 서명 문자열을 위 페이지 하단에 추가해 놓았으니 참고 부탁 드립니다. 가끔 어떤 글로부터 영감을 얻는데 도움이 되었다면 커피 한 잔 기부 부탁 드립니다.
이제 곧 혹한기가 찾아올 모양입니다. 너무 추워지기 전에 다음 주에는 잠깐 시간을 내 혼자 자전거로 긴 오르막을 오르며 아무 생각을 안 해 보기도 하고 또 혼자 조용한 곳에서 생각만 해 보기도 하는 시간을 가질 작정입니다. 요 몇주 동안 쓴 글을 살펴보니 뭔가 앞뒤가 안 맞는 내용이 보여서 잠깐이라도 머릿속을 정리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머릿속을 잘 정리한 다음 또 다음 주에 뵙겠습니다. 여기까지 읽어 주시는 모든 분들께 항상 감사드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