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수 한달

원하지 않게 인생에 두 번째 백수 생활을 시작했지만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오히려 다행입니다.

백수 한달

지난 권고사직 이후 백수가 됐습니다. 사실 한 달 이상 백수로 지낸 기간이 평생에 이번이 처음은 아닙니다. 오래 전 프로젝트가 터지던 날 이후 게임 업계의 고용 형태는 프로젝트 단위 계약직에 가깝습니다에 설명한 것처럼 회사에서는 최소 인원을 재배치 했지만 그렇지 않은 인원들은 거의 3일에 한 명 씩 팀과 회사를 떠났습니다. 이 과정은 으로도 출판되어 경영진 관점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아볼 수도 있는데 당시 팀에 속한 입장에서는 갑자기 프로젝트의 핵심 리더십들이 모두 사라지고 정신 차려 보니 팀을 떠나는 분들과 프로젝트 안에서 커피 타임을 하며 이들을 다독여 줄 사람이 저밖에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그렇게 한 달이 좀 넘는 기간에 걸쳐 수 십 명 - 과장이 아님 - 과 커피 타임을 하며 이들을 떠나 보내고 제 스스로도 그들의 감정을 받아내며 어려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저는 이 과정에서 옆에 있던 다른 팀으로 재배치 받게 되는데 이 때 재배치 될 부서의 PD님과 제 이력서를 놓고 다시 면접을 보며 이 분으로부터 ‘이건 불운한 이력서다’ 라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영원히 출시되지 않을 것 같은 프로젝트를 떠나 새로운 시도를 한 것 까지는 좋았으나 그 시도가 이렇게 회사에 큰 영향을 끼칠 만큼 장렬히 실패하며 결국 이력서에 실패한 또 다른 이력 한 줄을 추가하게 되었으니 불운하다는 말을 들어도 크게 이상하지 않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게임 만드는 사람의 이력서는 출시에 도달하고 라이브를 하며 고객을 만나 평가 받는 기록으로만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수 년에 걸쳐 출시작이 없는 이력서는 이런 이력이 비록 자기 자신의 잘못 만은 아닐지라도 결코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없습니다. 나름 대로는 그때그때 주어진 정보에 기반해 최선의 선택을 했다고 생각했지만 시간이 지나고 보니 결국 이력서에는 몇 년에 걸쳐 아무 것도 출시하지 못한 기록이 남아 있을 뿐입니다.

하지만 그런 평가를 받으며 재배치 된 프로젝트 역시 프로젝트의 방향을 설정하는데 난항을 겪고 있었습니다. 회사는 프로젝트 리더십에 아주 높은 기준을 요구했고 회사 안에서는 이런 사람을 거의 찾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성공한 리더십을 구입할 수 있을까에 소개한 대로 회사 밖에서 이전에 커다란 성과를 달성하는데 성공한 리더십을 구입해 왔습니다. 하지만 이런 시도는 일부 밖에 성공하지 못했고 제가 재배치 된 프로젝트 역시 그 일부를 제외한 나머지에 속했습니다. 성공은 여러 가지 요소에 의해 결정되는데 성공에 관여하는 여러 요소 중 리더십을 구입해 왔다고 해서 그 리더십이 이전과 같은 퍼포먼스를 낼 거라고 기대하기는 어렵습니다. 이 재배치 된 팀에서 한동안 머물며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노력해 왔지만 다른 프로젝트에서 일하다가 재배치 된 지 얼마 안 된 사람 입장에서 할 수 있는 일이 많지는 않았습니다. 또 프로젝트 리더십이 생각한 방향성을 결정하는 방식과 프로젝트 팀이 생각한 방식이 서로 달랐는데 서로 이 다름을 속 시원하게 털어놓지 않아 프로젝트는 표류했습니다. 결국 이 프로젝트 역시 적어도 런칭 단계에 조차 도달할 수 없으리라는 판단을 하고 제 스스로 팀과 회사를 떠납니다.

당시 이 결정을 할 때 개인적으로 굉장히 마음이 급했습니다. 10년의 밤, 그리고 카지노 라이크를 통해 아주 긴 기간 동안 이력서에 출시작을 만들지 못했고 이런 이력으로는 앞으로 새로운 직장을 구하기 아주 어려울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게 무엇이든, 또 그 곳이 어디이든 최대한 빨리 출시 경력을 만들 수 있는 자리에 가야 한다고 생각했고 이전 회사를 떠날 때 그럴 가능성이 아주 높다고 판단한 자리를 마련해 둔 참이었습니다. 이곳에서 한 시도는 지난 권고사직 보다 훨씬 더 처참하게 실패해 이력서에 기입하지도 않는데 그 때는 이 곳에서 거의 다 완성된 프로젝트에 소위 ‘숟가락’을 얹어 출시 경력을 만들 수 있으리라 예상합니다. 그 곳은 중국에 가장 유명한 게임 회사 중 하나가 홍콩 법인을 거쳐 서울에 만든 개발팀이었는데 프로젝트에 참여를 결정하기 전에 알게 된 중국 회사의 지원은 엄청났습니다. 가령 한국에서 게임을 개발할 때 어지간한 프로젝트도 QA 인원이 그리 많지 않았지만 중국 회사에서 단일 프로젝트에 할당한 QA 인원은 판교에서 가장 큰 규모 회사 인원과 맞먹었고 한번에 워낙 많은 프로젝트를 동시에 운용하다 보니 표준 개발 파이프라인을 구축해 이를 가이드라인으로 제공하기도 했고 덕분에 순식간에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또 이 프로젝트는 이미 본사에서, 그리고 중국 내 행사에서도 좋은 평가를 받고 있어 빠른 시일 안에 출시할 수 있으리라 예상하고 있었습니다.

실제로 출근해 뚜껑을 열어 보니 게임처럼 동작하는 뭔가가 있는 것은 사실이었지만 문제가 한둘이 아니었는데 개인적으로 생각한 가장 큰 문제는 어쩌다 이렇게 됐는지 추측하기는 어렵지만 서로 다른 여러 사람이 일관성 없이 각각의 단위 기능을 개발하다 보니 게임 전체를 유지보수 하거나 새 기능을 추가하기 극도로 어려운 상태였습니다. 각각의 기능은 이를 담당했을 누군가에 의해 예상한 동작을 수행하도록 만들어져 있었지만 작은 수정을 위해 높은 비용을 들여야만 했고 이런 상태에 도달하는 동안 개발팀은 서서히 이 상태에 적응해 어려운 수정사항을 회피하고 있었습니다. 또 이전에 참여했던 스탭으로부터 겪은 사소한 나쁜 경험 때문에 개발팀 전체의 생산성에 아주 큰 영향을 주는 결정을 아무렇지도 않게, 그리고 당연하게 해 버린 상태입니다. 대표적으로 이들은 온라인 멀티플레이 게임을 개발하면서도 게임을 조립할 게임디자인 스탭들이 수정사항을 반영한 다음 게임 서버를 각자 실행해볼 수 없었는데 이전에는 단 한번도 경험한 적이 없었습니다. 이유를 물어보니 이전의 누군가가 데이터를 수정하면서 여러 사람에게 영향을 주는 수정을 전체에 반영해 문제를 일으키자 개개인이 서버를 기동하지 못하도록 정책을 바꿨다고 합니다. 이 정책에 따라 서버 적용이 필요한 아주 작은 수정사항을 테스트하기 위한 이터레이션이 한 시간 넘게 걸렸고 이런 문제가 한 둘이 아니었습니다.

저와 비슷한 시기에 채용 된 리드 엔지니어는 전투가 출시할 정도로 충분히 훌륭하지 않으니 이를 적극적으로 수정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정작 이 분이 하신 일은 애니메이션 트리를 수정해 동작이 좀 더 부드럽게 연결되도록 만들거나 카메라 회전을 제어해 느낌을 바꾸는 정도였는데 이 변경 이후 팀원들이 이전에 클리어 할 수 있었던 스테이지를 제대로 클리어 하지 못하게 됐다는 점은 아주 사소한 비밀입니다. 판교에서 그럭저럭 알려진 회사에서 한 번에 이동해 왔다는 여러 스탭들은 오랜 기간에 걸쳐 낮은 생산성을 유지해 온 덕분에 이 상태가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분위기였습니다. 때문에 작은 수정을 테스트하기 위해 이터레이션에 한 시간도 넘게 걸리는 상황은 딱히 개선해야 할 문제가 아니었고 주로 반짝이는 새 기능을 개발하는데 관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회사와 계약을 위해 수 백 페이지에 달하는 계약서를 인쇄해 수 십 곳에 사인을 하고 두 부 모두 중국 본사에 우편으로 보내 본사의 확인을 거친 한 부를 돌려받아야 했는데 우편물이 중국까지 갔다 오는 데는 꽤 긴 시간이 걸립니다. 본사가 날인한 계약서가 돌아오기도 전에 저는 이 곳에서 출시를 경험하기는 불가능하다고 판단하고 아주 짧은 기간 후 퇴사했는데 결국 이 팀은 그 후 여러 달 후 정리됐고 그 때 만났던 리드 엔지니어는 다른 회사에서 건강검진을 갔던 병원에서 환자복을 입은 채 마주쳐 서로를 알아봤지만 서로 아는 체 하지 않았습니다.

급한 마음에 내린 결정이 또다시 처참하게 실패하자 제 커리어, 그리고 제 인생이 하강 나선을 그리며 서서히 아래로 떨어져 내리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선택 하나하나는 그 시점에 제가 가진 정보에 바탕한 최선의 결정이라고 생각했지만 그런 결정이 쌓임에 따라 점차 저는 업계 저편의 나락으로 서서히 가라앉고 있었고 그 속도가 느려 잘 느끼지 못해 왔지만 이제 꽤 많이 가라앉아 이를 눈치 채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물론 이 때도 마음이 급했지만 커리어가 하강 나선을 그리며 가라앉고 있다는 느낌을 받자 이 상태로는 어떤 의사결정을 해도 이 상태를 반전 시킬 수 없으리라는 것은 확실했습니다. 그래서 바로 다음 자리를 구하는 대신 하강 나선을 그리며 가라앉기를 반복하는 의사결정을 중단하고 이 모든 상황을 멈춘 다음 조금 물러나 시야를 넓힌 다음 다시 의사결정을 하기로 마음 먹습니다. 사실 이 결정은 개인적으로 상당히 위험했는데 생활인으로써 매달 급여를 받지 않으면 순식간에 생활이 아주 궁핍해질 것이 확실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바로 이어서 또 다시 마음이 급한 상태로 의사결정을 하면 어디든 가서 일하며 급여를 받아 당장의 생활이 궁핍해지지는 않겠지만 제 커리어가 그려 가는 하강 나선을 멈출 수는 없었을 겁니다. 그래서 회사를 그만 두고 마지막으로 중국 본사에서 걸려 온 성조가 포함되어 알아듣기 상당히 힘든 본사 인사팀과 퇴사 면담을 한 다음 회사를 떠나 집에 돌아왔고 자발적인 백수 생활을 시작합니다. 이게 바로 제 인생에 첫 번째 백수 생활입니다.

첫 백수 생활을 시작하며 한 석 달 정도 모든 것을 멈추고 급한 마음을 진정 시키고 나서 다음 행동을 하기로 했었는데 그나마 쉬는 동안에도 마음이 급해 처음 생각한 석 달이 다 끝나기도 전에 다음 할 일을 구하면서 첫 백수 생활은 두 달 반 만에 끝납니다. 이 기간 동안 집에서 아무 것도 안 하며 일주일을 보내기도 하고 책을 읽기도 하고 또 오랜만에 밤 세워 게임을 하며 낮과 밤이 바뀐 생활을 하기도 하고 또 그동안 해 온 일을 정리하기도 하며 시간을 보냅니다. 이 때 가장 잘 했다고 생각하는 것은 그 동안 바퀴가 작은 자전거를 타며 슬슬 큰 자전거를 타면 어떨까 하는 생각만 해 왔는데 어차피 백수가 되어 시간이 난 김에 큰 자전거를 사서 타 보기로 한 것입니다. 사실 급여가 없는 상태에서 꽤 비싼 뭔가를 사는 일이 영 내키지 않아 웬만하면 그냥 작은 자전거를 타는 정도로 만족할 생각이었는데 가족이 강하게 주장해 백수임에도 꽤 큰 돈을 들여 큰 자전거를 샀습니다. 그리고 마침 날씨가 슬슬 포근해지는 바람에 평일 낮 시간에 큰 자전거를 타고 동네에 오르막이란 오르막은 죄다 돌아다니기도 하고 또 아주 멀리 갔다가 돌아오기도 하고 또 한강 자전거도로를 천천히 달리며 평일 낮에도 한강에는 사람이 엄청나게 많다는 사실을 깨닫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집 밖에 나가 다른 공기를 들이마시고 또 평소에는 절대 볼 일이 없는 평일 낮의 여러 장소를 돌아다니며 몸을 움직이자 생각이 오직 하강 나선을 그리며 가라앉고 있는 커리어로부터 벗어나 제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여러 가지로 옮겨갈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두어 달을 보낸 다음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백수인 김에 여러 사람을 만나다가 또 어느 회사에 계신 분들과 낮 시간에 잠깐 만나 커피나 마시자는 약속을 잡았는데 돌아온 답변은 ‘뭐? 김우진이 백수라고? 시장에 나왔다고?’ 여서 커피나 마시러 회사 근처에 갔는데 거기에는 커피타임 대신 1차 면접 자리가 마련되어 있었고 정신 차려 보니 출근하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약 석 달 만에 다시 시작한 프로젝트는 이전에 경험하지 못했던 하드 워킹을 요구했고 어떻게 이를 잘 넘겨 오랜 세월 만에 출시와 라이브를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이 전까지는 거의 실무자 포지션에서 일했지만 이 때부터는 관리자 포지션을 겸하기 시작했고 저 자신도 여전히 중니어에 불과했지만 주니어님이 업무에 성공할 수 있도록 돕고 협업 부서들 사이에 교통정리 하는 일이 생각보다 나쁘지 않다는 사실을 배웁니다. 또 새로운 좋은 분들을 만났습니다. 이 과정의 핵심은 뭔가 잘못 되어 간다는 느낌이 들 때 마음이 급하다고 해서 그냥 그 상태로 의사결정을 반복하면 그 시점에는 그 의사결정이 얼마나 나쁜지 잘 알 수 없는 상태로 의사결정을 반복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뭔가 인생이 하강 나선을 그리며 나락으로 무너져 내리는 느낌이 들 때 마음이 급하다고 해서 계속해서 의사결정을 하지 말고 일단 모든 것을 멈춘 다음 마음을 추스리고 나서 다시 진행해도 괜찮다는 사실을 배웠습니다.

한편 그로부터 또 다시 세월이 흐른 다음 예상은 했지만 원하지는 않은 시점에 권고사직을 통해 또 다시 백수가 되었고 이번이 인생에 두 번째로 일주일이 넘는 기간 동안 직업 없이 지내는 것입니다. 이번에도 회사에서 잘린 직후에는 마음이 급해 온 사방에 제가 잘렸고 다음 할 일을 찾고 있다고 광고하고 초조하게 응답을 기다렸는데 이 즈음에 진행한 한 면접은 실패로 돌아갔습니다. 또 한동안은 감정적으로 썩 좋은 상태가 아니어서 아무도 돕지 않고 돌아서다에 소개한 대로 제가 도움을 줄 수 있는 상황에서 모른 척 회사 화장실만 이용한 다음 돌아 나서거나 스스로에게 일어난 일을 소코로프의 생애에 비유한 생각을 하기도 했는데 결국 그래서 저에게 좋을 것은 없었습니다. 이후 어차피 이제 관여할 일 없는 프로젝트지만 PvP는 정말 저렴한가? 의사결정 따라잡기, 왜 새 PvE게임모드 개발은 실패할 수밖에 없었나, 실패한 마지막 마일스톤으로 서비스 하는 방법, 여섯 번째 마일스톤은 왜 실패했을까 같은 생각을 하며 좀 더 이성적으로, 그리고 좀 더 넓은 시야로 제가 해 온 일을 바라보기도 하고 또 이력서와 자기반성을 통해 시장에서 제가 어떤 위치에 있는지 반성하기도 합니다.

두 번째 백수 생활을 시작하며 가장 감동적인 순간은 잘린 직후 급한 다음에 사방으로 제가 잘린 사실을 전파했는데 말씀을 들으시는 분들마다 저에게 따뜻한 위로의 말씀을 해 주셨을 때입니다. 다들 제 상황을 듣고 공감해 주시기도 하고 또 주변에 자리가 있는지 알아봐 주실 뿐 아니라 직접 연결해 주시기도 했으며 마음 고생을 했겠다는 말씀을 해 주시기도 해서 이 때는 메신저에 나타난 메시지를 보다가 뭉클한 감정이 들었습니다. 제가 뭐라고 이렇게 따뜻한 말씀을 듣고 또 제가 뭐라고 이렇게 많은 분들의 걱정과 위로를 받으며 심지어 주변에 있는 다른 자리에 연결까지 해 주시는 배려를 받는지 알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결국 이런 도움들은 가격이 비싸고 제 평생에 걸쳐 갚아야 함을 알고 있습니다. 어떤 모양으로 갚아야 할 지는 아직 잘 모르지만 분명한 것은 궁극적으로 무엇을 성취하고 싶은가요?에 이야기 했던 것처럼 업계에 계속해서 살아 남아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부터 시작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다가 기회가 올 때 지금의 저와 똑같이 위기에 처한 다른 분들을 도우면서 아주 조금씩 갚아 나갈 겁니다.

한편 처음 백수 생활을 하던 오래 전에는 백수 생활이 그리 익숙하지 않아 좀 난처했습니다. 월요일 아침에 눈을 떴는데 갈 곳도 없고 할 일도 없는 상태라는 점이 여러 모로 난감합니다. 그 전까지는 그런 경험을 할 일이 전혀 없었기 때문입니다. 처음에는 눈을 떴다가 출근할 곳이 없다는 사실에 다시 이불을 끌어당긴 다음 눈을 감고 잠을 청했는데 이런 것도 하루 이틀일 뿐 매번 그렇게 잠으로 시간을 보낼 수는 없었습니다. 시간이 없다는 핑계로 미뤄 둔 일을 끄집어내 저지르며 시간을 주로 보냈는데 그 때는 그런 식으로 생애주기 상 가장 활발하게 일해야 할 시간을 소비해 버려도 괜찮을지에 대한 걱정, 죄책감 같은 감정을 주로 느꼈고 이런 감정에서 벗어나는데 시간이 많이 필요했습니다. 위에서 소개 드린 대로 백수인 주제에 무리해서 큰 자전거를 사고 이걸 타고 평일 낮 시간에 온 동네를 돌아다닌 다음에야 좁은 시야를 개선하고 또 새로운 공기를 들이마실 수도 있었습니다. 이번에는 오랜만이기는 하지만 두 번째 백수 생활이라 이전만큼 당혹스럽지는 않았습니다.

지난 첫 번째 백수 생활처럼 이 모든 것을 멈춰야 할 이유는 없었고 또 저 자신도 쉬는 기간을 최소화 하고 이어서 일하고 싶었기에 함께 잘린 전 동료 분들이 그래도 1월 한 달은 쉰 다음 2월 초 명절 지난 다음부터 구직을 시작하실 예정이라는 말씀에 아랑곳 않고 적극적으로 구직을 진행했습니다. 구직 시장이 얼어 붙어 있다는 이야기를 이미 전해 듣고 있었고 이 때문에 잘린 직후에 마음이 아주 급했지만 제가 백수가 됐다는 사실을 주변에 마구 전파해 보니 얼어 붙은 구직 시장에서도 저와 비슷한 사람을 찾는 곳들은 여전히 있었고 제가 회사에 소속되어 구인 할 때와 마찬가지로 구인 하는 쪽에서는 사람이 없고 구직 하는 쪽에서는 마땅한 자리가 없는 상태처럼 보였습니다. 감사하게도 지난 1월에 적극적으로 구직 하며 업계에 오래 계셨지만 지금까지 한 번도 만나본 적 없는 분이나 말로만 듣던 분들을 실제로 만나 이야기를 나눌 일이 생겼고 이 과정이 비록 면접이기는 했지만 굉장히 즐거웠습니다. 면접을 통해 궁극적으로 무엇을 성취하고 싶은가요?, 무엇을 위해 게임을 만드는가, 오가는 리퍼쳌 속에 싹트는 카르마, 현대 MMO 디자인에 대한 갈증 같은 질문과 생각을 해볼 기회가 있었고 이런 생각들은 회사와 프로젝트에 속해 일하는 동안에는 시야가 좁아져 해볼 기회가 별로 없는 생각들이어서 질문에 답하는 순간에도 즐거웠고 또 이 질문을 머릿속에 갈무리한 다음 다시 생각해 글로 만드는 과정 역시 최고로 즐거웠습니다.

또 이번에 진행한 면접들은 대부분 소개를 통해 구인공고의 존재를 파악하고 또 이력서를 정식으로 제출하기 전에 미리 만나 서로를 탐색하거나 미리 비공식으로 서류를 제출해 저를 탐색하시도록 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덕분에 면접에 대한 피드백을 전해 들을 기회가 주어져 굉장히 유용했습니다. 면접은 보통 결과를 통보할 뿐 결과에 대한 이유를 알기는 아주 어렵거나 거의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면접 스터디가 진행되는 모습을 보면 그저 자신들의 상상으로부터 나온 가상의 면접관에 대응하는 의미 없는 노력을 반복하는 현상이 발생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실패한 면접은 나중에 이 자리를 소개해 주신 지인 분과 다시 만나 실패한 원인을 파악할 수 있었고 여느 면접과 달리 무엇이 문제였는지 확실하게 파악할 수 있었습니다. 또 실패하지 않은 면접이라도 제가 상대에게 어떤 인상이었는지, 또 기억에 남는 답변을 통해 제 답변의 어떤 점이 좋았는지 또는 나빴는지 피드백을 받을 수 있었는데 이런 기회가 또 있을까 싶을 정도로 좋은 경험이었습니다.

시간이 난 김에 평소 같으면 가보자고 말만 하고 실제로는 시간을 내지 못해 안 갔을 곳도 찾아 다녔습니다. 그 중 하나는 올해(2024년) 3월 말에 운영을 종료할 예정이라는 유성온천에 가서 지난 40호 커버스토리 나를 얼마에 팔 것인가 뒷부분에 자랑한 한정 굿즈를 획득하기도 하고 빵지순례의 성지에 가서 거대한 케이크와 온갖 빵을 산 다음 숙소에서 이들을 먹다 보니 식기도구가 없어 빵은 손으로 집어 먹었지만 케이크는 플라스틱 칼로 난도질 하며 떠 먹기도 했지만 나쁘지 않았습니다. 다음부터 여행 다닐 때는 만약을 대비해 식기도구 정도는 들고 다니면 좋겠다는 교훈을 얻습니다. 또 유성온천은 요즘 세상에 가장 현대적인 숙소와 온천에 비해 좀 클래식한 느낌이 들지만 이는 단점이라기 보다는 특징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현대에 이렇게 백 년이 넘은 랜드마크가 있다는 점 역시 매력적이라고 생각했지만 그런 장소가 사라지고 그 자리에 새로운 상업용 건물이 들어설 예정이라는 사실을 검색해 보고 아쉽기도 하고 또 아깝다는 느낌을 받기도 합니다. 그렇잖아도 전후 한국은 웬만한 도시 모두가 특색이 별로 없는 고만고만한 도시일 뿐이고 특색이라고 해 봐야 최근에 억지로 만든 케이블카나 공원 같은 역사가 없는 것들 뿐이어서 재미 없다고 생각했는데 대전 역시 이 오래된 숙소를 잃으며 좀 더 특색 없는 도시가 되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한 달을 보내고 이 글을 타이핑 하는 2월 1일 저녁 현재 예정된 면접들을 모두 마치고 나를 얼마에 팔 것인가 같은 고민을 하며 슬슬 백수 생활을 마무리할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곧 명절이 있으니 아직 백수 생활이 끝나기 까지는 시간이 좀 더 있을 것 같습니다. 여전히 평일 아침에 잠에서 깨 눈을 뜬 다음 출근할 곳이 없다는 사실에 잘 적응한 것 같지는 않지만 이제는 주섬주섬 일어나 얼굴에 물을 바르고 조용한 집에 앉아 커피 한 잔을 내려 놓고 한가롭게 유튜브 영상을 보며 아무것도 안 하는 시간을 보낼 때 이전보다 죄책감을 덜 느낍니다. 또 한 달 내내 놀았는데 이대로 밥값을 축내다가는 가정 경제가 파탄에 이를 수도 있으니 슬슬 탑골에라도 가서 새벽부터 줄을 서야만 간신히 먹을 수 있다는 허경영이 그려진 도시락이라도 받아 먹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데 정말로 호기심이 발동해 새벽에 탑골에 나가볼까 하는 생각을 꽤 진지하게 하고 있습니다. 평소에는 허경영 스티커가 붙어 있는 버려진 용기를 무심히 지나쳤지만 그걸 받으면 한 끼 식비를 아낄 수 있다는 생각을 해보니 꽤 매력적입니다.

의도치 않게 시작된 백수 생활은 처음엔 불안했지만 시간이 지나며 평소 같은 마음 상태를 되찾고 여러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 즐겁게 이야기를 주고 받고 또 생각할 거리를 얻으며 어쩌면 오히려 잘 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분명 직전에 일하던 프로젝트를 계속하며 여러 가지를 배울 수 있었을 테고 또 제가 기여할 수도 있었을 겁니다. 하지만 지난 주 크립토 게임은 언제 어떻게 돈을 벌까 (1), 크립토 게임은 언제 어떻게 돈을 벌까 (2)에 소개한 대로 그 프로젝트는 비디오 게임 관점에서는 의미 있었을 지 모르지만 이를 둘러싼 한때 가장 반짝이던 단어들은 제품에 별다른 의미를 가지지 못한다는 사실이 변하지 않으며 이는 장기적으로 전통의 비디오 게임 업계를 떠나 있는 시간을 너무 길게 만들어 더 늦게 프로젝트에 실패했더라면 이번 같은 좋은 기회들을 접하지 못했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어쩌면 이번에 돈이 없어 회사에서 잘린 편이 제 개인적인 입장에서는 오히려 잘 된 일이 아닌가 하는 생각입니다.

늘 적게 일하고 많이 벌거나 아예 일하지 않아도 어디서 규칙적으로 돈이 들어오면 좋겠다는 소리를 하면서도 귀찮고 또 현금도 없어 로또를 사지도 않지만 솔직히 저는 백수 체질은 아닌 것 같습니다. 여러 사람들을 만나 새로운 생각할 거리를 얻는 과정은 즐거웠지만 여전히 생애주기 상 가장 활발하게 일할 시기이고 이 때 업계의 어느 프로젝트에라도 소속되어 기여하는 쪽이 당장은 더 힘들지만 시간이 지나고 나서 돌아보면 이 쪽이 더 즐겁고 또 더 의미 있을 겁니다.

아직 미래를 확정하지는 않았습니다. 감사하게도 자리들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상황에 놓여 있고 열심히 고민한 다음 어느 하나를 선택한 다음에야 실질적으로 백수 생활을 마무리하기 시작한다고 말할 수 있을 겁니다. 첫 번째 백수 생활에 비해 좀 짧은 기간이었지만 이번 백수 생활은 지난번에 비할 만큼 의미 있었던 것이 확실합니다. 이제 다시 힘을 내 다시 일터로 돌아가겠습니다.

이번 41호에도 다섯 가지 다른 이야기를 준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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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는 명동 근처의 버스 정류장에 시도했던 버스의 정위치 정차 정책을 일단은 철회한 모양입니다. 그런데 개인적으로는 이 정책이야말로 버스 승차에 따른 공포를 거의 없애 주는 정책입니다.

지난 1월 마지막 날을 끝으로 예정된 면접 일정을 모두 마쳤습니다. 여러 지인님들의 큰 도움 덕분에 예상보다 훨씬 부드러운 과정을 거쳐 다음 자리를 탐색할 수 있었고 그 과정 하나하나가 즐거웠습니다. 아직 어느 한 자리를 최종 선택하지는 않았지만 그럴 수 있는 단계에 도달해 마음이 훨씬 편해졌고 이제는 남은 백수 기간을 조금은 마음 편히 즐길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본문에도 말씀 드렸지만 제가 이번에 받은 따뜻한 위로의 말씀들과 도움의 댓가가 결코 저렴하지 않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계속해서 업계에 살아 남아 일하며 제 자리를 유지해 앞으로 다른 누군가가 위기에 처할 때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준비하겠습니다. 그리고 이번 주에도 여기 까지 함께해 주신 독자님들께 감사드립니다. 그럼 또 다음 주에 뵙겠습니다.