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실 창문의 유용함

보안 상 그래선 안되지만 화장실 창문을 열어 두면 위기를 모면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화장실 창문의 유용함

오늘은 서울에 처음 이사 와서 마지막 아르바이트의 유산 같은 사건을 겪던 지금보다 훨씬 구질구질한 시대 이야기로 시작해 보겠습니다. 몇 번인가 의지와 관계 없이 이사를 해야 했는데 제가 가진 돈에는 한계가 있었고 세계는 계속해서 인플레이션이 일어났기 때문입니다. 임대차 계약이 지속되는 2년 동안 보증금을 모아야 했는데 월급을 전부 저축한다 하더라도 같은 집에 2년 보다 긴 기간 동안 임대차 계약을 유지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임대차 계약을 갱신할 때 이사를 해야 했는데 그 때마다 인플레이션에 의해 비슷한 금액으로 구할 수 있는 집은 상태가 점점 안 좋아지는 추세를 유지합니다. 그 중 한 집은 영화 기생충에 나오는 화장실처럼 변기가 화장실 안 저 높은 곳에 있어 그 변기에 앉을 때마다 세상의 가장 높은 곳에서 느낄 것만 같은 외로움을 느껴야 했습니다.

이 화장실은 지난 에어컨의 날에 언급한 원래 한 덩어리이던 집을 두 조각으로 나누느라 구조가 이상해져 엉뚱한 곳에 화장실이 붙어 있던 그 집과 비슷했는데 반지하여서 이전에 살던 집보다 공간이 넓기는 했지만 여전히 화장실은 이상한 위치에 이상한 모양으로 붙어 있었습니다. 화장실 역시 공간이 넓었는데 면적 상으론 널직 했지만 폭이 상대적으로 좁고 안쪽으로 긴 구조여서 그 끝에서 다시 아주 작은 타일로 덮인 계단을 세 칸 오른 다음 그 위에 올려져 있는 변기는 거기 앉을 때마다 더더욱 외로운 느낌이 들게 만들었습니다. 또 변기에 앉았을 때 느끼는 외로움 만큼이나 화장실에 처음 들어갈 때 느끼는 압박감도 있었는데 화장실 문을 열면 마치 높으신 분들 방에 들어갈 때 문에서 책상까지 거리가 멀수록 주눅 드는 기분이 드는 것과 비슷하게 저 화장실 문에서 멀리 떨어진데다가 제 눈높이보다 위에 있던 그 변기는 지켜볼 때마다 과연 제가 저기 앉을 만한 사람인지 한번 더 생각해 보게 만들곤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