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년기의 끝
저 자신의 유년기를 마무리하고 이제 다음 단계로 나아갈 작정입니다.
작년(2023년) 연말의 권고사직 이후 구직 과정을 겪으며 제 경력이 여러 모로 많이 망가져 있다는 점을 이력서와 자기반성에 어렴풋이 소개한 적이 있습니다. 게임 만드는 사람 입장에서 이상적인 이력서는 모든 이력이 출시한 게임들의 나열이고 각각이 일정 수준 이상의 경제적 성과를 달성했으며 각 프로젝트마다 초기부터 라이브까지 모든 과정을 수행한 모양일 거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각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지식과 경험의 습득 이외에도 프로젝트에서 담당한 역할과 영향 범위가 점점 더 넓어지는 과정이 이력서를 통해 점진적으로 표현 되어 있다면 정말 이상적인 이력서이자 이상적인 커리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 가진 이런 이력서의 이상적인 모습에 비해 제 이력서는 고객을 만난 프로젝트가 적고 개발에 실패한 프로젝트가 더 많으며 심지어 10년의 밤에 소개한 것처럼 프로젝트가 드랍 되거나 런칭 되기 전에 프로젝트를 떠난 기록이 있기까지 합니다.
지난 크립토 게임은 언제 어떻게 돈을 벌까에서 거의 마지막으로 이전 약 2년에 걸쳐 하던 일의 본질을 정리하고 투자사의 의도와 우리의 의도를 통해 잘 해보려고 시작한 일이 어쩌다가 저 자신이 해고되는 상황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었는지 생각해 봤습니다. 각각을 간단히 요약하면 전통의 비디오 게임 업계에서 비교적 잘 만들어 온 가상 세계는 이 세계를 구동하는 핵심 규칙 역시 회사가 직접 설계한 결과에 의해 잘 구동 되어 왔으나 준비 없이 가상 세계를 개발하려고 한 여러 팀들은 이런 개발에 비용이 얼마나 필요한지 잘 몰라 의도이든 의도가 아니었든 고객들에게 큰 실망을 안겼습니다. 또한 가상 세계에 가치 중립적일 것으로 해석되곤 하는 외부 데이터베이스를 연동하려는 행동은 사실 제품의 본질에는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않으며 단지 거래 참여자들의 부를 이전 시키는데 기여할 뿐입니다. 마지막으로 투자사는 우리들이 비디오 게임을 만들기를 원하지 않았으나 우리가 이 사실을 너무 늦게 눈치 챘습니다. 자. 이제 이 생각을 끝낸 다음 이렇게 좁은 시야 안에서 생각하는 것은 이 정도로 마무리하고 좀 더 넓은 시야에서 지금까지 커리어의 진행과 이제부터 커리어의 진행이 어떻게 달라야 할 지, 그리고 왜 달라야 할 지에 대해서 약간 더 넓은 시야에서 생각해 볼 작정입니다.
경력의 첫 10년은 나를 얼마에 팔 것인가에 소개한 이력서를 잘못된 메일 주소에 보냈고 면접 도중 잘못된 면접 자리에 와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지만 그 면접에 합격해 버리는 바람에 시작되었습니다. 1차 면접이 끝나자 마자 바로 이어서 연봉을 말하는 상황이 이어지리라 전혀 예상하지 못해 전혀 준비되지 않은 상태로 터무니 없이 낮은 금액을 말해버렸고 인생 전체에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제가 말한 금액보다 더 큰 금액으로 연봉 협상이 이루어진 경험을 합니다. 이 때의 저는 정말로 아는 것이 하나도 없었기 때문에 바보 같은 짓을 해도 그게 얼마나 바보 같은 짓인지 제대로 알지도 못했습니다. 전작을 개발한 분들이 남겨 놓은 온갖 문서를 보고 새로운 요구사항에 맞춰 그 문서들을 흉내 내는 수준에 머물렀습니다. 그렇게 기획서 비슷한 문서를 작성할 수 있게 되기는 했지만 시야는 여전히 제가 담당한 작은 단위 기능에만 머물렀고 이를 구현하는 입장에서 서로 다른 단위 기능 사이에 상해 배타적인 요구사항을 지적받거나 단위 기능을 벗어나 보다 큰 그림에 기반한 일종의 로드맵을 요구 받을 때 큰 스트레스를 받곤 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시대에는 항상 제가 담당한 단위 기능에 집중할 뿐 그 바깥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전혀 신경 쓰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 다음에는 상대적으로 작은 팀에 한 명 뿐인 주니어 디자이너로 일했는데 이 때도 역시 제가 뭘 하는 사람인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어떻게 일해야 하는지 전혀 몰랐습니다. 이쯤 되면 도대체 여러 경쟁자 중 제가 일하게 된 이유를 설명하기 어려웠는데 나중에 디렉터님을 포함해 여러 사람이 술을 마시던 자리에서 이유를 물어봤고 답변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주니어 디자이너 여러 명의 면접을 봤고 다들 서류와 면접 양쪽 모두 비슷비슷해서 아무나 한 사람을 뽑아도 될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면접 질문 중 ‘이전 프로젝트가 성공적이지 않은 방향으로 흘렀는데 이건 누구 때문이라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을 했는데 저는 질문을 듣고 일단 한숨을 푹 쉬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프로젝트가 잘못되기 시작하는 과정을 눈덩이가 굴러가기 시작하는 과정에 비유해 한 번 잘못된 방향으로 구르기 시작하면 눈덩이가 점점 커져 그 안에 속한 사람들이 이를 눈치 채더라도 강력한 개입 없이는 이를 멈출 수가 없으며 눈덩이가 잘못된 방향으로 구르기 시작해 더 이상 되돌릴 수 없는 상황에 이르는 동안 관여한 모든 사람들, 결국 팀에 속한 저 자신을 포함한 모든 사람들이 비슷하게 관여한 결과라고 대답했다는 모양입니다.
사실 저 자신은 이 질문을 잘 기억하지 못했는데 만약 이 질문에 다른 사람, 특정 부서 따위를 지목했다면 채용하지 않았을 거라는 설명을 들었습니다. 지금에 와서 생각해 보면 프로젝트가 잘못되는데는 정말 온갖 원인이 있습니다. 희미한 비전, 부족한 시스템 같은 쉽게 공감할 수 있는 원인으로부터 시작해 회사에 고위 의사결정자의 심경 변화, 팀에 속한 개인의 태업이나 사보타주 같은 쉽게 납득하기 어려운 원인도 있습니다. 어떤 프로젝트는 초기 팀 빌딩에 실패해 상당한 자원을 사용한 다음에도 개발에 속도가 붙지 않아 회사가 의도한 시점의 눈높이에 어울리는 결과를 내지 못하기도 하고 또 임원들 사이에 일어난 어른들의 사정으로 인한 원인도 있습니다. 또 다른 게임의 비즈니스모델을 복제한 게임을 만들 때 비즈니스모델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한 채 다른 게임의 단위 기능을 복제하는데 집중한 나머지 복제해 온 비즈니스모델과 양립할 수 없는 컨텐츠나 기능이 게임에 함께 들어 있는데도 이를 눈치 채지 못하고 런칭했다가 실패하기도 합니다. 또 드물지만 정말로 돈이 없어 개발에 실패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 온갖 문제는 심지어 정확히 잘못한 한 사람을 지목할 수 있다 하더라도 그 한 사람의 잘못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게임 프로젝트는 여느 소프트웨어 개발 프로젝트와 마찬가지로 서로 다른 직군의 여러 사람이 참여하며 실패의 원인은 이들 모두에게 분산됩니다. 물론 책임은 어느 개인에게 집중되기는 하겠지만요.
한편 PC 게임 라이브를 하며 매 주 업데이트를 하는 나날은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그리 좋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회사에서 서비스하는 모든 게임은 매주 목요일 새벽에 업데이트 했는데 그러려면 수요일 밤에는 빌드가 준비되어야 했습니다. 목요일 새벽에 업데이트를 마치고 모니터링 하며 문제를 해결하는데 목요일 하루를 보내고 금요일에 다음 주 목요일 업데이트에 나갈 신규 컨텐츠, 아이템을 준비해 금요일 오후에서 밤 사이에 협업 부서에 전달하면 주말을 포함해 다음 주 화요일까지 에셋과 코드가 준비됐습니다. 그러면 수요일에 이들을 조립해 테스트 하고 문제를 해결하면 수요일 밤이 되어 바로 목요일 새벽에 나갈 빌드를 완성해 회사의 업데이트 관리 부서에 전달해야 했고 이 과정이 매 주 반복됩니다. 그러는 사이에도 좀 더 긴 기간에 걸쳐 준비해야 하는 새로운 규칙, 레벨 같은 항목을 동시에 별도 준비해야 했기 때문에 업무 강도는 꽤 높은 편이었습니다. 이 때는 신체적으로, 그리고 정신적으로 이 일을 감당하기에 충분히 강하지 못했고 이 생활을 오래 견디지 못하고 중간에 팀을 떠납니다. 정확히는 이전에 함께 일했던 분이 투자를 받아 프로젝트를 시작하는데 참여하기로 했는데 지금 와서 생각하면 이 새로운 프로젝트는 너무나 허술했지만 그 때 저는 이를 볼 수 있는 눈이 없었습니다.
그렇게 아는 분들과 시작한 회사는 아주 잠깐 동안은 재미있었지만 나머지 기간 대부분은 냄새의 추억에 소개한 한솥 도시락에 포함된 기름이 부패하는 강렬한 기억을 남기고 마무리 됩니다. 사실 스폰서는 계속해서 프로젝트에 돈을 낼 의지가 있었지만 스폰서가 다른 회사에 인수되는 과정에서 아직 실적이 없는 프로젝트를 정리하는 어른들의 사정에 의한 마무리였습니다. 또 프로젝트가 그렇게 정리되는 과정에서 얼마 동안 임금이 체불 됐는데 덕분에 노동부에 제출할 탄원서를 작성하고 또 몇 달에 걸쳐 수입 없이 수도권에서 버티는 일이 얼마나 무섭고 어려운지 아주 절실하게 배울 수 있었습니다. 사실 임금 체불은 이 때가 처음은 아니었는데 마지막 아르바이트의 유산 때도 얼마간의 임금을 받지 못한 채 아르바이트를 마무리해야만 했지만 그 때에 비해 이번에는 훨씬 더 기간이 길었고 유지해야 할 것도 많아 임금 체불이 일어나면 얼마나 무서운지, 미리 준비하지 않으면 무슨 꼴을 당하게 되는지 잘 알게 됐고 한동안은 이 주제에 대해 굉장히 민감하게 굴곤 했습니다. 이윽고 체불된 임금이 모두 정리되고 마지막으로 책상을 포함한 회사 집기를 한번에 매각해 이를 회사 밖으로 실어 나르는 일을 도우며 이번엔 좀 안정적인 큰 회사에 가야겠다는 결심을 합니다.
그리고 바로 그 다음에 겪은 일이 바로 10년의 밤입니다. 처음으로 회사 이름을 말하면 사람들이 쉽게 인식하는 회사였습니다. 회사에서 밥도 주고 사내 병원도 있고 샤워도 할 수 있고 또 실손보험도 들어 줬고 어느덧 이런 지원을 당연하게 여기게 됩니다. 특히 회사 꼭대기 층에 실손보험을 바로 접수할 수 있도록 직원이 상주하고 있었는데 이 점이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했고 또 그룹웨어에서 예약한 다음 슬리퍼를 그대로 신은 채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면 바로 도착할 수 있는 병원은 정말 엄청났습니다. 일 때문에 어깨와 손목은 항상 비실비실 망가지기 일보 직전이었지만 병원에서 이리 저리 붕대를 감고 또 적외선을 쪼여 가며 계속해서 일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 외적인 측면은 정말 훌륭했지만 실상 회사에서 하는 일 자체는 그리 만족스럽지 않았습니다. 아주 오랜 기간에 걸쳐 개발했으면서도 결국 출시되지 못하는 게임이 어쩌다 그런 운명을 맞이하게 되는지 바로 옆에서 배울 수 있었고 또 직접 체험할 수도 있었습니다. 이 때 역시 저는 여전히 잘 일하는 방법을 전혀 몰랐기 때문에 팀에 충분한 신뢰를 쌓지 못한 상태로 단위 기능을 개발하기 위해 팀을 다그치려고 했고 이 경험은 오랜 세월이 지난 지금도 오가는 리퍼쳌 속에 싹트는 카르마에 소개한 제 평가에 나쁜 영향을 끼치게 됩니다. 결국 이 프로젝트는 회사의 여느 프로젝트와 마찬가지로 영원히 출시되지 못하리라는 확신을 가지고 탈주 했는데 이로부터 딱 10년이 지난 어느 날 결국 출시에 성공합니다.
이렇게 게임 만드는 사람으로써 첫 10년이 지납니다. 이 기간은 게임 만드는 사람으로써 성장한 기간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지금도 마찬가지이기는 하지만 뭘 해야 하는지 잘 몰랐고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잘 몰랐습니다. 특히 게임 개발이 서로 다른 직군인 여러 사람들이 한 조직에 모여 일하기 때문에 다른 소프트웨어 프로젝트와 비교해 온갖 문제가 일어날 수밖에 없음을 인정하지 못해 유난히 어려움을 겪었다고 생각합니다. 가령 ‘아니 어떻게 이걸 모르고 일할 수 있지?’ 같은 불만을 자주 가졌는데 저 자신 역시 다른 누군가로부터 그런 불만의 대상이 될 수 있음은 훨씬 늦게 깨달았습니다. 또 디렉터나 게임디자인 직군이 아니더라도 개발에 참여한 사람들 거의 대부분은 그들 하나하나가 스스로 다른 게임의 고객이기 때문에 게임에 대한 다양한 요구사항이 있고 이를 인정하고 이들 사이에 줄을 타야만 개발을 진행할 수 있다는 사실 역시 깨닫기는 했지만 너무 늦게 깨달았다는 사실을 첫 10년을 보내고 한참이 지난 다음에야 깨닫습니다.
이 즈음 회사 밖에서 나름 업계 네임드로 알려진 한 디렉터님을 우연히 만나 밥을 먹었는데 신기하게도 이 분은 저에게 큰 관심을 가지셨고 이런 저런 이야기 끝에 그 쪽에서 진행 중인 프로젝트로 자리를 옮기기로 합니다. 그 때는 회사의 모든 지원은 너무나 훌륭했지만 정작 업무가 전혀 만족스럽지 않았고 그 상태로 경력을 지속할 때 과연 제가 발전할 수 있을지 심각하게 의심스러워 하던 참이었습니다. 하지만 10년의 밤에서 되돌아본 것처럼 이 때 그런 작은 업무에 대한 불만족을 회사의 지원을 바탕으로 버텨 냈다면 또 어떤 다른 경험을 하고 또 어떤 다른 사람이 되었을 수도 있습니다. 그 프로젝트는 놀랍게도 그 후 10년이 지난 다음 정말로 출시되었기 때문입니다. 그 안에서 불굴의 의지를 배워 앞으로 일어날 어떤 문제에도 절대 굴하지 않는 사람으로 성장했을른지도 모를 일입니다. 저는 다른 선택을 했고 지금의 저는 이전에 비해 더 강한 신체와 정신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다른 선택을 했을 때 얻었을지도 모를 그런 불굴의 의지를 가지는데는 실패했다고 생각합니다. 대신 뭔가 다른 것, 그러니까 다양한 사람들을 얻었습니다. 다만 그렇게 시작한 프로젝트가 카지노 라이크 - 1.5년 정리에 언급한 그 프로젝트였고 이 프로젝트의 실패담은 책에 박제되는 신기한 경험으로 끝을 맺습니다.
이후 잘못된 선택을 반복하다가 백수 한달에 소개한 인생 전체를 잠깐 멈추고 저 자신과 주변을 좀 가다듬은 다음 이 모든 일을 계속해야 할 것 같은 느낌을 받아 자발적인 백수 생활을 시작합니다. 사실 백수 생활을 시작할 때는 많이 무서웠습니다. 이전에 임금이 여러 달에 걸쳐 체불될 때 생활이 어떻게 변했는지 뚜렷하게 기억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다른 한 편으로는 계속해서 급한 마음으로 다음 선택을 하다가는 점점 더 나락으로 떨어지는 선택을 반복할 것이 거의 확실했기에 상당한 위험을 감수하고서라도 스스로 백수가 되는 모험을 해야만 했습니다. 다행히 이전에 불굴의 의지를 얻을 수 있는 길을 선택하지 않은 댓가로 여러 사람들을 알게 된 덕분에 백수 생활을 마무리하며 정말 재미있는 기회를 얻었고 덕분에 이 즈음에야 몇 년 만에 새로운 출시와 라이브를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몇 년 만에 라이브를 겪으며 이 역시 이전처럼 매주 1회 컨텐츠 업데이트, 매월 1회 빌드 업데이트를 거치며 정신적으로 무척 힘들었지만 이전에 비해서는 저 자신을 좀 더 잘 제어할 수 있었고 이때부터는 저 뿐 아니라 부서를 함께 추스려야 했기 때문에 이전 어릴 때처럼 행동할 수 없었으며 이런 제약을 통해 배울 것이 한 두 가지가 아니었습니다.
이후 디렉터님이 다른 회사로부터 훌륭한 기회를 얻어 주요 멤버들과 함께 이동해 한동안 신 나게 개발했지만 여러 가지 이유로 이 역시 이전에 경험했던 향후 몇 년 안에 도저히 출시할 수 없을 것 같은 상태에 빠져들었고 이전과 똑같은 냄새를 맡으며 이쯤 되면 제 주변 환경이 문제가 아니라 저 자신이 문제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습니다. 이 즈음에 처음으로 제 건강 상의 문제를 본격적으로 상담하기 시작했지만 프로젝트의 상태를 움직일 수는 없었습니다. 이렇게 약해진 마음은 평소 같으면 좀 더 냉정한 시선으로 바라봤을 반짝이는 단어에 마음이 약해졌고 이 이야기는 결국 가장 최근의 권고사직으로 끝납니다. 좀 줄여서 이야기하기는 했지만 이렇게 제가 이 업계에서 일하기 시작해 두 번째 10년이 끝나버렸습니다. 두 번째 10년을 썩 행복하지 않은 채 마무리하면서 이미 지나간 일에 대해서는 충분히 생각했으니 지금부터 시작할 다음 10년은 어떻게 보내야 할 지, 그리고 무슨 일을 해야 할 지 생각해야 할 때가 왔다는 사실을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두 번째 백수 생활을 이어가며 지난 기간을 첫 번째 10년과 두 번째 10년으로 구분하게 되었습니다. 첫 10년은 팀에서 그래도 한 사람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성장한 기간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두 번째 10년은 이른바 방황의 기간이라고 봅니다. 이상적인 이력서는 참여하는 프로젝트마다 모두 개발부터 출시, 라이브에 이르는 모든 기간에 참여하고 이 모든 절차에 성공한 기록의 연속이라고 생각하는 입장에서 두 번째 10년은 마음만 급했을 뿐 정작 그에 합당한 시각으로 프로젝트를 판단하거나 그에 합당한 신뢰를 구축하는데 관심을 가지거나 외부의 반짝이는 단어에 흔들리지 않도록 단단한 마음을 가지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사실을 잘 몰랐습니다. 다만 마음이 급한 나머지 빨리 출시 기록을 만들 수 있는 프로젝트를 부족한 정보에 기반해 선택하거나 빨리 결과를 낼 수 있을 것 같은 반짝이는 단어로 가득 찬 프로젝트를 부족한 사람 보는 눈에 기반해 선택하기를 반복했고 이 모든 시도는 당연하게도 실패로 돌아갔습니다.
이제 곧 세 번째 10년을 시작할텐데 이번에는 이전의 급한 결정들과 비교해 다른 시작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어쩌면 그럴 가능성도 없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이번에는 마음이 급하지 않습니다. 원하지 않는 시점에 백수가 된 직후 한동안은 마음이 급했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마음이 안정되어 신중하게 자리를 선택하고 제가 더 잘 기여할 수 있는 자리, 그리고 저를 필요로 하는 자리, 또한 이 모두를 단단히 지탱해 줄 수 있는 기반을 가진 회사, 함께 할 사람들, 당장 제가 해결해야 할 문제에 대해 좀 더 많은 정보를 가지고 선택할 수 있는 환경에 놓였습니다. 그리고 이런 선택은 그 결과에 도달하는데 시간이 많이 걸린다는 사실을 이번에는 아주 잘 알고 있고 이번에야말로 이를 달성할 수 있는 이전에 비해 좀 더 단단한 몸과 마음을 갖추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새로운 10년을 시작하며 지금까지 보낸 기간은 업계에서 좌충우돌하며 보낸 일종의 유년기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유년기의 끝은 아서 C 클라크의 과학 소설 제목인데 외계에서 온 오버로드의 등장과 현생 인류가 다음 단계로 도약하는 과정을 여러 시대에 걸쳐 풀어낸 이야기입니다. 인류는 목적을 알 수 없는 오버로드를 만나며 새로운 황금기를 맞이해 이들의 역할로 인해 우주에서 한 종의 유년기를 마무리하고 더 큰 우주에 속하는 일종의 도약을 경험하며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종으로 변화합니다. 이력서와 자기반성을 통해 지금까지 보낸 유년기의 기록으로부터 불굴의 의지, 성공적인 경력 등 어느 것 하나 내세울 것이 없는 그냥 오래 일한 아저씨 1 이상의 뭔가를 찾아내지는 못했습니다. 하지만 적어도 이 동안의 경험이 업계에서 한동안 시간을 보내 온 사람 입장에서 일종의 유년기의 기록이며 이제 그런 유년기를 마무리하고 다음 단계로 나아가 개인의 욕망 뿐 아니라 저와 함께 하는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고 또 올바른 영향을 행사할 수 있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느낍니다. 유년기 동안에는 성공적인 프로젝트에 속해야 하고 그런 프로젝트를 보기 위한 눈, 판단하기 위한 정보가 필요했다고 생각했다면 유년기의 끝에서는 저 자신이 주변에 도움을 주고 올바른 영향력을 행사하며 그 결과가 성공적인 프로젝트 수행이라는 결론에 다다랐습니다.
약간 무슨 지루하게 경험을 나열한 회고록 같은 느낌이 돼 버렸는데 이 모든 부끄러운 경험을 너절하게 적어 내려온 글은 ‘유년기의 끝’으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그 동안 이상적인 목표를 이루기 위해 급한 마음으로 일하며 온갖 바보 같은 실수를 저질러 왔고 그 마지막 마저 예쁘지 않은 모양으로 끝났지만 감사하게도 다음 10년을 시작할 기회를 얻었고 이는 유년기를 마무리하고 그 다음 단계로 나아갈 계기라고 생각하며 지난 유년기의 끝을 마무리하고자 합니다.
이번 43호에도 다른 다섯 가지 이야기를 준비했습니다.
지난 42호 커버스토리 뒷부분에 자잘한 이야기를 쓴 다음 발송하고 나서 한참 지나 곰곰이 생각해보니 음력 설이 시작되고 있었습니다. 설 인사를 드렸더라면 좋았을텐데 시간이 지난 다음에야 깨달아 아무 말씀도 드리지 못했습니다. 이번 설도 뜻 깊게 잘 보내셨기를 바랍니다.
설 동안 가까이 사시는 친척 분들과 고기를 먹을 일이 있었는데 고깃집 앞에 한 살도 채 안 되어 보이는 작고 귀여운 리트리버 친구가 메여 있었습니다. 아직 어려서 혼자 메여 있는 상태가 전혀 익숙해 보이지 않았습니다. 엄청 불안해 하고 있었거든요. 다가가서 쓰다듬어 주면 좋아하다가도 잠깐 손을 떼고 고기 먹을 사람들이 도착했는지 둘러보고 있으면 다시 얌전히 엎드려 쓰다듬어 달라고 기다리는 것으로 미루어 이 친구의 반려인도 비슷하게 행동했을 것 같습니다.
그 고깃집 직원 분이 입양하신 모양인데 낮 시간 동안 집에 있으며 계속해서 소리를 내 주변 사람들의 민원을 유발한 모양입니다. 그래서 가게에 데려왔지만 여전히 홀로 있으니 불안해 하며 계속해서 소리를 내고 있어 보고 있기 영 안쓰러웠습니다. 친척들과 고기를 먹고 나와 보니 사라져 있어 무슨 일인가 했는데 이번에는 지나가던 누군가가 민원을 넣어 다시 어딘가로 옮겨 간 모양입니다. 한 살 까지만 어떻게든 잘 지내면 그 다음은 조용하고 힘세고 믿음직한 친구가 될텐데 사람들이 가득한 도시에서는 고작 그 몇 달을 보내기가 이렇게도 힘든가 싶은 생각이 들어 안타까웠습니다.
그럼 또 다음 주에 뵙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