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가는 리퍼쳌 속에 싹트는 카르마
구직 중 리퍼런스 체크가 오가며 과연 저는 업계에 어떻게 알려져 있을지 문득 궁금하고 또 오싹합니다.
제 기억에도 이렇게 글을 시작하기를 이미 여러 번 한 것 같아 이번에도 또 이렇게 시작하기 좀 민망하지만 제 개인적인 이야기를 쓰고 있다 보니 현 시점에 저 개인에게 가장 큰 이슈를 이야기하지 않기도 쉽지 않다는 점에 미리 양해 부탁 드립니다. 이번에도 딱 이 문장으로 글을 시작할 작정이라서 밑밥을 깔아 보았습니다.
지난 권고사직 이후 이곳 저곳 자리를 알아 보고 있습니다. - 이 말을 확실히 여러 번 한 것 같죠.. - 물론 여섯 번째 마일스톤은 왜 실패했을까 같이 잘린 이전 직장에서 뭘 더 잘할 수 있었을지 생각해 보기도 하고 이력서와 자기반성처럼 이 망한 커리어를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하나 하는 한탄도 해 봅니다. 또 간만에 시간을 들여 게임을 하며 언제 죽을 지 선택할 수 있는 삶을 체험을 만족스럽게 하기도 하고 인도어 라이딩의 디펜딩 챔피언 즈위프트처럼 한동안 게을리 하던 운동을 다시 시작해 심폐지구력이 다 날아갔다는 사실을 깨닫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 여러 가지 일에도 불구하고 지금 개인적으로 가장 중요한 일은 바로 구직입니다.
다른 업계에도 비슷한 문화가 있는지 잘 모르겠지만 게임 업계에는 구인 할 때 가능할 경우 지원자님에 대한 리퍼런스 체크 과정이 있습니다. 인사 부서에 속하지 않아 사실 여부를 확인할 수는 없지만 소문에 따르면 각 회사의 인사 부서 사람들이 한 방에 모여 대화하는 채팅방이 있다는 소문도 있습니다.한편 실무 수준에서 지원자님이 제출해 주신 문서를 보고 적합할 것 같다고 판단하면 그 다음 단계는 면접이지만 인사 부서에 면접 진행 요청을 하기 전 또는 후에라도 이력에 나타난 조직에 같은 기간에 일했던 다른 사람들과 연락할 수 있으면 이 분들을 통해 지원하신 분에 대해 여쭤볼 수 있습니다. 운이 아주 좋으면 팀 안에서 지원자님을 아는 분을 찾을 수 있을 때도 있지만 대체로 적어도 한 다리 이상 건너야 지원자님과 지난 몇 년 사이에 함께 일하신 분과 연결되곤 합니다. 그런데 한 다리만 건너도 굉장히 넓은 사람들과 연결될 수 있어 모르긴 몰라도 업계에서 몇 년 이상을 보내며 하나 이상의 조직에서 일한 분이라면 두 다리 정도를 거치면 거의 업계 전체에 가 닿을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긴요하기는 하지만 다른 한 편으로는 오싹합니다.
리퍼런스 체크 결과가 당락에 끼치는 영향은 대단한데 사실 서류 수준에서 이미 우리가 원하는 일을 해 주실 수 있는 분일지는 어느 정도 판단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실무 면접에서는 그저 서류를 확인하며 생긴 궁금증을 해결하고 첫 인상을 포함해 구인을 하는 우리들과 맞는 분일지를 확인하는 정성적인 판단을 위해 여러 질문을 주고 받는 수준으로 고작 한 시간 남짓 한 시간 동안 서로를 파악하기 위해 기를 쓰는데 불과합니다. 이 시간 안에 뭔가 마음에 걸리는 점을 발견했다면 면접 결과에 영향을 끼칠 수 있겠지만 특별히 이전 경험처럼 우리들과 완전히 맞지 않는 분이 아닌 것 같다면 면접은 그저 지나가는 과정 정도로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종종 첫 번째 면접을 ‘싸이코만 아니면 돼요’라고 만만하게 말하기도 했는데 그랬다가 바로 이전의 실패한 구인 경험으로 이어지는 바람에 그렇게 함부로 말하면 안된다는 교훈을 얻었습니다.
어느 정도 업계에 아는 사람들이 생기고 이들이 업계 곳곳에 퍼져 있다면 리퍼런스는 사실 양방향으로 이루어집니다. 구직처가 가용 네트워크를 동원해 지원자님의 정보를 알아내기도 하지만 구직자 입장에서도 네트워크를 동원해 구인처의 정보를 알아내기도 합니다. 거창하게 이야기했지만 실상은 서로 아는 사람들을 동원해 상대의 정보를 알아내는데 후자의 경우 지원한 팀의 구성원, 분위기, 현재 상황에 대해서 알 수 있고 좀 더 나아가면 어떤 종류의 어려움을 겪고 있는지, 또 어떤 부서나 작업으로부터 주로 문제를 겪고 있는지를 미리 알아낼 수 있고 이에 따라 이 정보가 만약 채용 되었을 때 자신에게 영향을 줄 수 있을지 여부를 미리 알고 있을 수 있습니다.
만약 첫 번째 면접 전이고 이를 물어볼 수 있는 수준의 정보라면 면접 때 직접 물어볼 수도 있어 여러 모로 큰 도움이 됩니다. 이런 서로 간의 네트워크를 활용한 조사는 마치 입자를 관측하는 행동이 입자에 영향을 주는 불확정성의 원리처럼 이 관측 행동 자체가 네트워크에 흔적을 남기는데 종종 같은 사람이 양쪽 네트워크로부터 연결되어 양쪽 모두에 정보를 전달하기도 합니다. 사람에 따라 이 사실을 서로에게 말 해 주기도 하지만 이 상황에서 양쪽에 이 사실을 말 해 주지 않으면 어느 정도 이 상황을 통제할 권한을 얻을 수도 있습니다. 물론 미래에 이 정보가 알려질 때 생길 문제에 각오해야 합니다.
이런 일이 폭넓게 생기고 또 가능한 이유는 게임 업계의 고용 형태는 프로젝트 단위 계약직에 가깝습니다에서 설명한 이유가 큰 부분을 차지할 거라고 예상합니다. 만약 같은 멤버들이 한 회사에서 오랫동안 개발을 계속한다면 같은 회사에 속한 사람들 사이에 네트워크는 깊어지겠지만 회사 바깥을 향한 네트워크를 만들기는 쉽지 않을 겁니다. 하지만 적어도 한국에서는 서기 2024년에도 여전히 프로젝트를 취소할 때 프로젝트에 속한 인원을 해고하거나 프로젝트 단위로 법인을 분리했다가 프로젝트를 취소 하기로 결정하면 모회사가 자회사 법인에 더 이상 자금 지원을 하지 않는 방법으로 폐업하며 인원을 정리하곤 합니다. 때문에 함께 일하던 팀이 한 순간에 산산이 분해되어 서로 다른 곳을 찾아 떠나고 나면 이 사람들이 서로 다른 회사와 다른 팀에서 서로의 네트워크 역할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프로젝트가 터져 사람들이 큰 규모로 이동할 때마다 사람들의 네트워크는 점점 확장되어 이 과정을 몇 번만 거쳐도 업계 구석구석에 사람들이 퍼지고 이들을 통해 어지간한 사람에 대한 정보, 또 어지간한 팀에 대한 정보를 겨우 한 두 다리를 건너는 정도 수고를 들여 확보할 수 있습니다.
이런 현상은 지원자님과 구인처 양쪽 모두에 적절한 정보를 제공해 서로 엄청난 시간과 자원을 낭비할 일을 줄여 주고 또 첫 출근 전부터 온보딩을 수월하게 만드는 장점도 있지만 반대로 잘못된 정보가 퍼지거나 한 번 좋지 않은 평가를 받을 때 심각한 피해를 입을 수도 있습니다. 지난 10년의 밤에서 어릴 때 뭣 모르고 프로젝트 전체에 충분한 신뢰를 쌓기도 전에 혼자 프로젝트를 끌고 가 보려고 제 관점에서는 발버둥, 다른 분들 관점에서는 개지랄을 떨다가 다른 부서 분들께 크게 찍힌 적이 있었는데 이런 평가는 10년이 흐른 현재에도 영향을 끼치고 있었음을 이야기했습니다. 지난 10여년이 흐르는 사이에 여러 가지 일을 겪으며 여러 사람이 함께 하는 일은 그런 식으로 진행되지 않으며 종종 낭비처럼 보이는 상황이라도 이를 해결하는 방향으로 이끌어 갈 충분한 신뢰 자원이 없다면 만약 회사가 이런 상황을 감내할 체력이 있을 때는 이 상태 그대로 두면 다른 더 충분한 신뢰를 쌓은 분들에 의해 훨씬 더 올바른 방향으로 상황을 해결할 수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하지만 한 번 박힌 인식은 10년의 세월이 흐른 다음에도 바꿀 수가 없었는데 이전에 저에게 나쁜 인식을 가진 분을 세월이 흐른 다음 상사로 다시 만나 일할 때 이상할 정도로 주요 사건은 제 주변에서 일어났고 그 상사님은 그 모든 사건의 원인으로 저를 지목하며 한동안 일하기 상당히 고통스러운 순간들을 만들었습니다. 그 분과 지난 권고사직 면담 때 이런 점을 조금 이야기했지만 여전히 오래된 평가는 바뀌지 않았음을 깨달았고 이런 평가가 얼마나 무서운지 다시 한 번 깨닫습니다.
또 이런 각자의 네트워크를 통해 서로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려는 행동은 종종 이런 행동이 가능하다는 사실 때문에 이 시스템의 동작 방식을 잘 모른 체 이런 시스템이 존재한다는 점 만을 알고 있는 외부인에게 위협으로 작용할 수도 있습니다. 사실 그럴 수 있다고 상상조차 하지 않았는데 순진하게도 이렇게 서로의 정보를 조사할 때 정보를 주고 받는 각자가 서로 완전히 동등한 관계에 있으리라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오래 전 어떤 팀에 있을 때 소위 저 유명한 매장남 사건 - 링크를 걸지는 않겠음. 궁금하신 분들은 직접 찾아보시길 바람 - 이 일어났는데 업계에 있던 분이 업계 외부에 있던 다른 분과 사적인 관계로 만났다가 어떤 문제가 발생하자 자신이 주변에 이야기하면 업계 외부에 있던 다른 분을 영영 매장 시켜 버리겠다고 이야기 한 사건으로 한동안 여러 커뮤니티에 널리 오르내립니다. 처음 이 이야기를 전해 들을 때는 이게 불가능하지 않음을 알기에 죄질이 아주 나쁘다고 생각했고 시간이 좀 지나 다시 생각해보니 아무리 그래도 한 사람의 네트워크가 다른 누군가를 업계로부터 매장 시킬 정도로 넓기는 쉽지 않으며 또 그 정도 네트워크를 가지고 있을 정도의 누군가라면 그런 말을 하지도 않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하며 의아해 했습니다.
그렇게 사건을 일종의 가십으로 받아들이고 한참 다른 일을 하고 있을 때 회사 공지로부터 바로 그 사건의 업계 측 주인공이 같은 팀에 속한 다른 분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회사 공지가 아니었으면 알 일이 없었고 또 회사 역시 공지 하지 않을 작정이었던 것 같지만 상황을 파악한 회사로부터 주의를 받고 아무도 모른 채 넘어갈 수 있던 상황에서 업계 측 주인공님이 또 다른 행동을 하셨고 이에 따라 회사에서도 더 이상 이 분을 보호하기 어려운 상황에 처하게 된 것 같습니다. 회사는 공지를 내고 당시 이 분의 고용 관계를 종료하게 됐는데 하필 수습 종료 이전 상태였기 때문에 고용 관계는 아주 간단히 종료됐으며 나머지 인원들에게는 이 사건이 일종의 전설로써 전해 내려오게 됩니다. 우리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다른 사람, 다른 팀, 다른 프로젝트와 회사의 정보를 각자가 구축하고 또 그 일부인 네트워크로부터 얻는 행동은 대체로 우리 모두에게 도움을 주는 방향으로 작용한다고 생각했지만 서로가 동등한 관계가 아닐 때 이런 일종의 관습은 약자에게 심각하게 받아들여질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계기입니다.
한편 처음으로 돌아가 요즘 제 가장 큰 관심거리는 구직인데 이제 어지간한 팀의 실무 자리에 손을 든다고 해서 비교적 쉽게 채용 될 수 있는 입장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여전히 관리 경력에 비해 실무 경력이 더 길고 온갖 이상한 상황들을 겪어 여전히 여러 상황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지만 제어하기 편한 실무자를 구하는 분들 입장에서 저는 일단 서류 상에서 잘 제어할 수 있을지 걱정될 뿐 아니라 경영진 입장에서는 가성비가 잘 안 나오는 사람 영역에 접어들어 쉽게 아무데나 손을 들기도 난처합니다. 이렇게 원하지 않은 시점에 타의에 의해 은퇴해 노인 빈곤으로 이어지는 익숙한 스토리의 주인공이 되나 싶어 한동안 마음이 많이 급했는데 시간을 가지고 주변을 돌아보며 오랜만에 다른 회사나 프로젝트 돌아가는 이야기도 듣고 또 결국 사람들이 하는 일이라 업계 전반에서 서로 의견을 나눴을 것 같지 않지만 비슷한 일을 각자 시도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으며 다행히 아직은 일할 곳이 남아 있을 수도 있겠다 싶습니다.
구직 활동을 하면서 이전까지 설명한 대로 제가 알아보거나 지원한 곳에서 저에 대한 리퍼런스 체크를 시도했을 겁니다. 소개를 통한 곳은 저를 소개한 분을 통해 이미 일차 리퍼런스 체크가 일어났을 테고 또 다른 경로를 통한 체크도 일어날 뿐 아니라 저 역시 제가 일할 가능성이 있는 팀과 프로젝트에 대해 몇몇 경로를 통해 미리 정보를 얻으려는 시도를 하고 있습니다. 앞에서 설명한 대로 이런 각자의 관측 행동은 네트워크에 뚜렷한 흔적을 남기기 때문에 시간이 지나면 의도하지 않게 과거에 서로 어떤 경로를 통해 서로에 대한 정보를 조사했는지 알아낼 수도 있는데 오늘은 저에 대한 리퍼런스 체크가 일어났음을 즉시 알 수 있었습니다. 앞에서 긴요하지만 한편으로는 오싹하기도 하다고 했는데 오싹한 순간이 바로 이런 순간입니다. 과연 저 리퍼런스 체크에 저는 어떤 사람으로 묘사되었을지 궁금하지만 질문하지 않기로 합니다. 각자 머릿속에 서로에 대한 평가를 가지고 있고 이는 각자의 비밀이니 이를 질문한다고 해서 리퍼런스 체크에 묘사된 저 자신에 대한 정보를 있는 그대로 얻을 수도 없을 겁니다. 또 물어보면 쪽팔리기도 하고요.
폭 넓게 구직 활동을 하고 있으니 네트워크 곳곳에 저에 대한 정보 요청과 이에 따른 흔적이 남고 있을 테고 이 사실을 알고 있는 이상 함께 일하는 모든 사람들께 친절히 대하고 또 제 스스로도 후회하지 않도록 일해야겠다 싶습니다. 한편 지난번에 잘린 여러 사람들이 구직을 하고 있고 이 분들에 대한 정보 요청 역시 저에게 도착했는데 저 역시 네트워크를 믿고 신뢰할 수 있는 정보를 전달했습니다. 어찌 됐건 추운 겨울이 완전히 끝나기 전에 새로 둥지를 틀고 오랜 세월에 걸쳐 최선을 다할 자리를 찾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이번 38호에도 다섯 가지 다른 이야기를 준비했습니다.
일전에 뉴스레터 메일을 받지 않는 방법을 소개 드렸습니다. 2023년 4월 말부터 글 전체를 읽는데 등록과 로그인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다른 한 편으로는 수많은 다른 메일로 가득한 인박스에 또 하나의 스팸을 만들고 싶지 않기도 합니다. 일단 등록 해 두시면 메일을 받지 않아도 어쩌다 한 번 씩 들러 글을 읽는데 아무 지장도 없으니 인박스가 복잡하신 분들은 참고 부탁 드립니다.
또한 엑스(구 트위터), 마스토돈을 통해 위 달력의 일정에 따라 하루에 하나 씩 이전 글을 중복 없이 공유하고 있습니다. 매주 메일을 받거나 가끔 사이트에 찾아 오실 필요 없이 월요일에서 목요일까지 오전 8시 15분에 글을 하나 씩 받으실 수 있습니다. 다만 이 쪽은 2024년 1월 현재 약 9개월 정도 시차가 있지만 어지간하면 시의에 크게 영향을 받지 않을 내용들이니 메일이나 방문 없이 천천히 글을 살펴보실 분들은 이쪽을 참고해 주세요.
그럼 다음 주에 뵙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