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일을 즐기며 일할 수 있을까?

1월 말 진행한 어느 면접은 진심으로 즐거웠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제가 진심으로 그토록 일을 즐길 수 있을지 고민하게 만들었습니다.

나는 일을 즐기며 일할 수 있을까?

지난 41호 뉴스레터 커버스토리 백수 한달 끝부분에서 예정했던 모든 면접 일정을 마무리 했고 이제 이어서 일할 다음 자리를 선택할 때가 왔다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어느 날 오후 그 마지막 면접을 볼 일정이 남아 있었고 그 시간이 가까워질수록 겁을 먹기 시작했습니다. 한 달 동안에 걸친 여러 면접 자리는 처음에는 간만에 피면접자 자리에 앉아 진행하는 면접이어서 익숙하지 않았지만 두어 번 반복하자 금세 익숙해졌고 이야기가 뜸해질 때면 질문 찬스가 아니어도 가볍게 질문해 이야기를 이어나갈 여유도 생겼습니다. 또 업계에서 오랫동안 일하면서도 만나본 적 없는 분들과 만나 생각해본 적 없는 질문을 받아 대답하는 일이 재미있어 면접 자리를 기대하기도 했습니다. 오늘은 어떤 새로운 분들을 만나고 또 어떤 새로운 질문을 듣고 생각할 수 있을까 하고요.

하지만 이 날은 시작 시각이 가까워 옴에 따라 이전과 달리 약간 긴장했는데 이유는 아마도 면접 자리에 나타나실 분은 프로젝트를 총괄하는 분일 테고 지금까지 수집한 정보가 맞을 경우 그 분은 지옥의 하드 워커로 알려진 분이었기 때문입니다. 전 주 주말에 이전에 함께 일했던 분들과 만나 점심 먹고 커피를 마시며 연속으로 다섯 시간 내내 수다를 떨어 댔는데 이 동안 제 백수 생활과 이번 주에 볼 면접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 회사 상황을 잘 알고 계신 분으로부터 이 프로젝트의 시작과 현재 상태, 그리고 면접 자리에 나타날 프로젝트를 총괄하시는 분에 대한 정보 역시 얻을 수 있었고 자리에 참여한 다른 분은 이전에 이 분과 한동안 함께 일한 적도 있어 사전 정보를 충분히 얻을 수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소문으로만 전해 듣고 어느 정도 각오 하고 있었지만 제가 이번 주에 그 분을 만날 가능성이 아주 높다는 이야기가 나오자 본격적으로 이전에 그 분과 함께 일했던 분께서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해 주셨고 이야기를 다 들은 다음에는 은근히 마음이 불편해집니다. 물론 그 쪽에서 저를 좋게 봐 주셔야만 가능한 일이지만 만약 그 분의 프로젝트에서 일하게 된다면 하드 워킹에 의한 어려움과 맞닥뜨리지 않을까 하는 걱정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제 스스로가 일을 열심히 하지 않는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어릴 때는 주어진 작은 목표를 달성하는데 최선을 다했고 시간이 지나며 시야가 서서히 넓어지자 제가 담당한 부서가 마일스톤의 큰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필요하지만 계획에는 포함되지 않은 온갖 자잘한 일을 챙기는데 기여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부서에는 미안하지만 계획에 없던 온갖 자잘한 일들을 찾아다가 부서에 보냈고 분명 예상한 것보다 더 많고 또 자잘한 일들이 밀려 들어오는데 대한 불만이 컸을 겁니다. 하지만 큰 그림을 달성하기 위해 계획되지 않은 자잘한 일을 찾아 매끈하게 만들어 두는 일은 항상 필요했고 이런 일을 모른 척 하고 있으면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던 일이니 이들이 진행되지 않았다고 해서 우리가 책임 져야 할 일이 일어나지는 않을 겁니다. 하지만 계획 상으로는 마일스톤 목표를 달성했다고 판정할 수 있겠지만 그 마일스톤 목표가 달성하고자 했던 의도를 만족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우리들은 우리들에게 주어진 일을 하는 최소한을 달성하기만 해도 되지만 거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계획에 의해 달성하고자 하는 의도를 충족하는 단계에 이르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 단계에 이르기 위해서는 프로젝트의 큰 그림에 좀 더 관심을 가지고 열심히 일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세계에는 제가 생각하는 ‘열심히’의 기준이 완전히 다른 분들이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이 업계의 태동은 소수의 천재들에 의해 시작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들이 업계를 만들었고 초반의 전설을 창조했으며 그 규모가 커지자 저 같은 보통 사람들이 일할 수 있는 일자리가 생겼고 또 괄목할 만한 경제적 성과를 달성해 업계 규모가 커질 수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엔지니어도 아니고 아티스트도 아닌 모호한 직군으로는 직접조차 얻을 수 없을 것 같았던 업계에 게임디자인을 전문으로 하는 사람도 돈을 벌어 생계를 유지할 수 있게 됐고 또 동네 문방구 앞에 놓여 있던 작은 스크린이 달린 오락기를 생각하던 사람들도 게임이 엄청난 경제적 성과를 달성하고 또 주식시장에도 나타나는 모습을 보고 자신들이 알고 있던 게임과 이를 만드는 사람들이 이전과 같지 않다는 사실을 인식하기도 합니다. 이런 분들은 업계 태동기에 이 산업 전체를 만든 다음 이내 더 높은 곳, 혹은 더 재미있는 다른 곳으로 사라져 현대에는 도통 만날 수 없게 됐고 이내 평범한 사람들로 구성된 우리들은 이전 시대의 영광을 따라가기에도 벅찬 상태로 오랫동안 일해 왔습니다. 저는 운이 굉장히 좋아 산업을 창조한 천재들이 아직 팀에 남아 있던 마지막 시대를 경험할 수 있었는데 지금 생각해도 이런 분들이 일하는 모습은 우리들이 열심히 일하는 것과는 차원이 달랐습니다.

천재의 대부분은 노력이라고 말하지만 이런 말이 통하는 이유는 그들이 이미 다른 사람들보다 충분히 높은 위치에서 보통 사람들이 상상하기도 어려운 수준으로 노력하고 있기 때문인데 저 같은 보통 사람들이 아무리 비슷하게 노력한다 하더라도 그 분들이 노력하는 수준에는 결코 도달할 수 없습니다. 애초에 출발선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또 노력의 효율이 완전히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노력을 대하는 태도가 완전히 다르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 정말 운 좋게 그런 분들을 몇 분 만나 같은 팀에서 일할 기회가 있었는데 이 분들은 특히 노력을 대하는 태도에서 다른 사람들과 큰 차이가 있었습니다. 보통 사람들에게는 어렵고 고통스러우며 소위 노가다를 통해 올바른 방법을 찾아내야 하는 비용을 추정하기 어려운 일이라도 이 분들은 이런 일을 흥미롭게 생각하고 올바른 방법을 찾아내는 고통스러운 과정을 즐기며 일했는데 보통 사람이 그저 열심히 일하는 것과 그 분들이 즐기며 일하는 상태 사이에는 거대한 차이가 있었습니다. 같은 시간을 들여 결과에 도달하더라도 우리는 간신히 결과에 도달한 기진맥진한 자신과 함께할 뿐이었지만 이 분들은 결과에 도달하는 과정을 즐기며 이 과정으로부터 나온 온갖 시행착오를 다시 즐거운 학습의 결과로 받아들이곤 했습니다.

이 분들을 가로막는 것은 오직 그 분들의 두뇌를 뒷받침하는 체력의 부족 뿐이었는데 이 분들이 노력을 멈출 때는 몸이 더 이상 받쳐 주지 못하는 상태가 되어 어쩔 수 없이 집에 잠 자러 갈 때 뿐이었습니다. 저는 체력이 부족해지기 전에 이미 정신력이 부족해져 아직 멀쩡히 걸어 다닐 수도 있었지만 집에 자러 가야 했고 정신력이 부족한 바람에 아무 이유 없이 사람들에게 공격적인 모습을 보이거나 팀에 나쁜 분위기를 전파하는 상태로 변하기도 한 것 같습니다. 어쩌면 10년의 밤에서 소개한 뭐든 해 보려는 저를 나쁜 이미지로 기억하시는 분들이 계시는 이유가 이런 정신력의 부족으로부터 나온 제 바람직하지 않은 행동 때문일 수 있습니다. 일을 워낙 장시간 계속한 나머지 말 그대로 얼굴빛이 완전히 어두워져 슬슬 그 분의 건강 상태가 염려되기 시작하자 옆에 다가가 “형. 얼굴이 완전 말이 아닌데 잠깐이라도 눈 좀 붙이세요” 라고 말했더니 그 분은 여전히 모니터에서 눈을 떼지 않은 상태로 “아니 괜찮아. 이제 거의 다 했어”라며 자리에서 움직이지도 않습니다. 결국 그 일은 그날 저녁때 끝났는데 그 다음에야 그 분은 기쁜 얼굴로 저에게 “끝내 놨으니 네가 이어서 하면 돼” 라고 말하고는 경쾌한 발걸음으로 사무실을 떠납니다. 이미 퇴근 시간이 훨씬 지난 참이라 집에 가고 싶었지만 이렇게 깔끔하게 제가 이어서 할 일이 마무리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이상 좀 억울한 기분이 들기도 했지만 저 역시 이어서 일을 마무리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런 분들은 그 존재만으로도 팀에 큰 영향을 줬는데 그들이 엄청나게 노력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는 그 자체만으로도 이미 팀은 이 분들의 노력을 헛되이 하지 않기 위해 함께 노력했고 이런 상태는 확실한 결과로 돌아옵니다. 또 일을 즐기며 하고 있었기에 신체적으로 약할 때가 있을 뿐 정신적으로 강인해 이들을 둘러싼 저 같은 보통 사람들이 정신력을 소진한 다음 고슴도치 같은 상태가 되어 있을 때 이 분들이 지나가며 저를 위로해 주시는 한 마디 말 만으로도 제 정신력이 고갈 되어 사방으로 내밀고 있던 가시가 얼마나 부끄러운지 깨닫게 만들어 주시기도 합니다. 처음에는 그저 끝없이 일하면서도 급여가 워낙 적어 가난한 상태에서 전혀 벗어날 수 없자 그 상황이 그저 억울할 뿐이었지만 그 분들로부터 그런 상황에서도 즐거움을 유지하고 그런 상태를 주변에 전파하며 프로젝트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 모습을 보고 사람이 저럴 수도 있다는 사실을 배웠습니다. 이후 시간이 흐르며 힘든 상황을 맞닥뜨리면 종종 만약 이 상황을 그때 그런 분들이 맞닥뜨렸다면 어떻게 행동했을지 생각해 보곤 합니다. 마치 ‘월트 디즈니라면 이 상황에 어떻게 행동했을까?’ 같은 의문을 가지는 것과 비슷한데 제가 함께 일하며 본 그 분들이라면 정말 어른스럽게 상황을 처리하고 팀의 여러 자원을 떠올려 문제를 해결해 결국 목표를 달성했을 겁니다. 보통 사람인 저는 그렇게 훌륭하게 행동하지 못하지만 정신적으로 힘들 때 이런 생각을 하며 겉모습 만이라도 그런 행동을 흉내내려고 노력해 봅니다.

물론 이런 장점만 있지는 않습니다. 이 분들은 일 자체를 즐겨 누가 지시하지 않아도 없는 일을 찾아내 수행했고 이 과정에서 다른 사람들보다 훨씬 긴 시간에 걸쳐 일했는데 이 분들이 내뿜는 긍정적인 에너지 뿐 아니라 이 분들이 내뿜는 장시간 노동에 대한 압력 역시 팀에 영향을 끼칩니다. 물론 그들 스스로는 그들이 그런 압력을 일으키고 있다는 사실 자체를 인지하지 못합니다. 그저 아무도 발견하지 못했지만 반드시 수행하기는 해야 하는 새로운 재미있는 일을 찾았고 그냥 그걸 즐겁게 수행하고 있을 뿐이지만 저 같은 보통 사람들은 이런 모습을 종종 압력으로 받아들이고 제가 감당할 수 있는 한계를 초과해 일하곤 했는데 보통 사람인 저는 그런 모습을 따라하기 아주 어려웠습니다. 신체적, 정신적으로 소진되기 일쑤였고 일을 하는 그 순간은 나쁘지 않았지만 일을 멈추고 저를 지탱하던 정신력이 몸을 빠져나갈 때 사람이 한 순간에 무너지는 느낌을 받곤 했는데 마치 제 한계를 인식하지 못한 채 황새를 따라가다가 하체가 망가지는 느낌과도 비슷했을 겁니다. 이렇게 느끼는 사람이 저 뿐은 아니어서 종종 술자리에서 이런 불만이 터져 나오곤 했지만 다들 혈관에서 알콜이 사라지고 나면 다시 압력을 받으며 긴 시간 동안 일하기를 반복합니다.

그 시대에는 자신을 불태워 그렇게 일하면 회사로부터 적절한 보상을 받을 수 있으리라 생각했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고 그런 행복한 경험을 한 분들은 업계 전체에서도 극 소수에 불과합니다. 그런 경험을 한 분들이 회사의 핵심 의사결정자로 올라가 자신들의 경험을 설파하기도 했지만 이는 업계의 태동기와 성장기에 일어날 수 있는 사건으로 성숙기에 접어든 업계에서는 더 이상 일어나기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마치 한국 고도성장기에 부동산 가격이 급격히 올라 많은 사람들에게 경제성장에 의한 부를 재분배했지만 현대의 리세션 구간에서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사실과도 비슷합니다. 하지만 오래 전에 그렇게 일해 성공한 경험을 가지고 있는 분들은 시대가 변하고 또 시장이 변한 현대에도 비슷한 방법으로 접근하면 성공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이제 이 산업을 창조한 천재들 거의 거의 대부분은 업계를 떠나고 저 같은 보통 사람이 생계를 유지할 기회를 주지만 그 시대에 일하던 분들이 지금도 남아 그 시대에 일하던 방식을 유지하는 압력을 팀 밖에서 억지로 일으키는 모습을 보면 지금은 어느 정도 제어할 수 있게 된 몸 안에 숨겨진 수많은 가시들을 다시 몸 밖으로 내뿜고 싶은 충동이 들기도 합니다. 시대는 변했고 이제 변한 시대에 맞춰 성공할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면접을 위해 회사 로비에 있는 방문자 기록에 제 이름과 개인정보를 남긴 다음 게이트를 통과해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는 동안 몇 분 뒤 만날 분에 대해 전해 들은 여러 정보를 생각해 봤습니다. 지금까지 이런 이야기를 했던 이유는 이 분이야말로 아직도 업계에서 현역으로 일하고 있는 산업을 창조한 분들 중 한 분이기 때문입니다. 과거에 거대한 경제적, 역사적 성과를 이룩한 여러 게임에 이 분이 나타날 뿐 아니라 회사에서 여러 프로젝트를 계속하기 어려운 극도로 높은 기준에도 불구하고 여러 프로젝트를 수행하고 있었습니다. 또 이전에 이 분과 함께 일했던 분은 이 분이 마치 오펜하이머처럼 모든 것을 알고 있다고도 했습니다. 팀에서 일어나는 모든 상황에 올바른 해답을 가지고 있고 평범한 우리들이 생각해낸 바보 같은 문제 해결 방법을 손쉽게 문제가 아닌 것으로 바꿔버리기도 하며 그렇게 많은 시간을 프로젝트와 팀에 투자하면서도 시장의 변화에 민감하고 또 우리들이 쉽게 내린 잘못된 결론으로 인해 개발 자원을 낭비하는 상황을 재빨리 눈치채고 이를 중단 시켜 더 적은 자원으로 런칭 단계에 도달하게 만든다고 합니다. 이런 결과를 위해 지금은 조금 덜하지만 주말도 없이 일하고 매일 맨 먼저 출근해 가장 늦게 퇴근하고 그 안에 업무 집중도 역시 엄청나게 높은 분이라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런 분과 만날 생각을 하니 엘리베이터가 너무 빨리 올라간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면접이 시작되고 제 소개가 끝나자 질문과 답변이 진행됐는데 이 동안 느낀 점은 종종 두뇌 회전이 아주 빠른 분들과 이야기할 때 드는 그런 느낌과 상황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일단 느낌은 핵심을 잘 짚는 질문을 하고 있었고 또 질문을 주고 받는 템포가 평소에 다른 대화를 할 때에 비해 훨씬 빨랐습니다. 여느 면접이라면 초반 30분 내내 질문을 주고 받아야 겨우 도달할 수 있는 선수들끼리 꾸밈 다 빼고 아주 본격적인 주제에 도달할 수 있었겠지만 이렇게 빠른 템포로 이야기를 주고 받기 시작하면 한 10여분이면 그런 상태에 도달할 수 있었고 이 때가 그랬습니다. 내가 피면접자일 때 면접은 상대가 나를 선택하기를 바라며 내 좋은 면을 드러내 보이는 자리와는 거리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연차가 적을 때는 그렇게 행동해야 할 지도 모르지만 이제는 제가 피면접자라 하더라도 상대와 제가 잘 맞을지 판단하기 위해 굳이 나중에 주어지는 제 질문 시간이 아니더라도 시간이 비는 찰나의 순간에 질문을 바로바로 밀어 넣어 서로 시간을 낭비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렇게 질문을 빠르게 주고 받으며 확실히 테이블 건너편에 앉아 있는 분이 소문으로 전해 들은 특징을 아주 적은 여과를 통해 보여주고 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확실히 이 분은 머리가 아주 빨리 돌고 있었습니다.

한편 또 다시 아주 잠깐 빈 시간이 생기자 바로 제가 그동안 궁금했던 주제를 바로 밀어 넣었습니다. 딱히 감출 것도 없이 “소문에 굉장한 하드 워커라고 들었는데 실제로는 어떠신가요” 라고 실제 의도를 담아 질문합니다. 사실 그런 분이라면 어느 정도 예상했지만 질문에 대한 답변은 그 예상을 뛰어 넘었습니다. 이 분은 평생에 걸쳐 하고 싶은 일만 하며 살았고 지금도 그런 행동을 계속하고 계신 것 뿐이라고 합니다. 하고 싶지 않으면 경영진이 포함된 중요한 회의를 무시했고 아무 때나 출근해서 일하고 아무 때나 퇴근하기를 반복했지만 결국 그 결과는 프로젝트를 성공시켰습니다. 이 분을 힘들게 만드는 일은 주로 회사 밖에서 일어났고 그럴 때 가족으로부터 회사에 가서 좀 쉬고 오라는 조언을 받았을 정도라고 합니다. 현대에는 주말까지 회사에 나오지는 않지만 집에서 오랜 시간을 들여 공부하고 있다는 말씀을 주셨는데 이런 부분이야말로 이 분이 트렌드에 엄청나게 민감하다는 말과 연결되는 지점이 아닌가 싶었습니다. 다만 최근에는 자신이 그저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고 있을 뿐인 상태가 주변에 압력을 가한다는 사실을 이해했기 때문에 퇴근 시간이 가까워지면 자리를 떠나 회사 주변을 배회하다가 사람들이 퇴근했을 시간이 지나면 다시 사무실에 나타나 마저 일하다 퇴근하기도 하신다고 합니다.

이런 이야기를 주고 받으며 테이블 앞에 앉아 계신 분과 과거에 함께 일했던 분들의 기억이 겹쳐지며 무서운 소문의 실체를 아주 조금은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이 분은 그냥 순수하게 자기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을 뿐이고 회사에서 오랜 시간 즐겁게 머물며 현대에 분업화 된 여러 가지 일에 관심을 가진 나머지 그냥 자연스럽게 팀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알고 있을 뿐이었습니다. 그래서 분업에 몰두해 시야가 좁아진 사람들에 비해 항상 더 나은 의견을 제시할 수 있고 또 긴 시간에 걸쳐 여러 가지를 직접 만들어 보고 또 직접 실험해본 덕분에 의견이 팀에 잘 관철되지 않으면 그냥 직접 만들어 보고 말이 되는지 확인한 다음 실제 동작하는 결과를 가지고 팀이나 경영진을 설득할 수 있습니다. 분명 이 분이 운영하는 팀에서 일하면 이전에 그랬던 것처럼 쉴 새 없이 배울 수 있을 겁니다. 제가 감당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정신 없이 배워 지금보다 훨씬 나은 사람이 되고 또 지금보다 훨씬 더 올바른 방향으로 팀과 프로젝트에 기여할 수 있을 것입니다. 반면 그렇게 배우다 보면 계속해서 평범한 제 자신이 바보같이 느껴지고 또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코너에 몰려 있다면 이런 상황이 불합리하다고 느낄 수도 있으리라는 것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이 분은 자기 스스로 게임 전체를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다만 그러려면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리니까 어쩔 수 없이 사람들을 채용하고 있을 뿐입니다.

면접 내내 대화하는 경험은 너무나 신나고 즐거웠습니다. 서로 각자의 필요, 경험, 결과, 문제의 원인 따위를 이야기하며 공감했고 거의 전설 급 악명으로 전해 오는 하드 워킹의 실체를 들었고 저는 보통 사람으로써 그 악명에 팀 구성원이 느낄 수 있는 압력에 대한 의견을 내고 또 이런 의견에 대응하기 위한 실질적인 대책에 대해서도 이야기했습니다. 또 시대의 변화와 시장의 변화, 지난 수 년에 걸쳐 판교에서 일어난 게임디자이너들의 능력 저하와 그 원인, 이를 완화하기 위한 회사 차원의 접근과 프로젝트의 방향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함께 들어오신 인사팀장님은 과거에 제가 이 회사에서 일할 때 프로젝트의 끝이 그리 좋지 않았고 짧은 기간 사이에 너무 많은 사람들이 회사를 그만 두는 과정을 함께한 점을 들어 그 때의 일을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대해 질문을 해 주셨는데 물론 그 때의 저 역시 감정적으로 그리 좋은 상태는 아니었지만 퇴사를 결정한 사람들 수 십 명과 커피 타임을 가지며 그들의 감정을 추스리는 과정에서 제 개인의 감정이 다가 아니라는 사실을 배웠다고 답했습니다. 또 이 이야기가 에 박제 된 덕분에 다른 회사에서 일할 때 그 책을 가까이에 두고 누군가 이러다 우리 망하는 거 아니냐고 저에게 불만을 토로하러 오시면 그 책을 꺼내 책갈피를 끼운 부분을 펼쳐 이전에 망한 경험이 책에도 박제 되어 있는데 이렇게 까지 망할 것이 아닌 이상 우리는 망하지 않는다고 다독거리는데 사용한다는 이야기도 합니다.

한참 동안 정신 없이 이야기했는데 면접이 마무리될 때 드는 느낌은 즐거움이었습니다. 결과가 어떻게 되든 간에 이 시간은 순수하게 즐거웠고 만약 할 수 있다면 이 프로젝트에서 일하며 배우고 오래 전에 만났던 그저 일이 즐겁기 때문에 쉴 새 없이 일하며 팀과 프로젝트에 긍정적인 영향을 내뿜던 분들을 떠올리며 비록 보통 사람인 저는 그런 경지에 도달할 수 없겠지만 그런 분을 현대에도 가까이 두고 어려움에 처할 때마다 ‘만약 그 분이라면 어떻게 행동할까?’ 하는 고민을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또 과거에 비해 조금 더 성장했을 제 입장에서 이전에 비해 훨씬 더 깊은 배움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반면 저 분 입장에서 저를 구인 해야 할 이유는 별로 없다는 점에 생각이 미치자 안타까운 느낌이 듭니다. 이미 팀에서 제가 해 오던 일을 그 스스로 모두 다 해내고 있고 그 과정과 결과 하나하나가 이미 분명 제가 수행하는 것보다 더 나을 겁니다. 이런 상황에서 그 팀에 제가 끼어들어 기여할 곳은 이미 거의 없으리라는 점에 생각이 미치자 면접 시간 동안에 느낀 즐거움과 함께 저 자신의 한계에 대한 안타까움, 그리고 기회를 얻지 못하리라는 아쉬움이 함께 느껴졌고 이번에도 내려가는 엘리베이터는 너무 빨리 로비에 도착했습니다.

지난 백수 한달 끝부분에서 여느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적게 일하고 많이 벌고 싶지만 또 일을 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다는 이야기를 했는데 그런 제가 과연 과거에 만났던 분들, 그리고 이 날 만난 분과 같이 진심으로 즐기며 일할 수 있을지 그 회사 근처에 있는 가게에서 산 달다구리를 손에 든 채 집에 돌아오는 지하철 안에서 곰곰이 생각해 봤습니다. 과연 저는 진심으로 즐기며 일하고 그 결과 팀과 프로젝트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을까요? 업계의 전설들이 창조한 산업을 통해 생계를 유지하는 보통 사람 입장에서 조금이라도 그런 모습에 다가갈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이번 42호에도 다섯 가지 다른 이야기를 준비했습니다.


처음 집중 문제를 적극적으로 해결하시려는 분들께
집중하는데 문제가 있는 현상을 문제로 정의하고 여기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기로 결정하신 분들께 개인적으로 축하와 응원을 보냅니다.
출쳌 보상 금지를 어떻게 우회할 수 있을까
만약 출석 보상이 금지된다면 어떻게 대처할 수 있을까요? 한번 캐주얼하게 생각해 봅시다.
모두의 가방 속에서 나는 삐릭삐릭 거리는 소리
자전거 이야기를 떠올리다 보니 몇 년 전까지 한 겨울에 온 몸이 얼어 가며 자전거를 탈 때 일어난 일이 생각났습니다.
다들 이렇게 열심히 사는데 내가 뭐라고
다들 이렇게 열심히 일하는데 그분들보다 훨씬 가난한 제가 열심히 일하지 않고 또 주말에 편히 쉬고 있는 건 뭔가 잘못되었습니다.
Six Degrees of Inner Turbulence
오래 전에 들었던 음악을 다시 듣고 그 동안의 경험과 생각에 따라 이해하는 바가 달라져 흥미로웠습니다.

어제는 오랜만에 서로 다른 직업을 가진 비슷한 성향의 사람들이 만나 세상 쓸모 없고 비생산적인 각자의 지적 허영심을 뽐내는 수다를 떨었습니다. 카페에 아저씨들이 둥글게 모여 앉아 교육을 위해 강남 n학군 지역으로 이사한 이야기로부터 시작해 철학, 종교, 산업 발전, 제조업과 건설업, 부동산 시장, 수학, 물리, 화학, 현대 우주론 등 온갖 잡탕짬뽕 이야기를 쉴 새 없이 떠들어 대는 모습은 분명 그리 보기 좋은 광경은 아니었을 겁니다.

비슷한 시스템적 사고와 행동을 하는 사람들이 비슷한 정보기술 분야이기는 하지만 서로 상당히 다른 업계에서 일하며 겪는 다양한 상황과 환경, 해결해야 하는 문제가 상당히 달라 서로가 겪은 일을 듣기만 해도 엄청나게 흥미롭고 또 재미있을 뿐 아니라 각자가 어설프게 채우고 있는 지적 허영심에 기반한 온갖 잡탕짬뽕 지식 - 을 빙자한 헛소리 - 에 기반해 의견을 늘어놓는 과정은 비록 전혀 생산적이지 않지만 각자의 엔터테인을 충족하기에는 충분히 신나고 즐거웠습니다.

설 연휴 첫 날인데요, 이미 교통 정보 상에 빨간색으로 표시된 고속도로 위에 계실지, 아니면 다른 계획을 가지고 계신지 모르겠습니다. 어느 쪽이라도 연휴를 편안하고 안전하게 보내시기를 바랍니다.

그럼 또 다음 주에 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